동인사담집 4/비파 뜯는 임금

『동궁, 어떤가?』

『네?』

『어떻다?』

『좋습니다.』

『좋으면 왜 음침한 낯을 하고 있어?』

『좋습니다마는 왜 그런지 신은 적적 하옵니다.』

『적적해?』

때는 봄철, 곳은 경복궁 내전 곡연(曲宴), 뿌리는 꽃잎과 펄럭이는 무희의 옷소매 옷자락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요량한 가문의 소리─ 어디가 적적하고 왜 적적하랴?

왕은 잠시 사랑하는 동궁의 얼굴을 굽어보다가 당신도 쓸쓸히 한숨을 짓고 미희의 따라 주는 술잔을 받았다. 금준미주에 뒤섞인 요량한 음악성 가운데서, 봄날 대궐의 잔치는 더욱 흥그러워 갔다.

이런 흥겨운 잔치 가운데서도 왕세자는 까닭 모를 음침한 기분에 잠겨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차차 장성하면 장성할수록 세자의 기분은 음침하여 갔다.

왜? 무슨 까닭으로? 몸은 이 나라의 임금의 적자로 태어나서 왕세자로 책립까지 되어, 이후 부왕이 승하하시는 날에는 이 삼백 주의 임금으로 될 영광스런 신분이요, 부귀영화 부러울 바가 없는 몸으로서 왜 마음이 나날이 음침하여 가나?

왕세자에게는 알고도 모를 일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할머님 되는 대비가 자기에게 취하는 태도였다. 세상에서 할머니의 손주 사랑과 장모의 사위 사랑을 사랑 가운데 쌍벽으로 치거늘, 세자의 할머님이요 부왕의 어머님 되는 대비는 왜 그런지 사사에 손주 보기를 눈의 가시와 같이 보며 지독히도 밉게 보았다.

또 하나는 모후 되는 왕비가 자기에게 대하여 가지는 바 사랑이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한다 하는 것은 당연코 또 당연한 일이다. 모후도 세자를 사랑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랑이 왜 그런지 왕세자에게는 냉랭하게 보였다. 사랑해야 할 물건이니 할 수 없이 사랑하는 맛이 너무도 많이 보였다. 왜 그럴까?

또 한 가지는 부왕이 자기에게 갖는 사랑이었다. 끔찍히 사랑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사랑도 역시 인륜의 본능적 사랑이 아니요, 미안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점이 보이는 듯하였다. 사랑에 굶주린 왕세자였다.

철이 들면서는 나날이 음침하여 갔다. 세상만사가 모두 귀치 않은 때도 흔히 있었다.

때는 성종 말엽, 이씨 태조 건국 후에도 임금의 대가 아홉 번 갈리고, 이 왕의 증조부되는 세종대왕의 놀랄 만한 문치(文治)와 세종대왕의 아드님 되는 세조대왕의 무비(武備)의 시대를 겪고 나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문과 무가 아울러 찬연한 광휘를 발하는 호화로운 시대였다.

백성들은 배를 두드리며 태평성대를 축하하고, 대궐에서는 매일 곡연(曲宴=궁중의 내연)이 그치는 날이 없는 이 좋은 시절이건만, 왕세자의 얼굴은 나날이 음침하여 갈 뿐이었다. 때때로는 무서운 광포성(狂暴性)을 발할 때도 있었다. 대신들도 근심하였다. 대신들보다 왕은 더욱 근심하였다. 그래서 잔치에는 세자까지 불러 내어서 참여케 하여, 조금이라도 세자의 음산한 기분을 삭여 주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 노력의 소득은, 단지 세자가 술을 많이 먹게 되고 부왕의 관용한 태도에 마음 놓고 계집들을 희롱하기를 예사로이 하게 한 데 지나지 못하였다.

『딱한 일이로군……』

왕은 매우 근심하였다. 왕과 같이 대신들도 근심하였다. 왕세자는 장차 왕이 될 분이요, 왕은 나라를 대표하는 존재라, 세자의 음침한 성격은 국가 흥망상에도 큰 관계가 있어서 마음 있는 대신들은 후 사를 매우 근심을 하였다.

×

이 음울한 왕세자가 등극을 한 것은 명나라 효종 홍치 칠년 갑인(甲寅)년이었다.

태평성대의 군왕으로 태어나서 재위 이십년간을 사랑하는 신하들과 시문(詩文)이나 토론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궐 안에 잔치를 베풀고 왕족들을 청하여 술과 가무나 즐기고 보낸 뒤에 보수 삼십팔세로 영원의 나라로 떠나고 그의 맏아드님인 왕세자가 새 임금으로 등극을 하였다.

왕세자 시대부터 궁중 곡연에 익은 신왕은 까닭 모를 쓸쓸한 회포를 풀기 위하여 매일과 같이 대궐 안에 잔치를 열고, 아리따운 계집들의 펄럭이는 옷자락을 보면서 약간 마음의 위안을 얻고 하였다.

이 신왕이 등극하면서 첫 번 한 한 가지의 일은 그의 심경과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신왕은 등극하면서 즉시로 대궐에서 기르는 한 마리의 사슴을 때려죽였다. 일찍이 이 왕이 아직 동궁으로 있어서 어떤 날 부왕을 모시고 무슨 이야기를 할 때에, 대궐에 기르던 사슴이 와서 동궁의 손을 핥았다. 동궁은 갑자기 손이 선뜻하므로 질겁을 해서 사슴을 발로 걷어찼다.

부왕은 이것을 보고 동궁을 단단히 책망하였다. 미물이라도 사람을 반겨서 찾아왔거늘 왜 그리 괄시를 하느냐 하며, 한나절을 책망을 하였다. 동궁은 단지 선뜻하므로 겁결에 걷어찬 것이지 특별히 미워서 한 것이 아니어늘, 부왕께 한나절이나 책망을 듣고 나니 차마 부왕께는 거역을 못하나, 그 대신 사슴을 밉게 보았다. 이때 맺혔던 원한을 부왕 승하와 동시에 풀은 것이었다. 음침한 성격의 주인인 그는 한번 먹었던 원함은 몇 해가 지날지라도 결코 잊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

태평성대의 뒤를 받은 신왕이라, 선왕의 선치의 덕으로 귀찮은 문제도 없이 순조로운 세월을 술이나 대하며 일년 이년 하여 삼년째─ 즉위한 갑인년도 지나가고 을묘년도 또한 지나가고 병진년이었다.

그 어떤 날, 이 날도 역시 적지 않게 취하여 밤 깊어서 왕은 와내(臥內)에 들어갔다. 와내에 들어서 취한 몸을 한 번 뒤채던 왕은 이불 속에 무엇이 손에 걸리는 것을 직각하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보았다.

보다가 휙 내어 던졌다. 더러운 손수건이었다. 무엇이 묻었는지 얼룩얼룩 얼룩지고 때가 조기조기 낀 지독히도 더러운 손수건이었다.

칵! 가슴에 받는 분노와 불쾌─ 이 더러운 손수건을 누가 자리 속에 넣었나?

『야!』

한 번 불렀다.

『야야─』

뒤따라 불렀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네이.』

대답이 매우 가까운 데에서 들렸다. 마치 기다리던 듯이 곧 문밖에서 났다.

『이리 오너라.』

『네이.』

『이게 뭐냐?』

『네이.』

『문을 열어! 이게 더럽게 뭐냐?』

문이 방싯이 열렸다. 문 밖에는 늙은 나인이 한 사람 읍하고 서 있었다.

『이게 뭐냐 말이다?』

왕의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나인은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한순간 늠실하였다. 곧 뒤를 돌아보았다.

『상감마마!』

『……』

『상감마마께 소원할 일이 있사옵니다.』

『무에라?』

『상감마마, 소인은……』

나인은 문 안에 들어섰다. 어전임을 불구하고 문 안에 들어서서 뒤로 문을 닫았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상감마마, 그 수건은 거룩한 물건이옵니다.』

『?』

『상감마마를 탄생합신 모후(母后)마마의 수건이옵니다. 그 반문(班紋)은 모후 마마의 함원합신 선형이옵니다.』

『무얼? 대비전께서─』

왕의 말을 나인은 가로막았다─

『대비전은 상감마마를 탄생하신 모후가 아니옵니다.』

무얼? 유출유기(愈出愈奇)한 나인의 말에 왕은 눈을 크게 하였다. 취하였던 술도 한순간에 깨었다.

나인의 말에 의하건대, 왕을 탄생한 왕의 모후는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에 폐비가 되어 대궐에서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무슨 특별한 죄가 있어서 쫓겨난 것이 아니요, 단지 시어머님되는 당시의 왕대비의 눈에 벗어나서 미움을 받았고, 그 때문에 마지막에는 대궐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였다 하는 것이었다.

대궐에서 쫓겨난 모후는 그뒤 여염에서 곤궁한 생활을 십년간을 지내다가, 약사발을 받고 비명에 횡사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손수건은 모후 윤씨가 최후 사발을 들이키고, 바야흐로 운영할 때에, 손수 수건으로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고 친정어머니 되는 신씨(申氏)에게 부탁하여, 이 뒤 아드님이 등극하는 날에는 자기의 청백을 펴 달라고 맡긴 것이었다.

아직껏 왕이 어머니로 알고 있던 대비는 사실에 있어서 모후가 아니요, 왕에게는 계모에 지나지 못하였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누가 들을세라 하여 나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하는 것을 왕은 찬찬히 다 들었다.

그 밤으로 당직 승지는 왕명으로 경자년 정원일기(政院日記)를 받들고 침전에 들어왔다.

경자년의 정원일기라는 것은, 이 왕의 앞에 내어놓기가 힘든 물건이었다. 경자년 윤비를 폐할 때의 상세한 기록이 적히어 있었다. 왕명이 지엄하므로 할 수 없이 가지고 오기는 왔지만, 승지(承旨)는 그것을 바칠 때에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승지가 바치는 일기를 낚채어 읽는 동안 왕의 얼굴은 놀랍게도 창백하여졌다.

믿기우지 않는 일─ 그러나 정원일기에 이렇게 적히어 있는 일이라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뿐더러 왕의 마음에 늘 수수께끼로 걸려 있던 문제가 모두 정원일기를 보매 해결이 되었다.

첫째로 당신의 친할머님이 그렇듯 당신께 냉랭하던 것도 이제는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어머님이라 믿던 대비의 표면적 사랑도 설명이 된다. 부왕의 알 수 없던 태도도 또한 알 수 있다.

『으─ㅁ!』

무겁게 새어나오는 신음─ 그것은 너무도 억울하여 내는 탄식성이었다.

×

이튿날 새벽에 한치형(韓致亨) 이하의 재상들이 급급히 불리웠다.

빈청에 들어서면서 벌써 어젯밤 왕이 경자년의 정원일기를 보았다는 일을 안 재상들은, 가슴이 선뜻하여 송구한 가운데서 처분을 기다렸다.

왕에게서의 처분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경자년 폐비시에 폐비설에 찬동한 대신들은 그 이미 죽은 자는 무덤을 파서 시체를 형벌하고 살아 있는 자는 죽이자는 것이었다.

×

누구 하나 대답하지 못하였다.

비록 선왕의 처분으로 폐비하고 사사(賜死)까지 하였다 하나, 죄 없는 줄은 다 아는 바였다. 그때 원사(寃死)한 이의 아드님으로서 지금 지존의 자리에 있는 분이 원사한 어머님의 설원을 할 겸, 복수를 하겠다는 데 반대를 할 여지가 없었다.

단지 폐비를 다시 복위하고 추숭(追崇) 하자는 데는 〈선왕 때의 죄인이라〉는 명목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년 무죄한 왕비를 폐하는 데 찬동한 아첨배들을 옹호할 구실은 발견하지를 못하였다.

이리하여 이 임금이 즉위한 뒤의 첫 번 참극(慘劇)은 연출되었다.

×

이 사건을 한 기축으로 하여 왕의 성격은 뒤집어 놓은 듯이 변하였다. 이전까지는 단지 음침한 성격의 주인이요, 술을 즐겨하고 술이 취하면 스스로 비파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침묵의 사람이었었는데, 이 사건을 겪고 나서는 아직껏 잠재(潛在)해 있던 왕의 광포성이 맹연히 일어났다.

밤에는 잠을 잘 못 이루었다.

『우─ 우─』

밤새도록 가위눌리다가는 땀을 쭉 빼고 벌떡 일어나서는 사면을 휘돌아보고 하는 것이었다.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마다 모후를 보았다. 일찍이 모후의 면영을 본 일이 없는 이 왕이라, 꿈에 본 인물도 얼굴을 기억치 못한다. 머리를 풀어 허트리고, 입으로는 피를 흘리는 여인이 나타나서는 왕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어머님! 엄마마마!』

아아─ 일국의 국모로서, 그의 아드님은 현재 왕세자로 대궐에서 고이고이 지낼 동안, 그 아드님 탄생한 어머니는 여염 곤궁 중에서 기한에 시달리다가 그 최후에는 와석종신조차 못하고 비명횡사를 하단 말인가?

어떤 날, 왕은 좌의정 어세겸(魚世謙)을 편전에까지 불러들였다.

『정승.』

『대령하왔습니다.』

『내가 한 마디 물어볼 일이 있는데 꼭 직언(直言)을 해 줍시오.』

세조대왕 때에 문과에 등제를 하여 그 뒤 예종조와 성종조를 지나서, 네 대째의 임금을 섬기는 늙은 재상은 한결같은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굽혔다.

『다른 게 아니라, 인자된 도리로는 아버지를 좇아야 합니까? 어머니를 좇아야 합니까?』

『네이, 인자된 도리로서는 아버님과 어머님께 편벽됨이 없어야 할까 생각되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박해(迫害)한 때는 어느 편을 쫓아야 하오?』

『전하! 아버님과 어머님의 목불목(睦不睦)은 그 두 분 새의 일이고, 인자된 도리로서는 여전히 편벽됨이 없어야 할까 하옵니다.』

왕은 이 시원치 못한 대답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듯 마음대로 수박같이 갈라서 좌우 쪽으로 붙이지 못합니다.』

안돈될 때에는 안돈도 되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이 일단 광란(狂亂)의 경으로 흘러가서 시작만 하면 걷잡을 새 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무시로 술을 불러 들였다.

『술이다! 술이다!』

술을 먹고는 손에 비파를 들고 난무(亂舞)하는 왕─ 난무하다가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통곡을 하였다. 통곡하면서는 어머니를 찾았다.

이러한 가운데서 왕의 광포스런 성격은 나날이 늘어가고, 그와 동시에 그가 그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질투심도 차차 늘었다.

어떤 날, 왕은 대궐에서 기르던 암캐를 활로 쏘아 죽였다. 그 까닭은 간단하였다. 개가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이 어미에게 달려들어서 젖을 빨았다.

일국의 임금인 당신도 어머님이 없이 길러났는데 미물에게 무슨 어미냐! 이런 마음으로 어미 개를 죽여 없이한 것이었다.

『하하하하, 아─ 하하하하─』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웃으면서 손에는 비파를 들고 비칠비칠 전내를 돌아다니는 왕을 내관이며 나인들도 이제는 차차 겁을 내어 피하였다.

×

그러는 동안에 왕의 즉위 제5년에, 무오사화가 드디어 폭발하였다.

김종직(金宗直)이란 인물이 있었다. 세조대왕 때에 비로소 등과를 하여 성종때에 형조판서까지 지난 인물이었다.

그 김종직이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이란 것을 지어서 세조대왕의 위를 물려받은 것을 찬위하였다는 뜻으로 단종을 의제(義帝)에 비겨서 조상한 글이었다.

그 김종직에게 원혐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왕께 김종직의 그 글을 고자질하였다. 김종직은 세조대왕을 섬김 인물로서, 지금 세조를 진시황에 비기고 단종을 의제에 비긴 것은, 역적이라 하였다.

(次號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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