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사담집 4/촌가의 용

『여보게 대감, 잘 생각을 해 보게. 어떤 집에 하인이 있다. 그 집 주인이 자기 마누라가 싫증이 나서 쫓아버리렬 때에, 하인이 주인의 편을 들어서 주인댁 쫓아내는 데 힘을 도왔다 하세. 하인이야 물론 주인에게 충성된 셈이지. 아무 원도 없는 주인댁을 단지 주인께 충성되기 위해서 쫓아냈으니까, 주인께야 오직 충복인가? 그런 충복이니만치 주인에게야 고임도 받고 사랑도 받을 것일세. 그렇지만 그 주인의 대(代)가 지나서 주인의 아들의 대가 되면 어찌 되겠나? 주인의 아들의 대에도 역시 충복으로 고임을 받을까? 주인의 아들이면 또 겸해서 쫓겨난 주인댁의 아들일 터이니……』

『……』

『생각을 잘 해 보게. 주인께, 주인 아들께 원혐지기보다는, 부자 두 분께 다 은원(恩怨) 없이 지내야 하네 이것이 처세도일세.』

『……네 알겠습니다.』

때는 성종(成宗) 십일년 경자─ 대궐에서는 한창 폐비(廢妃)의 의논이 높고, 오늘은 그 문제를 최후로 결정하기 위하여 왕께서 모든 신하를 불러들이시는 날이었다. 그 날 허종(許琮)은 입궐하는 길에, 잠깐 사직골 사는 자기 누님의 댁에를 들렀다. 들렸더니 누님의 하는 말이 이것이었다.

왕의 신임과 총애를 한 몸에 지니고 재상의 자리에 앉아서 나라를 요리(料理)하기 수년, 자타(自他)가 허락하는 명신(明臣)이었다. 어떤 어려운 일, 어떤 귀찮은 일을 만날지라도 주저하여 본 일이 없고 뒷걸음질 쳐본 일이 없는 명재상으로서, 왕의 고임과 백성의 존경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허종이었다.

이번 임금께서 왕비 윤씨를 쫓아내시겠다는 의논을 꺼낼 때에, 허종은 그것을 그다지 큰 문제로 생각지 않았다.

임금과 왕비라 하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바치면 좀 별다르게 생각도 되지마는, 왕비의 폐립과 자기 일신의 운명과 관련하여 생각해 본 일은 없었다. 폐해야만 할 왕비면 폐할 것이고, 폐할 죄가 없으면 하지 않을 것이라─ 이만치 생각하여 둔 뿐이었다.

그랬더니 지금 누님의 말을 듣고 보니, 문제는 단지 피안의 불로 여길 것이 아니었다. 이 폐립 문제에 자기의 입 하나를 잘 놀리는 데서 자기의 운명까지도 좌우가 될 것이다.

─어떤 집에 하인이 있다. 하인이 주인댁을 내쫓는 데 조력을 하였다. 무론 충복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주인의 아들의 대에도 역시 새 주인의 고임을 받을까? 나라를 한 손으로 주무르던 명재상으로도, 인정의 이런 기밀한 곳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하였던 것이다.

누님의 이 말 앞에 푹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허종은

『알았습니다. 선처(先處)합지요.』

하고 누님댁을 나섰다.

대궐로 향하여 말을 달렸다. 그러나 사직골 개천 돌다리까지 이르러서 허종은 한 번 비츨한 뒤에 말께서 개천으로 떨어졌다.

배종하던 하인들이 놀라서 달려들 때에, 허종은 매우 몸이 아픈 듯이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즉시 별배를 시켜서 대궐에다

『허종은 예궐하던 도중에서 불행히 낙마를 하여 상처 심상치 못 하와, 오늘 어전회의에 참예치 못하겠습니다.』

고 정원에 아뢰게 하고, 자기는 하인들의 부축으로 사린교에 올라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쓰고 누워 버렸다.

×

그 날 대궐에서는 어전회의가 열리고 뭇 재상들이 모여서 허침, 손순효(許琛, 孫舜孝) 등 한두 재상의 반대는 있었으나, 종내 왕비 윤씨를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내려지게 결정이 되었다.

그 날 폐비론(廢妃論)에 반대한 한두 재상은 임금께 노염을 샀다. 폐비론에 찬성을 한 재상들은 임금에게서 고마우신 분부를 들었다. 단지 허종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에 노염도 안 사고 칭찬도 못 들었다.

폐비 윤씨는 그로부터 십년간을 곤궁한 여염에서 그날 그날의 끼니조차 만족치 못한 군색한 생활을 하다가, 종내 이전의 그의 지아버님이요 이 나라의 임금이신 분에게서 내리신 약사발을 받고 억울한 그의 생명을 끊었다. 이러한 비극이 있는 줄은 모르고 그 어머니의 아드님인 어린 왕자는 대궐에서 임금의 후비(後妃)를 친어머니로만 알고 고이고이 장성하였다.

×

윤씨가 세상을 떠난 지 오년 후에, 그의 지아버님이던 임금도 승하하셨다. 그 임금의 뒤를 이어서 등극한 이는 윤씨 소생의 왕자였다.

이 새 왕이 등극한 지도 또한 일년이라는 날짜가 흘렀다.

돌개 바람은 드디어 일었다.

폐비 윤씨가 억울한 최후를 겪을 때에,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손수건에 적시어 가지고 이것을 자기 친정어머니에게 부탁하여, 이후 자기가 탄생한 아드님이 왕위에 오를 때에는 이 수건을 그분께 바쳐서 억울한 죽음의 설원을 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었다. 새 왕이 등극한 지 이년 뒤에 윤씨의 친정어머니는 이 피묻은 손수건을 가지고 왕께 왕의 탄모(誕母)의 원사를 호소한 것이었다.

아직껏 선왕의 계비를 친어머님으로 알고 있던 왕께는, 이 사실은 과연 청천의 벽력이었다. 반신반의하여 즉시 정원일기(政院日記)를 들여다보매, 과연 당신의 탄모는 선왕 십일년 경에 모호한 죄명으로 대궐에서 쫓겨나서, 그 뒤 십년 간을 참혹한 여생을 보내다가, 마지막에는 약사발을 받고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노염이 극에 달한 왕은, 그때 폐비를 헌의(獻議)했거나 찬성한 재상들을 모조리 극형을 가하고, 이미 죽은 자는 무덤을 파고 시신에까지 형벌을 가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허종은 그 날의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였다는 덕으로 이 형벌을 면하였다.

×

원수의 일부분은 갚았다.

갚기는 갚았으나 갚았다고 이미 십오 년 전에 세상 떠난 어머님이 다시 살아날 리는 없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마음은, 비록 그 날 폐비를 현의 혹은 동한 재상들에게는 원수를 갚았으나, 떠난 어머님이 돌아오기 전에는 마음이 펼 까닭이 없었다. 어머님을 무덤에서 다시 불러내지 못하는 동안은 왕의 울분은 삭을 수가 없었다.

울분이 살지 않으면 않느니만치 차차 광포한 성격이 늘어갔다.

「모두가 선비놈들의 한 짓이다.」

이리하여 왕은 어머님을 사모하는 나머지에, 선비를 미워하는 생각이 나날이 커갔다. 핑계가 생길 때마다 선비들을 잡아서 무슨 명목이고 붙여서 죽이고 하였다.

이 선비들은 또한 왕의 증조부 세조 대왕을 후욕한 일이 있었다. 그 죄도 다스렸다. 놀라운 선비 수난 시대가 이른 것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드디어 갑자년의 사화(士禍)가 폭발되었다.

결련된 선비는 모조리 잡아 죽였다. 일찌기 눈치를 채고 미리 도망한 사람 외에는 모두 잡혀서 벌 받았다.

×

이러한 소란한 때에 서울서 칠백 리 상거되는 전라도 어떤 벌을, 선비 한 사람이 황황히 길을 가고 있었다. 소란의 서울을 피하여 망명하는 선비인 게 분명하였다. 수수밭, 조밭 틈으로 몸을 숨겨 가면서 도망의 길을 채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밭고랑 틈에는 뜨거운 바람이 간간 가슴이 확확 막히도록 부는 외에는, 바람기도 없고 오직 지옥 같았다.

목이 말라서 입이 딱 붙는 모양이었다. 숨차서 입을 벌릴 때마다 쩍쩍 하는 소리가 났다.

「어디 우물이나 개천이 없는가?」

우물을 찾으려면 인가 근처로 가야겠고, 인가 근처에는 가기가 무서웠다. 불행히 개천이 없으니 이 타는 듯한 목을 추기기 위해서는 우물밖에는 도리가 없는데, 우물 근처에를 어떻게 가나?

남의 눈에 띄었다가는 잡힐 것 같기만 하였다. 잡혔다가는 죽는 판이다.

갈증을 참자. 설마 갈증에 죽기야 하랴? 이러한 생각으로 그냥 무더운 밭고랑만 한참을 더 더듬었다.

그러나 한참을 더 더듬다 보니, 이제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오장육부가 모두 불타오르는 듯, 눈앞이 아뜩아뜩하여서 길조차 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의 의지의 힘이란 것은 본능의 힘을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죽는 이상에는 시원히 물 한 모금이라도 마셔보고 죽자. 잡혀서 죽기나 목말라 죽기나 죽기는 일반이다. 일반인 이상에야 하필 목말라 죽으랴. 요행 물을 얻어먹고도 죽지 않을 길이 있을지도 모 르니, 우물을 찾아가자. 갈증이 극도에 달해서 더 참지 못하게 되어, 선비는 드디어 이렇게 생각을 돌렸다. 그리고 조밭 고랑에서 발돋움하여, 어디 우물이라도 근처에 없는가 하고 둘러 보았다.

저편 작다라한 언덕 기슭에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 옆에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다. 버드나무 아래는 우물이 있음직 싶었다.

「에라, 찾아가 보자!」

선비는 극도로 갈하고 곤한 몸에, 다시 용기를 내어 그 버드나무를 향하여 발을 옮겼다.

×

과연 우물이 있었다. 우물에는 십팔구 세쯤 나 보이는 처녀 단 한 사람이 물을 걷고 있었다. 두레박에서 넘치는 맑은 냉수─

『여보, 색시!』

깜짝 놀라서 돌아보는 처녀에게 선비는 와락 달려들었다.

『냉수 좀 얻어 먹읍시다.』

처녀는 선비를 보았다. 본 뒤에 물동이에 띄웠던 바가지에 냉수를 떠서 그 바가지를 선비에게 주려다가, 선비의 기색을 살피고 그 앞에 치렁치렁 늘어진 버들가지를 쭉 한 번 훑어서 버들잎 한 줌을 물에 띄워서 선비에게 준다.

선비는 급한 마음에 바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물에 뜬 버들잎 때문에 시원히 냉수를 마실 수가 없었다. 버들잎 틈으로 두어 모금 쫄쫄 물을 빨았다. 그러나 성가시고 시원찮아서 물을 쏟아 버리고 다시 물을 달라는 뜻으로 바가지를 처녀에게 주었다.

그랬더니 처녀는 또한 물에다가 버들잎을 띄워서 준다. 여기서 선비는 벌컥 성을 내었다─

『이게 무슨 심술이람. 냉수 좀 주기가 그렇게 아깝담. 엑, 고약한!』

그때에 처녀가 입을 열었다─

『너무 갑자기 잡수면 좋지 않습니다.』

무얼? 선비는 뜻하지 않고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냉수에 게걸이 들어서 자세히 보지도 못하였던 처녀의 얼굴을……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선비의 눈에는 탄상의 그림자가 역연히 나타나 있었다.

선비는 교리(校理) 이장곤(李長坤)이었다. 선배(先輩)며 친구들이 모두 선왕을 후욕했다는 죄며 폐비에 찬동했다는 죄 등 때문에 왕의 미움을 사서 잡혀 죽을 때에, 그 살육의 도시 한양을 피해서 망명의 길을 전라도 촌락으로 취하던 길이었다.

×

그 날 장곤은 처녀의 뒤를 따라서 처의 집으로 갔다. 어디든 숨을 곳을 작정해야겠는데 그럴 만한 친지를 가지지 못한 장곤은, 사실 앞길이 막막하였다. 서울을 피하기는 피하였지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살육을, 어디서 무한히 숨어 있을까? 딱하고 막막하던 중에 우연히 우물에서 만난 처녀가 너무도 슬기로운 데 반하여, 임시로나마 처녀에게 부탁하여 몸을 잠시 숨기고, 서서히 장래의 방침을 강구할 예정으로 처녀에게 잠시 몸을 숨겨 주기를 청하며, 처녀는 또한 쾌히 이를 승낙하고 함께 제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처녀의 부모는 유기장이(柳器匠)─ 버들가지로 광주리 등속을 엮어서 호구를 하는 사람이었다.

×

그날 밤, 유기장이의 집 한 방에 몸을 눕힌 장곤은 만감이 가슴에 뒤서리어 잠을 들지를 못하였다.

선배며 친구 중에 누구 누구는 벌써 잡혀 죽었다. 누구누구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이미 금오(金吾)에 잡혔다. 어차피 수일 내로 죽을 것이다. 누구누구는 아직 잡히지는 않았지만 언제 잡힐지 알 수 없 는 위태로운 운명이다.

요행히 자기는 그 소란의 장안을 피해 나왔다 하나, 참혹한 운명에 부대낀 친구들을 생각하며, 또는 이제 혹은 영구히 다시 광명한 세월을 못 보고, 망명의 길만 계속하다가 죽어버릴지 알 수 없는 자기의 장래를 생각할 때는 졸음이 올 까닭이 없었다.

이러한 비감한 생각에 잠겨서 잠도 못 들고 전전히 구을던 장곤은, 최후에 이 집에 장가를 들기로 결심하였다.

이제 어디 더 피하려야 갈 곳이 없었다. 수수밭 조밭 틈으로 굶으며 돌아다닐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어디까지 가서 뉘 집에 의탁을 하리라는 성안이 없는지라 장래가 아득하였다.

그럴 이상에는 하향 천인의 집이나마, 사위ㄹㅂ쇼 하여 가지고 들어박혀 있으면 피해 다니는 고생 하나는 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를 곱다랗게 숨어 있노라면 세상이 바로 펼 날도 생길 것이다. 임금의 마음이 완화되시든지, 혹은 불충한 생각이나 지금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다른 임금이 등극시 다시 광명한 세월을 볼 날도 생기겠지. 이 집 사위가 되자, 사위가 되어 세상이 다시 펴기를 고요히 기다리자. 하향천인이라 하나, 이 집 딸 당자는 인물도 그만하면 빠질 데 없거니와, 그 슬기로움이 가히 취할 만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튿날 장곤은 주인되는 유기장이에게 사위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유기장이도 기뻐서 승낙하였다. 시골 천민으로서 양반 사위를 두게 되었으니까 이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장곤은 전라도 보성 땅 유기장이의 사위가 되어, 위태로운 생명을 숨기고 있었다.

×

그러나 이 사위는 유기장이 내외에게는 너무도 갸록한 사위였다.

밤낮 잠만 잤다. 남과 얼굴을 대하기를 꺼리느니만치 밤낮을 잠으로 세월을 보냈으니, 장인 장모에게는 단지 게으름뱅이로 보였다. 그 위에 선비로 붓대나 가지고 놀던 사람이라, 버들가지로 그릇을 만드는 재주는 낼 염도 못 하였다. 시험 삼아 버들가지 한 묶음을 갖다 주면, 모두 도막도막 꺾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새 사위요, 그 위에 양반이라 하여 약간 어려워도 하였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가서 낯익어 옴을 따라서, 〈이생원이 자네〉가 되고 〈자네〉가 〈임자〉가 되고 〈임자〉가 〈네〉가 되고, 마지막에는 이 녀석 저 녀석이 되었다.

그러나 이생원에서 이 녀석으로 떨어질 동안도, 장곤은 불평의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두 못하는 녀석을 밥이나 적게 주어라. 인정이 굶게는 못하겠으니 절반씩만 줘라.』

그러나 이것도 장곤은 수모로 여기지 않았다. 자기의 방편상 이 집의 사위가 되었으니 말하자면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받는 수모라, 결코 겹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미안한 것은 이 집 딸이요 자기의 아내의 입장이었다.

아내는 장곤을 몹시도 따랐다. 본시 슬기로운 여인이니치 장곤의 인물이 초초하지 않은 것을 넉넉히 보았다. 그리고 부모가 역정을 낼 때마다 무안하여 쩔쩔매는 것이 도리어 장곤에게 있어서는 미안하였다.

부모와 남편의 사이에 끼어서, 부모의 편을 들 수도 없고 남편의 편을 들 수도 없어서 혼자 애타 하는 것을 볼 때에는 퍽으나 가엾기는 하였으나, 지금의 장곤의 환경으로는 이를 어찌할 방략이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내외지간의 금슬만 더욱 두터워 갔다.

×

이러는 동안에 드디어 중종의 반정(中宗反正)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극도로 탄압을 받아서 그 생명이 위태로운 선비들이 첫째로는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또 어지러운 정국을 수습하기 위하여 진성대군(晋城大君)을 추대하고 광란의 왕을 왕위에서 내어 쫓은 것이었다.

선왕 시대에 쫓겨서 구석구석 숨어 있던 선비들이 모두 머리를 들고 서울로 모여들었다. 선왕 시대에 죄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사(赦)를 받고 복직이 되었다. 새로이 현직(顯職)에 오른 재상들은 모두 눈이 벌겋게 되어 선왕 시대에 몸을 숨긴 친구들을 찾아내어 벼슬에 추천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 교리 이장곤(校理 李長坤)에게도 신왕에게서 고마우신 분부가 내리고, 어디 숨어 있는지 찾아서 벼슬에 올리라시는 영이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벼슬아치와는 온전히 관련이 없는 전라도 보성 땅 유기장이의 사위가 되어 있는 장곤은, 그런 고마우신 분부가 자기의 신상에 내린 줄은 알 까닭이 없었다.

시골 사람들의 전하는 말로서, 구주(舊主)가 폐함을 받고 진성대군이 위에 오르셨다는 사건은 알았다. 그리고 누구가 무슨 판서가 되고, 누구가 무슨 참판이 되었다는 그 풍설을 듣건대 자기의 친지 혹은 동지들이 지금의 정국을 잡은 것만은 알 수가 있었다.

자기의 신상에도 드디어 꽃필 날이 이르렀구나. 장인 영감이 광주리를 만드느라고 푸르럭 씨르럭 하는 곁에 누워서 낮잠을 자는 체하면서도, 장곤은 흥분된 가슴을 뛰놀리고 하였다. 지금 세상이 자기네 동지들로 조직되었으매, 언제든 자기도 불리어 올라가는 날이 있으리라. 시골 유기장이의 못난 사위가 국가의 동량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애구! 밥통아, 잠꾸러기 덜나기두 했다.』

장인 장모의 이러한 욕설이 속으로 우습기가 짝이 없었다. 이 덜난 밥통이, 금관에 옥대로써 너의 앞에 나타나면 너희는 얼마나 놀라겠느냐? 그날이 눈앞이로다.

그러나 자기가 이런 곳에 있다는 것을 동지들에게 어떻게 알리어 주나? 이곳에 있는 것을 알리기만 하면 반드시 자기의 위에는 꽃이 피겠지만, 알리지 못하면 혹은 친구들은 자기를 이미 죽은 줄 알고 그냥 잊어버리지나 않을는지?

이러한 근심 아닌 근심을 하면서 가슴을 죄고 있던 장곤은, 한 개 기회를 붙잡았다.

장인 유기장이가 유기를 관부(官府)에 갖다 바치는 날, 장곤은 자기가 대신으로 가기를 자청한 것이었다.

이 말에 장인은 눈을 커다랗게 하였다.

『에이 밥통, 네 따위가 바치어? 관부에 갔다가는 바지에 똥이나 쌀라.』

『똥 싸면 바지를 빨면 그뿐 아니오?』

『말 말아, 동서 불변의 천치가 감당할 것 같으냐? 이것으로 오십 년째 밥을 먹는 나도 열에 여덟 번은 퇴맞는데 네 따위 천치가?』

이러한 욕설도 코웃음 치면서 억지로 장인을 달래서 자기가 몸소 관부에 갖다 바치기로 승낙을 얻었다.

×

『유기장이 이장곤이 유기 바치러 왔소.』

돌연히 관정에서 벼락같이 고함치는 바람에, 본관 이하로 사령 군노에 이르기까지 깜짝 놀랐다.

『저 놈,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에 끌어내라!』

호령이 자심하였다. 그러나 이장곤이라는 이름에 귀가 번쩍 뜨인 본관은 뜰을 굽어보았다.

초췌하기는 초췌하였다. 옷차림은 시골 상한이었다. 그러나 그 음성, 그 모습은 틀림이 없는 막역지우 이 교리였다. 사령들의 헌화를 물리치며 벼락같이 동헌에서 버선발로 관정에 뛰어내린 본관─

달려가서 이장곤의 손을 꽉 붙들었다. 두 눈에서는 눈물만 흘렀다.

『이 사람아, 이게 누구야?』

『이 사람, 유기장이 이장곤일세!』

『이 사람!』

『이 사람!』

말문이 막혔다. 서로 눈물만 줄줄 흘렸다. 비상한 시기에 서로 그 생명이 어찌 될지 몰라서 잔을 나누고 작별한 것이 어제 같거늘, 오늘날 다시 생명이 유지되어 여기서 상봉케 된 것이었다.

『자, 올라가세 얼마나 고생했나?』

『올라도 가겠지만, 이 유기를 받아주겠나 퇴하겠나?』

『이 사람아!』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서, 본관과 유기장이는 서로 쓸어안고 대청에 올라갔다.

『여보게, 성상께서도 자네를 기억하시고 찾아오라시는 분부를 팔도 수령 방백에게 내리셨네. 나도 자네가 전라도 방면으로 피했다는 소문은 어렴풋이 듣고, 팔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유기장이가 된 줄야 꿈에나 알았겠나? 어떤 사랑에 숨어 있는 줄 알고 사랑이란 사랑, 큰 집이란 큰 집은 모두 찾아보았네.』

『아니지, 사랑이나 큰 집에 숨었으면 광주리 엮는 법을 배웠겠나?』

『오늘 여기서 상봉연이나 열고 명일은 급급히 상경을 하게. 성상께서도 자네가 무사히 있다는 것을 아시면 얼마나 기뻐하실는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에야 들 하루바삐 성상께 헌신코 싶지만 여기 내 수년간 몸을 의탁했던 집에 고별도 해야겠고 거기 또 그─』

『응 알았네. 이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생겼네 그려.』

『하하하하.』

×

『가지고 온 유기는 받아 주겠지?』

『이 사람아!』

이러한 즐거운 농담으로 본관과 작별한 장곤은, 떠오르는 기쁨에 혼자 미친 사람같이 싱글벙글하며 제 아내의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퇴맞고 도로 유기를 지고 돌아오리라고 믿었던 장인은,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위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 어떻게 했나?』

『아, 바쳤지요.』

『재구 삼년에 능풍월이라고 너도 차차 사람이 되어가는가 부다. 퇴맞아 개천에 내버리고 오지는 않았겠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야, 새아기야. 오늘은 너의 서방을 밥을 한 그릇 두둑히 담아 주어라.』

×

이튿날 장곤은 일찍 일어났다. 이 집에 온 지 수년, 해가 이마를 지난 뒤에야 부시시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시 낮잠을 자던 장곤은, 이 날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뜰을 쓸기 시작하였다. 본관이 오늘 이 집으로 장곤을 찾아오마 약속을 한 것이었다. 예에 없이 부지런하여진 장곤의 꼴을 장인은 의아히 보았다.

『흠, 차차 사람이 되어 가는구나! 어제는 유기를 바치더니 오늘은 뜰을 쓸고……』

칭찬하는지 비웃는지 모르는 이 말에 대척도 안 하고 그냥 뜰만 다 쓴 뒤에는 뜰에 멍석을 내다 펴기 시작하였다. 장인이 놀랐다─

『여보게, 그건 왜?』

『오늘 본관 사또가 이리로 행차를 한답니다.』

『?』

『아마 거진 오게 됐으리다.』

『이 사람 미쳤네 그려. 야─ 아가, 어제 유기를 바치더니 너무 기뻐서 너의 서방이 실신을 했나부다.』

이렇게 한창 야단일 적에, 벌 건너 기소(旗手)의 깃발이 나부끼고 권마성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유기장이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낭패하여 덤빌 뿐이었다. 이러는 동안 본관의 행차는 이 유기장이의 오막살이까지 이르렀다.

말께 내려서 서로 손을 잡고 방에 오르는 본관과 이장곤, 망지소조하여 뜰 아래 엎드린 장인 장모는 영문을 모르고 몸만 사시나무같이 떨 뿐이었다.

장곤의 아내도 방 안에 불리어 들였다. 해진 옷을 입었으나 일찌기 장곤의 인물을 꿰어보고 받아들이니만치 비범한 눈을 가진 그 촌녀(村女)의 앞에, 사또는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제 딸이 사또께 인사를 받는 양을 뜰 아래 엎드려 우러러본 유기장이 내외는 엎드린 채 엉덩춤만 추었다.

×

이 교리가 보성 어느 유기장이의 집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연일 그 근처의 수령 성주들이, 혹은 몸소 오기도 하고 사람을 보내서 문안도 하여 유기장이의 집은 마치 귀현택 사랑과 같았다.

이러한 수일을 지난 뒤에, 장곤은 행장을 수습하여 가지고 서울로 올라갔다.

대궐로 들어가서 성상께 뵈오매, 성상께서도 안정에 눈물을 그득히 담으시고 장곤을 굽어보셨다. 이 아래 한때는 선왕의 박해를 함께 피하고자 가난을 같이 맛보고 신고를 같이 겪던 동지들이, 오늘날 일이 성취되어 한 분을 용상 위에 동지끼리 모시고 꿇어 엎드려 울 때에 그 솟아나는 감회는 한량이 없었다.

성상께서는 이 교리의 유리하던 전말을 낱낱이 다 들으시고, 유기장이 딸의 심사를 탄복하시어 특지로써 부인을 삼기를 허락하셨다. 이리하여 유기장의 딸을 서울로 데려 올려다가, 길이길이 잘 살고 후에 장곤은 벼슬이 판서에까지 이르고, 수, 부, 귀, 다남아라는 인생의 복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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