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새 돌아보지 않은 서인준이가 하루 동안을 어떻게 지냈는지 상고하여 보기로 하자.

경성역에서 매켄지 부처와 작별을 한 인준이는 가슴의 한편 구석을 잃은 듯 쓸쓸한 느낌으로 이필호와 회견을 하고 자기의 아파트로 사흘 만에 돌아왔다.

무른 또 LC당의 협박장이 와 있으려니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와 보았더니 다행히 협박장은 없었다. 그 대신 안이라는 동지에게서 편지가 와 있었다.

×× 동에 그럴듯한 집을 얻어서 거기다가 이전의 지휘대로 피아노 개인교수 서인준이라고 패를 붙였다는 것, 십칠호 당원이 내일 오후 네시쯤 인천에 도착한다는 통지가 왔다는 일.

내일 인천행 기차에서 만나자는 일.

팽이라는 여자 당원이 행상으로 가장을 하고 서인준의 누님을 만나 본 결과 노부인은 여전히 불안한 생활을 계속한다는 점.

─ 대략 이런 데 대한 통신이었다.

인준이는 그 편지를 불살라 버리고 그날 밤은 곱게 잤다.

이튿날 조반 식후에 혼자서 윤찬두를 방문한 것은 독자도 이미 아는 배다.

찬두를 방문한 뒤에 인준이는 처음에는 도로 제 아파트로 돌아갈까 하였다. 그러나 돌아가려던 발을 다시 돌이켜서 내실로 향하였다.

이미 이필호와 함께 완쇠를 심문한 일이 있는 인준이는 경관들에게 알리운 얼굴이었다.

“수고들 하십니다.”

경관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던지며 인준이는 내실로 들어갔다. 아무 의심없이 인준이를 들여보냈다.

내실 뜰에서 인준이는 다행히 자기의 누님을 만났다. 누님은 깜짝 놀랐다. 그 놀라는 누님에게 향하여 그렇지 않은 듯이

“마님께 잠깐 뵈러 왔읍니다.”

고 손님 체를 차리고 마님의 방에까지 무사히 들어가게 되었다.

“좀 조용히 여쭐 말씀이 있읍니다.”

인준이가 이렇게 말할 때 마음에 많은 비밀과 수심을 가지고 있는 백작부인은 하인들에게 모두 물러가기를 명하였다.

하인들이 다 물러나간 뒤에 인준이는 버쩍 아랫목으로 부인의 가까이 내려가 앉았다.

“부인.”

노부인을 찾는 인준이의 소리는 한방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듣기가 힘들도록 작았다.

“네?”

“오늘 부인을 조용히 뵈러 온 것은 김소춘 씨에 관한 일을 의논키 위해서 올시다.”

무론 예기는 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인준이의 입에서 김소춘이란 이름이 나올 때에 부인의 얼굴은 차차 창백하여 갔다.

“네….”

“부인!”

“…….”

“저는 경관이 아니올시다. 경관이 아닌만치 김소춘 씨를 범할 권리를 못 가진 사람이올시다. 그렇지만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사람의 사회에서 생기려는 살인 사건을 막을 의무는 가졌읍니다."

부인은 대답치 않았다. 인준의 말의 뜻을 알아듣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인준이가 다시 설명하였다.

“부인께서는 아시겠지요? 김소춘 씨가 노백작에게 무슨 좋지 못한 일을 행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을….”

“…….”

“저는 다른 것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 사람의 생명을 해한다 하는 것은 용서치 못할 죄올시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왔읍니다. 부인은 제 말씀을 들어 주시겠읍니까?”

“…….”

“미리 말씀드리고 맹서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김소춘 씨 개인의 신변에는 결코 위험이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리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인준이의 말의 뜻은 김소춘이가 장차 행하려는 살인 사건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소춘이의 신변도 안전하도록 보호하자는 것이었다.

김소춘이가 죽이려는 사람은 노부인의 그 지아버니.

김소춘이는 노부인의 아들 인준이가 여러번 간곡히 설명한 결과로 인준이의 말뜻을 알아들은 노부인은 비로소 눈을 들어서 인준이를 보았다. 지금껏은 자기의 그 지아버니를 자기의 아들이 죽이려 하고 있었다. 자기의 그 지아버니를 죽이려는 사람을 경찰에 알린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자기의 아들을 살인 예비자로 경찰의 손에 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그렇다고 또한 그 아들에게 향하여 장차 행하려는 죄악을 중지하기를 권고한댔자 그것은 결코 들을 것이 아니다.

이런 괴로운 입장에서 아들을 구호할 수도 없고 그 지아버니를 구할 수도 없어서 고민하던 노부인은 인준의 말을 듣고 겨우 인준의 인물됨을 보려고 눈을 뜬 것이었다.

“부인 짐작합니다. 모자지간의 정애와 부부지간의 정애─ 둘 다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것이올시다. 온당히 사건을 해결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일이올시다. 법률로도 어쩔 수 없고 이론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 이런 일에는 특수한 사람이 나서서 비상한 수단을 써서야 비로서 원만히 해결이 될 문제올시다. 제가 그 소위 특수한 중개자가 되고자 자원하고 나섰읍니다. 찬두 씨에게도 사건의 전모를 알려서는 안 될 일이올시다.”

“그러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노부인에게서 나온 첫번 질문이었다.

노부인은 인준이와 한 시간 남아를 협의하였다.

좌우간 첫째로 급한 문제는 김소춘이가 노백작의 생명에 가하려는 위해였다. 그것부터 막아 가면서 다른 방책을 또 연구하기로 하였다.

노부인은 인준이에게 알리어 주었다. 오늘밤 열시에 소춘이가 찬두를 방문키로 된 것을….

아비는 비록 다르나마 둘다 자기와 자식,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게 되는 것은 노부인에게는 역겨웠다.

여기 다행히 경찰관도 아닌 사람이 그 가운데 나서서 좌우편을 다 좋도록 하게 하겠노라 하므로 노부인은 그 사람에게 모든 일을 다 말하고 장래를 부탁치 않을 수가 없었다.

“윤찬두 씨는 김소춘 씨와 이전에도 만나 본 일이 있답니까?”

“어젯밤에 처음 만나서 의논을 하다가 의논이 채 끝나지 않아서 오늘 밤 열시에 다시 오라고 하고 헤어졌답디다.”

차근차근히 묻는 동안─ 그리고 노부인은 무심히 지난 일을 숨김 없이 말할 동안─ 인준이의 머리에는 차차 자기의 계획이 서기 시작하였다.

자기가 만약 경관이면 두말 없이 김소춘이를 감옥에 집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량한 늙은 여인이 자기의 아들의 신상을 근심하는 것을 볼 때에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이 선량한 노부인의 마음이 아프지 않게 김소춘이도 슬쩍 구해 낼 겸 또는 김소춘이가 장차 위해를 가하려는 노백작도 구할 겸─ 이 두개의 사람을 구해 내어야 할 방책이 서기 시작하였다.

아직 조금의 부족함이 있을 뿐─ 그 부족만 채워 놓으면 자기의 계획은 틀림없이 성공을 할 것이다.

한 시간 남아를 노부인과 밀의를 거듭한 뒤에 인준이는 백작 댁을 나섰다.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인준이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또 있었다. 누가 분명히 아파트에 왔던 흔적이 또 있었다.

침대에 또 종이가 꽂혔다. 이전에는 압정으로 꽂히었는데 이번에는 압정이 아니요 꽤 기다란 송곳으로 꽂혔다.

인준이는 먼저 검정 장갑을 꺼내어 끼고 그 송곳을 뽑았다. 그리고 침대에 달렸던 종이를 보았다.

여전히 특징 있는 타이프라이터로 찍힌 편지인데 이번에는 지극히 간단하였다.

그대는 왜 윤씨 집에 다니며 공주에도 갔다왔는가. 이 송곳을 보라. 그대가 보면 알리라.

이뿐이었다.

인준이는 송곳을 보았다. 무슨 특장이 없는 송곳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마음이 선뜩하였다. 아직 가져 본 일은 없는 송곳이로되 어디선가 본 듯 생각났다.

인준이는 확대경을 내어서 송곳을 검사하였다. 끝은 볼 것이 없었다. 송곳날과 자루의 새를 자세히 보았다.

무엇이 있었다. 무엇 말라붙은 것이 분명히 있었다. 펜나이프로 그것을 종이 위에 떨구어 보매 그것은 혈액임이 분명하였다.

송곳─ 인준이의 침대머리에 꽂아 놓은 송곳─ 그것은 일전에 완쇠의 심장을 뚫어서 완쇠를 죽게 한 그 송곳임에 틀림이 없었다. 인준이의 눈에 낯 익은 듯한 것은 그때의 상처와 이 날의 형상이 같음으로써였다.

분석하여 볼 필요도 없다. 현미경의 힘을 빌 필요도 없다.

‘이 송곳을 보라.’

는 위협문을 써 놓고 인준이의 침대에 꽂아 놓은 이상에는 송곳이 완쇠의 심장을 뚫은 그 흉기임이 분명하였다.

송곳을 잡고 굽어보고 있을 동안 인준이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사람의 피를 본 송곳, 사람의 생명을 해한 송곳─ 여기 대한 공포가 그의 손을 통하여 심장까지 떨리게 하였다.

수위를 불러서 누가 이런 짓을 하였느냐고 물어도 쓸데없을 일이다. 수위에게 알게 들어올 사람이 없다.

잠시 송곳을 쥐고 떨고만 있다가 인준이는 그것을 종이 위에 가만히 놓은 뒤에 전화실로 달려가서 이필호에게 전화를 하였다. 곧 좀 와 달라고.

십오 분 이내에 달려온 필호에게 인준이는 그 송곳과 아까 협박장(이전 것은 참고상 말하지도 않고)을 내어주었다.

“완쇠의 심장에 구녕을 뚫은 흉기외다.”

이렇게 말하며 이 흉기가 자기의 손에 들어온 내력을 말할 때에 필호의 얼굴도 창백하게 되었다.

“박사 신변도 위험합니다그려. 경관의 보호를….”

그러나 거기는 인준이는 여전히 거절하였다.

“LC당에서 나 한 사람쯤 죽여 없이하려면 벌써 했을 것인데 연방 협박장만 보내고 흉행은 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무슨 곡절이 있어서 내 생명은 해하지 않을 것 같소이다. 내가 위협을 느끼게 되면 자진해서 보호를 청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이렇게 말하였다.

아직껏 경찰에서는 완쇠를 살해한 흉기가 무엇인지 몰라서 애를 쓰던 판이라 이것을 손에 넣은 필호는 급급히 인준이를 작별하고 서로 돌아갔다.

“위협이 차차 가까와 온다.”

오후 네시쯤이면 십칠호가 인천 부두에 도착을 한다. 십칠호를 만나서 상세히 의론을 하면 좀더 구체적 대책도 세울 수가 있을 것이다.

인준이는 안 군과도 만날 겸 인천 가서 십칠호도 만날 겸 시계를 쳐다보고 또 다시 외출의 준비를 하였다.

비교적 초라한 행색을 한 안 군과 청년 신사로 차린 인준이와는 같은 차에 타기는 하였지만 남의 이목 때문에 가까이 이야기하기가 힘들었다. 안 군이 담배를 먹고 있는 것을 기회 삼아 인준이는 안 군의 곁에 가서 불 좀 빌자하였다.

안 군은 불 대신 성냥갑을 내주었다. 인준이는 염체 좋게 성냥갑을 받아가지고 그냥 WC로 갔다.

가서 성냥갑을 열고 보매 그 안에는 엷은 유산지가 수없이 들어 있었다. 적어도 삼백 매는 될 것이다.

인준이가 공주로 내려가기 전날 밤 몸소 안 군을 찾아가서 당부한 일 가운데 그 중 중대한 것이 즉 이것이었다.

타이프라이터 수선인으로 가장을 하고 경성 시내 각 약관 상점 여관등을 돌아다니면서 Y자를 모두 찍어오되 어느 집 것이라는 것이 섞바뀌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공주로 내려갔었는데 지금 안 군이 인준이에게 준 성냥갑 안에는 수없는 Y자와 그 Y자를 찍은 집 이름이 적힌 종이가 가득차 있는 것이었다.

인준이는 확대경을 꺼내어 일일이 자세히 검분하였다. 자기에게 지금도 가지고 있는 제이 경고와 대조하여 가면서 상세히 검사하였다.

그러나 안 군이 얻어 온 그 숱한 Y자가 인준이에게 온 협박장과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 자세히 보았지만 같다고 인정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인준이도 역시 거기는 그다지 큰 기대를 두지 않았다. 한낱 타이프 라이터 수선인의 손이 미칠 만치 얕은 곳에 그것이 있으리라고 생각치도 않았다.

몇 번을 다시 검사하고 다시 검사한 뒤에 도로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 인준이는 자기의 자리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안 군에게 헛수고를 하였다는 것을 눈짓으로 알리고서….

이리하여 인준이와 안 군을 실은 기차는 인천으로 닫는 동안 인준이는 잠에 취한 사람인 듯이 눈을 지르감고 먹먹히 앉아 있었다. 남이 보면 잠자는 사람으로 알기 쉬운 인준이였으나 마음으로는 천 가지 만 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공주를 갔다가 온 일은 LC당에서 대체 어떻게 아나?

자기에게 연방 협박장만 보내지 죽여 버리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 LC당이 사람의 생명을 아낄 까닭이 없으매 죽이려 마음만 먹으면 자기 같은 사람은 죽이기가 아주 쉬울 것인데 그렇지 않고 연방 협박만 하여 윤 백작 댁 일에 손을 끊으라고 권고만 하니 이것은 웬일인가?

또 자기로 말하더라도 곱게 자기의 사명만 다했으면 그뿐이어늘 LC당에게 미움까지 사 가면서 남의 집 가사 사건에는 왜 이렇듯 간섭하나?

윤찬두와 김소춘이가 오늘 밤 열시에 회견을 한다니 그 회견에서 어떤 결과과 생기려나.

그렇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헤치는 기차 안─ 인준이는 머리 없고 소리없이 생겨서 자는 수없는 생각에 잠겨서 잠자는 사람 모양으로 눈을 푹 감고 있었다.

인천역에 이르러서 인천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인준이는 비로소 눈을 떴다.

이 근처의 지리에 비교적 밝은 안 군이 앞서서 내렸다. 몇 사람을 격하여 떨어져서 인준이는 아닌 듯이 안 군의 뒤를 따랐다. 처음 밟아 보는 인천이라 인준이는 대체 어디인지 알지 못하였다. 인천 지리에 너무도 무지하므로 혼자 오지 못하고 안 군을 앞잡이하여 오게 된 것이었다.

점잖은 신사로 차리고 인천 부두에 내린 십칠호

인준이는 십칠호를 만났다. 만나서 서로 악수를 할 때에 손빨리 십칠호에게서 인준이에게로 넘어온 한 뭉치의 서류 그것은 당 본부의 편지와 및 L M 매켄지에 관한 서류일 것이다.

안 군은 먼저 서울로 돌려보내고 인준이는 십칠호와 함께 해변을 거닐었다.

“상해서는 모두 무고하오?”

“네 아무 일 없이 지냅니다. 선생님께 관해서 매우 조심들을 합니다.”

인적 드문 바닷가를 향하여 두 사람은 천천히 거닐었다.

“용무부터─ LC당의 당수는?”

“저도 모릅니다. 간부급이 아니고는 누가 당순지 모릅니다.”

LC당의 제이급 당원으로 있는 십칠호도 당수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여기서 인준이가 알고자 하는 시급한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아까 백작 노부인의 말로 오늘 밤 김소춘이가 찬두를 방문한다는 일은 알았는데 방문한다면 혼자서 방문하느냐 혹 아랫당원이 남몰래 호위를 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김소춘이라고 아시오?”

“네 얼굴은 압니다. 제가 거기 있을 때는 제삼급이었는데 지금은 아마 제이급이 됐으리다.”

“어떤 인물이오?”

“친히 사괸 일이 없어서 모르겠읍니다.”

안 군이 떠난 다음 차의 시간까지 인준이와 십칠호는 인적 드문 해안을 보통 산보객인 것처럼 거닐면서 여러가지로 묻고 대답하였다.

이전에는 LC당의 제이급 당원이고 좀더 있었더면 간부급으로 승차되었을 뻔한 십칠호는 LC당에 관한 지식은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인준이는 다른 것은 뒤로 미루고 시급한 일에 대해서만 참고될 만한 일을 다 알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왕래하는 경인열차─ 안 군이 떠난 다음 차에 인준이가 몸을 실을 때는 당분간에 필요한 LC당에 관한 지식은 다 십칠호에게 들었다.

십칠호는 서울을 같이 오지 않았다. LC당원에게 알리워 있는 십칠호라 LC당이 지금 조선에서 무슨 커다란 계획을 실행하려 할 때에 십칠호가 덜컥 경성에 몸을 나타내었다가는 어떤 의심을 살지도 알 수 없고 LC당에게 의심을 사면 그 결과는 세계가 다 아는 바라 십칠호 자신도 경성 동행하기를 싫어하였고 인준이도 십칠호를 경성으로 데리고 가려지 않았다.

만약 이 뒤에 급히 알아볼 일이 있으면 안 군이 인천으로 와서 십칠호를 만나 보기로 하고 그 외의 사람은 아무리 친한 당원일지라도 인준이의 친필 편지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LC당에 관해서는 모르는 체하기로 약속을 하고 인준이는 십칠호를 인천에 남겨 둔 채 경성으로 향하였다.

LC당이라는 폭력단의 연락 방법에 대하여 그다지 깊이 알지 못하였으므로 인준이가 인천으로 갈 때는 아무런 방책도 방략도 세우지 못하였다.

그러나 LC당의 이전의 제이급 당원이던 십칠호와 만나 보고 도로 서울로 돌아올 때는 막연히나마 어떤 방략이 섰다.

LC당 간부의 어떤 자가 조선에 들어와서 지휘를 하고 있는지 이것은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LC당의 제이급 당원의 한 사람인 김소춘이를 자기의 손 속에 잡아 넣을 방략은 섰다. 그리고 김소춘이를 잡아 가지고 그 뒤의 일은 다시 연기하기로 생각하였다.

인준이의 명령으로 인준이보다 한 차 먼저 서울로 돌아온 안 군은 당원 전부를 비상 소집을 하였다.

그들은 모두 피아노 연구생이라는 명목으로 피아노 개인교수 서인준의 문하에 입문을 하러 모여드는 형식으로 회집을 하였다.

한 시간 뒤에 인준이는 인천서 돌아왔다.

수삭 만에 만나는 간부와 당원 새에 사괴어질 문안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인제 취할 방책부터 강구하였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서게 되었다.

오늘 밤 열시쯤 김소춘이가 윤 백작 댁을 방문할 테니 눈치 빠르고 기억력 좋은 사람이 먼저 가서 숨어서 그 모습을 알아 올 것.

그 모습을 알아 오기만 하면 제일 그 모습에 가까운 사람이 김소춘이로 변장을 할 것.

당의 제이급 당원은 LC 어디 다닐 때에 제사급 당원에게 호위를 명하는 암호로서 밤에는 성냥을 그어서 세 번 동그라미를 그리는 법(이것은 십칠호가 알으켜 준 바였다)이니 김소춘이로 변장한 당원은 윤 백작 집 대문까지 몰래 가서 거기서 세 번 성냥으로 군호를 하여 김소춘이를 호위할 제사급 LC당원을 끄을어 가지고 이리저리 끄을고 다니다가 이곳으로 유인하여다 감금할 것.

그러는 동안 안 군은 윤 백작 집 근처에 숨어 있다가 찬두와 회견을 끝내고 나오는 김소춘이를 붙들어서 이 피아노 강습소로 데리고 올 것.

일변으로는 안 군을 보호하며 일변으로는 김소춘이의 도망을 막기 위하여 윤 백작 댁부터 이 음악 강습소까지의 사면에는 당원 전부가 지켜서서 경계를 할 것.

이것이 그 프로그램이었다. 보통 수단으로는 만나 볼 수 없는 김소춘이라 이런 비상한 수단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김소춘이도 그 본적만 탄로되면 십중팔구는 교수대로 올라갈 인물이매 표면적으로 반항치 않고 안 군에게 끄을려 오리라 믿었다.

김소춘이를 만나면 무엇하느냐.

여기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김소춘이에게 물어 본댔자 LC당 간부의 이름은 말하지 않을 것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서로 말로써 타협을 해볼 수가 있다. 그 타협이 성립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정으로 인준이는 김소춘이를 만나 볼 필요를 느꼈다. 노백작과의 문제 찬두와의 문제 백작 부인과의 문제 나아가서는 인준이가 띠고 들어온 사명을 감행키 위하여 취할 문제─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될 바는 아니지만 김소춘이와의 회의 새에 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암시라도 얻을 수가 혹은 없을까. 이리하여 일변 당원을 지휘하고 명령하고 한 뒤에 잠시의 틈을 내어 가지고 인준이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다.

“양 공, 시간상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내 대신으로 잘 지휘해 주시오. 나는 열시쯤 이리로 오리다.”

양이라는 당원에게 이 당부를 하고….

김소춘이를 붙드는 것도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인준이는 너무 바쁘므로 상해 당 본부의 편지도 아직도 못 펴보았으며 매켄지 대좌에 관한 서류도 아직도 못 보았다.

아파트로 돌아와서 조용히 아까 십칠호에게서 건네받은 서류를 펴보기 위해서 임시로 당원들을 작별하고 인준이는 걸음을 빨리하여 아파트로 돌아왔다.

미스 영에게서 오늘 세 번이나 전화가 왔었다는 것을 인준이는 아파트 수위에게 들었다. 아마 산보라도 함께 가자고 전화를 건 것이거니 이쯤 생각하고 자기 방으로 와서 쇠를 단단히 잠가 버렸다.

아파트로 돌아와서 서류를 펴 놓고 그 앞에 마주 앉은 서인준 박사. 당 본부에서 온 것은 단지 문안 편지에 지나지 못하였다. 무사히 지내기를 축수하며 일을 어서 끝내고 돌아와서 무사한 얼굴을 서로 보고 싶다는 평범한 편지였다.

매켄지 대좌라는 인물에 관한 조사 서류를 펴보았다.

L M 매켄지는 예비 대좌라 자칭하나 영국 공사관의 조사에 의지하건대 군적에 이름이 없다.

스스로 종남작이라 하나 이 점도 의심스럽다.

나이는 쉰하나.

상해에서 국적 미상한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 여자는 미스 영이라 자칭하는 여자며 국적이 없는지라 어떤 중국 사람의 힘을 빌어서 중국여자라는 명목으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교제는 꽤 넓다. 많은 사람이 연락부절로 그의 집안에 드나든다. 각국에 이름 있는 관리를 비롯하여 선원 노동자까지 가지각색 계급의 사람이 출입한다.

재산도 풍부한 모양이다. 쓰는 돈도 많거니와 여기저기 자선 사업에도 꽤 많은 돈을 내어던졌다.

그러나 영국 장자(長者) 명부에는 L M 매켄지라는 사람은 없다.

권총이며 권투며 검술에 능하고 경마말도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이 방면에도 이름은 있다.

─ 대략 이만한 조사였다.

요컨대 본부의 조사에 의지한 L M 매켄지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단지 인준이가 알고자 한 미스 영의 남편인 점에는 틀림이 없다.

이 조사 서류를 상세히 보고 그 내용을 모두 머리에 집어넣은 뒤에 인준이는 전화실로 가서 ××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서 이필호를 불러 내었다.

“서인준이외다.”

“네 안녕하십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영국 귀족 L M 매켄지라는 사람이 조선에를 왔는데 그 사람의 숙소를 좀 알아보아 주실 수 없을까요?”

“그게야 외사과에 알아보면 알걸요.”

“미안하지만 좀 알아 주세요.”

“네. 알아 드리리다.”

“또 한가지 좀 자세히 검분할 필요가 있는데 내가 아까 드린 완쇠 살해의 흉기─ 그 송곳 말씀이외다. 그것을 무슨 핑계로든 잠깐 빌려 낼 수가 없읍니까”

“글쎄올시다.”

힘든다는 뜻이었다.

“그저 얻어 내자면 힘들지만 그것을 좀 잘 연구해 볼 필요가 있어서 말이외다. 경찰서에서 연구하는 것보다는 내가 연구하는 편이 더 정확도 하겠고 그러기에 말씀이외다.”

“그 방면에는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마는 상부에서 무엇이랄는지 좌우간 잠깐 기다리세요.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할 테니….”

이리하여 첫 전화는 끊어졌다.

십 분쯤 뒤에 필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켄지 대좌는 ×× 정 × 씨의 주택(주인은 지금 여행중으로 빈 집)을 숙소로 정하고 있는 점.

완쇠 살해의 흉기 송곳은 사계의 전문가에게 감정시키자고 의론한 결과 오늘 하룻밤뿐은 서 박사에게 빌릴 수가 있다는 점.

그 송곳을 지금 경찰서 급사로 하여금 서 박사의 아파트로 가져가게 하였다는 점─ 이 세 가지 사연이었다.

필호와의 전화를 끊고 인준이는 전화를 걸어서 누님을 찾아서 저녁 여덟시 정각에 윤 백작 댁 후문 밖에 있는 잡화전까지 나와서 삼십 초 동안만 만나 달라는 당부를 하였다.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LC당의 흉수를 눈앞에 보면서 인준이는 그 LC당과의 정면 경쟁에 착수를 하였다.

삼십 분쯤 지나서 경찰서 급사가 송곳을 가져왔다.

몇 군데 더 다닐 곳을 다녀서 서인준이가 피아노 강습소에 온 때는 밤 열시가 될까말까 하는 때였다.

얼마 지나서 LC당의 제사급 당원이 유인되어 왔다. 그것을 즉시 감금하였다.

한참을 더 기다린 뒤에 드디어 오늘의 목적물인 김소춘이가 안 군에게 끌려왔다.

그 소춘이에게 향하여

“거기 앉으시지요.”

할 때는 인준이의 얼굴은 인준이에게서는 보기 드물도록 삼엄하고 쌀쌀하였다.

소춘이는 주저하지 않고 앉았다.

인준이는 자기네 당원들에게 향하여

“다른 방에 가서들 기다리시오. 이 방에서 나는 보통 음성이 들리지 않을만한 아랫방으로들 가시오.”

하고 명하였다.

“자 소춘 씨, 당신네 당에서도 간부의 명령은 보통 당원은 절대 복종이지요? 우리도 역시 일반, 이 방에서 소춘 씨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듣지를 못합니다. 그것을 첫째로 소춘 씨에게 알리고 또 둘째로.”

인준이는 자기 포켓을 두드려 보였다.

“여기는 권총이 두 개가 들어 있는 대신 소춘 씨는 아무 무기가 없으니 무력으로 내가 소춘 씨보다 낫다는 점을 둘째로 말하고─.”

그 뒤에 인준이는 자기의 소매를 걷어서 제 팔을 소춘이에게 보였다.

“이 팔은 열한 살부터 오늘까지 권투와 검술로 닦달을 한 팔이니까 보통 완력으로 말하더라도 소춘 씨보다는 훨씬 앞선다는 것을 세째로 말해둡니다.”

그리고 숨을 돌이켜 놓은 한순간 말을 끊었다가 곧 다시 계속하였다.

“김소춘 씨?”

“?”

“무론 내가 누구인지는 아시지요?”

“서인준 씨지요.”

“왜 김소춘 씨를 여기까지 모셔 왔는지는 아마 모르실걸요?”

소춘이도 눈을 정면으로 인준이의 위에 부었다.

“서인준 씨의 여러가지 위협은 들었소이다. 그러나 나를 왜 유인해 왔는지는 모르겠소이다. 짐작 가는 것은 노형은 윤 백작 댁을 보호하고 있으니 그 필요상 유인한 듯은 합니다마는….”

인준이는 빙긋 웃었다.

“윤 백작이라기보다도 장차 김소춘 씨가 해하려는 노백작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순간 소춘이의 눈가에는 비웃음의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여기 잡아오면 보호될 듯싶습니까?”

“네….”

“오해─ 큰 오해─ 나는 LC당의 전부가 아니오. LC당 간부의 명예에 의지해서 움직이는 한 개의 기계외다. 내가 없을지라도 LC당의 일은 조금도 틀림없이 진행될 것이외다.”

인준이는 또 미소하였다. 그리고 소춘이가 장차 하려는 말을 먼저 하였다─.

“뿐더러 소춘 씨가 없어지면 지금껏 소춘 씨가 보호해 오던 자당이며 윤찬두 씨의 생명까지 위험해지겠지요?”

이 너무도 정확히 아는 인준이의 말에 소춘이는 눈을 크게 하고 인준이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까지 알면서 왜 나를 유인해 오시오?”

“그것을 알기에 소춘 씨를 모셔 온 것이외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소춘 씨를 모셔다가 소춘 씨에게 의뢰를 해서 필요 없는 피는 흘리지 않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외다. 말하자면 소춘 씨가 잘 알선해서 LC당이 목적하는 공채만 그냥 가져가고 노백작께 대한 소춘 씨의 사혐을 노백작이 별세할 때까지 그냥 보류해 두면 어떻겠느냐고 그 의론을 하기 위해서외다.”

말하자면 소춘이의 사사 복수는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소춘이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 할 때에 인준이가 먼저 자기의 말을 꺼내었다.

“김소춘 씨.”

“?”

“무론 처음에는 소춘 씨가 거절하실 것을 모른 바가 아니외다. 하지만 나도 서인준─ 무리한 말을 전하는 바가 아니외다. 실행 안 될 일을 권고 할 서인준이가 아니외다. 김소춘 씨는 반드시 내 권고를 들으실 줄 압니다.”

“?”

무슨 자신이 있는 듯이 장담하는 인준이의 말에 소춘이는 의아히 쳐다보았다.

인준이가 또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김소춘 씨, 이것을 보시오.”

이렇게 말하며 자기의 주머니에게 꺼내어 그 끝만 조금 보인 것은 아까 필호에게서 빌어온 송곳이었다.

“완쇠를 살해한 흉기─ 그리고 소춘 씨가 내 침대에 꽂아서 나를 위협한 물건.”

“?”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뜻이었다.

“소춘 씨. 소춘 씨는 이미 연로하신 자당을 콩밥을 잡숫게 하고 싶지는 않겠지요?”

한순간 소춘이의 얼굴이 흠칙 하였다. 놀라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김소춘 씨. 서인준이는 봉사가 아니외다. 이 송곳은 소춘 씨의 자당이 사용하시는 물건, 자당의 방 머리맡 문갑에 들어 있던 물건─ 경찰에서 이 흉기의 출처를 알면 당연히 혐의가 자당께 미치지 않을 줄 아시오?”

잠시 말이 없었다. 소춘이는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뒤에야 말하였다.

“증거 없는 말씀─.”

“증거가 없어요? 무론 소춘 씨는 그만치 믿었기에 이런 귀중한 증거품을 내게 주셨겠지요. 그렇지만 만약 경찰에서 백작 댁 내실 하인들을 불러서 물어 보면 이 송곳은 자당께서 사용하시던 것이라는 점을 제각기 증언하리다.”

“….”

“뿐만 아니외다. 내가 몇 사람 경찰에 지적을 해서 심문케 하면 그 사람은 흉행이 있는 날 밤 깊이─ 즉 흉행 시간 전후해서 소춘 씨와 모습이 비슷한 사람이 내실에 출입한 점도 증언하리다.”

“….”

“또 한가지─ 자당께서는 궐련을 늘 잡수시는데 그 잡수시는 양이 매일 일정해 있어서 한 갑 내외외다. 그런데 그날 밤은 밤에만 한 갑을 더 잡순 꽁초가 재떨이에 남아 있는 점도 증언할 사람이 있으리다. 이 증언은 즉 다시 말하자면 밤새도록 자당께서 주무시지 못했다는 점과 밤에 담배 먹는 손님이 자당을 남몰래 찾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 몇 가지의 점으로 자당을 완쇠 살해의 공범 혹은 교사자로 인정할 수가 없을까요?”

어느 틈에 눈을 감았는지 소춘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다지 덥지는 않을 터인데 땀이 몇 방울을 이마에 맺히기까지 하였다.

“김소춘 씨. 완쇠가 살해를 당한 유일의 원인은 이 사건의 이면을 짐작한다는 까닭─ 그러면 자당께도 완쇠의 존재는 귀찮으셨겠지요.”

소춘이의 머리로 차차 수그러졌다.

너무도 깊이 안다. 과학 탐정 방면에 무지하리라고 무시하고 좀 서툰 짓을 과히 하였는데 여기 갑자기 서인준이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이 사건의 이면을 캐어들어 간다.

어디서 취집하였는지 어떤 방법으로 취집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날 밤의 사건에 관해서 너무도 정밀히 들추어 내기 때문에 소춘이는 가슴이 떨렸다.

장차 자기의 거처를 어떻게 취할지 작정키 위해서 대답 없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소춘이의 대답을 기다리느라고 인준이도 묵묵히 있었다.

한참 뒤에야 소춘이는 비로소 눈을 들었다.

“서인준 씨.”

“네?”

“나는 두 가지의 이유로써 서인준 씨의 권고를 거절합니다.”

“말씀하세요.”

“첫째는 나는 LC당의 당원이외다. LC당의 당원은 당 간부 이외의 사람의 말을 들을 의무가 없읍니다. 이것이 한 가지 이유이고 또 한 가지는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무덤 앞에서 맹서한 일이 있읍니다. 아버님의 원수는 반드시 갚겠다고… 이 맹서를 어길 수가 없사외다.”

“그렇습니까? 결심이 그러시다면 하릴없겠지요. 나는 즉시로 김소춘 씨를 완쇠 살해의 정범으로 경찰에 인도하고(미안한 말씀이나) 자당을 그 공범자로서 고발하겠소이다.”

소춘이의 눈에는 비로소 분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서인준 씨.”

“네?”

“서인준 씨는 무슨 권리로써─ 아니 권리라기보다 무슨 의무로 그런 일을 행하려우?”

“인류의 한 사람으로 인류 사회에 생기려는 잔혹한 살인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

“미연을 막기 위해서? 인준 씨의 생각으로는 나를 경찰로 보내면 살인 사건이 방지될 줄 아시오? 내가 있으면 노백작 한 사람의 생명만 희생하면 될 것이나 내가 없으면 몇 사람의 생명이 없어질지 모릅니다.”

“그것도 막지요. 약하나마 내 힘으로 그것도 막지요.”

“막아?”

“네. 넉넉히 막을 자신이 있기에 말씀이외다. 다른 일보다 첫째 증거로 이 세계 경찰에서 아직 LC당의 제삼급 이상의 당원을 잡아 본 일이 없었지만 나는 현재 김소춘 씨를 내 손안에 넣지 않았읍니까? LC당의 힘이 크다 하면 서인준이의 힘도 크외다. 김소춘 씨도 혹 이름은 들으셨는지 ×× × (십칠호 본명)씨가 현재 조선 안에 내 지휘 아래 활동을 합니다. 이삼 일 안으로 조선 안에 들어와 있는 LC당 간부 당원 전부를 경찰에게 넘겨줄 만한 책략도 대략 있읍니다. 이만치 말씀드려도 김소춘 씨는 그냥 고집을 부르시겠읍니까?”

좀 허무한 말까지 보태어 소춘이를 위협하여서 소춘이에게 소기의 대답을 들으려는 서인준─.

소춘은 또 잠잠하여 버렸다.

“김소춘 씨.”

“….”

“내가 그 새 보낸 타이프라이터의 특징 있는 글자를 연구해서 그 방면으로도 활동한 결과 당 간부의 근거 장소도 짐작이 갔읍니다. LC당의 조선 잠입은 허사일 뿐더러 자멸지책을 취한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수 삼 일 내로 조선에 들어온 LC당원은 전멸이 될 것이외다. 자 대답을 하세요. 김소춘 씨 자당의 생명과 노백작의 생명을 교환하자는 말씀이외다. 나만 눈감으면 조선 경찰에서는 김소춘 씨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어디 있는 사람인지 알지도 못할 것이외다. 어떠세요? 교환을 하렵니까?”

소춘이는 여전히 대답치 않았다. 잠깐 들었던 머리를 도로 숙여 버렸다. 또 잠시의 침묵.

“자 어서 태도를 결정하세요.”

인준이는 또 채근하였다. 너덧 번을 채근을 받은 뒤에 소춘이는 비로소 조금 머리를 다시 들었다.

“서인준 씨.”

“네?”

“내 태도를 결정하기 전에 몇 가지 알아볼 일이 있소이다.”

“무엇이오니까?”

“서인준 씨의 조선 오신 목적은?”

인준이는 소춘이를 바라보았다. 소춘이에게 쓸데 없는 질문을 하므로 그 뜻을 알아보고자.

“그것부터 말씀해 주세요.”

소춘이는 채근하였다.

인준이는 소춘이에게 두 번을 채근을 받고 빙긋이 웃었다. 웃을 뿐 대답은 안하였다.

“서인준 씨. 인준 씨는 조선 들어오는 길로 윤 백작 댁 근처를 배회하셨지요. 그 뒤에도 필요없이 윤 백작 댁에 출입이 잦았지요? 인준 씨의 목적도 짐작갑니다. 나를 경찰에 내어주면 인준 씨에게 불리한 일 안 생길까?”

도로혀 인준이에게 위협하는 태도였다.

인준이는 또 다시 미소하였다.

“김소춘 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말씀을 경찰에 한다 하더라도 나는 무서운 게 없소이다. 아무 계획도 없이는 무론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지만 아직 실행에 착수치 않고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법률로도 벌하지 못하는 것을 소춘 씨는 모르시지 않을걸….”

소춘이의 위협은 슬쩍 피하여 버렸다.

“자, 김소춘 씨. 여러가지 긴 말씀을 할 것이 없이 소춘 씨의 계획을 포기하시오. 포기 안하신다면 나는 끝까지 소춘 씨의 일을 방해하겠읍니다. 그 대신 포기하신다는 말씀을 하면 소춘 씨의 말씀을 신용하고 소춘씨를 무조건으로 이 집에서 내보내리다. 자 밤도 깊고 졸음도 오고하니 어서 결정을 하고 헤어집시다.”

수차를 인준이는 소춘이에게 더 권고하였다. 여러번 권고를 들은 뒤에야 소춘이는 비로소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서인준 씨.”

“네?”

“내가 내 복수계획을 포기한다면 거기 대한 인준 씨의 보수는?”

“첫째로 소춘 씨를 경찰의 손에서 보호해 드릴 것. 둘째로 자당의 비밀을 비밀대로 삭혀 버릴 것.”

“그뿐?”

“또 무슨 요구가 계십니까?”

“LC당의 조선 잠입의 목적은 인준씨도 이미 아시는 것─ 내가 LC당을 배반하면 내 생명이 위험한 것도 아시는 것─ 여기 대한 인준 씨의 생각은?”

드디어 걸리어 들었다. 이 말이 인준이가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소춘 씨.”

“네?”

“소춘 씨를 경찰에게 감추기는 쉬운 일이외다. 경찰은 소춘 씨를 아직 모르니까 내가 눈만 감으면 저절로 보호가 되는 것이지만 LC당에서의 보호는 담보를 못하겠소이다.”

“그러면?”

“그냥 LC당에 계십쇼. 그리고 LC당의 제이급 당원의 임무를 다하십쇼. 거기는 방해를 안하리다.”

마음대로 공채는 도적질하여 내라는 뜻이었다.

“나는 하지 못할 일은 장담을 못하겠고 소춘 씨가 LC당에 배반을 했다가는 잔혹한 벌이 있는 것도 짐작하는 바니까 도덕상 되지 않은 일이지만 절도쯤은 방해하지 않으리다.”

“내 신체상의 구속은 언제 해제할 테요?”

“소춘 씨가 노백작께 대한 사적 복수를 단연 중지하시겠다면 당장에라도….”

“서인준 씨, 맹세하리다. 노백작에게는 결코 손을 대지 않을 것을….”

“사내로서?”

“사내로서─ 연로하신 어머님을 위해서… 그 이외의 일 그 이상의 일은 서인준 씨도 간섭을 안하시겠다고 내게 맹서를 하시오.”

“맹서합니다.”

이리하여 소춘이가 사사로써 노백작에게 원수를 갚으려던 행동은 중지하기를 인준이에게 맹서하였다. 그 대신 인준이는 또 공채를 훔쳐 내는 데는 간섭을 하지 않기로 맹서를 하였다.

서인준과 김소춘이가 맹세를 하고 소춘이를 피아노 강습소에서 무사히 돌려보낸 것은 새벽 두 시가 벌써 넘어서였다.

소춘이가 돌아간 뒤를 따라서 또 한 사람이 피아노 강습소를 나섰다. 소춘이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 뒤를 밟고자 함이었다.

그 미행자가 나간 다음에 인준이도 강습소를 나섰다. 어젯밤 한잠도 못 잔 인준이는 매우 피곤하였다. 아파트로 돌아가서 평안히 쉬기 위해서였다.

노백작의 위에 가하여지려는 위험은 막았다. 김소춘이도 사내─ 더구나 제이급까지 올라간 고급 악한─ 자기의 맹서를 위반치는 않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준이 자기의 임무도 차차 가능성이 많아졌다.

윤 백작 댁 어느 곳에 감추여 있는지 알지 못하는 그 공채를 인제 장차 LC당에서 훔쳐 낼 것이다. 윤 백작 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김소춘이라는 인물이 LC당에 있는 한에는 그 공채는 불원간 LC당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LC당이 훔친 공채를 인준이는 다시 훔치기로 방략을 세운 것이었다. 알아 내기 힘든 곳에 감추인 공채를 LC당의 힘으로 훔쳐 내게 하고 LC당에서 훔쳐 낸 뒤에 인준이 자기가 다시 LC당에게서 훔치기로─ 이렇게 하는 편이 제일 간편하였다.

음력 중순 밝은 달을 우러러보면서 피곤한 걸음을 아파트로 옮길 동안 인준이의 마음으로는 그 거액의 공채는 벌써 자기의 손안으로 들어온 셈을 쳤다.

아파트로 돌아왔다.

잠시 기다렸다. 김소춘이를 미행한 당원에게서 인제 올 전화를 기다리느라고….

자리옷을 바꾸어 입고 기다리고 있노라니까 기다리는 전화가 왔다.

그러나 그 전화는 인준이를 실망케 하였다.

소춘이의 뒤를 밟기는 밟았지만 ×× 정 근처까지 가서 소춘이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리고 한참을 그 근처를 뒤적이었지만 알아 낼 수가 없다. 죄송하다는 전화였다.

소춘이의 있는 곳을 알아보려던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소춘이라는 인물과 윤 백작 집과의 밀접한 관계의 증빙을 잡고 있는 인준이는 인제 다시라도 넉넉히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전화로 연방 미안합니다고 하는 당원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하고 그 대신 지금 강습소에 잡혀 있는 제사급 당원(김소춘이를 보호하려던)을 그냥 놓아 주어서 그 사람의 뒤를 다시 잘 밟아서 이번은 놓치지 말라고 명하였다.

이것으로 전화를 끊고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피곤하고 또 피곤한 몸을 자리 속에 넣었다. 두어 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리를 지나간 뒤에 인준이는 즉시로 잠이 들었다.

피곤하기 때문에 깊이 잠든 인준이는 잠든 지 얼마를 지나지 못하여 몽롱하나마 자기의 문을 누가 두드리는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 꿈결같이 들었다. 들으면서 그냥 잤다. 그러매 문 두드리는 소리는 더 커 갔다. 더 커가는 바람에 인준이는 드디어 잠에서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자기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영감! 영감!”

찾는 소리까지 들렸다. 아파트 수위의 목소리였다.

“누구여.”

“저올시다. 영감께 전화왔읍니다.”

“전화. 잔다고 그러지.”

“주무신다고 그랬더니 그래도 급한일이 있다고 꼭 깨워 달랍니다.”

“누구랍디까?”

“그건 모릅지만 여자의 목소립디다.”

여자? 여자로서 이 밤중에 누가 자기를 찾나?

누님일가? 다른 당원일까? 인준이는 두어 번 끌끌 혀를 찬 뒤에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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