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8
8
편집불안과 소란에 싸인 윤 백작 댁!
괴상한 권총 사건의 뒤를 이어서 어마어마한 경찰의 보호 아래 든 윤 백작 댁의 밤─
윤찬두는 밤 열두 시가 거진 되어서야 침실에 들었다. 뜰 목목이 경관들이 지켜 있는 것이 자기네 집안을 보호하기 위해서임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무슨 감시를 당하는 것 같아서 도로혀 귀찮았다.
좌우간 의리상 그렇지 못하여 하인에게 명하여 한 시간에 한 번씩 차나 끓여서 대접하라는 당부를 하고 침실에 든 찬두는 잠시 침대 위에서 휘뒹굴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나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못하여 찬두는 번쩍 깨었다. 누군가 자기를 흔드는 듯한 것을 잠결에 알고….
기괴한 부르짖음이 찬두의 입에서 나오려 하였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 조차 나오지 못하였다. 몸만 와들와들 떨렸다.
어떤 복면한 인물 하나가 오른손으로는 권총을 잡고 왼손으로 찬두를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찬두가 깨는 기수를 보고 그 괴한은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찬두야 입을 봉해라. 네가 입을 열려면 먼저 이 권총이 입을 연다.”
찬두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자기 귀 아래는 자기의 권총도 있을 것이다.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하인청에 연한 초인종도 누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두의 손은 이불 속에서 움찍을 하지 못하였다. 움찍하다가는 괴한이 먼저 권총을 발사할 것 같아서….
“찬두야 일어나 앉아라.”
괴한이 명령이었다.
찬두는 유유낙낙할 따름이었다. 자리옷 채로 침대에 일어나 앉으면서 그 기회에 몰래 손을 써서 자기의 권총을 꺼내든가 초인종을 누르려고 그 기회를 엿보면서….
그러나 괴한의 눈치가 더 빨랐다.
“네 권총은 벌써 내 주머니 속에 들어갔다. 초인종의 전선도 죄 끊었다.”
하릴없었다. 찬두는 몸을 떨면서 일어나 괴한과 마주 앉았다.
“떠는구나. 추우냐. 네 외투를 줄까?”
괴한은 찬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찬두의 외투를 끄을어서 휙 하니 찬두에게 던져 주었다.
“찬두 너도 알지? 이 집이 경관으로 철통같이 에워싸서 물 한 방울도 샐 틈이 없는 것을. 그런 틈으로라도 나는 자유로 드나들 수 있다. 나는 그만한 사람이니까 그만치 알고 이야기하자. 손 서툴게 내게 반항을 하려든가 무슨 위해를 가하려다가는 도로혀 불리하다.”
괴한은 찬두의 ‘나일 캐비넽’에서 담배를 가져다가 붙여서 피우면서 눈짓으로 찬두에게로 먹으라 하였다.
“얼마 전에 후당에 들어가서 너의 아버지와 한 삼사십 분간 의논을 하고 돌아간 사람도 나─ 수일 전 완쇠에게 가해한 사람도─ 모두 내가 한 일이다. 그 일을 서막으로 인제 어떤 일까지 하여야 할지 오늘 그 점을 너하고 의논하러 여기 왔다. 네가 내게 반항을 하지 않는 이상에는 나도 신사다 이 네게 대할 테니 그쯤 알고 서로 신사적 의논을 해보자.”
“당신은 대체 누구요.”
찬두의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 나왔다.
“나?”
괴한은 복면 아래서 픽 하니 웃었다.
“나 말이지? 인제 내 이름도 말할 게고 내 내력도 말할 게고 다 말하지. 내가 너한테 너’라는 말로 부르는 것도 그만한 까닭이 있는데 그 점도 다 말하지. 좌우간 다시 말하는 것은 끝까지 신사적으로 일을 진행시키지 결코 반항을 하든가 하지 말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단지 경악과 공포에만 싸였던 찬두지만 차차 그의 머리도 냉정하여 갔다.
“당신의 요구부터 말하오.”
얼마의 돈을 요구할 줄 알았다. 그랬더니 괴한은 거기는 대답치 않았다.
“먼저 내가 누구라는 것부터 말하마. 이건 당분간 알리지 않을 계획이었었는데 서인준인가 하는 자가 벌써 이것을 알아 내어서 경찰에까지 알리고 경찰에서 알기 때문에 이 집을 이렇듯 철통같이 에워싸고 보호하고─ 내일 아침쯤은 서인준이의 입에서 네 귀로 사건의 이면이 폭로될 테니 더 감출 필요도 없다. 자, 찬두야 내 말을 잘 들어라. 나는 김소춘이라는 사람, 김 봉덕이라는 이의 유복자─ 너하고는 아비 다른 형제─ 말하자면 의붓형이다.”
찬두는 입을 딱 벌렸다.
말의 뜻은 무론 알았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말이냐 말이지. 그럴 게다. 사십 년간 어머님 한 분 밖에는 이 조선 안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던 놀라운 비밀이다.”
지금부터 사십 년 전 봄철 어떤 날이었다. 그때 공주 감영의 영찰로 있던 김봉덕은 당시의 충청 감사이던 윤찬두의 아버지와 어떤 기생을 다투기 때문에 감사에게 미움을 사서 사실 없는 죄명으로 맞아 죽은 일에서 비롯하여 그 기생이 어떤 산골에서 김봉덕이의 유복자를 낳고 그냥 감사의 소실로 들어 있다가 그 뒤 감사 부인이 별세한 뒤에 민적상 정실이 된 점이며 그 기생이 즉 지금의 백작부인─ 찬두의 어머니라는 일을 삼십여분 동안을 이야기할 동안 찬두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참견을 해야 쓸데도 없거니와 너무도 뜻밖에 일에 할 말도 없는 것이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말한 뒤에 괴한은 그냥 말을 이어서 이번의 사건에 까지 미쳤다. LC당이라는 세계적 악한의 제이급 당원의 한 사람으로 된 소춘(괴한)은 자기가 악한당에 관계하게 되니만치 옛날의 자기의 아버지의 원수를 언제든 갚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회를 지으려고 엿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말하자면 상해에 있는 어떤 사상 단체에게서 찬두의 집 재산의 거의 전부가 외국 공채와 교환이 되었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것을 알고 소춘이는 즉시 간부에 이것을 보고하였다. 조선이라는 땅은 단돈 만 원도 현금으로 있는 집이 없다고 돌아도 보지 않았었는데 삼사십만원의 거액이 감추여 있다는 의외의 소식에 LC당에서는 즉시로 당원 몇 사람을 내어보내서 탐사하여 보매 그것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안 뒤에 당에서는 간부급 몇 사람과 당원 몇 사람을 증파하여 이것을 거두어 내기로 하였다. 소춘 자기도 제이급 당원의 한 사람으로 조선에 잠입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벼르던 아버지의 원수를 인제 바야흐로 갚으려 하는 것이었다. 당무는 당무대로 소춘이의 사사 원수는 사사 원수대로 인제 바야흐로 노백작의 몸 위에 복수의 커다란 손은 내리려 하는 것이었다.
─ 이것이 소춘이가 찬두에게 한 말이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다 말한 뒤에 소춘이는 잠시 머리를 수그리고 생각하였다. 그런 뒤에 다시 말하였다.
“그래서 야 이봐라. 이번 내가 조선에 들어올 때의 계획으로는 들어오기만 하면 즉시로 이 집안을 전멸시키고 우리 당에서 목적했던 재물을 찾아 내어가지고 달아날 계획이었었구나. 어머니? 아버지를 배반한 어머니에게 무슨 애정이 있겠느냐. 그래서 들어온 지 며칠 뒤에 이 집 내실로 어머니를 찾아뵈었겠지. 어머님의 의향을 알아보아서 웬만만 하면 이 집안을 전멸시키려고….”
그래서 소춘이는 자기의 어머니요 겸하여 원수의 안해 되는 백작부인을 내실로 찾았다.
소춘이는 자기가 누구라는 점을 밝히지 않았다. 어느 토지에 관해서 노마님께 여쭐 일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이라 하였다.
생후 사십 년 만에 모자는 대좌하였다. 무심히 맞은 어머니와 어머니의 속을 등떠보려 온 아들과…
이 토지 관계로 왔노라는 사람을 잠시 바라보던 어머니는 하인들을 밖으로 나가라고 명하였다. 하인들이 나간 뒤에,
“너… 너….”
노부인의 입에서는 두어 마디 알아듣기 힘든 말이 나왔다. 그 뒤에
“너 소춘이로구나.”
명료한 말이 비로소 나왔다.
모자지간이었다. 냉혹한 마음으로 찾아왔던 아들이었으나 이 한 마디를 들으며 동시에 늙은 어머니의 눈에서 갑자기 흐르기 시작하는 눈물을 볼 때에 순식간에 냉혹한 마음이 사라져 없어졌다.
“소춘이란 누구 말씀이오니까?”
“야, 너 소춘이 아니고 누구란 말이냐. 모습─ 음성─ 야 소춘아.”
낳은 지 열흘 만에 유모의 손에 떼어 주고 감사에게로 간 노부인이었지만 단호한 자신으로서 자기와 마주 앉은 사람을 소춘이라 인정하였다.
소춘이는 알았다. 냉혹한 어머니로 박정한 어머니로 알았던 그 사람이 그 새 사십 년간을 한결같이 아들을 위하여 마음쓰고 그 안전을 남몰래 축수하고 있던 것을.
“어머님….”
“소춘아….”
사십 년 만에 서로 부르고 불리는 모자─.
혈속에 애정이라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자기의 아버지를 배반한 여인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자기를 낳은 지 열흘 만에 유모의 손에 내어맡기고 다른 데로 간 미운 여인으로 그 여인의 집안을 전멸시키기 위하여 들어왔던 소춘이었지만 “소춘아”의 한 마디는 이 냉혹한 소춘이의 계획을 꺾었다.
그로부터의 소춘이의 입장은 괴로웠다.
LC당의 최고 간부의 한 사람이 현재 조선에 들어와서 소춘이를 지휘한다.
재물이 있는 곳을 손쉽게 알 수가 없거든 공공히 윤 백작 집에 난입을 해서 일변 기관총으로 경관과 대항을 하면서 수색해서 그 재물을 찾아 내어 가지고 지금 어느 곳에 감추어 둔 LC당의 비행기로써 도망하여 버리자고 어서 일을 급히 하기를 재촉한다.
그러나 모자의 새에 통사정을 한 뒤의 소춘이의 마음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되었다.
자기의 아버지의 원수인 윤 백작의 아들 윤찬두에게까지 소춘이는 차차 동복 동생으로서의 애정을 느꼈다.
비록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는 불구대천의 원수라 하나 어머니를 같이한 윤찬두에게 대하여 소춘이는 차차 냉혹한 마음이 꺾이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소춘이의 심적 변화 때문에 LC당의 일은 지지히 진행되지 않았다.
가운데 끼인 소춘이의 입장은 현재로는 참으로 괴로웠다.
소춘이는 당 간부에게 향하여 자기가 책임지고 재물 은닉 장소를 수일 내로 알아 낼 테니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이번의 일의 발안자가 소춘이었더니만치 이 애원은 승낙은 되었지만 지금의 소춘이의 의향(폭력을 사용하지 말자는)이 차차 간부의 새에 의심을 받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 너를 찾아온 것이다. 공채가 어디 감추여 있는지 그것을 알려다고. 그것을 알아 내지 못하면 내 입장도 괴롭거니와 좋지 않은 일이 반드시 생겨.”
소춘이는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했다.
찬두는 대답치 않았다. 아까 소춘이의 권고로 손에 잡고 지금껏 비비기만 하고 있던 담배에 비로소 불을 그어 대면서 그냥 머리를 수그리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찬두는 머리를 들면서 입을 열었다─.
“김소춘 씨 용서하시오. 알아보기 전에는 당신을 형님이라 부를 수 없소. 또 비록 알아보아서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형님이라고는 차마 못 부르겠소.”
“글쎄 말이다. 네게 형이라 불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내 말을 다 듣고 말씀하세요. 내 두어 마디 미리 물어 보고 싶은 말씀이 있소이다!…”
“무엔가?”
“공채는 공채─ 별 문제로 하고 대체 소춘 씨는 우리 아버님께 어떤 행동을 취하실 예정이오?”
“당연한 질문─ 네게는 비록 아버지지만 내게는 불구대천의 원수─ 그 원수는 반드시 갚을 예산이다.”
“어떤 방식의?”
“팔십이 지난 사람─ 그 사람의 명예를 꺾는대야 그 영향을 받을 사람은 그 사람의 부인이나 아들─ 즉 내게로 말하자면 어머니와 동생이로구나. 그러니까 그 사람의 명예를 새삼스럽게 꺾는다든가 그런 행동을 할 것은 아니고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목숨을 빼앗을 도리 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
찬두는 다시 머리를 수그렸다. 소춘이가 이렇게 말하는 이상 반드시 그런 행동을 취할 것이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 그 위에 바야흐로 가하여지려는 위해, 그것은 결코 자식의 도리로서 좌시할 수가 없는 일이다.
“김소춘 씨.”
“?”
“재물의 문제는 둘째외다. 아버님의 안위에 관해서는 자식 된 도리로서 최상의 수단을 다해서 위해를 막는 것이 당연한 일이외다. 나는 소춘씨를 고발하겠소이다.”
복면의 아래서 소춘이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찬두야 생각해라. 고발한댔자 무슨 증거가 있느냐. 저 사람이 LC당원의 한 사람인 김소춘이라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와 너의 어머님 밖에는 없다. 그 점을 생각해라.”
“가령 고소를 못한다 할지라도 아버님의 위에 내리려는 박해뿐은 최선의 수단으로 방지해 보겠소. 이것을 김소춘 씨에게 선언해 둡니다.”
“그게야 무론 마음대로 하렴. 공채의 은닉 장소는?”
“…….”
“응?”
“…….”
찬두는 머리를 수그리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그가 머리를 들 때는 그의 얼굴에는 고민하는 표정이 역연히 나타났다.
“김소춘 씨.”
“?”
“내일 밤 다시 와 주시오. 하루를 연구하고 어머님과도 의논을 해 본 뒤가 아니면 어떻다고 대답을 못하겠소이다. 창황중의 일이라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소이다. 내일 밤에 공공히 하인에게 명함을 주고 다시 오세요. 모든 대답을 그때 하리다.”
“그럼 밤 열시쯤 올까.”
“그러세요.”
이리하여 소춘이는 사라지듯이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소춘이가 돌아간 뒤 십 분간 찬두는 몸을 꼼짝도 못하고 그래도 있었다.
자기의 집안을 엄습하려는 흉한이다. 자기의 아버지의 생명을 도모하려는 악한이다. 그러나 그 흉한의 신상에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길까 봐서 찬두는 십 분간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십 분이 무사히 지났다. 이십 분도 무사히 지났다. 어디로 어떻게 피하였는지는 모르되 소춘이는 경관의 경계망을 곱게 뚫고 피하여 나간 것이 분명하였다.
찬두는 비로소 자리에 도로 누웠다. 천 가지 만 가지의 생각이 그의 머리에 왕래하였다.
어찌하나?
LC당이라 하는 무서운 악한이 있다는 것은 찬두가 일찌기 영국에 있을 때 부터 알던 바다.
그 악한당의 마수가 자기 집안에 임하였으매 그것을 막기 위하여 경찰력을 비는 것은 가장 당연한 일이다.
처음 아버지가 있던 후당서 괴상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단지 한 개의 불상사로 알았다. 그 뒤에 아버지의 공포가 너무 어마어마한 것을 볼 때에 사건의 이면에는 무슨 복잡한 일이 있거니 이만치는 짐작이 갔다.
완쇠가 참살을 당할 때에 더욱 더 위험성을 직각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경찰의 굉장한 보호를 보고 사건이 중대한 것은 짐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중대한 사건’에 그친다면 삼엄함 경찰의 보호와 자기네 집안의 주의로 혹은 그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후는 특수한 사정이 섞이었다.
아버지의 이전의 죄악이라든가 적지 않은 금전이라든가 그런 것은 둘째 문제다. 지금 찬두가 당면한 문제는‘인정’이라는 기묘한 줄로 얽힌 문제이다.
지금 바야흐로 자기의 집안을 박해하려는 괴한─ 그 사람은 또한 지금 자기네 집안을 두호해 주는 사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이 없었더면 애당초에 이런 사건이 생겨나지도 않을 것이지만 또한 당장에는 자기네 집안에 가하여지려는 LC당의 폭력을 막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경찰의 손에 내어맡길 것인가 혹은 두호하여 줄 것인가.
그 사람을 경찰에게 내어맡긴다는 것은 LC당에서 자기네 집에 가하려는 폭력을 막아 주는 사람을 없이한다는 것이다. 얼른 생각하자면 그 사람이 없을지라도 경찰력으로 LC당을 대항할 수가 있을 것도 같지만 아직껏의 선례로서 LC당의 흉행은 세계 경찰에서 미리 막아 본 예가 없다. 일을 저지른 뒤에 제삼급이나 제사급의 당원을 몇 사람 잡아 내어 사형대에 보낼 뿐 사전에 막아 본 일이 없다. 그러면 경찰력뿐으로는 자기의 집의 위험을 막지 못할 것이요 당분간은 그 사람의 보호가 절대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경찰에 넘기었다가는 자기의 어머니의 위에 내려올 명예상의 손실도 또 생각치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사람을 그냥 두었다가는 (그 사람은 개인적으로 자기의 아버지 백작을 원수로 보느니만치) 자기 아버지의 위에 어떤 위해가 이를는지 알 수가 없다.
경찰에 내어맡기기도 어렵고 또 그냥 감싸 주기도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 위에 그 사람은(비록 아버지는 서로 다르다 하나) 자기와는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의 새가 아닌가
이러한 의리와 인정과 정세에 얽힌 문제 때문에 찬두의 비교적 건전한 머리로는 자기의 거처에 관해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그 밤을 찬두는 잠을 자지 않고 생각하였다. 너무도 사면으로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어지러워만 가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고자 한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튿날 조반 식전에 찬두는 내실에 어머니를 찾았다. 하인들을 모두 멀리하고 모자 두 사람이서 마주 앉았다.
“어머님.”
“왜.”
한참 침묵이 계속되었다.
“어머님 가문에 중대한 문제가 생겨서 어머님께 의향을 알아보려 들어왔읍니다.”
“무슨 일이냐.”
어머니의 눈자위의 동요─ 어머니는 벌써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어머님, 어제 밤중에 저는 김소춘 씨를 만나 보았읍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대답치 않았다.
찬두도 뒷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묵묵히 있었다.
“어머님.”
한참 뒤에 비로소 찬두가 찾았다.
“?”
“진퇴유곡이올시다. 어떻게 하려십니까?”
무엇이라 대답을 하랴. 사십 년간을 같이한 그 지아버니의 위에 내리려는 박해를 묵시하라고 할까? 그렇지 않으면 그 새 사십 년간을 두고 두고 그 안위를 염려하던 맏아들을 자기의 작은아들에게 명해서 경찰의 손에 내어주랄까.
전생이 전생이니만치 억센 성격의 주인인 백작부인도 입을 벌리지를 못하고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님 난처합니다.”
“…….”
“자식 된 도리─ 동생 된 도리─.”
“야, 찬두야.”
드디어 어머니가 불렀다.
“네?”
“네게 맡긴다. 나로서야 어떻게 말을 하겠느냐, 모두 네게 맡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어머님은 일임한다 한다. 그러나 일임한다 할지라도 찬두의 처지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어머님 참 난처합니다. 참으로 난처합니다.”
일에 임하여 그 거향을 주저해 본 일이 없던 자기였지만 이번의 이 일 뿐만은 어찌할지를 모르겠다.
찬두는 어머니와 마주 한 시간을 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였다.
단 한 가지─ 이것은 망상에 지나지 못하지만─ LC당이라는 것을 일거에 잔멸을 시켜 버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로되 경찰이나 자기 아버지나 김소춘이나 금전이나 이렇게 일부분의 문제뿐으로는 결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찬두에게 있어서는 만약 금전뿐으로 이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다하면 자기의 전재산이라도 서슴지 않고 제공할 것이다. LC당과의 문제뿐은 금전으로뿐 해결을 지울 수 있겠지마는 김소춘과의 새에 얽힌 문제는 금전뿐으로 해결이 안 될 것이다. 한 개의 생명─ 그것도 찬두 자기의 아버지의 생명을 내어주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 것이다.
자기는 직접 LC당의 간부와 교섭할 길이 없고 자기네 집안과 LC당의 새에 나서 있는 인물이 김소춘인 이상 김소춘의 희망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무시치 않을 수가 없는 요구였다.
어찌하여야 좋을지 자기의 방침을 세우지 못하고 찬두는 도로 양관으로 물러 나왔다.
하인에게 아버님이 기침하셨는가 물으며 기침하셨다 하므로 좌우간 아버지에게 들어가서 아버지가 이 사건에 대하여 얼마만치의 지식을 갖고 있는지도 알아볼 겸 아버지의 의향도 좀 알아보기 위하여 아침 문안을 겸하여 아버지의 침실로 들어갔다.
이즈음 며칠에 무척이도 쇠약하여진 노백작은 안락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아들의 들어오는 것을 눈을 치뜨고 바라보았다.
“거기 앉아라.”
문안이 끝난 뒤에도 그냥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명하였다. 찬두는 아버지의 가리키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아버님.”
한참 뒤에야 찬두의 입에서 나온 말─.
“?”
“아버님, 자식의 처지로 이런 말씀을 여쭈어 보기는 어렵습니다마는 한 마디 여쭈어 보겠읍니다.”
“무에냐.”
“아버님, 김봉덕이를 기억하시겠읍니까?”
아버지는 눈을 번쩍 들었다. 한때 호랑이와 같은 재상으로서 이름 높던 노백작─ 눈에뿐은 아직도 그때의 위력이 그대로 있었다.
“그놈의 이름은 어디서 들었느냐!”
“….”
“어디서 들었느냐 말이다.”
“어젯밤에 김봉덕이의 아들이라 자칭하는 자가 제 방에를 몰래 들어왔었읍니다.”
“그래─ 그─ 그놈을─ 그놈이─.”
“아버님 가문에 중대한 문제올시다. 어찌해얄지 저는 번민중이올시다.”
“그놈을 왜 경관에게 내주지 않았느냐!”
찬두는 대답치 못하였다. 무엇이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 그놈이 무얼 하러 우리 집에 다닌다더냐? 돈이냐? 내 생명이냐?”
“….”
“왜 대답을 안하느냐?”
“두 가지 다 엿보는 모양이올시다.”
“두 가지라. 두 가지 다라.”
노백작은 노여운 음성으로 두어 번 뇌어 보았다. 그런 뒤에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경찰에서는 뭘 하느냐?”
“네?”
“경찰에서는 왜 그런 놈을 그냥 두느냐.”
“어디 숨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읍니다.”
“모르단─ 경찰은 일 년에 기밀비를─.”
아아 아버지의 성격을 맞추어서 아버지에게서는 노염 밖에는 더 살 것이 없을 줄을 자기도 짐작은 한 바였다. 사람을 지배는 하여보았지만 지배를 받아 보지는 못하고 일찍부터 관계(官界)와 정계에서 호령으로 그 일생을 보낸 아버지에게서 구체적의 해결책은 얻지를 못할 것은 넉넉히 추측이 갈 것이 아니었던가.
찬두는 아버지에게 노염을 삭히기를 간원하였다.
LC당이라는 무서운 단체에 대해서 아버지가 알아들을 만치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김봉덕이의 아들 김소춘이가 거기 적을 둔 이상에는 심상한 수단으로는 그것을 방지키가 힘들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차마 입을 열지를 못하였다. 다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조용히 김소춘이를 만나서 양해를 구하여 보라는 것─ 즉 아버지가 김소춘이에게 말하자면 사죄를 하여서 이번의 박해를 패스하여 보자는 것─ 이것은 반드시 하여야 할 말이지만 차마 입밖에 나오지를 않아서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한댔자. 더욱 아버지의 노염만 살 것이지 아버지는 결코 승낙을 안할 것이다.
아버지의 방에서 물러나올 때는 사실 찬두는 울고 싶었다. 어찌 하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인제 자기의 집안에 이를 박해를 번히 알면서도 그것을 방지할 방책이 도무지 없었다.
삼십 년 평생에 처음 당하여 보는 고경이었다. 구원을 청할 곳이 없는 이 고경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피해 보려는 자기의 고심은 한낱 헛 고심에 지나지 못할까. 어젯밤 한잠도 자지를 못했지만 정신은 더욱 새로워 갈 뿐이었다.
밖을 내다보매 경관들은 그냥 이 구석 저 구석 목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어젯밤의 경험으로 볼지라도 경관의 보호쯤으로는 당치 못할 것이 분명하였다.
찬두가 서인준이의 방문을 받은 것은 오전 열한시쯤이었다.
한 번 형사 이필호라는 위명으로 방문한 일이 있고 그 뒤 또 진짜 이필호와 함께 와서 완쇠를 심문해 본 일이 있는 서인준이는 찬두와는 초면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인준이라는 본명으로써 찬두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러가지의 복잡한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찬두는 처음에는 면회를 거절할까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어젯밤 김소춘이의 말 가운데 서인준이라는 사람이 공주까지 가서 다 알아보고 왔다는 말이 있던 것이 생각나서 만나 보기로 하였다.
“서인준이올시다.”
“윤찬두올시다.”
인사는 간단히 사괴어졌다.
“어떻게 오늘?”
그 방문이 예사의 방문이 아님을 짐작한 찬두는 하인들을 멀리한 뒤에 비로소 물었다.
“네, 다른 것이 아니라 댁에 중대한 사건이 생기고 자칫하다가는 불상사가 생길는지도 알 수 없어서 미리 주의를 해드리기 위해서….”
“김소춘이 사건 말씀이외니까.”
이 말에 인준이가 놀랐다.
“김소춘이란 이름을 어디서 들으셨읍니까?”
“어제 그 사람 자신의 방문을 받았읍니다.”
“그래서?”
“서 박사, 용서하십쇼. 선생께 대답하기 전에 물어 볼 말씀이 있읍니다만, 선생께서는 부러 이번 공주까지 가셔서 알아보시고 이번 사건의 맨 처음에는 이 형사라는 이름 아래 저를 찾으신 일까지 있으니 선생께서는 어떤 자격으로 그런 일을 하셨읍니까?”
“당연한 의심이올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고 단순한 일─ 저는 본시 범죄 과학을 연구하고 더구나 LC당에 관해서 연구를 하느니만치 남의 눈으로 보자면 좀 정도가 넘어 보이는 일까지 했읍니다.”
범죄 과학자요 또 LC당을 연구한다는 사람 혹은 이 사람과 잘 의논을 하면 무슨 대책이나 생겨나지 않을까.
“서 박사, 또 한 가지 선생께서 이번 사건에 관해서 알아보신 그 전부와 LC당에 관해서 아시는 전부를 제게 말씀해 주실 수가 없읍니까?”
인준이는 찬두를 바라보았다. 그 인준이의 눈을 찬두도 그냥 마주 보았다.
잠시 서로 마주 본 뒤에 인준이가 대답하였다.
“LC당에 관해서는 아직 사실 아무것도 알아진 것이 없어서 대답치 못하겠읍니다. 이번 사건의 경로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껏 다 말씀하리다.”
인준이는 김봉덕이 관계에서 시작해서 이번 사건이 생겨나기까지의 경로를 자기의 아는껏 죄다 찬두에게 말하여 주었다.
찬두는 잠자코 다 들었다. 들으면서 찬두는 놀랐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 역사적 사실─ 을 인준이가 너무도 정확히 알므로─ 찬두 자기도 소춘이에게 어제야 비로소 들었으며 소춘이의 말로도 이 조선 안에 그 비밀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백작부인 단 한 사람이리라고 하던 그 사실을 너무도 명백히 탐사하였으므로 찬두는 먼저 거기 놀랐다. 벌써 사십 년을 지난 옛날의 일─ 보통 일이라도 알아보기가 힘들 것을 사십 년 이래 비밀히 되어 온 일을 인준이는 어떻게 그렇게도 상세히 알아 내었나? 더구나 백작 댁 내에서도 노부인 혼자 밖에는 알 사람이 없을 줄로 믿고 있던 일─ 그 새 소춘이가 내실에 출입하여 노부인과도 여러 번 교섭이 있었다는─ 일까지 아는 것을 보고 찬두는 입을 딱 벌렸다.
“네… 네….”
때때로 대답만 끼워 가면서 표면 무심히 듣고 있는 찬두였지만 인준이가 너무도 깊이 알므로 인준이에게 일종의 경개심까지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꽤 상세히 탐사하셨읍니다그려.”
인준이의 말을 다 들은 뒤에 찬두는 비로소 말했다.
“네, 능력껏 했읍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네, 처음에 벌써 이것은 단지 LC당과 윤 선생 댁의 문제가 아니고 무슨 다른 감정적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을 짐작하고 완쇠를 심문해 봤읍니다. 완쇠는 제게 심문을 당한 탓으로 LC당에게 참살을 당했읍니다. 비밀이 탄로될까 해서… 완쇠가 죽은 뒤에는 비밀의 열쇠를 잡은 이는 윤선생 자당 한 분밖에는 없읍니다. 그러나 자당께는 여쭤 보기도 힘들고 그래서 당일로 공주로 내려가서 나흘 동안 알아본 결과 겨우 그 내막을 알았읍니다.”
“네….”
“그래서 즉시로 형사 이필호에게 전보쳐서 댁을 경찰력으로 보호케는 했읍니다마는 LC당에게 대해서는 경찰은 너무도 무력합니다. 그 증거로는 어젯밤에도 경관이 철통같이 에워싼 이 댁 내에 소춘이가 왔다니….”
“경찰에서는 이번 사건의 이면을 어느 정도까지 아는지 혹 짐작하십니까?”
“경찰에서는 제가 알려 준 이상은 모릅니다. 조선 경찰은 LC당의 존재도 알지 못했었으니까….”
“서 선생은 어느 정도까지 알려 주셨읍니까?”
“경찰이 알 필요가 있는 정도까지… 안심하십쇼. 저도 그다지 눈치 없지는 않은 사람─ 댁 가문에 치욕이 될 일은 경찰에도 알리지 안했읍니다.”
찬두는 감사의 눈을 인준이에 던졌다. 찬두는 드디어 결심하였다. 인준이라는 이 알지 못한 인물에게나마 보호책을 물어 보기를.
“서 박사.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든다고 경찰력이며 아무 무력도 못 가진 선생께라도 매달립니다. 선생은 속속들이 다 아시니 더 감출 여지도 없읍니다. 가문의 치욕 문제는 지금은 생각할 여유도 없고 방비책을 어떻게든 강구해야겠읍니다. 제 말씀을 들으세요─.”
찬두는 어젯밤의 소춘의 하는 말을 대략 인준에게 알렸다.
“소춘 씨의 의향으로는 어머님이나 제게는 생명상의 위험까지는 안 줄 모양이지만 아버님께 대해서는 어디까지든 그 결심을 굽히지를 않을 모양이올시다. 사십 년 전의 그 일이 도덕상의 죄가 된다 안 된다 이런 것은 토론할 바가 아니고 자식 된 도리로써 어버이의 위에 박해가 내리려는 것을 묵시할 수가 있읍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피하고자 김소춘이를 덜컥 경찰의 손에 내어주었다가는 LC당의 흉수가 전가족의 위에 내릴 것이다.
“진퇴유곡이올시다. 서 선생, 무슨 방책이 없겠읍니까.”
인준이는 생각하였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인준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뚱딴지 말이었다.
“윤 선생.”
“네?”
“김소춘이가 개인으로 엿보는 것은 무론 춘부장이지만 LC당이 당으로서 엿보는 것은 다른 것이지요.”
“….”
“가격으로 논지하면 얼마치나 있읍니까? 외국 공채가?”
찬두는 또 다시 놀랐다. 인준이라는 인물은 이런 점까지 아는 것이었다.
“조선서는 적지 않은 액수….”
“얼마나?”
“싯가로 삼십 한 팔구만 원 가량….”
“삼십 팔구만 원.”
앵무새와 같이 찬두의 말을 받아 외고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인준이가 눈을 뜨면서 재쳐 물었다─.
“그것이 있는 장소는?”
“….”
“실례했읍니다. 그 장소는 저는 물을 필요가 없읍니다. 그 대신 또 다른 것을 한 가지 물어 보겠읍니다.”
“무슨 말씀이오니까?”
“네, 다른 것이 아니라─.”
인준이는 담배를 꺼내어 붙이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그 삼십 팔구만 원이라는 외국 공채를 잃어버리신 줄 알고 내버리시면 그 뒤의 선생 생활─ 말하자면 재정 상태는─.”
“글쎄올시다. 그것이 없을지라도 굶지는 않겠지요.”
“그러면 그것을 내놓으실 결심을 하실 수가 없읍니까?”
찬두는 눈을 들었다. 의아하다는 눈치로 인준이를 바라보았다. 인준이가 다시─
“LC당의 목적은 그 공채에 있지 윤 선생 댁 내에 대해서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짐작하시겠지요? 그 공채만 탁 LC당에게 내어주면 경성와 있던 당원은 죄 도로 상해로 돌아갈 것이외다.”
“….”
“비상책이지요. 비상책이지만 이 밖에는 다른 방책은 아마 없으리다.”
“김소춘이의 사혐은?”
“LC당의 힘은 크지만 김소춘이 개인은 무력하외다. 당 간부들이며 다른 당원들이 모두 상해로 가기만 하면 소춘이 혼자서는 손가락 하나 들썩 못합니다. 그때는 경찰력은 커녕 댁의 하인뿐으로 김소춘이 한 사람만은 넉넉히 못오게 막을 수 있으리다.”
사리정연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당 간부에게 어떻게 직접 그것을 줄 수가 있겠읍니까. 우리집과 LC당과의 새에는 소춘이가 나서서 거래를 하는 이외에 당 간부가 어디 있는지 누군지 압니까? 혹은 서 선생은 아십니까?”
“나도 모릅니다. 모릅니다마는 지금 전력을 다해서 당 근거지를 찾는 중이니까 아마 오륙 일 중에는 알아 낼 수도 있겠지요. 단지 선생이 그 공채를 전부를 내주실 결심을 하실 수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외다."
어려운 문제였다. 자기네 집 재산의 거의 전부를 내어 없앤다 하는 것도 급히 결정하기 힘든 문제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차피 LC당에게 빼앗길 물건이지만 자진하여 내놓기는 또한 아까웠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찬두는 겨우 대답하였다.
“서 선생.”
“네?”
“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으면 할 수야 없겠지요. 그렇지만 좀더 생각해 보고 싶소이다.”
“춘부장께─.”
“말씀 맙쇼. 아버님께 그런 말씀을 의논했다가는 당장에 안 되리라고 꾸중만 들을 일이고 소춘이를 경찰에 왜 내어주지 않느냐고 호령만 하실게외다.”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찬두는 가로 나섰다─.
“서 선생, 좌우간 좀 연구해 보겠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줄 밖에는 도리가 없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깝소이다그려.”
“적지 않은 금액, 무론 아깝기야 하시겠지만….”
찬두는 좀더 생각하여 보고 최후의 결정을 짓자고 의논하였다.
찬두로서 만약 그 공채를 전부 내놓을 결심만 생기게 되면 인준이는 가운데 나서서 알선을 하기로 약속하였다.
“지금 LC당의 경성 본거를 전력을 다해서 탐사중이니까 수일 내로는 알게 되리다. 그때쯤까지로 좌우 양단간 작정을 하세요. 일이 너무도 더디게 됐다가는 LC당에서 비상수단을 쓰게 되면 결단이니까요. 기관총 독와사 비행기 폭발탄 마음대로 사용하고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힘들어요.”
인준이가 돌아갈 때에 찬두는 인준이의 집의 전화 번호를 알아 적어 두었다.
찬두는 인준이와 거진 두 시간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인준이와 만나 본 뒤에는 얼마만치 근심이 좀 적어진 듯한 느낌을 얻었다. 공채만 내어놓으면 다른 문제는 없이해 버릴 수가 있을 듯하여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인준이와 작별한 뒤로 찬두는 마치 정신 잃은 사람같이 보였다. 하인이 점심 채근을 하면 기계적으로 먹고 저녁 채근을 하면 기계적으로 먹고 그 외의 시간은 정신 잃은 사람 모양으로 지냈다.
대체 인준이란 어떤 인물인가.
자기에게 직접 이해 관계가 없는 일에 머리 싸매고 나선다. 형사 이필호라 하고 방문한 일은 둘째 두고 충복 완쇠를 심문하여 일부러 공주까지 내려가서 일의 진상을 조사하였다. 일의 진상을 조사하였으면 그 내용을 전부 경찰에게 알리었나 알아보니 그렇지도 않고 윤씨 집 명예에 관계되는 일부분은 감싸 두고 윤씨 집 보호만 청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또한 혼자서 자기를 찾아와서 LC당에게 대한 대책을 강구하자고 의논한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으로는 윤씨 집에 감추여있는 근 사십만 원의 공채를 전부 LC당에게 내어주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LC당의 관계자인가 하면 또한 그렇게 생각지 못할 점이 많다. LC당의 관계자이면 직접 행동을 취할 것이요 겸하여 김소춘이의 사사로운 행동을 권병으로라도 막아 버릴 것인데 그렇지도 않다.
그런 일변으로는 수삼 일 내로 LC당의 경성 본거를 드러내겠다고 장담을 한다.
그러면 서인준이라는 인물은 자기네 집을 보호하여 주려는 인물인가 혹은 LC당과 같이 자기네 집안의 불행을 바라는 인물인가.
김소춘이가 장차 뻗치려는 흉수를 제거하여 버리고 인준이 자기의 흉수를 가하려 하는 흉한이 아닌가.
자기의 아버지는 그 전생을 조선 각곳 방백살이를 하니만치 남에게 원한질 일도 많이 한 사람이다. 서인준이도 당시의 어떤 피해자의 아들이 아닌가.
인준 자기가 직접 윤 백작의 위에 복수의 칼을 내리려 하는데 김소춘이가 가로 뚫고 들어왔으므로 이것을 슬쩍 제해 버리려는 것은 아닌가.
의심을 하자면 세상에 의심치 못할 일이 없다. 자기네 집안에 개인적으로 아무 호의도 가질 까닭이 없는 서인준이가 과도히 자기네 집안에 다니려는 흉수에 대하여 방비책을 강구하여 주는 데 의하여 찬두는 일종의 의심을 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령 개인적으로 그런 사혐을 품은 것이 아니라 하면 혹은 서인준이도 자기네 집 재물에 마음을 둔 바가 아닌가. 그것을 훔쳐 내려는데 때마침 김소춘이가 간섭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먼저 이 집안에서 김소춘이부터 제하여 버리고 서서히 자기의 방책을 강구하려 함이 아닌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지러운 문제다. 더구나 어젯밤 한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신경이 송곳과 같이 날카롭게 된 찬두는 인준이의 일로써 이리저리 생각하여 보았다.
형사 이필호와 서로 아는 듯하므로 전화로 이필호에게 향하여 서인준의 인물을 알아보매 서인준이는 어떤 민족주의 단체의 간부급이며 범죄과학자로서 더우기 LC당의 연구자로서는 거의 세계적 학자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나 김소춘이와 자기네 집과의 개인 문제에는 너무도 깊이 뚫으려는 감이 없지 않다. 그 위에 범죄 과학자라 하면 어떤 다른 방책을 취할 것이지
“그 공채를 LC당에게 곱게 내어주어 버리시오.”
하고 권하는 것은 기괴하였다.
산란한 머리로써 찬두는 인준이의 인물을 이렇게 저렇게 연구하여 보았다. 더욱 “수일 내로 LC당의 경성 본거를 넉넉히 알아 내리다.” 고 장담을 하니 찬두도 아는 바 세계 각국의 경찰이 알아 내지 못하는, LC당의 본거를 인준이는 어떻게 알아 내려 하나?
김소춘의 문제도 찬두를 괴롭게 하였다.
부계(父系)를 존중하는 나라이며 부계를 존중하는 시대이기에 김소춘이와도 무심히 지나지 만약 모계(母系)를 존중하는 나라거나 모계를 존중하는 시대랄 것 같으면 김소춘이는 당당한 자기의 형이었다.
지금 자기의 집안에 박해를 가하려는 김소춘이지만 자기의 집안이라 하나 자기의 어머니와 찬두 자기에게는 그 해가 미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의미 아래서 될 것이다.
자기는 당당한 명문의 자식이요 후사요 김소춘은 한 개의 악한당의 당원에 지나지 못하되 캐어보자면 같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가 아닌가.
아직 형제로서의 정애는 생기지 않았다 할지라도 형제로서의 의리는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아버지의 위에 박해를 가하려 하는 악한이면서도 또한 어머니를 같이한 자기의 형 김소춘─.
이 사람에 대하여 자기의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 맏아들은 낳은 지 열흘 만에 내버리고 그 새 사십 년간은 아직 생사조차 모르고 있었다. 둘째 아들은 당당한 명문 공자로소 삼십 년의 생애를 부귀와 영화 가운데서 보냈다. 사십 년간을 그 생사조차 모르면서도 그래도 행여 무사히 자라나길 남몰래 축수하던 자기의 아들이 홀연히 자기의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나타난 그 아들은 너무도 무서운 아들이었다. 이 집을 전멸시키려─ 그리고 또한 자기와는 사십 년간을 자리를 같이한 남편의 생명을 없이하고자─ 이런 무서운 목적을 품고 나타났다.
무서운 아들이다. 보기조차 지기지기한 아들이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 아무리 악한당원에 가입한 아들이라 할지라도 역시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은 아들의 위에 부어질 것이다.
아무리 악한당에 가입한 아들이라 할지라도 어머니 된 자기 마음으로서는 역시 슬하에 두고 매일 보고 싶을 것이다.
자기와 어머니를 같이한 형 김소춘이─ 그의 위에 미칠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할 때에 찬두는 어찌하여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남의 눈을 피하면서 어머니를 찾는 김소춘의 마음─ 또한 남의 눈을 기어가면서 사십 년 만에 비밀의 아들을 만났던 어머니의 마음─ 두 가지를 생각할 때에 찬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저주하고 싶었다.
아까도 어머니의 의향을 떠보았지만 어머니는(아무리 악한당에 가입해 있다 할지라도)결코 소춘이를 밉게 안 본다. 그리고 인정상 또한 당연히 그럴 것이다.
같은 몸에서 난 두 개의 아들─ 하나는 재산과 명예를 아울러 가진 훌륭한 신사요 하나는 세상의 이면을 걸어다니는 악한당의 일원─ 하인들의 수근거림을 듣건대 어머니는 이즈음(웬일인지) 식사도 좋지 못하며 잠도 편히 못 쉰다 한다.
그럴 것이다.
이 인정상의 문제가 얽히어서 찬두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아버지끼리는 불구대천의 원수요 아들끼리는 같은 몸에서 나온 형제─ 부계(父系)에 치중(置重)을 하자면 어머니의 마음을 여지없이 밟는 것이다.
모계(母系)에 치중하자면 아버지의 목숨을 희생하며 아울러 사회를 유린하여야 하겠다.
어느 편을 취하나?
너 좋고 나 좋은 방책이 있기만 하면 그 위에 더 양책이 없을 것이로되 그 중에 한 가지 길 밖에는 취할 수가 없는 찬두는 자기의 취할 길을 작정을 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만 취하자는 것은 너무도 무서운 일이다. 아버지냐 어머니냐의 문제이다.
어젯밤 한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날카로웁게 된 찬두의 머리에 인준이의 문제 밖에 또 한 가지 걸려서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김소춘의 문제였다.
오늘 밤 열시에 김소춘은 이리로 찾아오마 하였다. 정정당당히 명함을 내고 방문하마 하였다.
그 김소춘이에게 어떤 대답을 할 지 그것이 또한 문제였다.
오늘 밤 다시 와 달라고 부탁한 것은 찬두 자기였다. 오늘밤 소춘이가 오기만 하면 소춘이에게 무슨 만족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다.
그러면 어떤 대답을 하나?
사십만 원에 가까운 그 공채 전부를 소춘이에게 내어주고
“내 아버지에게 대하여 마음대로 복수를 하시오.”
할까?
이것은 자식 된 도리로 못할 일이다.
그러면─
“사십만 원은 LC당에게 내줄 테니 개인적 복수는 그만두어 주시오.”
하여볼까?
그러나 이것은 소춘이가 듣지 않을 것이다. 그 새 사십 년간을 벼르고 또 벼른 일을 여기서 번복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방침을 다 내버리고 경관을 매복시켰다가 김소춘이를 포박시킬까? 그렇게 한다면 김소춘은 손쉽게 포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소춘이는 손쉽게 잡는다 할지라도 김소춘이를 지휘하던 세력─ LC당의 힘은 어떻게 막나?
김소춘이의 말을 듣건대 지금도 LC당에서는 김소춘이에게 꿈질거리지 말고 당장에 폭력을 써서라도 공채 전부를 빼어오라 한단다. 그리고 그것은 거짓말인 듯싶지 않다.
그것으로 보자면 지금에 있어서는 김소춘이는 자기네 집안(노백작은 제외하고)을 보호하는 사람이다.
김소춘이가 만약 포박당하기만 하면─ 즉 자기네 집안과 LC당 새의 연락자가 없어지기만 하면 LC당에서는 즉시로 기관총을 가지고 덤벼들지도 알 수 없다.
만약 LC당이 정면으로 표면으로 자기네 집안을 습격한다 하면 자기 아버지 노백작이며 LC당이 엿보는 사십만 원의 공채뿐이 아니라 자기네 집안은 형적도 없이 전멸이 될 것이다.
─ 이것이 찬두에게는 문제이다.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아버지를 원수의 손에 내어맡길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의 손으로 내맡기지 않을지라도 결과는 더 중대하면 중대하지 경하게는 맺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식의 도리로써 행하지 못할 노릇─ 그러자 행치 않을지라도 결과는 같을지며 그 밖에 더 좋지 못할 일이 생길 것. 이런 괴롭고 아픈 입장에서 찬두는 고민하였다. 그가 수만원을 삭히고 이십여 년을 삭혀 가면서 배운 학문도 여기 대한 대책을 알으켜 주지 않았다. 그 해결책을 의논할 사람도 없는 일이었다.
세상이 그 신분을 부러워하는(윤 백작의 외아들) 윤찬두도 어찌할 줄을 몰라서 연하여 자기의 가슴만 두드렸다. 칵 죽어 없어지고 싶은 생각도 연하여 났다.
“냉수를 가져오너라!”
술을 먹을 줄 모르는 찬두는 자기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까 하여 연하여 냉수만 마셨다.
내용은 모르지만 하인들도 이 심상치 않은 일(주인의 번민이며 경관들의 경계에 서로 ) 수근거리며 말 한 마디 크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밤 열시─.
어젯밤 김소춘이와 약속한 시간─
찬두는 경계하는 경관과 및 하인들에게 밤 열시쯤 손님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려 두었다.
열시 정각에 하인이 명함을 들고 들어왔다. 보매 김소춘이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주저할 때에 김소춘 자신의 벌써 문안에 들어섰다.
“며칠 전에 말씀 드린 것은 제 애명이요 그것이 본명이올시다.”
이런 변명을 하면서….
소춘이가 마주 앉기를 기다려서 찬두는 하인들을 물리쳤다.
둘이 마주는 앉았지만 서로 묵묵히 있었다. 먼저 입을 벌리려지 않았다.
한참 뒤에 소춘이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어젯밤의 대답을 들으러 왔다.”
“형님!”
아아 드디어 찬두의 입에서는 형님이란 말이 나왔다. 소춘이도 이 말에는 놀란 모양이었다. 몸을 흠칫 하였다. 눈을 딱 바로 뜨고 찬두를 보았다.
“형님이라 부릅니다. 아버님의 원수─ 아버님의 생명을 해하려는 이─ 그렇지만 형님이라 부릅니다.”
“그래.”
“아직 결정을 못했읍니다. 하루 종일─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스무 시간을 생각했지만 아직 결정을 못했읍니다.”
“서인준이는 뭐라더냐?”
인준이가 다녀간 것을 벌써 안다.
“서인준이도 당원이오니까?”
“당원? 당의 원수─ 당원의 생각으로는 즉시 없이해 버릴 예정이지만 간부 측에서 무슨 까닭인지 아직 그냥 내버려 두래서 그냥 둔다. 하지만 일간 결말이 나겠지.”
인준이는 당원은 아니었다.
“그럼 인준이는 무슨 사람입니까?”
“알 수 없다. 지금 상해 본부에서 조사중이니깐 일간 통지가 오겠지. 오는대로 그 사람의 생명도 결정될 게다─ 그런 말은 둘째 두고 우리 일을 의논해야지 않느냐?”
“….”
찬두는 대답치 못했다 , 자기의 마음을 작정치 못한 이상 대답할 수가 없다.
한참 침묵이 또 계속되었다. 그 후에 이번은 찬두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어머님─ 늙으신 어머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춘이의 눈이 번득였다. 좀 후에야 대답하였다─.
“가련한 어머님─ 외로운 어머님─ 네가 위로해 드려야 한다.”
“이 집에 불행이 이르면 그 어머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실지 생각해 본 일이 있읍니까?”
“생각해 보았다. 의논도 해보았다. 어머님의 승낙도 들었다.”
“승낙? 쾌락이오니까?”
이 질문에 소춘이는 잠시 주저한 후에야 대답하였다─.
“쾌락이야 아니지. 할 수 없는 승낙이지.”
또 말이 끊어졌다. 이 침묵 후에 또 다시 먼저 입을 연 것이 찬두였다.
“형님.”
“형님이라 부르지 마라. 나는 너한테 너라 하지만 네게서 형님 소리가 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소춘의 마음에도 아직 인정의 씨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찬두는 이 아직 좀 남아 있는 인정에 매달려 보려 하였다.
“형님, 아무리 형님이라 부르지 않아도 형님이올시다. 모계(母系)로 당연한 형님이올시다.”
“마음대로 불러라.”
“네, 형님, 형님께 단 한 분의 어머님 되는 분을 생각해 주십쇼. 이 집에 불행이 이르면 제일 먼저 슬퍼할 이가 어머님이올시다.”
“….”
“형님 좀더 잘 생각해 보시고 형님께 단 한 분 되는 어머님의 마음은 아프게 하지 말아 주세요.”
모계(母系)의 동생에게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
고 당부를 받을 때에 소춘이도 난처한 모양이었다. 소춘이는 한참을 생각하였다. 그런 후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이봐라, 네 말도 네 정리로는 당연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연을 안이래 이십오 년간을 벼르고 또 벼른 일이다. 어머님인들 얼마나 말렸겠느냐. 그러나 어머님께도 거절한 일, 네게 어찌 승낙을 하겠느랴?”
“그것과는 문제가 다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자면 어머님도 형님께는 원수되는 분!”
“그렇지만 할 수 없다. 어머님과 네가 무사한 것만 다행히 여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겠지.”
또 침묵…
또 찬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
“벌써 팔순이 넘으신 아버님 그….”
소춘이가 손을 붙이지 않아도 여명이 길지 못하다 하는 뜻이었다.
소춘이는 알아들었다.
“그러기에 천명이 다하기 전에 손수 내 손으로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다.”
“그럼 알았읍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비상히 똑똑한 어조로 찬두는 소춘에게 말하였다─.
“형─ 소춘 씨는 어떤 일이 있든 간 내 아버님께 위해를 가하시겠단 말씀이지요? 그리고 그 연유는 소춘 씨의 아버님이 집 아버님께 해를 보셨다는데 있지요? 어머니라는 하는 문제와 어머니를 같이 한 동생이라 하는 문제는 생각치 않고 오로지 돌아가신 아버님의 원수만 갚으시겠단 말씀이지요?
소춘이도 눈을 딱 바로 뜨고 찬두를 보았다.
“오해는 말아라. 어머님을 무시하면 내가 이 집안을 지금─.”
말하려는 것을 찬두가 가로 앗았다.
“보호하신단 말씀 그런 말씀은 집어치세요. 요건은 만약 소춘 씨가 내 아버님께 위해를 가한다 하면 나 역시 아들 된 도리로서 소춘 씨를 원수로 보지 않을 수 없읍니다. 내 아버님의 위에 내리려는 위해를 항거할 도리를 강구치 않을 수가 없읍니다. 여기 이─.”
찬두는 초인종을 가리켰다.
“이 초인종의 전선이 끊기지 않은 것은 아까 시험해 봤읍니다. 세 번 누르면 비상 경보, 경관이 이 방으로 달려오기로 약속이 됐읍니다. 소춘씨나 나와의 거리가 다섯 걸음─ 권총으로 나를 쏜다 할지라도 사오 초는 걸릴 것─ 경관을 부르리까?”
무론 부르려는 것이 아니었다. 부르려면 아까 불렀을 것이다. 단지 일개 위협 그러나 그 위협에 소춘이는 도로혀 웃었다─.
“아서라 나는 잡히지도 않으려니와 나만 없어지면 이 집은 잔멸한다. 한 사람의 희생자보다는 세 사람의 희생자가 더 크지 않으냐? 너도 내 형을 콩밥을 먹이고 싶지는 않을 테지. 어머님이 만날 우시는 그 모양도 보기 어려울 테지. 아예 초인종을 누를 생각을 말아라. 효과도 없는 일이려니와 효과가 있더라도 피차에 불리한 일이 생길 뿐이다.”
어찌하여얄지 알 수가 없었다. 경관에게 잡히지 않는다고 장담을 하는 그 연유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불행히 소춘이가 잡히면 오히려 잡히기 전보다 더 큰 불행이 이 집에 내릴 것은 짐작을 할 수가 있었다.
한 번 위협을 하여보아서 그것이 아무 효과도 없을 때에 찬두는 그 위협을 걷어치웠다.
위협은 비록 걷어치웠으나 위협 대신으로 타협할 만한 조건이 생겨나지를 않았다. 위협을 걷어치운 찬두는 머리를 푹 가슴에 묻어 버렸다. 여러가지의 조건이 소춘이와 찬두 새에 왕복되었다. 그러나 드디어 타협은 되지 않았다. 타협점을 잃은 뒤에 찬두는 드디어 소춘이에게 사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인준이라 하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 수 없으되 그 인물이 아까 낮에
“수삼 일 안으로 LC당 경성 임시 근거지를 찾아 내겠다.”
고 장담을 하고 겸하여
“LC당의 간부에게 공채만 내어주면 모두 상해로 돌아가 버릴 것이니까 LC당원이 상해로 돌아가면 김소춘이라는 개인은 무력한 것이며 김소춘이란 개인이 무력케 되면 윤 백작 댁에 내리려는 개인적 복수는 자연이 소멸되리라.”
던 말이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서인준이를 만나서 의논을 하고 그 뒤에 자기의 태도를 작정할 심산으로 김소춘과의 흥정은 임시 피하기로 작정하였다.
며칠 더 생각해 본 뒤에 명확한 대답을 하마. 그 대신 그 며칠 간은 이 집안에 LC당의 폭력적 최후 수단이 내리지 않도록 알선하여 달라고 당부를 한 뒤에 김소춘을 보냈다.
김소춘을 보낼 때에 찬두는 순전히 경관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마치 친한 친구를 보내듯 몸소 현관까지 나갔다.
찬두와 작별을 하고 나온 소춘이는 궐련을 붙여 들고 경관의 틈을 유유히 윤 백작 집 대문 밖까지 나왔다. 그런 뒤에 담뱃불이 꺼지지도 않았는데 다시 성냥을 그어서 담배에 잠깐 대었다가 그 성냥을 끄는 듯이 세 번을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린 뒤에 동쪽 길로 향하여 유유히 걸어갔다. 소춘이는 좀 가다가 돌아보았다. 아까 성냥으로 암호를 하였을 때 당연히 제사급의 당원이 자기를 보호키 위해서 멀리 밟아올 것을 예기하고… 그러나 돌아보아도 아무도 뒤를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소춘이는 머리를 기울이고 의아히 생각하여 머리를 기웃거리며 담배를 또 붙이는 체하며 잠시 더 머뭇거렸다. 그러나 길 모퉁이에서 나와야 할 제사급의 당원은 그래도 나타나지 않는다.
“?”
너무 오래 서 있으면 윤 백작 집 문에 서 있는 경관에게 의심을 살 것 같아서 천천히 앞으로 걷기는 걷지만 불만이랄까 소춘이의 마음은 편치 못하였다.
경관에게 붙들릴 까닭도 없거니와 붙들렸다 하면 백작 집에서도 수근수근 그런 소리가 안 들릴 까닭이 없다.
만약 경관에게 붙들리지도 않고 소춘 자기가 지휘한 곳에서 기다리지도 않았다 하면 이것은 고급 당원의 명령에 배반한 것이다.
LC당에서는 고급 당원의 명령에 배반하는 것을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 그러므로 배반하는 일이 절대로 없다. 그러니만치 소춘이의 마음은 불쾌와 불안에 싸였다. 이 일 때문에 불쾌하여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어두운 길을 자기의 숙소로 향하여 더벅더벅 갈 때에 웬 사람이 소춘이와 마주 오다가 딱 마주 서게 되자 모자를 벗으며 소춘이에게 인사를 한다.
LC당원 이외에 조선서 소춘이를 알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 LC당원이라 하면 만날지라도 아는 체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이런 어두운 길에서 서로 아는 사람일지라도 알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자기에게 향하여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는 사람에게 소춘이는 같이 대답 인사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그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김 선생이시지요?”
“성은 김가올시다만 하고많은 김가 중에 누구를 찾으십니까?”
“김소춘 씨 아니세요?”
가슴이 선뜩하였다. 소춘이의 오른 손은 번개같이 오른편 포켓(권총이 들어 있는)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사람의 행동이 소춘의 행동보다 빨랐다. 자기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소춘의 손목을 그 사람이 먼저 잡았다.
“소춘 씨 잠깐 기다리세요. 경성 시내에서 권총을 사용하는 것 위험합니다. 더구나 윤 백작 댁을 경계하는 경관들이 이 근처에도 꽤 많이 있으니까….”
천병만마지간을 다 돌아먹은 소춘이었지만 이 알지 못할 사람에게는 간담이 서늘하였다. 그 사람은 소춘의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는 경관이 아니외다. 안심하십쇼. 경관은 김소춘 씨를 알지도 못합니다. 무론 체포하는게 아니외다.”
“그럼 당신은 누구시오.”
겨우 소춘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었다.
“나요? 위험한 사람이 아니외다. 김 선생을 기다리던 제사급 LC당원을 아까 유인해다가 서소문정까지 데려다 떼 버리고 이번은 소춘 씨를 만나러 돌아오던 길이외다.”
제사급 당원이 없어진 까닭을 알았다. 이 자가 소춘이 대신으로 성냥불로 속여 가지고 어떤 곳까지 데리고 가서 거기서 몸을 피해서 이리로 온 모양이었다.
그러면 이 마주 서 있는 괴한은 오늘 소춘이가 윤찬두를 방문하는 일만 알았을 뿐더러 소춘이가 윤찬두를 방문하면 제사급의 당원이 멀리서 보호를 하며, 나올 때는 나오는 것을 제사급 당원에게 알리는 암호까지 아는 모양이었다.
당원 이외에는 알 사람이 없는 이런 비밀을 이 괴한은 어떻게 아나? 소춘이의 마음에는 이 괴한에게 대한 공포심이 차차 일어났다.
“당신의 이름은?”
“내 이름은 말씀드려도 모르리다.”
“누구의 명령으로?”
“…….”
“누구의 지휘로?”
“좌우간 나하고 잠깐 같이 가십시다. 가시면 자연히 알아지겠지요.”
같이 가? 무서웠다. 경관은 아니라 하되─ 그리고 경관쯤은 무서워할 바가 아니로되 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괴한은 소춘이에게는 무서웠다.
소춘이는 눈빨리 사면을 살펴보았다. 통행인이 그다지 없는 쓸쓸한 길이었다. 완력에도 상당한 자신이 있는 소춘이거니 도망치려면 도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눈치를 괴한이 먼저 알았다─.
“그런 생각은 마십쇼. 당신의 속력이 탄환의 속력보다 빠를 것이 아니고 그 근처 목목이 사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괴한은 증거를 보라는 듯이 회중전등으로 한 번 둥그러미를 그렸다. 그러매 길 이편 저편 모퉁이서마다 사람이 얼른 그림자를 보이고 도로 숨는다.
“보세요. 피하려야 피할 길 없소이다. 게다가 나하고 같이 갈지라도 결코 무슨 위험이 있든가 하지는 않습니다. 잠깐 수고를 아끼지 마시고 같이 가시는 편이 가장 좋을걸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괴한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수 없으나 좌우간 이만치 자기네들의 일에 관해서 깊이 아는 것을 보면 인제는 피할 길이 없을 듯싶었다. 그 위에 결코 위험은 없으리라고 담보까지 하는 이상에는 따라갈 밖에는 별 수가 없다.
“그럼 잠깐 같이 갑시다. 한 시간만 시간을 낼 테니.”
소춘의 입에서 드디어 이런 말이 나왔다.
그 괴한이 대답하였다─.
“한 시간이 될지 두 시간이 될지 그건 미리 말씀 마세요. 당신의 태도로써 십 분간으로 끝날지도 모르고 혹은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전연 당신나름이니까.”
그런 뒤에 괴한은 특별히 소춘이를 감시하지도 않고 자기의 갈 곳으로 걸었다. 소춘이는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비록 직접적 감시는 없을지라도 자기를 유괴함에 있어서 용의주도한 방법을 취했으매 간접적으로는 피할 수 없을 정도의 감시가 붙었을 줄을 예기한 소춘이는 아무 말도 없이 알지 못할 사람을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도 몰랐다.
무얼 하러 가는지도 몰랐다. 단지 일종의 무언의 위협으로 오라니 따라갈 뿐이었다. 따라가면서도 여러가지로 생각하여 보았다. 자기로 말하더라도 한 개의 부랑자거나 혹은 주정꾼 싸움꾼 등등으로 각곳 경찰에서 잠을 잔 일은 많다. 그러나 자기가 LC당원인 줄은 탄로된 일이 없을 뿐더러 더구나 LC당의 제이급의 당원이라는 것은 탄로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자기의 본적의 전부를 다 아는 이 괴한은 어떤 인물인가. 묵묵히 괴한의 뒤를 따라는 가면서도 공포심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 따라가다가 소춘이는 불러 보았다.
“여보, 여보.”
괴한이 돌아보았다.
“남 듣기도 숭하게 여보 여보 부르지 마오. 안 서방이라 부르오.”
“안 서방.”
“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는 아까도 대답 안했으니 다시 안 물으리다만 거리(距里)로는 얼마나 더 가면 되오?”
“다 왔소이다.”
“다 왔다니 지금껏 오니만치만 가면 되겠소?”
“오니만치가 뭐요? 곧 이 눈앞인데….”
그 새 오는 동안에 파출소 앞도 지나왔으며 사람 무리 앞도 지나왔지만 소춘이는 구원을 청하지도 않았고 안 서방이라는 사람도 그런 줄 짐작함인지 안심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그들은 드디어 목적지까지 갔다. 안 서방이 먼저 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외다.”
소춘이도 섰다. 설 때에 먼저 눈에 띈 것은 사람 한 개의 키만한 커다란 간판이었다. 그 간판에는
‘피아노 개인교수 서인준.’
이라 씌어 있었다.
소춘이는 뜨끔하였다. 자기를 여기까지 끌어온 사람은 서인준이었다.
“서인준 씨가 나를 만나잡니까?”
소춘이는 안 서방에게 물었다.
“네….”
“무슨 일로?”
“그건 모릅니다.”
“이 김소춘이를 만나잡디까!”
“네 옛날 공주 기생 계월 노부인의 맏아들 김소춘 씨─ 봉덕 김 영찰의 유복자 김소춘 씨를….”
“이 안에 서인준 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소?”
“아마 오셨을 것입니다.”
“그럼 들어갑시다.”
들어가 보매 보통 조선 집이었다. 보통 조선 집에 음악 교수에 편하도록 조금 개량을 했을 뿐이었다.
안 서방은 대문 안에 들어서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안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 공이오?”
하고 묻는 소리도 들렸다. 안이 대답하였다─.
“네…….”
“김소춘 씨를 모시고 오시오?”
“네 모시고 옵니다.”
“어서 들어오시오.”
안 서방의 안내로써 안방에 들어가 보매 안방에서 소춘이를 맞는 사람─ 그것은 일찌기 LC당의 방해자로서 알아 오는 서인준에 틀림이 없었다.
인준 박사는 빙긋이 웃으면서 소춘이를 맞았다─.
“일부러 이런 더러운 곳까지 오시게 해서 미안키 짝이 없읍니다.”
“괜찮습니다.”
소춘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