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10
10
편집“누구시오.”
전화를 받는 인준이의 음성은 잠을 억지로 깨였기 때문에 다분의 불만이 섞이어 있었다.
“서 선생님이세요.”
수화기를 통하여 들리는 유창한 영어─ 그것은 틀림이 없는 미스 영의 목소리였다.
짐작컨대 세시 반은 넉넉히 지났을 깊은 밤─ 무슨 급한 일이 있길래 미스영에게서 전화가 왔나?
“미세스 매켄지세요?”
“네 선생님.”
“무슨 일이 계십니까?”
“선생님, 옷을 입고 산보를 나오세요. 기다립니다.”
산보? 이 밤중에 산보는 무슨 산본가?
“미세스 매켄지, 지금 퍽이나 곤합니다. 어제도 무슨 일로 한잠도 못자고 오늘도 인제야 겨우 잠이 들었읍니다. 미안합니다마는 산보쯤은 다른 날로 미루었으면….”
그러나 수화기를 통하여 미스 영은 서인준의 말을 막았다.
“서 선생님. 남자가 레디에게 산보를 청할 때는 레디는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레디 측에서 신사에게 요구할 때는 그걸 거절하시는 것은 실례올시다.”
무론 면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 영의 표정을 알 수가 없지만 마음이 조급히 인준이를 데려 내려는 것만은 분명하였다.
“서 선생님 꼭 나오세요. 기다립니다.”
“미세스 매켄지는 어디 계십니까?”
“인제 만나서 알으켜 드리지요. 급히 옷을 입고 나오세요. 오 분 이내로 택시를 가지고 선생님 계신 아파트로 갑니다.”
“…….”
“네? 꼭 나오시지요.”
“엄명이니 할 수 없읍니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인준이는 도로 침실로 돌아와서 물양치를 하고 타월을 적시어서 얼굴에 기름때를 씻은 뒤에 옷을 갈아입었다.
미스 영의 음성으로 보아서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밤중의 산보를 하는 것부터가 심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무슨 곡절이 필시 있을 것이다.
내외 싸움을 하고 홧김에 뛰쳐나오는 것인가?
혹은 조선에 온 매켄지 대좌가 호기심상 기생 걸에게 놀러라도 갔으므로 그 품갚음으로 이렇듯 자기를 불러 내어 같이 산보를 하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다른 곡절이 있나?
미스 영이라는 여자에게 대하여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서인준이는 단잠을 깬 것은 역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다지 싫거나 귀찮지도 않았다.
양치를 하고 얼굴을 문지르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오 분은 벌써 지났다. 그때 미스 영이 타고 온 택시가 벌써 아파트의 앞에 온 모양이었다.
“부─.”
하는 싸이렌 소리가 들려 왔다.
인준이는 급히 모자를 쓰고 어지러이 널린 방 안을 대충 정리하고 제 방을 나와서 방문을 잠근 뒤에 아파트를 나왔다.
아파트의 아래는 벌써 택시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준이가 빠른 걸음으로 택시로 가매 택시의 문이 안에서 열렸다. 미스 영의 흰 얼굴이 보였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자 어서 타시지요.”
한 초가 바쁘다는 듯이 채근하는 바람에 인준이는 택시에 뛰어올랐다.
어디로 가라는지 미리 미스 영이 말하여 두었던 모양이었다. 인준이가 올라타자 운전수는 어디로 가자는지 묻지도 않고 아파트 앞을 떠났다.
이리하여 인준이와 미스 영의 기이한 산보는 시작되었다.
“미세스 매켄지.”
아스팔트를 깐 길을 미끄러지듯이 닫는 택시 안에서 인준이는 미스 영을 불렀다.
“선생님, 저를 미스 영으로 불러 주세요. 무론 미세스 매켄지에는 틀림이 없으나 미스라 불리고 싶습니다.”
“미스 영, 웬일이십니까?”
미스 영은 얼굴을 돌이켜서 한순간 인준이를 바라본 뒤에 도로 얼굴을 앞으로 하였다.
“선생님, 묻지 말아 주세요….”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
“미스 영.”
“네?”
“나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읍니다. 혹은 미스터 매켄지와 다투셨읍니까.”
미스 영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이는 저하고 다투지 않습니다.”
“미스터 매켄지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집에.”
“댁이란 ×× 정 ×× 씨 댁 말씀이에요?”
잠시 경악의 표정이 미스 영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어떻게 아세요?”
“어떻게든 알았읍니다. 지금 거기 계십니까?”
“네….”
“그럼 미스 영은?”
남편이 집에 있는데 왜 나왔느냐는 뜻이었다.
영은 대답치 않았다. 고민하는 듯이 양손을 마주 꽉 잡고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미스 영.”
“네?”
“웬일이세요.”
택시는 남대문 가도를 지나고 용산 가도를 지나 한강 철교로 어느덧 넘어섰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읍니다.”
향기로운 감촉 그러나 그런 감촉에 즐기고 있을 수가 없을 만치 인준의 마음은 의혹으로 찼다.
“우리는 대체 지금 어디로 갑니까?”
“선생님.”
미스 영은 다시 얼굴을 인준이게로 돌렸다. 고민하는 듯한 눈으로 인준이를 쳐다보았다.
“어젯밤도 못 주무셌지요. 오늘 밤도 아직 못 주무셌지요. 운전수에게 명했읍니다. 천천히 운전하라고. 선생님 한잠을 주무세요. 쉬셔야 합니다. 무론 묻고 싶으신 일이 많으실 줄 압니다. 잠깐 쉬시고 물어 주세요.”
“미스 영.”
“?”
“영문을 도무지 알 수 없읍니다.”
“장차 알 날이 있겠지요.”
미스 영의 말과 같이 자동차는 마치 수구루마의 속력과 같이 천천히 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의 동리는 벌써 지나고 좌우편으로는 푸르른 보름 달빛 아래 논과 밭만 널려 있었다.
“장차? 알 것을 오늘 알 수 없읍니까.”
“선생님 묻지 말아 주셔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일 같으면 왜 대답치를 않겠읍니까? 다른 생각 다 내버리고 이 택시를 선생님 침대로 여기시고 잠깐 쉬세요. 피곤하신 몸을 제게 기대세요.
알 수 없는 풀 수 없는 기괴한 일을 당한 인준이는 그만 질문을 중지하였다. 질문할지라도 결코 대답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았으므로….
“그러면 넉넉히 잠을 한잠 잘 수 있을이만치 우리 산보는 오래 계속되겠읍니까?”
“선생님이 스스로 깨시기까지는 목적지에 다 가도 결코 깨우지 않겠읍니다. 마음 놓으시고 주무세요.”
“그럼 잠깐 자 보겠읍니다. 미스 영도 한잠을 자시지요….”
“네 저도 자지기만 하면 자겠읍니다.”
인준이는 하릴없이 잠을 자려고 피곤한 몸을 쿠션에 깊이 묻었다.
몸이 극도로 피곤하였던 인준이는 여러가지의 어지러운 문제를 머리에 품고는 자동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인준이가 곤한 잠에서 깨인 때는 시간으로는 일곱시가 지난 때며 자동차는 어떤 시가지를 고요히 닫고 있다.
그 새 잤는지 안 잤는지 미스 영은 그냥 앞으로 향하고 고민하는 듯이 양 손만 힘있게 마주 잡고 있다가 인준이가 눈을 뜨는 바람에 얼굴을 인준이에게로 돌렸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미스 영도 좀 주무셨어요.”
“네.”
대답은 하지만 거짓말인 듯싶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인천이올시다.”
“인천? 무얼 하러 인천까지 왔읍니까?”
“산보지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미스 영.”
“네?”
“이 산보의 연유를 그냥 수수께끼로 남겨 둘까요?”
“그러세요.”
“산보는 어느 때나 끝이 납니까?”
“선생님 마음대로… 인제라도 도로 경성으로 돌아가셔도 좋고 인천 구경이라도 해도 좋고.”
더욱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 까닭도 일도 없이 경성서 인천까지 왔다가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미스 영은 인천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었읍니까?”
“없었읍니다.”
“그럼 경성으로 돌아가시지요.”
“네.”
영은 운전수에게 명하여 도로 차를 경성으로 돌렸다.
“미스 영.”
“네?”
인준이는 입을 머뭇거렸다. 좀 머뭇거린 뒤에야 말하였다─.
“미스 영에게 관해서 그 새 좀 조사해 본 바가 있었읍니다.”
“네….”
모기 소리와 같은 대답….
“미스 영은 국적(國籍)이 없으시다지요?”
“….”
“네?”
“네.”
역시 모기 소리와 같은 대답….
“미스 영, 알으켜 주세요. 왜 그런지 퍽 미스 영에게 관심이 됩니다. 그런데 더우기 오늘 일을 당하고 보니 마음이 더 괴롭습니다. 알으켜 주세요.”
역시 대답이 없었다. 고민하는 듯한 탄식성이 나올 뿐이었다.
한참 뒤에 영이 스스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네?”
“모든 일을 다 불문(不問)에 붙여 주세요. 그리고 저를 믿어 주세요. 국적은 없다 하나 조선 사람의 자식임은 틀림이 없읍니다. 선생님께 결코 악의를 안 가진 사람이라는 점도 믿어 주세요. 그 이상은 당분간 더 말씀할 자유가 없읍니다.”
“미스터 매켄지도 대좌라 하나 군적에 이름이 없읍니다.”
“….”
“모두 다 그저 의문에 붙여 두랍니까?”
“그러세요.”
“언제 해결될 날이 오겠읍니까?”
“….”
“네?”
“그건 저도 모르겠읍니다.”
닫는 자동차 안에서 반향 없는 질문만 몇 번 던져 본 인준이는 그만 질문을 중지하였다.
미스 영은 분명히 무엇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 고민이 인준이의 마음에 더 걸렸다.
─ 알 수 없는 여인 미스 영─ 기괴한 하룻밤의 자동차 산보.
몇 가지의 질문과 응답이 있은 뒤에는 두 사람은 잠잠하여 버렸다.
이른 아침의 안개 낀 길을 자동차는 경성을 향하여 속력을 다하여 닫는다. 서로 먹은 마음을 감추고 서울의 문인 노량진까지 이르렀다. 이때야 비로소 영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네?”
“선생님, 저를 믿으시겠어요?”
믿겠노라 대답은 하고 싶었다.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여인, 생전에 처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움직이어 놓은 이 여인─ 믿겠소이다고 하고는 싶었다.
그러나 너무도 기괴한 행동이 많으며 그 과거가 너무도 기이한 여인이라 믿겠노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선생님. 선생님 마음은 압니다. 제 행한 일이 너무도 기괴한 일이 많습니다. 제 과거도 너무도 기괴합니다. 다 선생님께서 믿으시겠다고 단언을 못하시는 뜻을 짐작합니다. 그러나 믿으세요. 저는 결코 선생님께 불리한 일을 한 일도 없고 장래에도 그렇겠읍니다. 이제 제가 한 마디 선생님께 당부하는 일을 꼭 믿으시고 시행하시겠다고 대답해 주세요.”
“어떤 일이오니까?”
“대답부터 먼저 해주세요.”
이 기괴한 여인이 당부를 하려는지 예측을 할 수가 없는지라 인준이는 그냥 주저하였다.
미스 영의 손이 덜컥 인준이의 손 위에 내려덮었다.
“선생님, 선생님 믿어 주세요.”
“….”
“한 마디 당부하는 일을 믿고 시행하시겠다고 대답해 주세요.”
손의 압력이 차차 가하여졌다.
인준이는 잠시 뒤에야 대답하였다.
“네. 믿고 당부하시는 일을 시행하리다.”
“꼭요?”
“네 어김없이….”
“선생님. 이 뒤에 결코 혼자 주무시지 마세요. 선생님 주무실 동안 선생님 동지 되시는 이 몇 분이 반드시 선생님 곁에 있도록 하세요. 그리고 며칠 주무시는 장소를 변경하세요. 당부올시다. 그 이유는 묻지 마세요.”
인준이는 경악의 눈을 미스 영에게 던졌다.
동지가 무엇이며 혼자 자지 말라는 것이 무엇인가? 미스 영의 말로서는 너무도 기이한 말이었다.
“미스 영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동지란─.”
“선생님, 저는 다 알아요 선생님께 관해서는 저는 꽤 깊이 압니다. 꼭 제 말씀을 믿고 지켜 주세요. 이유도 묻지 마시고 그저 믿어 주세요.”
여전히 고민하는 표정으로 자기를 보는 미스 영.
인준이는 대답치를 못하였다. 하고 싶은 말─ 불끈 입으로 나오려는 말을 모두 삼켜 버리고 힘있게 눈을 감았다.
인준이의 얼굴에도 차차 고민의 표정이 나기 시작하였다.
용산까지 들어와서 미스 영은 다른 택시를 하나 불러서 거기 인준이를 타게 하고 서로 헤어졌다.
“선생님, 제 말씀은 꼭 믿고 시행하세요. 부탁이올시다. 안녕히 가세요.”
이 작별인사에 인준이는 대답도 못하고 미스 영이 자기를 위하여 불러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운전수에게 대하여 몽롱히 ×× 동 피아노 강습소까지 가기를 명할 뿐 몹시 술에 취한 사람 모양으로 중심도 잘 잡지를 못하여 택시 위의 인준이는 좌우로 연방 쓰러졌다.
그의 마음은 너무도 놀랐다. 무서웠다. 치가 떨렸다.
“아─ 아.”
소리까지 내어서 연하여 탄식을 하였다.
강습소 앞에까지 와서 운전수에게서
“다 왔읍니다.”
고 주의를 받고야 비로소 펄덕 정신을 차리고 택시에서 내려서 강습소로 들어갔다.
강습소로 들어가매 안 군이 황망히 인준이를 맞았다.
“선생님 어젯밤 어디 가셨읍니까?”
“무엇보다도 수건을 좀 찬물에 적시어다 주시오.”
당원이 적시어다 주는 찬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인준이는 안 군을 불렀다.
“이야기하시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이지요. 선생님께서 ×× × 군에게 LC당 제사급 당원을 놓아 주고 가는 곳을 알아 오라고 하시지 않았읍니까? 그자의 있는 곳은 알았읍니다. ×× 동 어떤 조그만 여인숙에 묵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알아 가지고 곧 선생님께 알려 드리려고 아파트로 갔더니.”
안 군은 거기서 기괴한 일을 당하였다.
인준의 방 행길로 향한 들창이 열려 있었다. 그래서 혹은 아직 서 박사가 안 주무시나 하고 그리로 들여다보려는데 그 들창으로 웬 괴한이 기어 나왔다.
들창에서 내려뛰어서 한 번 사면을 살핀 뒤에 저편으로 도망치는 괴한은 틀림이 없는 김소춘이었다.
안 군은 가슴이 서늘하였다. 김소춘이의 뒤를 밟아 보아야 될 것도 같지만 무엇보다도 서 박사의 안위가 근심되어 그 들창을 넘어뛰어 들어가 보매 방은 비었으며 자리옷이 있고 외출의(外出依)가 없는 것을 보매 서박사는 어디 나간 것을 짐작하겠다.
김소춘이가 밤중(그것도 다른 날도 아니요 자기가 서 박사에게 잡혀서 본 적이 탄로된)에 서 박사의 방을 침입하였다는 것은 그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요행 서 박사는 어디 외출하였으므로 소춘이의 흉수를 면한 것이었다.
안 군은 거기서 나와서 행길에 숨어서서 밤새도록 서 박사의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날이 밝은 뒤에야 이 강습소로 왔다 하는 것이었다.
인준이는 그 말을 다 들었다. 듣고도
“밤새도록 수고했소이다. 나는 어디 일이 있어서 다녀왔는데 나 없는 틈에 그런 일이 생겼을 줄은 참 뜻밖이외다.”
할 뿐 진상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젯밤에도 잠을 잘 못 자서 한잠 자야겠는데 안 공과 몇몇 사람이 꼭 내 곁에 있어서 잠시도 떠나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당부를 하였다.
괴롭고 가슴 아픈 문제.
─ 무엇보다도 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한잠을 잘 자고 머리를 깨끗이 해야겠다. 인준이의 명에 의지해서 당원 세 사람을 더 데리고 들어온 때에 인준이는 곤함 몸을 눕히면서 다시 한 가지의 일을 명하였다.
서인준 자기의 명의로 편지를 써 가지고 ×× 경찰서로 가서 이필호 형사를 만나서 완쇠를 죽인 송곳을 반환하고 어젯밤 석방한 LC당 제사급 당원의 잠익소를 알으켜 체포케 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당부하고 인준이는 한잠 자 보려고 눕기는 하였지만 머리에 너무도 어지러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라 좀체 잠이 들지 못하였다.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며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며 한참을 애를 쓰다가 마지막에는 최면제를 꺼내어 먹은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안 군과 그의 당원 세 사람은 이 지휘자의 몸을 고요히 지키고 있었다. 피아노 강습소라 하나 피아노 소리 한 번도 울리어 보지 않고 대청에 놓인 피아노는 피아노 대로 방 안의 당원들은 당원 대로 고요히 이 지휘자의 안면을 깨뜨리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인준이는 그의 피곤을 넉넉히 다 삭힐이만치 평안히 잠을 잤다.
거의 저녁때가 되어서야 인준이는 잠에서 깨었다.
“미안하외다. 좀 사정이 있어서… 그 새 누구 온 사람은 없었읍니까?”
“없읍니다.”
“이 형사에게는?”
“하라시는 대로 했읍니다.”
“그럼 내가 매우 시장한데 먹을 무얼 좀 준비해 주시오. 그리고 나가서 피아노 장난들이나 하시오. 나는 좀 혼자서 생각을 할 일이 있소이다.”
그리고 당원들이 나가려 할 때에 인준이는 다시 어젯밤 여기서부터 김소춘이를 미행했던 사람을 찾았다.
“김소춘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 정이라지요?”
“네.”
“×× 씨 댁 근처구료.”
“네.”
“알겠소이다. 인젠 나가시오.”
너무도 명백한 일이었다. 인제는 다 알았다.
미스 영이 LC당의 간부의 한 사람이었다. 매켄지도 역시 간부의 한 사람이었다.
아직껏 늘 서인준 자기에 협박장을 보내면서도 위해는 가하지 않은 것은 미스 영의 호의였다. 미스 영은 분명히 자기에게 호의를 가졌다.
그러나 호의를 쓰는 것도 정도 문제이다.
서인준이는 김소춘 사건의 이면을 너무도 똑똑히 알았다. 뿐더러 LC당에 관해서도 너무 똑똑히 알았다. 이제 그냥 유예미결하다가는 LC당의 존재가 위태롭게 되었다.
우의(友誼)라는 핑계로써 아직껏 서인준이를 보호하여 오던 미스 영이로되 당의 사활 문제에까지 들어서는 더 보호할 방략이 없었다.
어젯밤 이 집에서 놓여 나간 김소춘이는 즉시로 ×× 정 매켄지 씨를 찾아서 자기의 당한 일을 보고하였을 것이다.
아직껏은 안해의 친구로서 생명까지는 용서하여 주던 매켄지 씨나 인제 자기 당의 사활 문제에 들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김소춘이에게 서인준 암살을 명하였을 것이다.
미스 영의 처지로 보면 무론 반대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제는 막을 만한 핑계도 없게 되었을 것이다.
하룻밤의 의미 없는 자동차 여행─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의미 없는 여행이 아니었다. 김소춘이의 흉수에 암살을 이미 당할 서인준이를 미스 영으로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이었다.
“묻지 말아 주세요. 대답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께 결코 악의를 품은 사람은 아니올시다. 그 점만은 믿어 주세요.”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자기를 보며 이렇게 호소하던 미스 영─.
혼자서 주무시지 마세요. 매일 밤 주무시는 장소를 바꾸세요─ 이렇게 주의하여 주던 미스 영─.
인준이는 눈을 감고 생각하였다. 감은 눈틈에서는 눈물이 흐르려 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미스 영이 LC당에 입당을 하였는지 이것은 알 수 없다. 미스 영의 성격은 결코 잔폭하지 않다. 그런 미스 영이 왜 LC당 같은 폭력단에 들었는지 이것은 서서히 연구할 문제로되 거기서 그런 환경에서 제 위험을 무릅쓰고 인준이 자기를 보호해 주던 그 호의는 눈물날만치 감사하였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다가 그것이 발각되는 날이면 그의 생명도 위태롭거늘 그것까지 무릅쓰고 자기를 보호해 준 그 호의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젯밤 한밤의 외출에 대해서 미스 영은 제 남편에게 어떤 변명을 하려는가. 그 변명이 시원치 못했다가는 미스 영의 생명도 매우 위태할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에 인준이는 무엇보다도 미스 영의 안부를 알아볼 의무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준이는 이전 미스 영이 자기게 가르쳐 준 전화 번호를 적은 수첩을 꺼내어 그것을 베껴서 당원 한 사람을 불러서 미스 영에게 전화를 걸게 하였다.
직접 미스 영을 전화로 불러 내어서 서인준의 대리라는 것을 알게 하고 위험의 유무를 말 눈치로 알아보라는 명이었다.
자기의 취할 플랜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미스 영이 LC당의 간부급의 한 사람으로 인정되는 지금에 있어서는 LC당원 전부를 경찰에 넘긴다는 것은 좀 생각할 문제였다.
자기를 지금껏 보호해 준 그 은의는 둘째로 두고라도 인준 개인의 정의로라도 미스 영뿐은 모면시키고 싶었다.
미스 영은 모면시키고 그 외의 당원은 경찰에 체포되게 하고 또한 LC당에서 훔칠 공채를 살짝 자기의 손으로 다시 훔쳐 낼 묘책을 다시 강구치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LC당의 서울 임시 본거는 이제는 알았다. 경찰에 그 본거를 전화만 할 것 같으면 LC당의 간부급은 십중팔구는 체포가 될 것이다.
거기서 미스 영은 뽑아 내어야겠다.
이런 얽히고 설킨 문제를 인준이는 생각하였다.
조반 점심을 겸한 저녁에 들어왔다. 그 상을 받고 앉아서 장난삼아 먹으면서 인준이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식사가 끝난 뒤에 인준이는 당원 몇 사람을 불러서 지금 매켄지가 있는 집을 엄중히 감시하고, 겸하여 그 집에 출입하는 자가 있으면 모두 미행을 해서 거처를 알아오기를 명하였다.
자기의 취할 방략에 대해서는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편부터 행하여야 할지 연구하였다.
윤찬두를 방문하여 노백작의 생명과 국채와를 교환케 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먼저 할까?
미스 영을 만나서 모든 일을 물어 보는 것을 먼저 할까?
김소춘이와의 회견을 먼저 할까?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편을 먼저 행하여야 일이 가장 경편하게 될지, 여러가지로 연구하여 보았다.
좌우간 문제는 수삼 일 내로 급전직하로 전부가 해결될 가망이 섰다. 잘 연구하고 또 연구해서, 자기의 행할 일의 순서만 그릇되이 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생각한 끝에 인준이는 전보를 한 장 쳤다. 인천서 기다리고 있는 십칠호에게 지급 상경을 명하는 전보였다.
그리고 양 군을 불러서 인천으로 내려가서 배 한 척을 사서 모든 준비를 해두어, 언제든 떠나렬 때에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기를 명하였다.
그런 뒤에 자기는 외출의를 입고 강습소를 나섰다. 강습소를 나설 때에 안 군이 따라 나오면서,
“선생님, 어디 가세요?”
하며 물었다.
“아파트로─.”
“다녀서 이곳으로 다시 오세요?”
간부의 안위를 근심하는 당원의 마음이었다.
“아니, 거기서 자겠소.”
“선생님, 위험치 않으세요?”
“알고 가는 이상에야 나도 그 방비책쯤이야 생각했을 게 아니오? 아무 근심 마시오.”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오. 나도 생각하고 생각한 끝이니 걱정 말고 기다리시오. 내일 아침 오리다.”
무슨 자신이 있는 듯이 빙긋이 웃으면서 인준이는 안 군에게 이렇게 말하고 강습소를 나섰다.
강습소를 나선 인준이는 한두 군데 더 들를 곳을 들른 뒤에 아파트의 제 방으로 돌아왔다.
제 방으로 돌아온 인준이는 어젯밤 김소춘이가 다녀간 흔적을 자세히 검분한 뒤에 쿠션에 몸을 커다랗게 내어던졌다.
오늘 밤과 내일 이틀 동안에 인준이가 행하려는 일의 복선뿐은 전부 지어 놓아야겠다.
잠시 안락의자에서 몸을 쉰 인준이는 전화를 하러 나갔다.
전화로 불러 낸 것은 미스 영이었다.
“서인준이올시다.”
“네, 저올시다.”
약간 놀라는 소리였다.
“아까 어떤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전화를 걸었는데 받으셨지요?”
“고맙습니다.”
“지금 그 전화는 댁 어디 달렸읍니까?”
“네, 전용이올시다.”
“전화 근처에 사람이 있읍니까?”
“없읍니다. 보통 전화로 하는 말이 들릴 거리 안에는 사람이 없읍니다. 무슨 말씀을 물으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새벽 일이 너무 이상해서 혹은 미스터 매켄지에게 필요없는 의심이라도 사지 않았을까 해서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 외다.”
“염려 마세요. 오늘 새벽 그렇게 일찍 제가 외출한 것을 매켄지 씨는 모릅니다. 아침에 깨어서 드라이브를 하고 돌아온 줄만 믿습니다.”
무론 어떻게든 속일 만한 자신이 있기에 그런 일을 했을 것이다.
인준이는 다른 말을 물었다.
“매켄지 씨는 지금 계세요?”
“네!”
“잠깐 전화에 여쭐 수가 없을까요?”
“무슨─ 왜.”
영의 말이 조금 조급해졌다.
“아니 기차에서 사괸 친구인데 경성서는 아직 만나지도 못했기에 인사라도 할 양으로….”
“…….”
“네?”
“선생님.”
“걱정 마세요. 미스 영의 사정을 인제는 알았읍니다. 알았을 줄 미스 영도 짐작하시겠지요? 아는 이상 서인준이는 서툰 짓은 안할 겝니다.”
“매켄지 씨의 전용 전화는 ○국 ×× × 번과 ×× 번.”
“또 한가지 내일 오후 세시쯤 미스 영과 잠깐 만날 수가 있을까요?”
“어디서요?”
“장소는 그때 말씀드릴께요.”
“그러세요.”
“그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네. 아침에 제 당부를 잊지 마세요.”
이리하여 영과의 전화를 끊은 뒤에 이번에는 매켄지 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송화기를 통하여 나는 서인준이외다고 말을 할 때에 인준이는 그 뒤에 들릴 매켄지 씨의 음성으로 매켄지 씨의 심리를 짐작해 보려고 십분 주의하였다.
그러나 매켄지 씨의 음성은 별다르지 않았다. 단지 반가운 듯이─
“아 매켄지외다. 반갑습니다.”
할 뿐이었다.
“매켄지 대좌,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건 게 아니라 너무 적적하고 해서 걸어 보았읍니다. 전화 번호는 부인께 알았읍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대개 밤에는 내 아파트에 있읍니다. 전화는 △국 ×× ×× 번이외다. 틈 있으면 놀러와 주세요. 나도 한 번 놀러 가리다.”
“고맙소이다.”
이리하여 매켄지에도 전화를 끝을 내었다.
잠시 뒤에 인준이의 전명으로 인천서 급거히 상경한 십칠호가 아파트로 찾아왔다.
인준이는 십칠호와 몇 가지의 의론을 한 뒤에 그 아파트 인준 자기의 곁방(빈 방)에 십칠호를 숨어 있게 하였다.
시계를 보매 일곱시 사십분. 여덟시에는 이필호 형사를 이 아파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 시간을 기다리기 위하여 인준이는 즐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경계망은 그냥 풀지 않았지요?”
약속한 시간에 찾아온 이 형사에게 대하여 인준이는 이 말부터 물었다.
“네….”
“그래서 오늘 이 공을 좀 뵙자고 한 게외다. 김소춘이─ 김봉덕이 말씀이올시다. 그 김소춘이가 그저께도 새벽 두 시쯤 엄중한 경계망을 뚫고 그 댁에 들어가서 윤찬두 씨와 한 시간 나머지를 이야기를 했고 어제도 밤 열시에 정정당당히 정문으로 찬두 씨를 방문했소이다.”
필호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놀라운 소식이었다. 필호는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잠시는 말도 못하고 인준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아셨지요? LC당에 대해서는 조선 경찰은 너무도 무력하외다.”
“…….”
“어젯밤 윤찬두 씨와 회견을 하는 김소춘이를 내가 붙들어다가 어떤 장소에서 두어 시간 의론한 일이 있는데….”
“네? 김소춘이를 붙들었읍니까?”
“네, 붙들었다가 놓아 주었소이다.”
왜? 입으로 말하지 않고 필호는 눈으로 힐난하였다.
“이 공, 양해하십쇼. 놓아 주지 않을 수가 없었소이다. 자 내 말씀을 들으시오.”
인준이는 필호에게 향하여 지금의 소춘의 심경을 설명하여 주었다. 노 백작은 제 아비의 원수이매 반드시 갚으련다. 그러나 백작부인은 자기의 친어머니며 찬두는 같은 배에서 나온 동생이매 너무 잔혹한 일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노백작 댁에 감추여 있는 거대한 재물만 얻어내고 노백작에게만 복수를 하면 소춘이는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LC당 본부에서 일을 어서 끝내기 위하여 최후 수단을 쓰라고 강제를 한다. 최후 수단이란 당원 전부가 공공히 기관총을 가지고 윤 백작 댁에 몰려 들어가서 재물을 얻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춘이의 어머니인 백작부인이면 동생되는 찬두의 생명까지 위태롭다. 그래서 자기가 책임지고 뺏어 올 테니 잠시만 유예하여 달라고 간부에게 당부를 하고 소춘이는 찬두와 절충중이다.
“만약 소춘이를 경찰에 넘겼다가는 LC당과 경찰 간에 큰 활극이 생기겠기에 그만 놓았소이다.”
이것이 인준의 말이었다.
“그럼 선생님─.”
“그럼이 아니라 그러니 말씀이외다. 오늘 이 공을 청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와 이 공 사이에 큰 상의(商議)를 의론하고자….”
“무슨 상의오니까?”
“김소춘을 눈감아 두 시오. 어제 두 시간을 그 사람과 상의한 결과 윤 백작께 대한 복수의 염을 도로 철회할 것─ 그 대신 나는 경찰의 손에서 김소춘이를 보호할 것 이렇게 작정했소이다.”
필호는 눈을 저으기 들었다. 명료히 대답하였다.
“경관의 한 사람으로서 살인 범인을 그냥 버려 둘 수는 없읍니다.”
“교환 조건으로 LC당의 조선 들어온 간부와 당원 전부를 조선 경찰에 잡아줄 것─. 그래도?”
“네?”
“나는 붙들었소이다. 당 간부 및 당원 전부의 있는 곳을….”
“선생님 알으켜 주세요.”
“교환 조건은?”
필호는 대답치 못하였다. 지금 서인준의 힘으로 혹은 전세계에서 아직 잡아 본 일이 없는 LC당 간부를 잡게 될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교환 조건으로 지금 경찰에서 문제의 초심이 되어 있는 완쇠 살해 범인의 석방을 요구한다.
대답하기도 어렵고 싫다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필호는 머리를 수그리고 한참 잠자코 생각하였다.
“어떠시오?”
“…….”
“네?”
필호의 입에서는 그냥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인준이가 드디어 말하였다─.
“그럼 우리 상의는 거두어 치웁시다. 나는 LC당기 간섭하는 일에는 다시 참견을 중지할 수밖에 없소이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소춘이와 같은 살인 범인을 보호하시렵니까?”
“말말결에 그렇게 약속한 일─ 잘못된 약속이건 어떻건 사내로서 일단 약속한 바는 어길 수가 없소이다.”
“선생님께서 이 사건에 관계치 않으시면.”
“불일간 노백작은 참살을 당하겠지요. 경찰의 힘으로도 미리 막을 수 없는 수단으로.”
필호는 또 한참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저만 눈감으면 경찰 안에서도 완쇠 살해의 비밀을 해결하지 못할 겝니다. 제가 김소춘이를 선생님께 내드린다 하면 LC당원을 전부 체포할 방법을 강구해 주시겠읍니까?
“네!”
“언제까지?”
“만 사 일 이내로.”
“그럼 선생님, 완쇠 살해의 죄를 LC당 다른 당원에게라도 씌우지 않으면 경찰의 면목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선생님도 관계 안하시겠지요?”
“그건 마음대로 하시오.”
“그러면 교환하십시다.”
LC당이라는 거물을 잡는다는 미끼에는 필호도 드디어 결심하고 인준이의 조건을 승낙하였다.
“이 공.”
“?”
“또 한가지 있소이다.”
“또요? 또 무에오니까?”
불안한 표정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나도 내 아랫사람 십여 명을 데리고 무슨 일을 하나 꾸미러 들어왔다가 그만 뚱딴지 LC당 사건 때문에 시기를 놓쳐 버려서 헛길을 하게 됐소이다. LC당 사건만 해결을 지어 놓고는 나도 당원 전부를 인솔하고 도로 상해로 돌아가야겠는데 그 돌아갈 때에 경찰의 간섭이라도 있으면 귀찮아. 아무 법률에 저촉된 일은 하지 않았지만 이렇다 저렇다 말썽되기가 귀찮아서 가만히 돌아가고 싶은데 나와 우리 몇 당원이 상해로 돌아가는 데 대해서도 귀찮게 굴지 않을 것─ 이것도 조건이외다.”
“법률에 저촉된 일만 없었으면.”
“그게야 이 공도 아시다시피 내가 돌아온 이래 아직껏 불면불휴로 LC당 사건에만 관계했지 어디 다른 일을 할 틈이나 있었소.”
“선생님의 조건은 그 두 가지 이외에는 없으시지요?”
“그렇지요. 김소춘 탈출에 방해치 않을 것, 우리 돌아가는데 간섭치 않을 것.”
“그 대상으로는 LC당의 간부는 반드시 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건 약속한 바외다.”
“그럼 저도 승낙을 하겠읍니다.”
이리하여 타협은 되었다.
“한 개의 생명도 해하지 않고 한 사람 부상자도 내지 않고 곱다랗게 LC당의 간부를 체포할 방침을 꼭 강구하리다.”
서인준이며 그 일당이 상해로 돌아가는데 간섭치 않는다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인준이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를 않았으니까… 그러나 김소춘 탈출에 눈감겠다 하는 것은 좀 중대한 문제이다. 살인 범인의 탈출을 경관으로서 어찌 모른 체하랴.
“이 공. 김소춘이를 내가 맡아서 다시는 LC당에 관계치를 않도록 하리다. 우리 당에 가입을 시킨댔자 조선 경찰에서는 기괴할 것은 아니지마는 우리 당에서는 기껏해야 협박 강도 절도 그 이상은 없소이다. 사람의 생명을 해한다든가 부상자를 낸다든가 하는 일은 안합니다. 하니까 경찰 측에서 보더라도 우리 당에게는 좀더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외다.”
인준이는 웃으면서 이런 말까지 하였다.
이리하여 몇 가지의 약속을 맺고 계획을 세운 뒤에 필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아파트에는 인준이 혼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