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철 시집/시집가는 시악시의 말

  나는 이제 가네.
  눈물 한줄도 아니흘리고 떠나가려네.

어머니 치마로 눈을 가리지 마서요.
너희들도 다 잘잇거라.
새벽빛이 아즉도 히미해서 얼골들이 눈에 서투르오,
다시한번 눈이라도 익여둡시다.
공연히 수선거리지들 마러요.
남의 마음이 흔들리기 쉬운줄도 모르고.

황토 붉은산아 푸른 잔듸밧아 다 잘잇거라.
잔자갈 시냇물도 잘 노라 지나거라.
―가면 아조가나, 잔사정 작별을 내 이리하게!
봉선화야 너는 거년까지 내손가락에 물드리엿지?

순이야, 금이야, 남이야, 빗나든 철의 동모들아,
이제는 동모라는 말조차 써볼데가 업겟고나,
너희들 따―느린 머리를 어듸좀 만저보자.

  붉은단기 울넘으로 번득이는 자랑스러움,
  거리낄데 하나업시 굴러가든 너이들 우슴,
  이것이 어느새 남의일가치 이약이 될줄이야!
  손하나 타지안코 산골에 맑은 힌나리ᄭᅩᆺ송이가치,
  매인데 굽힐데 업시 자라나든 큰아기시절을
  내 이제 뒤으로 머리돌려 앗가워 할줄이야!

눈물은 내서 무엇하늬,
가고야 마는것을! 가면 아조 가랴만은.
남는 너희나 그대로 잇서지다고, 내다시 볼때까지.

  아버지 이길은 무슨길이길래,
  눈물에 싸여서라도 가고 보내는 마련이래요?
  마른닢은 부는바람에 불려야만 되나요?
  손에 달코 눈에 익은 모든것을 버리고
  아득한 바다에 몸을 띠워야만 새살림길인가요?

갈피업는 걱정 쓸데없는 앙탈을 이냥삼키고,
나는 떠나가네.
싸늘한 두손으로 얼골을 싸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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