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침만한 나무토막을 앞에 놓고, 칼로써 이리 깎고 저리 깎다가, (아마 무슨 신상=神像을 조각하던 듯) 이젠 싫증이 났는지, 혼잣말로,

『제법 이런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네. 이 세상 쉬운 일이 란 하나도 없군.』 하면서, 나무토막을 앞으로 밀어 치웠다.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것이었다.

『아직 있었느냐. 언제부터라고. 장난에 정신이 팔려서….

물러 가거라. 언제부터라고 그냥 서 있담…』

『…대신(大臣)님 분부를 받잡고자.』

『분부? 무슨 일이더라? 장난에 정신팔려서 무슨 일이 있 는지 잊었구나.』

『네이…. 저… 그…』

말하기가 거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 그… 수(隋)나라에서…』

『오오. 그 일이냐. 그래 수(隋) 사람은? 그냥 있느냐?』

『그 사신이야말로, 이른 아침부터 여태껏 중문 밖에서 대 신님 분부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 일에 관해서 나랏님(高句麗의 영양왕( 陽王)께 여쭤 봤더니, 수제(隋帝) 일껏 보내는 것이니 받으시노라고 고맙 다고 하시는 분부시다.』

『……』

『수 사람에게 그렇게 일러라. 물러 가거라.』

『네이…』

그러나 주저한다. 분부대로 거행하기는 난처한 눈치였다.

좀 주저하다가 길이 절하고 물러갔다.

대신(大臣) 을지문덕(乙支文德)은 다시 아까부터 깎고 있던 나뭇조각에 눈을 옮겼다.

『장인바치의 할 일은 장인바치가 해야지, 이국자(理國者) 는 할 노릇이 못되는군.』

스스로 미소하면서 나무 토막을 들고, 들여다보다가 선선 히 저편 앞으로 내던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허리 아픈 듯이 주먹으로 몇 번 허리를 두드렸다.

때는 고구려 영양왕( 陽王) 二년 ─ 우역(禹域)에는 새로 생긴 나라 수(隋)의 고조(高祖) 개황(開黃) 十二년 이른 봄이 었다.

도읍을 환도성(丸都城)에서 이 장안성(長安城)으로 옮긴 지 불과 四, 五년밖에 되지 않아, 단청의 빛깔 아직 새롭고, 향 그러운 송진 내음새는 그냥 기둥에서 그윽히 나는 세대궐 대신(大臣) 방에서, 소일풀이로 나무토막 장난을 하다가, 을 지 대신은 그것도 싫증이 나니, 정사(政事) 방으로나 나가 보려고 몸을 일으켰다.

정사방에는 재상 네댓명이 모여서 역시 태평 세월다운 한 담을 하다가 머릿대신이 나오는데 인사하여 맞는다.

을지 대신은 미소로써 마주 인사하며 윗자리에 가서 앉았 다.

『수나라에서는 역시 분부대로 거행했읍니다.』

한 재상이 을지 대신께 말하였다.

『암. 그렇게밖에 할 도리가 있어요? 일껀 천리길 머다 하 지 않고 보내는 것 받기나 해 줘야지요.』

『그래두 수인(隋人)은 펄펄 뛰는 걸요.』

『뛰어? 뭐라구.』

『그런 법이 없다구. 천자의 하사품을 받는 도리가 그렇지 못할 게라구…』

대신은 한순간 눈쌀을 찌푸렸다.

『그 수인을 좀 불러 주시우. 정하(庭下)에 내던질걸, 그래 두 대접으루 그만치 나랏님두 처분하오셨는데, 되려? 꾸중 을 좀 해 줘야지, 버릇 모르는 더벅머리가─』

동명성왕(東明聖王)이 고구려를 창업한 것은 七백년 전이 다.

부여의 옛터에 부여 사람으로 한 나라를 이룩하고 이 지역 안에 점적(點的)으로 몇군 데 있는 한(漢)족의 부락들을 도 로 제 고장으로 내어 쫓으며 명군현주(明君賢主)가 계속하여 나서, 나라의 기초는 더욱 튼튼히 더욱 크게 더욱 가멸어서 동방의 대국을 이룩하여 엄연히 천하를 굽어 볼 동안─.

이 七백년간에.

저 한토에서는 군소국가가 일었다가는 잦고, 생겼다가는 없어져서, 「한(漢)이 생겼다가 망하고 연(燕)이 생겼다가 망하고, 양(梁)이 생겼다가 망하고, 어떤 자는 남과 북으로 갈리는 자도 있고, 혹은 망한 전(前)국의 뒤를 받아 후(後) 국이 생겼다가 망하고, 혹은 제(齊)라 그것이 갈려서는 남 제, 북제라, 혹은 위(魏)에도 동위, 서위 혹은 주(周)로 어지 럽고 불안정한 국가 생활에, 또 어떤 자는, 생기다가 망한 자도 있고, 혹은 만들려고 도모만 하다가 그만둔 자도 있어 서─ 이런 결과로서는, 자연, 어떤 국가는, 국가 형태의 조건을 다 구비하여 가지고도 스스로 자기를 믿을 수가, 없어서, 지 금 자기가 만든 이 <부락의 집단>이 <국가>이노라고 천하 에 호령할 수가 있을는지를 망설이지 할 수가 없을 형편이 었다.

천자(天子)는 단 한 분밖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유교 사상 의 신봉자인 한(漢)민족으로, 위(魏)와 촉한(蜀漢)과 오(吳) 의 정립을 인정치 않고, 셋 가운데 하나만이 천자기의 나라 요 나머지 들은 후국(侯國)이라 보지 않고는 마음을 못 놓는 그들이라, 여기 만약 같은 시대에, 제(齊)와 진(陣)의 두 나 라가 있다 하면 그 가운데, 하나가 (그리고 하나만이) 떳떳 한 국가이요, 다른 하나는 위국(僞國)이든가, 제후(諸侯)국이 라고 밖에는 인정을 못한다.

즉, 동방에서는 고구려가 단일 왕실 밑에서 단일 국가로 七백 년 간을 닦고 갈 동안, 한토에서는 한민족으로 된 무 수한 국가가 생겼다가는 잦고 생겼다가는 잦고 (한 국가로 서 몇 백 년 누린 국가는 몇이 못되고 대개는 몇 십 년 내 외였다) 이런 일을 번복하고 있었다. 여기서 고구려라는 국 가의 지위에는 천근의 무게가 붙게 되었다.

그들의 만든─ 혹은 만드는 국가의 생명이 하도 짧고 뿌리 가 하도 약한지라, 그것을 만든 자기네로서도, 신뢰를 붙이 기가 어려운 형편이니 여기 고구려국의 <인정(認定)>이라 하는 것이 지대한 가치를 갖게 된다. 언제 스러질지 모르는 근거 박약한 군소(군(窘)小) 국가들 가운데서 고구려가 상대 해서 교제하여 주는 국가는─ 즉 고구려에게 국가로서의 인 정을 받는 나라이면 그만치 위신이 붙는 것이다.

건국된 지 백여 년에도 아직 고구려의 인정을 못 받은 국 가, 건국 단 몇 해에 벌써 친한 국교를 맺어 사신의 왕래가 연락 부절하는 국가, 전자는 스스로 자기를 부끄러워하는 반면에 후자는 득의양양해진다.

자고로 한인은 자기네를 <화(華)>라 하고 자기네 땅을 중 원이라 한다. 즉 자기네 인종을 인류의 정예로 여기고, 자기 네의 땅을 인류 거처의 중심지라 하는 것이었다. 어제는 제 인(齊人)이 되고 오늘은 진인(陣人)이 되어 얼정한 국가 주 권도 못가졌을 때에도, 여전히 자기네는 화인이요 다른 사 람은 오랑캐(夷狄)라는 자존심과 신념만은 굳게 가지고 유지 한다. 자기네의 이룩한 국가가 아직 국가 영토도 분명치 못 하고─ 한 걸음 나아가서는, 이것이 국가로 될는지 혹은 채 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는지조차도 미분명한 경우일지라도 자기네는 화인이요 다른 인종은 오랑캐라는 자긍심뿐은 그 냥 굳게 가진다. 자기네가 아무리 미안미안한 국가의 백성 일지라도 황제의 적자라는 신념은 굳게 가진다.

한인의 주권자는 <천자>라는 사상을 품은 만치, 스스로도 위태위태한 국가를 창건하면 뒷일은 어떻게 되든 간에, 현 재는 자기가 천자노라는 신념을 갖고, 이 지위를 굳게 할 수단을 베푼다.

가장 첩경이 고구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역사로도 가 장 오랬고 실력으로도 가장 부하고 강했고, 그의 처분이 가 장 위신이 있느니만치 먼저 고구려의 인정을 받을 공작을 한다.

먼저 고구려 국왕에게 벼슬을 준다.

<요동군공(遼東郡公)> 혹은 <안동도호사(安東都護使)> 혹 은 <대장군>에 겸<고려 국왕>이라는 벼슬을 준다. 이런 높 은 벼슬은 천자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 이것을 주어서 고 구려 국왕이 받으면, 고구려 국왕은 대국(진이든 제든, 한이 든 위든 간에) 천자에게 벼슬한 사람이라, 즉 대국 신하가 된다. 이것이면 고구려가 그 나라(한인의 이룩한 나라)를 인 정한 증거다.

영양왕의 부왕 평원왕은 한때 같은 때에, 주(周)에게 <개부 의동삼사대장군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을 받고 수(隋)에게

<대장군 요동군공 고구려왕>을 받고 북제(北齊)에게, <사지 절령동이교위 요동군공고구려왕>, 진(陣)에게서는 <영동장 군> 등 벼슬을 받았다.

즉 한토에 있는 각 국가는 다투어서 고구려왕에게 벼슬을 보낸 것이었다. 이런 것을 일일이 사양하고 거절하고 하기 가 귀찮아서 잠자코 받은 것이었다. 이것을 보낸 제왕들은 모두 다 각각, 고려 왕이 내 벼슬을 받았으니 즉 내 신하됨 을 인정함이라고 스스로 만족히 여기었을 것이었다. 뿐더러 하도 함부로 받았으므로 제왕들 새에 샘이 나서 고구려 왕 께 항의의 질문을 한 일까지 생겼다.

영양왕의 부왕 평원왕(平原王) 때에 양견(楊堅)이가 일어서 서 수(隋)나라를 이룩하였다.

새로 생긴 수나라는 그 세력을 놀랍게 뻗치어, 한토에 있 는 여러 국가를 모조리 멸하여 평원왕 마지막 해인 三十二 년에는 진(陣)까지 멸하고 중원을 통일하였다. 오래 여러 작 은 나라로 부스러졌던 한토는 수 문제(文帝)의 힘으로 오래 간만에 한개 국가로 통일된 것이었다.

평원왕은 진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에 몸을 소스라쳐 놀랐 다.

지금까지는 고구려는 태평 세월을 보냈다. 한토에 비 뒤 죽순같이 생긴 많은 약소국들이, 오직 자기네끼리의 세력 균형에 몰두하고 고구려의 환심 사기에 급급했는지라, 고구 려는 국가적으로는 남쪽의 백제와 신라 두 소국밖에는 맞설 나라가 없어서 태평한 세월을 보냈다. 남방의 두 소국은 어 디라 감히 바로 우러르지도 못했고, 서북의 한족의 나라들 은 우리 환심 사기에만 급급했으니, 고구려는 그 동안 베개 를 높이하고 지낼 수가 없었다.

지금 서북방에 여러 나라가 다 없어지고 오직 수나라 하나 가 남았으니, 인제는 우리는 수나라와 정면으로 마주 서게 가 되었다. 베개를 높이하고 단꿈 즐길 한가로운 때는 지났 다. 정신 바짝 차리어야 하겠다.

나라를 독려하여 군사를 조련하며 병비를 충실히 하며─ 천하를 엿보던 고구려인의 의용을 다시 배양해야겠다.

평원왕이 정신을 가다듬고 국력을 다시 일으키려고 움직일 때에, 수나라의 국서가 고구려에 왔다.

그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 트집 잡자는 것이었다.

「너희가 번방(藩邦)이라 이르지만 정성이 없고 삼국을 삼 국으로 여기지 않으니 이 버릇을 고쳐라.」

지금껏은 세력 형편상, 한인의 나라들이 마치 나라인 듯이 고구려에 굴해 지냈다. 명색은 자기네는 종국(宗國)이요 고 구려는 번방(자기네가 자존심상 스스로 붙인 칭호지만)이라 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고구려가 종주국이요 저들이 번방인 형태였다.

그러나 저들에게서 이젠 경쟁 상대가 없어졌으니, 오직 이 세상에 남은 자는─ 남아서 한인을 수모하고 멸시하는 자는 오직 고구려 뿐이다.

지금껏 사정 형편상 받아온 수모도 갚아야겠다. 이 한나라 는 한나라 새의 수모도 수모려니와 우(禹)족의 후예가 동방 오랑캐에게 받은 수모도 갚아야 하겠다.

─ 이러한 심리의 발동이 무릇 일어날 것이다. 지금 잡는 생트집─ 그것은 이쪽에서 만만히 굴복하든가 하면 장차 두 고두고 우리에게 대한 수모와 반항심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일찌기 낙랑 등 四군에서 한인을 내어쫓은 충용한 고구려 혼을 불러 일으켜 지금 우리의 위에 쏟아지려는 생트집을 부수어 버려야 할 것이다.

이 평원왕 재위 三十二년간은, 이상히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토에 있는 여러 나라─ 북제, 진, 주, 수─ 에서 평원왕께 벼슬을 보내서, 평원왕은 재위의 전 기간을 <한인이 봉한 고구려왕>으로 보냈다. 그런 과거를 가진 왕이니만치 한인 을 얕보는 성습은 남보다 더하였다.

「과거의 은공도 몰라보고. 네 어디 겪어 보아라.」

열이 올라서 한판 해 보려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불행 하늘은 이 왕께, 한번, 중원 천지에 활약할 기 회를 주시지 않았다. 서벌(西伐)의 준비 한창이다가, 그다지 중하지도 않은 병이 몸에 나서, 그 병에 시름시름 하다가, 그 시월에 불행히 웅지를 품은 채로 승하하였다.

그의 맏아드님 영양왕이 등극하였다.

영양왕이 등극하였다.

그러자, 수나라에서는 재빨리 영양왕께,

<상개부의동삼사(上開府儀同三司) 요동공(遼東公).>의 벼슬 을 보냈다.

이것은 첫째로는 그냥 고구려를 어루만져 둘 필요를 느낀 때문이었다. 문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호기를 고구려에게까 지 뿜어 고구려로 하여금 지금껏의 주객(主客) 전도의 상태 를 행여 좀 돌이켜보려 하여 한번 트집잡아 보았는데 고구 려에서는 거기 수그러지지 않고 도리어 맞서려 달려드니, 지금 간신히 천하는 통일하였지만 고구려 같은 충용한 백성 을 상대로 싸울 힘이 모자랐다.

게다가 고구려의 대신 을지문덕은 범인이 아니라는 소문을 최근에 들었다. 천하를 통일하느라고 있는 힘 다 쓴 지금에, 그런 재상과 그런 민족을 상대로 일을 벌였다가는, 일껏 얻 은 천하에 트집이라도 가면 큰일이다.

그래서, 신왕께 여전한 벼슬을 보내서 그를 회유코자 하였 다.

벼슬과 함께 문황제는 옷도 한 벌 보내어서 친선한다는 뜻 을 더 두텁게 나타내었다.

그러면서도 문황제는 사신에게 은근히 눈치로 분부해 보낸 일이 있었다.

이전에는 벼슬이든가 옷이든가를 보낼 때에, 단지 말없이 받지만 하면 요행이라는 마음으로 보내고 하였다.

안 받지나 않을까. 모(某) 나라에서 보낸 것은 말없이 잘 받았는데 내가 보내는 것은 퇴하지나 않을까.─ 이런 근심 이 앞장서서 딴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 하늘 아 래 제一인인 지위에서 보내는 (지금은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하사하는 것이다.) 처지로서는, 이것을 받는 고구려왕의 태 도가 알고 싶었다. 적어도 황송하고 고맙다는 표정만이라도 하여 주었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다. 사신에게 분명히 그런 뜻을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을 짐작은 할 수 있을이만치 암시하여 보냈다.

사신은 벼슬 직첩과 사의(賜衣)를 가지고 고구려 조정에 바 쳤다. 원칙으로는 천자의 하사품이라, 왕은 예를 갖추어서 이를 배수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배수는커 녕, 그다지 높지도 못한 듯한 관원 한 사람이 나와서, 그 직 접 어의를 사신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슨 짐인 듯이 휙 채어 가지고, 망연자실한 수나라 사신이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전내(殿內)도 아니요 정하(庭下)에서.

사신은 생각해 보았다.

아마 저 관원(고구려의)은 아주 얕은 관원으로 이 물품이 무엇인지 모르고 저렇게 취급했겠거니. 이제 높은 관원이 알고는 깜짝 놀라서 뛰쳐나오려니.

그러면 그때 고구려 조정의 무례하고 불손한 태도를 책망 하리라 마음먹었다.

한참 기다렸다.

한참이 오래가 되었다.

오래가 대단히로까지 되었지만, 다시는 아무 소식 없다.

때때로 다른 관원들이 지나다닌다. 그러나 바쁜 듯이 사신 쪽으로는 머리를 돌리는 사람도 없었다.

뜰 아래─ 이른봄─ 점심도 굶고 시장하고 추워서 덜덜 떨 린다.

그새 한두 번 고구려 관원을 붙들고 힐란하여 보았다. 그 러나 말이 통하지 못하였다. 춥고 불쾌하여 돌아가 버리려 고도 몇 번 해 보았는데, 그러면 저 편에 있던 위병(衛兵)이 꽥 소리를 치며 몽치를 돌려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을 나타 낸다.

저녁때가 거의 되었다.

그때야 사람이 왔다. 사신을 부르며.

이제야말로 천자의 사신이라는 권세로도─ 이제 상대할 사 람이 국왕일지라도 불평한 심사를 토로하려고 마음먹으면서 인도하는 대로 쫓아갔다.

정사방이었다.

재상들 가운데, 중앙 정면에 있는 가장 높은 이인 듯한 사 람이 그의 눈을 약간 구을렸다.

통변을 내세워서 하는 말─.

『천리 길 가지고 온 물건, 뜻이 가상하다고 나랏님께서도 받으시긴 했지만, 어디 우리 고구려 옷에야 입겠더냐. 그러 니 도로 가지고 가기도 짐스럽겠구.』

사신은 방망이질 하는 가슴의 억분을 누르기에는 숱한 애 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자의 사신에게 일개 배신이 오 냐를 해? 천자의 하사품이면 그것이 썩은 떡 한 덩이라도 고맙고 황송한 것이어늘─ 고구려라는 나라는 예절도 법도 없는가.

몸이 우들우들 떨렸다. 춥기도 했지만 분하기 때문이었다.

『오래 분열됐던 중원을 통일했다고 기운 뺐을 때에 그 기 운 길러 줘야지 받아 줬다가는 영 우리를 멸시하게 됩니 다.』

수나라 사신을 돌려 보낸 뒤에 을지 대신은 이렇게 말하였 다.

수나라에서 온 사신은 그렇게 쫓아보냈지만, 그 사신의 뒤 따라서, 고구려에서는 수에, 보통 친선 사신을 보냈다 그때 조정에서는 일전의 그곳 사신을 너무 무시해 쫓으니만치 그 품갚음이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을지 대신은, 그럴 까닭 없 다고 보증해서 보냈다. 과연, 수에서는 고구려 사신을 극진 히 환대하였다. 고구려 사신이 귀국할 때 수에서는 따로이 수나라 사신을(귀국하는 고구려 사신과 함께) 보내다. 고구 려 왕에게 차복(車服)을 내리는 것이다.

이리하여 고구려와 수의 새는 연년이 친선 사신이 왕래하 였다.

영양왕 九년. 영양왕은 몸소 그러나 말갈(靺鞨)의 군병 一 만 여명을 거느리고 요서(遼西)를 쳤다.

대체 요(遼) 땅은 동서(요동, 요서)를 무론하고 고구려에서 는 고구려 영토로 인정한다. 그러나 또한 한인들은 한쪽의 영토라 하여 그곳에 관리를 파견하고 백성을 이민하며 관할 하며 한다. 그런 관계로 고구려 조정에서는 그 지역(요동보 다 요서가 더욱 잦았다.)을 한족의 관헌이 관할할 때는 가끔 토벌하여, 고구려 영토임을 잊지 말라는 경고를 하여 두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의미의 토벌이었다.

수나라 황제는 크게 노했다. 지금껏도 참기 힘든 것을 늘 그냥 참아왔거늘 저 동방 오랑캐가 병력까지 움직여 대국을 침범함에 이르니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한왕량(漢王諒)과 왕 세적(王世積)을 원수로 삼아 수륙 三十만 대군을 일으켜 고 구려를 치게 하였다. 조(詔)를 내려서 고구려왕에게 주었던 벼슬을 모두 깎았다.

고구려 정벌의 조를 내리고 군사를 떠내 보낸 것이 六월이 었다. 그런데 군량이 부족하고, 군중에 못된 병이 돌았다.

게다가 겹쳐, 주라후(周羅 )는 동해에서 배로서 수군을 이 끌고 평양성 돌아올 터인데 풍랑을 만나 많이 파선하였다.

九월에 간신히 수나라로 도망해 돌아갔는데 살아 돌아온 군 사가 열에 겨우 한 둘뿐이었다.

「천병(天兵)은 지금 번방 백성의 추수때를 잃지 않게 하여 주려고 환군하노니. 구태여 송별하지 말라.」

는 포고(布告)─ 이는 다시 번역하자면

「우리는 지금 도망가노니, 추격이나 하지 말아 달라」는 탄원이었다.

고구려는 구태여 추격하지 않았다. 몇명 안 되는 생환병을 추격하면 무엇하랴. 그 대신, 황제의 포고에 대하여 감사하 는 뜻을 아뢰었다. 가로되, 스스로 <신(臣)>이라 이르고 내 땅을 분토(糞土)라 낮추어 황제의 관후함을 칭송하였다.

이때에 백제에서는 위덕왕이 몰래 사신을 수나라 문제에게 보냈다. 천병이 지금 고구려의 포학을 징벌하는 이때 소방 (小邦)은 천병의 길을 인도하겠소이다. 하는 청을 들었다.

거기 대하여, 수나라에서는, 조유(詔諭)를 내려서,

『그 뜻은 가상하지만, 고구려에서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 쳐 사죄하기에 짐(朕)은 이미 용서하였으니 다시 물을 배가 아니라.』고 거절하였다.

이 소식이 고구려에도 들어왔다. 고구려의 조야는 격노했 다. 곧 벌제(伐濟)군을 보내자고 야단하였다.

을지 대신은 일소(笑)에 붙이고 말았다.

「백제의 노릇을, 철든 사람의 일이라 볼 수가 없으니, 철 없는 애를 벌하면 무엇하랴. 우리나라 변방 백성들이 백제 의 괘씸한 행사에 노염내서, 무슨 응징 수단을 취할 테니, 그쯤으로 버려두고 국가로서는 모른 체하고 말지.」

이리하여 수나라 고조 문황제(高祖文皇帝)는 그 관대한 마 음으로 분토(糞土)의 임금의 사죄를 용납하여 주었지만, 마 음으로는, 고구려에 대하여 천천의 한을 품었다.

그런지라 그가 세상을 떠날 때는 <고구려 정벌>의 유칙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一九四四年 四月 <野談> 所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