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53
53
편집『숙부님답지 않게, 그만 일에 대죄(待罪)가 다 뭐오니까? 내 숙부님을 깊이 믿는데, 그만 풍설에 놀라신단 말씀이어요? 또 숙부님이 달라시면 드리긴들 못하리까? 아까 마침 무슨 일로 속이 언짢을 때에 숙부님이 오셔서 용렬된 어린 마음이라 언짢은 낯색을, 미처 감추지 못했더니, 숙부님 잘못 아시고 도로 나가셨어요. 나가신 뒤에 어찌 미안한지 누구를 내보내서 모셔올까고 주저주저할 동안 오셨구면요.』
정하에 대죄하는 수양을 왕은 불러오셔서 이런 우답을 내렸다.
수양은 여기 진심으로 감읍하였다. 이 임금, 이 조카님께 무엇을 아끼랴? 자기가 어리석었다. 항간에 그런 고약한 풍설이 돌면, 도리어 자기가 먼저 자진하여 조카님께 사뢰어야 될 일이 아니었던가?
내관 엄자치를 엄벌한 것, 혜빈 양씨를 내쫓은 것, 모두가 왕의 직접 처분이었다 한다.
수양은 그 날 퇴궐 귀가하여, 부인과도 조카님의 고마운 처분을 말하며 울었다.
금성대군과 화의군의 사건─
혜빈 양씨와 내관 엄자치의 사건─
이것은 개별적으로 치죄하였다.
양씨와 엄자치는 난언(亂言)으로 다스렸다. 두 왕자(화의와 금성) 및 거기 출입한 무리는 근신치 못한 죄로 화의군은 귀양 가고, 금성은 고신(告身)을 거두었다.
그 고신 거둔 금성에게서 말썽이 났다. 금성은 그 신분이 왕의 숙이요, 영의정(수양)의 친동생으로, 연사(宴射)쯤의 조그만 유희 때문에 수고신(收告身)의 처분을 받은 데 불평이 간 모양이었다. 한창 혈기의 삼십 전의 소년에다가 본시 천성이 감격적인 그가 불평을 품었으매, 그 나무람을 가슴속에 감추어 두기에는 너무 어렸다. 여기저기 불평을 말하며 다녔다.
금성의 불평은 당연한 결과로서 수양께 나무람으로 표시되었다. 몸이 영의정으로 앉아서, 동생이 죄 같지도 않은 죄 때문에 수신 처분을 당하는 것을 좌시했다 하는 불평이었다. 동시에 당신네(수양이며 안평)는 실컷 문무 잡배들을 모아가지고 장안을 소란케 하며 야단하더니, 동생(화의군은 수양께 서형(庶兄), 금성은 친아우)이 연사쯤 한다고 그것을 벌하며─ 혹은 직접 벌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적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단, 이런 무정한 일이 어디 있는가?
여기서 불평이 커지기 때문에 좋지 못한 소문을 퍼치기 시작하였다. 항간의 지금 돌던 그 소문을 좀 더 과장해서 공공히 퍼치는 것이었다.
문종, 수양, 안평 등의 아우님이요, 금성께는 형님 되는 임영대군이 형님인 수양을 찾아와서 동생 금성의 걱정을 하였다. 임영이며 금성이며 모두가 수양의 친동생이요. 매우 귀염을 받던 사람들이었다.
수양은 속이 좋지 않았다. 금성이 나무람을 품는 것도 의욋 일이거늘, 그런 풍설(비록 그런 풍문이 항간에 있을지라도 애써 막아야 할)을 스스로 더 퍼치단 웬 말인가? 임영도 그 말을 하며 금성이 행사가 괘씸하니 금부에 고하겠다고 펄펄 날뛰었다. 수양과 임영과가 사, 오 세 차이 나고, 임영과 금성이 또한 그만한 차이가 있었다. 중간 역할을 하기에는 알맞은 나이였다. 수양은 임영을 타일렀다.
흥분하지 말고 가서 금성을 만나서 이 말을 전하라.
아버님(세종)이며 어머님을 보아선들 네가 어찌 내게 이러라? 또 주상전하를 경동케 할 말을 함부로 하랴? 위에 지금 이 나라에 있어서 조그만 흠절이라도 보였다가는 큰 화가 몸에 맞는 것은 안평의 선례까지 보지 않았더라도 알 일이라, 공연한 화단을 일으켜서, 위로는 주상 전하와 이 형들의 마음을 또다시 아프게 하지 말라.
이렇게 타일러 임영을 돌려보내기는 하였지만, 수양은 진실로 마음 아팠다.
이번 금성이며 금성 댁 문객(대개는 위험감을 느끼고 금성 댁 출입을 중지해서, 현재 몇 사람이 되지는 못하지만)에게서 항간으로 퍼져나가는 풍문은 재래의 풍문보다 더 고약하였다. 재래의 것은
〈왕이 상왕으로 되고 수양이 왕으로 된다.〉
하는 것이었는데, 거기 덧붙은 지금의 풍문은
〈수양이 왕위를 찬탈하려 한다.〉
하는 것이었다. 왕의 깊은 신임과 수양의 지배자의 천품만 없으면 모가지가 열 개가 있어도 당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재래의 풍문은 그 출처가 분명치 못한 막연한 것이었는데, 새 풍문은 가로되,
〈금성대군이 말하기를 여사여사한다.〉
하는 것이라, 영향되는 바가 훨씬 더 컸다.
금성을 타이르고 책망할 역할을 띠고 갔던 임영은, 더 흥분되어 결과를 형님인 수양께 보고하였다. 그것은,
금성에게 가서 분부받은 대로 전하매, 금성은 그 풍문을 부인하지도 않고 도리어
『안평 형을 죽이더니 재미나는 모양이구료? 나도 죽이구료. 차례 차례 동생들 다 죽여 없애고, 소망대로 왕이 되구료!』
하고 쏘아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조카님께 여쭐 수도 없고 더구나 정부에 의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만약 정부에 의논했다가는 단박에 극형 처분을 하자고 야단일 것이었다. 다만 금성이 자진하여 근신하는 한 가지의 길밖에는 없는데, 금성의 태도는 점점 더 과격해 가는 뿐이었다.
수양은 여기서 번민하였다.
자기가 모든 희망을 버리고 집에 들어박혀서 문을 닫고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근신하랴? 그러면 자기 위에 씌워진 못된 풍문은 자연히 작아질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못할 일이었다. 그 사이 침체 또 침체되었던 이 땅이 지금 겨우 궤도 위에 올라섰는데, 이것을 여기서 버리면 다시 역전하여, 좀 뒤에는 아주 꺼져버릴 것이었다. 이것을 어찌 좌시하랴? 게다가 어린 조카님께 무거운 짐을 어찌 지워 드리랴?
어리석은 금성아! 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입을 삼가고 주위를 둘러보아라. 네 어찌 조카님을 괴롭게 하고 또 나를 배반하느냐? 나를 배반하는 것이 내게는 무관하다마는, 그 때문에 재화가 네게 내릴 것을 생각지 못하느냐? 지금 나를 훼방하는 사람을 벌하여 그로서 공(功)을 사려는 무리가 수두룩한 이 판에서 네 어찌 그것을 못 살피느냐?
수양은 또 임영을 금성에게 보내서 좀 오라고 전갈을 하였다. 그러나 금성이 올 까닭이 없었다.
형제는 나날이 악화하여 갔다. 이제는 수양이
〈찬탈을 도모했다.〉
는 죄를 쓰고 벌을 받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로 그런 풍설을 없이하든가 둘 가운데 하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정부며 양사, 삼사에서는 연해 수양께 조르고 왕께 졸라서, 이 난언을 처치하기를 꾀한다.
왕은 책임을 수양께 밀었다. 수양은 정부의 조르는 것을 다만 억누르는 것으로 고식적 방책을 삼았다.
『참, 귀찮고 성가시어 못 견디겠어요!』
왕은 수양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하소연하였다. 어찌 하여야 할지 아무 대책도 못 세운 수양은 민망하여 묵묵히 있을 뿐이었다.
금성은 대체 어쩌자는 셈인지, 수양으로도 알 수가 없었다. 금성이 벌받는 것을 구해 주지 않았다는 나무람에서 생겨난 반항 행동은 이제는 다만 반항하기 위한 반항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반항 자체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금성대군 가로되……〉
라는 관을 쓴 풍설은 장안을 휩쌌다. 위(上)에 간범되는 난언(亂言)은 참(斬)하고, 가산몰수(家産沒收)하는 것이 이 나라 법률이었다. 금성의 행사는 여기 미쳤다. 헌부에서는 이것을 기치로 조르는 것이었다.
『왕법을 사정으로 굽히면 백성이 따르지 않습니다.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 나라의 지친(至親)으로 정리 차마 전법을 용치 못하시겠거든, 죄에 일등을 감하여 참(斬)은 면하고 장(杖) 일백에 유(流) 삼천리로라도 처단하심이 옳을 줄 믿습니다.』
왕께 혹은 수양께 이것을 강청하는 것이었다. 유(流)라 하는 것은 무기한 종신 정배였다. 장(杖)이라 하는 것은 집장자의 손 나름에 달렸지만 대개는 장을 보고 발배(發配)되면 가다가 도중에서 죽거나 배에서 앓다가 죽거나 하게 된다. 명목은 다르지만 사형이나 일반이었다.
더욱이 왕실 공자로 고이고이 자란 금성이 이 처분을 받으면, 그것은 절대 사형이었다. 이 수선한 판에 어쩌자고 그러는지, 수양은 민망하고 답답하였다.
어느 날 수양은 조용히 신숙주를 불렀다. 수양의 휘하의 적지 않은 재사 가운데 대의와 인정까지 아울러 이해하는 것은 숙주가 으뜸이었다.
숙주를 불러서 조용히 숙주에게 분부한 바가 있었다.
이튿날은 조카님께 조용히 뵈었다.
『숙부님, 참 귀찮아요!』
근래 조카님을 뵐 때마다 벽두에 나오는 조카님의 말이 이것이었다.
수양은 먼저 조카님을 위로해 올리고, 그다음에 용건을 아뢰었다.
지금 민간에서 성히 돌아가는 악풍설은 금성이든가 수양 자기가 둘 가운데 하나이 죄를 받지 않으면 귀정이 나지를 않을 형세임을 아뢰고, 계속하여 만약 이것을 방임하든가 정부 육조 삼사의 의견을 좇든가 하자면, 화단이 크게 벌어질 것을 여쭙고, 끝으로 그 화단을 가볍게 끝막기 위해서 신찬성에게 부탁한 바가 있는데, 있다가 신찬성이 독계(獨啓)로서 금성대군을 삭녕(朔寧)에 참배하기를 청할 테니 거기 여러 말 없이─ 즉 벌이 가벼우니 다시 의논합시다 어쩝시다 군소리가 곁들 틈이 없이, 곧 윤허해 버려서 화단을 최소한도로 줄이자고 청하였다.
왕은 길이 탄식하였다.
『어떻게 무사히 무마할 수가 없소리까?』
『아마 안되오리다. 시기가 늦었습니다. 게다가 또 이미 퍼진 풍설을 도로……』
뒤가 딱하고 민망하였다. 금성을 찬배하면 이 뒤는 〈금성 가로되〉는 없어도 지겠지만 이미 퍼진 풍설을 어떻게 수습하는가? 금성을 벌하면 〈금성의 행위는 죄라〉 하는 것이 확정된 바이니 따라서 금성의 연루자도 또한 종범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관민들의 마음보를 잘 아는 수양은, 사후의 분규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평의 선례도 있거니와 저마다.
〈누구도 금성의 연루자외다.〉
〈누구도 금성과 여사여사한 일을 했습니다(혹은 술을 함께 먹었습니다)〉
벌떼같이 일어날 뒷 분규, 소위 공을 세우려는 무리가 천백으로 세지 못할 것이었다. 이를 다 어찌하는가?
안평의 사건에 소위 연루자 문제를 겨우 정리하고 나니 또 금성이냐?
『숙부님, 내 정 싫어요. 한 숙부(안평)를 차마 못갈 구덩이에 보내고, 또 여기 두 숙부(화의와 금성)를 내가 벌하단─ 참 못 견디겠어요. 또 그 밖에도 내가 보(印)를 눌러서 죽인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무슨 업보로 이─ 이─ 입산수도나 할까 보아요. 끔찍하고 진저리나요. 어제 저녁 하두 심심하기에 〈조종조 일성록(祖宗朝 日省祿)〉을 좀 보았는데, 헌묘(獻廟: 태종)께서 많은 동포를─ 내가 지금 그 형편이 아니오니까? 참 속으로 무서워요.』
아아! 이 조카님을 무엇으로 위로해 드리랴? 수양은 등으로 땀을 흘렸다.
신숙주의 계청으로 금성대군은 삭녕(朔寧)으로 귀양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우선 정부에서 형이 가볍다는 말썽은 물론이요, 형을 개정하자는 문제도 일어나며, 동시에 금성의 연루자 문제도 파도같이 조야에 일어났다.
여기 답하여 수양은 적극적인 수단을 취하였다. 이를 주론(主論)하는 사품관 한 명, 오품관 한 명을 결장 처분(濫告의 죄로)을 하고 집장리에게 분부하여 맹장하여 죽였다.
공을 세워 상을 받으려는 욕심으로 관가에 일러바친 백성 몇 명, 또는 장한 듯이 금성을 폄하는 말을 시정에 해대는 백성 몇 명을 모두 잡아다가 소란의 죄로 맹장하여 죽였다. 금성의 연루자는커녕, 연루자를 일러바친 사람이 죄를 입은 것이었다.
더 퍼지지를 못하였다. 금성을 칭찬하는 의미의 말을 하면 〈죄인 옹호〉라 이도 벌을 받는다. 금성을 깎는 뜻의 말을 했다가는 〈난언〉 혹은 〈소란〉의 죄로 벌을 받는다.
금성의 일에 대해서는 〈시비(是非)〉를 막론하고 입을 벌리지 못한다. 뒷 분규는 일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생명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금성의 일을 아직도 이야기하고 입을 비죽거리는 여인이 몇 명 대궐 안에 있을 뿐이었다. 궁녀 몇 명─
계유년 사변 뒤에 수양이 왕의 고적함을 위로하고자 혜빈 양씨를 대궐에 불러들였다. 그때 양씨에게 시종 들던 궁녀 몇이 그냥 남아서 옛 주인을 생각하는 나머지에, 옛 주인과 비슷한 운명을 띤 금성에게 동정하는 생각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감히 발설을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