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22
22
편집하늘 높고 말 살찌는 가을철─
선왕 생존 때에는 선왕은 여러 왕자 대군에게는 형님이 되는 분이요, 그분이 성미가 곧고 까다로와서 대군들도 얼마만큼 꺼리었다. 그러나 그분 승하한 뒤에는 왕은 모든 대군에게는 조카 항렬이 되고, 게다가 아직 유충하기 때문에 대군들도 어려워하지를 않았다. 매일 대군청(大君廳)에는 한둘, 혹은 너덧의 대군이 아니 들어와 있는 때가 없게 되었다. 대군청에서 빈청(賓廳─高官處所)으로─대군들은 마치 대궐 안을 자기네 집인 듯이 왕래하였다. 우리 종조부께서 세운 나라이니 우리의 것이라 하여, 대궐을 자기네 뜰로 삼았다.
『집이 화하여 나라가 되었다.』
이 나라의 제도는 나라와 왕실을 같이 여기어 나라를 국왕 개인의 것과 같이 보느니만큼 대군들은, 「우리집」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소년 임금이고, 소년인지라 그분께 아직 동궁이며 왕자도 없으며 그 위에 내전 지밀한 곳까지라도 웃어른이 없고 임금 홀로이 궁녀들과 함께 살림하는 「집안」 같은지라 내전까지도 기탄치 않고 출입하기가 일수였다.
대군이며 군(君)들 가운데서 안평(安平)만은 좀 입궐하는 도수가 적었다. 그는 자하문(紫霞門)밖 경치 좋은 곳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또 남호(南湖) 호변에 담담정(淡淡亭)을 짓고, 우으로는 정부의 재상을 비롯하여 벼슬아치며 선비들이며, 무사, 협객, 심지어는 시정의 부랑잡배까지 청하여 놀며, 시서금기(詩書琴碁)며 가무연락(歌舞宴樂)으로 방탕하고 난잡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만 권 서적을 쌓아두고 문사들로 마음대로 보게 하고, 사회(射會)를 무시로 열러 기술이 능한 자는 후히 상주고, 도박, 음소(飮騷) 등으로, 잡배들을 연결하여 호탕하고 잡스럽고 방탕한 세월을 보내느라고 따라서 입궐하는 도수도 적었다.
지금 수양의 지위는 국가에나, 왕실에나, 다 좀 처(處)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수양은 때때로 스스로 물었다. 자기는 대체 무엇인가……고.
무론 왕실에는 장로(長老)였다. 나이는 겨우 삼십을 약간 넘은 듯 만 듯한 청년이었지만, 세상사와 절연한 백부 밖에는 가장 웃 항렬이라, (지친 중에서) 종실(宗室) 전체를 감독하고 거느리어야 할 사람이었다.
종실에는 그렇다 하거니와, 정부와의 사이가 아주 기묘한 것이었다. 어린 임금이 등극하였으니 이치로 따지거나 옛날의 선례(先例)로 보거나 연장한 왕족이 있어 보필하여야 할 것이다. 모후(母后)나 친조모(선왕비) 생존했으면 그분이 수렴청정(垂簾聽政)할 것이로되 그렇지 못하면 종실 중의 촌수(寸數) 가까운 어른이 섭정(攝政)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열두 살의 어린 임금이 등극하였고 모후 없으니, 조(祖)나 숙(叔) 중에 누구가 당연히 섭정을 해야 할 것이다.
조(祖)의 항렬의 분은 세상사를 관여하지 않는 분이요, 숙 가운데 수양이 가장 맏이니, 당연히 수양이 섭정을 해야 할 것이다. 아버님(세종) 승하 때에는, 동궁이 춘추 서른 일곱의 장년이니, 섭정의 필요가 없었지만, 그러한 그 때에도 부왕은 수양 자기에게, 「형왕을 보필」할 것과 장차 조카(단종)까지도 지도해 달라는 하교가 있었다. 형왕 임종 때에는 후계자가 겨우 열 두 살의 소년이요, 모후까지 없으매, 형왕은 당연히 자기에게 섭정의 고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명이 없었을 뿐더러, 「수양은 들지 말라」 하여 고명 하는 자리까지 못 보게 하였으니, 여기서 자기는 어떻게 처신하여야 할까.
어린 임금을 돌보고 지도할 사람이 없어 버려 두어 신하들의 자유농락에 맡길까, ─이것은 못할 노릇이다. 나라를 위해서든 왕실을 위해서든 또는 왕 개인을 위해서든, 군신(群臣)의 자유농락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 하면, 자기는 무슨 명색으로 임금께 뵈며 신하들과 대할까.
섭정의 고명이 없으니, 여기서 수양 자기가 자진하여 내가 섭정합시다 하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왕도 보필을 청하지 않으니 왕께 청할 수도 없었다. 이런 사정에서는 대신들이 왕께 계청을 하여 수양에게 섭정의 하명이 내리든가 종친들의 이런 거조가 있던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신 각료들의 심사는, 수양의 마음과는 판이하였다. 어린 임금이매 이 임금 성인 되기까지, 현상을 유지하여 아무 변통도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분명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섭정이라는 존재는 필요치 않을뿐더러 도리어 귀찮았다. 이러이러 해라, 이러이러 하자, 모두 귀찮은 일이다. 지금의 이런 태평세월에 무슨 변이 있으랴. 배를 두드리며 술이나 부르며 미희의 가무나 즐기며 지낼 태평세월에 쓸데없는 일을 빚어 내고 만들어 내어 스스로 귀찮음을 사랴. 그저 곱게, 그저 평온히.
이렇거늘 하물며 수양? 세종대왕 때부터도, 세종대왕의 그 광대한 사업도 그냥 부족한 듯이,
「이러면 어떻습니까」
「저러면 어떻습니까」
하여 앞장서서 졸라대고 하였으며, 문종 재위 이년 석 달 동안은 문종이 거상을 방폐로 그렇게도 꺾는데도 불구하고 역경나도록 성화 시키는 수양을 「섭정」이라는 것은 당찮은 일이다. 수양이 섭정을 하게 되면 각신들은 바쁘고 숨차서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요행 선왕(문종)의 외신들에게는 고명을 하고 수양은 금절하였으니 환란을 미연에 방지하듯 마음이 가볍기 한량없거늘 자진하여 수양을 섭정으로 칭한다는 것은 망령이다.
이런 형편으로 수양의 희망은 이루어 질 길이 없었다. 뿐더러 수양이 간간 정치에 용훼하려 하면 그들은 선왕의 고명을 방패삼아 쌀쌀히 거절하고 하였다. 때로는,
「우리게는 고명이 계섰고 친아우님인 당신께는 아무 말씀도 없으신 점을 생각하시오」 하는 뜻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조차 주저하지 않았다.
수양은 매일 종친부(宗親府)에 나와서 종친부로 빈청(賓廳)으로 혹은 각 각(閣)이며 사(司)에 왔다 갔다 하며 참견도 하며 혹은 자기의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며 하였지만, 그들은 할 수 있는껏 수양과는 「한담」 이외의 이야기는 피하고, 숨기고 한풀 감추고, 웬 간섭이냐는 태도를 분명히 보이고 하였다. 이런 일을 당한 때마다, 수양은 칵 치밀어 오르는 격분을 감추기 위하여 한참을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되고 하였다.
야속하신 형님이여, 저런 물건들이 형님께는 믿어집니까? 저런 것들에게 나라와 및 당신의 아드님을 부탁하시고 마음이 놓이십니까?
분노의 근원인 선왕께 원망은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드디어 대신들과 충돌을 하였다.
먼저 안평과 충돌하였다.
본시 안평은 부왕(세종) 생존 때도 늘 수양에게 불복하는 태도를 취하고 매사에 긁고 깎는 기색이 있어서 부왕께 엄책도 듣고 하였다.
부왕 승하 뒤에 형왕(문종)은 수양을 퍽 꺼리는 동시에 그 반대로 안평에게는 비교적 호의를 가졌었다. 부왕과는 반대였다. 수양의 청하는 바는 대개 물리쳤고 안 들었지만 안평의 청하는 바는 대개 들었다.
안평은 부왕 생존에는 부왕의 분부에 대하여 늘 「수양 형님 계시오매」 하여 긁는 태도를 취하고는 부왕께 엄책을 듣고 하였지만 천성이 어찌할 수가 없어서 이 태도를 끊지 못하였다.
형왕 때에는 이전 같으면 「수양형 계시오매」 하여 긁을 일을 당하여도 부왕 때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고,
『하명대로 봉행하오리다.』
하며 그 표정과 말투로 「수양께 분부하면 필시 봉행 않으리다」는 뜻을 보이고 하였다.
부왕과 형왕이 다 승하하고 어린 조카님의 대에 와서는 조카님을 멸시하는 듯한 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릴 뿐 아니라 항렬로도 아래인 조카님은 모든 숙에게 아무 분부도 없었다. 그 분부를 기다리지 않고 수양을 늘 무슨 진언이며 계청을 하였지만 안평은 「어린애가 무얼……」 하는 태도로 진언도 계청도 없었다. 어떻게 되어 무슨 분부라도 있으면 입을 비꼬아 웃고,
『글쎄올시다.』
하여 「말하면 무얼하리」 하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고 하였다.
더구나 수양이 무슨 분부라도 하면 「내가 뭘 압니까, 형님이 잘 하시면서…… 난 아무 것도 몰라요」 하는 뜻을 은근히 암시만 할 뿐 아니라 입으로 말로도 그 마음을 표시하고 하였다.
하루는 수양이 그날도 마침 종친부─대군청에 있다가 정부에 대신을 좀 만나러 나가고자 할 때에 며칠만에 안평이 입궐하였다.
형(수양)께 문안하고 동생들의 인사를 받으려 할 때에 수양은 그 때 어젯저녁 누구에게 들은 어떤 문제가 생각나서 안평에게 물어보았다.
『이즈음 자네의 그 무이정사(武二精舍)에 잡배들이 많게 된 일인가?』
다른 대군들도 무슨 잡담들을 하다가 맏형님의 말에 잡담은 끊어지고 이쪽으로 귀를 기울였는지라 안평이 못 들었을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안평은 형의 말에 대답은 않고 아홀(牙笏)을 왼손으로 바꾸어 쥐며 오른손으로는 부채를 쫙 펴면서,
『어 더워, 가을날이 복거리 같군.』
훨훨 부채질을 하였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수양이 무슨 말을 할지라도 못들은 체하고 딴 일만 하는 것을─
『응? 어떻게 된 일인가?』
수양은 다시 물었다. 그때야 안평은 형을 보았다─
『네? 뭐라구 하셨어요?』
아깟말은 못들은 체하고 재쳐 물었다. 수양은 다시 한 번 아까 한말을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그래, 어떻게 된 일인가?』
『글쎄올시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부채질만 그냥 한다.
『몰라? 그래두 실지루 목격한 사람들두 적잖은데.』
『글쎄올시다. 누구가 언제 어떤 일을 목격했답니까?』
『전자는 그만 두구, 어저께─그저께로군, 그저께도 삼사십 명이 무이정사에 모여서 법석하며……』
이번에는 안평이 도리어 수양의 말의 중도에 끼었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소릴 합디까. 그저께는 제집에 삼사십 명 사람이 모였던 일은 있지만 잡배는 하나도 없구.』
뒷말이 미처 안 생각나는지 더듬는다. 수양이 채근하였다.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라 모여서 습사회(習射會)를 한 일은 있지만 모두가 당당한─사람들이지 잡배는 없었습니다.』
『당당한 어떤 사람인가?』
『당당한─말하자면 그따위 미친 소릴 하는 놈들과는 상종도 안 할 신현(紳顯)들이란 답니다.』
쏘는 말이었다. 수양을 눈을 고즈너기 들어서 동생을 보았다. 그 수양의 눈에게 안평은 자 보십쇼 하는 태도로 마주 보았다.
『음, 어떤 신현인지 어떤 귀인인진 내 모르는 배지만 성명까지도 말하지 못 하는걸 보니 그다지 이름 있는 사람도 아닌 양 해. 또 설사 귀현이라 하더라도 내 귀에 온 소문은 고약하니 그 소문이 내 귀에 오노라면 딴 귀에는 안 가겠나. 삼가야 할 일일세. 더구나 사람의 입이란 고약해서 깨알만한 흠은 호박만하게 불려서 폄하고 그 말이 한 입에서 두 입 세 입만 넘으면 그때는 태산 만하게 불려 놓고야 마는 법이니 처신 삼가야 하네.』
처신에 대하여 경계를 들은 안평은 불쾌한 표정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그 무리들을 잡배라 아니 할 수는 없는 안평은 부르튼 표정으로 외면을 하였다. 그러나 외면하였다가 즉시 도로 마주 형을 흘겼다.
『나보다 형님도 좀 처신을 잘 하시오.』
『나? 나야 뭘?』
『형님 네 댁에도 잡배 출입이 많답니다. 도성 안이 그 소리 천집니다.』
『응? 누구?』
『권람(權擥)이라…… 또─』
『또?』
『또─좌우간 그따위……』
『권람이가 어떻단 말인가. 명문의 자손이고 거유(거유의 예(裔)고 경오년에 백의(白衣)로 장원해서 벼슬이 청환에 있으니 가문으로든 신분으로든 재간으로든 어디로 보아서 잡배란 말인가.』
『그따위 너절한 놈……』
『하여간, 왕자(王子)의 길로 말할지라도 잡인을 허투루 사귀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거상 중의 몸으로……』
『거상 거상 하시니 형님이 거상의 예를 준행하십니까? 그래서……』
『내가 어쨌단 말인가?』
『생각해 보십쇼.』
『생각할 여지도 없네. 나는 거상 중 실수한 생각이 없네.』
『네 옳습니다. 그래서 거상 중이신 현능(顯陵─문종)께 주육을 권했습니다그려. 금상께도 권하신다지요? 왜 미색도 좀 권하시지요. 흥.』
『내가 언제 주(酒)를 권했단 말인가.』
『참, 술은 잊으셨다나요.』
수양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말 마디마디에 되었건 안되었건 집어 대며 긁어대는데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괘씸한!』
주먹을 들어서 서안을 내려쳤다.
『좀된 사람 같으니! 성궁 허약하오시매 고량을 권한건 애군지념이야. 그것과 잡인 교유가 같단 말인가?』
안평은 대꾸를 못 하였다. 이 폭발된 노명에 한 마디만 더 기름을 부었다가는 형의 손 가까이 놓여 있는 연적이 필시 날아올 것이다.
『흥.』
입을 비꼬으며 외면하였다.
두 분 웃형이 다투는 것을 듣고 있던 대군들도 이 험악하게 된 형세에 모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었다. 안평은 외면하고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일기도 그다지 덥지 없거니와 그만큼 부채질을 했으면 땀도 식었을 터인데─
한순간 주먹으로 서안까지 두드렸지만 수양은 즉시로 제 냉정을 회복하였다.
『여보게 남 보기도 숭하거니와 우리 꼴에도 안 됐어. 아직 인산도 전에 골육지친에 꼴이 뭔가. 내가 서안을 두드린 건 큰 실수이. 허물허지 말게. 그렇지만 자네는 어려서부터 그 버릇이 고약해. 다투려면 당당히 다투고 그렇지 못하겠으면 당초에 말 게지 남의 노염만 돋구게 긁어내는 건 천한 못된 버릇이야. 지금 유충하신 전하 재상(在上)하신 이때, 철들은 우리들이 그런 시시한 일로 다툰다는 것도 못할 일이요, 더욱이 성청에 들리면 얼마나 근심하시겠나. 자 내 노염은 깨끗이 사죄할 테니 자네 부르튼 마음도 녹여 버리고 우리 형제 한결같이 손목 맞잡고 갈충보국해서 대대 조종의 영께 안심드리고 우리 종실 천만세하도록 힘을 쓰세. 요만 일로 형제가 불화하면야 되겠나? 그러구 자네게 내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그새 기회가 없어서 못했는데 오늘 이 기회에 그 당부를 할 테니 들어주게. 다른 게 아니라 자네 좀 자주 들어와 주게. 철 없는 저 사람들(대군들) 공연히 늘 궐내에서 욱적지걸하고 하면 남의 이목도 괴이하고 그간에 또 무슨 풍설훼담이 생겨날지 알겠나? 나와 자네가 웃동생이니 우리들에서 아랫동생 잘 감독해서 공연한 남의 의심 사지 않고 공연한 남의 말썽 듣지 않도록 해야겠어. 지금 전하 재상하오시고 섭정하는 모후나 종실이 없는 이 때, 우리 성상을 외신들에게만 맡겨 두고, 전하의 우익이 없으면 그 틈에 무슨 권간이 생겨날지 모를 형편일세그려. 우리 강헌 전하 평생 신고의 대업을 우리 형제가 보호하고 지켜드리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그러니까 좀 철들은 우리가 우리 사사 다툼은 그만두고 일심협력해서 성상을 보필하세.』
안평은 묵묵히 있었다. 아까 외면한 채 저편 앞만 바라보고 있던 그 고개도 그냥 그쪽으로 향한 채였다. 부르튼 것이 가라앉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정부에 좀 들어갔다 오마. 제제(諸弟)들과 함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나 읽으며 강헌 전하의 위업이나 제제들에게 해설해 주어 주게, 아직 저 매부(영양위 정종도 의빈부(儀賓府)에서 방금 건너왔다)는 물론이요, 우리 형제 중에도 염(琰─영응대군) 같은 소년은 모르는 성업이 많으니까, 좀 강논해 주게.』
수양은 안평에게 매부며 동생들을 용비어천가를 해설해서 건국의 위업을 회상케 해 주기를 부탁하고 정부로 갔다.
의정(議政)은 황보인(皇仁甫)과 김종서(金宗瑞)가 있었고 좌우 찬성이 서향하여 있었고 그때 마침 신숙주(申叔舟─集賢殿 校理)가 무슨 계목을 가지고 의정께 뵈러 와 있다가 대군 행차라는 바람에 마주 나와서 맞아들였다.
절하여 맞는 정승들에게 수양도 상례하여 응하고 두 정승의 사이에 들어가 좌정하였다.
한훤의 인사가 끝이 났다. 소심하고 그 위에 이미 늙기 때문에 세상 만사를 어름어름하여 무사히 지나기만으로 일삼는 수상 황보인은 말썽 많은 대군의 내림에 양손을 비비며 연방 미소하였다. 김종서도 억지의 미소를 띠어 보였다.
서로 인사가 사귀어지고 평범한 이야기가 한참 사귀어졌다. 그런 뒤에 수양은 드디어 오늘 가져온 문제를 꺼내었다.
즉, 근일 건주(建州)의 야인(野人)들이 자주 변경을 침범하는데 신왕 즉위지초에 국위를 크게 떨치고 야인의 불손을 벌하는 뜻으로 건주 정벌을 하면 어떠냐 하는 문제였다.
좌의정 김종서(최근까지 남지(南智)가 좌의정이고 김종서는 우의정이다가 남지가 병으로 사직하고 김종서가 오른 것이다)는 세종의 명을 받아 오래 색북에 가있으면서 그곳의 야인을 토벌하여 위엄을 그곳 오랑캐들에게 떨치고 그 지방을 드디어 조선영토로 고정시킨 것이다. 함길도(咸吉道─즉 육진이다)는 이렇게 하여 조선 땅이 된 것이었다.
그 때에 왕(세종)은,
『과인(寡人)이 없으면 이 일을 시킬 사람이 없고, 과인이 있을지라도 김종서가 없으면 역시 이 일은 능히 행치 못한다.』
하여 김종서의 충직을 칭찬하였다.
그 때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로 쫓겨간 야인들이 근자에 또 자주 변경을 침범한다. 그러나 세종 이미 떠나서 지휘할 분이 없고 선왕(문종) 재위 이년 석달은 무위무사로 보냈는지라, 야인들은 더 교하게 되어 이즘에는 꽤 우리 땅 깊이까지 들어오고 한다.
이제 이것을 그냥 버려 두었다가는 세종 때에 많은 노력의 대상으로 얻었던 피의 대상을 도로 잃을 염려가 있다.
이 신정지초에 야인들을 토벌하여 국위를 떨치기 겸 웬만 하면 좀 더 국토 확장까지도 해 보면─이것이 수양의 벼르던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어제도 함길도 관찰사에게서 야인 내침의 장계가 왔는지라, 이 기회에 치자, 세종 계실 때 직접 그 충에 당하였던 김종서가 지금 새로 좌의정이 되었으니 김종서는 혹은 찬성하지 않을까. 다른 일 같으면 김종서도 못 재상들과 일반으로 무위무사만 꾀하기 쉽겠지만 야인 토벌에는 혹은 찬성할지도 모르겠다. 이리하여 수양은 정부에 그 건의를 한 것이었다.
그랬더니 김종서는 첫마디에 그 건의를 물리쳤다.
『유주(幼主) 재상(在上)하오신 이 때 그런 큰 일을 어찌 친재(親裁) 없이 시작하겠오이까?』
그래도 야인 토벌이라면 그렇게 냉담히 거절할 줄은 의외였다. 수양은 벙벙하여 종서를 보았다.
─인젠 늙었구나……
겁을 내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럼 대감!』
『말씀하세요.』
『성조(聖祖)께서 그만치 노력하오서 얻으신 땅─용흥지기(龍興之其)─이씨 발상지)를 내버리잔 말씀이요?』
─수양은 힐문하는 듯이 말하였다.
『그럴 리야 있습니까?』
『그럼 야인들의 밟는 발에 버려 두자는 건 웬 일이오?』
『버려 두자는 게 아닙니다. 성재를 기다리잔 말이외다.』
이 정부에서 매사에 수양에게 반대하고 반항하는 태도를 취하는 종서였다.
『그럼 만약 야인의 내침이라는 것이 좌상(左相)께도 괘씸하게 보이면 계청해서 윤허를 얻어서라도 속히 결말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마땅히 정승들이 할 일……』
종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리를 좌우로 저으면서 외면을 하고 말았다. 수양은 다시 영의정 황보인에게 향하였다.
『영상 대감의 의견은 어떠시오?』
자기게로 날아오는 질문에 인은 당황히 얼굴에 미소를 장식하였다.
『허허허, 노생들이야 뭐, 전하의 분부대로만 할 게지오.』
『분부 안 계시면?』
『…………』
『안 계시면 국토를 다 잃어도 가만들 있겠단 말씀이오?』
일단 외면하였던 종서가 머리를 획 수양에게로 돌렸다.
『나으리, 정부의 일은 의정들이 잘 맡아서 하오리다. 나으리 걱정 안 하셔두.』
웬 참견이냐는 어조였다.
『그럼 좌상, 어떤 거조를 하시려오?』
『그 때 보아서 하지요.』
『그 때라니? 지금 벌어져 가는 일을……』
『…………』
종서는 다시 대답이 없었다. 허리만 저었다.
『여보소, 정승네들 왠 참견이냐구 하시겠지? 그렇지만 우리 성조 성종께서 이룩하신 땅을 한치라도 남에게 잃기가 후손된 마음에 분해요. 그래서 하는 말이외다. 좌상이 야인 토벌의 경험도 계시니 의향이 어떠세요?』
외면을 하여도 그냥 추궁하는 바람에 종서는 외면을 한 채로 허리를 그냥 저으며 인(황보인)에게 향하여,
『대감 이즈음 손발이 좀씩 떨려 오는데 이게 아마 늙은 탓이겠지요? 대감은 안 그렇습니까?』
전혀 딴 말을 시작하여 수양의 말에 대답을 피하였다.
인과 종서의 사이에는 딴 말이 몇 마디 왕래하였다. 이 전혀 자기를 무시하는 태도에 수양의 젊은 마음에는 차차 노염이 움돋기 시작하였다. 두 정승 사이에 쓸데없는 객설이 그냥 계속되는 중간으로 수양은 끼어 들어갔다.
『정승네들, 종친이 들어와서 국사를 의논하자는 데 대감네들은 객담만 하시니 웬 일이외까? 어디 좌상, 야인 토벌에 대해서 대감의 의견을 들읍시다.』
종서는 수양에게 얼굴을 돌렸다. 불쾌한 표정이 분명히 나타났다.
『나으리, 나으리는 종실의 장로시니 종실들이나 잘 거느려 줍시오. 국사는 정부에서 할 일이니 종실에까지 염려를 안 끼치리다. 온 참!』
마지막의 「온, 참」은 종래 수양의 노염을 폭발시키고야 말았다. 아까 안평에게 서안을 두드렸던 수양은 여기서 또다시 종서에게 서안을 두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감네들이 태평세월인 듯이 아무 일도 않고 있으니 종실에서 참견하는 게 아니오? 국록을 자시고 국록에 대해서 무얼로 보답을 하시려오?』
종서도 여기서 마주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수양을 마주 보며,
『우리 노생들은 현능(顯陵─문종)께 고명을 받자와 금상전하를 보필할 임무가 있어요. 금상 아직 유충하오신 이때 사(師)를 일으켜 색북에 보냈다가 도리어 욕을 보면 지하의 현능께 무슨 낯으로 뵙겠오? 나으리께서 대신 사죄해 주시겠오?』
『실국(失國)보다야 낫지 않으리까.』
『흥사토이(興師討夷)하면 반드시 실국하게 됩니까?』
『나으리, 나으리는 현능께 고명을 받으신 바가 아니지요?』
『…………』
『노생들은 고명을 받자와 유군을 보호할 책임이 있어요. 잘 들으세요. 보좌만이 아니라 보호올시다.』
보호라고 꼬집어 말하는 태도에 수양은 정면으로 종서를 마주 보았다.
『보호라는 건?』
『네, 말하자면 강성한 대군들의 날개 아래서 미약하신 금상전하를 보호하라는 말씀이외다.』
『무얼?』
수양은 팔을 걷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수양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오른손은 종서의 멱을 잡았다. 동시에 왼손은, 종서의 따귀를 향하여 날아갔다.
『간물! 영능(英陵─세종)의 유교로다! 불초 수양은 영능의 유교로 현능도 보좌했거늘 하물며 금상이랴. 너희 같은 간물은……』
인이며 좌우찬성이며 사인 검상(舍人檢詳)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일어섰다. 인은 와들와들 몸을 떨었다. 제 자리에 일어 선 채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을 빌며 떨고만 있었고, 다른 재상들도 어쩔 바를 몰라서 모두 떨기만 하였다.
연하여 서너 번 내리는 수양의 손뼉에 종서의 코에서는 코피가 났다. 또다시 손을 들려 할 때에 웬 다른 손이 수양의 손을 잡았다.
돌아보니 계목 가지고 들어왔던 신숙주가 꿇어앉아서 수양의 손을 잡고 있다. 숙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으리 참으서요. 늙은 대신네가 망령된 말씀을 올렸사오니 나으리께서 참으서요.』
수양은 굽어보았다. 숙주의 유명한 영특한 눈에 눈물을 가득히 고여 가지고 양손으로 자기의 손을 잡고 간하는 양이 진실로 기특히 보였다. 수양은 종서의 멱을 풀어놓았다.
『대감, 대감이 기력이 없어서 색북 원정이 겁나면 겁날 게지, 왜 종실을 걸고 들어가오? 영능(세종 고명하시는 자리에는 대감 당시에 지위 얕으니 못 참례했지만 여기 영상 황보 보국이 동참해서 목도했을게요. 그 때……』
그냥 계속하는 중간을 인(仁)이 연해연방 미소하며 말을 끼었다.
『아무렴요. 보고 말고요. 양녕대군 부액 하에 영능 기석합시고 현능은 당시 동궁으로 영능전 부복합시고.』
『금상은 세손으로 시좌합시고 대군께 고명합시든 광경이 노생 오늘도 서언히 눈에 보이어요.』
그러나 수양은 인의 말에는 대답도 않고 숙주를 다시 굽어 보았다. 일품 정승들이 벌벌 떨며 어쩔 줄을 모르는 마당에 일개 오품관으로 뛰쳐 들어서 호랑이 같은 자기의 손목을 잡고 눈물로 간을 하는 그 모양은 기특하였다. 영능 생존시에 늘 수양께도 숙주는 큰그릇이라고 하시던 그 눈은 과연 밝았구나. 수양은 빙그레 웃으며 돌아섰다. 그러고 좌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대체 국왕을 보좌한다 하는 건 국가를 안목에 두고 이 국가에서 이 임금이 좋은 임금이 되시도록 하는 것이지 국가에는 이롭건 해롭건 국왕의 일신과 마음만 평안히 해드리고자 하는 건 참된 보좌가 아니라오. 혹시는 고간(苦諫)을 할 때도 있고 혹은 쟁간(爭諫)을 할 때도 있고 자기의 생사를 안 돌아보고 죽기를 기써서 내왕(乃王)과 싸울 때라도 있을 것이지 국왕 일신의 안일만 꾀하는 건 신도에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이야말로 잘못하면 실국(失國)하는 대변까지도 생길 염려가 있는 일이니까 이 점을 잘 알아차리세요. 아까 좌상은 나더러 웬 간섭이냐고 합니다마는 대신이 실정을 하면 나라이 패하는지라 내가 다만 종실이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나라 신민의 한사람으로 근심스러워서 한 말이외다. 그걸 편벽되이 고명 받았다, 안 받었다 해서 보필할 권리가 있다 없다하는 건 나라에 불충되고, 내왕께 불신(不臣)된 일, 그만 일도 모를 좌상이 아니언만.,...,』
『암, 그렇구 말구요.』
응하는 사람은 영상 인이었다. 종서는 코피 닦는데 정신 팔린 체하여 대답이 없었다.
젊은 왕자가 늙은 대신을 절절히 훈계하는 마당에 다른 재상이며 관원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듣고 있었다.
일찍이 부왕(세종)이 하신 말씀─내가 있어도 종서 없으면 육진개척의 대업은 못한다 하신 그 말씀은 종서의 용맹을 칭찬한 말씀이 아니라 「지혜는 없으나 벨은 곧아서 지자(智者)가 위에서 시키면 직자(直者)는 아래서 딴 생각 없이 봉행하리라」한 뜻에 다름없었다. 은대신 각료가 반대하는 가운데서 종서의 「직」이 없었더면 육진 개척의 대업은 결코 달성치 못할 것이었다. 굉굉히 울리는 반대성 가운데서 적임자 종서를 발견한 부왕의 명안은 귀신 이상이었다. 그 때 부왕이 하루를 멀다 하여 (서울에 앉아서) 현지의 종서에게 서찰로 격려, 지휘─지도(地圖)를 앞에 놓고 베푸는 전략은 어쩌면 그렇게도 주밀하고 상세하고 밝아서 베푼 꾀가 어긋나 본적이 없었고 내린 지휘에 착오난 일이 없었다. 종서의 직(直)은 충성되게 이 분부를 봉행하여서 대업을 무난히 성취하였다.
그러나 꾀 없는 종서는 위에서의 좋은 지휘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할 사람이다. 게다가 곧은 밸 위에 과거의 공을 자랑하는 자긍과 자신(自信)이 있는지라 남의 말에 굴하기를 싫어하고 또한 보좌와 보호를 혼동하고 「충」의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늙은이」에 지나지 못하였다.
재상자(在上者)는 내왕(乃王)을 잘 보좌해서 현군명주가 되도록 해서 우으로는 재천의 조종의 영께 안심을 드리고 겸해 내왕으로 하여금 만세의 영명을 남기게 하고 아래로는 억만 서중으로 땅을 치며 노려 부를 수 있는 성대의 일민으로 되게 해야 하는 것─내왕의 과오(過誤)가 있으면 죽음으로 간쟁도 해야 하고 그릇된 분부가 있으면 거역도 해야 할 겝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유유낙낙 군명이라고 그냥 봉행하고 국사는 되었건 안되었건 내왕께 근심만 안 드리고자 감추고, 피하고, 맹종하고 하는 건 신도에 어긋날 뿐 아니라 내왕을 만세의 용주가 되게 할지도 모를 일이외다. 내가 단지 종실의 한 사람이라고 권(權)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이 나라의 신민의 한 사람이라는 자격으로 국사가 근심이 되어 하는 말이니 잘 생각해 보셔서 선처하십시오. 유주 재상(在上)하오시고 법정하는 연장자 없는 이 때 나라에 손톱눈 만한 흠단이 생겨도 책임질 사람은 대감네들─지중하고 지난한 세월에 지중하고 지난한 자리에 있는 대감네들이 코나 어루만지며 손이나 비비며 지내서야 되겠오이까? 일생을 평온히 지낸 대감네들이 만년(晩年)에 「무능(無能)」 두 자의 아호(雅號)를 얻어서야 되겠오이까? 만절(晩節)을 더럽히지 않도록─그 위에 모모(某某)가 유주를 잘 보좌하여 이런 성대(聖代)를 이룩했다 하는 광휘 있는 이름을 청사에 남기도록 힘을 쓰서요. 수양 무능 무재하지만 대감네들이 팔 걷고 국사에 헌신하시려면 수양은 종중(宗中)을 모아서 종가까지 합력해서 대감네들의 노력에 만 분의 일이나마 후원을 하오리다. 우리들의 힘으로 어디 빛나는 방가를 만들어 봅시다 그려.』
수양의 얼굴은 차차 빛이 났다. 눈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그러나 인(仁) 이하의 신료들은 아무 말도 없이─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도 알아보기 힘들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숙주(叔舟)만이 꿇어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