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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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왕은 늘 그 생각을 하였다.
진평의 인물 그것은 왕자(王者)만이 가져야 할 것이다.
진평의 무술(武術)이 능함을 의미함이 아니다. 진평의 무술은 차차 시대가 나약해 가는 지금에 있어서는 당대에 제 일류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무술이 능하댔자 한낱 무사의 재률에 지나지 못한다.
병법에 능하댔자 또한 한낱 선비의 재률에 지나지 못한다.
정치에 능하댔자 한낱 재상의 재률에 지나지 못한다.
진평의 인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위압하는 힘이 있었다. 꼭 같은 행동이나 말을 하여도 어째서 그런지 웃사람의 기품이 보였다. 동궁과 진평이 꼭 같은 자비스러운 일을 한다 치더라도 동궁의 언행은 「인자스럽다」라고 평할 종류의 것이고, 진평의 언행은 「긍휼히 여긴다」고 평할 종류의 것이었다. 어째서 그런지 어디가 다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치밀한 주의력을 가진 왕은 늘 이 점을 관찰하고 속으로 근심하였다.
당신이 천추만세한 뒤에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물론 인자한 임금은 될 것이다. 지금의 재상 황희는 그때쯤은 한 더미 흙으로 화하게 되겠지만 정인지, 김종서, 남지─내려가서는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成三問, 申叔舟, 朴彭年) 등등의 인물이 잘 보필을 하면 혹은 훌륭한 왕업을 이룩하기도 하리라.
그러나 보필의 명신들의 힘으로 이룩한 왕업이, 명군 독재로 이룩한 왕업에는 비기지 못할 것을 잘 안다. 그러므로 지금 세자의 단지 인자롭다는 단 한 가지의 장점(長點)만으로 국정을 보살핀다는 것을 왕은 늘 부족하게 보고 쓸쓸히 여기었다. 인자와 동시에 힘이 필요하고 관대(寬大)와 동시에 억셈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자는 한편쪽만 가졌지 다른 한편쪽은 못 가졌다. 이것이 마음에 켕기었다.
『유가 맏으로 태어났더라면……』
지금 당신이 기르는 장래의 명신들을 거느리고 진평이 이 국가를 요리할 날이 있으면 그때야말로 훌륭한 나라를 이룩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평은 둘째로 태어나고 동궁은 나약한 것을 어찌하랴.
언젠가 이런 근심을 정승 맹사성(孟思誠)에게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맹사성은 간단히,
『그러면 현 동궁을 폐합시고 진평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오면 좋지 않습니까?』
고 대답하였지만 여기 대하여서는 왕은 당연히 그 의견을 눌렀다.
이 왕은 본시 선왕(先王)의 원자(元子)가 아니고 세째 아드님이었다. 이 왕의 위로 맏아드님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있었고, 둘째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있었다. 세째가 즉 당신이었다. 당연한 순서로 본시는 맏아드님인 양녕대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세 분 왕자의 아버님되는 선왕(先王─太宗大王)은 웬 까닭인지 맏아드님 되는 세자(양녕대군)를 몹시 미워하고 셋째아드님 되는 충녕대군(忠寧大君─現王)을 유난히 사랑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이미 세자로 책봉되었던 양녕대군은 정신에 이상이 있다고 폐하여 버리고 세째 아드님인 지금의 왕을 다시 세자로 책봉하였다.
당년에는 아직 연치도 적고 하여 그런 데 대해서 그다지 관심치 않고 그냥 지냈지만 아버님인 선왕이 승하하고 당신이 등극한 이래로는 늘 그것이 마음에 꺼리었다.
「내 형 양녕대군이 본시 보위(寶位)에 오를 것을 순서가 바뀌어서 내가 이 자리에 올랐거니.」
이런 생각이 늘 들어서 형님되는 양녕대군을 보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았다. 그 위에 삼사(三司)는 연하여 양녕대군이 여사여사한 죄를 지었으니 벌합시사 하는 상소를 하였다.
이런 무리 가운데는 이런 상소를 하는 것이 왕의 마음을 흡족케 하는 것이어니 하는 생각으로 왕의 총애를 사고자 하는 간악한 무리도 있었다. 또는 양녕의 사람됨이 범인(凡人)이 아니라 양녕을 그냥 두었다가는 왕의 지위가 위태로울 것 같아서, 양녕을 저퍼하고 꺼리어서 제해 버리고자 하는 무리도 있었다.
이러한 위태로운 입장에 있어서 현인(賢人) 양녕이 처신을 잘하기도 하였지만, 왕 또한 굳게 양녕을 믿고 그의 인격과 그의 견식과 그의 우애(友愛)를 굳게 믿어서, 간사한 무리와 소인배들의 불어 올리는 온갖 참소와 비난과 음험한 궤휼을 일축하고, 형을 옹호하여 왔기에 양녕의 생명이 지금껏 탈없이 부지되어 왔지, 왕의 우애심에 약간의 틈새라도 있었으면 양녕은 벌써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었다.
이 현철한 형과 현철한 동생, 세상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사면에서 불어넣는 참소에 형제간에 유혈지극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았을 것이었다.
만약 선왕으로서 처사를 옳게 하여 맏인 양녕을 폐하지 않고 양녕에게 위를 전하고, 두 동생 효령과 충녕으로 하여금 형을 보좌케 하여 삼 형제의 합친 힘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 뻔하였나. 선왕 처사가 그릇하기 때문에 형제간에 우애는 늘 협위를 받고 거북살스럽고도 전전긍긍한 세월을 보냈다.
선대(先代)에서 세자위(世子位)의 순서가 바뀌기 때문에 불쾌하고 거북살스런 경험을 여지없이 체험한 이 왕은, 당신의 대에서는 다시 그런 일이 안 생기게 하려고 그 점은 퍽 마음썼다. 선대에서는 요행 형 양녕도 현인이요 왕 당신도 형에게 못지 않은 사람인 것을 스스로도 잘 아는 바로서, 요컨대 양녕이 폐사(廢嗣)되고 당신이 책봉되었더라도 국정(國政)상에는 우열이 없이 처리되었지만 당신의 아드님은 당신네 형제분과는 다른 점이 있다.
즉 지금의 세자는 나약한 한 개 선비로서, 나약하기 때문에 의심이 많고 투기심이 많아서 왕자(王子)의 재률로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맏아드님인 세자가 이러한 반대로, 둘째아드님인 진평은 또 걸출 중의 걸출로서,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당당한 왕자(王者)의 재률이다.
선대(先代)에서 맏을 폐하고 세째를 책봉한 것은 엎치나 뒤치나 일반인 무의미한 일이었지만, 지금 대(代)에 있어서는 맏을 폐하고 버금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나약한 맏을 폐하고 억센 버금을 추켜세운다.」
옳은 말이다. 사리 당연한 일이다.
일견 과연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일견」뿐이다. 왕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지금의 동궁은 선대의 세자이던 양녕이 아니다.
현인(賢人) 양녕은 부왕의 뜻으로서 까닭 없이 세자의 위에서 밀려 떨어져서도 쾌활 호담히, 떨어진 자리를 싫다 하지 않고, 이전의 위를 연연해하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호활한 생애를 보내지만, 지금의 동궁이 만약 선대의 양녕과 같이 까닭 없이 폐사가 되면?
암운이 생길 것이다.
비극이 생길 것이다.
혹은 참극이 생길는지도 알 수 없다.
당신의 대에 있어서는 형님 양녕대군이 고금에 다시없는 현인이기에 원만하게 일이 처리되었지만, 동궁의 대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게 못 될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다. 장차 이씨 만대의 장구지책으로 보아서도 적장(嫡長)이 위를 잇(繼)는다는 법칙을 세워 둘 필요가 있다. 적장(嫡長)이 뒤를 잇는다는 법칙을 확립하여 두지 않으면 장차 대대로, 이래서 폐한다 저래서 폐한다하여 후사 문제로 다툼이 늘 생길 것이요, 유혈지극(流血之劇)까지도 안 생기리라고 어찌 보증하랴. 과거로 보아서 태조 이 성계, 이씨 조선을 창업한 이래 정종, 태종─내려오기 겨우 당신의 대까지 네 대째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 네 번 다 순탄히 왕위가 제 순서대로 계승되어 본 일이 없었다.
기위 과거는 그러했지만 인제부터라도 다시는 쓸데없는 비극은 되는 껏 피하기로─적출(嫡出), 같은 적출 중에서는 선후의 순서로─이 법칙을 세워 두려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아무리 세자가 그 사람됨이 부족하지만 절대로 갈지 않으려는 방침이었다. 방침은 그렇지만 늘 왕의 눈앞에 보이는 동궁의 나약한 모양과, 진평의 왕자다운 기품은 왕으로 하여금 뜻하지 않고 탄식성까지 내게 하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