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양/16
16
편집세종이 승하한지 일년 남아가 지났다.
그때는 왕(문종)의 건강 상태는 말이 안 되게 되었다.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지는 도저히 못한다. 무심코 몇 번 갑자기 일어나다가, 정신이 아득하여 다시 주저앉은 뒤부터는 몸을 일으킬 때는 한참을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사지를 약간씩 움직여서 일어날 준비를 충분히 한 뒤에야 내관을 불러서 부액을 시키고 그러고도 무릎을 손으로 짚어 가면서야 일어나고 하였다.
어떤 날 왕은 조회를 받기 위하여 근정전에 났다. 즉위한 지 일년 남아 뒤, 신미 년 유월 어떤 날이었다. 품반품서(品班品序)에 따라서 정하에 정렬하여 국궁하고 서있는 군신들을 왕은 피곤한 듯이 굽어보고 있었다.
배례가 끝난 뒤에 왕은 편전으로 입어하여야 할 것이었다.
입어하려면 몸을 일으켜야 할 것이었다. 시종이 부액을 하기 위하여 용상 뒤로 돌아갔다. 몹시 힘을 들여서야 일어서는 왕인지라, 시종은 뒤에서 옥체를 붙안고 조금 힘을 주었다. 그러나 옥체는 무겁기가 천근 같았다. 조금 더 힘을 들여 보았지만 왕은 일어날 듯싶지 않았다.
대군(大君) 열에 있던 수양은, 왕이 하도 오래 그냥 용상에 있으므로, 눈을 약간 치뜨고 용상을 우러러보았다.
왕은 눈을 감고 있다. 머리가 축 가슴에 묻혀 있다. 뒤에 돌아가 있는 시종들은 몰랐지만 용상 맞은 편에 있는 수양은, 용안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알았다. 뜻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 하였다. 그러나 감히 그럴 수도 없어서 근심스런 눈으로 (곁눈으로) 용상만 주의하고 있었다.
내관들은 옥체를 일으키려고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그 힘에 옥체는 용상에서 떠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왕의 상반신은 맥없이 앞으로 수그러졌다. 거기 깜짝 놀라서 시종들이 옥체로 정신이 팔리는 순간, 옥체는 시종들의 팔에서 용상 우으로 푹 쓰러졌다.
수양은 깜짝 놀랐다. 이것저것 돌볼 처지가 아니었다. 한 걸음 뛰고 두 걸음 뛰고 세 걸음 뛰어서 용상 아래까지 이르렀다. 용상에 뛰쳐 올랐다. 옥체를 붙안아 일으켰다.
『전하! 전하!』
그 순간 왕도 머리를 들었다. 그때야 왕도 정신이 회복된 모양이었다. 겁에 뜨인 안정을 두어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인젠 괜찮으이.』
비교적 명료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수양더러 내려가라 하고 내관에게 부액을 분부하였다.
그러나 수양은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음이 안 놓였다.
『전하. 신께 의지합시고 입어하옵시다.』
평소에 꺼리는 동생이로되, 이 비상한 때에 민활하게 당신을 보호한 공적을 가상하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은 수양의 건장한 팔에 당신의 몸을 맡기었다.
수양은 왕을 편전으로 모시지 않고 내전으로 모시었다. 그러고 내관을 명하여 금침을 피게 하였다.
극도로 몸이 쇠약하였던 왕은, 조회의 피곤 때문에 일시 상기를 하였던 것이었다. 왕이 안정하여 고요히 잠드는 것을 보고서 수양은 침전을 물러 나왔다.
수양은 빈청으로 나왔다. 대신들은 모두 아직 당황하여 두선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양이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들 눈을 수양에게로 향하였다.
『지금 주무시우.』
수양은 간단히 그들의 근심에 대답해 주고 빈자리에서 묵연히 앉았다.
대신들은 단지 시재의 변괴만 걱정하지만, 수양에게는 다른 커다란 근심이 있었다. 왕의 건강 문제였다.
왕은 이전 동궁 시절부터 본시 약질인 데다가 학업에 과히 힘을 써서 더할 나위 없이 건강이 상하였다. 그렇던 중에 또한 부왕의 환후가 차차 중하여 가매, 본시 효성 많은 왕(당시의 동궁)은 침식을 잊고 부왕의 간호를 하였다.
부왕의 환후라는 것은 무슨 갑작스런 병환이 아니고 하도 과로(過勞)하기 때문에 골수까지 스며든 것이라 일조 일석에 더 중하여질 것도 아닌 동시에 일조 일석에 악화할 것도 아니었다. 시름시름 앓는 것이, 조금씩 차차, 중하여 가는 것이었다.
그런 장구한 환후를 동궁은 한결같이 시중하노라니 동궁의 신체도 차차 차차 더 약하여 갔다. 그런 중 동궁의 성질이 또 매우 심약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일도 크게 걱정하고 근심하여, 이것 때문에도 건강은 더 나쁘게 되었다.
동궁은 장래의 이 나라의 임금이라 그 건강이 근심되어 수양은 늘 형께 건강에 주의하기를 권하였다.
보약을 자시고 기름진 음식을 부르기를 늘 권하였다. 그러나 동궁은 한결같이,
『대전께서 환후가 계신데 신자가 무슨 흥이 난다고 보약을 먹고 무엇을 잘 살자고 기름진 음식을 먹겠는가.』
고 거절하곤 하였다. 수양이 자기의 뜻으로 동궁께 쇠고기 찜을 바친 일이 있었다. 동궁은 그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며 음식 그릇을 뜰로 내어 던진 일까지 있었다.
『어느─어느 고얀 놈이 이런 짓을 했느냐?』
동궁은 몸을 떨면서 이렇게 호령하였다. 그리고 수양대군의 분부로 그렇게 했다는 대답을 듣고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마지막에 토하는 듯이,
『고약한……』
한 마디만 하고는 수라반을 물리고 말았다.
그러나 부왕 생존 중은 육즙(肉汁)만은 간간 받았다. 그렇던 것이, 부왕 승하하고 동궁이 신왕으로 되어 등극한 이래는 나락과 채소 밖에는 절대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어물(魚物)도, 고기도, 죄 멀리 하였다. 복상 삼 년간은 비린내 나는 음식은 절대로 멀리 하였다.
「父之法三年不改.」(아버지의 세운 법은 삼 년을 고치지 않는다)라 하여, 정사 제도 등등도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냥 두었으며, 삼 년간을 비린내 나는 음식이며 계집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였다.
영양 부족과 운동 부족으로 왕의 형색은 나날이 초췌하여 갔다. 걸음걸이까지도 비칠비칠하여 바로 가지를 못하였다.
이것을 가장 근심한 것은 수양이었다.
『전하. 옥체를 보증하오시는 것이 효도올시다. 어버이의 끼치신 옥체를 손상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올시다.』
이렇게까지 말해서 형왕으로 하여금 영양을 섭취케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왕은 늘,
『성현의 가르치신 바는 못 어기느니.』
하여 수양의 말을 거절하고 하였다.
이렇게 지나기를 일 년 반……
정전에서 조회를 받다가 상기한 날, 수양은, 빈철에서 대신들과 등지고 돌아앉아서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였다.
이러다가는 형왕도 얼마를 지나지 못하여 부왕의 뒤를 좇게 될 것이다. 부왕께 효도를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왕께 보양을 하도록 진언을 해야겠다. 어떤 견책을 자기는 받을지라도 왕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또는 떠나신 아버님의 영을 위하여 왕께 강권이라도 해야겠다.
수양은 내관을 불러서, 왕이 아직 누워 계신지 기침하셨는지 알아보고, 기침하셨다는 대답을 듣고는, 들어가 뵙겠다는 말만 통하고 윤허는 내리기 전에 (왕은 수양을 꺼리므로 거절할 줄을 미리 알고) 내전으로 들어가서 영외에 읍하고 섰다.
『수양 등대하왔습니다.』
왕은 물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면한 채 대답도 없었다.
『전하, 신 수양이 아뢸 말씀이 있아와 등대하였습니다.』
왕은 비로소 약간 머리를 돌렸다.
『아까는 수고했네.』
『신이 한 말씀 상계하고저……』
『무슨 말인가?』
『늘 아뢴 바여니와 옥체를 보중하오서!』
또 그 소리냐 하는 표정이었다.
『맛나는 음식을 먹으란 말이지?』
『…………』
『계집도 부르고.』
『아니옵니다.』
안정은 수양에게로 돌아왔다.
『고서를 읽었으면 알 것이지마는 자네는 나를 만고의 죄인이 되란 말인가?』
『아니옵니다.』
『아니란?』
용안에는 차차 노염이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천 가지 죄 중에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어. 나더러 불효자가 되란 말인가?』
『옥체를 손상하는 게 더 효도에 어그러지지 않을까 어리석은 소견엔 그렇게 생각되옵니다.』
『자네는……』
왕은 노염 때문인지 숨찬 때문인지 한 순간 말을 끊었다가 계속한다.
『나하구 언쟁을 할 셈인가?』
수양은 딱 막혔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네나 계집 부르고 주육 부르고 질탕히 놀게. 나는…… 난……난…… 차마 못 하겠네.』
『전하!』
『나가게!』
『전하!』
『냉큼 나가게.』
『전하. 삼사하소소. 백성이 웁니다. 선대왕께오서 근심하십니다.』
『자네 같은 불효자를 두셔서 선왕께서도 걱정하시겠네. 냉큼 나가게!』
할 일 없었다. 수양은 초연히 물러 나왔다.
무거운 걸음걸이로 물러 나오다가 수양은 생각난 일이 있었다. 부왕 임종 전에 수양 자기에게,
『너로 당하지 못할 일이 있거든 양녕 백부께 의논해라. 백부는 현인이시다. 동궁 심약해서 비록 마음에 없는 일이라도 백부의 명령이면 차마 거역을 못 하리라.』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백부를 찾자. 백부께 의논을 하자. 이 무겁고 중한 임무를 백부께 맡기자.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수양은 백부 양녕을 찾아서 이 무겁고 어려운 짐을 떠맡기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