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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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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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2004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2003년 10월 13일 월요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과 의원 여러분,

저는 지난주에 국민의 재신임을 받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여러 날을 두고 고심했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제가 해 왔던 일을 하나하나 돌이켜 보면서 자성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 특히 서민 여러분께 즐거움과 기쁨을 드리지 못한 점이 가장 가슴아픈 일입니다. 서민들은 장사가 안 돼서 울상이고, 택시기사들도 손님이 없어서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잦은 비와 냉해로 자식 같은 농사를 망치고 절망에 빠져 탄식하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여기에 태풍까지 겹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차마 밤잠을 이루기도 어렵습니다.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서 서민들은 삶의 의욕마저 위협하고 있고,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은 정치권과 언론과 싸움만 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제 주변사람의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습니다. 차마 국민 여러분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경제는 시간을 두고 최선을 다하면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밖에 국정도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정치권의 일상화된 부정부패와 그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입니다. 대통령 선거에는 으레 수천억원의 돈이들고, 국회의원 선거에는 수십억원이 든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고, 또 이기기 위해선 어떤 돈이든 거두고 무슨 수단이든 쓰는 것이라고 정치인도 믿고 유권자도 믿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덕적 마비증상을 고치지 않고는 어떻게 우리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경제 발전도 없고, 선진국 진입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기업의 장부가 압수될 때마다 비자금이 나오고, 비자금이 나오면 당연히 정치권으로 연결되는 이 낡은 사슬은 반드시 끊어내야 합니다. 돈을 받은 정치인이, '나만 받았는가', '누구누구는 받지 않았는가' 하며 서로의 잘못에 의지하고 또는 정치탄압, 야당탄압이라는 핑계로 적당하게 피하고 넘어가고, 그래서 다시 비자금이 또 터지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져야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먼저 몸을 던져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국민의 의혹을 받고 있는 한 과감히 국민의 심판을 받고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해서 앞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가 철저한 조사, 그리고 고해성사, 필요하면 대사면, 제도 개혁 이런 절차를 통해서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신뢰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그리고 깨끗한 정치, 투명한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면 남은 임기동안 모자라는 솜씨로 국정운영을 통해서 해 낼 수 있는 그 어떤 개혁보다 더 큰 정치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대통령직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재신임 요구에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겠습니다.

재신임을 하는 동안 얼마간의 국정 불안과 국정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진통은 감수해 나갑시다. 저부터 국정의 중심을 잡아 나가겠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치인과 공직자, 기업인, 언론인 등 모든 사회 지도층에 대해서 국민들이 당당하게 도덕적 요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원고에 없는 말씀, 한두 말씀 보태겠습니다. 저의 재신임 선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과 평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무모하게 쉽게 내린 결론은 아닙니다. 처음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최도술씨 사건에 대해서 보도를 보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그 허물이 드러나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당장 한국에 돌아가야 할 텐데 국민들을 어떻게 볼까. 국정연설이 예정돼 있는데 그 준비했던 많은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국무회의를 주재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옳은 소리, 바른 소리를 항상 해야 하는데 무슨 낯으로 국무위원들에게 옳은 소리,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과정을 눈 감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날 안희정, 노건평, 이기명, 장수천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문제들에 관해서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문제라면 큰 부끄러움 없이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공세에 시달렸지만 그러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스스로 양심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일로 끊임없는 논란과 보도가 이어질텐데 이 상황을 두고 어떻게 내가 국정에 전념할 수 있으며, APEC에 가서 세계적인 정상들과 만나서 무슨 떳떳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수사 결과 사실은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밝혀질 때까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국정의 혼란, 아니 혼란을 넘어서 바로 마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저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국민들 지지도 매우 낮지 않습니까. 여소야대 정치를 정말 모범적으로 한번 성공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부덕한 탓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해서는 정말 대통령이 제 할 일을 하기가 어렵다 할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지난 날 대통령들께서 야당의원을 빼오기 하고 정계를 개편하고 했던 그 심정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힘도 없는 것이 명백하지 않습니까. 언론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지역 정서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호남인도 아니고 영남인도 아닙니다. 그 경계 위에 서서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이런 정치적 토대 위에서 대통령이 일을 하자면 그래도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고 떳떳해야 어려움을 무릅쓰고 극복을 해 나갈텐데 지금 이 상황으로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대로는 앞으로 4년, 국정을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제게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불행이 있더라도 우리 정치를 바꾸는 조그만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나마 제 할 몫을 어느 정도는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직을 걸고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로 한번 살려보고자 결심을 했습니다. 이 점을 잘 받아들여주시고 이 결단에 대한 제 잘못과 허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자성의 결단을 계기로 우리 사회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불필요한 논란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재신임의 방법과 시기에 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국민투표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법리상 논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면 현행법으로도 국가 안위에 관한 상황을 좀더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한나라당도 그리고 민주당도 중간평가 또는 재신임을 요구한바 있으므로, 그리고 저의 재신임 선언 이후에 즉시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재신임에 있어서 어떤 정책을 결부시키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 정책과 결부하지 않고 재신임 여부를 그냥 묻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정치권이나 또는 국민들 사이에서 아울러서 정책에 관한 국민투표의 요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냥 별개로 묶어서 진행하는 한이 있더라도 재신임 그 자체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기는 12월 15일 전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이번 사건의 진실도 수사가 다 끝나고 명백하게 밝혀질 것으로 그렇게 기대합니다. 제가 12월 15일로 생각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불신임을 되었을 경우, 다음 대통령 선거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4월 15일 내년 총선과 함께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12월 15일경 재신임 투표를 하고 한두 달 동안 각 당이 대통령 후보를 준비하고 그리고 2월 15일경에 대통령직을 사임하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인 4월 15일 총선과 동시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반대로 국민들께서 저를 재신임 해 주셨을 경우 저는 다가오는 12월에 그동안의 국정 운영을 평가하여 내각과 청와대를 개편하고 국정쇄신을 단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신임 과정에서 보여진 민심을 토대로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서 새로운 국정 운영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개편된 내각과 청와대의 일체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도 12월 중순부터는 내년도의 새로운 국정운영 준비에 착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정이 조기에 안정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의원 여러분,

앞서 말씀드렸듯이, 경제가 어렵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고충도 적지 않았습니다. 경제는 참여정부 출범 시기에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가계 대출과 신용카드, 투신사 환매사태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투자와 소비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전쟁 위기, 이라크전쟁, 사스 공포까지 우리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었습니다. 정부는 신속히, 카드사의 자구 노력과 함께 금융권 공동의 카드채 만기 연장 등을 유도해서 급한 불을 껐고, 그 이후 지속적인 대책을 추진해 가고 있습니다. 금융시장은 지금 안정을 찾았고 앞으로도 안정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소비 진작과 투자 촉진을 위해서 특소세 감면과 소득세액 공제 확대, 추가경정예산 편성, 각종 규제완화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는 불경기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생활 안정에 각별히 역점을 두었습니다.

금융시장 개입을 두고 '관치경제'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그러나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야 하지만, 시장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신속히 시장을 복원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가장 무책임한 정부는 위기 앞에서 수수방관하는 정부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동산 가격은 반드시 안정시키겠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공공연히 '강남불패'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택가격 안정은 서민생활 그 자체입니다. 주택가격의 폭등은 임금 인상을 불러오게 되고, 임금 인상은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기업의 생산원가에 바로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서민생활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경제를 위해서도 부동산 투기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정부는 종합적인 부동산 대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할 때에는 강력한 '토지공개념제도'의 도입도 검토하겠습니다. 토지는 국민생활과 기업 경영의 필수적인 요소인데 반해서 확대 재생산이 불가능합니다. 일반상품과는 달리 취급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교육비 문제는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진 않겠습니다. 연말까지 대책을 내놓겠습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교육혁신 방안도 함께 마련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힘이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우리 경제는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경기가 회복된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 오랜 기간 동안 높은 성장이 지속되도록 성장잠재력을 확충해 나가야 합니다. 정부는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술 혁신과 우수인력의 양성을 위한 정책이 그 핵심이고 또한 착착 준비되어 가고 있습니다.

10대 성장동력산업을 선정하여 투자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와 제도 개혁도 이미 시작하여 진행중입니다. 시장개혁, 그리고 사회개혁은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사관계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건 간에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노사분규가 훨씬 많고, 또 그 과정이 지나치게 격렬해서 노사 모두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고 우리 경제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투쟁방식은 바뀌어져야 합니다. 타협을 배제하고 처음부터 파업으로 들어가는 이런 방법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 것입니다.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시대도 이제 지나갔습니다. 기업도 투명한 경영으로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공권력 이전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노조를 진지하게 설득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노사관계 혁신방안이 반드시 합의를 이루어주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노사간의 논의 결과와 국민 여론을 토대로 해서 올해 말까지는 노사관계 혁신방안을 확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노사분규를 절반씩 줄여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인력과 기술, 산업과 자본의 집중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지방으로부터 새로운 동력을 찾아내야 합니다. 서울로 서울로만 올라오던 이삿짐 보따리가 다시 지방으로 되돌아가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국 16개 시 도가 독자적인 산업 경쟁력을 갖춘, 역동적인 발전의 주체가 되도록 지역산업을 육성하고 그를 위해서 지방대학에 대한 투자도 과감하게 늘려가겠습니다.

행정수도 이전도 차질 없이 추진하겠습니다. 올해 안에 입지 선정 기준을 발표하고 내년 중에는 후보지가 선정됩니다. 지금 수도권의 부동산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이 계획은 가능하면 빠르게 앞당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이번 국회에 제출하겠습니다. 조속히 통과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지금 국회에는 우리 경제의 성장력 배양과 민생의 안정,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 꼭 필요한 여러 법안들이 계류되어 있습니다. 가능하시면 신속히 심의하시어 차질 없이 통과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WTO 체제와 더불어서 자유무역협정(FTA)은 이제 세계 경제의 새로운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조만간 전 세계적으로 300여개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될 전망입니다. 우리는 아직 단 하나의 자유무역협정도 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칠레 자유무역협정이 그 첫번째 출발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도 세계의 대세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준동의안이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통과되도록 마음을 꼭 좀 모아주십시오.

우리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FTA 이행특별법'을 비롯한 지원 법안들이 이미 제출되어 있습니다. 함께 대책을 마련해 갑시다. 농민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다양한 지원대책과 아울러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또 구조조정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강구해 나가겠습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정치개혁 방향은 이미 나와 있는 것입니다. 첫째, 선거제도를 고쳐서 지역구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지역간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고 유권자의 정서를 볼모로 불신과 증오만 부추기면 선거에서 승리하는 정치구도에서는 국회가 합리적인 정책 토론의 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성의 정치도 불가능합니다. 싸움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 국회가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되기 어렵습니다. 지역구도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합니다. 지역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의원 여러분의 각별한 결단을 촉구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지역구도가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둘째, 정치자금을 투명화하고 또한 현실화해야 합니다. 지금의 제도는 원천적으로 비정상과 편법을 강요하는 구조입니다. 합법적인 정치 비용은 현실에 맞게 올리고 선거공영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 신인도 합법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수입과 지출을 투명하게 하고 불법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특단의 결단도 함께 내려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여러분께 이런 저런 요구만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부터 잘못된 권력문화를 바꿔가겠습니다. 검찰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검찰은 정권으로부터 독립해서 수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소신에 따라 독립적인 수사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검찰권 독립의 핵심은 공정한 인사에 달려 있습니다. 지난 두 차례에 걸친 검찰 인사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저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도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야당의원의 뒷조사를 하는 일도 없고, 권력의 손발노릇을 하는 일도 없습니다. 기관원이라는 이름으로 권세를 부리고 국민을 괴롭히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 경제를 위해서 기업의 기술정보를 보호하고, 우리 정보통신망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는 업무를 새롭게 개발해 나가고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권력기관만 변한 것은 아닙니다. 특정 고등학교 인맥이 요직을 독식하는 일도 없고, 은행장 인사도, 은행 대출도, 신용보증도 이제 청와대 전화가 통하는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저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이를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대통령 곁에 와서 사진 찍고 위세 부리는 기업인도 없을 것이며, 설사 누가 사진 좀 찍었다고 하더라도 아무 데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십년에 걸친 우리 부조리의 문화가 구조적으로 해체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의원 여러분,

정부는 이라크 추가 파병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비용과 명분, 한반도의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조급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 가장 명분 있고 가장 국익이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신중히 결정해 나가야 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2004년도 재정운영과 기금운용 계획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내년도 재정운영은 참여복지를 구현하고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내년도 예산은 일반회계 기준으로 올해보다 2.1% 증가한 117조 5천억원 규모로 책정하였습니다.

주요 분야별로 보면, 우선 서민들의 복지 분야에 올해 대비 9.2% 증가한 12조 2천억원을 반영하였습니다. 보육과 청년실업 대책을 크게 늘리고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동북아 물류 중심 기반 구축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국가균형발전 사업도 최대한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10대 성장동력 산업에 대한 투자를 중점 지원하고 R&D 투자와 정보화에 대한 투자도 크게 확대했습니다. 교육투자는 6% 늘어난 26조 4천억원을 반영하였습니다. 대학교육의 경쟁력 향상과 이공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지방대학을 지역 혁신과 인재양성의 중심으로 육성하고자 합니다.

내년도 기금 운용규모는 올해보다 24.8% 증가한 237조 3천억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기금운용의 투명성을 높이고 예산과 기금간의 연계운용을 통해서 국가 전체의 가용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 의원 여러분,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 것은 제가 잘 나서 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국민의 여망과 시대의 물결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권력을 누리고, 위세를 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정치가 바뀌어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정치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 신념이 이루어진다면 저는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이제 재신임 결정이 어떻게 나든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그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그것이 저를 뽑아주신 국민 여러분에 대한 도리이고 제게 맡겨진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송두율 교수에 대한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정부가 무슨 기획을 해서 초청하였거나 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청와대로서는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수사와 처벌의 문제는 분단시대 극단적인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그 법과 상황에서 지금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엄격한 법 집행을 마다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대결과 불신과 증오의 시대가 아니라 민족간의 화합과 포용을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정신을 생각하면 이제는 엄격한 법적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한국사회의 폭과 여유와 포용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도 또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점에 관해서는 어느 한쪽의 극단적인 견해가 일방적으로 여론을 지배하는데 대해서는 상당히 전 우려스럽게 생각합니다. 처벌을 하더라도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이 양면에 대한 성찰이 함께 진행되면서 처벌돼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고 보다 폭넓은 화해와 포용이 이루어지는 그와 같은 우리 한국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그와 같은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3년 10월 13일

대한민국 대통령 노 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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