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고제봉과 공주 동기
- 高霽蜂과 公州 童妓
고제봉 경명(高霽峰 敬命)은 우리 조선에서 유명한 유학자요 또 임진란(壬辰亂) 당시에 의병장으로 적군과 싸우다가 삼부자가 모두 전사한 유명한 충신이다. 그는 그렇게 엄격하고 점잖은 분이지마는 소년 시대의 참으로 자미스럽고 향기러운 정화가 있다. 그가 十五六세 아직 미성년 시대에 그의 부친을 따라 충청도 공주 관아(公州 官衙)에 있었을 때였다. 그는 그곳에 있는 어떤 동기(童妓)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어 그야말로 죽자 사자 하게 지내다가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갔다. 시험을 막 치르고 방(榜) 나기를 기다리는 중에 뜻밖에 그의 집에서는 부친 병환이 위급하다는 기별이 왔다. 그는 방도 기다릴 여가 없이 허둥허둥 행장을 수습하여 본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전날에 사랑하던 기생의 집을 찾으니 마침 그 기생이 감사(監司) 아들의 놀음을 받고 노는 중이 되어 잠시도 떠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제봉은 그 기생 모(妓母)에게 여차여차하게 말을 하여 데려오라 하니 그 기생은 원래부터 감사의 아들보다 그를 사모하는 까닭에 그 모의 말대로 무슨 핑계를 하고 그 놀음을 물리고 뛰어 나왔다. 정이 남달리 깊었던 청춘남녀가 오랫동안 떨어졌다가 피차 다시 만나게 되니 그 기쁘고 반가운 말이야 어찌 다 형언할 수 있으랴. 울며불며 손을 마주 잡고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를 못하고 달게 하룻밤을 지냈다.
그때 두 사람의 정문으로 말하면 비록 그곳에서 백년해로라도 하고 싶었지만 제봉은 친환의 급보를 듣고 가는 길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다만 단장곡의 이별시(離別詩) 한 수를 지어 그 기생의 치맛자락에다 써주었다.
立馬江頭別意遲, 生憎楊柳最高妓. 佳人緣薄含新態, 蕩子情深間後期. 桃李落來寒食節, 鵬鴻飛去夕陽時. 江南雨歇春波綠, 手折花蘋有所思.
이 시를 다시 의역하면 대개 이러하다.
『이별하기 더디어서 강가에 말 멈추니 느러진 버들가지 채찍 될까 염려로다. 가인이 연분 적어 새 태도를 부리것만 탕자는 정 깊어서 뒷 기약을 또 묻는다. 한식절 좋은 때에 도화 이화 떨어지고 해 저문 저녁 때에 자고새 날아간다. 강남에 비 그치고 봄 물결 푸르는데 마름꽃 꺾어 드니 임 생각 절로 난다』
그때에 감사는 마침 감영에 큰 연회를 배설하고 그 기생을 오라고 성화 같이 독촉하였으나 기생은 제봉을 떨어지지 못하여 시간을 자꾸 연기하니 감사가 크게 노하여 그 기생을 잡아 들여다가 호령을 추상같이 하고 당장에 볼기를 따리려고 형틀에 매게 하였더니 바람결에 기생의 치맛자락이 휘날리며 먹 흔적이 아직까지 마르지 않은 이상한 글씨가 뵈었다. 감사는 괴이히 여겨 그 치마를 벗겨 오라 하고 자세히 본즉 글씨도 천하 명필이어니와 시가 또한 천하 명창이었다. 감사는 깜짝 놀라 그 기생에게 그 사실을 물으니 그 기생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울며 그 사실을 자백하였다. 감사는 더욱 놀라 급히 제봉을 청하니 그때에 그는 벌써 길을 떠나고 없었다. 감사는 다시 하인을 시켜 빨리 말을 달려 쫓아가서 그를 데려다가 맞아들이며 그의 재조와 인물 생긴 것을 극히 칭찬하고 이어 말하되 그대의 친환은 그다지 대단ㅎ지 않으신 모양이니 여기에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곧 사람을 보내서 이를 이내에 알게 하여 주마 하고 비록 연소한 사람이나마 자기의 친구와 같이 대접하여 밤이 깊도록 같이 잘 놀았다. 그렇게 노는 중에 밤중에 관사람(館人)이 와서 문을 뚜드리며 고경명(高敬命)을 찾으니 그것은 그가 전번 과거에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였다는 통지가 온 까닭이었다. 감사는 크게 기뻐하여 자기가 그의 응방(應榜)할 준비를 하여 주고 또 그의 친환이 회복된 소식도 또한 알게 되었다. 제봉은 그 길로 본집으로 돌아가서 근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한 감영에 들리니 감사가 크게 연회를 베풀고 그 기생을 불러서 제봉에게 주니 누구나 다 그의 소년 영화를 불어하고 또 그 감사의 아량과 지감을 탄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