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박태보전
- 박태보전(朴泰輔傳)
이조 숙종(李朝肅宗)시절에 공의 명은 태보(泰輔)요, 자는 사원(士源)이니 충심이 백일을 꼬이는 지라 숙종대왕이 중전 인현왕후(中殿仁顯王后) 민(閔氏)씨를 폐위하신 후 궁희빈장씨(宮禧嬪張氏)를 올려 왕비를 삼으려 하시니 간특한 소인들은 상의 뜻을 맞추고 충직(忠直)한 신하 간하는 자 있으면 상이 진로하셔서 참화(慘禍)를 입었더라. 기사(己巳) 사월 이십사일은 중전 탄일이니, 이날 백관(百官)과 백성들의 하례(賀禮)를 상이 다 물리치고 만약 거역하는자 있으면 곧 파출하라 하시니 이날로부터 더욱 궁중이 소란한지라 전응교 태보가 또한 파직중에 들었는 지나 나아가 다투고저 하나 어찌 못하여, 파직한자 사십여인을 데리고서 상소하기를 의논할새 전판서 오두인(前判書吳斗寅)이 소두(訴頭)가 된지라 태보가 상소문을 지어 정히 쓰고 이튿날 정원(政院)에 바치고 궐문 밖에서 비답 내리기를 기다리더니 상이 그 상소를 보시고 크게 노하사 곧 편전(便殿)에 좌기하시고 금부 당상과 및 대신과 서너 사람의 제신을 배초 하시고 친히 국문하실 거조를 크게 베푸시니 뜰에 등화불이 조로하고 사람의 소리 효효한지라 이때에 날이 이미 밤이 된지라 모든 신하 장차 명일로 대죄 청대하랴 하고 각각 그 집을 나가고 오직 소두 오두인과 전참판(前參判)이세화와 전참의(前參議) 심수광과 목사(牧使) 이돈과 전한림(前翰林) 이인엽과 전정언(前正言) 김덕기 등이 각각의 막에 있고 그 남은 사람은 다 일실(一室)에 있다가 궐내에 화광이 조로한 것을 보고 들리는 소리 진동함을 들으니 반드시 친국 거조가 있는 지라, 즉시 모두 금호문밖에 가서 대죄할새, 사람이 다 실색하고 서로 돌아다 보되 홀로 할 태보는 신색이 자약(自若)하며 가로대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진실로 괴이할 것 없는지라 어찌 경황하기를 이같이 하느뇨, 해창위(海昌尉) 그 부친 판서더러 일러 가로되 가두어 다시 고하여 상의 진노를 풀으실 말씀을 먼저 생각하여 서로 의논을 하소서 하니 태보 왈
『대감이 먼저 들어가신 즉 상이 반드시 먼저 상소 지어 쓴 사람을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바로 말씀하시고 숨기지마로소서.』
이세화 바지를 끄르고 그 다리를 어루마져 가로되
『내가 八[팔]십년 국록을 먹어 다리가 이미 살이 쩠으니 오늘날 대궐 뜰에서 장사당하리다.』
홰ㅅ불이 궐내에서 나와 큰소리로 불러 왈,
『소두 오두인이 어디 있느냐.』
드디어 칼을 쓰며 들어갈새 태보 두인의 옷을 잡고 가로되
범인으로 더불어 서로 말하여도 속일까보냐. 또 이번 상소는 대감이 독단하신 일이 아니라 내가 이미 지어 또 썼으니, 원컨대 대감은 바로 말씀하소서. 만약 바로 하지 않으시면 내 마땅히 스스로 죽으리라』하고 인하여 목화를 벗고 신을 시고 앉었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횃불이 또 안으로서 나오더니 급히 이세화와 유현을 불럴 세화 칼을 쓰며 들어 가고 유현이는 때에 신병이 있어 문밖에 있는지라 금오당과 나장이 분주히 잡어 들이고 또 화광이 나는 듯이 나와 급히 물어 가로되『상소지어 쓴 자가 누구냐』하니 태보가 즉시 일어나 대답하여 왈『내로다』드디어 망건을 벗어 담잿대를 그 종에게 주어 가로대 모씨전에 갖다 드리하고 큰 칼을 쓰고 들어갈새 이인엽이와 김몽신과 조대수 등이 태보의 손을 자고 말하여 왈,
『어찌 그 여럿에게 의논치 아니하고 자당하여 들어 가고저 하느냐.』
태보 왈
『내 이미 뜻을 결정하였으니 무슨 의논이 있으리요.』
이인엽, 김몽신이 왈
『이번 상소는 홀로 자네가 지은바 아니라 우리도 또한 서로 의논하여 지었으니 어찌 반드시 자네가 독당하랴 하는다.』
태보 왈
『짓기도 내가 하고 쓰기도 또 내가 하였으니 자네들은 어찌 짓고 쓴 일이 있느냐. 비록 죽어도 자당함이라 다행히 염려치 말라.』
소매를 뿌리고 들어가니 이돈 왈
『사원이, 자네는 어찌하여 그 즐거운 때에 나아감을 같이 아니하고 이같이 경솔히 하는고』
태보 돌아다 보고 웃어 왈,
『신보가 되어 이때에 다닫지 아니하고 무엇하리오. 영공은 그런 가소로운 말을 하지 말라. 내 뜻이 이미 정하였으니 그 다시 변하랴.』
드디어 자약이 들어갔다. 두인은 이미 원정을 드리고 세화는 가로대
『내가 나이 쇠로하고 오랫동안 국은을 입었으니 이제 비록 죽어도 진실로 후환이 없거니와 자네 같은 이는 나이 청춘이요 또 형제없고 백발 양친이 계시니 자네 아니면 누구를 의지하며 하물며 국은 입기를 나만 같지 못하니 모름지기 원컨대 죄를 내게로 돌려보내고 다행히 자당치 말라.』
하니 태보가 말머리를 잡고 답왈
『그런 성언치 못한 말은 하지 말라. 내 말하고자 하는바는 영감이 가르치실 배 아니라, 인신이 되어 이지경에 이르러 죽음이 있을 따름이라 일을 임하여 속여 꾸미는 것이 어찌 차마 할 배리요.』
하고 태보를 들어가니 상이 탑전에 꿇어앉히고 팔을 뽑내시고 소리를 높혀 태보더러 일러 왈
『네가 죄를 범하고 사악을 한지 오래니 내 상회 비통하나 오히려 버리지 않었더니 어찌 오늘날 비통하나 오히려 버리지 않았더니 어찌 오늘 날를 배반하고 다만 간악한 부인을 위함이 네 진실로 무삼 마음이며 감히 이같은 황역한 거조를 하는다.』
태보 다시 꿇어 대답하여 왈
『전하 어찌 차마 말삼을 하시나이까 들으니 군신부자(君臣父子)는 일체(一體)라, 이제 아비가 성품이라도 하여 무단히 어미를 내치신 즉 그자식이 그 또한 살고저 한 마음이 있어 어찌 간치 아니 하리오. 전하께서 전에 없는 과도한 거동을 하시고저 하여 곤위(坤位)로 하여금 크게 불안케 하심을 신 등이 통민함을 이기지 못하여 오직 한번 죽기를 생각하고 상소를 올렸으니, 어찌 감히 전하를 배반할 마음이 있으리오. 신등이 중궁(中宮)을 위반하는 전혀 전하를 위한 뜻이라, 중궁은 전하의 중궁이 아니시니나이까.』
상이 크게 노왈
『급히 결박하라 이놈아 이놈아 네가 마침내 나를 욕하니 내 장차 역률(逆律)로써 너 같은 놈을 죽이기가 그 어렵겠느냐.』
먼저 형문으로 물을 거조를 베풀고 또 화형(火刑)할 거조를 차라리 태보왈
『전하 신으로써 상소를 짓고 썻다 함으로 다스리고저 하시나이까. 원컨대 전하는 그 상소를 잡으시고 물으시면, 신이 청컨대 일일히 아뢰리이다.』
상왈
『소중의 침윤 등사는 이 어찌 할 만인고, 네 자세히 말하여라.』
태보 상소를 강하며 조목을 찾아 대왈
『이런 설화는 불과 이러 하옵거니와 대저 비록 여항(閭巷)간이라도 一처 一첩을 둔 사람이 능히 그 가장(家長)의 도리를 다 못하고 기처를 편애(偏愛)한즉 그간에 또한 침윤한 일이 있어 가도가 편치 못하다 하니 전하 근래 후궁애총(後宮愛寵)이 있음을 신등이 의려 하였삽더니, 이제 전하 과한 거조 계시니 신등이 써 침윤지사 있다 하나이다.』
상이 더욱 노왈
『네 감히 이런 말을 하여 날더러 후궁에 침혹하여 허무한 말을 신청한다 하느냐.』
하시고
『맹장(猛杖)을 하고 또 큰 바다 그 목을 읽어 무릎에 매고, 턱을 가슴에 붙이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
호령하시고 별호히 엄형(嚴刑)하여 낱낱이 고찰하라 하시니 좌우승지와 도사 나장배가 맹장하라는 소리를 일시에 병창하니 동구문안 대궐 일대가 요란하더라.
『전하 어찌 신하를 아르시지 못하시나이까. 치상의 일은 암매지설이여니와 신등의 상소는 상의 공공지론이라, 전하 어찌 신을 치상에게 비유하시나이까. 신이 경악에 출입하옴이 이제 몇 해오나 신의 복심 행사가 치사응로 더불어 같지 아니함을 전하, 아르시지 못하나이까.』
『네 어찌 음측한 계집을 위하여 감히 음측한 일을 하는다.』
태보 소리를 가다듬어 얼굴을 고쳐 대왈
『어찌 이런 말삼을 차마 내시나이까. 무릇 부부는 인륜의 비롯임이라, 성인은 인륜의 지극함이라 비록 범인이라도 또한 그 부부의 의를 알거든 하물며 중궁은 이 뉘 중궁이시며 성인의 가르치심은 어찌 되시나이까. 이렇듯 패상하오신 말삼을 하시니 신이 그윽히 부끄러웁나이다.』
상왈
『네 나를 공척하난다.』
『전하 주역을 읽어 계시니 건곤지도(乾坤之道)를 아지 못하니나이까. 비록 중궁이 조금 허물이 있을지라도 이전 명선 왕후 때에는 심애할 설음이오, 하물 있단 말삼을 듣지 못하였더니, 이제 원자 탄생한 후로부터 이같은 과실이 들리니 신은 반다시 침유한 참소가 있다 하옵니다.』
상이 더욱 크게 노하여 분기가 탱중하여 말을 이루지 못하며
『이놈아 네가 다시 그 말을 하느냐. 그 말이 어찌 할 말이더뇨. 네 감히 지만을 하지 아니하느냐. 이놈이 간악은 역률로 압실 화형 쓰리라.』
하시고 나장에게 지휘하였다.
두 차례나 어려운 형을 썼으나 태보는 조금도 안색이 변하지 않고 다만 『신은 이미 죽기를 정한 몸이니……』할 뿐이었다.
상이
『이놈의 간악은 김홍욱보다 배가 더한지라 간특하기가 이 같으니 그 나를 욕하지 않겠느냐. 소중의 꿈 말은 또 어인 말인고』
태보 질통한 빛이 없이
『이는 궁내사라 신이 자세히 알지는 못하거니와 꿈은 본시 허탄한 일이라 설령 중전으로서 비록 신몽이 있을지라도 연중에 이런 말삼이 계시니 신은 전하의 처사하오심이 진선치 못하다 하였삽니다.』
『네가 나를 헛말하는 미친놈이라 하는다. 네가 간학한 자의 당이 되어 이 같이 궤변하는냐』
『신이 입조(入朝)하온지 十八년에 본대 설당하온 일이 없으니 만약 당론 (黨論)으로 불의한 일을 하와 다행히 중궁 뜻을 맞추랴하면 어찌 저하의 뜻을 얻지 못하리까. 신의 상소는 실로 국논이라 신이 전하의 신하되어 이미 전하의 과거 하오심을 보고 어찌 간변치 아니하리까. 어미가 죄가 없고 무조히 아비가 내친즉 그 자식이 죽기를 다하여 다툴 터인즉 전하 어찌 평심하여 깊이 생각지 못하시나이까.』
『이놈이 갈수록 사악하도다, 급히 화형을 행하라』
드디어 화형을 당하였으나,
『신이 이미 일호도 부도한 죄가 없으니 차라리 죽을지언정 무삼죄로 지만을 올리리까.』
『네 종시 지만 못하겠느냐.』
『신이 어찌 뜻을 고치리오. 만약 구차히 상의 말씀을 좇아 무고한즉 안으로 마음을 속이고 위로 전하를 속이는 배니, 이 뼈가 비록 재가 되나 이 마음은 변치 못하겠나이다. 신 오늘날 신의 절개를 마땅히 다할지라 다시 무삼 일이 있어 가히 지만을 하리까. 조사기는 말이 전후에 침빔하여도 오히려 다스리시니 간절히 괴하여이다. 신이 십년 경악에 능히 보도를 잘못하고 전하로 이런 과거함이 있음은 실로 신의 죄라 어찌 다시 죄 당할 일이 있으리오.』
상은 이 태보의 말을 일일히 기록지 못하게 하고 형벌을 더 가하라 하니
우의정 김덕원(右議政金德源)이 만류하더라.
『상소할 때에 우헌이는 아지 못하였다니 그 말이 과시 옳은다?』
『어찌 알었겠나이까. 그때 병들어 참예지 못하고, 그 아들을 보내어 이름만 두었아오며, 소문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니 그 아지 못한다는 말이 괴이치 아니하오이다.』
『이세화 이르되 상소를 너와 같이 지었다 하니 그러냐.』
『짓고 쓴 것을 신이 다하였으니 세와 어찌 일사나 찬하였다 하리까. 신과 같이 지었단 말은 신을 구원하려 하는 뜻이니이다』
『네 종시 지만치 못하겠느냐.』
『신이 지만할 조가 없으니 만일 신을 죽이시려거든 속히 결단하심은 신이 감히 사양치 아니하려니와 반드시 못할 지만을 받으시려 하나이까. 전하 발로하와 달려하시니 사람이 분기 신한즉 실정하고 기운이 불평하나니 신은 옥체 미령하실까 염려하오이다. 비록 신으로써 굳이 지만을 받으시려 하나, 신이 결단코 지만치 않을 것이오, 또 형벌을 견디지 못하여 속여 지만하더라도 무복지신이 되어 지하에 가도 귀신의 웃음을 발을 터이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리오. 신의 아비 나이 六十五세요 어미 나이 七十이라, 오늘 죽어 다시 보지못하면 인자의 도리가 가히 없으나 이미 인신이 되어 당연히 진충할 바의 사정을 이미 결단한지라 원컨대 속히 벌하시는 형벌을 행하소서. 엎드려 생각컨대 신이 비록 죽어도 의있는 귀신이 되고 뒤에 뉘우침이 없으려니와 불안한 일로써 불인한 행형을 하시니 흥망이 이에 판단한지라 성궁의 누되심이 어떻다 하리오. 중궁의 시위를 권선하신 배니 그 투기할 뜻이 없음은 가히 알지라. 원자 탄생 후 어찌 투기할 일이 있으리오.
이 반드시 침윤한 참소로써 이렇듯 과한 거조가 있음이라, 신니 능히 인군의 그른 것을 발리(正[정])지 못할진대 차라리 죽어 알음이 없음 만 같지 못하오니 원컨대……』
이까지 말을 하고 마침내 목소리가 없으니 상이 손바닥을 치며 노왈
『판의금은 어찌 지만을 받지 못하느냐』
민암이 넋을 잃고 실음(失音)한 말로 가로대
『사속히 지만하라』
하니 태보 얼굴을 들어
『자네는 헤아려보라. 내 무삼 죄가 있어 지만하리라고 이같이 협박하는다』
민암이 묵연히 환오 왈
『시형은 비록 무궁하오나 지만할 뜻은 일분도 없더이다.』
상이
『심히 미련하도다. 이놈아, 지만하면 방석하려 하나 종시 지만치 아니하니 심히 미혹하도다』
하니
『신을 속이심은 어쩐 일이시나이까.』
이에 상이 친히 국문하시고 시형하기를 참혹하고 또 오랜 지라, 또한 옥체 편치 못하신 기색이 있어 이에 전내로 들어가시고 영을 내리어 장문하라 하시고 시위로 하여금 나가 보아 왈
『박태보의 괴독은 내 일찍 알었는지라 내 시형이 이미 이에 이르되 종시 얼굴을 고치고 통곡하는 소리가 없으니 괴독하고 또 극악하기가 김흥욱보다 더 심하도다.』
하시었다.
사월 이십오일 밤에 수형하여 이튿날 진시에 끝이니 형문이 세 차례요 압실형이 두 차례요 화형이 두 차례요 낙형이 여러 번인지라, 동소한 사람들이 문 외에 대죄하다가 태보 무수히 수형암을 듣고 눈물 흘리지 아니하는 자 없더라.
태보 금부로 향할 새 창 메인 군사 좌우에 웅입한지라, 종일 박필순이가 군사를 헤지고 들어가 이불을 열고 손을 잡고 무수히 위로하며 정신을 가지도록 원하는지라 태보 이불을 들고
『내 마음이 이미 정한지 오랜 지라 다시 물어 무엇 하리오.』
하고 인하여 금부로 들어가니 그때 그 부친 세당은 교외에 있어 돌연히 친국이 되기로 미처 부자 서로 보지 못하였더니 이미 금부로 들어가매 그 문 밖에 사처하고 죽지 아니함을 듣고 정신을 보고저 말을 보내어 왈
『네 가히 지필로 글을 닦아 보내겠느냐』
태보
『이제 들으니 조정에서 나를 역률로써 죄를 의논 하시니 비록 부자간이라도 서ㅅ자(書字) 상통이 미안하다.』
일르더라. 명일 또 축국거조를 하려 하니, 영의정 권대운(領議政權大運)이 차대 왈
『태보의 죄는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삽거니와 다시 협추를 더하면 또한 가긍하니 원컨대 정배로써 하소서』
이에 절도 안치할제 금부문에 나오니 그 얼굴을 보랴하고 장안 사람이 종로에 충만하여 길을 분간치 못하는지라 태보 그중에도 능히 친구는 알고 손을 들어 하례하니, 노소(老少) 서로 일러 왈 현인(賢人)의 안면을 생시에 가히 보리라 하고 서로 어깨를 이어 거리에 느러서고 혹 통곡 참석중이 막히니 명이 경각에 있는지라, 잠간 명예 방골 집에 지체하여 그 어버이께 평생원억함을 위로하고 모씨 기체를 묻더라. 여럿이 가로대 일세 이미 저물고 병세 이 같으니 성중(城中)에서 경야(經夜)하고 내일 나가자 하니
태보는
『내 명이 비록 급하나 죄명이 중하고 기식(氣息)이 아직 끊이지 않었으니경악을 유체하리오.』
저물게 남문 밖으로 나아갈제 시정 노인이 다 갓을 벗고 초거를 메고 가로대『이 나으리는 편안히 뫼시지 아니치 못하리라』하니 비록 이때 인심이라도 또한 그 격려함을 알더라. 남문 밖에 나가니 그 모씨는 곧 양모라 어려서부터 수양한고로 자애지정이 기출이나 다름없는지라 급급히 나아가 보고 비록 만가지로 치료하나 구활할 도리 없으니 손을 잡고 가슴을 어루만져 설워하더라. 태보
『죽지 아니하와 오늘날 다시 모씨를 뵈오니 또한 천행이라. 비록 죽으나 무삼 한일이오 부디 모씨는 과도히 상회지 말으소서』
위로하는 것이었다. 열이 심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또한 먼 길을 당하니 정신은 혹여 생하나 편작이 있어도 어찌 할 수 없어 비참하더라. 태보 이때에
『내 이미 죽으려니와 만일 살어 행하면 적요중(寂寥中) 볼 서책이 없으니 행중에 넣으라』하니 친구는 말리더라. 병세 일중하여 길에 오르지 못하여 문외에 머물러 치료하더니 수일이 지나매 증세 더하나 왕명이 급하여 유체하기 미안한지라, 오월 초일에 강을 건너 종막에 다달아 병세 위중하니, 조정에다 왈『죄인 박태보 병세 긴급하니 증정을 보아 발배하옴이 어떠 하오리까.』상 왈『지도라.』태보 만신이 아프나 그 양친이 있어 화독을 침파하되 한 번도 호통을 아니 하고 혹 벗으로 더불어 희롱하며 여상(如常)한 모양을 뵈이더라. 그 조카더러
『지금 조정사가 어떠 하냐.』
『중궁이 나가 계시이다.』
『할 일 없다 할 일 없다.』
곁의 사람 희롱하여 위로 왈
『병세 이같고 괴독이 심하니 반드시 죽지 아니 하리로다.』
태보 왈
『나라에서 살리고자 두어 계시나 내 기력 살기를 얻지 못한지라』
하고 박부인을 보기를 청하니 또 부인과 소부인이 나아가 보니
『내 장차 죽을지라 불효극진하나 또한 명이라 일러 무엇하리오. 부원 평심 관해하시고 후사는 담의 형제중하소서』
대부인이 서로 차마 보지 못하고 목이 메어 들어가니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도 또한 할 말이 있느냐 물으니, 다시 무삼 말 하리요 하고 조금 있다가 눈을 감고도 정신설화가 오히려 분명하더라
대부인이 다시 와서 보니
『모씨 전에 다시 전달할 말씀이 없거니와 오직 기후가 안녕하시기 바라나이다.』
소부인이 부인 곁에 있어 비읍하기 마지못하니
『내 죽은 후 모씨 정회는 우리 부인께 있고 우리 후사도 또한 부인께 있으니 부인이 죽은즉 일이 차마 말 못 배 많으니 과도히 애회 말고 보전하여 우리 모씨를 잘 섬기어 내가 세상에 있는 날과 같이 하라. 이제 내가 죽을지라 여기는 부인 있을 곳이 아니지 속히 모씨를 모시고 들어가라.』
부인이 울고 가지 못하니 머리를 들고 꾸짖어
『남자가 죽기를 여인 손에 않느니 속히 들어가고 머물지 말라.』
하고 인하여 종질로 하여금 붙들어 가니라. 대부인이 다시 무삼 말할 일이 있느냐 물으니 원컨대 권학하여 가르치소서 하였다.
이에 담기가 점점 올라 점석에 졸하니 공의 충심은 만고쟁렬하여 뉘 감탄치 아니리오. 상이 복하시고 장희빈직첩을 걷우시고 박태보 관작(官爵)을 돋우어서 용하시고 시호를 나리셨으니, 기사년 사화의 군자소인옥석(君子小人玉石)이 지금껏 분명하고 겨울이가고 봄이 오매 박태보 봉사손을 찾아 과거시키었나니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