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행운 (차상찬)
- 행운(幸運)
숙종조(肅宗朝)때 판서(判書)로 신임(申銋)이란 이가 있었는데 그의 호(號)는 한죽당(寒竹堂)이오 자는 화중(華仲)이었다.
신판서가 일찍부터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놀랍기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었다.
그 슬하에 외아들(獨子[독자])하나를 두었다가 불행하게도 아들이 중병(重病)이 들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니 판서 내외는 하늘을 우러러 슬퍼하기를 마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늙은 두 내외의 마음을 위로시키는 한 가지는 그 아들이 경주라는 유복녀(遺腹女)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것이었다.
판서 내외는 나날이 곱게 자라가는 귀여운 손녀의 재롱으로 낙을 삼고 지내며 외아들 잃은 설음을 잊을 때가 더 많았다.
세월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과 같이 판서의 경주의 나이가 어느덧 열여섯이 되었다.
규중(閨中)에서 편모(片母) 슬하에 고이고이 길리운 관계도 있겠지만 경주는 본래 타고난 외양이 몹시 고운데다 마음씨까지 착하고 드물게 숙성하여 나이가 근 스무살이나 되어 보였다.
그리고 침선(針線)이 능숙할 뿐더러 글 공부도 웬만한 사나이보다 낫게 하여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었다.
경주가 이 같이 적년(適年)에 이르게 되니 판서 내외와 과부 며느리 김씨는 하루 바삐 경주와 알맞는 배필을 골라서 내맡기어 금슬좋게 지내는 재미나 볼까 하는 생각을 하루도 하지 아니 하는 때가 없었다.
하루는 김씨 부인이 시아버지 되는 신판서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경주의 낭재(郎材)는 아버님께서 친히 관상(觀相)하신 뒤에 골르소서』
하고 간청하였다.
김씨 부인이 이같이 신판서에게 간청하게 된 것은 일찍부터 시아버니가 지인지감이 있어 사람보는 법이 엔간치 아니 한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사윗감을 손수 보고 골르느니보다 시아버지가 친히 관상을 하고 골르게 되면 조금도 착오가 없으시라고 굳게 믿은 까닭이었다.
『덮어 놓고 사윗감을 날더러 보고 골르라니 어떠한 사람을 골라야 하겠느냐, 사람도 천층만층이니 자세히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신판서는 며느리에게 물었다.
『아버님께서는 물으시니 말씀이올시다마는 첫재 수(壽)가 여든(八十[팔 십])에 이르도록 해로(偕老)할 사람으로 벼슬은 대관(大官)에 이르러야겠잡고 둘째로는 집안이 유족(裕足)하고 유자생녀(有子生女)할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무엇 있겠읍니까?』
하고 김씨 부인이 대답하였다.
신판서가 며느리의 대답을 듣고 나더니 껄껄 웃으며
『이 세상에 그렇게 모든 것을 겸비(兼備)한 사람이 입에 맞는 떡으로 어디 있겠느냐? 지금 네가 말한대로 그런 사람만 구한다면 한평생을 두고 골른대도 영영 골르지 못하고 말게 될 것이다.』
하고 며느리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신판서와 김씨 부인 사이에 이같은 수작이 있은 뒤로부터는 신판서가 밖에 나갔다 집안에 들어 오기만 김씨 부인은 으례히 그 시아버니께 절하면서
『아버님 오늘은 혹시 가합(可合)한 낭재(郎材)를 만나 보셨읍니까?』
하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신판서는
『네 말과 같이 그렇게 여러 가지를 구비한 인물은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다. 장래에 영달(榮達)할 인물은 많이 보았지마는 모두 수가 단(短)해서 안 되겠고 수는 기나 장래가 보잘것없는 사람은 많이 보았으니 어디 골를 수가 있더냐?』
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상례(常例)를 삼았다.
하루는 신판서가 볼일이 있어서 장동(壯洞)길거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길거리에 수십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떼를 지어서 정신없이 뛰놀고 있었다.
그 많은 아이들 가운데에 그중 키큰 도령 하나가 섞였는데 나이는 열너덧 살 밖에 더 안 돼 보였고 봉두(蓬頭) 난발(亂髮)로 굵은 대를 가랭이 틈에 끼인채 뭇 아이들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판서가 하인을 시켜 교자(轎子)를 머무르게 하고 그 도령의 용모를 이리 저리 뜯어보니 비록 몸에 걸치인 옷이 남루하고 얼굴이 험상궂게 생기기는 하였을 망정 미목(眉目)이 청수(淸秀)하고 골격(骨格)이 비범(非凡)하였다.
신판서의 얼굴에는 흔연히 웃음이 떠올으면서
『얘, 저 ― 기 저 아이들 중에 그중 키크고 대ㅅ가지를 가랭이에끼고 뛰도는 도령을 이리로 불러 오너라.』
하고 옆에 섰는 하인에게 명령을 내리었다.
하인 하나가 주인대감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 노는 쪽으로 성큼 성큼 뛰어 가더니
『얘 이놈아, 우리댁 대감께서 너를 오랍신다. 냉큼 저 교자 앞으로 가자.』
하고 그 아이의 겨드랑이를 한편 손으로 추겨들어 앞으로 끌어 당기었다.
『대감이 누구시길래 일없이 나를 오란단 말씀이요? 남 장난하는데 훼방 말고 이것이나 노시오』
하고 그 도령은 부리부리한 두눈을 부라리면서 하인이 붙잡는 팔을 홱― 뿌리쳤다.
『이놈아, 신판서 대감 행차이신데 어느 앞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입 닥쳐라.』
하고 하인은 마주 호령을 하였다.
교자 안에서 그 도령의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판서는 다시 옆에 섰는 하인을 향하여
『저 도령을 순의로 데려 오려면 안 올 모양이니 너도 냉큼 뛰어가서 둘이 협력(協力)을 하여 저 도령을 붙들어 오너라.』
하고 다시 분부를 내리었다.
분부를 받은 하인이
『에 ―이.』
소리를 길게 빼면서 그 도령 앞으로 뛰어가서 두 사람이 협력을 하여 도령을 끌어다가 신판서 앞에 세워 놓으니
『어느 관원(官員)이신지는 모르나 아무 죄없는 나를 왜 잡어가려 하시오?』
하고 사지를 버둥거리면서 도령은 소리쳐 울었다.
신판서는 그 도령의 행동이 몹시 억세인 것을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여봐라. 내가 너를 잡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네게 물을 말이 있어서 데려온 것이니 안심하고 울음을 그쳐라.』
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안유를 시키었다.
그제야 그 도령은 겨우 안심이 된듯 울음을 그치고 신판서의 얼굴을 바라 보는데
『여봐라. 네 집 문벌(門閥)이 어떠한지 알고자 하는데 대답 못 하겠는냐?』
하고 신판서가 도령에게 물었다.
『소동의 집 문벌을 말씀 못할 것이 아니오나 대감께서 소동의 집 문벌은 아셔서 무엇하시렵니까?』
하고 도령이 신판서에게 되물었다.
『글쎄 그것은 나중에 알려니와 위선 내가 묻는 말이나 대답을 하여라.』
『소동이는 지금은 대감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꼬락서니가 엉망이오나 본시는 양반의 후예(後裔)이옵니다.』
『어 ―, 그래. 그럼 나이가 몇 살이며 성은 무엇이냐?』
『소동이의 나이는 올에 열다섯 살이옵고 성은 유가입니다.』
『지금 네가 사는 집은 어디인고?』
『소동의 집은 월동(越洞)에 있읍니다만 무슨 일로 이같이 소상히 물으십니까 궁금하기 짝이 없읍니다. 이같이 물으시는 까닭을 말씀하지 않으시려거든 빨리 놓아나 보내주십시오.』
하고 유도령은 신판서 앞에 넙죽히 절을 하면서 애걸하였다.
신판서는 유도령의 말대로 즉시 하인에게 유도령을 놓아보내도록 분부하였다.
신판서는 그 길로 월동으로 향하여 하인을 시켜 유도령의 집을 찾게 하니 그리 힘들지 않고 도령의 집을 찾게 되었다.
신판서가 찾어간 유도령의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수간초옥으로 다 ― 썩어진 지붕위에 푸른 풀이 길길이 나있는 것을 보면 그 집안 살림살이이가 몹시 간구한 것을 넉넉히 알만하였다.
신판서가 하인을 시켜서 주인을 찾게 한 뒤에야 이집에는 바깥주인은 일찍 기 기세(棄世)하고 유도령의 어머니는 과수 부인이 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은 안으로부터 나와서 말을 전하는 그 집 몸종의 의함이었다.
신판서가 유도령의 집 몸종을 불러내어 전갈(傳喝)하기를
『나는 잿골(齋洞[재동])사는 판서 신임인데 내 슬하 여섯이라 집안에서는 각처로 구혼(求婚)을 하는중이나 오늘 이 댁 도령을 길에서 만나보니 가히 내 손녀의 배필이 됨즉하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정혼(定婚)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니 댁 마님께서 내말대로 여쭈어라.』
하였다.
그리고 그 즉시 회정해 오는데 신판서는 중로에서 하인배를 향하여
『너희가 집에 돌아가더라도 오늘 일을 입 밖에 행여 내지 말렸다. 만일 내말을 어기는 놈이 한놈이라도 있으면 당장 죽고 남지 아니할 것이니 그리 알어라.』
하고 엄중히 신칙을 하였다.
장동 유도령 집에서는 유도령의 어머니되는 부인이 천만 뜻밖에 몸종의 전갈하는 말을 듣더니
『얘 그게 될 말이냐? 신판서댁으로 말하면 부귀와 영화가 무쌍할 뿐더러 서울 안에서는 누구하나 모르는 이가 없는 고귀(高貴)한 재상가(宰相家)이신 터에 어디 손주사윗감이 없어서 간구하기 짝이 없고 더구나 봉두난발 장난만 치러 다니는 도령님을 보고 가합한 생각이 나셨을리가 있느냐? 네야 것말을 하기야 하겠느냐마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꿈속에서 해매는 것만 같애서 도무지 미더웁지가 않구나.』
하고 몸ㅅ종의 전갈하는 말을 미더웁게 생각지 아니하였다.
『손수 하인배를 거느리고 오셔서 그 같이 말씀하신 그 어른이 이상한 병환이 있으신 어른이 아니신 다음에야 점잖으신 채모에 인륜대사(人倫大事)를 가지고 거짓 말씀을 하셨을 리가 있읍니까?』
하고 몸종은 아주 정색(正色)을 하였다.
부인은 몸종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하더니
『네말도 옳기는 옳다마는 어쨌든지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어디 하회(下回)나 기다려 보자 꾸나.』
하고 일이 어찌돼가는 것이나 보리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날 신판서는 유도령 집에 들렸다가 다른 친구의 집 몇 군데를 다녀서 해가 꼬박이 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날도 또한 며느니 되는 김씨부인이 나와 시아버니를 반가이 영접하면서
『아버님, 오늘은 가합한 낭재를 혹시 만나보시었읍니까?』
하고 물었다.
신판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마루위로 올라서더니
『전에도 내가 네게 물었거니와 너는 어떠한 신랑감을 구하느냐?』
하고 새삼스레 되물었다.
『전일에도 아버님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수명이 길어서 백년해로는 못하올 망정 나이 八十은 살만하옵고 부귀공명이 떠날 날이 없사온 인물을 구하고자 합니다.』
하고 김씨 부인은 전일과 같은 대답을 하였다.
신판서는 여전히 빙그레 웃으면서
『그동안 신랑감을 만나려고 무수히 애를 쓰던 차에 오늘날에야 합당한 도령 하나를 만나보았다.』
하고 며느리의 눈치를 슬쩍 살피었다.
김씨 부인은 얼굴에 기뻐하는 빛이 떠돌면서
『아버님, 고맙습니다. 그 수재(秀才)가 뉘집 자제이오며 그 수재의 집이 어디오니까, 궁금하오니 얼른 알려주소서.』
하고 신판서 앞으로 바짝 내달었다.
『그 집이나 그 도령이나 누구의 아들인지 내가 미리 말하지 않드라도 쉬 알게 될 것이니, 과히 궁금히 여기지 말고 알게 될 날이나 기다려라.』
하고 신판서는 며느리에게 자세한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이 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난 뒤에 영채(迎綵) 날을 당하니 그제야 신판서는 며느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하였다.
시아버지께 자세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마자 김씨 부인은 궁금한 생각을 걷잡을 수가 없어서 집안에서 그중 영리(玲悧)하고 그중 사리(事理)에 밝은 노비(奴婢) 하나를 조용히 앞으로 불러 들여서
『월동 사시는 유수재댁을 찾아가서 그 집안 살림범백이 어떠한 것이라든지 또 그댁 수재의 외화풍채가 어떠한 것을 자세히 알아보고 오게.』
하고 부탁을 하였다.
부인의 명을 받고 아침 일찍기 나갔던 노비가 낮이나 돼서야 돌아오더니
『아씨 어쩌면 대감마님께서 그런 집에다 정혼을 하셨읍니까? 집이라고는 다 ―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 두어간인데 지붕은 몇 十년이나 못 이었는지 풀이 길길이 나고, 부뚜막 위에는 퍼런 이끼까지 끼지 않었겠어요.
그나 그뿐입니까? 솥뚜껑 위에는 허옇게 거미줄이 서리어 있을 뿐더러 신랑의 얼굴을 보고는 소녀는 깜짝 놀랐읍니다. 두 눈은 왕방울같이 크고 머리 터럭은 산산히 허트러져서 쑥대와 같사와 어느 한가지 취할만한 점이 없더이다.』
하고 수다스럽게 늘어놓아 유도령의 집 험담을 무수히 하였다.
『대감마님께서는 어째서 그런 집에다 정혼을 하셨을까?』
노비의 보고 와서 전하는 말을 듣자마자 김씨 부인은 시아버니의 처사를 몹시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더구나 노비가 또 휘번덕스럽게 고개를 내어 저으면서
『아씨, 이거 보세요. 우리 댁 소저께서 그 댁에 들거아시는 날이면 그날로 절구방아질을 면치 못하실 것이요, 더구나 춥고 주리시는 광경을 당하실 것이오니 우리댁 소저께서는 금지옥엽(金枝玉葉)과 같이 고귀하신 집안에서 생장(生長)하셨는데 어찌 그 같은 고생살이를 감당해 가시겠읍니까? 소녀는 소저 뵙기가 딱하고 민망스럽기 짝이 없읍니다. 소저 같으신 재질(才質)과 이 댁 같이 고귀하신 댁 소저께서 어떻게 하시다가 그런 간난뱅이 집으로 가시게 되었읍니까? 소녀는 그것을 생각하오니 원통하고 눈물이 납니다.』
하고 한술 더 떠서 말하는 통에 김씨부인은 낙담실망(落膽失望)을 하여 기색을 할 지경에까지 이르게되었다.
그러나 이 날은 이미 수채(受綵)를 하는 날이라 이제 어떻게 하는 수도 없었다.
김씨부인은 목구멍너머까지 넘어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어 삼키고 눈물만 줄 ― 줄 흘리면서 신랑(新郞)맞이할 준비를 풀이 하나도 없이 해 나갈 뿐이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유복녀로 고이 낳아서 온갖 정을 이 딸 하나에게만 폭 쏟아놓고 지내오던 김씨부인은 일껏 시아버니께 부탁하여 정혼해 놓은 사위가 인물이나 가세가 보잘것없다는 것을 직접으로 보고 온 하인에게 자세히 들었으니 낙담 실망하는 것도 그 어머니 된 정리에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럭저럭 그날 하루가 지나고 그 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신랑이 일찌기 안으로 들어서자 안마당 정당(正堂)위에서 신랑신부가 존안성례(尊鴈成禮)를 지내게 되었다.
그때 김씨 부인이 신랑의 얼굴을 바라보니 노비의 말하던 바와 같이 용모가 참으로 볼상 사나웠다.
김씨 부인은 못생긴 남편을 마지하게 된 가엾은 딸을 생각하니 금창이 메어지는 것 같아서 몸둘 곳조차 아지 못하였지마는 일이 이미 이같이 돼놓았으니 하는 수 없어서 금방 에어내는 듯한 가슴만 두 손으로 문대일 따름이었다.
그날 혼례식이 끝난 뒤에야 김씨부인은 조용히 시아버님을 뵈옵고
『어버님께서 세상에 제일 뛰어난 수재를 얻으신 줄로만 알었삽더니 오늘 소녀가 신랑을 맞대해 보은 즉 무의무탁(無依無托)한 가난뱅이 이올 뿐더러 또 그 생김 생김이가 험상궂어서 남이 보기에도 그 같이 무서운 사람을 골르셨사오니 천금보다 더 귀애하옵시던 어린것의 한 평생을 그릇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와 한심(寒心)하옵기 그지 없읍니다.』
하고 몹시 언짢어 하는 기색을 뵈었다.
신판서는 며느리의 이 같은 말을 듣더니 얼굴에 약간 노여워하는 기색이 떠 돌면서
『너는 이제 와서 나를 원망하는 투로 말을 하니 그럼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나는 오직 네가 소원(所願)하던 신랑을 구해 주었을 뿐이다. 신랑해가 지금은 비록 그 집안이 몹시 간구하고 무엇 하나 보잘 것이 없는 처지이지마는 뒷날에는 반드시 복록(福祿)이 무궁(無窮)하고 수부귀(壽富貴) 다남자(多男子)하여 오복(五福)을 갖추어 가질 훌륭한 얼굴(相[상])이니 잔말 말고 두고 보아라 내말이 일호반점이나 어그러짐이 없을 것이다.』
하고 서슴지 않고 장담을 하였다.
김씨 부인은 시아버님께 이같은 말을 듣자마자 자기마음에는 사위가 가합지 않더라도 무엇이라고 또 딴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아버님, 소녀가 당돌히 말씀드린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웃어른께서 어련히 아시고 조처하셨읍니까. 공연히 못마땅한 생각을 품었사온 것 죄송만만이옵나이다.』
하고 사죄하는 한편에 시아버님 말씀에 복종하는 빛을 보였다.
그날로 신판서 집에서는 신랑영송(迎送)의 예(禮)를 다 한 뒤에 신랑 집이 몹시 간구하기 때문에 신랑 집에서 행하는 예식은 제례(除禮)를 하였다.
혼인날이 이튿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신랑은 처가(妻家)가 되는 신판서 집에 이르게 되었다.
신판서는 손주 사위를 반가이 맞아들이어 내실(內室)에다 따로 방을 정해 주고 신랑 신부가 함께 그 방에서 거처(居處)하도록 마련을 해주었다.
신랑과 신부가 한달가량이나 금슬이 좋게 함께 기거를 하고 지냈는데 신부는 엄장은 엄부렁하게 커서 겉으로는 튼튼해 보였지마는 실상인 즉 부잣집에서 금지옥엽같이 길리운 몸이라 섬섬(纖纖) 약질(弱質)인 데다 나이는 한 살 아래이나 허구한 날 힘 세찬 신랑에게 부대껴 지내게 되니 차츰차츰 얼굴에 노랑꽃이 피이게 되고 병명(病名)조차 알 수 없는 병색이 잔뜩 들어있는 것과 같아 보이었다.
신판서는 단번에 이 눈치를 채이자마자
『아뿔싸 저것들은 그냥 한방에 내버려 두었다가는 결국엔 큰일을 저질르겠는걸』
하고 속으로 혼자 근심하는 생각이 들어서 유생을 사랑으로 불러 내어 이르는 말이었다.
『너는 혈기미정(血氣未定)한 소년의 몸으로 연일 안에서 자는 것은 네 신상에 좋지 못한 일이니 오늘 저녁부터는 바깥 사랑으로 나와서 나와 함께 자는 것이 좋겠다.』
『예, 그리하겠읍니다.』
하고 유생은 할 수 없이 입으로는 대답을 했지마는 속심으로는 불만(不滿)이 가득하여 사랑에서 물러나오고 말었다.
그날 밤 바깥사랑에서는 신판서가 자기자리 앞에다 따로 유생의 자리를 깔게하고 함께 데리고 자게 되었는데 밤이 이슥한 뒤에야 신판서는 곤히 잠이 들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자고 싶은 생각에 유생은 신판서가 잠이 들도록 잠을 자지 않고 누웠다가 신판서가 잠이든 눈치를 채이자마자 일부러 잠꼬대를 하는 체하고 한손으로 신판서의 가슴을 후려쳤다.
마악 첫잠이 들었던 신판서는 가슴을 때리는 통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유생의 소위인지라 십분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너 이게 웬 버릇없는 짓이냐?』
하고 호령을 하였다.
『일부러 알고서 그랬을 리가 있겠읍니까. 소생이 어려서부터 잠꼬대하는 버릇이 있사와 여태껏 그 버릇을 못고치옵고 버릇없는 짓을 감히 하였사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 유생은 판서의 앞에 거짓 사죄를 하였다.
『바로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이제는 네가 집안에 홀로 있을 때와 달라서 이미 어른이 되었으니 그런 못된 버릇은 곧 고쳐야만 한다.』
하고 신판서는 처음의 일이라 그대로 용서를 하였다.
조금후에 신판서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유생이 잠든체 하고 일부러 잠꼬대 하듯이 발길로 신판서의 허리를 내질렀다.
신판서는 허리를 발길에 채이고 질겁을 해서 일어나더니
『허어 이놈 또 이런 버릇야』
하고 책망을 했으나 잠꼬대로 그리는 것을 어쩌는 수가 없는지라,
『조심해서 그런 버릇은 고쳐야 하느리라』
하고 또 다시 타 일렀다.
그러나 얼마만에 유생이 또다시 손으로 후려치고 발길로 거더차는 바람에 신판서는 도무지 잠을 편안히 잘 수가 없었다.
『허어, 거 나쁜 버릇이로군. 너 같은 놈하고 하루 밤을 다 ― 자지 않었어도 이러하거든 며칠 계속해서 같이 잤다가는 내 몸에 뼉다귀 하나 성하게 남지 못하겠다. 네 이놈, 냉큼 안으로 들어가 자거라』
하고 신판서는 견디다 못해서 유생을 안으로 들이 쫓고 말었다.
이것은 유생이 새색시의 곁을 한시도 떠나기가 싫어서 거짓 흉계를 꾸민 것이건마는 신판서는 유생의 잠자는 버릇이 그같이 고약한 줄로만 알고 깜빡 속아 넘어가고 말은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 계교에 안 넘어갈 쟁비가 있겠느냐?』
하고 유생은 의기양양하여 이불보퉁이를 어깨에 매인채 내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 마침 일가되는 집 여손님 너덧사람이 오래간만에 왔다가 새색시가 방에서 홀로 자는 때문에 그 방에 들어가서 새색시와 함께 자게 되었다.
방안에서는 모두들 정신없이 함께 들어있는 판에 깊은 밤 삼경이나 돼서 방문을 열어 젖히고 유생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마자 일시에 놀라 깨어 일어나서 건너 방으로 우당 퉁탕 피해 다라나게 되니 갑자기 집안에서 난리가 난 것 같앴다.
그때 유생은 돌연 변색을 하면서
『다른 분들은 다 ― 딴방으로 가시고 새색시만 홀로 남겨 노아 주시오.』
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치니 채 몸을 피하지 못했던 몇몇 부인들은 황황히 방문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유생의 하는 말이 우스워서 차마 입 밖에 내어 웃지는 못하고 킥킥거리면서 웃음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었다.
신판서는 유생이 장래의 범상치 아니한 인물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손주사위를 삼은 터이니 유생내외 사랑하기를 자기의 친아들 딸보다 더하게 되었다.
얼마 후에 신판서가 외번(外蕃)을 안무(按撫)할 직임(職任)을 맡고 장차 내행(內行)을 이끌고 부임(赴任)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신판서는 유생으로 하여금 한시라도 곁을 떠나게 하는 것이 몹시 섭섭하므로 유생내외까지 배래(陪來)토록 분부를 내리었다.
그때 김씨 부인은 자기 딸의 체질이 섬약한 것이 매우 걱정이 되어서 이번 기회에 유생과 자기 딸을 얼마 동안 서로 떨어져 있게 할 생각으로
『아버님 신랑애는 아직 나이 어려서 솔거(率去)를 하지 않드래도 관계없을 것이 아니오니까? 그러하오니 신랑애만 데려가시고 색시애는 단 몇 달 동안이나마 서울에 머물러 있도록 하시와 얼마동안 휴양(休養)을 하도록 하심이 좋을 듯 싶습니다.』
하고 시아버지께 간하였다.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신혼재미가 채 무르녹기도 전에 젊은 것들을 먼 곳에 따로 떼어 놓는 것도 도무지 옳지 못한 일이다.』
하고 신판서가 첫째 허락지 않었고 둘째로는 새색시가 유생을 쫓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유생내외를 데리고 신판서는 서울을 떠났다.
신공이 임지(任地)에 도착한지 두어달 후에 상감께 진상(進上)알 먹(墨[묵])을 고르게 되었는데 공이 유생을 앞으로 가까이 불러들여서
『너 먹이 소용되느냐? 소용되거던 네 마음대로 골라가져라.』
하고 먹 수백 동(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었다.
『먹입니까? 소용되고 말굽쇼. 주시기만 하신다면 골라 갖겠읍니다.』
하고 유생은 먹 수백동이 있는 중에서 대절묵(大折墨)으로 백동을 골라서 따로 떼어 놓았다.
이 모양을 바라보고 있던 비장(裨將)이 기급하다 싶이 놀라면서 신공에게
『저렇게 많은 먹을 떼어 두신다면 궐봉(闕封)의 염려가 없지 않을 것이오니 소인은 그것이 큰 걱정이올시다.』
하고 주의를 주는 눈치였다.
『다시 만들어 드리면 염려 없지 아니한가? 공연한 걱정을랑 하지 말고 당장에 나아가 먹을 다시 수백 동 만들어 드리도록 배비를 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비장이 신공의 명을 받고 물러나간 뒤에 신공은 유생의 등을 두드리면서
『네가 먹을 골라놓는 것을 보니 나중에 가히 대성(大成)할 인물이다.』
하고 칭찬하는 한편에 홀로 기뻐하기를 마지 하니 하였다.
유생은 먹 백동을 가지고 책방(冊房)으로 내려오자마자 하례배(下隷輩)들에게 그 먹을 일일히 나눠주어 단한개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신공이 손주사위 되는 유생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유상국(俞相國) 척기(拓基)가 즉 그이였다. 척기의 자(字)는 전보(展甫)요 호(號)는 지수재(知守齋)로 시호(諡號)는 문익(文益)이었으니 목사(牧使) 명악(命岳)의 아들이었다.
척기가 숙종 갑오(甲午)에 문과(文科)로 등제(等第)하여 한림(翰林) 부제학(副提學) 이랑주사(吏郞籌司)를 역임(歷任)하고 경종(景宗) 임인(壬寅)에 화(禍)를 입어 섬으로 귀양을 갖다가 영조초(英祖初)에 귀양이 풀려 돌아오는 길로 호조판서(戶曹判書)로부터 우의정(右議政)에 이르렀으니 그때 척기의 시년(時年)이 마흔 아홉이었다.
그때까지 유상국의 장모되는 김씨부인이 살아 있어서 사위의 이같은 영달(榮達)을 보고 그제서야 시아버니인 신공의 지인지감이 놀라웠던 것을 새삼스레 감탄(感歎)하였다.
그 후에 유상국은 영의정(領議政)으로 치사(致仕)하고 기사(耆社)에 들어 천년(天年) 일흔일곱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슬하에는 아들사형제가 있어서 집안형편이 해마다 부유(富裕)해졌으니 모든 일이 신공의 말하던바와 일호 반점 틀림이 없었다.
유상국이 일찌기 황해감사(黃海監司)가 되어 임지에 부임하게 되었을 때 사위되는 남원(南原) 홍익빈(洪益彬)을 솔거해서 데리고 내려갔었다.
유상국이 어렸을 때 겪던 일과 같이 상감께 먹(墨[묵])을 진상(進上)하는 때를 당하자 유상국은 홍생을 앞으로 가까이 불러 들이어
『먹이 소용되거든 생각대로 골라 보아라』
하고 홍생의 하는 거동을 살피었다.
홍생은 얼마 동안 주저주저하드니
『골르라 하시면 골라 보겠읍니다.』
하고 대절묵(大折墨) 두 동과 중절묵 세 동 소절묵 다섯 동을 골라서 옆으로 밀어 놓았다.
유공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홍생을 바라보더니
『어째서 고것만 고르고 더 골르지 않느냐, 어디 더 골라 보아라』
하였다. 그러니까 홍생은
『대체로 물건이란 것이 무슨 물건이든지 다 그 쓰이는 곳에 한정(限定)이 있는 것이올시다. 소생이 만일 이 이상 더 먹을 골라 내인다 하오면 진상(進上)할 먹이 부족이 될 것이오며 또한 먹이 부족이 되와 글쓰는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 틀림없겠사오니 소생은 이것만 가지면 넉넉히 쓰고도 남으리라고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유공은 홍생의 이같은 대답을 듣더니 크게 탄식하면서
『너는 참으로 얌전하고 욕심 없는 선비이다. 그러나 권변(權變)이 없는 사람이니 벼슬에 오르기는 오르겠다마는 고관 대작(高官大爵)될 재목은 못된다.』
하였다.
과연 유공의 하던 말과 같이 홍생의 벼슬은 부사(府使)에 그치고 말았다.
유공이 홍생의 먹 고르는 것을 보고 그 장래를 예언(豫言)하게 된 그 선견(先見)은 자기가 친히 신판서에게 겪던 일을 깊이 머리속에 새겨 두었다가 다시 홍생에게 활용(活用)을 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러므로 이 선견(先見)은 즉 신공에게서 배운 것이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