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두운 밤에

자기가 조선 사람이라니 자기 고향이 경성이라니 어두운 밤에라도 경성 시가를 나가 보고도 싶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몰래 나가서, 아무 집에나 조선집이면 뛰어 들어가서 살려 달라 하고 실컷 울어보고도 싶었습니다. 아아 그러나, 그러나 이 밤만 자면 경성도 영 이별인데 원수의 밤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조선말도 모르는 어린 두 몸이 조선에 떨어져서 죽든지 살든지……. 이 밤에 도망이라도 해나갈까 하였으나. 순자는 단장의 마누라 방에 갇혀 자고 여관 대문 옆방에서는 단장의 부하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지키고 있으니 아무렇게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전등을 가리고 상호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눈을 감고 바른 팔목으로 눈 위를 덮었습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고 가슴 속은 방망이질을 치듯 펄떡펄떡 뛰었습니다.

날만 밝으면 경성도 마지막이요, 부모의 소식도 영영 모르게 되는 판이니, 어쩐들 편안한 잠이 들 수 있었겠습니까. 시계 소리가 들릴수록 밤이 깊어갈수록 눈은 점점 더 샛별 같아지고, 가슴은 더욱 더욱 뛰었습니다.

밤! 깊은 밤! 개도 자고 한길도 자고 전등까지 지붕까지 잠자는 깊디 깊은 밤! 세상은 무덤 속같이 고요한데, 여관 집 뒤꼍 변소 옆 오동나무 밑에 무언지 가끔 가끔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흐렸는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우중충한 어둠 속에서 이따금 꾸물거리는 이상한 그림자! 그것은 이 밤에 담을 뛰어 도망하려고 몸을 빠져 나온 용 소년(勇少年) 상호였습니다.

지금에라도 누군가 쫓아 나오는 듯 나오는 듯하여서 상호의 몸은 바르르 떨리건마는, 웬일인지 담을 얼른 넘어가지도 않고 꾸물꾸물하고만 섰습니다.

“이 애가 왜 입때 안 나오나? 잠이 들었을 리가 없는데…….”

상호는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들키기 전에 얼른 나와야 할 터인데…….”

하도 무섭고 갑갑하여 상호는 또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부지직부지직 여관 마루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렀습니다. 상호는 음칫하여 변소 벽에 바싹 붙어 섰습니다.

‘누구일까? 순자인가? 딴 놈인가?’

눈치를 채이려 고개를 내어 밀고는 싶고 내어 밀면 들킬까 겁도 나고 상호의 가슴은 폭포물처럼 용솟음쳤습니다. 발소리는 순자인지 누구인지 변소 쪽으로 자꾸 가까이 왔습니다.

누굴까 누굴까 상호의 가슴은 점점 더 뛰었습니다.

어둠 속이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으나 변소로 오는 사람은 변소에는 들어가지 않고 변소 옆을 쑥 내다보았습니다. 옳다, 순자다! 하고 상호는 얼굴을 쑥 내어 밀었습니다.

‘여기다! 여기 있다!’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언뜻 상호는 꿀꺽 참았습니다. 순자인지? 누구인지? 그는 다시 태연히 변소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니구나! 딴 사람이구나!”

상호는 잠깐 마음을 놓았으나, 그러나 여기 있다가 그 사람에게 들키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다시 두근두근 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널빤지 하나 격해 있는 변소 안에 들리면 어쩌나 싶어서 상호는 발발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변을 보았는지 대변을 보았는지 변소에서 나왔습니다.

‘이놈아!’

하고, 와락 달려들 것 같아서 상호는 전신을 움찔하였으나, 그 사람은 거기 상호가 있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태연히 걸어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휴우!”

상호는 새로 살아난 듯이 숨을 들여 쉬었습니다. 다시 한동안 고요하였습니다. 변소에 나왔다가 들어간 사람도 지금쯤은 다시 고단한 꿈이 깊이 들었을 때였습니다.

‘이 애가 어째 안 나오나?’

상호의 가슴은 조 비비듯 하였습니다. 다시 한동안 고요한 어둠 속에서 가늘게 가늘게 사뿐사뿐 몰래 기어 나오는 듯싶은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인제 나오는구나!’

하고, 상호는 미리 옷가슴을 여미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옷소매를 걷고 가뜬히 차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가슴은 여전히 두방망이질을 쳤습니다. 숨이 저절로 헐떡거렸습니다.

‘무사히 무사히 저 담을 넘어가야 할 터인데…….’

사뿐사뿐 발소리가 가까워왔습니다. 그는 자리옷을 입은 채로 기어나오는 모양이었습니다.

변소 옆까지 나왔습니다.

“여기다! 여기다! 이리 오너라.”

상호가 속살거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는 마루에서 사뿐 내려서, 상호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상호의 가슴은 어찌 뛰는지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자, 어서 가자!”

상호는 와락 달려들어 그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상호는 그 손을 잡자마자 깜짝 놀라,

“악!”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습니다.

《어린이》 4권 5호 (192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