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단의 비밀/4
4. 새로운 걱정과 설움
자기 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것도 모르고 자란 신세 불쌍한 곡마단의 소년과 소녀! 열여섯 살 되고 열네 살 되는 이 봄에 조선에 왔다가 이상한 조선 노인을 만나,
“너희가 조선 사람이라.”
는 것과
“너희 두 사람이 친오라비 친누이라.”
는 말과 부모의 소식을 듣게 되자, 원수의 곡마단 임자 내외에게 들키어 다시는 만날 수도 없게 헤어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 우리 두 사람의 팔자는 왜 이다지도 불행한가 하여 생각할수록 가슴을 얼음으로 저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도 몹시 얻어맞았는지 소년의 몸에는 뱀이나 구렁이가 칭칭 감긴 것 같이 채찍 자국이 빨갛게 부어올랐고, 소녀는 휘어잡혀 휘둘린 머리가 칼로 저며 놓은 것 같이 아프고 온몸에 꼬집혀 뜯긴 자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아파도 관계치 않으니 다시 한 번 떠나기 전에 그 외삼촌이라는 노인을 잠깐만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습니다.
‘아아, 자기의 근본을 알고 본국을 찾고 부모를 찾고……, 그것이 우리들 평생의 소원이 아니었는가! 오늘 죽는다 하여도 한탄이 없으니 내 부모 내 본국을 알게 된 것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소원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이제 조선에 와서 뜻밖에 외삼촌을 만나 부모의 소식을 듣다가 못 듣다니……. 아아, 이렇게까지 악착한 팔자이면 차리라 죽여나 주소서, 죽여나 주소서…….’
입 속으로 부르짖으며 원망스러이 허공을 쳐다볼 때에,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샘물같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 노인의 말이 정말이라 하면 분명히 자기들은 조선 사람이오, 친오라비요 친누이요, 이름은 상호와 순자요,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네 남매를 찾지 못하여 화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찌 되셨을까? 돌아가셨을까? 살아 계실까?’
노인의 말씀은 마침,
“너희 아버지는…….”
하다가 그치고 말았으니, 노인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아무래도 아는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을 만나야 되겠다! 노인을 만나야 되겠다!’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나, 그러나 당장은 내일 아침으로라도 이곳을 떠난다고 부랴부랴 포막 집을 허물어서 짐을 싸는 중이니, 무슨 수로 이 넓은 경성 천지에서 그 외삼촌이라는 노인을 밤사이에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해는 벌써 어두워 가는데, 이 밤만 지내면 내일 아침에는 처음 보는 본 고향을 또 떠나서 정처 없이 끌려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바위에 눌리는 것같이 점점 무거워질 뿐이었습니다.
“대체, 조선 노인과 이야기 좀 하기로서니, 단장이 무슨 일로 그다지 싫어할까…….”
“글쎄 말이요. 무슨 큰 변이나 난 것처럼 야단이니 이상한 일이예요.”
소년과 소녀는 가늘고 힘없는 소리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그래요. 그까짓 일로 열흘이나 더 할 돈벌이도 중지하고, 오늘로 포막을 헐어서 짐을 싸는 것을 보면 반드시 무슨 큰 까닭이 있는 것이 분명해…….”
소녀는 근심스런 소리로,
“무슨 까닭일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글쎄, 무슨 까닭인지 그건 몰라도 어쨌든지 우리 두 사람과 조선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큰일이 생길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으냐? 그러니까 우리들의 몸이 이 곡마단에 끼어 있는 것이 위험한 일일 것 같이 생각되는구나…….”
“글쎄요. 점점 마음이 무시무시해져요.”
어쩐지 자기들 어린 몸이 무서운 무서운 비밀을 가진 흉악한 놈들의 손에 쥐여 끌려 다니는 것 같아서, 새로운 불안스런 마음이 아버지 그리는 설움과 함께 그들의 가슴에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 지옥 속에 빠진 것같이 무서운 어두운 밤이 차츰차츰 그 집과 그 마음을 덮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