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단의 비밀/3
3. 이상한 노인
조선의 봄, 더구나 서울의 봄은 아름다웠습니다. 밖남산[外南山] 망원리의 복사꽃, 장충단의 개나리, 서강(西江) 건너와 청량리의 수양버들. 보는 곳마다 좋다고 곡마단 사람들은 틈마다 떼를 지어 돌아다니건마는, 이 곡마단의 왕이라 하여도 좋을 두 아이는 오늘도 아침밥을 먹고 곡마단 빈자리에 심심히 앉아 있었습니다.
단장 내외는 여관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꽃구경 나가고, 중국사람 내외와 심부름꾼 조선 사람 두 사람이 거적 위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을 뿐, 오정 때가 되어야 모든 사람이 돌아오고 구경꾼도 몰려오기 시작할 판이었습니다.
빈 집 마당에 낮잠 자는 강아지같이 쓸쓸하게 심심하게 나른하게 너댓 사람이 있을 때, 이상한 조선 노인 한 분이 곡마단 포막 안으로 찾아들어 왔습니다.
머리는 반이나 희끗희끗하고 옷은 맵시 추레하고, 신발이라고는 다 찢어진 고무신을 이리 꿰매고 저리 꿰매서 간신히 발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어슬어슬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심부름하는 조선 사람이
“아직 구경 없어요. 이따가 점심 잡숫고 오시오, 이따가 와요.”
하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말은 들은 체도 안 하고 물끄러미 보고 있는 두 의남매에게로 왔습니다.
“이 애야. 너희가 조선 아이 아니냐?”
“너희를 보고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니?”
하고, 여러 가지로 물었으나 소년과 소녀는 처음 온 나라이라 조선말을 한 마디도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깜박깜박하다가, 소년이 언뜻 심부름꾼을 불러서 노인의 말을 일본말을 통역하여 달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노인과 소년은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네가 혹시 조선 사람이 아니냐?”
“모르겠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도 모르고 고향도 모르고 곡마단에서만 자랐으니까요. 나라도 모릅니다.”
어쩐지 슬픔을 머금은 대답을 듣고 노인의 눈은 이상스럽게 빛났습니다.
“오오, 그럼 분명하다, 분명히 너희가 조선 사람이다. 네 나이가 금년에 몇 살이냐? 열여섯 살이냐, 열일곱 살이냐?”
“저는 열여섯 살입니다.”
노인은 펄쩍 뛸 듯이 신통해 하면서,
“옳지 열여섯 살, 그럼 정말 분명하다! 네가 분명히 상호다. 상호야.”
노인은 어찌할 줄을 몰라 하면서 다시,
“그럼 저 애는 금년에 열네 살 아니냐?”
“네. 열네 살이올시다.”
“오오, 옳다, 옳다. 순자다, 순자야. 너희 남매를 한꺼번에 만날 줄을 몰랐다!”
하면서, 노인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였습니다.
“예, 오뉘예요? 저희 둘이 친오뉘입니까? 노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소년과 소녀의 피는 일시에 끓어올랐습니다. 평생의 소원이 지금 이루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불길이 내쏟는 듯한 눈으로 노인의 얼굴을 쏘아보았습니다.
“오냐. 이야기하마. 너희는 내 누이의 아들이요, 딸이다. 나는 너희 외삼촌이다. 그런데 네가 네 살 되고 저 애가 두 살 될 적에 너희 부모가 서울서 너희 남매를 잃어버렸단다. 그때 나는 시골 살았었으므로 편지로 그 소식을 듣고 곧 서울로 올라와서, 너희 부모와 같이 너희를 찾느라고 애를 썼으나 어디 찾을 수가 있디……, 영영 찾지 못하고 그만 너희 어머니는 심화병이 나서 이내 돌아가시고, 너희 아버지는 홧김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때마침 단장 내외가 말채찍을 들고 들어오다가 이 꼴을 보더니, 무슨 큰 변이나 난 것처럼 내외가 다 얼굴빛이 변하였습니다.
“누구야, 나가. 나가.”
소리를 지르면서 노인의 등을 밀어 포막 밖으로 내어 쫓고는, 다시 들어오자마자 채찍으로 말 갈기듯 소년을 후려갈겼습니다.
“요놈의 자식아! 왜 여기 와 있어?”
가늘고 길다란 채찍은 독사뱀같이 소년의 몸을 휘휘 감았다 놓았습니다.
그러고 채찍이 닿았던 곳마다 다리고 손끝이고 모두 피가 맺히고 퉁퉁하게 부어올랐습니다.
소녀는 단장 마누라의 손에 머리채를 휘어 잡혀서, 그가 휘젓는 대로 이리 쓰러지고 저리 구르고 하면서 아픔을 못 참아 소리쳐 울었습니다.
그 날로 단장의 명령이 내려 곡마단은 문을 닫아 버리고, 포막 집을 헐어 헤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성에서도 앞으로 열흘이나 더 할 예정이건만, 웬일인지 불시에 문을 닫고 부랴부랴 짐을 만들어서 한시라도 속히 경성을 떠나 중국으로 간다는 명령이었습니다.
《어린이》 4권 4호 (1926년 4월호, 북극성(北極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