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단장! 단장!

그렇지 않아도 뒤쪽에서 놈들이 쫓아올 것이 분명하고, 앞에는 그 창고에 칠칠단 놈들이 모여 있어서 야단이 날 듯하여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삼층 밑 땅 속에 뚫린 좁다란 굴속으로 도망하는 터라, 달리 도망할 길이 없어서 그냥 순자를 데리고 기어 나가다가 뜻밖에 저쪽으로부터 오는 놈의 머리와 머리가 맞닥뜨리어 온몸이 오싹하였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틀렸다!’

하고, 상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급하게 된 때에도 제일 마음이 크기는 오직 순자뿐이었습니다. 상호는 움찔하면서 몸을 뒤로 웅크리고 뒤로 손을 내밀어 더듬어서 순자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그 손은 몸과 함께 부들부들 떨리었습니다.

그때 별안간 얼굴 앞에 환하게 불이 켜졌습니다. 저쪽 놈이 불을 켠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꼭 죽었구나 생각하면서 얼굴을 들어 불빛에 저편을 보았습니다.

“앗!”

정말 큰일 났습니다. 거기 불을 들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악마 같은 단장의 얼굴이었습니다.

“앗!”

상호의 입에서는 저절로 부르짖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정신도 잃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요놈아! 어서 이리 나오너라.”

귀신같이 호령하면서, 한 손으로는 상호의 등덜미를 잡고 오던 쪽으로 도로 나갔습니다. 뒤에 따라오던 순자는 혼자 돌아서서 도망할 수도 없고, 어리둥절한 마음에도 이제는 죽더라도 오빠하고 같이 죽겠다고 끌려가는 오빠의 팔을 단단히 붙들고 따라 끌려 나갔습니다.

“요놈의 자식아, 어떻게 생겨서 그렇게 앙큼하냐? 조선에서 네가 도망을 하였으면 하였지, 계집애까지 빼어 가려고 여기까지 수염을 붙이고 쫓아와서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해?”

하고, 칭칭 묶어 놓은 상호를 구둣발로 걷어차고는, 달려들어 코 밑에 만들어 붙인 수염을 잡아 뜯었습니다.

“요 앙큼한 놈의 자식! 어디 견디어 봐라!”

하고, 다시 발길로 걷어차서 단번에 쓰러뜨렸습니다. 굵은 줄에 묶인 채로 순자 옆에 쓰러 진 상호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구두에 채여 입술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순자는 소리쳐 울었습니다.

“저놈 배 위에 7호 돌을 얹어 놔라!”

명령이 떨어지자 부하 두 놈은 큰 궤짝만한 돌덩이를 둘이서 억지로 들어다가 묶이어 신음하는 상호의 가슴과 배 위에 걸쳐 눌러 놓았습니다.

“내일 오정 때까지만 눌러 두어라. 그러면 저절로 죽을 것이다.”

순자는 몸을 묶인 채 그냥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 잠시 후 단장은 부하에게 명령하여 순자를 층계 밑 구석방에 데려다가 가두어 놓게 한 후, 곡마단에서 말을 갈기는 길다린 채찍으로 후려갈기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