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그리운 고국으로

기호는 혼자서 발버둥질 치면서 이 창고 밖에서 안타까운 밤을 밝히었습니다.

맨 처음 요릿집 앞에서 상호와 헤어져서 곧 뛰어 창고집 앞으로 왔으나, 그때는 벌써 키 커다란 단장과 그 부하 아홉 사람이 무언지 쑥덕거리면서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판이었으므로, 기호는 깜짝 놀라,

‘아아’ 이제는 큰일 났구나! 상호가 순자를 데리고 나올 텐데, 저놈들이 저렇게 많이 들어가니 상호와 순자는 독 안에 든 쥐로구나!’

생각하고, 우선 골목 옆에 몸을 숨기었습니다. 쫓아 들어갈 재주도 없고 그냥 있을 수도 없고 지금쯤은 상호와 순자가 그놈들에게 붙잡혀서 고생을 당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자기의 뼈가 깎이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다 생각다 못하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고, 그 동안에 봉천 경찰서에 두 번이나 뛰어갔으나, 숙직하는 중국 순경들은 덮어놓고,

“내일 아침에 와, 내일 아침!”

할 뿐이었습니다.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그 속에서는 지금 상호와 순자의 생명이 어찌 될는지 모르겠고 혼자서 미칠 듯이 날뛰는 기호는 그냥 그 집에 불이라도 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불이 나서 불을 끄느라고, 또는 도망해 가느라고 소란한 틈을 타서 상호와 순자를 구해 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창고같이 지은 벽돌집이니 성냥쯤 가지고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고, 또 벌써 날이 밝아서 오가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으니 그렇게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만 콩 튀듯 하던 기호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그 길로 줄달음을 쳐서 허덕지덕 경찰서로 뛰어갔습니다.

경찰서로 갔던 기호는 금방 도로 되짚어 나와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경찰서도 믿을 수가 없으니, 이곳에 조선 사람들의 회가 있기만 하면 거기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곧 경찰서에 가서 조선 사람의 회가 어디 있는가를 알아가지고 나와, 조선 사람들을 찾아서 뛰어가는 판이었습니다.

아아 반가울손 그 간판! ‘한인협회’라는 그 간판! 숨이 모자라 헐떡거리면서도 그 간판을 볼 때에 기호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침 밥 짓는 연기만 나는데, 뜰을 쓸고 있는 늙은 중국 사람에게,

“회장 어른 계시오?”

하고 물으니까, 아아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그이도 옷은 중국옷이나 말은 우리말로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아침 운동하러 나가셨습니다. 곧 들어오실 터입니다. 왜 그러시오?”

기호는 마당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그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이 곳 봉천에만 조선 사람이 1만 5천 명이 넘는다는 것과 이곳 회장은 나이는 50이지마는 마음과 기운은 젊은 청년보다도 낫다는 것과 부인도 없고 아들도 딸도 없이 외로운 몸으로 여기와 있는 조선 사람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활동하는 분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었습니다.

뜰 쓰는 이와 하는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늙으신 회장이 돌아왔습니다. 기호는 인사를 차근차근히 할 새도 없이 경성서 여기까지 온 이야기와 곡마단에서 자라난 상호라는 소년과 순자라는 소녀가 지금 생명이 위험하다고 이야기를 달음질하듯 하였습니다. 어찌 급한지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회장 어른의 두 눈이 이상하게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못 보았습니다.

“그래, 그 상호라는 아이와 순자라는 아이의 성이 김가가 아니오?”

기호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김가입니다.”

“오! 내 아들이오! 내 딸이오.”

부르짖더니, 회장은 다시 잠잠히 입을 다물고 두 눈을 꼭 감고 한참동안이나 잠잠히 앉아서 무엇인지를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서면서 뜰 쓰는 이를 불러 몇 마디 말을 일렀습니다. 5분이 못 되어 양복 입은 청년 한 사람이 마당에 나서서 나팔을 크게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 하늘에 멀리 멀리 울려 퍼지는 씩씩한 나팔 소리에 기호는 어찌 기운이 나는지 그냥 앉아 있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서 그리로 뛰어나갔습니다.

5분이 못 되어 양복 또는 중국옷 입은 굵직굵직한 청년들이 둘씩 셋씩 눈이 휘둥그레서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어요?”

하면서, 묻는 그 반가운 우리말들……. 기호는 기뻐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15분 동안에 모여든 사람이 벌써 1백 37명이나 되었습니다. 늙으신 회장은 높은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여러분, 오늘에야 내 아들 딸을 찾게 되었소이다. 그러나 그 애들은 다른 우리 조선 소녀들과 함께, 왜놈 광대패의 창고 속에서 목숨이 위험한 판이라오.”

일동은 주먹을 쥐고 흔들면서 어서 가자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약속을 정해 가지고 발소리도 가볍게 칠칠단의 소굴을 향하여 쏟아져 갔습니다. 기호의 안내로 저쪽 요릿집으로 50명이 들어가고 이쪽 창고로 10명이 들어가곤 17명은 밖에서 파수를 보면서 도망가는 놈을 잡아 묶는 한편 돌멩이에 눌리어 숨이 금방 끊어질 듯한 상호와 천장에 매달린 채 새벽까지 두들겨 맞아서, 거의 기절해 쓰러졌던 순자를 구했습니다. 오뉘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도 한참만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날 온종일 수색한 결과, 모두 다 붙잡혀 묶인 칠칠단원이 49명인데, 그중에 대항해 보겠다고 덤벼 보던 놈은 팔이 부러졌거나 허리가 꺾어져서 늘어졌습니다.

퉁겨 나온 아편이 35궤짝, 감춰 두었던 피스톨 탄환이 두 궤짝, 조선서 훔쳐온 소녀가 세 사람……. 상호, 순자의 아버지이신 ‘한인 협회’ 회장이 시키는 대로 칠칠단원을 달려온 중국 경찰 마차에 실어 보내고 여관 주인도 뒤미처 잡아가 버렸습니다.

“만세! 만세!” 기쁨을 다하여 부르는 우리말 만세 소리를 들으며,

“잠깐 다녀오겠노라.”

약속하고, 떠나는 회장과 상호와 순자와 기호와 그리고 세 소녀를 태운 기차는 고국을 향하여 먼 길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