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단의 비밀/31
31. 땅속의 비밀 길로
교묘한 계책으로 바깥을 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그 틈을 타서 대담하게 마굴 속에 뛰어 들어간 상호는 들어서기는 하였으나,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고 다리가 떨리는 것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안에 아직도 몇 놈이나 있는지 모르겠고, 바깥에서 또 어느 때 우르르 쫓아 들어 올지도 모르는 노릇이 되어서 더욱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러나 기왕 들어선 걸음이라 잡히면 잡히는 그때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상호는 층계 아래로 허둥허둥 내려가면서 이 방 저 방 미친 사람같이 후딱후딱 들여다보면서 급한 소리로,
“순자야, 순자야!”
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마음은 조 비비듯 하면서 급급히 부르건마는 아무데서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상호는 점점 마음이 조 비비듯 하였습니다. 삼층 밑바닥에까지 내려가면서,
“순자야, 순자야!”
불렀습니다.
삼층 밑 방 그 옆방으로 가면, 저편 동네 창고 집으로 도망해 가는 땅 속 길이 있는 방인데, 거기서 한 번 더,
“순자야, 순자야!”
하고 불렀습니다.
“앗!”
그때에 상호의 귀에 들린 것! 그것이 분명히,
“예, 예.”
하는 소리였습니다.
순자 역시 아까 뜻밖에 주정꾼이 손에 쥐어 주는 종이를 받아 두었다가 방에 들어와서 펴 보니, 반가운 오빠의 소식이라 오빠가 자기를 구하러 중국까지 쫓아와 준 것이 고맙기도 하였거니와, 오늘밤에 기호와 함께 구원하러 오겠다는 소리에 이때껏 잠을 안 자고 바깥 동정에 귀를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도 반가운지 앞뒤 무서운 것 다 잊어버리고, 상호는 와락 그 방문으로 달려들었으나, 큰일이 났습니다. 방문은 꼭 잠겨 있습니다.
“방문이 잠겼다, 방문이 잠겼다!”
하고, 상호는 울상이 되어서 소리쳤습니다. 어디선지 사람 오는 발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하고, 가슴에서는 불덩이들이 춤을 추는 것 같은데, 원수의 문이 꼭 잠겨 있어서 까딱을 아니 하니 어찌합니까?
상호는 하도 급하여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디서 누가 쫓아오지나 않는가 귀를 밝히는데, 바로 그때 안으로부터 방문이 덜컥 열리었습니다. 그리고 그리로 순자가,
“오빠!”
하고, 뛰어나왔습니다. 들여다보니 그 방 속에서 털보 주인의 중국 마누라가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순자를 지키고 있었는데, 밤이 깊으니까 세상을 모르고 깊이 잠이 들어 있었으므로, 순자가 그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열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상호와 순자는 인사고 무어고 여부가 없었습니다. 상호는 순자의 손을 잡고,
“자, 어서 어서!”
하고, 잡아당기면서 그 방의 저 편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는 땅 속 길에 구멍이 뚫려 있으므로 상호는,
“아무 염려 말고 내 뒤만 따라 오너라.”
하고, 자기가 앞에서 휘장을 헤치고 좁다란 구멍으로 머리와 허리를 굽히고, 기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순자도 오빠를 따라가는 기쁨에 무서운 것도 괴로운 것도 다 모르고, 오빠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기어갔습니다.
퍽 어두운 캄캄한 구멍 길을 기어가면서, 상호의 가슴은 몹시도 두근거렸습니다.
‘지금쯤 일이 발각되어 뒤에서 쫓아오지나 않을까……. 혹시 기호더러 저쪽 창고 집 문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는 하였으나, 그 안에 창고집 속에 그놈의 패들이 모여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면 어쩌나…….’
겁은 자꾸 뒤를 이어 생겨서 가슴에 두방망이질은 그칠 줄을 모르는데 큰 일 났습니다. 이 좁다란 땅속 길로 자기 남매가 기어 나가는 저편 안쪽에서 누구지 이리로 향하고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멈칫 나가던 것을 중지하고 몸을 웅크린 상호는, 어두운 속에서도 머리가 아찔하고 온몸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같이 저리었습니다. 공교롭기도 하지요, 이 땅 속 길에서 머리를 맞부딪히게 되니, 이 노릇을 어찌 하겠습니까?
《어린이》 5권 7호 (1927년 9·10월 합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