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나다! 상호다

실상은 칠칠단의 비밀한 소굴이면서, 겉으로는 뭇 손님을 드나들게 하는 간편 요리점! 무서운 요리점! 삼층 지하실까지 있는 이 마귀의 집속에 얼마나 악한이 엎드려 있는지 그것도 알 수 없거니와, 깊은 밤이건마는 대낮같이 휘황한 전등 밑에 이 상 저 상에 앉아서 술과 요리를 먹으며 앉아 있는 놈들도 어느 놈이 정말 손님인지 어느 놈이 악한 패들인지 몰라서, 생각만 하여도 몸이 떨리는 괴상한 요리점에 대담스럽게 앉아서 상호와 기호가 순자를 구해 낼 의논을 하는데, 그때 단장 마누라와 단원 세 놈이 불쌍하게 파리한 순자를 에워싸고, 요리점 앞문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물론, 단장의 명령을 받아 순자를 이 집 속에다 감추어 두려고 데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아아, 순자 순자! 불쌍한 순자! 얼마나 두들겨 맞고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병든 사람같이 파랗게 마른 저 순자의 얼굴! 두 사람은 눈에는 뻘겋게 핏발이 서고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 놈의 떼가 열 명이거나 백 명이거나 상관하지 말고, 와락 와락 달려들어 번개같이 순자의 몸을 뺏어 가지고 총알같이 도망을 하였으면 얼마나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러나 그것은 지금 경우에 꿈에도 바랄 수 없는 일이고, 섣불리 덤비었다가는 무슨 봉변을 하게 될는지 모르는 터라 두 사람은 울렁거리는 가슴 떨리는 주먹을 그대로 쥐고 보고 서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어서 있던 상호는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앉으면서 즉시로 주머니에서 명함지 하나를 꺼내고 목에 걸린 줄에 매어 달린 연필로 급하게 참말 급하게,

나다. 상호다.

염려 말고 있거라.

오늘밤으로 기호 씨와 함께 구하러 오마!

이렇게 휘갈겨 써서는 읽어 볼 사이도 없이 손아귀에 웅크려 쥐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 동안에 단장의 마누라는 순자를 데리고 요리조리 휘휘 둘러보면서 요리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는 문 쪽으로 가다가, 털보 주인 영감과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남 보기에 오래간만에 찾아오는 손님처럼 꾸미느라고 일부러 길다랗게 하는 인사였습니다.

상호는 갑자기 술이 무척 취한 걸음걸이로,

“께흡, 으응 오늘은 몹시 취한다.”

하고, 취한 소리로 중얼중얼거리면서 비틀비틀 단장 마누라 섰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서는 처음 발견한 듯이 물끄러미 그의 모가지와 등덜미를 들여다 보다가,

“흥. 참말 미인인걸. 우리 미인 나하고 인사 좀 합시다 그려, 께흡.”

하면서, 엎어지는 것처럼 두 팔을 벌리고 단장 마누라를 안으려고 덤비었습니다.

“에그머니, 망측해라!”

일본말로 소리치면서 단장 마누라는 급히 몸을 피하였으나, 상호는 벌써 그의 왼편 손을 잡고 비틀비틀 순자의 앞에 쓰러져서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요릿집이라 이러한 술주정은 흔히 있는 터이니까 남들은 모두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고 재미있게 구경만 하고 있는데, 그 중에 주인 털보와 부하 세 명만은 벌떡벌떡 일어서서 가깝게 다가섰습니다.

단장 부인의 몸에 여차하기만 하면 달려들려는 준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단장 마누라는 자기가 잡힌 손을 뿌리치기에만 애를 쓰느라고 상호의 뒷손이 순자의 손과 마주 닿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다른 부하 놈들은 단장 마누라의 몸에만 주의하고 섰느라고, 번개같이 빠른 그 동작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술을 잡수면 혼자 얌전하게 잡숫지, 이게 무슨 실례의 짓이오?”

단장 마누라는 참다 참다 못하여 이렇게 제법 점잖게 꾸짖는 소리를 하고 잡힌 손을 뿌리쳤습니다. 그때는 벌써 순자의 손에 명함지를 쥐어 준 뒤라, 상호도 처음 정신을 차린 체하고 벌떡 일어서서,

“아이구 실례했습니다. 술이 취해서 요리점 보이인 줄 알고 그랬습니다.”

능청스럽게 비틀거리면서 사죄 인사를 하고, 비틀비틀 자기 자리로 도로 돌아왔습니다. 와서는 기호의 넓적다리를 넌지시 꾹꾹 찔러 재촉해 가지고, 돈 몇 푼을 술값으로 내어 놓아 두고, 역시 비틀걸음으로 걸어 나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