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마굴을 빠져 나와

단원이 한 반쯤 나갔을 때에 상호는 중국 놈 한 사람과 짝을 지어 나가게 명령받았습니다. 될 수 있으면 순자를 데리러 가는 세 놈과 함께 나가 그들의 뒤를 따르려 하였으나, 그들은 세 사람이 한 패가 되어 나간 지 오래되었고, 그 후 곧 그 다음 차례에도 못 나가게 되고 한 사오십 분이나 떨어져서 이제야 중국 놈 한 놈과 나가게 명령이 내리니, 상호는 삼층이나 층계로 올라가면서 어찌해야 순자를 만나게 될꼬! 하고 그 생각만 하였습니다.

삼층이나 올라와 보니, 그제야 거기가 땅 위였습니다. 좁다란 복도를 지나고 조그만 방을 셋이나 지나서니까, 거기는 길가 널따란 방이 술청으로 되어 십여 개 따로따로 떨어져 놓여 있는 식탁에 여기저기 서너명씩 손님이 둘러앉아서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 흉악한 놈들의 겉으로는 이렇게 천연스럽게 요릿집을 꾸며서 장사를 하면서 속으로는 단원들의 소굴로 통하는 땅속 길을 파 놓고 드나드는구나!

생각할 때에 상호는 새로이 무서운 것을 느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호는 순자를 만나는 것, 만나서 뺏어가지고 도망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째야 할꼬? 어째야 할꼬? 하면서 무심히 중국 놈의 뒤를 따라가는 상호는 앞서 나가던 중국 놈이 벌써 문 밖의 한길에까지 나갔건마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골몰하느라고 걸음걸이에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별안간에 상호의 지나가는 옆에 상에 혼자 앉았던 손님이 한 발을 쑥 내밀자, 상호는 그 발에 걸리어 엎드러질 뻔하였습니다.

“앗, 이거 실례하였습니다.”

앉았던 손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사과의 말을 하면서 엎드러질 뻔한 상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극히 작은 소리로,

“나요, 나요.”

하고 급하게 속살거렸습니다. 상호가 보니까 천만 뜻밖에 그는 기호였습니다.

“웬일이오?”

하고, 기쁜 김에 손을 흔들며 물으니까,

“앉으시오. 크게 말 말고 여기 앉으시오.”

하고, 기호는 눈짓을 하여 상호를 그 식탁 앞에 앉히었습니다.

“이리로 그놈들이 도망을 하게 시킨 것은 내가 한 짓이요.”

역시 작은 소리로 속살거렸습니다.

“응, 당신이 시킨 짓이라니?”

“아까 저쪽 집에서 문지기처럼 변장을 하고 들어갔던 것이 나야요. 그래 내가 눈치 채라고 당신의 발을 꼭 밟지 않았나요?”

“옳지, 옳지……. 나는 그 문지기가 왜 나한테 덤비지 않고 발등만 밟았을까 하고, 지금까지도 궁금히 여겼었지…….”

“당신이 안으로 들어간 후에 나는 그놈을 묶어서 데리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이 도로 나오지를 않으므로 어떻게 염려하였는지 몰라요. 그러니 어떻게 소식을 알아보는 재주가 있어야지……. 당신이 혼자 그 속에 들어가서 붙들리기나 하였으면 당장에 생명이 위태할 듯싶어서 마음이 조비비듯하여 무슨 꾀를 생각하다 못하여, 주머니에 있던 돈 5원 짜리를 꺼내서 묶어 가지고 있는 문지기 놈에게 주고 살살 꾀었지요. 그러니까 그 놈이 원래 돈만 아는 중국 놈이라, 5원 짜리를 보더니 회가 동하는 모양이야. 묻는 대로 대답을 잘 합디다. 그래 문을 지키고 있다가 급한 일이 생기면 뛰어 들어가서, 두 팔을 엇갈라 질러서 보고하는 것과 그 다음에 정 급하면 초인종을 누르면, 다 땅속 길로 도망하는 법인 것도 다 배웠지요. 그래 그 땅속 길로 도망하면 이쪽의 요릿집으로 빠져 나오는 것까지 알고는 그놈과 옷을 바꾸어 입었지요. 그리고 회중전등을 켜 들고 얼굴을 대강 그놈처럼 꾸며 가지고 들어갔던 것이어요.”

“참 잘 하였소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를 것을…….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해도 관계없나요?”

“아무 염려 마시오. 여기는 보통 요릿집으로 꾸민 것이니까 아무나 들어와서 술을 먹는 데니까요. 이야기를 크게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야요.”

“옳지, 옳지…….”

“그래 변장을 하고 들어가 보니까, 꼭 붙들려서 고생을 당하는 줄 알았던 당신이 거기 무사히 앉아서 참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우선 안심하고 위험하다는 보고만 얼른 하고 도로 뛰어나왔지요. 그래야지 거기 오래 있으면 서투르게 변장한 것이라 탄로가 날까 봐서요.”

“밤이라 그런지 얼른 보고는 모르겠습디다.”

“그래 나중에 초인종까지 눌러 놓고는 이제는 모두 땅속 길로 해서 요릿집으로 헤어져 나오려니 하고 다시 옷을 바꾸어 입고 이리로 뛰어 와서 술먹는 체하고 당신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앉아있는 중이예요”

“참말 잘 하였소. 그런데, 그 정말 문지기 놈은 지금 어디 두었소?”

“그놈은 역시 묶어 놓은 채로 그 벽돌집 대문 안에 항상 제가 앉아 있는 문지기 자리에 눕혀 놓았지요.”

“옷을 벗기고 나서, 다시 묶었구료?”

“그럼 어떡하나요! 고생스러워도 잠깐만 묶여 있으라고 했지요. 나중에 돈을 또 주마고 했지요.”

상호는 기호가 항상 자기만큼 재주와 꾀가 적은 줄 알고 갑갑하게 여기다가, 오늘 그 일을 보고, 참말로 마음속에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만하면 든든한 일꾼으로 믿을 수 있게 된 것이 제일 기뻤습니다.

“그런데, 순자 씨는 어찌 되었나요? 그 속에서 못 만나셨나요?”

하고, 이번에는 기호가 물었습니다.

“못 봤어요. 그런데 지금 저놈들이 순자를 여기다가 갖다가 감추어 둔다고 세 놈이 데리러 갔어요. 곧 올 것입니다.”

“그럼 그놈들을 쫓아갈 걸 그랬습니다 그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나오는 차례가 그렇게 되야지요. 그래 놓치고 만걸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기다려 보지요. 이리로 데리러 올 것이니까.”

“그렇지만 여기서는 만난다 해도 빼어 갈 수가 없을 테니까요. 까딱 하기만 하면 저쪽편 안에서 몇 명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어쩔까요? 큰 탈이로구려.”

“여기서 만나면 빼앗지도 못하고 탈이어요.”

“그러니 어쩌면……”

하다가 상호가 말을 뚝 그치고 벌떡 일어나 기호의 어깨를 꾹 찌르면서,

“쉿!”

하였습니다. 기호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이켜 상호가 보는 쪽을 보니까, 일은 벌써 닥뜨렸습니다.

한길로 난 문이 열리고 세 놈의 남자가 먼저 들어서는데, 그 뒤에 단장의 마누라가 순자를 데리고 따라 들어옵니다.

아아, 순자! 순자! 불쌍한 순자! 얼마나 두들겨 맞고 얼마나 고생을 하였지 병자같이 파랗게 마른 저 순자의 참혹한 얼굴! 두 사람의 눈에는 벌겋게 핏발이 서고 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리고 상호의 눈에는 눈물이 솟았습니다.

《어린이》 5권 6호 (1927년 하기 방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