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동 354

점심때도 지나고 벌써 오후 네 시! 짐을 꾸리기에 분주한 여관방 한 구석에서 순자는 이제껏 빠져나갈 틈을 타지 못하고 가슴만 바작바작 졸이고 있었습니다.

처음 듣는 동네 이름이라 잊어버릴까 보아 겁도 나고, 또 찾아갈 적에 조선 사람에게 물어보려면 말을 모르니까 적은 것을 보이고 물어야겠으므로, 오빠가 써 보낸 것은 찢지도 아니하고 몸에 지니고 펴 보고 펴 보고 하면서 똑딱똑딱 지나가는 시계 소리에 가슴만 졸이고 앉았습니다.

변소에 간다고 핑계를 하자니 변소는 뒤꼍에 있고, 앞으로 나가자 하니 한걸음만 움직여도 어디를 가느냐고 앞을 막고……, 오빠와 외삼촌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실 터인데, 이러고 있다가 나만 중국으로 끌려가겠구나 싶어서 바작바작 타는 속에서도 더운 눈물이 옷자락에 뚝뚝 떨어졌습니다.

“무어냐? 너 손에 들고 들여다보는 것이……. 어디 보자!”

아까부터 순자가 이상한 종잇조각을 가진 것을 눈치 채고 눈여겨보고 있던 단장 마누라가 와락 달려들어 순자의 주먹 쥔 손을 급히 펴고 종이 끝을 쥐었습니다.

‘이것을 들켰으면 큰일 났구나.’

생각하고 순자는 깜짝 놀라 손을 뿌리쳤으나, 일은 이미 늦었습니다. 종이의 3분의 1밖에는 손에 남아 있지 않고 3분의 2가 단장 마누라의 손으로 찢겨 갔습니다.

찢어진 종이를 읽은 단장 마누라는,

“알았다, 그놈 있는 곳을 알았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단장이며 여러 부하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서 쪽지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위 도막이 찢어져서 무슨 동네라는 동네 이름이 없고 354라고 밖에 없으므로, 위 도막을 찾으려고 순자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순자는 벌써 그 위 도막을 입으로 씹어서 목구멍으로 삼켜 넘겨버린 후였습니다.

“종이는 없더라도 너는 동네 이름을 알 것이니까, 대라 대! 요년아, 안 댈 테냐? 안 댈 테냐?”

단장의 그 무서운 손이 발발 떨고 있는 뺨을 후려 갈겼습니다. 그러나 순자의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요년!”

소리가 나자마자 단장의 발이 순자의 목과 어깨를 얼러 질렀습니다. 내여던져 바수어지는 세간그릇같이 한숨에 죽는 것처럼 순자는 그냥 캑 하고 쓰러지더니, 숨소리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입을 안 벌리지, 그래도.”

말채찍 같은 것으로 후려갈기니 그 끝이 새빨간 다리에 휘감겼다가는 풀어지고, 휘감겼다가는 풀어지고 하였습니다. 창자를 찢는 듯싶게,

“아이그머니, 아야머니.”

하고 우는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찢었습니다. 벌써 그의 다리에서나 뺨에서는 피가 맺혔던 것이 뚝뚝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요년이 안 대! 어디 견뎌 봐라.”

단장 마누라가 달려들어 옷을 벗겼습니다. 그러고는, 그 부드러운 비둘기같은 몸을 채찍으로 갈기고 갈기고 하였습니다. 몹시도 아픈지라 순자는 대굴대굴 구르면서 소리쳐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누구였겠습니까? 맞고 맞고 맞다 맞다 못하여, 순자는 그냥 까무러쳐 죽었습니다.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얼굴은 해골같이 파래지고 이를 악물고 사지가 뻣뻣하여 그냥 죽었습니다.

까무러쳐 죽은 것을 보고야 연놈들은 깜짝 놀라서 찬물을 떠다 얼굴에 뿜는다 사지를 주물러 준다 야단법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