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욕의 기상도
편집1
편집신 성호와 행복된 술을 다시 한 잔 나누고 온 춘심은 정말 곤드레 만드레다.」
「아이, 아씨두 어쩌면……」
식모가 당황히 대문을 열었다.
「오오, 내 사랑하는 어멈이여! 그대 행복의 문을 열었느뇨?」
그러면서 춘심은 어멈의 어깨에다 몸을 실었다.
「아이, 아씨두 나리…… 나리가 오셨어요!」
그러나 그 말이 춘심이에게는 꿈결처럼 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리가 누구야? 춘심이의 가슴에는 칼날이 안 들어가나? 오 창윤의 뱃대기에는 칼날이 안들어가?」
「아이머니나! 아씨두……」
춘심을 업다시피 하여 식모는 마루에다 흩으러진 옷에 휘감긴 몸둥이를 끌어 올려 눕혔다.
「아씨! 나리가 오셨어요, 나리가……」
마루 한복판에 번뜻 나가 자빠진 춘심이의 어깨를 흔들면서 식모는 열심히 말했다.
「무엇이 왔어?」
「나리가 오셨어요.」
「나리, 나리, 개나리가 왔어?」
「아이, 아씨두 정말 무척 취허셨네!」
「행복의 문이 열렸어. 취하는게 당하지 뭐야?」
그때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오 창윤이가 대청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거기에 나타난 오 창윤의 얼굴은 식모가 예측하고 있던 무서운 그것과는 정반대로 너그러운 웃음이 넘쳐 흐르는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멈은 나가서 수건에 물을 좀 추겨 오우.」
오 창윤 춘심이 옆에 쭈구리구 앉아서 이마에 흩으러진 머리카락을 추켜 올려 주며
「술이 너무 과했군. 자아, 좀 일어나 앉아. 이게 무슨 추탠고! 어멈이 부끄럽지 않을까?」
그러면서 되는대로 나가 자빠진 춘심이의 흩으러진 상반신을 안아 일으켰다.
「이게 누구야?」
춘심은 몽롱한 눈으로 영감을 쳐다보다가 아주 표정을 크게 쓰며
「오오, 아현동 오 선생이 아니시우? 그래 아닌 밤중에 젊은 여자의 집엔 또 무얼 하러 오셨나요?」
「술이 너무 과했대두.」
식모가 가져 온 물 수건으로 춘심의 땀에 젖은 얼굴을 닦아 주며
「어멈은 어서 건너가 자요.」
하고, 식모를 물리친 후에
「자아, 어서 방으로 들어 가. 무슨 꼴인고?」
「아, 글쎄 이 밤중에 무얼 하러 오셨나요? 울리러 오셨나요? 웃기려 오셨나요? 웃기러 오셨나요? ── 오 선생!」
「글쎄 왜 그래?」
「뺨 한번 더 갈겨 보구려」
「또 그런 쓸데없는 말을…… 자아, 내 아랫목에 자리를 깔아 놨는데 어서 들어가 자야지.」
그러나 원체 취해버린 춘심의 몸둥이는 촌보도 갱신을 못한다.
오 창윤은 하는 수 없이 시체처럼 추욱 늘어진 춘심이의 몸둥아리를 안아다가 안방 잠자리 위에다 눕혔다.
「아이, 가슴이 답답해 저고리 좀 벗겨요!」
오 창윤은 쌀자루처럼 추욱 늘어진 춘심이의 웃동아리에서 연분홍 깨끼 저고리를 찢어지지 않게 벗기노라고 한참이나 애를 썼다.
「아아, 발이 답답해. 버선 좀 벗겨요!」
오 창윤은 사랑의 노예처럼 묵묵히 춘심이의 발굼치로 돌아 가서 커다란 만두송이같이 예쁘장한 버선발을 하나하나씩 벗겼다.
벗기면서 오 창윤은 오늘밤, 춘심을 이처럼 행복되게 하여준 사나이의 생각을 골돌히 하고 있었다.
질투의 불길이 오 창윤을 무섭게 습격해 왔다.
그러나 오 창윤은 그 험상궂은 불길을 꾹 참을 수 있는 연치(年齒)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이 같이 잠자리에 들어서
「춘심아.
하고, 되는대로 내맡긴 춘심이의 취해 빠진 몸둥아리를 가만히 애무하면서 오 창윤은 불러 본다.
「……응……응……」
「벌써 잠이 들었어?」
「……응……응……」
「글쎄 무슨 술을 이토록 먹었을꼬?」
화를 내는 것보다 달래는 편이 효과적임을 오 창윤은 잘 알고 있다.
보통 기생같으면 나리로서의 위엄을 한 번 보여줄 필요도 있을 것 같지만 평양 기생 춘심은 괜히 잘못 다치다가 삐뚤어지기 시작하면 것잡을 수가 없다.
「춘심이가 어째 오늘 밤은 이처럼도 행복할까? 거 모를 일인데……」
「……응……응……그럴 이유가 있다는 밖에……응……취했어!」
「자동차 타구 대문 밖까지 바라다 준 사내가 누구지?」
「흐흥, 그런건…… 그런건 묻는 편이 쑥이라우. 쑥이야.」
「늙은이라구 업신여기면 못 써」
「암, 못 쓰구 말구. 천벌을 맞지, 천벌을 맞아! 응, 응…… 영감」
「왜 그래?」
「기생이라구 천대함 못 써」
「누구가 춘심을 천대 했나?」
「흥, 천대 아니구 뭐야? ── 그 어떤 잘난 년처럼 구두 신구 가방 들구 대학교를 못 댕겼으니 영감의 품안에서 종신 징역살이를 하라는 말이야?」
몽롱했던 춘심이의 정신이 차츰차츰 맑아져 간다.
2
편집어째 생각이 그처럼 「 갑자기 변했을까? ── 춘심일 갈긴 손으로 이처럼 춘심이 볼을 아플세라 어루 만져 주는데……」
「영감한테 얻어 맞은 것 쯤 그리 분할 것두 없지만…… 사실 나는 영감한테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니까 그만 한 것쯤 서럽지는 않지만…… 그러나 암만해두 그 방정맞은 년의 말이 맞는 것만 같애.」
「유경이가 뭐라구 했던 아직 어린애가 아닌가? 그런걸 다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구……」
「영감.」
「응?」
「나 정말루 곱수?」
「물어선 무얼 해?…… 홀랑 입 속에 집어 넣구 싶은데 ──」
「흥, 장 발라 꼴딱이야?」
「소금 발라 빠짝이지.」
「아주 능쳐 먹기는……」
「능치긴 누가 능쳐?」
「백 년 묵은 구렁이야. 내가 딴 사내하구 밤 늦도록 술이나 퍼먹구 돌아 댕겨두 그래 화가 안나?」
「이거 봐, 춘심이.」
「글쎄 말 좀 해보구려」
「늙은 몸이 화를 내면 무얼 하느냐? 알구두 모르는 척, 보구두 못본 척 듣고도 못 들은척 하는게 제일이지」
「흥, 눈 감아 준다는 말이지!」
「별 수 있나? 돈으로 사는건 춘심이의 몸 뿐이지 춘심이의 마음이 담장 안의 화초야!」
「넘겨다두 못 보겠어!」
「허는 수 없지. 원체 담장이 너무 높은걸!」
「미안합니다.」
「얘, 늙은이 너무 희롱 말아라.」
「영감.」
「응?」
「나 암만 생각해두 떡을 너무 지나치게 먹다가는 꼭 체할 것만 같구료.」
「응? 떡을 지나치게 먹다가는 체한다? 그게 무슨 뜻이야?」
흐흐흥 모르는게 「 , 다행이지. 알구두 모르는 척하는게 제일이지.」
「늙은일 너무 희롱하면 못 쓰느니라」
「영감.」
「응?」
「나 꽃 한번 따보구 싶어요.」
「꽃을 딴다? ──」
떡에 체하구, 꽃을 따구 하는 말을 오 창윤으로선 정말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춘심이에게두 청춘이 있잖소?」
「아, 그런 뜻인가!」
오 창윤은 비로소 알아 들었다.
「언젠가 영감은 나를 보구 맏 딸이라 그랬죠? 그러니까 인제부턴 영감을 나는 정말루 아버지라구 생각할테니 영감두 나를 딸처럼 여겨 줘요. 유경일 생각하는 것처럼 춘심일 생각해 줘요. 그건 무척 힘든 일일는지 모르겠지만…… 춘심이가 이처럼 울면서 부탁하는 거니까 들어 줘요. 춘심인 과히 미련한 년이 아니니까, 이렇게 서로 타협적으로 나가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 좋아요.」
「춘심아, 그게 될 말인가?」
오 창윤은 후우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마음에 걸리던 것이 마침내 왔다. 감정 같아서는 젊은이들처럼 몸부림을 쳐 보고도 싶었으나 쓴물 단물 다 맛본 오 창윤으로서는 애욕의 몸부림 보다는 체면이 먼저 앞장을 섰다.
「나 조금도 영감 나무라지 않아이. 이모 저모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내가 왜 영감을 나무라겠어요?」
요렇게 살살 달려 붙고 보니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사실 말이지, 영감은 이 쓰디 쓴 세상 맛을 시시골골히 맛본 어른이니까, 이런 부질없는 어리광을 피지만두, 보통 같음 될 뻔이나 한 이야긴가요? ── 아버지, 철 없는 딸의 간곡한 부탁 들어 주세요. 네?……」
「으, 음 ──」
「정말 딸과 같은 환상을 오 창윤은 불현듯 춘심의 옆 얼굴에서 느꼈다.」
「그 대신 내가 아버지의 중매를 하나 설테야요. 이런 생활에 만족을 느끼고 영영 불평이 없이 영감의 시중을 들어 줄 얌전한 기생을 하나 중매해 드릴 테야요. 그럼 되죠? ──」
「그건 필요 없는 말이구……」
「아냐요. 그래야지 제 마음이 편해요.」
넌 그저 네 「 마음만 편할 대루 생각하면 그만이로구나! 허, 허, 허……」
「아이, 영감두 ──」
「네 심정만은 잘 알았다! 늙은 녀석이 욕심이 너무 많았나 보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오 창윤이가 너 때문에 눈을 뜨는가 보다!」
「어리광이 너무 지나쳤죠?」
「그처럼 탁 터 놓고 말을 해 주니 기쁘다. 허나 너와 함께 꽃을 따려는 그러한 사나이가 누구냐?」
「영감 모르는 이야요.」
「최달근이가 아니구?」
「아이, 영감두! 최 달근 따위람 차라리 영감이 낫지 뭐야요?」
「음 ──」
「영감두 보시며는 제 사위처럼 눈에 드실꺼야요.」
「나 보다 돈이 많은 사람인가?」
「돈이 뭐유! 하숙비두 못 물어서 쩔쩔 매는 가난뱅이 소설가야요.」
「잘들 된다. 작은 딸도 그렇구 맏 딸도 그렇구, 우리 집안에 모두 돈 없는 사위로 풍년이 드나 보다! 허허허 ──」
「하여튼 잘 생각해 보아 주세요. 네?」
「팔자가 기구하여 늙마에 한번 손을 댄 외도가 어이하여 요 꼴이란 말이냐! 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