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1권/46장

결혼은 인생의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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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보, 준혁이가 왔소. 이게 무슨 꼴이요.」

오 창윤은 어린애처럼 네발 걸음을 하면서 방바닥에 널려진 쵸코렡을 주어 다시 상자에 넣고 부인은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워 버렸다.

「여보, 준혁이가 들어 오기 전에 어서 그 입술이나 씻으우.」

그러면서 오 창윤은 한 번 싱긋 웃어 보였다.

그 말에 부인은 약간 당황한 얼굴로 핼끗 영감을 쳐다보고 나서 재빨리 이 불 깃으로 입술을 뻑 문지르며 다시 홱 벽을 향하여 돌아 누었을 때 준혁이가 들어 왔다.

「사모님, 요사인 좀 어떻십니까?」

부인은 하는 수 없이 얼굴을 돌리며

「음, 괜찮어. 어서 앉으라구.」

준혁은 오 창윤을 향하여

「뭐 하는 것 없이 공연히 바빠서 자주 뵙지두 못하여 송구합니다.」

「왜 바쁘질 않겠나? 그래 병원은 잘 돼 나가는가?」

부인과 단 둘이 있을 때는 보지 못하였던 점잖은 태도로 오 창윤은 돌아간다.

「네, 그저 그럭저럭 괜찮읍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

이윽고 술상이 들어 왔다.

「자아, 오랫만에 한 잔 드세.」

「네, 먹겠읍니다.」

준혁은 따라 주는 대로 묵묵히 잔을 받았다.

「사모님두 한 잔 드시지요.」

그 말에 오 창윤도 바싹 다가들며

「당신두 한 잔 드시우, 술은 만병의 약이라구 그랬소.」

「만병의 약이라구?…… 흥, 난 쵸코렡을 많이 먹어서 그만 두겠수.」

부인은 새침해서 외면을 한다.

「아, 하, 핫, 핫……」

오 창윤은 유쾌히 웃어대며

「술 다르구 쵸코렡 다르지! 하하하……」

그러나 준혁은 무슨 영문이지를 모르고 덤덤히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자아, 우리나 먹세.」

오 창윤은 술잔을 들며

「그래 유경이 한테선 더러 편지가 오는가?」

「네, 아니 별루……」

준혁은 무척 분명치 못한 대답을 하였다.

「애가 원체 놔 기른 말 같아서 어른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 줘야지.」

「선생님」

하고, 그때 준혁은 표정을 가다듬고

「실은 오늘 선생님을 특히 뵈려 온 것은 유경씨에 관한 문제 올시다.」

준혁은 얼마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서리다가 그 무엇을 결심한 사람처럼 단호한 태도로

「실은 벌써부터 이 문제에 대해서 선생님과 사모님 앞에 제 태도를 결정하고 싶었읍니다만 원체 제가 분명치 못한 인간이 되어서……」

준혁은 머리를 공손히 숙였다.

「음, 무슨 말인고?」

「선생님……」

「음, 사양치 말구 이야길 하게」

「다년간 선생님과 사모님의 후의를 친 부모의 그것처럼 사양치 않고 받아 온 저 올시다.」

「그래서?」

「그러나 한 가지 선생님과 사모님의 후의를 사양하지 않으면 아니 될 일이 있읍니다.」

「그것은 무엇인고」

「그것은 유경씨와의 저의 약혼문제 올시다.」

「뭣이?」

오 창윤의 벌거스레한 얼굴이 갑자기 험해진다.

부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다.

「유경이와의 약혼을 사양한다?…… 음, 그러나 거기에는 필시 그 어떤 중대한 이유가 없을 수 없겠는데……」

그것은 실로 오 창윤 내외의 생각으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약혼을 하고 나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하면서 한 일 년 더 있다가 하는 것이 서로 좋을거라는 말을 남겨 놓고 동경으로 간 유경이가 아닌가.

그러한 착실한 생각을 가진 유경을 준혁은 어째서 거절을 하는지, 그 이유를 오 창윤은 통 알아채릴 수가 없었다.

「중대한 이유라는 것 보다두 그런 이유가 있읍니다.」

「유경이가 부족해서 하는 말인가?」

「…………」

「그렇다면 그것은 허는 수 없는 노릇이지만두…」

「아니 올시다, 선생님.」

「그러면?……」

「유경씬 실상 제게는 너무 과분한 것 같아서 말씀입니다.」

「그것은 아니야. 도리어 유경이가 부족하다면 모르거니와…… 가만 있자…… 옳지, 옳지, 이유는 유경이 편에 있는 것이 분명해!」

「…………」

「그러면 유경이에게 무슨 실수가 있었는가?」

「아닙니다. 이유는 유경씨 편에 있읍니다만 절대로 무슨 실수가 있던 것은 아니지요. 분명히 말씀드리면 유경씨가 저번 동경으로 건너 간지 약 보름 만에 제게 편지가 왔읍니다. 유경씨와의 약혼의사를 포기하라는 의미의 편지가 왔읍니다.」

「음 ──」

오 창윤은 깊은 신음을 하였다.

「그래 유경이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그 배후에 숨은 이유는 모르는가?」

「그것은 전혀 저로서는 알 수 없읍니다.」

「음, 그만 했으면 알법두 하네. 현해탄을 건너 다니는 동안에 탈이 난 것이 분명해!」

「아니, 여보 탈이 나다니?……」

부인은 다가 앉으며 크게 걱정을 한다. 그리고는 혼자 속으로

「옳지, 고 년이 그러니까 어미가 아프대두 나오질 않구 있었구나!」

하고, 유경을 나무랜다.

「그래 자네는 거기 대해서 뭐라고 회답을 했는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유경씨의 인생을 살리는 것이니까, 저로서는 단념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있읍니까.」

「그래 그런 의미의 회답을 냈는가?」

「네 ──」

그때, 오 창윤은 꿱하고 소리를 치며 에잇 이 밸 빠진 사람아 「 , ! 그래 제 그물에 들어왔던 고기를 잠자쿠 남한테 뺏긴다는 말이야?」

오 창윤은 마치 자기 자신의 계집을 남한테 뺏긴 것처럼 분노하였다.

「그러나 선생님, 제게 무슨 도리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왜 그 길로 동경으로 뛰어 가서 유경일 끌고 나오질 못해? 유경이에게 딴 사나이가 생겼다면 그 사내와 칼부림이라두 해서 유경일 왜 제것을 못 만들어? 에이, 생각만 해두 치가 떨리도록 분한 일이야!」

오 창윤은 치를 부들부들 떨었다.

「요즘 청년들은 그게 탈이야. 왜 열통이 그리들 작은가 말이야? 유경이가 자네를 그만큼 따르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두 그걸 그냥 놓아 줘? 도대체 지난 겨울 방학에 유경일 그대로 놓아 준 것이 잘못이야. 찍짹 소리를 못하게 왜 제 것을 만들지 못했느냐 말이야? 에잇, 밸 빠진 사람 같으니!」

오 창윤은 화가 치밀어서 옆에 놓인 찻 종지를 당겨다가 제 손으로 술을 콸콸콸콸 붓는다.

「그러나 선생님.」

준혁은 잠자코 오 창윤의 분노를 그대로 받아 들이다가 이윽고 머리를 들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유경씨의 의사에 거역하여 유경씨를 제것으로 만든 댓자 그것은 결국에 있어서 두 사람이 다 함께 불행의 짐을 지고 인생을 걷게 될 것입니다. 유경씨는 유경씨대로 꿈을 안고 현실에 불만을 느낄 것이요, 저는 또 저대로 사람의 의사를 강요하는 데서 오는 불만을 품고 불유쾌한 삶을 살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왜 불유쾌한 삶을 산다는 말인고? 사람을 정복(征服)하는 데서 오는 유쾌한 승리감이 그대를 습격할 것이 아닌가! 전승(戰勝)의 정복감을 자네는 왜 상상을 못해? 한 민족의 왕성한 의욕을 정복하고 승리의 기쁨을 휘두르며 전승의 나팔 소리도 유랑하게 적진(敵陣)으로 쳐 들어갈 때 느끼는 그 저릿저릿한 기쁨의 전률을, 그 자즈러들 것 같은 승리의 행복감을 왜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

준혁은 그저 잠자코 있었다.

「그런 때 만일 자네는 적군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기의 민족으로 하여금 패전의 비애를 갖게 할 셈인가?」

「그러나 그것과 이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뭣이 달라? 하나는 개인의 문제요, 하나는 개인의 덩어리인 군중의 문제일 따름이니까.」

그때, 준혁은 정색을 하며 엄숙한 목소리로

「선생님 선생님과 저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생각이 다른가 싶읍니다.」

「무슨 뜻인고?」

「전쟁에 있어서는 자기 개인만을 희생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부모형제와 자기의 동족을 희생시킬 수 없으니까 적군이 의사를 존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 문제에 있어서는 자기 혼자만이 희생을 하면 됩니다. 김 준혁이 혼자만이 희생을 하면 오 유경의 인생을 존중할 수가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으, 음 ──」

오 창윤은 대꾸를 못했다. 지금까지의 오 창윤의 인생관으로서는 일고(一顧)의 가치조차 없던 조그만 문제였다. 그 사소한 문제가 지금 김 준혁의 입으로부터 가장 중대하게 확대(擴大)되어지는 것을 볼 때 오 창윤의 확고 하던 인생관이 일순간 동요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김 준혁이가 왜 오 유경을 위하여 희생하야만 되는고? 나로서는 그것이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선생님과 저는 생각이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음 ──」

하고, 깊은 신음을 하며

「그만 했으면 자네 생각을 알듯 싶으네. 그러면 현실문제로 돌아가서 연애라든가 결혼이라든가가 아무리 자유라고 하더라도 어는 누구가 설익은 개살구 같은 사내에게 귀한 딸을 줄 수가 어디 있단 말이야? 결혼이란 내 생각으로는 인생의 기업(企業)이야. 계산 없는 기업체(企業體)로서 어떻게 인간 七十[칠십]년을 유지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저도 동감입니다만…… 그러나 유경씨는 절대로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읍니다.」

「그것은 내 눈으로 봐야 알어. 만일 김 준혁이 보다 조금이라도 손색이 있다면 그 결혼은 절대도 성립될 수 없어」

「그것은 선생님이 아직 유경씨를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유경씨의 뾰족한 성격은 기어코 그 결혼을 성립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안 된다!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다!」

그렇다면 「 유경씨의 인생에 무서운 파탄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도 하는 수 없는 일이야! 하여튼 내일 아침 전보를 쳐서 곧 유경일 데려 내올 수 밖에 없어!」

오 창윤은 다시는 움직일 수 없는 단호한 결론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