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14장
14. 遺言 執行者
봉룡은 이 황홀찬란한 보물상자를 언제까지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아, 황금은 쥐였다! 다음에는 권력이다!』
하고 외치면서 상자에서 보석류를 주머니에 가득 넣은 후에 보물상자는 다시 전대로 흙을 덮어두고 동굴을 나왔다.
황해환이 다시 봉룡을 마지하고저 진주섬을 찾아 온것은 그들의 약속대로 사흘 후였다.
『아, 배 떠날 시간도 잊어버리고 사냥에 미처서 돌아 댕기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었습니다.』
봉룡은 그렇게 변명을 하고 노루 세마리를 선장 앞에 내놓았다. 누구 한사람 봉룡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사흘후 황해환이 다시 신의주에 도착하였을 때, 봉룡은 그중 조그만 금강석을 한개 팔아서 자기가 그중 신용할수 있는 황해환의 선원 수길(水吉)이에게 조그만 발동선을 한척 사주면서
『수길이, 이 발동선을 타고 진남포로 가서 비석리에 살던 이형국(李亨國)이라는 노인과 억낭틀에 살던 계옥분이라는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 두사람의 소식을 알아가지고 곧 진주섬으로 돌아오게. 나는 거기서 자네를 기다릴테니까.』
그리고 봉룡은 자기가 선원이 된것은 결코 되고 싶어서 된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마음이 맞지 않아서 집을 뛰여나왔다는 말과 이번 신의주엘 와보니 하나밖에 없던 삼춘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자기가 적지않은 재산을 상속하였다는 말을 하였다.
『글세 아모리 봐도 뱃사람 같지는 않더니만...... 헤에 그래요?』
수길은 한편 놀래며 한편 친구의 행운을 무척 축복하면서 진남포를 향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봉룡은 선장에게도 이뜻을 전하고 고용관계를 끊어버린 후, 곧 안동(安東)으로 건너가서 六만원이라는 거액을 던져 한척의 훌륭한 쾌속선(快速船)을 사 가지고 일로 진주섬을 향하여 돛을 달았다.
이리하여 다시 진주섬에 도착한 봉룡은 동굴속에 매장되여 있는 재물을 전부 배에 싣고 수길이가 진남포에서 돌아 오기를 기다렸다.
한주일 만에 수길은 돌아왔다. 그러나 수길이의 입으로부터 보도된 것은 모두 슬픈 사실 뿐이였다.
『이형국이라는 노인은 벌서 세상을 떠났답니다.』
『음! 그리고 계옥분이라는 여자는?』
『계옥분이라는 여자는 아모리 물어 보아도 행방쪼차 알 길이 없습니다.』
『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것은 봉룡이도 이미 짐작한 일이였다. 그러나 옥분은 대체 어떻게 되였을고?......
『그럼! 자아, 수길이, 뱃머리를 진남포로 돌려라!』
봉룡은 극히 엄숙한 어조로 명령을 하였다.
그리고 사흘후 봉룡이의 호화선(豪華船)은 남포 어구에 마상(魔像)인 양 솟아있는 해상감옥의 벼랑밑을 지나 항구 안으로 손살같이 들어갔다.
『아아, 저 무서운 벼랑턱!』
그 높다란 벼랑 위에서 자기의 몸둥이가 바다바람을 헤치고 쏜살같이 떨어저 내리는 광경을 머리속에 그림그려 보며 몸을 부르르 떨였다.
봉룡은 마침내 부두에 상륙하였다. 아아, 얼마만에 밟아보는 남포의 땅인고!
『十四년! 十四년!』
봉룡은 천천히 걷기를 시작하였다. 한발자욱 한발자욱이 새롭고 감격을 가지고 봉룡의 가슴을 오주주하니 덮어 눌은다. 소년시절의 모든 감격과 반가운 추억이 영원히 사라질 줄을 모르는듯이 한조각 한조각 널려저있는 부두근처! 아버지가 수수죽을 자시던 비석리 오막사리 초가집 앞까지 다달았을 때는 봉룡은 그만 오그라질 듯한 슬픈 감격에 쓰러질것 같았다.
대문을 들어서서 아버지가 계시던 방을 찾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가난한 젊은 부부가 살고있었다. 그 젊은 부부의 승낙을 얻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버지가 누어 계시던 저 아릿목! 그 불쌍한 노인은 저 아릿목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최후의 숨을 들이켰을 것이다!
『아아, 아버지!』
봉룡의 눈에서 주먹같은 눈물이 자꾸만 자꾸만 흘러내렸다.
이윽고 봉룡은 이집 주인이던 박돌이라는 포목상을 하던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아, 그이는 지금 진지동(眞池洞) 바루 앞거리 행길 가에서 조고만 여인숙(旅人宿)을 경영하고 있습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봉룡은 그자리에서 이 오막살이를 자기에게 팔아달라고 청하면서 시가에 배나 되는 금액을 내 놓았다. 주인은 눈을 둥그랗게 뜨며 그것을 승락하였을 때 봉룡은 아버지 방에서 살고있는 가난한 젊은 부부를 향하여
『자아, 오늘부터 이집은 내집이 되였소. 그리고 당신네들은 넓은 안채로 들어가 사시고 그 조그만 방만은 그대로 비여두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하여 또 젊은 부부를 놀라게 하였다.
그날 저녁 사람들은 이 고마운 신사가 억낭틀 어떤 조그만 어부의 집을 방문하여 한시간 이상이나 옛날 이야기를 자꾸만 캐묻더라는 말을 하였으며 그 이튼날은 그 가난한 어부들에게 어선 세척과 고기잡이 그물을 열개 사 보냈다는 마치 신화(神話)같은 이야기로서 해지는 줄도 몰랐다.
그 이튼날 아침 평양행 열차가 진지동 역에서 멎었을 때, 검은 승려복(僧侶服)을 입은 한사람의 점잖은 사나이가 개찰구를 빠져나와 앞거리 행길가에 있는 금강여인숙(金剛旅人宿)을 찾아 들어 갔다.
『여기 박돌이라는 사람이 계시지 않습니까?』
『예, 예, 제가 바루 그 박돌이 올시다.』
『아, 그러면 당신이 이전에 진남포 비석리에서 포목 가게를 보던 분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루 제가...... 그러나 벌써 옛날 일이지요. 자아,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원 방이 다 누추해서.......』
박돌이는 그러면서 이 점잖은 승려를 안으로 모시었다. 손님은 방안과 뜰안에 널려있는 이 가난한 살림살이 도구들을 흥미있는 눈으로 한번 둘러 보았다. 그리고 그는 시장하다하여 박돌의 안해가 가저 오는 상밥을 한상 채려다 먹으면서
『그래 밥 장사는 돈 벌이가 괜찮으시우?』
하고 물었다.
『웬걸요. 그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지요. 아시다싶이 밥술이나 착실하게 얻어 먹을려면 이 세상에선 우리처럼 정직해 가지군 안되지요. 안돼요.』
『그러나 결국 정직한 사람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구 악한 사람에게는 벌이 있는 법이요.』
『흥! 말씀 맙쇼. 정직한 사람은 하루 세끼 입에 풀칠두 잘 못하는게 이 세상입죠.』
박돌이는 그러면서 먼 산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하였다.
『그럴 리가 있겠소? 가만 계시우. 내가 오늘 여기를 찾아온것은 결국 정직한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 드리고저 온것입니다.』
『예? 뭣이라구요?』
박돌은 놀란다.
『가만 계시우. 먼저 당신이 바루 내가 찾고저 하는 분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어야 하겠소.』
『그것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당신은 저 기미년 만세 전후에 살아있던 이봉룡이라는 사람을 혹시 아는지......?』
『이봉룡이라구요?...... 아, 알구 말굽쇼! 봉룡이루 말하면 내 절친한 친구였지요.』
박돌은 두눈을 호기심에 번쩍거리며
『그래 그 봉룡일 아십니까? 아직 살아 있습니까?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까? 어서 좀 알려 주십시요! 이거 원, 봉룡이를 아신다니.......』
박돌은 무척 반가워 한다.
『죽었습니다. 감옥에서 죽었지요.』
『죽었다구요?......』
박돌은 저고리 소매로 눈물을 씼으며
『그것 보시우! 하느님은 악한 사람만 귀여워하고 봉룡이처럼 착한 사람을 그처럼.......』
『당신은 봉룡일 그처럼 좋아하셨소?』
『예, 예, 좋아하구 말굽쇼! 한때는 나두 봉룡의 행복을 약간 질투한 적은 있지만두...... 그러나 그후부터는 그 불행한 봉룡이를 생각하면...... 아아, 불쌍한 봉룡이!...... 그래 당신은 그이를 아십니까?』
『알지요. 나는 국보(國保)라는 교회사(敎悔師)인데 그이가 사형을 당하여 옥사하기 직전에 내가 그의 최후의 영혼을 위로해준 사람이요.』
『그러세요? 국보 스님이시라구요?』
박돌은 눈물을 손등으로 씻는다.
『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그는 제가 죽을때까지 무슨 죄로 체포를 당했는지를 모르고 죽었지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봉룡이는 그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음, 그래 그이가 죽으면서 하는 말이, 무슨 죄로 자기가 붙들려왔는지, 그 원인을 나더러 좀 알아 달라구요. 실은 봉룡이와 같은 감방에 있던 어떤 수인이 병으로 죽을때, 봉룡이가 친 혈육처럼 친절히 간호를 해 준 은혜를 갚는다구 하면서 몰래 가지구있던 금강석을 봉룡이에게 주었지요. 그 금강석으로 말하면 시까로 약 오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오만원이라구요?』
박돌은 타오르는것 같은 두눈을 번쩍거리면서 조급히 물었다.
『바루 이것인데.......』
하고 국보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밤알만한 금강석을 박돌의 눈앞에 내놓았다. 휘황한 광채가 방안을 밝히는것 같았다.
『헤에, 이것이 오만원이라구요? 그래 당신이 바루 봉룡이의 상속인으로 되셨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다만 봉룡이의 유언집행인(遺言執行人)일 따름이고...... 봉룡이가 죽으면서 하는 말이, 자기에게는 세사람의 친구와 한사람의 약혼자가 있었다구요. 그리고 그 네사람으로 말하면 확실히 자기를 위해서 친절히 해준 사람인데, 그중 한사람이 박돌이라는 사람이지요.』
박돌은 감격의 남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장현도라는 사람이고 또 한사람은 송춘식이라는 사람이라구요.』
『송춘식이라구요? 장현도라구요? 흥! 그래 그이들이 저 불쌍한 봉룡이에게 친절히 했다구요?』
그순간 박돌의 입까에는 그어떤 악마적인 웃음이 빙그레 떠올랐다. 그러나 승려는 그것을 못 본척
『그래 이 금강석을 다섯으로 쩌개서...... 아니, 그의 부친은 벌써 돌아갔으니까, 넷으로 쩌개서 약혼자 옥분이와 박돌씨와 장현도와 송춘식과― 이 네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유언을 나에게 하였지요. 그래 나는 그 유언 대로 집행할 임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국보는 박돌을 유심히 처다 보았을 때, 박돌은 넷으로 쩌개지 않으면 아니될 그 번쩍거리는 금강석을 한없이 탐내는 눈치로 중얼거렸다.
『흥! 송춘식과 장현도가 친절히 하였다구요? 흥!』
『왜 그러시우? 만일 송춘식과 장현도가 봉룡이에게 친절히 하지 않었다면 이 금강석은 당연히 두쪽으로 나노아서 당신과 옥분이 만이 상속을 받을 권리가 있지요.』
그때 부엌 문밖에서 이런 말을 듣고 있던 박돌의 안해가
『여보! 무슨 또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려는거요?』
하고 쨍하니 고함을 쳤다.
박돌은 고만 그 소리에 후닥딱 놀래며 안해를 돌아다 보았다.
검은 승려복을 입은 이 국보라는 손님―그가 봉룡이 그 사람인것을 영리하신 여러분은 물론 벌써부터 짐작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