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眞珠島

봉룡이가 천행으로 구조를 받은 황해환으로 말하면 황해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밀수입선임을 봉룡은 알았다. 그러나 봉룡을 혹시 세관(稅關)의 스파이나 아닌가고 의심하고있던 황해환의 선장은 봉룡이가 하나의 뱃사람으로서 실로 놀랄만큼 훌륭한 실력을 가진것을 발견하고 영원히 황해환에서 일을 보아주기를 간곡히 청하였으나 봉룡은 봉룡이대로 가슴속 깊이 계획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완곡히 거절하고 석달동안 만은 황해환에서 일을 보아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던것이다.

그러던 어떤날 황해환이 신의주(新義州)에 도착하였을 때, 봉룡은 문득 과거 十四년 동안 한번도 들여다보지 못한 자기의 얼굴을 한번 볼 셈으로 이전에는 자기가 곧잘 댕기던 이발소를 찾아가서 머리와 수염을 깎았다. 친분이 있던 이발소 주인도 자기가 봉룡인 줄은 꿈에도 몰라본다.

「음, 이만 했으면 충분하다!」

실상 봉룡이 자신도 거울속에 보이는 그것이 정말로 자기의 얼굴인지를 알아볼수 없으리만큼 변모(變貌)되여 있었다. 열아홉살때 보고는 十四년을 껑충 뛰어 설흔세살 먹은 자기의 얼굴을 봉룡은 좀처럼 자기의 얼굴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캄캄한 지굴속 감방에서 박쥐처럼 十四년이라는 긴 세월을 흘려보낸 자기의 용모에는 무서운 고민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전과는 딴판인 인상이 창백하게 아로새겨져 있지 않는가! 아아, 영원히 흘러간 봉룡이의 청춘이여! 아름다운 꿈이여! 용소슴치던 핏줄기여!!

봉룡은 멀리 아득한 하늘가를 우러러보며 진남포 비석리 오막살이에서 수수죽을 먹고있던 불쌍한 늙은 아버지를 생각하며 억낭틀 해변가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계옥분을 생각한다.

「옥분이, 죽었느뇨, 살았느뇨? 아버지, 불쌍한 아버지, 살아 계시나이까, 돌아 가셨소이까?」

안타까운 가슴속과 뛰노는 마음은 천마(天馬)인 양 하늘을 달리건만 아아, 그러나 봉룡은 이미 옛날의 봉룡이 아니다. 우월대사의 인생관과 모든 지식을 그대로 물려받은 이봉룡의 한치도 못되는 가슴 속에는 실로 황해바다의 천길만길의 깊이와도 같은 원려(遠慮)의 척도(尺度)가 사리여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뛰노는 가슴을 심호흡으로서 억제해가며 한달을 지나고 두달을 지나고 약속하였던 석달이 거의 되여가는 무렵에 황해환의 선장은 어떤 날

『봉룡이, 그대는 황해바다에서 나고 황해바다에서 자란 몸! 황해바다에 진주도(眞珠島)라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대는 그 섬에 올라가 본 적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네? 진주도라고요?』

봉룡은 불연듯 그렇게 부르짖었다. 아아, 저 미치광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진주도에 파묻힌 그 꿈과 같은 보물에 온갖 정열을 불태우던 불쌍한 우월대사의 간곡한 유언이여!

「봉룡이,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진주도를 잊어서는 아니된다!」

하던 우월대사의 최후의 한마디를 어찌 잊을수 있으랴.

『멀리서 바라만 보았지, 올라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없는 무인도— 우리들이 장사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장솝니다.』

『음, 그대는 과연 눈치가 빨라! 실은 이번엔 진주도에서 서로 물건을 바꾸어 싣기로 했네. 그러니까 내일밤 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래도 진주도까지 가지않으면 안되게 되었네.』

선장은 그런 말을 하였다.

그 순간 봉룡의 마음에는 황금에 대한 이상한 정열이 용소슴치기 시작하였다. 기회는 제발로 봉룡이 앞에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봉룡은 치를 잡고 일로 진주도로, 진주도로 향하여 갔다. 순풍과 희망을 한아름 품은 넓은 돛은 푸른 물결을 헤치며 쉬일새없이 싱싱 달아난다.

이튼날 오후, 목적지 진주도가 머나먼 수평선위에 아득히 바라 보일 때, 봉룡은 치를 다시 선장에게 맡기고 자기는 뱃머리에 우뚝 서서 다가오는 진주도를 맞이하듯이 두손을 힘껏 벌렸다.

진주도는 점점 눈앞에 커저 온다. 거암괴석(巨巖怪石)이 눈앞에 웅장하다. 밤 열시에 황해환은 마침내 진주섬에 도착하였다.

봉룡은 누구 보다도 먼저 뱃머리에서 뛰여 내렸다. 만일 주위에 사람이 없었다면 봉룡은 그 거암괴석을 두손으로 쓰러안고 입을 맞췄을런지도 모른다.

약 한시간 후에 배가 또하나 들어왔다. 황해환이 물건을 바꾸어 실을 배였다. 그날 밤은 밤을 새워가면서 물건을 푸고 싣고하였다.

이튼날 아침 봉룡은 노루 사냥을 하겠다는 구실로 총 한자루와 점심밥을 싸 가지고 혼자 진주섬으로 올라갔다.

석달전까지도 다만 자유만을 히망하던 봉룡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봉룡은 자유만으로 만족할수가 없었다. 그것은 봉룡의 죄가 아닐께다. 신의 죄였다. 무한의 욕망을 인간에게 부여한 신의 죄다.

그러나 아모리 찾아도 동굴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한시간만 있으면 황해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진주섬을 출발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러한 황해환이 세시간을 기다렸으나 사냥을 간 봉룡이가 돌아오지 않음으로 하는수 없이 사흘후에 다시 마중 오겠다는 편지와 식량을 남겨놓고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봉룡은 그 편지를 보고 사흘동안에는 어떻게서라도 그 보물의 동굴을 발견하지 않으면 아니되였다.

그러나 사흘까지 가지 않었다. 봉룡은 그 이튼날 저녁 무렵에 우월대사가 말하던 문제의 동굴을 마침내 발견하였다. 유언장(遺言狀)에 씨여있는 소위 「제二의 동굴 맨 끝」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봉룡은 일종의 불안과 끝없는 환희와 오싹하는 전률을 온 몸에 느끼면서 총끝으로 제二의 동굴 맨 끝 한구석을 파내기 시작하였다. 이리하여 약 세시간을 걸려 깊이 석자, 넓이 두자의 땅을 파냈을 때, 총끝이 텅 하고 무슨 나무로 만든 상자같은것에 부닥치는 소리를 들었다.

『오오!』

봉룡은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그 상자의 뚜껑을 총끝으로 열었다.

『오오! 주여!』

봉룡은 주를 찾지 않을수 없었다. 밤 하늘에 한데 뭉친 수많은 별처럼 찬연히 빛나는 금은보석이 봉룡이의 눈앞에 쌓여 있지 않는가!

상자는 세간으로 나뉘여 있었다. 한간에는 금화(金貨), 한간에는 지금(地金), 또 한간에는 진주와 금강석과 홍옥록옥(紅玉綠玉)이 넘치듯이 가득 차 있었다.

봉룡은 마치 실신한 사람처럼 멍하니 보물상자 앞에서 얼마동안을 서있다가 다음순간 그는 컴컴한 동굴안을 어린애처럼 뛰어다니기 시작하였던것이니, 아아, 이것이야 말로 지나간 十四년 동안 쓰라림을 맛본 이봉룡의 불행의 대상인지도 모를께다!

『오오, 이것이 꿈이뇨, 생시뇨?』

봉룡은 그때야 비로소 자기가 물질적 행복의 절정에 선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그 황홀찬란한 수많은 보물위에 마치 필름처럼 빠른 속도로 명멸(明滅)하는 몇개의 얼굴을 봉룡은 분명히 보았던 것이니, 그것은 옥분이의, 아버지의, 장현도의, 송춘식의, 그리고 유동운의 얼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