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浮沈

『그래 그 봉룡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 정말 죽었소?』

하고 봉룡은 말머리를 돌렸다.

『암, 정말이구 말굽쇼. 생각하면 불쌍하게 죽었습지요.』

『그래 그 노인이 죽을 때 일을 아시는가요?』

『아, 알구 말구요. 나 처럼 똑똑히 아는 이는 글세 한사람도 없지요.』

『무슨 병으로 죽었습니까?』

『의사는 뭐 위장병이라고 하지만 내 눈으로 본것을 말하면 굶어 죽었지요, 굶어 죽었어요!』

『엣?...... 굶어 죽었다고요?』

봉룡은 그만 후닥딱 몸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굶어 죽다니?』

봉룡은 눈앞이 아찔해 진다. 가슴패기가 쩌개지는것 같다.

「오오, 불쌍한 아버지!」

봉룡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면 그 노인은 그처럼 사람들의 동정을 못 받았다는 말이요? 개나 돼지에게도 한술 밥을 던저 주는데.......』

『하기야 세상 사람이 다 그랬을 리야 없지요. 저 태양환의 선주 모영택씨와 옥분이만이.......』

『그럼 저 송춘식이라는 사람두 역시 노인을 돌보지 않았다는 말이요?』

『흥! 자기 안해에게 반해서 줄줄 따라다니는 사나이를 친구라고 부르는 봉룡이가 가엾지요. 불쌍한 봉룡이! 결국 아모런것도 모르고 죽은것이 봉룡이에게는 행복하지요. 그러나 산 사람의 원한 보다도 죽은 사람의 저주가 더한층 무섭다지 않어요?』

『아, 대관절 송춘식이라는 사람이 봉룡이에게 무슨 못할 짓을 했기에 그럽니까?』

봉룡은 조급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외면으로는 천연하게 물었다.

『흥! 말씀 맙쇼. 봉룡이가 한번 살아나와서 그 원수들이 어떻게 됐는지 제눈으로 좀 보았으면 좋겠어요. 흥! 그런것을 그래도 친구라구, 죽을 때까지 잊지않구 선물을 보내는 봉룡이가 불쌍하구 어리석지요. 아니, 그 보다도 그들로 말하면 인젠 그 조그만 선물같은 것은 눈여겨 보지도 않게 됐답니다.』

『그럼 그들은 그렇게 돈들을 많이 모았습니까? 그처럼 지위가 높아졌습니까?』

『아니, 당신은 아직도 그것을 모르십니까?』

『모릅니다! 좀 자세한 것을 알려 주실수 없습니까?』

그때 박돌의 안해가 또 남편의 입을 막는다.

『그래 당신 맘대루 해요. 내중에 무슨 일이 생기던지 난 모르겠소!』

그말에 그만 박돌은 또 멈춤해 졌다. 그것을 본 봉룡은 태연하게

『말씀을 안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나는 도리여 당신의 그 신중한 태도를 존중하지요. 자아 그러면 그런 이야길랑 인제 그만하고, 나는 내 책임만을 다하면 그만이니까...... 자아, 그러면 이 금강석을 팔수 밖에.......』

『팔다니요?』

『팔아서 다섯이서 나눌수 밖에 없으니까.』

박돌은 그때 안해를 불렀다.

『여보, 이 금강석 좀 와 봐요. 이 금강석의 五분지一은 우리 것이 된대니까 글세.』

『아이 참 예쁘기도 하다! 五분지一이라구요?』

『그렇습니다.』

하고 봉룡은 말을 받아

『그러나 봉룡의 아버지는 죽었으니까 四분지一이 되지요.』

『四분지一이라구요? 그래 사람을 모함에 넣어서 무서운 감옥으로 보낸 그런 사람들을 당신은 친구라고 여기시우?』

이번엔* 여편네가 반대를 한다.

『그러기에 말이야. 원수를 동무라고 생각하는것은 하느님의 뜻을 배반하는것이지 뭐야.』

그때 봉룡은 금강석을 다시 주머니 속에 넣으면서

『자아, 그러면 그이들의 주소를 좀 알으켜 주시우. 그이들을 찾아가서 나는 나대루 나의 책임을 다하야만 될테니까.』

그말을 듣는 박돌이와 그의 안해는 눈이 동그래졌다. 자기 수중에 제발로 굴러 들어온 이 五만원짜리 보석을 수중에서 놓칠것 같애서 마음이 조리다.

『잠깐만...... 잠깐만 계시우. 내가 알고있는 이야기는 죄다 할텝니다.』

그러면서 박돌은 봉룡의 소매를 잡아 앉히웠다.

이리하여 박돌이는 다음과 같은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먼저 이런 말이 제 입에서 나왔다는 말씀만은 제발 말아 주십시요.』

『그건 글세 염녀 마시우.』

『어째 그러냐 하면 그들로 말하면 나같은 사람은 새끼손가락만 하나 달싹거리면 파리 새끼 죽이듯 죽여버려요 글세. 아주 서울에서두 쩡쩡 울리는 사람들이지요.』

『그건 글세 걱정마시우. 나로 말하면 한개의 승려의 몸으로서 다른 사람의 참회를 듣는대도 내 마음속에 가만히 간직해둘 법에 달렸지, 함부로 그것을 입밖에 내지는 않으오.』

박돌은 비로서 마음을 놓았다는 듯이 다음과 같은 긴 이야기를 하였다.

봉룡이가 경관에게 체포를 당하던날 저녁, 모영택씨와 옥분이가 유동운을 만나 사정을 하였으나 아모런 효과도 없었다는 이야기, 옥분이는 그길로 노인을 찾아가서 억낭틀 자기 집으로 모셔가고자 하였으나 노인은 그것을 거절하면서

「나는 이집을 떠나면 아니된다. 내 불쌍한 아들은 세상의 누구 보다도 나를 사랑한다. 내 아들이 만일 감옥에서 나오면 그는 맨먼저 나를 만나려 뛰여올것이니 내가 만일 여기서 기다리지 않으면 내 아들이 얼마나 낙망을 하겠느냐?」

그러면서 끼니도 딱 끊어버리고 밤을 새와 느껴 울던 이야기, 그리고 어떤날 옥분이에게

「옥분아, 봉룡은 인젠 죽었을께다. 우리들이 봉룡을 기다리는것이 아니고 봉룡이가 저 세상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을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누구 보다도 먼저 봉룡일 만날 수 있을 것이니까.......」

하던 이야기, 옥분이와 모영택씨는 매일처럼 찾아왔었으나 다른이들은 별로 노인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는 이야기, 그러는 동안에 생활이 궁해져서 전당포 사람들이 봇다리를 갖고 드나들던 이야기, 모영택씨가 노인의 궁핍한 생활을 도와줄려고 하였으나 원래 청렴한 노인은 그것을 굳이 거절하였기 때문에 노인이 거의 굶어죽다 싶이 하던 날 저녁, 모영택씨는 자기의 돈지갑을 몰래 선반 위에 놓아두고 나간 이야기를 쭉 한후에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하는수도 없는 일입죠만 모두가 사람들의 무서운 모함으로 맹글러진 일이기 때문에 더한층 불상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는 박돌이의 말을 받아서 봉룡은

『그러면 대체 누구가 봉룡일 감옥으로 쓰러넣고 봉룡의 부친을 그처럼 굶어 죽였다는 말이요?』

『송춘식과 장현도—하나는 계집 때문에, 또 하나는 욕심 때문에...... 송춘식은 봉룡일 독립단의 한사람이라고 밀고를 했습지요. 장현도가 외인편 손으로 쓴 고소장을 송춘식이가.......』

『그러면 언제 어디서 그 고소장을 썼단 말이요?』

『억낭틀 행길가 주막에서 썼습지요.』

그말을 듣던 봉룡은

「그렇다! 저 우월대사의 말이 꼭 맞았었구나!」

하고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실은 나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만 놈들은 나에게 술을 자꾸만 먹여놓고...... 아아, 생각만 하여도 무서운 일이지요. 만류하는 나에게는 농담이라고만 그러구...... 이튼날 봉룡이가 경관에게 체포되어 갈 때에 나는 모든것을 고백하려 하였습니다만 놈들은 나를 무섭게 협박하며.......』

박돌은 머리를 숙였다.

『잘 알았소. 당신은 거저 그들이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다는 말이지요?』

『예,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알았소. 당신은 모든것을 정직하게 말해 주셨소. 그런데 태양환의 선주 모영택씨의 이야기를 좀 하여 주시요.』

『모영택씨는 실로 훌륭한 분이었지요. 그후 여러번 봉룡일 위하여 석방운동을 하였습니다만, 도리여 당국으로부터 의심을 받게까지 되였답니다. 노인이 죽는 날 선반위에 놓구 간 돈지갑으로 남의 빗을 갚고 장례를 남과같이 할수 있었지요. 그때 놓구 간 지갑은 지금 제가 갖고 있습니다. 수박색 모본단으로 만든 좋은 지갑이지요.』

『그러면 그 모영택씨는 지금 살아 있는가요?』

『살아 있지요. 그러나 모든것은 운명이지요. 그처럼 쨍쨍 울리던 모영택씨도 그후 은행의 파산을 세번이나 겪고 이태 동안에 다섯 척이나 되는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을 하고요. 지금은 저 불쌍한 봉룡이가 타고댕기던 태양환이 한척 남았는데, 운수가 불길하여 태양환마저 풍랑을 겪게 되면 모영택씨는 하는수 없이 자살이라도 하여버릴수 밖에 별 도리가 없는걸요.』

『그러면 그 불쌍한 모영택씨에게도 아들 딸이 있는가요?』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지요. 하늘이란 착한 자를 망케하고 악한 자를 돕는가 봅니다. 저 장현도만 보더래도.......』

『아, 정말 장현도는 어떻게 됐는가요? 그놈이야 말로 제일 악한 자가 아니었소?』

『장현도는 그후 진남포를 떠나 만주로 가서 관동군에 붙어 댕기면서 한미천 잘 잡아가지고서는 그것으로 토지 매매를 비롯하여 아편장사, 금 밀수등, 가진 못할노릇을 다하였지요. 지금은 서울 장안에서도 손을 꼽는 은행가(銀行家)로서 쩡쩡 울리는 백만장자랍니다.』

『허어! 쩡쩡 울리는 은행가! 상당한 출세를 하였군요. 그래 장현도는 지금 행복한가요?』

『행복하느냐고요? 돈이 있어서 행복하다면 장현도야말로 행복한 사람일는지 모르지요.?』

『그럼 송춘식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요?...... 돈도 없고 교육도 없는 고기잡이 꾼이던 그가 어떻해서 또 그처럼 훌륭한 인간이 됐다는 말이요?』

『그러기에 말이지요. 그의 과거에는 무슨 아지못할 비밀이 있는것 같아요. 송춘식이로 말하면 지위와 재산과―이두가지를 다 갖춘 인간이 됐답니다.』

『허어, 무슨 옛말 같습니다그려!』

봉룡이에게는 정말 믿어지지 않는 하나의 허황한 이야기와도 같았다. 그는 다시금 재산과 지위를 아울러 갖추었다는 송춘식의 과거를 듣고저 박돌이의 이야기에 귀를기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