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과 도승
一[일]
편집놀라운 실정과 횡포로 민심(民心)을 잃고 있던 광해조(光海朝)에 있어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가 죽고 풀이 삭아 이르는 곳마다 침체한 기운이 음산하게 떠도는데 저평(砥平)읍 백아곡(白鵶谷)에 있는 이식(李植)의 집 넓은 바깥 마당에는 여덟살로부터 열아믄 살 쯤 되어 보이는 울망졸망한 아이들의 한떼가 싸움 장난에 열중하고 있다.
돌을 모아다 성을 쌓고 홍백군으로 갈리인 두 패가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나무 막대기로 된 칼들을 휘두르며 와 ─ 몰려 갔다가 또다시 우 ─ 몰려오고 어린 목이 찢어져라고 고함들을 지르며 놀이하는 모양은 비록 어린 아이들의 장난이지만 입에 침을 삼키게 해주었다.
이때 얼굴이 맑고 눈이 영특한 한 소년이 옆에 책을 끼고 들어오다가 아이들의 왁자하고 떠드는 것을 보자 약간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그냥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럼 이 소년은 누구인가. 곧 이 집의 어린 주인 이식(李植) 그 사람이었다.
주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 남의 집 마당에다 돌을 쌓고 금을 긋고 한 것이 어린 것들의 마음에도 미안하였던지 장난하던 아이들은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짓고 흘글흘금 식이를 쳐다보며 흥이 깨어진 모양인데 그 중에도 똑똑해 보이는 한 아이가 앞으로 나서며
『이얘 너도 용문산(龍門山) 스님에게 글 배우러 갔었나 보구나』
하고 아첨하듯 웃었다. 식이는 대답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이어 긍정하는 뜻을 표하니 그 아이는 역시 웃으며
『너도 책 두고 나온. 우리 하고 놀자.』
한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참 재미있단다.』
『그래 여간 기쁘지 않아 얘』
『얼는 나온!』
하며 충동을 하나 식이는 낯을 붉히며 고개를 흔드니, 그것은 그가 비겁하거나 그 같은 놀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몸이 약질이라 아이들 틈에 섞이어 놀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과연 그의 얼굴은 맑고 준수하기는 하나 소년다운 혈색이 없이 오직 창백할 뿐이오, 손팔 역시 피부 속을 달리는 정맥(靜脈)이 들여다 보일 만큼 투명할 지경이었다.
고개를 내젓는 식의 모양을 훑어보던 아이들도 그같이 격심한 장난을 감당할 수 없음을 느꼈는던지
『그럼 우리끼리 놀자.』
『그래 막 재미있는 판에 깨어졌구나.』
하고 다시 장난할 차비를 하고 혹 어떤 아이는 그래도 미안하던지
『너의 집 앞을 더렵혀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따 말짱하게 해 놓을게, 응.』
하며 저편으로 달려간다.
이식은 다시 한번 그들의 모양을 부러운듯이 바라보고는 바깥의 문을 지나 내실 중문을 들어서니 안방에서 문을 열고 앉아 비종들에게 무슨 분부를 내리고 있던 그 모친이 반겨 마루로 나오며
『글 다 배웠니?』
하고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는 피곤한 듯이
『예』
대답하고 안방에 들어와 꿇어 앉으니 그 모친은 매일 하는 대로 그날 배운 대목을 외이게 하였다.
단정히 꿇어 앉아 한마디의 그침도 없이 내려 읽는 것을 보고 아들의 총명스러운 태도에 깊이 흡족하였던 모친 홍씨는 식이 그날 배운 바를 다 외우고 피곤한 듯이 물러 앉았을 때 저도 모르게 비감한 생각이 바람 같이 스며들었다.
『저 같은 외모 저 같은 총명을 가진 아이가 어찌하여 그렇게 몸이 약할고.』
홍부인은 외로이 탄식한 후 비종 한 사람에게 명하여 정성스럽게 다려 두었던 보약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비록 토반이라고 하나 원래 가세도 부유하고 사람들이 착하고 어질어 마을의 존경을 일신에 모으고 있는 이 집안에는 아무 근심 걱정이 있을 리 없으나 늦게 얻은 아이요 더욱이 외아들인 식이가 항상 몸이 약한 것만이 걱정거리였다.
그러므로 홍씨 부인은 어떻게 하면 식이의 몸을 건강하게 해줄가 하고 주야로 뇌심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약한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는 당연한 걱정이라 식이도 자기의 허약함이 그렇듯 어머니의 걱정거리가 되는가 생각하니 죄송하고 민망하여 약사발을 놓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어머니?』
하고 공손히 불렀다.
『왜 그러느냐.』
근심스러운 모양으로 아들을 바라다보고 있던 모친이 대답하자
『어머니께서 항상 저의 허약함을 근심하셔서 불안하신 중에 계시니 뵙기도 송구하거니와 저 역시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약질을 면할가 하여 항상 유념하고 있었는데 오늘 용문사에서 글을 배우다가 문득 생각하니 여러 중들이 목탁을 두드리고 진령송경(振鈴誦經)을 하고 있는 것이 퍽 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
하더니 잠간 말을 끊고 주저한다.
부인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나서
『그러나 네가 중이 되겠단 말이야 아니겠지.』
하고 안색을 변하니 식은 웃으며
『그럴 리야 있겠읍니까.』
『그럼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 네 나이 아직 십여 세에 그처럼 중들이 하는 모양이 좋아 보인다니 아마 네 몸이 약함으로써 생기는 자격지심인가 보다.』
모친의 말은 비감하였다. 식은 송구하여
『어머니 저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올시다. 오늘 문득 생각 나기를 용문산 같이 경치로나 지리로나 훌륭한 절에서 여러분 고승(高僧)을 모시고 몇 달이나 몇 해를 지내고 보면 필시 몸도 건강해 지고 학업도 심히 진취할 것 같은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 그러하니 어머님께서는 잘 생각해 보셔서 그 절에 가 조양(調養)케 하도록 해주십시오.』
하였다.
부인은 듣고 보니 아들의 말이 과연 그럴듯하기도 하나 노래에 있는 외아들을 슬하에서 떠나 보내기가 언짢아서
『오냐 너의 아버님께서 들어 오시거던 의논하여 작정하자.』
하고 말머리를 꺾은 후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또 장난을 하는가 보더라. 너도 나가서 즐거이 놀기나 하렴.』
하는 음성에서도 자애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식은 어머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여 온건한 태도로 그 앞을 물러 나오는데 아들의 실버들처럼 연약하고 창백한 뒷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홍씨는 홀로 탄식한다.
『정사에서 호화롭게 지냈다는 우리 집안이 벌써 하향한지 사대나 되어 그동안 국녹을 먹지 못하였다고 어른께서는 항상 서운해 하시었다. 저 아이가 다행히 영리 총명하여 온 마을의 칭찬을 한 몸에 모으고 있었으니 저의 어른께서도 어떻게 하든지 우리 식이로 하여 다시 우리 문호를 크게 일으키고자 바라시는 모양이나 저렇듯 몸이 약하니 참으로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비종의 한 사람을 불러
『도련님께서 즐거이 노시는지 동정을 엿보고 오라.』
명령하였다.
그러나 사환은 다시 돌아와 아뢰기를
『도련님께서는 한편 구석에 비켜 서서 구경만 하시는데 꼭 무슨 걱정이 계신 것 같이 잔뜩 찌푸리고 있사옵니다.』
하니 부인은 그만 가슴이 답답하여
『참 어떻게 하든지 도리를 차려야겠구나.』
하고 그날 밤 부친이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점 그일로 의논하였다.
『영감 식이가 낮에 말하기를 용문산에 들어가서 조섭했으면 좋겠다는데요.』
『용문산에 들어가다니?』
아버지의 미간에 의아해 하는 주름살이 가늘게 잡혀있었다.
홍씨는 낮에 아들에게서 들은 바 이야기를 되풀이 한 후
『나의 생각에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지마는 글쎄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눈물을 씻는다.
『울 것이야 무엇 있소. 식이의 건강에 대하여는 나도 익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부친도 그 어머니나 못지 않게 아들의 약질을 염려하던 터이라. 늙은 두 양주는 저녁 먹을 것도 잊고 주거니 받거니 그 일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그러기로 합시다. 다행히 그 절에는 고승도 계시고 하니 학업까지 자연 진취할 줄 아오.』
하고 단정하였다.
부인은 자기가 먼점 제안(提案)한 바이지만 막상 이렇게 결정을 짓고 보니 자연 마음이 창연하지 않을 수 없어
『참 신명도 야속하시지. 그것을 슬하에서 기르지 못하고 떠나보낸 후 우리 두 늙은이가 앙상하게 남겠구려.』
하니
『그게 무슨 말이오. 세상에는 죽어 떠나 보내는 수도 있는데.』
꾸짖듯이 말하는 영감의 눈에도 이슬이 맺혀 있었다.
二[이]
편집이렇게 하여 이식은 소망하였던 바 용문산에 기식하여 몸을 조양하는 한편 학문을 닦게 되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용문산의 수림중을 거닐다가 근처 맑은 시냇가에서 정히 세수하고 나면 곧 아침재(齋)의 쇠북 소리가 땅땅 울려 온다.
글 읽는 중들의 경건한 태도며 가슴을 파고드는 뜻 깊은 설법은 식의 마음에 한가지씩을 더 하여 주었고 규칙적인 생활과 맑은 공기는 약하던 몸을 점점 건강하게 해갔다.
더욱이 스승되는 유념(惟念) 노승은 학식 깊고 덕이 높아 식에게 많은 감화를 주니, 식은 또한 그를 부모 같이 공경하고 우러러 보았다.
이렇게 하여 어언간 육 년이란 세월이 흘러가자 식의 나이 열여섯 살이 되어 건장한 홍안 소년의 풍이 나며 학문도 모든 기초 지식을 필하고 주역(周易)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뜻이 깊고 오묘하여 침잠연구(沈潛硏究)하나 오히려 깨닫기 어려운 중 설상가상으로 스승되는 유념이 노병으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식은 몹시 비통해 하나 역시 밤마다 촛불을 돋우고 늦게까지 열심히 독서하는데 그 스승이 차마 보지 못하여
『그만 자거라.』
하고 간절히 이르나 듣지 않고
『내가 오늘날 근 십년을 대사에게 글을 배우고도 아직 의심되는 점을 다 못 깨달았거든 이제 대사 중병에 처해 있으니 욕심 내어 한자라도 더 알려 하지 않고 어이 하겠읍니까.』
하고 굳이 고집하며 어떤 때는 밤을 새우는 일조차 있었다.
유념은
『그렇지 않도다. 세상에 만물이 모두 스승이요, 비록 금수 잡목에까지도 배울 것이 있거든 어찌 이 몸의 가고 옴을 근심하리요. 그러하니 이 몸이 왕생 극락한 후에도 결코 낙망하지 말고 만물 만사에서 배움을 받으라.』
하고 훈계하였다.
식은 존경하는 스승의 부탁이라,
『그리 하오리다.』
대답하여 유념을 안심시키고 자기도 정말 같은 생각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뜻을 먹음었으니 몇 날 더 지난 후
『다시 한번 부탁하는 것은 세상 어떤 사람에게든지 배울 생각을 하고 남을 업수이 여기지 말라.』
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유념은 숨이 끊어졌다.
이식의 비통이 오죽하였을가. 여러 중들의 슬픔과 인근 동네 사람들의 애석(哀惜)해 하는 가운데서 그의 장례는 굉장하게 마쳤다.
용문산록 좋은 곳을 가리어 안장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다시 평정 상태로 돌아왔건만 한창 향학열이 불탈 때 믿던 지도자를 잃은 식은 문득 문득 스승의 그리움을 참지 못하였다.
연구하여도 연구하여도 깨닫을 수 없는 심오한 학문! 그는 여러 중들이 깊이 잠든 숨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등불을 돋우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날도 그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심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뭇 중들은 모두 노곤하여 정신없이 잠에 취하여 있고 사방은 적막하여 들리느니 개울물의 졸졸 하는 음향 뿐인데 벽에 기대어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었던 그는 문득 어떤 중의 끌끌하고 혀 채는 소리를 들었다.
이상히 생각하여 그 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태까지 눈에도 뜨이지 않았던 한 남루한 부목승(負木僧)이 식의 등불에서 흐르는 여광(餘光)에 비최어가며 자기의 남루한 누더기 옷을 기우며 그 같이 혀를 차고 탄성을 발하는 것이었다.
『아마 제 신세 타령을 하고 혀를 채이는 것이겠지.』
하고 자기의 사색(思索)에 방해되는 그 행동을 분개하였으나 곧 다시 측은한 생각이 들며
『신세타령도 날만 하지. 저 늙은이가 종일 그 많은 나무를 해 대고도 여태까지 누더기를 기워야 하니 다른 사람이 보아도 가엾구나.』
그러나 부목승의 탄식은 그가 생각한 바와 같이 간단한 의미가 아니었다.
중은 힐끗 식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 모양에 아마 잠 들은 줄 알았든지 혼자 소리 같이 중얼거린다.
『년소한 서생(書生)이 끊임 없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애쓰나 깨닫는 바가 지극히 적은 모양이니 참 가엾다. 저 젊은 심력을 헛되이 허비하는 것이 보기 딱하지만 바로 일러 주지 못하니 더욱 딱하구나.』
이식이는 그 소리를 듣자 그만 급한 성미에 빨근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곧 그 머리에 떠오르는 환영이 있었으니 곧 스승 유념의 모양이었다.
『아무리 초라한 사람일지라도 업수이 여기지 말고 배움을 청하라.』
하던 그 인자한 목소리였다.
식은 불쑥 내미는 성미를 꾹 참았다.
『내가 본래 남을 업수이 여기는 성질이 있거든 그러므로 스승께서도 특히 이 일로 경계하셨거든.』
하고 그는 여전히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부목승은 아직도 그를 자는 줄로만 알고 있는지
『저 같은 성력에 좋은 스승만 만났더라면 더욱 진취할 것을 가엾은 일이로다.』
하고 연해 탄식하는 것이었다.
三[삼]
편집다음날도 이식은 새벽 일찍 수풀 속을 한 바퀴 돌쳐 나와 근처 개울에서 얼굴을 씻었다. 손에 묻은 물을 베수건으로 훔치며 막 발길을 돌리려니 저편 비탈진 언덕길로 어떤 노승이 등에 한짐 가뜩 나무를 지고 비실거리며 내려간다. 아침 식전에 한짐 해 두려는 생각이리라. 약한 몸에 너무 많은 짐을 올렸기 때문에 그 조그만 체구는 나무 짐 밑에 깔려버린 것 같다.
식은 가엾은 생각이 나서 얼른 달려가 메인 짐 뒤를 약간 받쳐주었다.
중은 잠시 앞으로 꼬꾸라질 듯이 꺼뚝이더니 겨우 몸을 가누고
『누구신지 고맙소.』
하고 중얼거리는데 그 말이 몹시 식의 귀에 익숙하였다.
이제는 건장하고 힘센 소년이 된 그는 두 손으로 아름넘는 나무단을 번쩍 들어 길 위에 내려 놓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노승의 손목을 탁 잡았다.
『대사, 대사께서 오늘 새벽에 하신 말씀을 이 몸이 분명히 들었소이다. 대사는 아마 내가 자는 줄 알고 하신 말씀이겠지만 결코 잔 것이 아니라 사색심고(思索甚苦)하여 고통하고 있었던 것이요.』
하고 잠깐 말을 끊었다가
『유념 대사가 가신 후 사방으로 스승을 구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던 차에 오늘 새벽 대사의 말씀을 듣고 보니 대사야말로 필시 깊이 역리(易理)를 아시는 분일시 분명하니 미심한 저를 가르쳐 주시기 원하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중은 허허 웃고
『가난하고 더러운 이 몸 같은 용승(庸僧)이 무엇을 알겠소. 새벽 일을 들으셨다니 민망하오마는 그저 서생의 몸으로 공부가 하도 각심(刻沈)한 것을 보니 정신을 소모하겠기 그것을 염려하여 한 말이오.』
한다.
이식은 그 말은 들은 척 않고 더욱 앞으로 다가서며
『그렇지 않습니다. 가물에 비를 기다리듯 학리에 주린 몸이니 사양 마시고 해설(解說)해 주십시오.』
하나 중은 여전히 고개를 흔들고
『천만에 말이오, 이 몸은 문자(文字)라고는 본래부터 몽매하기 짝이 없는 터이니 항차 주역이라니 말이 될 말이오?』
한 후 급한 듯이 나무를 매고 가려 한다.
이식은 딱하였으나 다시 한번 유념의 훈계를 생각하고 그의 나무짐을 내려놓게 하였다.
『그럼 오늘 새벽에 말씀하시기를 바로 일러주지 못하니 딱하다 하셨으니 그럼 그것은 무슨 의미오니까.』
그가 태도를 공손히 하여 정색하고 힐난하니 그제야 중도 숨길 수 없었던지 마지 못하여
『그처럼 말씀하시는데는 더 거절할 수 없구려. 참 이 같은 천승을 업수이 여기지 않고 끝까지 대접해 주시는 태도야말로 감탄할만하오. 그래야지. 암 그래야 뜻한 바 큰일을 성취하지.』
하고 혼자 고래를 끄떡 끄떡하더니
『만약 의심이 나는 난처가 있거던 일일이 부첨(付籤)해 두었다가 조용한 곳에서 물어 주오.』
하여 승낙하였다.
이식은 크게 기뻐하여
『고맙습니다. 그럼 그리 하지요.』
하고 몸소 나뭇단을 절간까지 저다 주었다. 그 후로는 풀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표를 해 두었다가 나무하는 승의 자취를 찾아 무성한 숲 속이나 고요한 천변 같은 곳에서 조용히 질문하니 노승의 대답은 참으로 미묘한 곳까지 파고 들어가 가히 사람들의 의표(意表)에 뛰어난다 할 만 하였다.
이식은 마음이 여름날 냉수 마신 것 같이 시원하고 하늘에 구름 벗겨지는 것 같이 상쾌하여 그 기쁨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드디어 승의 앞에 절하여
『스승으로 모시게 해 주소서.』
하고 청원하였다.
노승은 몇 번이나 사양하였으나 드디어 그 열심에 탄복하여 이것을 허락하니 식의 기쁨이야 말할 것도 없을 지경이라, 일개 부목하는 용승과 토반읍 귀동자와 은밀한 가운데 사제 정이 돈독하게 상통하며 그의 학문도 일취월장 놀랍게 진보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다시 일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다음 해 봄날 두 사람은 잔디 돋은 들가에 마주 앉아 한가히 종다리 소리를 들으며 이런 일 저런 일을 이야기하다가 도승은 문득 생각난 듯 이식을 돌이켜 보며
『이제 학문도 그 만큼 진취하였으니 정사에 나아가 과거를 봄이 어떠뇨.』
하고 권하였다.
식이도 진작부터 그 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 한번 스승의 뜻을 알아 보려고 하던 터이라 반겨하였으나 또한 민망한 생각이 나서
『아직 현미(玄微)한 몸이 어찌 감당하오리까』
하고 사양하나 노승은 한번 웃고
『그렇지 않으니 빨리 상경하여 부모를 안심시키고 오랫동안 쌓인 불효의 죄를 풀라』
하여 구지 권하였다.
식도 마지못하여 행장을 수습한 후 오랫동안 같이 거하던 여러 중들에게 하직하고 스승되는 노승에게는 절하며 하산할제
『이렇듯 몸을 보살펴 주신 은혜 차마 잊을 수 없으며 후일 입신하더라도 참으로 잊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눈물을 흘리니, 스승도 그의 손을 잡은 후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몸조심 하라.』
하며 산문까지 따라 나와 이별을 아끼었다. 식이도 차마 떠나지 못하여 주춤거리는데 집에서 마중 나온 비종의 한 사람은
『아까부터 마님께서는 문 밖에서 도련님 돌아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어서 가서 뵈옵서얍지요.』
하고 무거운 듯이 짐을 추스린다.
그제야 이식도 발을 떼어 놓으려니 노승은 따라 오며 긴한 듯이
『아직 잘 모르겠으나 아마 자네에게 꼭 일러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
하고 잠간 말을 끊는다. 식은 의아하여 다시 돌아서며
『무슨 말씀이오니까.』
물었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네마는 내년 정월에는 경사로 자네를 찾아 갈 터이니 그때 이야기하지.』
노승이 눈을 감고 지팡이에 의지하니 식이도 돌아보며 용문산을 떠나왔다.
四[사]
편집이 때는 곧 경오(庚午)년이라 사방에서 몰려들은 늙고 젊은 선비들이 제각기 장원급제를 목표 삼고 온 서울은 법석통인 가운데 뜻을 세우고 과거를 보러 온 식의 모양도 섞이었었다.
그는 용문산에서 스승을 하직하고 본가에 돌아와 기뻐하는 부모님의 얼굴을 뵈오니 따뜻한 가정을 떠날 뜻은 별로 없었으나 과거 보는 날이 임박하였으므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격조하였던 정회나 대강 풀자 곧 서울로 떠나온 것이었다.
『그때는 약한 너를 절에 보내고 밤잠도 달게 자지 못하였더니 이제 네 몸이 저렇듯 건장해진 것을 보니 어디를 보내어도 마음을 놓겠구나.』
그 동안 몰라 보게 겉 늙은 모친은 대문 밖까지 배웅하며 아들의 등을 쓸었다.
문밖 넓은 광장에는 여전히 마을 아이들이 모여 있어 싸움 장난을 하는데 식이는 칠 년 전 어느 날 어머니의 명을 받아 나왔으니 차마 그 속에 끼지 못하고 한편 구석에 쪼그리고 서서 손가락만 깨물던 자기 모양을 생각하고 감개무량하였다.
그러나 자신있는 그는 용기가 충만하여 서울에 닿았더니 과연 그해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영광이 미칠 데 없었다. 곧 시골의 부모를 모셔 올리고 다시 경사의 귀족과 통혼하여 일가일문이 융흥하였으나 항상 잊지 못하는 것은 용문사의 스승이던 부목승이다.
『이 영화가 모두 스님의 덕이외다.』
하고 용문사로 몇 번이나 찾아 갔었고 사람을 보내어 수소문하였다. 그렇지만 용문사의 대답은
『그 사람은 지난 봄부터 이 절에서 없어졌소.』
하는 것이 그까짓 용승의 한 두 사람이야 있건 없건 탓할 것이 없다는 어조였다.
그 전갈을 듣자 식도 할 수 없이 생각을 멈추고 어서 약속한 정월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더니 과연 이듬해 정월 어느 날 표연히 그는 찾아왔다.
이식은 크게 기뻐하여 부모님을 상면케하고 몸소 상하를 통촉하여 대접이 융숭하며 지난 일을 서로 이야기하여 정의에 그칠 바를 알지 못하였다.
이렇게 삼일을 유한 후 노승은 작별을 고하니 이식이 매우 섭섭해 하며
『이 몸이 현미한 것을 오늘 날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대사의 은공이라 그 고마운 정을 가실 길이 없던 차이니 부디 이대로 내 집에 머무시면 평생을 의식범절 부족없이 모시오리다.』
하였다.
그러나 노승은 웃으며
『부족 없는 생활보담은 한운야학(閑雲野鶴)을 짝하여 폐갈색노(幣褐塞驢)로 방랑하는 것이 도리어 편하오.』
하고 고개를 흔든다.
식이도 하는 수 없이
『그럼 작년 봄 이몸에게 이르려고 하시던 것은 무슨 말씀이오니까.』
하니 그는 자세히 이식의 평생을 추론(推論)하고 또 말하기를
『병자년(丙子年)에는 큰 난리가 일어날 것이니, 공은 필시 일가를 이끌고 영춘(永春) 땅에 피하여 있으면 가히 면할 것이오.』
하며 그 곳의 지리와 형태를 일러 주었다. 이식은 고맙게 받을어 들고
『그럼 또 언제나 뵈올 수 있사옵니까?』
하니 노승은 태연히
『○○년 ○○○○날 ○시(時)에 관서(關西)에서 만날 것이오.』
하고 대답한 후 또 다시 표현히 가 버리었다, 이식은 즉시 승의 이른 바와 같이 병자년에 피난할 준비로 영춘 땅에 집을 짓고 전장을 장만하게 하였다. 급기야 병자호란이 일어나매 일가를 인솔하고 그곳으로 피해 들어가 무사히 난리를 피하였다.
그제야 집안 식구로부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이상히 생각하여
『참 그 중이야말로 심상한 사람이 아니다.』
하고들 야단이었다.
그리하여 이 소문이 급기야 천문(天聞)에까지 달하니 임군이시던 인조(仁祖)께서는 어지러운 천하를 수습코자 발정까지 일으키시던 크신 어른이라, 한편 호협한 기질도 계시었으므로
『그 중을 찾아 내어라.』
하는 명을 내리셨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을 놓아 보내어도 찾을 길이 없으므로 이식은 궐하에 이르러
『그 사람이 ○○년 ○○○○날 ○시에 관서에서 만나기로 하였사오니 그때 신을 관서로 보내어 주시면 만나볼가 하옵니다.』
하였다.
이 때 이식의 벼슬은 이조판서(吏曹判書)라 왕께서도 심히 신임하시던 까닭에 드디어 약속한 바 그날이 가까워 오자 왕은 식으로 하여금 관서로 봉사(奉使)하셨다.
그러나 다정한 은사 만나기를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리고 있던 터이라 상약한 날자 안에라도 혹 만날길이 있을가 하여 각 사찰로 두루 다니며 알아 보았으나 스승의 자취는 모연하였다. 기어코 약속한 날이 왔다.
이날 공은 묘향산에 와 있었다.
하루 해도 떨어져 저녁기운이 묘향산에 봉오리를 휩쌀 때 이공은 두 승도(僧徒)가 메는 남여(藍輿)에 올라 앉아 묘향산(妙香山)을 향하고 올라가는 중이었다.
『허 믿었던 스님께서도 언약을 어기시나, 약속한 시간이 되었건만 뵙지 못하니 이런 딱할 데가 어디 있을고.』
이식은 이렇게 탄식하며 흔들 흔들 남여 위에서 졸고 있었다.
생각하니 벌써 수십 년 전이다. 십여세에 용문산에 들어가 유념을 받들어 섬기고 그의 최후 유언을 명심하였던 까닭에 또한 일개 부목승을 받들어 그 은혜를 입음이 허다하매 과연 측량치 못할 것은 세상일이다. 경사로 자기를 찾았을 때에는 아직 건장했으나 그 동안 혹 병이나 나시지 않았나, 또한 돌아가시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자연 마음이 비감해졌다.
『혹 그럴는지도 몰라, 아니 정녕 그런 모양이지, 그렇지 않으면 만나자는 시각에 지체할 어른이 아니신걸.』
비록 짧은 동안이나마 스승으로 전심을 다하여 받들어 본 일이 있는 그는 이렇게 노승을 믿으려 하였다.
『어느 절간 외로운 한 구석에서 병들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이로 말하면 나의 평생 은인인데……』
이렇게 거듭 생각하자 공의 눈앞에는 어떤 쓸쓸한 산사(山寺) 한 모통이에 쓰러져 기진해 있는 스승의 모양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며 그만 초조한 마음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이것이 웬일인가.
공은 으악 소리를 지를번 한 것을 꾹 누르고 다시 한번 똑바로 앞을 보았다.
방금 자기가 타고 가는 남여의 앞잡이를 멘 늙은 노승 ─ 그 사람이야말로 공이 여태까지 기다리고 두루 찾던 그리운 스승이 아니었던가.
이식은 급히 남여를 멈추게 한 후 뛰어 내려와 스승의 앞에 넙죽 엎디었다. 무엇이라 말은 나오지 않고 반가운 눈물만이 하염없이 내려와 양협을 적신다.
『스님 웬일이오니까.』
이윽고 공의 목에서 째여나온 소리는 이것 뿐이었다.
그러나 노승은 태연하였다.
『웬일이라니 이날 이 시가 바로 공과 약속한 그 시각이 아니오. 언약한 시각에 언약한 장소에서 상봉하는 것이매 무슨 놀람이 있을 리 있겠소.』
그는 침착히 이식을 안아 일으킨 후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용문사의 부목승이 묘향사의 남여승됨에 의아된 점이 있을 리 없거든.』
하고 허허 웃었다.
돌아보니 뒷잡이를 메고 오던 동무 중은 이 의외의 정경에 놀랐으리라. 얼빠진 사람처럼 남여 뒷다리를 움켜잡고 멀건히 이편을 바라보고 섰다.
이 공은 우선 스승의 아래위를 훑어 보더니 준일(俊逸)한 품이 용문산에 있을 때와 별로 다름이 없으므로 여태까지 하던 몹쓸 궁상을 돌이켜 생각하고 우선 안심한 후 몸소 그를 부축하여 가며 묘향사에 들었다.
그리하여 이판이 오셨다고 상하가 들끊는 속에 조용히 따로 방 하나를 깨끗하게 치우게 하고 함께 사흘을 유하며 갖은 말로 가지와 같이 상경하여 영화를 나누기를 빌었다.
『이렇게 다니시다가는 나중에 외로이 임종하실 거니 부디 동행하기 바라오.』
그러나 노승은 현현히 고개를 젔고
『다 천명이니 나는 천명을 봉승할 뿐이오.』
하며 사흘 동안에 여러가지로 도(道)에 대한 설법을 들려 주었다. 공은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스승의 이 가르치심을 널리 달(達)케 하오리다.』
하니 스승은 다시 위로는 나라의 일로부터 아래로는 가사(家私)에 대한 것까지 여러가지로 미미 말하여준 후
『이 말대로 행하면 길이 평안히 있을 것이오.』
하고 공의 손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하여 사흘째 되던 그는 또다시 훌훌히 떠나려 하는 고로 이식은
『그럼 이 담에는 어디서 만나 주시겠읍니까?』
하고 물으니 노승은 슬픈 듯이
『이게 마지막이오.』
하며 고개를 숙이었다.
五[오]
편집묘향산에서 최후로 스승을 이별한 이식 공은 다시 상경하여 그 뜻을 왕께 사뢰고 노승의 일러 준 바를 전갈한 후 배운 도를 퍼뜨리니 깨닫는 자가 많았다.
이 이식공은 자를 여고(汝固)라 하고 호를 택당(澤堂)이라 하였으니 곧 문전공(文貞公)이란 시호(諡號)를 가지신 어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