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사(金進士)는 그 동안 몇 해를 두고 아들의 혼담이 거의 결말이 나다가도 종당은 이상스런 소문에 파혼이 되고 말고 되고 말고 해서 인제는 아마도 내 대에 와서 절손이 되고 마는가 보다 하고 절망을 한 것이 이번에 뜻밖에 혼담이 어렵지 않게 성립되고 택일 날자까지 받아 놓았은즉 의당 기뻐서 날뛸 일이고 혼수만단에 안팎으로 드나들며 수선깨나 늘어 놓을 것인데 실상은 택일 첩지를 받은 날부터 안방에 꽉 들어 백혀 앉아서 무슨 의논인지 부인 곽씨와 수군거리기를 이틀이나 하였다.

이틀이나 하였건만 시원스럽지 못하였던지 눈살을 꽉 찌푸리고는 얼마 전부터 병으로 누어 있는 아들의 방에를 하루도 몇 차례씩 들락 날락 하였다.

아들 경환(景煥)이는 김진사에게는 여벌이 없는 독자이라 그야말로 쥐면 깨여질가 불면 날가 애지중지 기른 것이 년전부터 얼굴에 이상스런 종기가 나기 시작하여 한군대가 합창이 된 듯하면 또 다른 데에 이들이들하고도 시뻘건 종기가 툭 불거지기 시작하여 걷잡을 수가 없었다.

김진사는 대대 벼 백이나 착실히 하는 재산가이라 의원이라 약이라 하고 써 볼대로는 써 보았지만 일향 효험이 있기는 고사하고 얼굴 빛이라던지 눈섭이 문정 문정 빠져가는 것이라던지 갈데 없는 천형병(天刑病)의 증세이었다.

그 동안에 의원들이 경환이의 증세를 보고는

『나는 의술이 미숙해서 이게 무슨 병인지 알 수가 없다.』

하고 물러가기를 일수하였다. 그럴 때마다 일만의 의운이 김진사의 머리에 피어오르기는 했지마는 그래도 자식을 아끼는 욕심에

『설마하니 내 자식이 문둥이라니.』

하고 스스로가 간신히 위로하여 왔었다. 그것이 인제는 누가 보든지 현저히 천형병 환자의 증세가 나타나고 본즉 김진사는 몇 백길 깊은 골에 거꾸로 박히는 듯 싶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재산도 아깝지 않다, 누구라도 이 병만 고쳐주었으면 하는 생각과 하루 바삐 장가를 들이어서 그 몸에서 손을 얻는다는 것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장가도 들어보지 못하고 총각으로 죽는다는 원한이나마 풀어 주고 싶은 생각에 초조한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김진사의 이 애절한 희망 ─ 경환이의 장가 들인다는 것도 거의 절망이 되어 왔었던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동네 사람들은 김진사 듣는 데서는 차마 아무개 아들은 문둥이라 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돌려 세워 놓고는

『제기, 참 재산이 아깝지, 천석 만석을 하면 무얼해, 누가 문둥이한테 딸을 줄라구.』

하여 비웃기도 하고 가여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본즉 이 소문이 자연이 퍼져서 누가 청혼을 하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간혹 그 사실을 모르고 청혼하는 사람이 있다가도 세상에는 남의 험담이라면 밥을 싸 가지고 다니며 하는 무리가 있는 지라

『여보, 딸을 어디다가 못 주어서…….』

하고 훼방을 놓는 바람에 매양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연을 뻔히 짐작하건 마는 김진사는 어이 할 방도가 없었다. 돈으로 남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천우신조해서 이웃 고을에 사는 송××란 사람이 청혼을 해 왔다.

그 동안 사람을 이웃 골로 내놓아서 규수만 얌전하면 가세는 빈한하더라도 그야말로 신부를 싸서 데려 오겠고, 친정의 먹고 살 것까지 주겠다는 말로 몰래 혼처를 구하였던 효과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김진사의 아들이 문둥병이라는 소문이 이웃 고을까지는 퍼지지 않었던 덕도 있었다.

송씨집에서는 신랑의 집이 무위하고 문벌도 과히 처지지 않은 것에 더구나 재산가란 말에 혹하여서 귀여운 딸을 깊은 조사도 하지 않고 내 놓기로 작정하였다.

김진사는 이 통혼을 받고는 두말 없이 쾌락을 하고는 송씨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적지 않은 금품을 혼수에 쓰라고 사주와 함께 보내기까지 하였다.

송씨 집에서는 난생 처음 만저 보는 거액의 돈에 눈이 어두워서 신랑을 선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실은 눈 하나 멀었던들 상관이랴 다리 하나 절던들 어떠랴 까지의 생각을 먹었을런지도 모를 형편이었다.

그래서 곧 택일단자를 보냈다.

이편 김진사로 말하면 천재일우라는 생각과 또 어름어름하다가 이상한 소문이 신부 집 귀에 들어갈가 하는 염려가 있어서 통혼이 되자마자 사주단자를 보낸다 금품을 보낸다 허둥지둥 하였다.

그리고 부랴사랴 택일을 해 보내라고까지 독촉한 것이었다.

그런 것이 원수에 택일단자를 받아 놓자 마자 아들 경환이가 앓아 누웠다.

여느 병 같으면 그야말로 약사발을 머리에 이고라도 장가를 가겠지만 얼굴에 종기가 별안간 버썩 성해서 차마 볼 수 없는 형편이고 보니 아무리 장가 들이기 급한들 그 꼴을 신부 집 사람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만일에 한번만 본다면 파혼이 될 것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 아닌가.

『원수에 하필 보름만 더 참아 주지, 하느님도 무심해.』

김진사는 택일 단자를 꺼내 들고 탄식 탄식하였다.


이리하여 김진사는 혼례날을 닷새 앞두어서부터 칭병하고 사람을 보지 않았다.

남에게 이 초초한 낯을 보이고 싶지도 않고 또 조용히 좋은 방도로 생각해 보고도 싶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그야 택일을 물리는 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만일에 택일을 물리어 놓았다가 호사다마격으로 어느 놈이 어떤 소리를 지저귈런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만사를 젖히고라도 부랴부랴 성혼을 해 버리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택일을 물리지도 않고 자식의 그 흉악한 낯을 보이지도 않고 어떻게 성혼할 길이 없을가 이러한 요술에 가까운 재주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궁한 나머지에는 전일에 그리 해 보지 않던 일 마누라와 의논까지 해 보았지마는 물론 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했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무정한 날자는 벌써 이틀이 지났다. 인제 사흘 밖에 남지 않았다.


대사날을 만 이틀을 앞둔 날 아침에 김진사는 평소에 생각지도 않던 방문자를 맞게 되었으니 면장 하상기(面長河相基)의 아들이 뜻밖에 찾아온 것이었다.

면장 하씨와 김진사는 숙친한 사이라 그의 아들 역시 가끔 그의 부친의 심부름으로 오는 때가 있기는 하여 낯을 잘 알기는 하지마는 편지도 가지고 오지 않고 무슨 긴한 사단이 있는 듯한 모양이 김진사의 마음을 끌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에 무지근한 근심덩이가 뭉쳐 있는지라 눈살을 펴지 않은 채로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왔느냐.』

『녜.』

하고 대답하는 면장의 아들은 눈을 내리감고 잠시 머믓머믓 하더니만 오늘 실상은 아버지께서도 『 모르시게 저혼자 생각으로 어르신네께 뵈오러 왔읍니다.』

하고는 다음과 같은 청을 하였다.

『여쭙기 염치 없읍니다마는 돈 삼천냥 돌려주셔야 멸문지화를 면하겠읍니다.』

김진사는 「돈」이라는 것보다 「멸문지화」란 말에 깜짝 놀라서

『멸문지화?』

하고 재처 물었다. 그리고,

『그게 웬 소리냐.』

하며 뒷말을 기다리는 듯이 고개를 약간 앞으로 내민다.

하면장의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러하다.

하면장은 팔 년 동안이나 면장소임을 맡아보는 동안에 돈을 모으기 커녕은 논마지기나 있던 것을 다 없애고 필경에 가족을 먹여 살릴 수가 없으니까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관금을 가져다가 투기에 이용하였더니 일이 꼬이느라고 비뚜로 들어맞아서 점점 구멍이 커가고 커가면 커갈수록 당황초조하여 그것을 복구하려다가 마침내 삼천여 냥의 커다란 구멍을 내고야 말았다.

제 돈 같으면 탄식 몇 번으로 마감이 될 것이지마는 관금 횡령만은 종당 영오(囹圄)의 수인 되고 말 것이니 하씨에게는 물론 다시 회복키 어려운 치명상이 될 것이오, 따라서 집안은 유리 자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면내에서 그만한 돈을 능히 주변할 사람은 김진사 밖에 없다고 하면장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에도 수십차를 돈으로 해서 미안을 끼쳤은즉 무슨 염치로 또 돈을 취해 달라고 하랴 액수가 작기나 한가 삼천 냥이란 거액을 ──.

그래서 침식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고민한 나머지 필경 고륙지계(苦肉之計)를 써 보기로 한 것이었다.

하면장은 아들 순옥을 불러 앉히고 관금 횡령의 사실을 이야기를 해 들리고 나서

『애비 돼서 이런 말을 자식에게 하기는 차마 못할 짓이다마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늘에 그런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 너 아다시피 김 진사하고 나 하고는 숙친한 친구이지마는 그 동안에 하도 여러 번 염치 없는 짓을 해 놔서 지금 또 돈을 취해 달라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아니 하니 네가 찾아 가서 아비의 사정을 잘 이야기하구 네 말로 돈을 돌려 줍시사고 하면 자식이 애비를 생각하는 정성에 감동이 돼서 혹시 쉽게 승낙이 될런지도 모르니 집안을 위해서 한번 가 보는 게 어떠냐.』

하는 의논을 하였다. 순옥이는 열아홉이 되는 오늘 날까지 남에게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고 동무에게도 동전 한잎을 취해 본 적이 없는 터라 김진사에게 가서 엄청나게 큰 돈을 취해 달라고 해볼 용기는 없었지마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아버지가 그처럼 자식에게 간청하다시피 할 리도 없으려니와 사실 공금 횡령이 탄로되면 아버지는 죄인이 되고 이 집안이 망할 것은 긴 설명이 없어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순옥이는 마침내 걸핏 하면 옴츠러드는 용기를 억지로 북돋으며 오늘 김진사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김진사는 순옥이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더니만 말이 끝난 후에

『돈이 얼마냐?』

『삼천 냥이올시다.』

『음』

하고 고개를 끄떡 하고 나서 또다시 잠자코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순옥이의 얼굴을 멀건히 바라본다.

순옥이는 가슴이 떨렸다. 응낙이냐 거절이냐.

『네 자의로 내게 왔다고 했겠다.』

『네.』

『음 기특한 일이다. 자식이 돼서 부모의 근심을 남의 일 보듯 해서야 자식 좋달 게 어디 있나.』

혼자 말 비슷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주지.』

하고 선선히 응낙을 한다.

『네?』

『여느 일 같으면 삼천이나 되는 큰돈을 주겠다고 하겠니마는 일이 급하기도 하려니와 네 정성이 기특해서 내 주는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런데 돈을 주기는 주겠다마는 내 청이 하나 있으니 그걸 들어 주겠니?』

『네, 무슨 부탁이신지 모릅니다마는 저의 집을 구해주시는 은덕을 결초보은이라도 하겠삽는데 몸으로 될 일이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읍니까.』

『다른 청이 아니라……』

하고는 얼른 말하기를 어려워 하는 눈치를 보이며

『이건 참 말하기 부끄럽다마는……』

하는 말을 전제로 아래와 같은 청을 하였다.

먼저 아들 경환의 병이 남이 싫어하는 문둥병인 듯하다는 것과 그 동안의 매혼이 모두 이것 때문에 파탄된 사실 그리고 이번에 천우신조하여 택일단자까지 와서 이제는 목적을 달하였구나 하였더니 그것마저 하느님의 시기인지 아들 경환이가 수일 전부터 병석에 누워 있으니 대례를 치르러 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번 혼사를 놓지고 보면 다시는 절망의 길 밖에 남지 않았다는 고충을 이야기하고

『네가 내 자식 대신 신부 집에 가서 대례를 지내고 며느리를 데려다 주기만 하면 나중 일은 내가 담당할 터인즉 제발 그리해 주는 게 어떠냐, 그 집에선 천행으로 내 자식의 선을 보지 않았으니까 네가 내 아들이라 해도 모를 것이니.』

『신방을 꾸밀 것이니 그 아니 딱합니까.』

『그것 쯤야 도리가 있겠지, 별안간 몸이 불편하다고 하면야 게선들 억지로 한 방에 들라고야 하려구.』

하고 이번에는 김진사가 순옥이의 얼굴을, 눈치를, 이윽히 바라본다.

순옥이는 얼른 좌우의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대답하기에는 너무나 짐이 무거운 문제였다.

그러나 나중 일은 김진사가 담당하겠다고 언명하였고 그보다도 만약 김진사의 청을 들어 주지 않으면 삼천냥에 대한 승낙조차 어찌 될런지 알 수 없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순옥이는 마침내 승낙하고 말았다.

『그럼 돈은 오늘 곧 보낼 테니 이번 일만은 너하고 나하고만 알고 있자.』

『물론 후행 가는 사람과 내 집안 사람들이야 자연 알아야만 하겠지마는.』

하고 무한히 기뻐하였다.


김씨집과 송씨집 대례는 예정대로 신부집에서 거행되고 송씨는 똑똑한 사위를 얻은 것을 무한히 기뻐 자랑까지 하였다.

사위가 별안간 몸이 아프다 하여 신방을 꾸미지 못한 것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신부를 잠간 대좌시키고는 순옥이 혼자만을 자게 하였다.

이리하여 삼일을 치른 후에 순옥이는 신부를 데리고 폐백을 드리러 김 진사 집에를 와서는 곧 뒤로 빠져 나가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리었다.

며느리만 데려다 준다면 하는 약속을 완전히 치르고 간 것이었다.

폐백을 드린 날 밤 신부는 너무나 의외 일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초례를 지낸 남편은 간 곳이 없고 병석에 누워 있는 차마 볼 수 없는 흉상의 사나이가 정작의 남편이라니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붙들고 사정 설파를 하고는 모든 것을 팔자로 여기어 달라고 사정 사정하였다.

김 진사의 배짱은 며느리를 데려다 놓고 사정하면 어린 신부가 제 아무리 똑똑한들 별 수 있으랴 한 것이었지마는 신부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이 흉한 병자라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다.

예를 갖추어 하늘에 맹서한 사람이 따로 있게 되었으니 그 사람이야말로 정작 남편이 아닌가. 만일에 시부의 청을 듣는다면 그것은 시집간 지 사흘만에 두 낭군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김 진사의 집엔 마치 불이 꺼진 집 모양으로 상하가 실색하여 끽소리도 못하였다.

새 며느리가 승야 도주하였다.

뉘게다 이런 말을 내랴.

이래도 창피 저래도 창피 투성이다. 김진사는 다시 머리를 싸고 눕게 되고 돈 삼천 냥이 가상으로 없어진 셈이다.

신부는 밤중에 시집에서 빠져 나와 자기 친정으로 도망해 간 것이었다.

물론 송씨 집에도 남에게 말 못할 큰 소동이 일어났다. 김가에게 속은 것이 분하고 괘씸하고 딸을 버린 것이 절통하였다.

그러나 딸은 김진사 집에다가 시비를 거는 것보다 대례를 지낸 신랑을 찾아 달라고 하였다.

그리 하는 것이 두 집안 창피를 면하는 길이고 또 자기가 응당 밟아야 하는 길이라고 역설하였다.

사리가 합당함에는 부모의 힘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우선 그 신랑을 찾기로 결정이 되었거니와 생각할수록 어설픈 맹랑한 경우에 빠진 것이 김진사이었다.

며느리는 얻지도 못하고 돈 잃고 창피 보고 더구나 남에게 사정 이야기도 못할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

김진사의 집은 천인 나락에 빠진 집안처럼 깊은 수색에 잠기어 있게 되었다.

이 형편을 잘 아는 하면장 부자는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근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에게 큰 불행을 끼치고라도 자기만 일이 피우면 고만이라는 격이 되고 만 것이었다.

더구나 송씨집에서 김신랑 대신 온 신랑이 하면장의 아들이라는 것을 염탐하여 알고는 강경한 담판이 왔다.

사리가 사리니 만치 그리로 장가를 아니 가겠다고 뻗댈 길이 없었다. 실상은 대례까지 지냈으니 폐백만 받으면 고만인 셈이다.

만일에 그것에 응치 않는다면 사기 결혼의 공모로 몰릴 것이니 크나 큰 발목을 잡힌 이상 다시 두 말을 할 수 없게 되어서 필경 신부의 집의 요구대로 그리로 장가를 다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연을 곁에서 듣고 앉았던 순옥의 누이동생 순희(順姬) ─ (나이 열일곱 살) ─ 가 별안간, 아버지 하고 부른다.

『제가 무얼 알겠읍니까마는 어른들 하시는 일을 곁에서 보온즉 우리 집에나 송씨댁에는 잠간 창피를 보셨을 뿐이지 전화위복이라더니 무어 그리 손된 일은 없었읍니다마는 제일 가여운 것이 김진사 어른이 아니오니까.

아버지께서 그 어른의 돈이 아니더면 지금 어느 경우에 빠지셨을런지 모를 것을 그 어른의 돈으로 피우고 나서 그 은혜를 갚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근심을 더 해주게 됐으니 세상에 그럴 법이 어디 있읍니까. 만일에 우리만 잘 되었다고 그 댁 일을 피어 주지 않으면 첫째 하느님이 용서하시지 않을 일이올시다.』

『글쎄 네 말이 옳기는 하다마는 애초에 우리가 그리 하자고 해서 한 일도 아니고 또 지금 김진사의 근심을 덜어 주잔들 별 도리가 없지 않으냐.』

『김 진사 어른은 며느님 하나만 생겼으면 이 근심 저 근심 없어지지 않아요.』

『그야 그렇지.』

『그럼 제가 그 댁으로 들어가겠읍니다.』

『무어 어째.』

하면장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아니 문둥이의 계집이 되잔 말이냐.』

『문둥이 아니라 미친 사람에게도 가야만 될 형편이면 가야 합지요, 막비 저의 팔자입지요, 저 하나 이 세상에 없더니라 생각하시고 그리로 보내 주시면 아버지께서는 의리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십니까. 저의들이 잘 살고 남을 구렁에 집어 넣은들 그 영화가 오래 간다 생각하십니까.』

순희의 나이보다 성숙한 말에 하면장은 아무 대답을 못하였다.

김진사는 하면장의 자원 ─ 딸을 며느리로 보내겠다는 ─ 말 듣고 눈물로써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절처에서 살 길을 얻은 셈이오, 어둠에서 등불을 얻은 격으로 그들의 우수에 잠긴 가슴에는 명랑한 광명이 비쳐 주었다.

어제까지 죽은 듯 고요하던 집안이 오늘은 웃음 바탕으로 하면장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하나에도 며느리, 둘에도 며느리, 며느리가 아니면 날이 새지 않는 듯이 귀여워하고 사랑하였다.

남편 경환이도 물론 크게 만족하여서 한 때라도 순희가 곁에 없으면 생 짜증을 내었다.

그러나 병세는 점점 더 하여가서 순희가 들어온지 석 달 되는 요즈음에는 경환이는 다만 죽는 날을 기다릴 뿐 쇠약하고도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형태만이 자리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약석도 효험이 없었고 순희의 지극한 정성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경환이가 누워 있는 방에는 여느 사람으로는 코를 들 수 없는 악취가 가득하건마는 순희는 그 방에서 밥을 먹고 그 방에서 함께 자며 간호에 전력을 다 하였다.

순희가 이집에 들어온지 사개삭 되는 날 밤 순희는 최후의 결심을 하였다.

그 날은 초 저녁부터 남편 경환의 병세가 이상하고 있다금 헛소리로 지꺼리는 말 조차 죽음의 전구인 듯이 소름이 끼쳐지는 것이었다.

이따금 아내 순희를 알아 보지 못하고

『날 좀 살려 주.』

하는 소리만 할 뿐이었다. 순희의 눈에는 죽음의 검은 뚜껑이 남편의 가슴을 한겹 한겹 덮어 가는 것 같았다.

순희는 남편에게 육적인 애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집에 들어와 차차 남편을 간호하는 동안에 경환이 ─ 아무 죄 없는 경환이 ─ 전도가 양양한 청년이 그 모진 병으로 하여 세상을 떠나는 일을 생각하니 무한한 동정이 가슴에 샘솟듯 솟는 것이었다.

내 성력으로 살려보자. 이것이 순희의 결심이었건마는 그 정성도 이제는 아무 힘도 나타내지 못하고 불쌍한 경환이 불귀의 사람이 될 것을 생각하매 순희는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

무슨 년의 팔자가 악병 있는 남편을 맞게 되고 그리고 또 무엇이 부족하여 그 병든 남편조차 잃어 과부로 평생을 마치게 되는 것인고.

아마도 하느님이 나를 자기 밑으로 불으시려나 보다.

이러한 생각에 순희는 살그머니 장문을 열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비상을 내었다.

이 비상은 전일에 여자로서 당치 못할 굴욕을 당할 때에는 목숨을 끊어 깨끗한 최후를 하리라고 몸에 지니고 있던 약이었다.

그것이 이제 내용이 다르나마 소용이 되게 된 것이었다.

순희는 그것을 물에 개어 머리 맡에 놓고 뒷문을 바시시 열고 밖으로 나섰다.

뒤꼍 동산에 올라 멀리 친가 쪽이나마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부모에게 최후의 고별을 하자는 것이었다.

동산에 오른 순희는 의외로 긴 시간을 거기서 보냈다.

급기 죽으려는 결심을 하고나니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마당이건마는 원수의 잡념이 이 기억에 추억을 가져다가 최후의 단애에 올라선 그의 가슴을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한 동안을 울음으로 보내고 있던 순희는 자기가 빠져나온 동안에 운명의 장난이 또 한번 있었던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자리에 누워 신음하며 잠들었다 깨었다 하는 경환이는 모진 갈증에 어렴풋이 눈을 뜨고 아내를 찾았다.

그러나 아내는 곁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머리 맡에 한 개의 대접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생각할 여유도 없어 경환이는 그 그릇을 끌어다가 들어 마셨다.

약인지 물인지 그에게는 판단할 능력조차 감각조차 마비해 버렸다.


몇 십 분 후 ──

눈물을 거둔 순희는 병실로 조용히 돌아 왔다.

동시에 그는 비인 대접을 보고 실색해 떨었다.

확실히 남편이 독약을 들어 마신 것이다.

얼마 동안 그는 어쩔 줄을 몰라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몸을 떨었다.

경환이는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꽤 생기 있는 목소리로

『목이 마루.』

한다. 순희는 무엇보다도 먼저 신기한 생각에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서 냉수를 떠 가지고 들어 와서 그것을 입에 대어 주려니까 남편은

『아니 냉수 말고 아까 먹은 걸 좀 주.』

한다.

아까 먹었다는 것은 비상을 탄 물이다. 비상도 이제는 없으려니와 있은들 그걸 알고서야 어찌 주랴.

순희는 듣지 아니하고 냉수를 먹으라고 권하였다. 권하면 할수록 경환이는 짜증을 내어

『아까 먹은 것.』

을 달라고 조른다.


『대관절 아까 이 그릇에 무얼 담아서 먹였길래 저 애가 자꾸 그것을 달란단 말이냐.』

김진사는 며느리를 보고 묻는다.

『무언지 제 먹고 싶다는 대로 주려므나.』

한다. 순희는 하는 수 없어 비상을 물에 개어 놓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을 이상한 눈으로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김 진사는 며느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어서 그것을 타서 주어라. 비상은 사랑에 얼마든지 있으니. 그것이 여느 사람이 먹으면 죽되 그 병 있는 자가 먹으면 약이 되나 보다. 만일에 그것으로 해서 죽는다 한들 기왕 죽에 된 자식이니 무슨 한이 되겠느냐.』

하고 비상을 갖다가 며느리 손에 쥐어 주었다.


우연한 기적이오 과학을 초월한 신비이다.

남편 경환의 얼굴에서 종기의 자취가 하나 하나 사라져가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던 순희는 천정을 쳐다보며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신명께 감격을 묵연히 표하는 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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