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도통사(三道都統使) 이완(李浣) 장군은 자기의 직위가 무관으로서 결코 미관말직(微官末職)이 아니고 상당한 권위가 있는 벼슬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완 장군은 요즈음 집안에 들어 박혀 있어서 좀처럼 출입도 아니 하였다.

겉으로는 신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진(仕進)도 못한다고 했지만 기동하지 못하는 신병이 있는 것도 아니요. 다만 방안에 들어앉아서 손을 보지 않았다.

무엇이 불만해서 그러함인지 앙앙불열하는 안색으로 책을 보지 않으면 무슨 문서를 뒤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족들도 그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

이 장군은 외간에 떠도는 소문......

『봉림대군도 보위에 올라 임금이 되시고 나니 호인놈들에게 받은 원한도 다 잊어버리신 게지.』

하는 소리 또는

『즉위하신 지가 벌써 다섯 해나 되는데 원수 한 번 갚아 보실 줄 몰라.』

『도대체 우암이니 뭣이니 하는 맹꽁이들이 뭘 할 줄 안다는 거야. 서산대나 들 줄 알지 칼창을 쓸 줄 아느냐 말이야.』

이런 뜬 소문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혼자서 끙끙 앓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그 어느 땐가는 하도 분통이 터져서 앞에 놓인 연상을 단 한주먹에 산산이 부셔버린 적도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두문불출한 지도 벌써 십여 일이 되고 보니 울분한 생각도 얼마쯤 사라지고 해서 문갑을 열고 전일 수기해 두었던 일기책 같은 것을 집어 꺼내서 읽고 있던 중 문득 책장 틈에 끼어놓은 종잇조각 하나가 떨어지는데 그것을 집어 본즉 거기에 자기의 필적으로

驢跛疑我 (노파의아중, 나귀가 절뚝거리길래 내 몸이 무거워서 그런가 했더니)
添騎一人魂 (첨기일인혼, 사람의 혼백 하나이 더 실리기 때문이로구나!)

하는 글귀가 써 있다.

이 장군은 빙긋이 혼자서 웃으며 또 한 번 그 글을 들여다보니 산중에서 만났던 어여쁜 노처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산적괴수 유광풍(柳狂風)의 호쾌장절한 모습이 떠오른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다 쓸모 있는 장사들이건마는.......』

하고 탄식하였다. 동시에 장군의 머리에는 지나간 홍소년 때의 한 개의 로맨스가 주마등처럼 살아나온다.

이완 장군은 어렸을 때부터 근골이 장대하고 힘이 여느 소년의 두 몫은 넉넉하였다.

그래서 여주(驪州) 읍내에서도 시오리쯤이나 떨어져 있는 촌에서 생장하였건마는 여주서 장사 하나 생겼다는 소문은 읍내 일경에까지 선전되어 있었다.

아버지 이수일(李守一)은 그것을 퍽 두려워하였다.

때는 광해주 말년 경이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주는 본시 총명한 사람이었건마는 군 측의 요물들이 그의 총명을 은폐하여 주색에 침륜케 한 것이 필경 한 개 광포한 임금을 만들어버리고 말았고 오래 정권을 장악한 북인들은 임금이 혼미하면 할수록 자기들의 정권 남용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광해주는 비변사(備邊司)를 억압하고 뒤로 청꾼에게 은근히 표시하여 교묘히 수서양단(首鼠兩端)을 잡음으로써 나라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으며 크게 토목공사를 시작하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애를 썼다.

그렇지마는 소위 당쟁에 썩을 대로 썩은 벼슬아치들은 서로 서로 중상 살륙 의옥 등으로서 편한 날이 없었다.

세태가 그러하므로 이수일은 자기의 아들이 세상에 드문 장사의 소질이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언제 어느 때 장사임으로써 정권 다툼에 이용되고, 이용됨으로써 자칫하면 영오평생을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예부터 집안에 장사가 나면 화근이라 해서 미리 힘을 못 쓰도록 팔쭉지를 뜨느니 병신을 만드느니 하였던 것도 이러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이수일은 가끔 집에서 농사를 짓는 노총각 머슴이 자기 아들인 도련님과 장난 삼아 씨름을 하다가 판판이 나가 떨어져서 골탕을 먹는 꼴을 보고 기뻐하기커녕 한숨을 쉬었다.

그 노총각 머슴도 나이 삼십에 가까운 들장사는 되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이완 도령은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한마디 거역하는 법이 없었다.

이수일은 아들을 슬그머니 글공부로 이끌어 들이려는 생각으로 책을 주어 글을 읽혀본즉 다소 성격에 맞지 않는 바도 있었겠지마는 글공부도 곧잘 하였다.

그대로 글공부에 재미를 붙인다면 남이야 그 도령이 장산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한 이수일은 무척 기뻤다. 늘 이마에 주름살이 펴질 날이 없던 아버지도 이제는 명랑한 안색으로 아들을 대하였다.

그럭저럭 세월이 지나가서 이완이 열세 살 되는 해 늦은 봄에 또 하나 근심이 생겼다.

아들이, 활도 보통 사람은 당겨보지도 못할 강궁 한 개를 만들어 가지고 글공부하는 틈틈이 활쏘기를 연습하고 때로는 산으로 내빼서 사냥질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글공부에 재미를 붙여서 다소곳하고 책이나 읽고 있었으면 하였더니 이제는 또 이완 소년은 세상에 큰 장사란 이름이 나기 쉬운 사냥질에 손을 댄 것을 불안히 여기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친구가 보은 속리산(俗離山) 속에 이인이 한분 있다는 이야기를 해 들리었다.

『그 이인을 만나려면 어떻거면 좋은가.』

『속리산 속에 있다니까.』

『아니 산속에 있다는 이야기는 지금 들었거니와, 속리산이 내 집 뒷동산인가. 그 넓은 산중에 어디 가서 만나느냐 말이지.』

이수일은 귀가 번쩍 띄어서 이렇게 재차 물었다.

『왜 그렇게 자세 알려나.』

『글쎄 그런 일이 있네.』

『무슨 일이야.』

『다른 게 아니라, 내 아들놈이 요즈음은 글공부도 잘허지 않고 사냥질만 다닌단 말을 들었겠네 그려.』

『들었지.』

『기위 그렇게 빗나가게 된 이상 차라리 그런 선생에게나 보내서 병서나 가르치어 볼가 해서 하는 말일세.』

아버지 된 사람의 자애정리로 모름지기 그럴 법한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속리산 아무 절로 찾아가서 이인 있는 곳을 물으면 안다는 것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이리하여 수일 후 이완은 부모의 슬하를 떠나 속리산으로 이인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 이수일은 비록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보내는 것이지마는 마치 손아귀에 넘치는 자식이라 해서 멀리 귀양살이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에 언짢았지마는 떠나가는 이완은 차라리 심산궁곡 무인지경에서 마음대로 활약할 희망이 있느니 싶어서 도리어 기뻐하여 길을 떠났다.

열세 살 먹은 소년이지만, 이완은 누가 보든지 열칠팔 세나 되어 보일 만큼 건장하였다.

이완 소년은 단 혼자서 속리산 속으로 들어간 지 사흘만에야 간신히 이인의 암자를 찾았다.

처음 만난 노옹은 이완 소년이 멀리 여주에서 자기를 찾아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는

『나이 몇이라고 했지?』

『열셋이올시다.』

『음—.』

노옹은 경탄하듯 이렇게 신음하고 이완의 몸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나서

『네 장끼가 뭐지?』

『사냥질입니다.』

『노루, 토끼.』

『아뇨.』

『범.』

『아뇨.』

『그럼.』

『사슴입니다.』

『하필 사슴이냐?』

『녹용을 따서 아버지께 올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음—.』

이인은 또 한 번 신음하였다.

『힘깨나 쓰는구나.』

『조금 씁니다.』

『여봐라 저 시렁 위에 있는 책을 좀 내려라. 키가 모자라겠구나. 저 궤를 놓고 올라서라.』

하고 방 한편 구석에 놓여 있는 목궤를 턱으로 가리키었다.

이완 소년은 그 목궤를 냉큼 들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섰지마는 그래도 키가 모자라서 발돋움을 하고 시렁 위에 쌓여 있는 책을 집어 내리려고 하였다. 이 순간에 이 노옹은 발로 그 목궤를 걷어찼다.

목궤는 뒤엎어지고 그 위에 발돋움하고 있던 이완 소년은 허공으로 나가떨어질 줄 알았더니 그 순간에 이완의 몸은 획 솟아서 굵은 시렁장목에 팔을 걸었다.

이완 소년의 몸은 공중에 매어 달린 채 책을 집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백발 노옹은 세 번째 음— 하고 신음을 하고는,

『이리 와 앉아라.』

하고는,

『너 오늘부터 내게서 공부하는 것을 허락한다마는 너 먹는 것은 네가 지어 먹어야 허느니라.』

하는 승낙을 하였다. 이완 소년에게 대한 자격시험에 급제한 것이다.

노옹은 벽곡(辟穀)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완 소년이 먹는 조석은 이완 자신이 마련하고 짓고 하여야 하는 것이었다.

속리산 속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이년이 지나서 이완 소년의 나이 열다섯이 되어서 집에 돌아오기는 했지마는 그는 오래 집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배운 바 손오병서를 이용할 기회는 없다 할지라도 산속에서 자유 활달하게 지내온 이완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는 차마 갑갑하여 견디지 못할 사정이었다. 아버지 이수일도 이제는 자식이 하는 대로 방임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완은 대산명천을 두루 구경하고 겸하여 문견을 늘이기 위하여 재차 집을 떠났다. 노수는 가는 곳마다 사냥질을 해서 그것으로 지탱할 계획이었다. 이리하여 집을 떠난 지 수십일 후에 그는 강원도 치악산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치악산은 그윽한 산이라 짐승도 많았다.

연사흘 동안에 그는 노루와 토끼 등속을 상당 수효 잡았고 나흘째 되어서는 큰 사슴 한 마리를 만나서 그것을 쫓았다.

그런데 그 사슴 역시 발이 날래서 좀처럼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완은 꾸준히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이완은 문득 이상한 소리가 귀에 들려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슴은 그 사이에 벌써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게 무슨 소릴고.』

이완은 귀를 기울이었다. 방울소리다. 분명히 말이나 당나귀 목에 달은 방울소리다.

짤랑, 짤랑, 짤랑—.

바로 이완이 걸음을 멈추고 있는 비탈 위 높은 영으로 올라가는 산로(山路)에서 나는 소리다.

이완은 부리낳게 비탈에서 산로로 기어올랐다.

『누가 이 심산산로를 나귀 타고 오르는 게냐.』

이런 호기심이었다. 이윽고 그 방울소리의 정체가 나타났다.

동시에 이완의 눈은 황홀하였다.

이 무슨 기적이냐. 나이 이팔이 넘어도 얼마 넘어 보이지 않는 예쁜 처녀 하나가 나귀를 타고 올라오는데 그 뒤에는 패랭이를 쓴 하인인 듯한 총각 하나가 무슨 짐짝을 메고 따라 섰다. 나귀 탄 처녀는 세상에 드문 미인이었다. 그 처녀는 이완을 바라보고 아련히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앞을 지나간다.

이완 소년은 정신이 황홀하였다. 산중에서 이런 미인을 만나보니 한층 더 신기하기도 하고 생각지 않은 연모심이 불같이 일어났다.

이완 소년은 허리춤에 일상 지니고 있는 먹통을 꺼내서 한 조각 종이에 급히,

魂隨紅裝去 (내 혼백은 그대를 따라가고)
身獨倚山立 (비인 이 몸만이 산에 기대어 있네)

하고 글을 써서 들고 그 뒤를 쫓아가서 나귀 뒤 하인에게 주며,

『이것을 처녀께 올려주쇼.』

하였다.

그 하인은 그것을 받아야 옳은지 어떤지, 몰라서 어리둥절 하는 것을 나귀 탄 처녀가,

『이리 가져오게.』

하였다.

처녀는 하인이 올리는 그 글을 읽더니마는 나귀를 멈추고

『아범, 그 행장 속에 먹통이 있지.』

하고 찾는 것을 이완이,

『예, 있소.』

하고 자기의 것을 내주었다.

처녀는 서슴지 않고 종잇조각 뒤에다가

驢跋疑我重
添騎一人魂

이라는 답구를 써서 하인에게 내주고 도령에게 드리라고 하였다.

이완 소년은 그 답구를 받아본즉 더욱이 그 처녀의 문체에 놀라고 애착의 마음이 극도에 올랐다.

『내, 이 처녀의 가는 데까지 가보리라.』

이렇게 결심한 이완은 처녀의 나귀 뒤를 따랐다. 영을 넘을 줄 알았더니 채 넘지 않고 중도에서 길이 있는 듯 마는 듯한 소로로 꺾이어 들더니 오 리 가까이 궁곡 속으로 들어갔다.

여느 사람의 경우라면 이런 궁곡으로 들어가는 처녀의 일행과 정체에 의심도 먹으련만 이완은 무심히 따라갈 뿐이었다.

이윽고 조그만 재 하나를 넘으니 안계가 툭 터지고 거기에 조그만 평지가 낙락장송에 휩싸여 있고 그 평지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거기가 처녀의 집이었다.

처녀는 여러 사람의 마중을 받으며 나귀에서 내리며

『내 뒤를 쫓아온 저 도령 손님을 뒤 산당으로 뫼셔 드려라.』

하는 분부를 하였다.

산중에서는 도저히 받아볼 수 없는 진수성찬의 저녁상을 받고 숫기 좋은 이완은 한마디 사양의 말도 없이 말끔 먹어치웠다.

기왕 뱃심을 부렸으니 끝까지 부려보자. 저녁이야 어디 간들 못 먹으리. 그 미인 처녀하고 말 한마디라도 직접 주고받고 해보자 하는 뱃심이다.

저녁상이 물러나가고 촛불이 들어온 지 거무하여 시녀에게 술상을 들려 가지고 그 그리운 처녀가 조용히 방안에 들어왔다.

뱃심 좋은 이완도 다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 놓고 나가거라.』

하여 시녀를 돌려보내고 처녀는 아무 말 없이 술 한 잔을 가득히 따랐다.

『도령님 술 자실 줄 아십니까?』

이것이 첫인사였다.

『술은 먹을 줄 모르지만 사람이 먹는 것, 낸들 못 먹겠소.』

하고 덥석 받아서 한숨에 들이마셨다.

처녀는 비로소 소리 없는 화려한 웃음을 지어 웃었다.

모란봉오리가 별안간 활짝 피인 듯하였다.

『당신두 한 잔.』

하고 이완은 술병을 들어서 한잔 술을 부어서 처녀에게 권하여 보았다.

『계집이 무슨 술이오니까!』

『떡은 없고 어찌 허우.』

『그럼 무료를 면하시도록 한 잔 술은 치우겠어요.』

처녀는 웃으며 술잔을 들어 역시 한숨에 마시었다.

이 처녀 녹록한 인물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녹록한 처녀가 아니었다. 그는 산적괴수 유광풍(柳狂風)의 딸이었다. 산적괴수 유광풍은 나이도 그다지 늙지 않았거니와 그 효용하고 큰 그릇다운 인물이 이미 민간에 널리 선전된 위인이었다.

비록 산적질은 할망정 속에 글이 들었고 기개가 있어서 큰 부호의 집을 털거나 큰 상고들의 집을 빼앗을지언정 조그만 도적질은 하지 않았다.

처녀는 그러한 부친의 피를 받아 비록 여자일망정 구구한 아녀자의 행동은 하기 싫었다.

그래서 가끔 나귀를 타고 명산대천을 찾아 며칠씩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들어오곤 하는 터이었다.

이날 처녀는 이완을 보고 한눈에 그의 인물이 비범한 것을 관찰하였고 그의 글귀를 보고 그 솔직한 배짱에 놀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완을 산당까지 끌어들인 것이었다.

장래 배필을 얻는다면 이런 남자를...... 하는 심지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처녀는 지금 자기가 하는 행동이 아버지의 꾸지람을 받을 것을 넉넉히 짐작하고 있다.

유광풍은 비록 도적의 괴수로되 집안에 있어서의 처신은 엄격하였다.

본래 이 세상에 뜻을 잃은 불의한 나머지에 도적이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엄한 성격으로서는 처녀가 도령을 부모의 허락 없이 끌어들인다는 것은 망측한 소위라고 꾸지람할 것이 분명하다.

처녀는 이완더러,

『여기는 산적괴수의 소굴입니다. 나의 부친이 산적의 괴수인데 성격이 엄해서 아마도 내가 도련님을 모신 것을 몹시 꾸지람허실 것이고 도련님께 어떤 욕이 돌아갈지 모르오니 빨리 돌아가시되 이렇게 만나 뵌 것을 인연으로 일후 다시 오래 모실 기약을 하고 싶습니다.』

하면서 염낭에서 지환 한 짝을 내어 이완에게 주었다.

이완은 그것을 받아 고의춤에 집어넣고는

『총각의 처지로 계집의 뒤를 쫓아온 위인이 여간 욕쯤 당할 것이야 미리 알고 있는 것이니 과히 걱정 마시고, 그리고 당신의 부친이 유광풍이라 하니 만나 뵙고 가려우.』

하고 꼼짝할 동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술 한 잔 더 부어 주우.』

하였다.

『생명이 위험하여도 동치 않으시려오?』

『생명이야 하늘에 있는 것이지 뉘 한 사람의 손에야 있겠소.』

이완은 일호 불안한 빛이 없이 유들유들 굴었다.

대담을 초월한 무도한 행동도 같았다.

그러나 이완의 안중에는 유광풍이 없었다. 도령으로서 처녀의 방에 들어와 놀았거든 들어오지 말라는 것을 들어온 것도 아니오, 처녀의 몸에 손가락 한 번 접하지도 않았은 즉 무슨 두려울 바 있는가 하는 배짱이었다.

이윽고 밖에서 떠들썩하고 인마의 소리가 났다.

처녀는 약간 불안의 빛을 얼굴에 띄우고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가려할 즈음에 유광풍이 이 산당으로 들이닥쳤다.

『옥화야, 너 이 무슨 해괴한 버릇이냐.』

하고 호령하였다.

옥화(玉華)는 처녀의 이름이다.

방안의 장지가 쩌렁쩌렁 울리는 큰 음성이다. 옥화는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네, 이놈 총각의 몸으로서 언감히 내 딸의 방에 들어오다니 너 어서 생긴 놈이냐.』

호령은 이완에게로 옮겨왔다.

『어서 생기다니 이 강산에서 생겼지 하늘에서 떨어졌겠소.』

『얘, 이 자식 봐라 냉큼 일어서지 못하겠니.』

『내쫓을 것을 왜 불러들였소.』

『이놈 그 배짱 어지간하구나. 너 같은 놈 살려뒀다간 생사람 여럿 구치겠다.』

하고 벌떡 일어선 유광풍은 벽장에서 밧줄을 꺼내 가지고 이완에게 달려들어서 결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완은 그 밧줄 따위 힘 한 번만 주면 토막토막 나버릴 것을 알지마는

『어디 두고 보자.』

하는 대담한 생각으로 결박하는 대로 묶이었다.

유광풍은 결박한 이완을 방 저편 한구석에다가 꿇어 앉혀 놓고

『이년아 아랫것들 보기에 창피치 않단 말이냐.』

하고 딸을 꾸짖으며 앞에 놓인 술병을 들어서 흔들어 보고는 술상을 앞으로 잡아 당겼다.

『와서 술이나 쳐라.』

하고 딸을 불렀다.

결박을 당하고 있는 이완을 괴수 유광풍은 눈시울로 힐긋 바라보며 딸이 부어주는 술을 마시려고 했다.

『유 괴수, 아니 유 대장.』

하고 이완은 빙긋이 웃는 낯으로 이렇게 불렀다.

『…?……』

유광풍은 술잔을 잡았던 손을 멈추고 그 편을 바라보았다.

괴수라고 부르는 것은 듣기에 약간 불쾌타 할지라도 생화가 생화이니만큼 당연한 것이지마는 대장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하였다.

대장이 무슨 놈의 대장이냐. 나 역시 근본이 있는 명문에 태어나고 뒤를 받쳐주는 후원자가 있다면 등단하여 대장 노릇인들 못하였으랴마는, 나같이 한미한 집안에 태어난 소치로 재주를 펴 볼 자리가 없어 울분한 가슴을 푼다는 것이 이 산속의 괴수란 생업이 아니냐. 빈정대서 대장이냐.

『왜 그래?』

『그 술은 내 술이오. 남의 술을 말없이 먹는 법 어디 있소. 수십 명 부하를 거느리는 사람이 그만한 체모도 모른단 말이요.』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도 말만은 조리 있는 책망이다. 그러나 내 술이라고 내부치는 배짱은 여느 사람으로는 내부칠 말이 되지 못한다. 그럴 용기가 없을 것이다.

유광풍은 아까부터 이완 청년의 부동자약(不動自若)한 태도에 적지 아니 내심으로 감탄하고 압박을 느끼고 있었던 차에 또 배짱 센 말을 듣고 보니 도리어 기가 꽉 질리었다.

동시에 일종의 호감이 솟고 이런 인물이야말로 장래에 큰 일군이 될 것이다 하는 느낌이다.

『음.』

유광풍은 빙긋이 고소하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혼자 먹을 술이 아니로구나. 결박을 끌러라.』

딸은 주저하였다. 머뭇거리면서 얼른 일어서지 못하였다.

『왜 힘이 모자라서 못 끄르는 게냐. 앞에 앉히고 술을 쳐 준 사이가 아니냐.』

『술만 쳐 줬겠소, 장래의 언약까지 했소.』

나이에 비하여 숙성한 굵은 음성이 이완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아, 하하하.』

별안간 유광풍의 입에서 호쾌스러운 너털웃음이 터져 나온다.

『에끼 이 못된 년아, 어느 틈에 그런 언약까지 한 애인의 결박을 못 끌러, 냉큼 끌러라.』

이 승부는 완전히 이완의 승리다. 유광풍 부녀는 완전히 이완 청년의 기백에 사로잡힌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나이의 차로 말하면 존장이 훨씬 넘는 사이였지마는 이완 청년의 기상에 흘린 유광풍은 평교와 같은 언사로 그를 대하고 자기의 내력을 이야기했다.

이완 청년의 부친이 형조판서를 지낸 이수일인 것을 알게 된 그는

『허어, 하느님이 무심치 않구려. 이런 몸이 돼서 은혜를 입은 이 판서 대감의 아드님을 만나다니.』

하고 감개무량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얘, 넌 나가서 밤참을 각별히 차려라. 넌 오늘부터 이 생활을 치우고 이 서방님의 보따리를 짊어져야 허겠다.』

하는 농담까지 하였다.

유광풍은 경상도 안동 사람으로 그의 부친은 문중 유 씨 중에서도 상당한 행세를 하는 사람이었고 소실 대구집이라는 여자 사이에 얻은 아들이 유광풍이다.

서자(庶子)이나 재주가 비상하고 비력이 출중하였다. 그러나 서자란 가시 굴레가 그의 머리에 씌워 있어서 그의 출세의 길을 막았다.

아무리 표일한 재주가 있고 수완이 있다 해도 첩의 자식으로는 관도는 물론이고 사회에서도 은근히 배척을 받았다.

힘 있고 재주 있고 학식이 풍성한 유광풍의 피는 끓었다.

자기의 운명을 저주하느니보다 더 사회를 원망하고 나라의 처사를 저주하였다.

사리에 합당치 않은 그런 제도는 뚜들겨 부숴야 한다. 그는 몇 번이나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우러러 분개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때로는 신경질에 가까운 행동이 있기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성정은 점점 자격지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적으로 되어가고 모든 사람의 자기에게 대한 언동을 백안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먼저 집안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일반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필경 가정을 하직하게 되었다.

인간도처 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지 어디 간들 살 수 없으랴.

이렇게 생각한 유광풍은 전라도 지리산 속에서 선생 한 분을 만나서 이 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 병서도 배우고 검술도 배웠다.

이리하여 팔도강산 이름 있는 곳에 발을 들여 놓지 않은 데가 없이 편답하였다

그러나 어느 곳에 가서도 오래 머무를 자리를 얻지 못하였다.

세상 놈들은 먼저 사람의 근지부터 캐보느라고 애썼다.

그 꼴이 보기 싫어서 젊은 배하 몇 동지를 얻어 가지고 산새 생활(山塞生活)을 시작한 것이 필경 오늘에 이르고 만 것이다.

당초에는 차차 도당을 모으고 금전과 전국을 모아 가지고 반란을 일으켜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 허무한 생각이요, 도저히 그만한 힘을 기를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 산새생활이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지마는 지금은 이것을 졸지에 그만 둘 수도 없어 시일을 불여의 중에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유광풍의 긴 내력 이야기를 들은 이완 청년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집안이 가난하여야 효자가 나며 나라가 어지러워야 충신이 난다는 말과 같이 지금 이 나라의 형세는 잠시 태평세월을 보내고 있지마는 머지않아 외적의 침입으로 백성이 도탄에 빠질 날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속리산 선생이 일상 말한 바 있었다.

전후 칠년간 왜난으로 해서 나라는 피폐하여 여지가 없지마는 우리나라보다도 더 큰 타격은 명나라이다. 명나라가 망하는 날 반드시 우리나라에도 큰 난리가 또 있을 것인즉 그때에 너는 큰 힘을 발휘할 나이는 되지 못하지마는 가슴 깊이 명심해 두었다가 일후 그 원수를 갚을 노력을 해야 허느니라.

이런 말씀을 수차 하셨던 것이다.

그러한 나라에 사단이 생겼을 때 이런 불우한 재주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였으면 오죽 유리하겠는가! 그러한 생각이 우연히 가슴에 떠올랐다.

때는 광해주 말년 세대가 몹시 험악하고 소문에는 안으로는 반란의 병난이 일어나고 밖으로 서는 새로 만주에서 일어난 호족이 쳐들어오리라는 유언이 떠돌았다.

『때는 왔읍니다. 선생은 과히 상심 말고 계십시오. 반드시 나라의 위급을 구허기 위하여 선생 같은 분을 부를 날이 있으리다.』

『누가 날 알아서 부른단 말인가.』

『자연 알 길이 있으리다. 이런 말을 허면 저 어린 놈이 무슨 꿈같은 소리를 허는가 하고 웃을는지 모르지만, 원래 왕후장상의 씨가 있는 게 아닙니다. 자래로 영웅열사는 기선을 부지(其先不知)라 해서 대개 미천한 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태조도 그러하거니와 명천자 주원장은 한 개 중으로 도세하던 사람입니다 나는 일찍이 부모의 슬하를 떠나 혼자 자기의 갈 길을 찾으려 하는 바로, 이 길로 나는 서울 가서 무과에 응하여 볼 것이오. 만일에 목적을 달하지 못하면 의병을 일으키어 호란을 막아볼 생각인즉 이 치악산에 계셔서 널리 동지를 연락해두면 나 역시 서로 연통하여 세상에 나가 볼 작정을 하십시다.』

이완의 말은 극히 믿음직한 이유가 있었다. 이완이 무과에 응한다면 등제할 것은 물론이며 더욱이 자기 자신은 권문의 힘에 의지할 생각이 없다 할지라도 형조판서를 지낸 이수일 대감의 아들이란 이름이 출세의 큰 힘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고 본즉 결국 이완의 무관으로서의 출세는 틀림없이 빠를 것이다. 더구나 이완의 기상, 기백, 용기, 비력 그 전부가 초인하여 가위 대장의 바탕이라 함에랴.

이완은 유광풍의 산새에서 사흘을 유하였다. 유와 이는 연기(年紀)를 초월하여 의지가 상합하였다.

이완은 스스로 결심하는 바 있었다. 일후 자기가 발신하여 상당한 지위에 오르게 된다면 이러한 유용한 인물이 초야에 묻혀있도록 하지 않으리라.

친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함이라고 생각하였다.

유광풍은 유광풍대로 이완의 출세할 것을 굳게 믿는지라, 일후 그를 도와 견마의 노라도 사양치 않겠다고 결심하고 자기의 딸을 일후 이완의 뒷시중으로 보일 것까지 정식으로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이완은 나흘 되는 날에 치악산을 떠났다.


이때에 서울은 몹시 뒤숭숭한 시절이었다.

광해주가 선조대왕의 뒤를 이어 임금 자리에 오른 후 불과 오 년도 못 돼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외조부 연흥부원군 김제남(延興府院君 金湍男)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

영창대군은 선조대왕의 적자 아드님이었다. 광해군은 서출왕자로서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마는 적출 아우 영창이 살아있어서는 필연 나중에 왕위에 대한 다툼이 생길 화근이 된다고 염려하였다.

그래서 먼저 영창대군의 뒤를 보아줄 유력한 외조부 김제남을 죽여야만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영창대군의 나이는 겨우 칠팔 세에 불과한 어린 왕자이니 그냥 우대해둔들 무슨 화근이 되랴마는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될 때에 가지가지의 모략으로 광해를 도와서 목적을 달하게 한 유공한 신하들, 그 중에도 이이첨(李爾瞻) 같은 간신들이 제발이 저려서 영창대군이나 그의 외조부 김제남 같은 인물이 살아있어서는 맘을 놓고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틈틈이 왕에게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추대하고 역적질을 하련다는 공갈을 해 두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는 멀쩡한 사람도 몰아 죽이고 나라 일을 그르쳐도 좋다는 불충지신들이었다.

영창대군의 모친 되는 인목대비(돌아간 선조대왕의 계후)를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하자는 것도 그들의 예정한 흉계이었다.

김 부원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데에도 기괴망측한 모략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경기도 춘천 소양강(昭陽江) 상류 강변 경치 좋은 곳에 무륜당(無倫堂)이라는 정자와 거실을 짓고 강변칠우(江邊七友)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 부르는 육칠 인의 사람이 모여서 완연히 지상 신선과도 같은 호화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글 짓고 바둑 두고 술 마시고 낚시질하고 활쏘기로 날을 보냈다.

흡사히 중국 후한(後漢) 말기서부터 위나라 말기에 사회의 풍기가 문란하고 나라의 기강은 해이해지고 백성들의 사상은 도의를 무시하고 극도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 흐르고 있을 때에 생긴 이르는 바 죽림칠현(竹林七賢)과도 같았다.

분명히 그것을 모방한 것이 분명하였다. 정자의 현판부터 무륜당이니 도덕이니 인륜이니 하는 것을 무시한다는 뜻이 암시되어 있었다.

그 무륜당에 모이는 주인공들은 박응서를 비롯하며 서양갑(徐羊甲) 심우영(沈友英) 이경준(李耕俊) 박치인(朴致仁) 박치의(朴致義) 등등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글을 잘 짓고 술을 잘 마시고 하는 호협한 남아들이었다.

그런데 특기할 것은 그들이 모두가 상당한 집안의 서자들이었다. 그중에도 두령 되는 박응서는 돌아간 영상 박순(朴淳)의 첩의 소생이었다.

그들은 나라 제도의 희생아들이었다. 인물이 못난 것도 아니요. 글을 못하는 것도 아니요. 단지 첩의 소생이란 점으로 출세를 못하는 불우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비분강개한 나머지에 소양강가에 정자를 세우고 동지끼리 모여서 한 세상을 농으로 보내자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동정할만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중국의 죽림칠현에 비하여 뒤지는 점은 죽림칠현은 각기 자기들의 무궤도한 생활 태도를 사회 일반 가운데에 드러내 보이어서 일반의 사상에 어떠한 충동과 영향을 주었고 당시에 유행하기 시작한 청담(淸談)과 아울러 인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마는, 소양강 무륜당 칠우(七友)는 단지 그 사람들의 소범위의 일종의 향락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무륜당 칠우의 생활은 상당히 오래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독선적(獨善的) 단체 생활에도 차차 난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정의 궁핍이다.

일곱 사람이 한 푼도 생산함이 없는 소비는 적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 거리낌 없이 지탱해 오기는 박응서를 비롯한 칠우 각자의 유산 또는 주변으로서 지탱해 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차차 순조롭지 못하게 되었다.

이때에 돌연 발생한 것이 경상도 동래의 금은상 하는 사람이 은괴를 말께 싣고 문경새재(鳥嶺)를 넘다가 도적을 만나서 은괴를 말끔 빼앗긴 것은 물론, 그 상인은 살해를 당하고 만 사건이 생겼다.

그래서 당국에서는 극력 그 사건을 수사한 결과 범인 하나를 잡아서 문초한 결과 기실 자기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 소양강 무륜당 박 모의 지시로서 범행을 감행하고 그 장물은 말끔 무륜당으로 갖다 올리고 얼마의 분배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아연히 무륜당 박응서 일파의 행동과 비밀이 세간에 선전되고 박응서 일파 전부는 금부로 잡혀 올라왔다.

사건은 단순한 살인강도라고 하겠지마는 모인 사람들이 사람들이니만큼 당국에서도 사건을 중대시하고 혹여 그 이면에 어떠한 불온한 계획과 연출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엄정한 심사를 거듭하였던 것이다.

이이첨의 소실 진주 출신 효정이란 계집은 본대 진주 기생으로서 기명을 옥매(玉梅)라고 불렀는데 뜻 먹은 바가 있어 기안에서 이름을 빼고 서울로 올라와서 이리저리 연줄을 얻어 이이첨의 애첩이 된 인물이다.

그런데 소양강 무륜당 칠우 중 하나인 서양갑(徐羊甲)이란 위인은 옥매의 고모 되는 계집의 소생이었다.

다시 말하면 옥매와 서양갑과는 내외종간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옥매는 서양갑이 박응서 일파로 잡혀 올라오게 되는 날부터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 범인에게 대한 정보를 얻어듣기에 애를 썼다.

차마 남편 대감에게 그런 내정을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론에 그들은 모조리 참형을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보니 고모에게 대한 정리를 생각할지라도 안연히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현재 자기는 당대의 세도 대신 이이첨의 애첩이 아니냐!

남들은 그 사람 하나쯤야 구해내지 못하랴 하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수일을 두고 고민한 효정은 무서운 계교 하나를 생각해냈다. 그래서 어느 날 조용한 밤을 가리어 이이첨이 특히 좋아하는 서도 진상의 감홍로를 준비하고 사람을 수원으로 보내서 구해온 서호 잉어와 붕어로 회를 만들어서 대감을 대접하였다.

『이거 어디서 온 잉어냐?』

『수원 서호에서 잡은 것이에요.』

『서호 잉어면 진상 물건인데 사람을 보냈던가.』

『이십일 전에 사람을 보내두었읍지요. 요즈음 정사가 다난하셔서 몸이 괴로우신 걸 알고 어디 그냥 있겠어요, 따로 붕어에다가 삼하고 부자를 약간 넣어서 고고 있으니 내일 아침에 그걸 자시도록 허셔요.』

『부자를 함부로 써서 되나.』

『정주부가 팔아왔는걸요.』

『정주부의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 이번에 정가의 아들 녀석이 예조 서원(書員)으로 출사하게 됐지.』

『대감의 말씀으루?』

『응.』

『그만헌 구실 감당은 할 만한가요?』

『감당하고의 여부가 있나 그저 출사만 허면 되는 거지.』

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대감 이번 새재에서 은상 죽인 도적들 말씀예요. 그자들이 양반들의 씨라면서요.』

『그렇지, 서출 출신으로 불우한 나머지에 그 짓들을 한 게지.』

이이첨은 그 사건에 관해서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양 술만 거푸 마셨다.

『그건 왜 물어.』

한동안 있다가 이이첨은 이렇게 물었다.

『좀 그런 일이 있어요.』

『무엇이.』

『그건 나중에 아뢰겠어요, 그런데 대감.』

『…?……』

『이런 말씀을 허면 계집년이 주제넘게 외정네의 허는 일에 입을 놀린다고 꾸지람 허시겠지만 요즈음 연흥부원군 김제남 대감이 영창대군을 받들어 모시고 역모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 않아요?』

『그래.』

하고 이이첨은 그 말에 관심이 큰 듯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고 이편으로 몸을 돌린다.

『그런 소문이 있다면 그들이 증적을 없애기 전에 왜 금부로 잡아다가 문초하든지 상감께서 친국을 허시든지 않고 그냥 소문만이 떠돌게 허는지 모르겠어요.』

『소문은 소문이지 도청도설을 믿을 수 있는가. 만일에 친국을 하셨다가 아무 증적이 없다면 체모가 아니거든. 그렇지 않으냐.』

『왜 증적이 없어요.』

『무어?』

이이첨은 막연히 놀란 듯 효정의 낯을 눈을 홉뜨고 바라 보았다.

『증적, 무슨 증적이야. 아니 네가 증적이 있다니....... 의외의 소리를 듣겠구나. 무슨 증적이야.』

이첨은 성급히 이렇게 얼얼거리는 말로 재처 묻는다.

『아녜요. 이러이러한 증적이 있다는 게 아니라요. 세상에 큰일을 허시는 분이 그저 천연히 만들어져있는 증적만을 찾으시려고 허서요. 일을 꾸며야 합지오, 증적을 만들어야 합지요.』

이첨은 아무 말이 없이 눈을 똑바로 뜬 채 효정의 낯만을 한동안 노려보고 있더니 문득 손수 술상을 저리로 밀어 치우고 한 자리 다가앉으며

『증적을 만들다니, 너 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걸 보니 무슨 생각한 바 있는 게로구나. 말해봐라.』

『있지오, 있어서 말씀을 낸 것이에요.』

『그래.』

『그 소양강 무륜당 칠우라고 허는 사람들, 지금 잡혀와 있는 사람들 말씀예요. 그중에 한 사람 서양갑이란 자가 있어요.』

『음.』

『그는 저와 내외종간예요. 고모의 아들입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살인강도를 한다니 도무지 생각 못할 일이외다마는, 그건 어찌 되었던 그 사람을 무슨 짓을 허던지 하룻밤만 불러내시면 그 사람의 목숨을 살려준다는 조건으로 이번 살인강도는 기실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지시를 받아 영창대군을 받들고 역모를 단행하는 데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고변을 하게 하고 일곱 사람이 다 공초가 같게 하고 한편 범이란 위인에게도 그런 말을 들었다고 증언만 하게 허면, 김제남은 꼼짝 못하고 처벌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이이첨은 이야기를 들어가는 동안 한편 귀로 첩의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무슨 딴 생각을 하는 듯 싶었다.

꾀 있는 그는 첩의 이야기를 다 듣지 않아도 그 계획의 뿌리만 따면 방책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기실 이첨은 내심 그 계교의 참신하고 유력한 데에 놀라기도 하고 그 계교가 영락부절 들어맞을 것을 믿었다.

『그런데 대감. 다른 사람은 모르지마는 서양갑이만은 살려 주셔야 합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고 단지 그것들이 끝끝내 고변 내용을 한결같이 주장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일이지.』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아무렴, 세상에 거짓말처럼 어려운 게 없는 법이야. 한 마디 두 마디는 모르지마는 어떤 내용이 있는 사건을 전부 거짓말로 하는 데는 자칫하면 횡설수설하기가 쉬운 게야. 첫 문초에 공초했던 말을 그대로 두 번째 가서도 전후 차착이 없이 말허기가 극난하다는 말이야.』

이첨은 그 점에 대해서 깊은 고려를 하는 듯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이첨의 암약(暗躍)은 시작되었다. 연흥부원군 김제남만을 때려뉘면 눈의 가시가 없어지는 것이오, 반역의 뜻을 먹을 놈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비의 조처쯤야 중신들의 결의 하나로 될 것인즉 우선 김제남을 없애자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효정의 말대로 옥중에 있는 서양갑이란 위인을 먼저 뒤로 불러내서 공작을 시킬 작전을 꾸미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비밀리에 행해진 이틀 후에 이이첨은 작은 집 뒷방에다가 진진한 음식을 차려 놓고 서양갑을 데려 오기로 하였다.

그래서 먼저 이이첨의 소실 효정이가 그의 환심을 사 가지고 목숨을 살려준다는 조건 아래에 박응서 일파를 매수시키기로 하였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후에 이이첨은 잠깐 서양갑을 만나 보기로만 하였다.

이날 한낮이 훨씬 겨워서 서양갑은 늙은 옥사정의 인도로 출감해서 문밖에 나서자 이이첨의 집 별배 수인이 달려 들어서 잡담 제하고 보교에 쓸어 넣어 가지고 비호 같이 달려갔다.

천만 뜻밖에 출옥된 그 자신은 꿈과 같이 어리둥절하였다. 웬 영문인지 알 까닭이 없어서 보교를 타고 가면서도 보교의 앞 포렴을 열어젖히며,

『대관절 날 어디로 데려 가는 거요?』

하고 별배에게 묻기까지 하였다.

별배들은 저희끼리 눈짓하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따 새남터로 가는 거 아니니 안심하구려, 가기만 하면 다 알게 될 거요.』

물론 죽이러 가지 않는 것만은 처음부터 알고 있지마는 심상한 일이 아니란 것만은 상상하였다.

길이냐 흉이나 하는 고민을 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흉사가 아닐 것이란 상상은 떠올랐다. 흉사라 하면 제법 보교에 태우거나 언사를 공손히 할 리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이이첨의 소실의 집에 가서 효정을 만나게 되고야 그 순간 흉사가 아니란 상상에 확인을 찍었다.

뒷방으로 들어가서 좌정한 순간에 서양갑은 효정이 이이첨의 애첩이란 것이 회상되고 이 모든 조처가 이이첨의 지시니라 하는 것을 느끼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나.』

효정은 위안 삼아 이런 인사를 하고 뒤이어서 무륜당의 이야기를 꺼집어냈다.

『대관절 어째서 무륜당에 참가했더란 말인가』

하고 물었다. 서양갑은 효정보다 나이 훨씬 아래이었다.

『무륜당에 참가란 무슨 큰 생각이 있었겠소. 나 역시 서씨네의 서자이고 낙백 불우해서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던 중에 무륜당이 생긴 것을 알고 굴러 들어간 것이지오.』

『박응서는 박대신 박순의 서자라면서.』

『그렇지.』

『그럼 글도 잘 하겠구만.』

『잘 하구 말구.』

『성품이 어때?』

『성품이랄 건 없지마는 몹시 괄하긴 허나 좋게 본다면 호쾌한 사나이지, 동지를 사랑하고 적은 일에 구애치 않고 물욕이 적고.』

『물욕이 적다니 물욕이 적으면야 이번 새재 사건을 꾸몄을 리 있나.』

『천만에 그렇게 해서 들어온 돈이란 한푼인들 자기 주머니에 꾸려 넣지 않았지, 모두 무륜당 동지들의 살아가는 비용으로 나가지 않소.』

서양갑은 극구 박응서 이하 여러 동지를 두둔하였다.

『하여튼 그동안 얼마나 굶주렸었소. 음식이나 자시고 나서 이야길 하지.』

하고 차려놓은 음식을 들여왔다.

술은 가져오지 않았다. 서양갑은 원체 술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술이 없으나 있으나 부족할 건 없지마는 술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중대한 의논을 하는 마당에 술이 취해서는 못쓴다는 이유이었다.

얼마간 음식을 대접한 후에 상을 물리고 과일 상이 들어온 후에 효정은 차차 본 이야기로 들어갔다.

『하여간 살아야 하지 않겠어?』

『무슨 도리가 있소?』

하고 서양갑은 힘들이지 않고 이편 품안으로 기어 들었다.

그것이 당연하였다. 무륜당에서의 동지간의 서약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무슨 큰 이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우한 기분에 가담하여 우선 편하게 먹고 사는 것에 목표를 둔 그들인 까닭에 살아 나갈 수 있다면 두말없이 매달릴 것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다.

『도리가 있으니까 청한 게 아뉴 생각해보우. 당신네들을 살릴만한 권도가 없으면 어떻게 동생님을 이렇게 데려 낼 수 있으리까.』

여기서 효정은, 서양갑이 다시 옥중에 들어가서 박응서와 면밀히 의논하여, 새재에서 은장을 살해하고 물건을 빼앗은 것은 기실은 연흥부원군 김제남 대감의 지시를 받아 역적모의의 군자금으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변하고, 자기들은 모두가 서출로서 불우한 처지에 있으므로 김대감의 역적 도모가 성공되면 우리들을 다 상당한 벼슬로 등용해 주마는 언약을 받은 것이라고 고변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일이 설혹 잘못되어 치죄를 여전히 당한다 하더라도 그냥 아무 목표도 없이 재물에만 욕심이 나서 살인강도질 했다는 것보다 얼마나 체모가 좋은 것이냐.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만 고변하여 무륜당 일파의 인물들이 모두가 입을 모아 한결같이 그 말을 내세우기만 하면 중한 처벌은 김제남 자신이 당할 것이고 그대들은 귀양쯤으로 모면되거나 대개는 가벼운 치죄로서 석방될 것이라고 꼬이었다. 지혜가 적은 서양갑은 두말없이 그것을 응락하여 옥중으로 돌아가서 박응서 일파를 설복할 것과 기실은 자기네들이 그 돈을 가지고 비밀히 반역 모의를 하기로 말이 되어 있었다고 고백하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효정은 지금 상감이 서출이라는 것, 김제남은 적출 왕자를 받들어 가지고 역적질을 하려는 조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머리가 유치 단순한 서양갑으로 하여금 김제남에게 대하여 악감을 품게끔 하여 놓았다.


서양갑이 다시 옥중으로 돌아간지 만 하루가 지나서 과연 박응서가 대표가 되어서 금부도사를 통하여 고변을 하였다.

이면의 비밀을 모르는 당국자와 일반은 청천벽력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중대한 고변 사건은 불이시각하고 광해주에게 주품되었고 광해주는 곧 궁중에 좌기를 벌리고 박응서 일파를 모조리 잡아 들이어 친국을 하였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새재의 살인강도는 김제남 대감의 지시에 응한 것이라고 공초하였다.

『그러면 왜 잡혀 들어온 즉시에 고변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문초에 박응서는 그럴듯한 공초를 하였다.

처음에는 김제남 부원군과의 언약을 지킬 생각으로 그 고변을 하지 않았지마는 차차 생각해 보니 자기네는 필경 살인강도의 죄목으로 개죽음을 하게 되고 주동한 범인은 무사태평하다는 것이 분한 생각이 났던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뿐이냐』

『아니올시다 또 있읍니다』

『무엇이냐.』

『부원군 김제남 대감이 추대하는 임금이란 적출 왕자이신 영창대군이옵니다.』

『그래!』

『저희들은 모두가 서출로서 불우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철천지한으로 여기는 터이옵니다.』

『그래!』

『이제 부원군이 적출 왕자를 뫼시려고 한다는 데에 불쾌한 생각이 났읍니다.』

광해주는 그들의 공초에 그럴듯한 이유와 조리가 분명한 것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친국은 단 한 번으로 그치고 말았다.

『저것들은 다시 하옥해 두고, 후일 조처를 기다리게 하고, 김제남을 즉시 체포하라!』

하는 엄령을 내렸다.

이이첨 등의 연극이 예정대로 진척된 것이다.


정부 당국에서는 친국을 단 일차에 그치게 주선을 하고 그 고변 내용이 세상에 짝 퍼지기 전에 김제남을 체포할 계획을 세웠다.

만일 소문이 쫙 퍼지면 서인들 일파가 또 무슨 허위 선전을 하여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 쉽고 또 점잖은 김제남이 그런 소문이 퍼져서 역적으로 몰린 것을 알았다고 해서 피신할 리는 없지마는 차제에 김제남의 가족 전부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씨를 없앨 생각인데, 만일에 피신하는 자가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박응서 일파를 옥중으로 다시 돌려보내고는 곧 김제남의 체포령을 내린 것이었다.

숨 돌릴 사이도 주지 않았다.

이리하여 금부 나장 나졸 수십 명이 비호같이 김제남 저택을 습격하였다.

한편 청주(淸州) 수령으로 임소에 내려가 있는 김제남의 장남에게도 나장 나졸이 어명을 받들고 당일로 길을 떠났다.

이날 김부원군은 큰 사랑에서 마침 내빈도 없고 해서 시서를 펴들고 읽고 있는 중에 나장 나졸들이 대문에서 못 들어간다고 버티는 별배들의 뺨을 갈기며

『어명이다. 이 자식아.』

하고 먼저 큰 사랑으로 들여 닥처서

『어명요.』

하고 흥사 오라로 방바닥을 쳤다.

그리고 나머지 십여 인은 안으로 침입하여 가족을 결박하기 시작했다.


김부원군 저택하고 바로 담장 하나 격하고 있는 것이 달성위궁(達城尉宮) 저택이다.

달성위 서경주(徐景柱)는 돌아간 선조대왕의 따님 정신옹주(貞愼翁主)의 부마이다.

이날 달성위 서경주는 몸이 괴로워서 사랑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궁마마 정신옹주는 안방에서 심심파적으로 소대성전이라는 이야기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들려 오는 것이 이웃 부원군 집에서 우당퉁탕하고 문짝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곡성이 낭자히 들러 왔다.

수일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떠돌고 있는 것을 들은 옹주는

『허어 필경은 김부원군도 또 북인 놈들의 손에 죽는구나.』

하는 탄식을 남몰래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들려 오는 것이 심상치 않은 소동이다.

『어허 일을 당하는구나. 가족들이 무슨 죄라고 씨를 말리려고 하는고.』

이렇게 중얼거릴 즈음에 별안간 앞 미다지를 열어젖히며

『궁마마님 이거 하나 살려 줍쇼.』

하며 강보에 쌓인 영아 하나를 불쑥 드리 밀고는 금시 사라져 버렸다.

어마지두에 받기는 했지마는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역적으로 몰리는 집안의 손을 감추어 준다는 죄목이다.

그 죄가 결코 경한 것이 아니다. 그야 자기의 처지가 남과 달라서 왕녀라는 존귀한 지위에 있다손 치더라도 남편 되는 서경주에게 말썽이 돌아간다면 그 아니 딱하냐.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위 손에 들어온 남의 집 손을 이을 어린 아들을 차마 하니 예 있오 하고 그 지옥에서 온 사자 같은 포리들에게 내줄 수는 없다.

돌차간에 옹주는 결심하였다.

그러자 다음 순간에는 벌써 금부 나졸들이 김제남 부원군의 손자를 이웃 달성위궁에 갖다가 숨겼으리라는 혐의 아래에 달성위궁으로 들어닥쳤다.

중문간에서 궁 별배들과 나들이 다투고 있었다.

『이 사람들아 금부거니 뭣이거니 예가 어딘 알아. 궁이야 궁. 내하에 마구 들어가는 법이 있느냔 말야 이 위인들아.』

이것은 궁 별배들의 주장이오, 나졸들은 단지 어명이란 것을 내 세우고 들어가 수색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는 틈에 정신옹주는 어린 애를 치마 밑에 집어넣고 치마를 펼치고 앉았다.


금부 나졸들은 어거지를 쓰고 궁 내정으로 돌입은 했지마는 저희들에게도 서리는 바가 있었다.

다른 집과 달라서 현재 임금의 누이뻘 되는 왕녀의 궁이라 그 이상 더 집안을 샅샅이 뒤져볼 용기는 없었다.

더구나 저희들 생각에는 그 어린아이는 반드시 옹주 자신이 몸에 품고 있는 것이라고 직각하였다.

옹주의 바로 몸 뒤에 숨겨 놓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치마 밑에 감추어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마는 언감히

『궁마마님 몸을 뒤집시다.』

하는 소리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 요구를 하였다가 어린애가 나오면 모르거니와 만일에 어린애가 나오지 않는 날에는 당장에 목이 달아나는 일이다.

목숨을 걸고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자들은 심술궂은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무심한 어린애라 시간이 가면 젖을 달라고 보채 울 것이다.

울기만 하면 제물에 장물이 나타나는 셈으로 꼼짝할 수 없이 그 어린애를 내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마당 저편에 딱 버티고 서서 저희끼리 귓속을 해 가며 어린애가 보채 울기를 고대하였다.

그린 눈치를 본 옹주는 내심 크게 초조하였다.

『하느님 굽어 살피셔서 김부원군의 손을 이어 주시려거던 이 어린애로 하여금 잠이 깨지 않도록 해 주소서.』

하고 속으로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대방 미닫이를 활짝 열어젖혀 놓은 옹주는 내심의 초조를 감추고 태연자약하여 반비아치들에게 지휘를 하였다.

『어서 저녁 반비를 해라.』

『진지는 다 되어 갑니다.』

『큰 사랑에 나가는 진지 상에는 대합회를 잊지 말라. 대감께서 특히 즐겨 하시는 게다.』

『대합은 슬쩍 데쳐 올리랍시오?』

『데치면 질기다 생으로 대장을 죄다 따 버리고 올리게 해라.』

『네예.』

때는 이미 저녁 머리가 되어 간다. 유일의 희망은 해가 떨어지면 하는 것이다. 시간으로 해서 두어 시간이나 되었다.

서서 있는 나졸들의 얼굴에도 염증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자 해는 궁리 높은 용마름을 훨씬 넘어서 얇은 저녁 남은 볕이 비스듬이 지붕 일부에 비쳐 있었다.

마당에는 완연히 저녁 그늘이 짙어갔다.

옹주는 비상수단을 쓸 결심을 하였다.

댓돌 위를 왔다 갔다 하는 부리는 것들을 꾸짖었다.

『이것들아 금부의 나졸들이 와 있다구 정신이 다 나갔단 말이냐. 안 중문을 잠글 때가 돼 가지 않느냐, 나졸들도 아무리 체모를 모를지라도 분수가 있을 게 아니냐.』

하고 빗대어 놓고 호령을 하였다.

나졸들은 동요하였다. 그러한 간접으로의 호령을 듣고도 서 있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럴 즈음에 나장 하나이 중문으로 들어서며

『야들아 나오너라.』

하는 영을 내렸다. 금부에 돌아가서 보고할 시각이 너무나 늦었다.

나졸들은 비로소 소생한 듯이 정신이 나서 우 하니 밖으로 나가는데 그중에 제법 인사를 차린다는 위인이 여종을 보고—

『죄송합니다.』

하는 인사를 남기고 나갔다.


김제남은 자기의 운명을 체관하였다. 친국을 당하는 마당에서도 말이 없었다.

『사실 모역을 했소.』

하는 자백 공초를 받기 전에는 결심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김제남은

『내가 모역을 했다고 인정한다면 모역한 양으로 써 놓구려.』

하는 공초다.

보통 경우에는 그러한 모호한 공초가 결심의 재료가 될 수는 없지마는 왕은 형식으로 단 한 차례의 친국을 하고 다음은 법관에게 맡기고 말았다.

법관 위관들이 다 이이첨의 비밀 지시를 받는 무리들인 이상 아무 어려울 것도 없고 꺼리는 바도 없다.

이삼 차의 문초로서

『연흥부원군 김제남은 박응서 일파를 충동이어 비용을 받치게 하며 반역을 도모하였다.』

하는 반포를 하고 역률로서 참에 처하고 그 가족을 전부 수색하여 죽였던 것이다.

그러나 김제남의 손자 천석(天錫)이만은 강보에 싸여 정신옹주의 두호로 이 세상에 살아 있게 되었던 것이다.

기적이었다. 그날만 해도 정신옹주가 나졸들이 나가버리고 중문을 잠근 후에 치마 밑에서 어린애를 꺼내어 본즉 쌔근쌔근 얕은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어찌나 신통하던지 정신옹주는 어린애의 볼에다가 입을 마추며

『하늘이 아시는 애기.』

하고 감격의 눈물까지 지었다.

달성위 서경주도 안에 들어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였다.

『하늘이 무심치 않군.』

하고 어린애를 안아 보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경로로 북인들은 광해주를 농락하여 서인 두호파의 거두를 용이하게 거꾸러뜨리고 께림직한 적출 왕자를 말살함으로써 자기네의 정권을 길이 장악코자 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인의 행동 살육 탄압이 과연 오래 갈 것이냐.


안에서 이러한 동족상쟁과 중상모해가 날로 극심해가는 한편 두 개의 커다란 움직임이 국내 국외에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국내에서는 부인들의 횡포무쌍한 탄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인들의 지하운동은 맹렬하였다.

고무공과 같이 누르면 누를수록 더 뛰어올랐다. 김류・이귀・김자점・이괄 등의 반정운동이다. 그러나 북인 일파는 자기네들의 호강에 취해서 예민한 촉각을 놀릴 줄 몰랐다.

한편 이때의 국제 사정은 복잡하고도 미묘하였다.

명나라는 명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이 나라를 세운 이래 수백 년 그 문화의 무르녹음과 병력의 강성함이 미상불 대중원의 위력을 자랑할 만하였지마는 한편으로 보면 노쇠기(老衰期)에 들어가는 조짐이 농후하기도 하였다.

정치는 문약(文弱)에 흐르고 황실은 태평연월의 꿈에 잠겨 있었다.

그러므로 외방이 명나라를 두려워하였음은 기실 전기(前期) 명나라의 무적을 두려워하던 인식의 연장에 불과하였다.

이때 명나라의 만주족(女眞)에 대한 정책은 이르는 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정책을 써왔다.

이런 어수선한 판국이 아직 이십 미만의 이완(李院)의 머리에 비상한 충격을 주었다.

이때 이완(李浣)은 무과 급제하여 이름도 없는 미관말직으로 울울발발 기백을 펄 곳이 없었다.

지금 북인 일파의 천운이 미진하여 정권 잡고 있지마는 덕으로써 정치를 행하지 못하고 오직 주먹의 힘만으로 권세를 지탱해 가려 하는 것은 그 생명이 오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백성의 마음이 돌아선 정권은 필경 무너지고야 말 것이며, 반드시 어떤 반동의 세력이 일어날 것이고 그 반동의 세력은 부패한 중의 숙청은 물론 북인의 세력은 여지없이 소탕될 것이라고 믿어졌다.

인심이 천심이란 말이 또한 진리라고 여겨지었다.

그리하여 이완은 서울 남촌 주자동 근처에 사관을 잡고 매일 병서를 공부하고 낮이면 활터로 돌아다니며 활쏘기로 일과를 잡았다.

아직 자기 따위가 나설 때가 아니라고 은익하고 있지마는 이런 판국을 바로 잡지 않고는 백성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푸뜩푸뜩 들리는 소문이 서인 일파의 반정모의다.

과연 광해군 十五년 삼월에 능양군을 추대한 서인 일파 김류 이귀 이괄 원두표 등이 반정에 성공해서 광해는 강화도로 귀양 가 버리고 능양군이 왕위에 올랐다.

이이첨 정인홍 유분 등등의 북인 세력가들은 그 모두가 처형을 당하였다.

이완은 이 어수선한 판국을 눈으로 보고 훈련 대장 이홍립 장군이 반정군에 내통하여 광해군으로 하여금 반항다운 반항을 해 보지도 못하고 허무맹랑한 참패를 당해 버리게 한 사실에 크게 분개하였다.

광해왕의 실정(失政)과 비행은 반정을 당해야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해조에 벼슬하여 국록을 먹고 있으며 더구나 훈련 대장이란 중직에 있는 무인으로서 적에게 내통이란 그 무슨 불충한 행위냐.

허기는, 큰 눈을 뜨고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 볼 때에 한 개인 광해군에게 충성을 다함보다 차라리 반정군을 도웁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소이라고 할 것이다.

만일에 그러한 이념을 가졌다 하면 모름지기 벼슬을 내놓고 한 개 무관의 사람이 돼서 반정군을 도울 것이어든 그 어이 현재 광해조의 녹을 먹으면서 몰래 내통하는 비굴한 행동을 할가 보냐.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이완은 그들 비굴한 벼슬아치들을 미워하는 동시에 도의의 관념이 땅에 떨어진 것을 한심하게 여겼다.

반정이 이루어진지 약 한 달 뒤인 사월 팔일—

불교를 믿는 사람이거나 아니거나 사월 팔일은 명절로 여기었다.

거리의 가게 중에는 문을 닫쳐버린 집도 건성드믄 하였다. 울굿불긋한 색옷을 입은 아이들이 떼를 지어 거리에서 놀고 있고 엿장사 등롱 장사들은 한목을 본다.

긴 장대에다가 사등롱 족히등롱 사각등 육모등 수부귀다남자의 글짝을 오리어 붙이고 각색 궤불을 달아맨 오색이 영롱한 등롱은 볼만도 한 것이었다.

이완은 이날 활을 전대에 넣어 한 손에 들고 전통을 어깨에 메고 소풍 겸 거리로 나섰다.

활터에도 아직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듯해서 이완은 그저 지향 없이 길을 걸었다.

운종가 넓은 길을 원각사 자리 앞으로 내려와서 무심코 수표교 다리로 통하는 이 궁안 골목으로 들어서서 반쯤이나 이르렀을 때 좁은 골목을 남녀노유 수십명 한 떼가 와—하고 이리로 달음질하여 몰려온다.

이완은 길가 집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하며

『웬 야단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본즉

『술주정군이 사람을 죽였소.』

하고 지나가 버렸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 이완은 여러 사람과 반대로 그 술주정군이란 것을 찾아서 사람을 헤치며 달음질하여 갔다.

과연 술주정군 하나이 한 손에 식칼을 들고 날뛰고 있고 그것을 제지하려는 사람이 두셋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 감히 달려들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주정군을 피하여 늙은 부인을 업은 장년 하나이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이리로 걸어오는데 주정군은 바로 그 사람을 쫓아오는 것이었다.

조금만 늦으면 그 주정군 놈은 제지하는 사람을 뿌리치고 그 늙은 부인에게로 덤벼들 형세에 있었다.

이 사실이 사람을 죽였소 하는 말을 내게 한 장본이었다.

이완은 어느 편이 잘못인가를 알아보기보다 우선 식칼을 들고 사람을 해치려는 취한을 제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달음에 취한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놈아 넌 웬 놈이냐?』

하고 취한은 앞을 막고 달려드는 이완을 보고 호통쳤다.

이 새로운 사태에 우 하니 도망질하던 사람들도 다시 모여든다.

취한의 앞을 막은 이완의 한 팔이 공중에 휙 날은 듯하더니 식칼을 들은 취한의 팔이 이완의 손에 잡히고 이완의 또 한 손이 그 식칼을 마치 어린애 손에 쥐여진 장난감을 빼앗듯 쏙 빼앗어서 행길 저편에 내어 던지고 취한의 몸을 머리 위로 번쩍 떠받쳐 올렸다.

『아—』

하고 구경군들은 부지중 환성을 내질렀다.

이완은 머리 위에서 버둥거리는 취한의 몸을 떠받친 채 수표교 다리 천변으로 달음질해 가서 개천에다가 꾸러 박으며,

『고약한 놈 똥물 좀 켜라.』

하였다.

이 소동의 발단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었다.

노부인과 중년의 사이는 모자간인데 이날 노모가 거리의 잡답을 구경하겠다고 해서 모자가 운종가로 구리개로 휘돌아 다니다가 수표교 다리 모퉁이 장국밥집에 들어가 모자가 요기를 하고 있었다.

이 사내는 광해조 십이 년 되는 해까지 수문장 무직에 있던 중 나라의 정세는 점점 글러 가고 늙은 모친의 숙환이 심상치 않아서 무직을 버리고 친환 간호에 전력을 썼다.

워낙 넉넉지 못한 가세에 수년 시탕(侍湯)에 집안 형편은 말이 못되어서 이제는 의관을 버티고 다니지도 못할 만큼 영락해 버리었던 것이다.

그러나 효성이 지극한 그는 집에서 갓모(비 올 때 갓에 씌우는 우비)를 만드는 내직을 하여 겨우 연명을 해 가는 터이었다.

그는 장사의 한 사람으로 능히 대여섯 사람을 단번에 해낼 만한 힘이 있지마는 모친은 늘 아들에게,

『너 행여 힘을 믿고 남에게 덤빌려 말어라 힘이란 위에 또 위가 있느니라.』

하는 교훈을 하였고, 힘을 자랑하다가는 오평생(誤平生)한다고 애를 쓰다시피 하였다.

오늘도 장국밥집에서 요기를 하고 나오다가 술이 취하여 건들거리고 앉아 있는 취한의 곁을 지나다가 모친의 치마 자락이 그 위인의 갓을 스쳐서 땅에 떨어뜨리었다. 그것이 시단이 돼서 필경 귀에 담지 못할 욕설에 취한의 뺨 한번을 쳤더니 심술궂은 취한이 술청 식칼을 들고 대는 것이었다.

늙은 모친은,

『얘 어서 도망해버리자. 행여 사람 치지 마라.』

하는 말에 그는 그 취한을 능히 처 뉘울 만한 힘이 있건만도 하는 수 없이 노모를 업고 도망하던 길이었다.

그 사람은 박천수(朴千壽)란 사람이었다.


이완이란 이름은 장안 각처 활터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이름이지마는 그가 얼굴을 알았던지 수표교 사건 이래 장사의 이름이 장안에 퍼졌다.

소문은 한 사람의 입을 거칠 때마다 꼬리에 꼬리가 붙어서,

『이완이란 젊은 장사가 수표교에서 사람 여섯을 단번에 개천에 꾸러 박았다.』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한 사람은 정말이오, 다섯은 덧붙은 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이틀 후 이완은 박천수와 동대문 안 두다리목 남천면 골목 안에 있는 내외술집 건넌방에서 술을 먹었다.

그러나 이완으로 말하면 술 먹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박천수도 지금 시국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하나인 것을 짐작할 수 있고 장사인 것을 알기 때문에 술을 마시며 그의 지기를 떠보자는 심산이다. 그리하여 동지 하나를 얻어두자는 생각이다.

이완은 용돈에 군색한 가세도 아닐 뿐더러 박천수가 가세가 군색한 것을 짐작하는 터라 돈을 넉넉히 가지고 나와서 어회니 갈비니 육회니 하는 육부치를 많이 장만케 하여 실컷 대접을 하였다.

박천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근래에 얻어먹지 못한 육부치에 배 창자가 놀라는걸.』

하고 껄껄대고 웃었다.

술도 이완보다 훨씬 잘 하였다. 먹으면 먹는 대로 유쾌히 담소할 뿐 조금도 취태가 없고 주사가 없었다.

술이 대여섯 순배— 순배라 할 것 없이 주고 받고의 단둘의 술이지마는—

돌아간 후에 이야기를 차차 시국으로 돌려서 그의 지기를 떠보았다.

『지금 판국은 아직 나설 때가 못되오. 나 같은 놈은 가벌도 미천하고 뒤를 보아줄 사람도 없어서 나서 볼려야 나설 수 없는 위인이지마는 당신 같은 사람은 언제든지 나설 수 있는 계제라 하더라도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소 전왕이 실정을 해서 쫓겨나긴 했지마는 말하고 보면 이폭(以暴)으로 대폭(代暴)야. 얼른 말하면 쫓아낸 놈이나 쫓긴 놈이나 일반이란 말요. 부인 등쌀에 서인이 못 살게 되니까 이번엔 서인이 이를 갈고 나서서 북인을 쳐 몰아낸 것이지 뭐요.』

『옳은 말요.』

『그러고 보니 장차 서인들이 집권을 하고 얼마나 나라 일을 잘하는가 좀 두고 보아야 한 일이 아니냔 말이오.』

박의 식견은 과연 줏대가 있었다.

『사색이 갈리기 전 같으면 모르거니와 기위 갈려논 이상 사람 처놓고 당파심 없는 위인이 있더란 말요.』

『당파심은 없을 수 없다 하더라도 나라 일에 대해서만은 당파심을 없애고 일치단결해야 합니다. 왜난 때의 일을 못 보오.』

『왜란 때 무엇 말요.』

『왜군이 처 오기 전해에 통신사로 황첨지 윤길이와 사정 김성일이가 왜국에 가서 풍신수길이를 면하고 오지 않았읍디까?』

『돌아와서 선조대왕께 아뢰기를 황지는 왜놈이 꼭 쳐들어 올 거라고 하고 김성일이는 천만부당한 소리라고 황첨지의 말을 반대하지 않았소. 그랬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아무 방비도 힘쓰지 않았거던. 세상에 그런 죽일 놈이 어디 있단 말요. 실상은 김성일이도 왜군이 쳐들어올 줄 믿으면서도 황윤길이가 서인이기 때문에 편당심으로 그의 말을 반대해 버린 것이거던.』

박천수는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며 비분강개하였다.

『세상에 이런 썩은 창자를 가진 놈들이 조정에 있는 한 나라는 망하고야 말지 흥해 볼 수는 없을 게 아뇨.』

『자아 한 잔.』

이완은 그의 흥을 더 돋아주려는 듯이 잔에 술을 가득 부어 권하였다.

그는 사양치 않고 그 술을 한숨에 말리고 큰 잔에 술을 부어 이완에게 권하며,

『지금도 좋지 못한 조짐이 눈에 보이는걸.』

『뭐요.』

『월전에 이번 반정공신들의 논공행상이 있지 않았어.』

『그랬지.』

『그 행상이 올바르지 못하단 말여.』

『왜?』

『이괄이 병사를 그만큼 이용하고 또 그의 힘으로 쉽게 성공을 했으니 의당 훈일등에 올릴 것이지. 김류란 놈 좁은 심사에 제 잘못은 실겅 위에 올려두고 이괄을 이등이란 무슨 조처야.』

이완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두고 보지 반드시 이괄의 손에서 병변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지.』

굳게 믿는 바 있는 듯이 이렇게 단언하였다.


『세상에 팔자 억센 분이 상감이지.』

『그 웬 소리냐, 북인놈들한테 냉대 홀대를 받고 절치부심하여 분풀이를 허구 싶어 허던 능양이 상감이 되었으니 그런 통쾌한 일이 없지.』

『그건 그렇다 해두고. 보게 머리 아픈 일이 하나둘이 아닐 게야. 첫째로는 이괄이가 반드시 무슨 큰 변을 일으키고야 말 것일세. 김 류란 사람이 도대체 심통 머리 고약한 위인이지. 이괄이를 이등훈이란 말이 되지 않아.

더구나 그 아들두 반정지거에 참가를 했건마는 훈을 주기 커녕 초사 한 자리 아니 주었으니.』

『병변을 일으킬가.』

『꼭 일으킬 것이지.』

『그럼 또 순천 혁명이란 소리가 나지 않을가.』

『그건 모르지. 하여간 세상은 시끄러울 것이니 상감의 팔자가 드세다고 허는 거야.』

『그러면 우리는 어이 해야 옳은가?』

이완은 가득히 부어 놓은 술을 눈살 하나 찡그리지 않고 한숨에 들여 마시고는 이렇게 천수의 의견을 물었다.

『나갈 길이 있더라도 나갈 때가 아니지. 아직 우리는 나이로 보더라도 앞길이 양양헌 터이니까 나갈 때에 나가야지 잘못 나갔다가는 갈팡질팡 하기가 첩경이야』

아닌 게 아니라 판국이 뒤숭숭한 이 때에 나가 보았자 미관말직으로서는 무슨 일 하나 해볼 수 없을 것이다.

잘못하면 앞길을 흐리어 버리고야 말 것이다.

『자네 말이 옳긴 허네.』

『그보다두 상감이 또 하나 큰일을 당하고야 말 일이 있어.』

『그건 뭐야?』

여기서 박천수는 압록강 건너 만주 땅에 새로 일어난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의 세력—대청(大淸)의 세력이 명나라를 쳐부수고야 말게 될 것을 설명하고 전조(前朝)에 명나라로 구원병으로 보낸 강홍립과 김응하의 장수들이 실상은 광해주의 밀탁을 받아 가지고 겉으로는 명나라를 도우러 간 체하고 기실은 청군에게 항복을 하였기 때문에 우선은 별일이 없지마는 필경은 청태조가 우리 조선을 쳐서 뒷문의 호랑이를 없애 버리려고 할 것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틀림없는 관찰 같았다.

『그러면 큰 국난이 아닌가?』

『물론이지, 그러니까 우리네가 나간다면 이런 때에 나서야 헐 것이고 그동안에는 서북 양 도를 우리가 몸소 편답하여 그런 국난이 온 때에 용병할 지식이나 얻어두는 것이 옳을 것일세.』

여기서 둘의 의견은 합치되어서 황해도부터 편답해 보기로 하였다.


초가을에 그들은 황해도 봉산군에 이르러서 유명한 동선령(洞仙嶺) 고개 밑에서 주막을 잡아 들었다.

그들이 주막에 들기는 드문 일이었다.

그들은 대개 과객질을 하였다. 어느 때는 지관(地官)이라고 자칭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의원 노릇도 하며 방문깨나 써주고 어느 때는 사주깨나 보아주어 혼가에 들러서는 택일 궁합, 상가에 들러서는 축문깨나 써주고 노수 쓰지 않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군사 상으로 요지 될 만한 곳에 이르면 지도도 그리어 넣고 하였다.

동선령 고개에는 일수 도적이 나타나서 행인의 짐을 빼앗아 가고 거역하는 위인이 있으면 사람도 죽이기가 일수였기 때문에 고개 밑까지 와서는 해가 아직 남아 있어도 주막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찌기 여러 행객들이 떼를 지어 가지고 영을 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어 집밖에 아니 되는 주막에는 언제나 사람이 들어차곤 하였다.

그런데 이완과 천수가 이 주막에 들렀을 때도 아직 날이 저물기에는 상당한 시각이 있을 만큼 이른 때였다.

둘이는 영을 넘어가기가 무서워서 그 주막에 들린 것이 아니고 시장해서 밥을 지어먹고 떠날 생각으로 들렀던 것이다.

복노방에는 벌써 행객이 꼭 차서 있고 건너방에도 손이 들어서 둘이는 아직 추운 일기도 아닌지라 안마에다가 돗자리를 내다 깔고 앉아서 밥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밥이 되는 동안 그들은 자리 위에 누워 있었다. 그때였다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건넌방에 사처를 잡은 행객의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자니, 그들은 평양으로 가는 큰 상고로 이번에도 상당히 값진 물건을 구해 가지고 가는 터인데 시세 관계로 해서 실상은 꼭 이날 밤. 전에 재를 넘어야만 노정이 들어맞건마는 무서워서 못 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이완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건넌방 손께 물어볼 말씀이 있소.』

『네 무슨 말씀요.』

『지금 당신네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이 고개를 넘었으면 좋은 모양이 아니요?』

『그렇지요. 그랬으면 좋겠지마는 도적이 무서워서 어디 맘을 낼 수 있소.』

『우리가 만일에 도적이 나오면 쳐 없앨 테니 함께 넘어 가시랴오.』

『좋은 말씀요만은 그렇게 할 수 있겠소?』

하고 의심을 하였다.

그도 당연한 일이다. 자처하고 나선다고 전수 믿을 수는 없다.

그런 장담을 믿고 동행하다가 만일에 실패를 하면 그때 가서 뉘우친들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적놈들쯤이야 여반장이라고 생각하우마는 당신네가 우리의 힘을 알기 전엔 믿지 못하는 것도 괴이치 않소.』

『그런데 무사히 이 고개를 넘겨드리면 우리에게 무슨 보답을 허려우.』

『돈을 드리지.』

『얼마나 주랴우.』

그 일행 세 사람은 저희끼리 잠간 수군수군 하더니만 하나가,

『삼십 냥 내노리다.』

하였다. 삼십 냥이면 사실 큰돈이다. 더 달라고 할 염의가 없다.

『그러면 삼십 냥으로 정하고 우리의 힘을 보여 드리어야 하지 않나.』

하고 이완은 천수를 보고

『뭘 해 보여야 옳아.』

하고 의논하였다.

『글쎄.』

하였다.

하고 천수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더니,

『좋은 게 있군.』

하고 마당으로 내려가더니 장독대 앞에 붙박이로 놓여 있는 큼직한 돌절구를 가리키며

『이걸 써 보지.』

하였다. 그 돌절구는 여간 크지가 않았다. 적어도 사람 대여섯이 목도질을 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무게가 있어서 붙박이로 놓아 둔 것이다.

이 광경을 부엌 앞에서 듣고 보고 하던 주인 노파가,

『그걸 무슨 수로 움직이실라우, 거기 갖다가 놓을 때에도 목도군이 여섯이 붙어서도 안 돼서 밑에다가 굵은 둥근 장목을 대여섯 개 버티어 넣고 사람 여섯이서 간신히 그 위를 굴려 들여온 것이랍니다.』

천수보다도 이완 편이 힘이 더 있으므로 이완이가 마당으로 내려서며,

『내가 들지.』

하니까 박천수가 자신이 있는 듯

『앉아 있게.』

하고는 그 절구에다 손을 대서 두어 번 이리저리 굴리더니 땅에다가 가로 뉘어 놓았다.

그런 짓도 여느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할 짓이었다.

가로 뉘운 절구의 가는 허리에 두 손을 대더니 끙하고 힘주는 소리와 함께 그 돌절구를 안았다. 안아서 다시 힘을 주워 머리 위로 쳐들어 올렸다.

『어마—.』

하고 주인 노파는 눈을 흡뜨고 건넌방 손들도

『어허 참 천하 장사로세.』

하고 혀를 내밀고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박천수는 조용히 그 절구를 다시 땅 위에 놓았다.

이번에는 이완이 마당으로 내려가서 뉘어 놓은 돌절구 허리에 손을 대더니 번쩍 들어서 머리 위로 쳐들어 받쳤다가 그것을 가슴 높이쯤 내렸다 다시 쳐들어 올리기를 대번에 다섯 번을 하였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는지 절구를 든 채 노파를 보고

『어디다가 놓아 주리까.』

하였다. 노파는,

『이리 갖다가 놓아주시오.』

하였다.

하며 중문간 옆 헛간을 가르키었다. 이완은 돌절구를 들고 가서 적당한 곳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천하장사들이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넌방 상고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처음 보는 천하장사님들이구려, 그런데 무슨 연장을 가지고 가야 허지 않겠읍니까.』

『우리들은 각기 조그만 환도는 가지고 있소마는 큰 낫을 두어 개 구해 오슈.』

하였다. 이리하여 상고들은 주인에게 부탁해서 큰 낫을 두 개 넉넉한 값을 주고 구해오도록 하고 곧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복노방에 묵어 있는 행객 중에서도 함께 간다고 나서는 자가 있는 것을

『고개를 넘는데는 열량씩 돈이 들우.』

하며 중지케 하였다.

사람이 많으면 도리어 손발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일행 다섯이 뒤를 서고 상고들의 짐을 지고 가는 인부 셋이 앞을 섰다.

과연 동설령 고개 위에는 도적들의 부하가 망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행인들의 괴나리봇짐이나 부담짝도 노리는데 인부에 짊어 지은 큰 짐짝 셋은 그들의 입맛 당기는 목표일 것이었다. 일행이 동설령 고개 위에 이르렀을 때는 땅거미 질 무렵이다.

가장 도적 떼가 행악 부리기 좋은 때이다.

이완과 박천수의 두 사람은 큰 낫을 긴 장대 끝에 단단히 잡아맨 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짐군 바로 등 뒤에 대서 가는 것이었다.

도적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치송이 무성한 고개 비탈 위에 앉아 있는 망보는 도적이 손을 높이 들어 군호를 하니 도적 떼 육칠 명이 긴 환도를 손에 들고 일행 앞뒤를 막았다.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도망도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놈들 게 섰거라.』

도적 괴수가 이렇게 호통을 쳤다.

『자네들은 내 뒤로 물러 서.』

하여 짐군을 뒤로 보내고 이완과 박천수가 앞으로 썩 나선다.

『우리는 관가의 부탁으로 은 덩어리 삼천 냥 어치를 영거하고 가는 길인데 너희들 아가리에 넣기는 아깝다.』

하고 호령을 했다.

『순순히 놓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목이 떨어진다.』

그들은 은 덩어리 삼천 냥이란 소리에 구미가 치밀어서 저희끼리 눈으로 군호를 해 가며 앞으로 대든다.

거리가 어지간히 가까워졌을 때 이완과 박천수는 어깨에 메었던 장대를 한 번 공중에 휘두르더니

『이놈들.』

하는 호령과 함께 맨 앞에 서서 대들어 오는 놈의 목을 걸어서 후리어 갈긴다.

『앗.』

그놈은 비명을 올리며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피가 튀어서 뒤에 대어 선 위인의 얼굴과 옷이 피투성이가 된다.

『나는 이놈들을 조처헐 테니 자네는 뒷놈들을 조처하게.』

이완은 박더러 뒤에서 대드는 도적놈들을 조처하라고 부탁하였다.

박천수는 날 듯이 일행의 뒤로 달려갔다.

앞에서 벌써 두 놈이 피를 토하고 거꾸러지는 광경에 대경실색한 뒷패 도적들은 오금아 날 살려라하고 고개 골짜기로 내리 떨어져서 도망을 했다.

이완은 손에 든 낫을 땅에 놓고 거꾸러진 도적놈에게로 가서 기식이 엄엄(奄奄)한 놈의 몸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서 고개 비탈로 내리 굴리었다.

『살아두 병신이요 살지는 못할 게다.』

나머지 한 녀석은 어디론지 도망해 버리고 또 한 녀석은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 시체마저 이완은 발로 밀어다가 비탈 아래로 떨어뜨리어 버렸다.

『지아 평양 행객들 인제 맘 놓고 갑시다.』

하였다.

여럿은 두 사람의 활약이 하도 통쾌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해서 공연히 몸을 떨고 있었다.

『이분들이 동지섣달을 만났나, 왜 이리 떨고 있어.』

하고 이, 박 두 사람은 깔깔대고 웃는다.

저녁 장막이 이미 산과 들을 덮어서 몇 간만 떨어져도 피차 낯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 박 두 사람은 그 후 하루를 지나서 돈 삼십 냥을 받아 가지고 일행과 헤어졌다.

일행은 평양까지 동행해 주기를 바랐지마는 이완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이완의 생각에는 평양 같은 큰 도시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본다면 돌아오는 길에 경개를 구경할 겸 들리기로 하고 용강 땅에서 서쪽으로 꺾이어서 대동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구 되는 지방을 시찰할 생각을 먹었다.

이것은 다음날 국난이 있어서 만일 호병이 처들어와서 평양을 점령한다면 수륙 두 길로 적을 쳐부술 용병의 지리를 관찰할 배짱이다.

이리하여 어느 날 그들은 예전 낙랑(樂浪) 시대에 염제현이 있었다는 고적도 찾아볼 생각으로 길을 가다가 날은 저물어가고 길을 잃어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산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산중으로 들어갈 생각을 먹었던 것은 아니지마는 목동이 다니는 길을 대로로 통하는 길인 줄 알았던 까닭이었다.

『큰일 났네.』

박천수가 근심하기 시작했다.

『왜.』

『왜라니 산중에서 짐승이나 만나면 큰일 아닌가, 노숙할 수는 없구.』

『짐승 만나면 잡아먹세 그려.』

『잠은 어찌 자나.』

『나무에 올라가서 몸을 매 놓고 자세 그려.』

이완은 조금도 불안한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어디선지 사람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웬 곡성야.』

여인의 통곡성이다. 날은 저물었는데 인적이 끊인 산속에서 여인네의 통곡성은 듣기 좋지 않았다.

처량하다기보다 무서웠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반 기절은 했을 것이지마는 워낙 담력이 큰 사람이라 도리어 반가워하였다.

『하여튼 사람을 만나게 됐네.』

하고 두 사람은 그 울음소리를 찾아서 갔다.

커다란 뫼가 보이었다. 그리고 그 뫼 앞에 소복한 젊은 여인 하나가 머리 풀어 산발하고 통곡하고 있었다.

날은 저물어가고 산중이라 얼굴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여인에게로 달려갔다.

『웬 여인인데 이 산중에서 이렇게 우시오.』

하고 소리를 높여 물어보았다.

통곡하던 여인은 울음을 그치고 두 사람의 행색을 굽어보고는 한숨을 길게 쉬고,

『이 뫼에는 나의 남편이 파묻혀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마는 이 뒷산에서 금점(금광)을 하고 있는 덕대 괴수 한 녀석이 내 남편을 금점으로 꾀어다가 죽이고 나마저 금점으로 억지로 데려다가 제 계집을 삼으려고 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금점 놈들이 아 래 방앗간에서 상량식 잔치를 하고 있는 틈을 타고 도망해 나와 마지막 성묘나 허구 목을 매어 죽을 결심을 한 것입니다.』

하는 하소연을 하였다.

듣고 보니 일수 있는 악행이다. 더구나 금점 판이란 팔도에서 파락호 부랑자가 모여들어서 걸핏하면 칼질을 하는 무시무시한 판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그 금점에는 몇 놈이나 있소.』

『백여 명 금점군이 있나 봅디다마는 곤댓짓 하는 놈은 여남은 되나 봅니다.』

『그래 그 괴수놈의 성명은 』

『한철이라고 허는가 봅니다. 글자는 모르겠소마는.』

『지금 그 물방앗간에 있겠구.』

『그렇지요. 물방앗간은 금점에서 금돌을 갖다가 찧는 덴데, 이번에 새로 세우게 돼서 상량하는 날이랍디다』

『우리는 길을 잃고 이 산중에 들어온 사람들인데 우리를 그리로 바라다 주면 그놈을 죽여서 원수를 갚어 줄 터이니 앞장을 서시오.』

『고마운 말씀이지마는 그 한가란 놈이 천하장사이구 그 수하놈들이 금점판 놈들이라 사람 치기를 흰 떡 치듯 허는 놈들입니다. 공연히 객기를 내셨다가 큰 봉욕을 허실가 염려됩니다. 나 하나야 여기서 목매서 죽으면 고만이올시다.』

하고 좀처럼 일어설 기색이 없었다.

『우리는 그런 놈을 증치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일 뿐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보다 여러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냥 둘 수 있겠소.』

『그놈이 천하 장사올시다.』

『위에는 위가 있는 수가 있지 않소.』

이완의 이런 장담을 들은 그 여인은 그제야 믿는 구석을 발견하였던지 벌떡 일어섰다.

『그럼 그 방앗간까지 뫼서다 드리겠읍니다.』

하고 앞을 섰다.

날은 아주 저물었다.

한 오리 가까이 걸었다. 촌가의 불이 보이는 행길로 나가서 또 두어 마장 걸어가니 큰 내 하나가 흘러내리는 저편에 화톳불이 두어 개 휘황하였다.

『저기올시다』

그 여인은 더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였다.

『금점에서 도망해 나온 년이 저기로 가서야 되겠읍니까. 지금쯤은 내가 도망해 나온 줄 알고 사방으로 사람을 돌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 근처에서 머무르시오.』

하고 두 사람은 그 화톳불 휘황한 곳으로 내려갔다.


이완과 박천수의 두 청년이 공분으로 말미암은 일대 활극을 연출하여 젊은 여자의 한을 풀어 주고는 그 길로 바로 그곳을 떠났다.

더 길게 관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으로서 젊은 여자와 깊은 관련을 맺게 되면, 자연 그 사이에 넘어서 아니 될 선을 넘어서 이상한 관계가 생기기 쉽고 그런 일로 해서 각자의 원대한 계획이 중도에 마가 든다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한가란 놈의 여당이 또 그 여자에게 분풀이를 하지나 않을가?』

하고 염려하는 것을 이완이 고개를 내저으며,

『나중야 뉘 알겠는가, 하여간 목전의 원수를 깊어 주었으니 우리의 할 일은 했지…….』

『그것두 그래, 그 이상 더 발을 들여놓으면 그 여인까지 안어 맡게 될지도 몰라

『십상팔구 그렇게 되는 법야.』

박천수는 이완의 말에 껄껄 대고 웃으며

『바루 노인이 헐 소리를 짓거리는군. 하여튼 오늘은 적적지 않은 장난을 했네.』

이렇게 농담 지거리를 하며, 둘은 익지 못한 산길로 들어섰다.

그들의 생각에는 비록 밤길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다니던 길이 분명하니, 재 하나만 넘으면 사람 사는 마을로 나설 수 있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랬던 것이 갈수록 산길은 심산 궁곡으로만 들어가는 것 같았고, 나중에는 그 목동의 길조차 끊어지고 말았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시커먼 수풀이 울창한 높은 산이 번한 하늘에 검은 곡선을 그리고 막아서 있고, 한편 쪽은 층암절벽이 아득한 깊은 골을 지으고 있을 뿐이다.

우거진 풀이 길길이 무성하였을 뿐 길은 없어지고 말았다.

『이 사람 우리가 걸어온 길은 행객의 길이 아니라 목동의 길일세 그려!』

『그런가 보이.』

『큰일 나지 않었나?』

박천수는 초조 불안해서 이완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이렇게 걱정하였다.

『걱정할 거 있나, 좀 더 길을 찾어 보다가 정히 길이 없으면 나무에 올라가서 밤을 새자니…….』

이완은 아무 근심도 없는 양 싶었다.

『글쎄 나무에 올라가 자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호랑이는 나무에 못 오르는가?』

『못 오르지!』

『치호랑이는 못 오르지만 표범은 오른다나 부데.』

『그건 살쾡이야 표범이 아니야.』

산중에서 오래 지내본 경험이 있는 이완은 자신 있게 말하였다.

『살쾡이쯤야 겁날 것 있나!』

『살쾡이두 자고 있는 우리의 목줄 띠를 물어 박질러 보게, 살 수 있나?』

『저 사람 덩치 큰 사람이 뭘 그리 무서워 허나? 살쾡이나 늑대 쯤야 내가 다 처치험세!』

『하여튼 좀 더 길을 찾어 보세.』

하고 박천수가 앞을 서서 우거진 풀을 헤치며 조금씩 전진했다.

『천수, 자네 내 뒤에 서게. 산중 일은 내가 형일세.』

하고 이완이 앞서서 두 발로 땅을 두드려 보듯 하며, 어설픈 걸음을 걷고 있는 박천수의 팔을 잡아, 자기 뒤에 세웠다.

이리하여 얼마를 전진은 했지마는,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갈수록 가시 덩쿨, 칡 덩쿨이 발에 걸려서 위험만이 더해 갈 뿐, 그 산을 넘는 길은 발견되지 않는다.

『도대체 길을 잘못 잡아 들었어. 인제는 별 수 없이 산복을 일직선으로 치달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네.』

하고 이완이 수림이 빽빽한 비탈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것도 역시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원제 겁이 없는 이완이요, 억지의 일이라도 하고 또 하고 해서 끝끝내 목적을 달하고야 마는 성격을 가진 그라, 그 산 하나만 넘으면 또 산이 첩첩이 돼 있을지라도 산등어리에 올라 보고야 말 결심이었다.

수림 밑으로 기어 올라가며 이완은 손칼을 끌러 가지고 칡 덩쿨을 휘어잡아 잘랐다.

『무얼 허나?』

『덩쿨야.』

『덩쿨은 왜?』

『홰를 만들어야지.』

칡 덩쿨로 무슨 홰가 만들어지나 하고 박천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산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이완이 하는 일이라 잠자코 하는 양을 보고 있었다.

이완은 수림 밑에 우거진 풀에서 비교적 타기 쉬운 풀만을 잡아 뜯어서 그것을 빗자루 얽듯이 칡 덩쿨로 동여매기 시작하여 굵은 홰가 하나 길쭉하게 만들어졌다.

이완은 염낭에서 부싯돌과 쇠와 깃을 내가지고 불을 만들기는 했지마는 좀처럼 해서 불길이 오르도록 타지 않았다.

마른 풀이 아니라서 연기만이 올랐다.

이완은 하는 수 없이 연기만이 오르는 홰를 들고 걸어 올라가며,

『이 연기 냄새만 맡어두 짐승은 도망을 치거든.』

하여 자기의 실패를 덮어 버린다.

그러던 중에 다행히 앞산 마루터기에 다달았다. 그러자 박천수가,

『저게 인가의 불이 아닌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박천수는 하도 반가와서 부지중 왕청스런 큰 소리를 내질렀다.

『어디야?』

『저기…….』

하고 박은 이완의 팔을 들어 불이 반짝이는 곳을 가리키었다.

『인가의 불이구먼.』

『틀림없지!』

『이런 산중에 웬 인가일가?』

『산전 해 먹는 사람두 있을 법하지 않은가?』

『하여튼 인가의 불을 봤으니 인젠 살었네, 그리로 가 보는 수밖에…….』

하고 한동안 그리로 내려갈 방향을 잡았다.

길이 없으니 그 인가를 향하여 직경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인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서 높은 데서 건너다 보이기는 하지마는, 그리로 가는 도중에는 골짜기도 있고 절벽도 있어서 자칫 하다가는 그 인가의 방향을 잃기가 쉽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적 없는 산중에서 헤매던 사람으로서 인가의 불을 발견한 이상 앞에 어떤 곤난이 있을지라도 그리로 찾아갈 결심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형!』

이완은 천수더러 형이라고 부른다. 형이라고 부르면서도 서로 허게를 하고 농담을 한다. 이것이 이완의 보통이 아닌 성정 그대로의 발로인 듯도 하였다.

『왜 그래?』

『나는 발 아래를 조심하며 갈 테니 자네는 하늘의 별만을 목표로 방향을 잃지 말게』

『그렇게 함세.』

이리하여 이완은 산비탈을 가로 타고 넘어 가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골짜기는 없었다. 비탈에서 비탈로 바위를 기어 넘고 덤불을 헤치고 하는 곤난은 있었다.

인가의 불이 차차 가까워졌다.

『인젠 틀림없이 찾어 왔네!』

하고 박천수는 무한히 기뻐하였다. 이완은 여전히 조심하여 앞서가며,

『아직 그런 소리 말게. 그 집 싸리문 밖에 가서야 헐 소리.』


얼마의 시간이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들은 긴장해서 인가의 불만 바라보며 걷고 가고 해서, 이제 그 인가로 가는 산길을 찾았다.

『인젠 틀림 없소.』

그제야 이완은 활기 있는 소리를 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그 조그만 오막살이 초가집 싸리문 밖에 이르렀다.

울은 반쯤 쓰러져 있고, 방이래야 한 간밖에 없어 보이는 쓰러져 가는 집이었다.

『쥔 계십니까?』

하고 이완이 굵은 목소리로 이렇게 불러보았다.

그 단간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약간 일렁거리는 듯하더니,

『뉘시오니까?』

하는 여인의 음성이 대답을 하였다.

『네 우리는 산중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인데 쥔님 좀 뵙시다.』

방문이 덜컥 하고 열린다. 젊은 여인의 낯이 캄캄한 이편을 내다보며,

『산중에서 길을 잃으셨다니 오죽 고생하셨겠읍니까? 주인은 밖에 나가되 아직 들어오지 않었읍니다마는 상관없으니 이리 들어오시지요.』

『쥔이 계시지 않은 방에 어찌 들어가겠소.』

『상관없소이다. 어서 이리 들어 오세요.』

하고 여주인은 재촉하였다.

『들어갈가?』

『들어가야지 예까지 와서 문 밖에 섰으려나?』

둘이는 이렇게 의논을 하고 나서 박천수가

『그럼 말씀이 고마워서 들어가겠읍니다.』

하고 둘이는 봉당 툇마루에다가 짚신을 벗어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옷은 물에 한 번 적셨다가 쥐어짜서 입은 듯이 밤이슬에 흠씬 젖어 있었다.

『웬간히 고생들 허셨구먼요.』

여주인은 화로의 솔개피 불을 헤쳐서 둘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아직 불 필 절기는 아닙니다마는 불을 쪼이시면 옷이 마를 것입니다.』

하고 친절히 대하였다.

여주인은 나이 사십은 되지 못하여 보이었다.

『어디서 어디로 가시는 손님인데, 산길로 드셨읍니까?』

『우리는 그저 팔도강산을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니까, 어디로 꼭 간다는 지목이 없지요.… 하기는 해주 땅으로 갈가 하던 중에 길을 잃었소이다』

『어디서 길을 떠나셨게요?』

『산 너머 금점이 있는 데서 길을 떠났지요. 밤에 길을 떠났소이다.』

『밤에 산길을 어찌 다니십니까? 그런데 손님을 대접할 아무 것두 없어서 미안합니다.』

『천만에, 밤이슬을 면하는 것두 천행인데 그런 말씀 마시우. 그런데 쥔님은 이 밤중에 어디를 가셨단 말씀이요?』

『우리 집은 밤에 나가서 사냥질 허는 게 생업입니다.』

밤에 사냥질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다.

『밤에 사냥이 무슨 사냥이오니까?』

참다 못하여 이완이 이렇게 물었다.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읍니다. 나중에 아시지요.』

하고 열적은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부끄러운 사냥이라는 것인지 더욱 알 수 없다. 알 수 없느니만큼 더욱 호기심이 나서 둘이는 눈을 크게 뜨고 서로 맞바라다 보았다.

그런데 이 넓지 못한 지직방 아랫목에는 나이 오륙 세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쿨쿨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따님이시우?』

천수가 턱으로 자는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단 한 톨의 딸년이랍니다.』

『무남독녀올시다 그려!』

『아직 젊으신데 또 낳으실 수 있지, 그게 무슨 말여…….』

『인제 뭘 나요. 단산헌지 육 년이나 되니, 무슨 자식이 있겠읍니까? 그뿐이 아니지요. 적악하는 사람은 그 보복이 있습지요, 손이 있을 수 없읍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연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문득 자고 있는 어린아이가 소스라쳐 놀라며, 찍— 하고 새와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눈은 뜨지 않았다.

연거푸 세 번 그 짓을 하였다.

여주인은 그 광경을 바라다보며 『후유—』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얼굴에는 고민의 빛이 떠올랐다.

『무슨 병이오니까?』

하고 이완이 놀란 눈으로 이렇게 물었다.

『병이 무슨 병이오니까. 불쌍헌 것은 저 딸년이올시다.』

하고 여주인은 지적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씻었다.

『병이 아니면 왜 그러는 겝니까?』

『세상에 악착한 짓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바깥 사람이 무슨 놈의 성미인지 밤이 되면 산중에 들어가서 왁새란 산새를 잡는데 어미 새를 잡는 게 아니라 보금자리를 낮에 알어 두었다가 밤에 가되 그 산새 새끼를 잡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약으로 내 팔지요. 그런데 한 마리 잡아낼 때마다 저 어린 것이 놀라고 새 죽는 소리를 허는 것입니다. 지금 두세 번이나 그 짓을 했으니까 아마 두세 마리 잡아낸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두어 번이나 또 어린애가 버둥거리며 죽는 소리를 내질렀다.

두 사람은 몸에 소름이 쪽 끼쳤다.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이완도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세상에 악착한 일은 못할 일이로군! 그런데 왜 그 짓을 못하도록 말씀허시지 못 허슈?』

『안 됩니다. 바깥사람이 고집이 세어서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 데다가 저 어린 것이 허는 짓을 당신이 볼 수가 없으니까 내가 하는 말을 거짓말로만 여기는 것입니다.』

『그두 그럴 듯헌 일야. 그렇지만 그냥 둬서는 저 어린애게 앙화가 미칠 것이니 불쌍치 않은가.』

『그렇지…….』

『그냥 둘 수 없는 일야. 우리가 증거를 서서 바깥주인을 권해 볼 밖에…….』

하고 동정하였다.

『고마우신 말씀이지마는 그만두시지요.』

『왜요?』

『바깥사람이 남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야요.』

『남의 말두 말 나름이지, 당신 댁 강화를 면케 허는 말야 안 들을 리 있소.』

『성품이 괴상헌 데다가 힘이 장사올시다. 당신의 힘만 믿고 남을 알기를 네뚜리로 아니 공연히 말씀을 내셨다가 봉변허시면 큰일이 아니오니까?』

『세상에 좋은 말 해 주고 봉변까지 한대서야 주판이 들어맞소?』

하고 이완은 깔깔대고 웃었다.

이때에 싸리문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왔나 봅니다.』

하고 여주인은 방문을 열어젖히며,

『인제 들어 오슈?』

『어……….』

무엇인가를 봉당 안마루에다가 내려놓는 모양이었다. 필시 새 새끼를 잡아넣은 그물이 아니면 망태기 같은 것일 것이다.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하고 주인은 주춤하고 서 있다.

앉아 있던 천수가 밖으로 나서며,

『쥔 어른 처음 뵙습니다. 실상은 우리 두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당신 댁 불을 보고 찾아온 것입니다. 안에 한 분이 계신데 들어 앉기가 어려워했더니, 사람이 둘이니 상관없다고 권하시는 말에 염치없이 들어와 쉬고 있읍니다.』

하고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사내 주인은 그제야 심상한 낯으로,

『방이 누추해서 미안헙지요. 들어앉으시게 허는 것이 마땅헌 일입지요. 산중에서 고생하셨읍니다 그려.』

하고 신발을 벗고, 우정 방 웃목으로 들어와 앉으며,

『무어 대접할 것두 없었지?』

『네…….』

『천만에, 밤이슬만 면하는 것도 큰 덕이올시다.』

『마누라는 부엌에 나가서 자소, 내 손님 뫼시구 잠세.』

『아니올시다. 그렇게 허시면 우리가 미안해서 견디겠읍니까? 우리가 부엌에 나가서 자오리다.』

『아따. 그럼 방은 좁지마는 함께 잡시다. 이런 궁벽헌 산중 일간 두옥에서 내왼들 허는 수 있읍니까.』

하고 주인은 피차 통성명을 하고 나서 이런 이

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완은 아까 여주인에게 언명한 권고를 하는 것이 실기 되면 못 쓴다고 생각하고 말을 꺼집어 냈다.

『그런데 쥔장이 밤사냥 허신다는 건 새 새끼를 잡으신다지요?』

『그렇습니다. 약에 쓴다구 구해 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약간 불유쾌한 빛이 얼굴에 떠올랐다.

필시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인데, 무엇하러 그런 이야기를 했는가 하는 감정인 듯하였다.

『그 사냥 그만두시지요.』

이완은 진정으로 이렇게 잘라 말하였다.

『날더러 그 사냥을 그만두라고요?』

『그렇습니다.』

『남의 생활을 왜 그만두라우?』

『허구 많은 생활에 왜 그런 악착한 사냥을 허시우?』

하고 그는 정색을 하였다.

하고 이완은 아까 눈으로 보고 놀란 바를 자세히 이야기해 들리고,

『그 앙화가 따님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내 말을 믿으시구, 그 생업 그만 두슈.』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잠시 묵묵히 있더니,

『그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씀요. 눈으로 보았다니 거짓말이라고는 아니허겠소마는 새 새끼 잡는 게 악착한 일이라면, 새끼 밴 짐승을 잡는 것두 악착한 일이 아니겠소?』

『그와는 다르지요!』

『다를 게 뭐요?』

『하나는 모르고 잡는 것이구, 하나는 알구 잡는 게구…….』

『알구 모르고는 이펀 일이고, 당허는 편으론 매일반 아니요?』

하고 주인은 코웃음을 쳤다.

『그따위 조그만 인자심에 끌리다가는 세상에 아무 일도 못해 먹소. 난리가 나면 수백 수천의 인명두 죽이지 않소?』

이완은 속으로는 그의 이론에 어느 점 찬동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경위를 이런 일과 혼동하는 것이 미련해 보이었다.

『그런 미련한 건 말씀마시우. 그런 경위와 당신의 지금 경위가 다른걸 모르시우, 내야 당 신이 그런 짓을 허든 말든 상관없소마는 어린애가 불쌍해서 하는 말인데…….』

『어린 것은 내 자식요.』

『누가 아니라우.』

『죽던 살던 댁이 무슨 상관요?』

두 불덩이가 만나고 보니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시빗조로 들어섰다.

『이 사람!』

하고 천수가 이완의 소매를 잡아당기었다.

『아냐 가만히 있어, 저분 말이 어거지가 아닌가? 미련한 어거지야.』

이완은 생각하는 바가 있어 역부로 시비를 돋는 것이었다.

『미련이란 건 뉘게다 허는 말요?』

『댁에다 허는 말요! 미련해두 분수 없는 미련요.』

주인의 낯에 시퍼런 힘줄이 솟았다.

『무어 어째? 예끼 이 자식!』

하고 주인의 움파 같은 손이 이완의 뺨을 죽어라 하고 후려쳤다.

능히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완은 피하지 않았다.

철컥 하고 안반에다가 흰 떡을 치는 소리가 났다.

이완은 까딱도 아니한다.

『또 한 번 힘껏 쳐봐라! 미련헌 자식.』

『얘 이눔!』

하고 주인은 재차 제힘을 다해서 후려쳤다.

『어이구 여보 이게 무슨 짓요. 글쎄 손님을 치는 법, 어디 있소?』

여주인은 어쩔 줄을 모르고 남편의 팔에 매달렸다.

『어디 또 한 번 쳐보지?』

하고 이완은 턱을 내민다.

주인은 분해서 씨근거리면서도 세 번째의 손은 대지 못하였다.

자기만은 황소 한 마리쯤은 두 뿔을 잡아서 낚아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사실 장사의 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한 힘으로서, 미상불 힘을 다해서 후려쳤으니, 여느 사람 같으면 뒤로 나가 떨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인데, 이 어이 된 장사이관대 두 번을 정통으로 맞고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느냐?

주인 작자는 속으로 몹시 놀라서 더 때려 볼 용기가 없었다.

『당신이 두 번이나 날 쳤으니 나두 한 번쯤은 쳐 봐야지?』

하는 말이 끝이 나자마자 이완의 손이 번개같이 날아서 주인 작자의 관자놀이를 쳤다.

동시에 주인 작자는 뒤로 나가 떨어졌다.

쾅 하고 머리 뒤통수가 지적간 방바닥을 쳤다.

정신은 잃지 않았지마는 얼핏 일어나지는 못하였다.

『Polo. 하 하 하……』

하고 이완은 호쾌스럽게 웃어 젖힌다.

『이 위인아 그만한 힘을 가지고 제법 사람을 치려구…… 얼른 일어나소!』

하고 자빠진 주인을 잡아 일으키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은 주인은

『사람을 몰라 보고 잘못했소.』

하고 열적은 웃음을 띄우며 상반신을 굽실하였다.

성품은 급할망정 심정은 단순하였다.

자기보다 훨씬 나이 어린 청년으로서 비범한 힘을 가진 것을 보매 이 필시 여느 사람이 아닌 듯싶었다.

이완은 웃는 낯으로 주인의 손을 휘어 잡으며

『용서허시오. 아까부터 주인님께 부랑패 류의 욕설을 한 것은 쥔의 힘이 얼마나 있는가 허구 시험해 볼 생각으로 그런 것이지 젊은 놈이 어디 그럴 법이 있겠소?』

하고 사과하였다.

『아니올시다. 이놈이 진정 미련해서 부끄러운 힘자랑을 했소이다.』

『그런데 쥔님 지금 시절이 험난해서 어느 때 힘 있는 장사들을 모아드리게 될는지도 모르고 또 힘깨나 있는 사람은 자진해서라도 나라를 위해서 몸을 바쳐야 할 것인즉 당분간 이 산중에서 소견을 하고 있으면 다음 날 당신을 찾을 날이 있으리다.』

하고 위로하였다.

이러한 희극을 연출한 이완 일행은 거기서 시속의 이야기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났다.

귀리밥이라도 자시고 가라고 권하는 것을 뿌리치고 나섰다.

가난한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미안해서 그리한 것이었다.

산중에서 길을 찾아 내려온 일행은 산 아래 촌가에서 아침을 얻어먹고는 서흥(瑞興) 길로 잡아 들었다.

서흥 길로 잡아들자 일행은 비상한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다한 군마 병졸이 무더기 무더기 행오를 지어 서울로 통하는 대로를 풍우같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완은 나라에 비상한 병란이 일어난 것을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동안 그 병졸의 행오가 끝나기까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군량을 싣고 뒤를 쫓아가는 달구지 소바리가 오는 것을 보고 그리로 달려가서 소바리군하고 함께 걸어가며,

『여보 무슨 변이 났소?』

하고 물어보았다.

소바리군은 이상한 눈으로 이완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아니 이런 큰 난리가 난 것두 모르고. 허허 참 당신은 어디서 오시는 분요.』

하고 어처구니 없어 한다.

『산중에서 오래 묵어 있다가 오늘사 내려왔소.』

『그렇기나 허시길래 이 난리를 모르시지 이장군께서 서울을 드리치시는 길이 아니우.』

『이장군이라니 영변 부사 이괄 장군님 말유?』

『그렇소. 참 굉장합니다. 영변서 떠난 지 며칠 안 돼서 각 고을은 모두 항복을 허구 벌써 개성으로 치달아 올라가는 길이 아뉴.』

『반란이로군.』

이완은 혼자 말로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조금 떨어져서 역시 소바리군 하고 수작을 하며 오는 박천수에게로 달음질하여 갔다.

『여보게 천수.』

이완은 형이니 아우니 하던 것도 잊고 흥분해서 천수의 소매를 잡았다.

『이괄이가 필경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네 그려!』

『그러기에 전 일에 내가 뭐라고 했는가.』

『어디 가서 좀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세.』

하고 둘은 대로를 서북쪽으로 달음질하였다.


바로 지난해 봄에 능양군(綾陽君)을 추대한 이귀(李貴) 김류(金瑬)들, 서인(西人) 일파의 반정 운동이 성공을 해서 광해군(光海君)은 허잘 것도 없이 단박에 내몰리고 능양군이 임금이 되매 서인 일파의 세력은 욱일승천의 기세를 보이었다.

광해군이 자기의 장래를 그릇 우려하며 적출 아우 영창대군(永昌大君)을—철도 모르는 나이 겨우 八세의— 강화로 내몰아서 불을 때서 데어 죽이고 영창대군의 생모되는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다가 유폐해 놓고 영창대군의 외조부 김제남(金悌男)도 역적으로 몰아 죽인 것이 커다란 험절이 되었지마는 대신 들어선 서인 일파의 집권자들도 착한 일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인조(仁祖) 이십칠 년간 재위 동안은 수차의 외적 침입으로 강화로 몽진한다, 남한산성으로 도망한다, 하다가 필경 청군에게 항복하여 속방의 굴욕을 당하게 되지 않았던가.

이 모두가 인조 자신의 허물이 아니다. 왕을 보필하여야 할 서인 일파의 요인들의 실수라고 아니 할 수 없거니와 인조반정이 성공한 바로 이듬해 봄에 반정 공신 중의 한 사람인 이괄(李适)의 반란을 받게 된 것은 막비 서인 중에도 가장 유력한 김류(金瑬)의 큰 실책이라고 말할 것이다.

김류는 자기의 심술과 사감으로서 정사를 잘못하여 큰 반란을 일으키고 임금을 공주에까지 도망하도록 저질러 놓았은즉 마땅히 그 책임을 지고 자결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벼슬을 내놓고 물러나가야 할 것을 후안무치하게 그대로 앉아 있는다는 것부터 인격 있는 사람의 취할 길이 아니다.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황급한 보고를 받고도 인조 어전에서,

『이괄 따위가 무슨 반란을 일으킨 힘이 있소.』

하고 부인하는 것을 하도 밉살스러워서 이귀(李貴)가,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급보를 받고도 그렇지 않다는 역설을 하는 것을 보면 김대감 자신이 이괄과 공모한 게 분명하구려.』

하는 격문의 언사를 토하기까지 하였다.

이괄의 군사가 연전연승하며 기병한 지 불과 십 일에 개성을 함락시키고 임진강에서 이중노(李軍老)를 전사케 하고 서울을 지척에 두게 되매 서울 민심은 물 끓듯 동요하여 피난민의 사태가 나고 정부는 물론 궁중의 동요는 이루 측량할 수 없었다.

눈을 홉뜨고 제각기 살길을 찾느라고 영이 서지 않았다.

임금의 피난지를 강화로 하자니, 남한으로 하자니, 충주로 하자니 하고 중구난방에 작사도방(作舍道傍) 격으로 겨우 공주로 파천하기로 결정된 것은 이미 해가 저물어 가는 때이었고, 임금의 종 뒤를 호한 요인은 칠령팔령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중에도 중대한 실수는 대비(인목대비)전에 연락을 하지 않아서 대비는 어디로 가야 옳을지 몰라서 궁노를 대전으로 보내 본즉 상감은 벌써 길을 납시었다는 대답이 왔다.

이리 하여 대비는 한심한 가운데에도 일은 급한지라 대가(大駕)는 필연 강화로 향하였으리라 하고 삼개로 향하여, 이로 말미암아 적군은 이미 홍제원 가까이 이른 급한 중에 큰 분잡을 일으킨 사단까지 생겼으니 그 얼마나 황황하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구나 이괄은 임진왜란 때에 포로 또는 항복하여 온 일본 무사가 상당한 수효가 있었는데 그들과 비밀히 의논하여 영변 산성에 모아두고, 우대를 하더니 이번 기병에 그들을 선봉군으로 내세워서 싸우게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활약이 크게 힘이 있었다.

이괄이 그들을 이용한 수효가 기록에 의해 보면 일백팔십여 명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왜병을 선봉으로 이용한 것은 이괄이뿐이 아니다.

이괄의 뒤를 쫓아 올라와서 필경 이괄을 쳐 물리친 장만(張晩)과 정충신(鄭忠信)도 선봉으로 역시 복왜병을 세웠다 하니 결국은 왜병 저희끼리 싸운 형식이 되고 말았지마는 당초 이괄이가 기병을 하였을 때 먼저 평양을 쳐서 장만의 기세를 꺾어 놓고 발길을 돌려서 서울을 직충하였던들 이괄의 천하도 겨우 삼일에 그치는 경을 당했을 리 만무한 것이다.

누구인들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실수가 없으랴마는 이때의 이괄로 말하면 백번 천번 후회할 만한 실책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큰 반란을 일으키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순전히 김류의 사사 감정이 원인이 된 것이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삼일 되는 날에 반정공신들의 공훈을 작정 발표하는 자리에서 김류는 사소한 오해로서 사감을 품고 이괄을 이등훈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의 공훈으로 말하면 누구나 다 일등공이 당연하게 생각할 만큼 컸음에도 불구하고 김류 혼자서 이괄을 반정 모의에 나중 참가한 사람이라는 경우에 닿지 않는 말로 우겨서 필경 그대로 발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에도 이귀가,

『이괄을 이등이란 되지 않은 말이니 사감으로 그런 일을 하면 후환이 있으리다.』

하고 극구 충고하였지마는 김류는 끝내 듣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발표를 보게 된 이괄은 이를 갖고 분격하였다.

언제나 이 분풀이를 하지 않고는 살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영변 부사로 내려간 이후로 휘하 군졸을 훈련하기에 극력 노력하였다. 서울을 떠날 때 새문 밖 연주문 기둥을 칼을 빼어 후리어 치며 명년 이때 다시 여기서 보자 하던 그 비장한 일언을 실현하자는 것이었다.

이괄이 반란을 촉진시킨 데에는 그의 아들이 역시 역적으로 몰린 데에도 있었다.

『아들이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는데 애빈들 성하랴.』

하고 아들을 잡으러 내려온 금부도사 고덕상(高德祥) 심대림(沈大臨) 선전관 김지수(金芝壽) 등을 참하고는 반기를 들고 일어섰던 것이다.

이 모든 원인이 따져가면 결국 김류의 실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귀가 반군이 개정 가까이 쳐내려온다는 급보에 인조의 어명을 받고 적의 정제를 염탐하고자 말을 달려 임진강변에 이르렀을 때 이괄의 군사가 이미 개경을 함락시키고 승승장구하며 미구에 임진강에 당도하리라는 급보에 혼비백산해서 말 머리를 돌려 다시 서울로 달려와서 어전에 이르렀을 때에는 기진맥진해서 어전에 엎드러져 잠시 기절을 하였더란 기록이 있으며 나중에 그는 빈청으로 나와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김류의 고집이, 심술이 나라를 망치는구나.』

하고 통탄하기까지 하였다.

이번 이괄의 반란에는 그러한 유래가 있는 것을 이완과 천수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찌기 일어날 줄도 몰랐고 또 그 기세가 이렇게 놀라울 줄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큰 길가 주막 술청에 앉아서 이완과 천수는 술을 마시며 주막 주인과 술청에 모여든 근처 백성들의 물론을 들어 보았다.

『여보 쥔 서울로 쳐 올라가는 군사가 오늘 처음 지나갔소?』

『오늘이 뭐요 어제도 한떼 올라 갔읍네다. 어제는 선봉군이 올라간다는데 그들은 모두 왜국 군사랍니다』

『아니 대체 참 무시무시하던걸.』

하고 곁의 농군이 그 말을 가로채 가지고 큰 소리로 떠든다.

『일제히 같은 복색을 입구 머리는 흰 수건으로 질끈 질끈 동여매고는 긴 창 허구 칼을 뽑아 들었는데 환도 길이가 아마 우리 키들이나 되지.』

『여보게 허풍 떨지 말게 아무러기루 우리들 키만 헐가.』

『우리들 키만은 못하다 해두 하여튼 길드란 말여 그걸루 길가의 느릅나무를 치니깐 굵은 기둥이 썩썩 나가지 않나 글쎄 그걸루 사람의 목을 쳐 보란 말여, 무 밑둥처럼 목이 떨어질 게 아냐!』

『그런데 당신네들 이번 난리를 어떻게 생각허슈?』

이완이 이렇게 묻는 말에 신이 나서 뒤떠들던 위인은 금시 입을 다물고 슬금 꽁무니를 빼고 화롯가에서 불을 피고 앉아 있던 늙은 주인이 끙 하고 일어서며,

『우리 같은 촌내기야 뭘 알겠소마는 나라의 처사가 반란이 일어나도록 잘못했다나 봅니다.』

『어째서요.』

『자세헌 내막야 모르지오. 그렇지만 힘있는 사람이 한번 해 보는 것두 좋지 않소. 왕후장상이 본래 씨가 있답니까. 잘 되면 왕후가 되고 잘못 되면 역적이지. 그렇게 말하면 이태조는 고려조를 뒤집어 엎은 역적이 아닌가.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잡어다 죽여라. 아깝지 않은 술장사 생화다.』

하고는 껄껄대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술청에서 나온 천수와 이완은 원래의 예정대로 한다면 거기서 해주 지방으로 들어가는 길로 잡아들어야 할 것이었다.

그랬더니 술청에서부터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던 천수가,

『여보게.』

하고 이완을 불렀다.

『이 길로 어디로 갈 작정이던가?』

『새삼스레 그건 왜 묻는가, 우리가 산에서 내려올 때 해주 지방으로 들어가 보자구 허지 않았나?』

『그건 그런데, 지금 이괄이가 기병을 해가지고 풍우 같이 서울로 쳐 올라가는 걸 보니 난 생각이 좀 변했네.』

『변하다니 어떻게……?』

『남아 일생에 이런 기회를 만나보기 어려운 걸 생각하니까 이런 때에 그 군중에 몸을 던져서 번 공을 이뤄볼 생각이 나네.』

이 말을 들은 이완은 아무 말이 없이 길가에 있는 큰 돌맹이에 걸터앉더니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천수는 천수대로 그런 의견을 불쑥 해 놓기는 하였지마는, 속으로 은근히 깊이 존경하고 있는 이완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가 해서 약간 불안스런 눈으로 친구의 하는 양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큰 눈을 번쩍 뜬 이완이 천수의 낯을 똑바로 쳐다 보며,

『자네 이번 이괄의 기병이 꼭 성공할 것을 믿는가?』

『꼭 성공하고 못하고를 귀신이 아닌 바에야 어찌 장담하겠나마는, 영변서 기병 이래 연로 각 읍을 함락시키고 불과 수일지간에 벌써 여기를 지나는 것을 보더라도 대읍 개성이 지호지간에 있고 개성만 무너지면 서울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일세…….』

『서울이 함락된다면 천하의 형세는 바뀌어지고 말걸.』

『이백여 년 연면히 내려온 조정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가?』

『그게 무슨 소린가, 유래 혁명을 당하는 조정이란 일조에 무너지는 게지 두고 두고 무너질 것인가?』

『인심이 천심인데 우리 백성의 인심이 이괄에게로 쏠릴가?』

『양같이 무력한 백성이 쏠리지 않으면 어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나라를 얻는 데에는 덕이 있어야지.』

『그건 얻어 가지고 나서 힘쓸 일…….』

천수는 이완의 말을 억누르듯 얼굴에 차디찬 냉소의 빛까지 올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완은 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자네는 너무나 허영과 출세욕에 급한 것 같으이. 사람은 목이 말라도 도천(盜泉)의 물을 마시지 말랬다고 허지 않나. 의 아닌 출세는 바라지 말걸…….』

『무엇이 의가 아닌가, 아까 술장사 말마따나 성즉 군왕이지 이태조는 의로운 일을 해서 태조인가.』

하고 벌컥 화를 내며,

『자네는 두문동 선비들이나 쫓아가 보게나 그려.』

하고 빈정거렸다.

이완은 별안간 출세욕에 눈이 어두어진 천수의 뺨이라도 치고 싶은 의욕에 가슴이 끓었다. 그러나 그는 꿀꺽 참았다.

천수의 성품을 잘 아는지라, 여기서 둘이 다투면 둘이 다 상할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뜻을 같이 하여 온 동지가 그른 길로 발을 들여놓는 것을 알고도 붙들지 못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마는, 고집이 굳센 천수의 맘을 돌리게 할 수는 없다고 단념하였다.

그래서 이완은 비장한 빛을 하며,

『하는 수 없네. 자네가 굳이 그렇게 결심한 바에야 내가 붙든 소용 있다. 그럼 빨리 뒤를 쫓아 이괄 군중에 투신해서 기왕이면 큰 공을 이루어 보게. 나는 자네 말마따나 두문동으로나 찾아들겠네.』

두문동(杜門洞)이란 것은 이태조가 고려 왕조(王朝)를 찬탈했을 때 여기에 비분강개하여 이조를 섬기기를 싫어하고, 개성 서쪽 교외에 있는 만수산 기슭으로 은퇴하여 세상에 다시 나들지 않았기 때문에 세인이 이를 갸륵히 생각하여 두문동 七十一 선비라고 불러 준 것이었다.

여기서 천수와 이완은 각기 이념을 달리하여 부득이 남북으로 갈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얼마 후의 이야기지마는, 박천수가 이괄의 군중에 투신하여 안현 최후 격전에 불행히 전몰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통곡을 하며,

『천하에 못생긴 놈이구나…… 친구 하나 개굴창에 빠지는 것을 붙들지 못했으니…….』

하고 동지의 주검을 서러워하였다.

이완은 천수와 헤어진 후에 해주 지방으로 들어가던 발길을 돌려 북으로 평양을 향하여 달음질하였다.


이때에 서울을 향하여 풍우 같이 쳐 올라간 이괄의 군사는 어찌 되었던가?

때는 인조(仁祖) 즉위 이년 이월 초엿샛날이었다.

이괄의 군사는 황해도 평산(平山)땅 돛여울(猪灘)에 쇄도하였는데, 그때 방어사 이중로(李重老)와 이덕부(李德符)의 두 사람이 풍천부 사(豊川府使) 박영신(朴榮臣) 평산부사(平山府使) 이곽(李廓) 등과 함께 관군을 거느리고 이 돛여울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괄의 군사는 용감히 여울 얕은 곳을 건너서 쳐들어오는 바람에 이중로의 군사는 대경실색하여 이것을 맞아 싸우기는 했지마는, 싸움이란 매양 공격해 오는 편에 유리한 것이라 관군은 대패하여 흩어지고 이중로 등 여러 장수는 물에 빠져서 전몰하고 말았다. 이러한 급보를 받은 개성 유수는 싸우기 전에 혼비백산해서 망풍도주(望風逃走)라더니 어디론지 도망해 버렸다.

장수를 잃은 군사가 싸울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이리하여 개성은 피 흘리지 않고 낙성되고 이괄은 승승장군하여 임진강으로 밀려 닥쳤다.

사실에 있어 풍우 같이 쳐들어온다는 말이 조금도 지나친 형용이 아니었다.

이때 서울 조정에서는 당황 망조하여 먼저 임금님께 남방으로 피난하기를 주청하고, 그중에는 자기들 가족을 피난시키기에 동분서주하는 자도 있었고 궁중의 혼잡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인조는 어영대장 이귀(李貴)에게 임진강 방면으로 나아가서 적군의 군정을 살펴 오라는 명을 내렸다.

이리하여 그 길로 말을 달려 임진강변에 이른 이귀는 수만 적군이 이미 강 저편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곧 말머리를 돌리어 서울로 돌아오는데 칠십 노인의 몸으로 쉴새 없이 백여리의 거리를 말을 달려 왕복하고 보니 기진맥진하여 궁중에 들어와 어전에서 기절까지 하였다.

사세가 이렇게 되고 보니 인조도 급히 그날로 공주(公州)로 피난하기로 결정하고 한낮이 훨씬 넘어서야 궁중을 나게 되었는데 임금 인조가 타고 나갈 말이 없어서 상감의 낯에 비장망극한 색이 오름을 본 이귀가 극도로 흥분하여 두어 시신과 궁노를 호령호령하여 간신히 말 한필을 얻어오고 궁노가 견마를 들게 되었으니 그 참담한 경상이야 이루 말로써 형용할 수 있으랴.

이 어찌 반일 전까지 이 삼천리 강토에 호령하던 지존의 몸이라 할 것이냐.

그런데 더군다나 일이 망칙하게 된 것은 창황 중에 인목대비(임금의 모훗벌 되시는 분)를 모시지 못하고 나선 일이다.

대비를 모셔야 할 일을 잊었다고 하느니보다 대비를 모시고 있는 시신들이 으례히 임금의 뒤를 따라 모실 줄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일 궁중의 전령이 통일되지 못하여 임금이 어디로 몽진하시는지를 모르는 자가 많았다.

작사도방으로 혹은 강화로 가신다 하고 혹은 충주로, 혹은 춘천으로 가신다 하여 뒤법석을 이루는 중에 상감은,

『공주로 가자.』

하는 말씀을 하고 곧 남문으로 나서게 되었은 즉 기실 대비를 모신 사람들은 왕이 공주로 몽진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은 상감은 필시 강화로 가셨느니라 하는 추측을 하고, 대비를 모시고 서문으로 나서서 삼개를 향하여 행차를 동독하였다.

지리멸렬의 상태이다.

그러는 중에도 적군이 벌써 강을 넘었다. 연서역에 선봉군이 도달하였다. 이제 곧 모약재를 넘는다 하는 첩보가 빗살같이 들어와서 일행의 마음을 극도로 초조케 하였다.

그런데 인조는 일행이 동재 강변에 이르자 배가 없어서 그것을 마련하던 중 문득 대비를 모셔 오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는 상감은 이귀를 보고

『큰 일 났구려.』

하고 오뇌곤혹의 빛을 얼굴에 올렸다.

아무리 창황 중에서라도 대비를 모시길 잊었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그러자 뒤늦게 일행을 쫓아 달려온 호위군관 하나이,

『대비마마를 모신 행차가 마포강으로 행하시더이다.』

하는 보고를 하여 왔다.


날은 저물어 간다. 선척은 아직도 일행을 다 건네기에 부족하다.

이러한 초조불안 중에 또 대비마마를 이리로 모셔와야 한다.

상감은 이귀의 낯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가서 잘 말씀 드리어 모셔와 주오 하는 눈치다. 이귀는 이번에도 또,

『신이 가서 뫼서 보오리다』

하는 자청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곧 말을 잡아타고 군관 하나를 뒤 딸리고 마포로 향하는 지름길을 달렸다.

이때 대비는 마포강에 이르는 도중 어느 주막집에 잠시 주련하며 쉬고 있는 중이었다.

『어영대장 이귀 현신하오.』

하며 그대로 이귀는 마당으로 들어가서 부복하였다.

『노인이 뭣 하러 오셨소?』

마루 중간에 나가 앉은 대비가 이렇게 묻는다.

『죄송하온 말씀 이루 사뢰기 어렵사오나 대전마마의 분부를 받잡고 대비마마를 모시러 왔사옵니다.』

이귀는 이마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땀도 마를 사이 없이 이렇게 아뢰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간단 말요?』

『상감께옵서는 지금 동재기 강변에 주련하고 계십니다.』

『대관절 어디로 향하는 거요?』

『공주로 가시는 길이옵니다.』

『나는 못 가겠소!』

대비의 낯에는 분명히 노기가 띄어 있고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솟쳐 있는 듯하였다.

『이 늙은 몸, 어미를 내버리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서 무슨 시원한 대접을 받겠다고 따라가겠소.』

심술궂은 성정이 구절구절에 실려 있었다.

이귀는 말문이 탁 막혀서 무어라고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궁에서 나실 때 모시지 못하온 허물은 황공무지 허옵거니와, 실은 대전께서는 대비마마 뫼시기를 분부하였사오나 궁내가 혼잡하여 영이 잘 도달치 못하온 것이온즉 위급하온 정세를 통촉허사 어의를 돌리시기를 바라옵니다.』

『내야 늙은 계집이 무슨 위급이 있겠소. 이괄인들 날 죽여서 뭐에 쓰겠소?』

하고 좀처럼 움직일 동정을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이귀는 잠시 물러 나와서 데리고 온 군관을 급히 동재기로 가게 하여 상감께서 친히 오시기 전에는 성사치 못할 것을 사뢰게 하였다.

군관이 말을 달려간 얼마 후—.

인조는 황황히 말을 달려 이 마포 임시 행재로 들어닥쳐서 대비 앞에 부복하며, 눈물로서 사죄하였다.

어지간하면 임금 자신이 달려와서 사죄하는 것이니 마땅히 그 허물을 용서하여야 할 것인데 성정이 과격한 대비는 종시 듣지 않았다.

때는 일각을 다투는 궁급이 박도한 때이다. 왕의 낯에는 말할 수 없는 비장한 빛이 돌았다. 이때 돌연 이귀가 마루 위를 바라보고는 호령하였다.

『저 대비마마 곁에 안연히 앉아 있는 자가 뉘요? 이 자리에는 지존이 임어허셨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몸으로 이 위급지추를 돌연부지하고 교양하게도 높은 마루 위에 앉아 있으니, 빨리 내려와 지존 앞에 굴복대죄허라!』

하고는 상감을 향하여,

『지금은 궁중과 다름없는 자리온즉 당연한 처분을 내리옵소서』

하고 주청하였다.

이때 마루 위에 앉아 있던 사람은 대비가 가장 사랑하는 부마 동양위이었다.

사실 동양위는 대비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는 처지라 무심코 마루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던 것이 큰 실수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런 호령를 당하고 본즉 일은 컸다. 한 마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실책인즉 마땅히 벌은 받아야 할 것이다.

동양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벌벌 떨었다.

인조는 이귀의 돌연 호령의 뜻을 잘 알아챘다. 그래서 좌우를 보고 호령하였다.

『당장 끌어 내서 군률로 참수해라!』

하는 영을 내렸다.

동양위의 낯은 흙빛으로 변하였다.

이러기 조금 전에 마루에서 방으로 들어간 대비가 방안에서 그 호령 소리와 상감의 분부를 들었다.

『아차 상감에게 발목이 잡혔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방 미닫이를 열며,

『상감마마 고정허시오. 내 늙은 몸이 하나 데리고 있는 사위를 잃어서야 되겠소. 이런 혼잡한 때이니 노염을 푸시오.』

하고는 곧 이어서,

『이애들아 재비 빨리 등대하여 상감마마를 따라 갈린다』

하는 분부를 하였다.

인조의 낯에는 안심의 빛이 번개처럼 스쳤다.

『황감한 처분이옵니다. 어찌 어마마마의 말씀을 거역허오리까?』

하여 이 일막의 희비극은 끝을 막고 인조는 대비를 모시고 동재기 나룻터로 달렸다.

『역시 늙은이래야 될 일이군』

가는 도중에 몇 번이나 인조는 속으로 이귀의 돈지에 감탄을 마지 않았다.


이괄의 군사는 이날로 도성으로 무혈입성을 하였다.

서울을 지켜야 할 이흥립(李興立)이 대장도 이괄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던 까닭이다.

이 사품에 제일 원통한 개주검을 한 것은 기자헌(奇自獻), 김원량(金元亮) 등 사십여인이었다.

이들은 인조가 공주로 몽진하기 전에 이괄이와 내응할 염려가 있다는 죄목으로 무참히 살육을 당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월 초여드렛날이었다.

이때 평양에 주차하고 있던 도원수 장만(都元帥 張晩)은 병석에 누워 있다가 이괄이가 반란을 일으키어 영변을 떠났다는 정보를 받고 대경실색하여 부하 여러 장수를 모아 놓고 회의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원수 장만이 말하기를,

『이괄은 부원수의 직함을 가지고 있더니만큼 만여 명 정병을 거느리고 있고, 평소 항왜(降倭) 무사를 길르고 있어서 지금 우리가 거느리고 있는 수천 군사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은즉 굳게 성을 지키는 동시에 급히 각 읍에 전령하여 군사를 뫃아 들이는 도리밖에 없다.』

하는 비관을 토로하였다.

제장들도 그렇지 않다고 반대할 용의가 없었다.

그런데 실상 이괄은 평양으로 나와서 장만의 군사를 먼저 쳐 버리는 전략을 쓰지 않고, 지름길로 개천(价川)으로 빠져서 서울로 직행한 것이었다.

이 첩보를 받은 장만은 그제야 안심하고 회의를 열어 동병을 의논하고 안주방어사 정충신(安州防禦使 鄭忠信)을 선봉대장으로 하고 평양 판관 진성일(陳誠一)을 후군대장 천총 홍심(洪沈)을 척후장으로 배정하고 군사 약 이천 명을 거느리고 이괄의 뒤를 쫓았다.

이완은 안주방어사(安州防禦使) 정충신(鄭忠信) 장군의 한 개 부장(部將)으로 종군하여 평양을 떠났다.

이완은 천수와 헤어진 후에 천수와는 정반대로 평양으로 치달았다.

그의 생각에는 도원수 장만(張晩)이 평양에 있고 유명한 장수 정충신이 안주에 있을 것이며 연로 각읍에도 충의의 군사를 일으킬 수령이 있을 것이니 그들이 합세하여 이괄의 뒤를 추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서울서도 군사를 풀어 쳐들어오는 이괄의 군사를 막어 낼 것인즉 그러고 보면 이괄은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되어 필경 대패하고야 말 것이라고 상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평양으로 치달아서 마침 장도 원수의 동원령을 받고 들어온 정충신 장군의 군중으로 투신한 것이다.

이때에 평양에 동병된 군사의 총수가 일천 팔백 명 조금 넘었는데 그만한 군사로는 만여 명의 적군을 추격하기에는 부족하였지마는 출병하여 가는 도중에서 몇 고을의 군사를 소집하여 합세시킬 가망이 있다 하여 선봉대장 정충신이 총군사를 지휘하고 정월 이십육일에 평양을 떠났던 것이다.

이완이 장만 도원수의 직속 부하가 되지 않고 특히 정충신의 부하 군교가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이괄이 반란의 기치를 높이 날리고 영변성을 떠났다는 정보를 듣고 정충신은 급히 숙천부사(肅川府使) 정문익(鄭文翼)을 청해다가 자기 대신 안주성을 지키게 하고 곧 말을 달려 평양으로 들어와서 도원수 장만을 보고 속히 동원하기를 청하였다.

그랬더니 장만은 정충신의 충성과 용기를 칭찬하기커냥 도리어,

『나의 군령이 없이 어째서 성을 버리고 왔는가?』

하고 노발대발하여 군률로서 치리하겠다고 서둘렀다.

군률로서 치죄한다면 참에 처하여 군문에 효수한다는 뜻이다.

정충신은 분연히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나라에 급한 병변이 일어나서 그 위세가 시각을 다투는 이때 안연히 후방에 있어 각 읍에 동병 군령을 내리기를 게을리 하고 있는 허물은 고사하고, 대장 휘하에 달려와 급히 동원하기를 청하는 부하를 군문에 효수하는 것이 과연 군중의 사기(士氣)를 돋아주는 것이라면 자아 이 목을 베이시요.』

하고 눈을 부라리며 환도 자루로 대청 바닥을 치며 일어섰다.

정충신의 얼굴은 주홍같이 붉어지고 두 눈에서는 불똥이 튀는 듯하였다.

장만은 그 기세에 눌리기도 하였거니와 부질없이 자기의 위세만을 차리려던 잘못을 깨달았고 동시에 그의 용기와 지략이 탐나는지라,

『지금 내가 한 말은 평시의 군법을 말하여 그대의 뜻을 시험해 본 것이오.』

하여 웃음으로 그를 눙치고 어떤 군략으로 처하여야 옳을가를 물었다.

정충신은 하루를 지체하면 하루의 손이 있으니 빨리 동병하여 이괄의 배후를 치는 태세를 가춰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때 조방장 김모가 내달아서,

『정장군의 말씀은 즉일 동경하라 하시지마는 일이 중대하니만큼 택일하여 거병하심이 가헙니다.』

하고 바로 큰 군략이나 헌의하듯이 코를 벌름거리는 것을 정장군이 노안을 부릅뜨고 그자를 바라보며,

『부모의 병환이 위독하신 때에도 날을 가려서 가는가?』

하고 호령하는 바람에 그자는 자라목처럼 고개를 움찔하고 물러서 버렸다.

이리하여 동원은 정충신의 소청대로 즉일로 발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내막을 알게 된 이완은 자진해서 정장군의 휘하로 종군할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충직하고도 용맹한 장수의 밑에 있어야만 배울 바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장만이 거느린 군사는 황주(黃州) 신교(薪橋)란 땅에서 이괄의 군사와 싸우게 되었지마는 워낙 이편 군사가 너무나 적었던 관계로 드디어 선봉장 박영서(朴永緖)가 전사하는 등 전적은 이편에 이롭지 못하였다.

그러자 황해도 서흥(瑞興)에 이르러서 서울서 다른 길로 해서 내려온 도감대장 이수일(都監大將 李守一)의 군사와 함께하여 평산(平山) 땅에 이르렀더니 바로 그 전날인 이월 육일에 임진강 돛여울(제탄-猪灘)에서 이괄의 군사는 방어사 이중로(防禦使 李重老) 풍천부사 이영신(豊川府使 李榮臣) 연안부사 이인경(延安府使 李寅慶) 등이 거느린 군사를 쳐부수고 바람같이 서울로 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급한 형세로 인하여 인조가 공주로 몽진하게 된 것은 위에 자세히 적었거니와 장만이 파주(坡州)에 이르렀을 때 상감이 공주로 몽진하였다는 기별을 듣고 크게 낙심하여 휘하장수를 모아 어이 할 바를 의논하였다.

장만이 속 종에는 이제까지의 싸움도 매양 이편에 이롭지 못하였거니와 이제 이괄이 도성에 들어 갔은즉 이에 내응하는 군사도 있을 것이며 제반 군비가 한층 구비되어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입에 올릴 수는 없어서 부하 제장을 모아 놓고 장차 어이하면 좋을가를 상의하였다.

여러 군관들은 장만 도원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묵묵히 있고 오직 정장군만이,

『이제 서울을 지척에 두고 행군을 주저하시는 뜻이 무엇이오니까?』

하고 질문할 즈음에 문득 진중에서 와—하고 여러 군사가 환성을 올리었다.

환성은 또 거듭 올랐다.

장만 이하 제장은 그 환성에 놀라서,

『저게 무슨 소리냐?』

하고 그 소유를 알아보려 할 즈음에 장교 하나가 밖으로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장군이

『군중이 요란하니 웬 곡절이냐?』

『장군 휘하에 있는 이완 부장이 허공에 높이 떠 있는 수리를 활로 쏘아 단 한 살에 맞춰 떨어 뜨린 재주에 모두가 환성을 올린 것이옵니다』

『허공에 뜬 독수리를 쏘아 맞추다니 그 궁술도 희한허다마는 길상(吉祥)이다. 대승전의 조짐이다.』

하고 자기 역시 진중으로 나가 보았다.

이완을 중심으로 여럿이 그를 에워 두르고 방금 첫 살이 약간 빗맞았든지 허공에서 떨어져 내려오던 수리가 다시 날개를 가다듬어 높이 날으려 하는 것을 재처 활을 쏘아 이번에는 그 독수리는 별똥같이 떨어져 내려오는 중이었다.

사실은 공연히 장난삼아 날짐승을 쏜 것이 아니었다.

파주 진중 뒷산 송림 높은 나무 위에 두루미가 한 떼 자리를 잡고 거기서 새끼를 깃들으고 있는 것을 파주 사람들도 상서로운 일이라 해서 한 개 경치삼아 보고 있는 터인데 별안간 난데없는 독수리가 나타나서 두루미 새끼를 노리는 것을 마침 그 두루미 떼를 바라보고 있던 이완이 활로 그 독수리를 쏘아서 두루미 새끼를 구한 것이었다.

정장군은 이완의 궁술을 무한히 칭찬하고 그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게끔 되었다.

그뿐 아니라 여러 장수는 이완의 신묘한 재주에 심기일전하여 아무 다른 이론이 없이 서울로 진군하기로 의논이 일치되었다.


이때 이괄은 서울에 무혈입성(無血入城)을 하고 곧 선조대왕의 열째 아드님되는 흥안군 이제(興安君 李瑅)를 모셔다가 왕위에 앉히고 경복궁에다가 본진을 두었다.

인조는 공주로 몰려나가고 이괄이 쳐들어와서 새 임금을 올려세울 뿐 아니라 그의 군사 수만 명이 득실거리는 서슬에 여간 남아 있던 벼슬아치들은 이괄의 휘하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고 유도대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던 이흥립(李興立) 같은 사람도 군사 하나 움직여 보지 못하고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흥립 이대장은 광해군 때의 신하로서 인조반정 때에 반정군에게 내응하였더니 이제 또 이괄에게 항복하여 두 번째의 변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충신의 방책은 이괄이 채 숨을 돌리기 전에 들이치자는 것이다.

시일을 주어서 군사를 정비한 후에 치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만의 군사는 그날 밤으로 서울 교외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총유사 이서(李曙)의 군사를 몰래 낙산(駱山)으로 돌아가서 매복케 하고 신경완(申景碗)의 군사로 하여금 남산에 진을 치게 하고는 정충신의 군사를 비롯한 장만의 본진 군사는 정장군의 기하여 모아재(母岳峴)로서 안현 일대에 진을 쳤다.

높은 데에 진을 치고 치달아 올라오는 적군을 무찔러 버릴 계획이었다.

이괄은 관군이 먼저 진을 친 것을 그날 새벽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그래서 부하 제장에게 급히 동원령을 내리고 한명련(韓明璉)을 선봉대장으로 하고 이른 아침에 대거 출병하여 비탈 높은 위에 진치고 있는 관군을 치기 시작하였다.

전투가 시작된 당초에는 이괄의 군사가 한용하고 그 기세가 당당하여 좀처럼 승부를 판단키 어렵더니 이완이 말을 타고 내달아 선봉장 명련을 향하여 쏜 살이 틀림없이 그의 오른편 팔에 맞아 칼을 쓰기 어려운지라 이때부터 적군의 기세가 꺾이더니 천우신조로 문득 바람의 방향이 변하여 적군이 모진 바람맞이에 면하게 되었다.

쳐 내려가는 관군에게는 순풍이요 쳐 오르는 적군에게는 역풍인 데다가 수천 명 군사가 달리고 타는 북새통에 그 모래와 흙먼지가 적군의 면상을 휘몰아치게 되니 눈을 바로 뜰 수 없는 곤경에 빠졌다.

이것이 적군 대패의 원인이었다.

얼굴을 바로 두지 못하는 풍세에 이괄의 명령이 통일되지 못하여 대오는 지리멸렬 되고 전사하는 자의 수효만이 늘어가니 사기(士氣)는 무척 저상된 데다가 이괄이 대오를 바로잡기 위하여 징을 쳤더니 부하 군사는 그것을 퇴군하라는 군령인 줄 그릇 생각하고 모두가 발길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한번 발이 뜨기 시작한 군사를 다시 바로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기세를 바라본 관군은 일시에 비탈에서 내리 밀려 총공격으로 옮겨 들매 적군은 대패하여 군은 사산 도주하기에 정신이 없다.

『장만이 볼만이요 이괄이 꽹가리』

라는 동요는 이때의 경상을 노래한 것이다.

이완은 말을 달려 좌충우돌의 건투를 하면서도 적군 중에 있으리라고 믿어지는 박천수를 찾았다.

천수는 자기를 배반하고 적군에 투신한 사람이지마는 그의 지략과 힘을 아는 지라 될 수 있으면 그를 사로잡아 일시의 그른 생각을 청산하고 다시 자기와 손잡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자 이완은 팔을 다친 명련이 수십기의 부하의 옹위를 받으며 도주해 가는 일행 중에 박천수인 듯한 군사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완은 요행히 그가 천수인 것을 바라며 그 일행의 뒤를 쫓는 중 문득 정장군 휘하 수십 기가 내달아 명련과 이괄이 뒤를 쫓으며 활을 쏘았다.

공교히 그 살은 이완이 천수라고 인정한 위인에게 들어맞아서 말께 떨어졌다.

이괄과 명령의 뒤를 쫓는 이편 군사는 군사 하나가 살에 맞아서 낙마했거니 말거나 목적은 이괄과 명련을 잡기에 있는지라 그대로 이괄의 뒤를 쫓아 바람같이 달려갔다.

이완은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어 낙마한 위인의 곁으로 달려가 본즉 과연 그는 천수이었다. 살은 어깨에 맞았지마는 워낙 장사의 한 사람이라 그쯤의 상처로 정신을 잃을 사람은 아니지마는 낙마할 때에 돌부리에 머리를 친 것이 과하여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완은 말께 내리어 속옷 자락을 찢어서 상처를 동여매주며,

『이 사람 정신을 차리게 천수 형.』

하고 몸을 흔들었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머리를 들어서 이편을 바라본다.

『이완일세.』

『……?………』

그는 꿈인가도 싶은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게 이완 나를 몰라 보는가?』

『모르다니.』

박천수는 힘없이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었다.

『부끄러우이.』

천수의 두 눈에 눈물이 지적인 듯하였다.

『그런 소리는 나중에 허구 내 말에 오르소. 운신허지 못하겠는가?』

『왜.』

천수는 살에 맞은 상처가 중상이 아니고 일시 뇌진탕으로 정신이 몽롱하였던 것이 이제 정신이 돌고 보니 무릎을 짚고 벌떡 일어섰다.

이완은 갑옷 밑에 입은 평복 윗옷을 벗어서 천수를 주며,

『그 복색으로는 빠져나가기 어려우니 이걸 입고 가도록 하고 싸움이 끝나거던 정충신 장군 휘하 이완 부장이라고 나를 찾어 오게.』

하고 옷을 갈아 입게 하였다.

이때 말을 달려오는 졸개 하나를 만났다.

『여보게.』

『네에—.』

『자네 나를 모르겠나?』

『왜 모르겠읍니까, 파주서 독수리를 쏘으신 이 부장이 아니시오니까?』

『그런데 자네 지금 어디로 가나?』

『걸어서 오다가 말 한 필이 있기에 집어 타구 앞으로 진군한 진영으로 탐색하러 가는 길이올시다.』

『그럼 됐네. 자네 이분을 그 말에 좀 태워다가 성내로 들어가서 놓아드리게, 이분은 내 친구인데 이괄의 군사에게 잡혀 나와서 큰 고생을 허구 살까지 맞아서 고생하는 터일쎄.』

하고 이완은 그 졸개의 대답도 듣기 전에 천수를 부축하여 말 등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자기 역시 급히 말을 타고 정장군의 뒤를 쫓았다.


이괄과 명련은 부하 십수 인을 거느리고 간신히 수구문(水口門)으로 탈출하여 광나루를 건넜다.

광주(廣州)읍은 지호지간에 있다.

이괄의 생각에는 이번 서울 싸움에 일패도지의 참상은 당했지마는 광주읍을 비롯한 동남 각 고을을 위협하며 동병케 하여 가지고 재기를 꾀해 볼 결심이었다.

이괄을 비롯한 이수백(李守白), 기익헌(奇益獻) 등 장수와 졸개 수십 명을 거느린 그는 광주읍 관아를 급습하였다.

이때 서울의 소식을 알지 못하는 목사 임회(林檜)는 주장낭패(周章狼狽)하여 몸으로 이괄에게 항거하는 이외에 별도리가 없었다.

약간의 관졸들은 이괄의 기세의 놀래어 감히 손을 드는 자 없었고 임목사는 필경 이괄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서울서 뒤를 쫓아 내려오는 군사가 이미 나루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이괄은 대경실색하여 광주에서 묵지도 못하고 그길로 길을 떠나 이천(利川) 땅으로 들어섰다.

그리하여 그들은 「먹방이 마슬」이란 곳에 이르러 밤을 지나게 되다.

이괄과 이수백・기익헌의 세 사람은 졸개들 중 남아 있는 칠팔 인을 촌가 몇 집에 나누어 재우고 자기들은 한집에 사채를 잡아들고 닭을 잡아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중에 이괄은 장차 취할 방침을 물었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승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도 일대에서 불평의 무리를 모아 재거하겠다는 막연한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러자 밤이 이슥하고 술이 대취하여 세 사람은 두 방에 나누어 잤다.

건넌방을 치워 이괄을 자게 하고 수백과 익헌은 뜰 아래 방에서 자기로 되었다. 각기 헤어져 자리에 누운지 한 시각은 넘어서 이웃집에서 닭 우는 소리가 잦았다.

『공민이 잠들었나.』

하고 이수백이 나지막히 이렇게 묻는다.

공민은 기익헌의 자(字)이다.

『아직 잠들지 않었네마는 왜 그래…….』

『이리 가까이 좀 오시게.』

기익헌은 부시시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끌고 수백이 가까이 다가서 펴고 누웠다.

『왜 그래?』

『내두사(來頭事)를 생각허니 잠이 아니오네 그려.』

『나 역 그래서 못 자고 있지 않은가.』

『피차 같은 사정이네마는 어쩌면 좋은가.』

『내두에 아무 성산이 없어.』

『그러기에 말이지 인제 시기를 놓치면 팔도강산에 몸둘 곳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하고 익헌은 부시시 일어나 앉으며,

『일찌기 서둘러야지 시기를 놓치면 귀순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물론이지.』

『그럼.』

하고 익헌은 캄캄한 가운데서 수백의 손을 잡아 당기어 무엇인지를 신호하였다.

『음…….』

하고 수백도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밖에 별도리가 없지.』

그리고 나서도 둘은 잠시 귓속말을 주고 받고 하더니,

『나에게 맡기게 내 허지.』

하고 수백이 머리맡을 더듬거리어 환도를 집어 들고,

『유지 있나.』

『있어.』

『됐네 이리 주게.』

하여 한 손에 환도를 들고 한 손에 유지를 들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혼자서 실수 없겠나?』

『자고 있는 것쯤 무슨 실수.』

하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수백이 혼자만을 보내고는 안심이 되지 않는 듯 익헌도 조용히 뒤를 따라나선다. 그의 손에도 환도가 들려 있다.

어디선지 개 짓는 소리 요란하다.

더구나 이들에게 다행한 일은 이 초가의 집주인 남녀노유는 겁들이 나서 말끔 동네 딴 집으로 옮겨가서 자고 있는 것이었다.

수백은 뒤를 따라나선 익헌을 방문 밖에 세워 놓고 건넌방 문을 조용히 열고는 곧 방안으로 들어섰다.

찬바람에 잠이 깨일가 염려한 것이다.

수백이 방으로 들어가자 이내 곧 사람의 부스대기 치는 소리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약간 들렸는가 하면 수백이,

『다 했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익헌은 곧 방으로 달려가서 황까치에 불을 달려 가지고 건넌방으로 올라가 기름 등잔에 불을 다렸다.

처참한 광경은 이미 이부자리로 덮어 있고 이괄의 수급(首級)만이 유지 위에 놓여 있다.

익헌은 홋이불 하나를 뜯어서 유지에 싼 수급을 다시 홋이불에 뭉쳐 싸고

『자아 이 밤으로 이곳을 떠야지.』

『여부가 있나.』

이러한 참극을 한 시간 미만에 단행한 이수백과 기익헌은 그 새벽으로 이천을 떠나서 서울로 올라왔다.

이괄은 필경 휘하장수의 손에 죽은 것이다.

두 사람은 그것을 받침으로써 반란군에 가담하였던 죄를 용서받는 것이다.

비굴하기 짝이 없는 소위지마는 팔도강산에 발을 디딜 촌토가 없게 된 그들의 처지로서는 그 길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 공주로 파천한 임금이 환어하기 전이다.

임시 서울의 질서를 맡은 도원수 장만 도감대장 신경신(申景愼) 등은 이 수급을 곧 공주 행재소(公州 行在所)로 역마 띄워 급송하여 국왕의 진념을 편안케 하고자 하였다.

공주 행재소인 감영에서는 정문 내외에 성대한 군위(軍威)를 베풀고 백관 유생들이 각기 관서를 지키어 배열하였다.

적 괴수의 수급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적군의 완전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감은 용포를 벗고 군복으로서 나타나매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은 수급을 고히 싸서 들고 진문 밖에 대령하였다.

상명을 받들은 선전관은 그 수급을 받들어 어전에 올리니 병조판서는 어전에 나아가 국궁 배례하며 이괄의 수급을 얻게 된 전후 경과를 주달하는 것이었다.

성대하고도 위의 있는 승전의 행사이었으며 적괴가 죽은 이상 이제 상감은 곧 행재소에서 떠나야 할 것이었다.

적군에게 쫓기어 허둥지둥 서울을 탈출하던 임금, 동재기 나루터에서 건너갈 나루조차 부족하여 불안의 일시를 보내던 참담한 임금의 행차.

그것이 이제는 불과 며칠 되지 못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괴수의 수급을 얻어 다시 재기의 후환조차 일소되었으니 상감의 안심은 물론 호종한 벼슬아치에게도 일양내복(一陽來復)의 기쁨이 흘렀다.


인조가 반정 성공 이래 처음 당하는 대란(大亂)도 천우신조로 무사히 평정된 후부터의 인조는 예의 내정정돈(內政整頓)에 힘을 썼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반정공신들은 자기들의 공훈을 과장하여 모든 권세를 자기들 손에 쥐려 하고 여하의 벼슬아치는 그들이 반정에는 유공타 하더라도 나라의 일은 지금부터의 정치 여하에 달린 것인즉 모름지기 널리 기용하여 중요한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월감을 가진 공신들 일파는 그 주장을 아니꼽게 여겨서 양자간의 티각태각은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서 수년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 국제의 사정은 커다란 변동이 일어나서 이제까지 잠을 자고 있다 싶이 된 우리의 대외정책에 위기가 박도하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인조반정 이전 광해군 시대로 돌아가서 사유 발생의 전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해군 즉위 초에 만주(滿洲)에 「누루하치」(奴爾哈赤)라는 영걸이 일어나서 여진 부족을 통일하여 나라를 세우고 천명(天命)이란 연호를 쓰며 나라의 이름을 후금국(後金國)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광해군 십 년에는 무순(撫順)성을 함락시키고 명나라의 군사를 서쪽으로 쳐 쫓기 시작하였다.

명나라는 자기의 영토 가운데서 나라 하나가 생긴 꼴이 되었으므로 그냥 두고 볼 경위가 못 되어서 양호라는 장군을 원수로 하고 유정이니 이여백(李如柏)이니 하는 장군을 부원수로 삼아서 후금국을 치게 하고 응원군 파견을 우리나라에 청하였던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조정에서는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원조의 은의가 있는 상국인즉 그를 도웁지 않는다는 것은 의리에 벗어난 짓이라 해서 강홍립(姜弘立) 장군을 도원수로 하고 평안 병사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로 삼아서 남북 오도의 군사 일만삼천 명을 동원하여 만주로 보냈던 것이다.

조선 파견군은 명장 유정 장군의 휘하로 편입되어 만주 흥경(興京) 부근 부차(富車)라는 벌에 이르렀더니 마침 그때 누루하치의 군사는 명나라 주력부대와 무순성 동편 「살으호」 산에서 만나 대격전을 하게 된 결과 명나라 군사는 여기서 대패를 당하여 다시 일어날 기운조차 없게 되었다.

누루하치의 후금국군은 승승장구하여 명선 연합군(明鮮 聯合軍)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는 사기가 저상되어 도저히 그 강력한 창뿌리를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이리하여 여기서도 명군은 대패하여 부원수 유정은 전사하고 우리의 장수 강홍립은 우리 군사를 거느리고 후금국에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싸움에 우리 조선군이 쌈다운 쌈도 해보지 않고 항복해 버린 점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애당초 광해군은 명나라의 운명이 쇠약해가는 것을 느끼고 만주군의 악감을 사면서 명나라를 도울 생각이 적었다.

그러나 임진난에 명나라의 힘을 빌은 의리가 있고 또 비변사(備邊司)의 벼슬아치들이 고루해서 명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는 충심으로 파병하기를 고집하였기 때문에 응원을 보내기 전에 광해군이 도원수 강홍립을 불러서 조용히 귀뜀을 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응원병을 보냄으로써 명나라에 대한 의리는 세우고 거기 가서 물계를 보아서 금국에게 내통하여 어느 기회에 항복을 해 버림으로써 금국의 호감을 사두란 것이다.

이것은 강홍립 개인에게 관해서는 치명적인 행동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왕의 밀탁과 나라를 위해서는 그리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국 사이에서 수서양단(首鼠兩端)을 잡는 행동이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러한 의심과 풍문이 돌기에 충분한 조선군의 태도이었다.

하여간 연전연승의 전과를 얻은 누루하치는 천명 六[육]년에 심양(瀋陽)을 함락시키고 나아가 요양(遼陽)을 빼앗았다.

그리하여 신궁을 태자하(太子河) 동쪽에 건설하고 그곳을 수도로 하려다가 다시 심양이 유리한 것을 알고 천명 十년에 심양을 수도로 정하였던 것이다.

그후 후금국에서는 수차 사신을 보내서 우리에게 수호(修好)를 청해 왔기 때문에 우리 조정에서도 수차 회답 사신을 보내고 했더니 이것을 안 명나라에서는 조선의 이반을 분히 여겨서 수차 책문사를 보내서 우리의 태도를 감시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형세에 있을 즈음에 후금국군은 심양과 요양을 함락시켰기 때문에 명나라와 우리와의 교통은 일시 두절되고 말았다.

그러자 천명 十一[십일]년에 누루하치는 세상을 떠나고 태종(太宗)이 그 뒤를 이었고 우리도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등극을 하여 북인(北人)이 몰려나고 서인(西人)이 갈아드는 판국이 되자 대외정책이 변해서 후금국(청)을 배척하는 기세가 늘었던 것이다.

이때 마침 이괄의 반란이 있어서 그것이 평정은 되었지마는 이괄의 동지 한명련(韓明璉)의 아들 윤(潤)이란 자가 만주로 도망해서 강홍립에게 의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강홍립은 태종 휘하 진중에 있어서 상당히 후대를 받고 있었으므로 육체의 고통은 없었다 할지라도 정신상 고통은 상당하였다.

더구나 풍문에 듣는 바에 의하면 정부의 요인들이 강홍립 자신을 마치 매국적인 양 공격하고 있다는 소리에 불쾌한 감정이 끓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윤이 그에게 투신한 것이 그런 때이었다.

강홍립은 한윤을 진중 자기 처소로 맞아 들이어 마치 자기의 자질을 대하듯 반가이 대하였다.

더구나 그는 이괄의 심사에 깊은 동정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음도 한윤을 반가이 맞는 동기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저녁상을 함께 받고 술까지 대접해 주며 강홍립은,

『그래 그 서인 놈들이 나를 그렇게까지 평한다는 말인가』

『이루 어찌 다 옮기겠읍니까, 그중에는 귀에 담지 못할 욕을 공석에서 하는 자까지 있었읍니다.』

『음!』

하고 강홍립은 담이 끓어 오르는 소리를 내며 이렇게 신음하였다.

『죽일 놈들』

『그중에도 김류 같은 놈은 이번 난통에 (이괄 난) 제 계집과 가산을 피난시키느라고 왕을 따라가지 못한 놈이 나라의 충신은 제 혼자인 양 곤댓질을 하며 강홍립의 가족은 역적의 가족으로 인정하자고 주장을 했드랍니다.』

하고 강홍립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그놈은 원래가 천하에 용납치 못할 죽일 놈이로고.』

하고 두 볼의 살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한윤은 강홍립의 마음을 손에 잡아 논 후에 상을 물리고 장시간 밀의를 하였다.

밀의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지금 명나라와 조선의 육로가 두절되었기 때문에 조선은 철산 피도(皮島)―가도(蝦島)에다가 진(鎭)을 두고 있는 모문용(毛文龍)과 기 맥을 통하고 해로로 명나라와 연락을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몰래 왜국과 관을 통해서 원병을 얻어 청을 치려고 한다는 이유로 청태종에게 권하여 조선을 치게 하자는 의논이었다.

이것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제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청에서는 벌써부터 조선의 태도를 밉게 보아오는 중이며 최근에 이르러 피도에 웅거한 모문용이 제해권을 가지고 해상으로 명나라의 보급을 받아 청군의 배후를 어지럽게 하는 폐단이 심하여졌기 때문에 어느 때나 한번은 조선을 쳐서 후환을 없애고 모문용을 쳐 없애야만 안심이 될 형편에 있었다.

그런 경위에 있는 것을 강홍립은 잘 알고 있었다.

요는 그 시기다. 청군의 주요 목표가 산해관을 넘어 중원에 돌아가서 북경을 점령하는 데에 있은즉 조선을 치는 것은 그 커다란 목적을 실천하는 전략상에 지장이 없어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기를 잘 가리어야 될 것이다.

강홍립은 청태종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이러한 경위를 얘기하고,

『어디 틈을 보아서 권해 봄세.』

하였다.

한윤은 미지근한 강장군의 태도에 펄쩍 뛰면서

『해 봄세란 무슨 말씀이오니까, 꼭이 성공을 하도록 역설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말에 곧 응하게 하려면 제일 중요한 말이 하나 있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무어.』

『이것입니다』

하고 한윤은 강장군의 눈앞에 왜(倭)자 하나를 써 보이었다.

『알았어.』

하고 강장군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들을 은근히 위협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한 일건이다.

왜군이 강한 것은 임진역에 이미 시험된 바이라 들어서도 알고 보아서도 아는 일이다. 그 왜군이 조선을 도와 만주에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다.

그런 심리를 강은 잘 알고 있다.


강홍립과 한윤의 밀담이 있은 지 이삼일 후 강은 패륵아민(貝勒阿敏)을 조용히 만나게 되었다.

패륵아민은 태종의 아우 되는 사람으로 유력한 종실이다.

강홍립은 될 수 있으면 태종을 면회하고 싶었지마는 태종은 국왕의 지위에 있는 터이라 강홍립 같은 외신이오 항장을 독대하여 만나기를 허락할 리 없다고 생각하였다.

만나자고 청하기도 매우 송구한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바로 자기의 직계 상장인 아민을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통해서 아민에게 후금국에 관한 중대한 헌의를 하겠다는 말을 보낸 결과 패륵아민은 쾌히 그것을 승락한 것이었다.

면회를 신청한 이틀 후 저녁에 아민은 강장군을 만찬에 청하였다.

그래서 강은 아민의 환대 중에 만찬을 마치고 별실에서 조용히 마주 앉았다.

『그래 장군이 우리나라 국책에 관한 중대한 제의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강장군은 곧 품에서 한 봉 서류를 내서,

『그것은 서투른 말로서 아뢰는 것보다 글로서 올리는 게 좋을가 해서 여기에 기록해 가지고 왔읍니다.』

하고 그 서류를 아민에게 올렸다.

『그것 참 지당한 말씀요.』

하고 아민도 그 처사에 만족하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그 서류를 받아서 펴들고 읽기 시작하였다.

묵독해가는 동안에 몇 차례나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조리 있는 제의에 만족한 듯하였다.

그러자 끝에 가서 최근 조선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조선 조정은 일본과 종종 교섭을 거듭하여 구원병을 청하려는 기밀이 보이니 만일 일이 그렇게 된다면 후금국으로서는 강용하기 짝이 없는 왜군과 조선군의 배후 공격을 받게 되는 터인 즉 일이 그렇게 되기 전에 조선이 명나라와 내응하여 후금국을 저해한다는 죄목을 내세우고 조선을 쳐서 후고의 힘을 덜고 동시에 피도에 근거를 잡고 있는 모문용을 치라고 권한 조목에 이르러서는 양미간에 주름을 잡고 깊이 고려하는 바 있는 듯하였다.

왜군이 조선군과 합세하리라는 구절에는 적지 않은 불안과 위협을 느낀 양 싶었다.

그것이 결코 허탄한 상상이 아니다. 족히 있을 법한 일이며 얼마 전에 모문용의 부하인 듯싶은 조선인 포수 일대가 스스로 왜군이라 가칭하고 강을 건너 즙안 방면에 나타난 일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 힘들지 않고 쳐 무찌르고 그것이 왜군이 아니라 조선군의 가칭이란 것이 들어나기는 했지마는 일시는 왜군이 왔다고 헛소문이 떠돌기까지 하였다.

『최근 조선 조정의 정보란 것은 누가 장군에게 알려 왔』

하고 패륵아민은 그 서류를 접으며 말하였다.

『우리 조정에 득죄를 하고 이리로 망명해 들어온 사람이 전하는 말이며 그 사람은 비록 조선 조정에 득죄는 했을망정 그것이 조선의 조정을 전복시키려는 정치의 죄인이지 다른 도의상의 죄인은 아니올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름이 뭐유.』

『한윤이라 합니다. 전에 이괄 반란이 있었던 것을 아십니까?』

『약간 들어서 아오.』

『그때 반란의 부장으로 있었던 한명련이란 사람의 아들입니다』

『알겠오, 알겠오.』

하고 아민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한윤이란 위인이 무슨 까닭으로 자기 나라의 불리한 정보를 전하여 오는가에 대한 의혹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폐하께서 어떤 처분을 하실는지 모르지마는 내 힘들여 폐하께 말씀 올려 보오리다.』

이렇게 아민은 쾌락을 하였다.

『그럼 물러가서 무슨 하회가 계시기까지 고대하고 있겠읍니다』

하고 아민에게 하직하고 나왔다.


아민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서류를 받아 읽은 태종은 하루 이틀 숙고의 여지를 두고 즉답을 하지 않았다.

태종으로 말하면 지금 명군과 어느 때 또 큰 싸움을 하게 될지 모르는 판에 군사를 나누어서 조선을 친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조선을 쳐야 할 필요는 간절히 느낀다. 그러나…….

둘째 문제는 조선을 치는 싸움이 길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될 수 있으면 수십 일이란 단시일에 조선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단연 출병을 허락할 심사이었다.

그래서 아민과 강홍립을 어전에 불러 드려서 조선을 치는 군략에 대한 상세한 질문이 있었다.

여기서 강홍립은 조선의 현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압록강을 건너 수십 일이면 도성을 함락시킬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였다.


한심한 일이었다.

한윤은 자기 부친이 이괄 반란군에 가담하여 죽은 보복을 하기 위하여, 그리고 강홍립은 적군에게 항복한 허물을 씻어버리고 자기에 대한 우리 조정의 냉대를 보복하기 위한 사람으로서 외국 군사를 이끌고 본국을 치러 온다는 것은 침뱉어 욕할 심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태종은 아민에게 군사 삼만을 내주어서 강홍립을 향도로 인조 오년 정월 한창 추운 동절에 압록강을 건너 바람같이 쳐들어 왔다.

명목은 광해군(光海君)을 위하여 설분케 한다는 것이다.

대체 가소롭고도 괘씸한 일이다 광해군이 원통히 몰려 나갔던 말던 남의 나라의 내정에 관한 일을 시비하여 출병을 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불법 침략이었던 것이다.

후금국군은 의주를 습격하여 부윤을 죽이고 용천(龍川)을 함락시키고 군사를 나누어 피도로 모문용을 치게 하여 그를 신미도(身彌島)로 내쫓고 그리하는 동안에 주력부대는 청천강을 건너서 안주(安州)를 드리쳤다.

이 싸움에 병사 남이흥(南以興) 목사 김준(金浚) 등 장수들이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마른 잔디에 불이 붙듯 적군의 행군은 놀랄 만큼 빨랐다.

이때 우리의 조정에서는 병조판서 장만(張晩)을 도원수로 하여 나아가 호군을 막아내게 하고 각 도에 증병을 하였다.

장만은 황해도 평산에 이르러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평안감사 윤선(尹선)은 안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정보에 혼비백산해서 도망해 버리고 황해 병사 정해서도 부지거처가 되는 바람에 장만이 역시 겁이 나서 개성으로 퇴군하였다.

이때 이완(李浣)은 장만 도원수 휘하의 조방장으로 백여 인의 군졸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원수의 퇴군령이 내리자 그는 환도로 마루청을 치며,

『퇴군이란 뭐냐. 퇴군이란 웬 소리냐.』

하고 분개하였다.

『병법상 퇴진하는 게 옳다고 보신 게 아니겠읍니까.』

하고 곁에 있던 부장 하나이 이렇게 위안을 하였다.

『무슨 소리 망풍이 도주란 이걸 두고 하는 말이야, 나아가 싸워야 하는 것이지』

『이길 승산이 있읍니까.』

『없지.』

『이길 승산이 없는데 싸워서 군사를 많이 죽이는 게 어리석은 일이 아닐가요.』

『죽는 게 싫으면 당초에 싸우지 못하는 것이지 우리 군사는 이 나라의 주력이야 주력. 군사가 싸움을 피하여 퇴진한다면 어디까지 퇴진하자는 거야 퇴진하다가 시지부지 저버린다면 차라리 크게 한번 싸우고 지는 것이 장부다운 일이 아니냔 말야.』

하고 이완은 씹어 뱉듯 말해 버리었다.

그러나 군 전부가 퇴군을 하는 마당에서 이완 혼자서 겨우 군졸 백여 명을 데리고 버티어 보았자 일이 되는 것도 아니며 또 일개 조방장으로서 도원수의 군령을 어길 수도 없는지라 하는 수 없이 이완도 함께 퇴군하여 개성에 이르렀다.


이 정보가 우리 조정에 도달한 때의 조정의 당황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별도리 없이 피난하는 방책을 토론하게 되었다.

난을 피하여 도망하자는 것이다. 분하고 절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수도(首都)에 농성(籠城)하여 적군과 싸우다 기진맥진해서 성하에 맹세를 할지언정 걸핏하면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일이냐.

인조가— 상감이 영의정 윤방, 김류, 이귀, 최명길 등을 데리고 서울서 도망해 나가는 것을 본 장안 백성은 놀랐다.

『호인 놈들이 쳐들어 온다.』

『호인 놈들이 처들어오면 늙은이와 어린애만 남겨놓고 모조리 죽인다.』

『계집이란 계집은 호인 놈에게 욕을 보지.』

이런 풍문이 바람같이 휘돌았다.

풍문은 풍문이라 할지라도 당연한 풍문이다.

호군이 압록강을 넘어서 바람같이 쳐들어 오는 길에서 가진 행악을 한 것으로 보아서 무리 아닌 풍문이다.

상감이 강화도로 도망해 들어가는 동안 장안 백성들은 남부여대하고 피난하였다.

장안은 텅 비인 죽은 시가가 되고 말았다.

유도대장(留都大將)의 직분을 가진 김상용(金尙容)도 초조 불안하였다.

원래 무인 출신 장만도 겁이 나서 개성으로 퇴진했거든 문신 출신인 김상용이 기를 써 보았자 아무 힘도 없을 것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약은 위인들은 다 빠져나가고 왼 못된 제비를 뽑은 것이 유도대장이다.

이러는 중에 호군은 황주(黃州)에 들어와서 잠깐 유진을 하였다.

그들은 조정이 국왕을 모시고 강화도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받었다.

강화도로 몽진을 하였다면 이것을 치는 데에는 물을 건너야 할 것이고 그리하려면 자연 시일이 걸릴 것이다.

이것은 고려 고종 시대의 지나간 역사에 비추어 보더라도 알 일이다.

호군은 시일이 걸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다. 이것은 태종의 명령도 있었고 사태로 보아서도 그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황주에 유진하고 군사(軍使)를 강화도로 보내서,

一, 땅을 떼어 줄 것.

二, 모문용을 징벌할 것.

三, 군졸 일만 명을 동원하여 명나라를 치는데 합세케 할 것.

의 세 가지 조목으로서 강화를 권고해 왔던 것이다.

호군의 총지휘자 아민은 군사를 보내놓고도 안심할 수 없다 하며 행군을 다시 시작하여 우리의 도성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그랬더니 부하 장수들이 군사를 보낸 이상 그 하회를 보고 행군하는 것이 가타 하여 평산(平山)에 이르러 다시 유진을 하게 되었다.

평산서 강화도까지는 겨우 백여리의 거리밖에 아니 된다. 만일 그들이 급진하여 쳐들어온다면 하루의 길이다.


인조는 필경 청병과 강화하는 것이 목하의 위급을 면하는 단 한 개의 길인 것을 깨닫고 마침 강화하기를 권고하러 강화로 들어온 청장 유해(劉海)와 강화에 관한 서문(誓文)을 교환하여 싸움은 그치고 말았다.

그 후 청군은 강화조건을 무시하고 수시로 압록강 건너로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백성의 곡식과 의류 등속을 약탈해가고 부녀를 능욕하는 등 불법행위가 점점 늘어갔다. 뿐만 아니라 명목은 가도 섬에 있는 모문룡을 친다는 것에 빙자하고 들어와서는 실상은 관가의 창고를 부시고 전곡을 탈취해 가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우리 조정에 도달하는 대로 청국을 배척하는 기세가 비등하고 장령 홍익한(洪翼漢)—나중의 삼학사의 일인으로 봉천으로 잡혀가서 죽은 사람— 같은 이는 때마침 들어온 청국의 사신을 목베이라고까지 비분강개하였다.

때마침 청국의 사신이 와서 따는 이제까지 형제의 나라로 지내왔거니와 지금부터는 군신 부자의 나라로 지내자는 엄청난 요구를 해왔으며 청태종에게 황제의 존호를 올리게 하였은즉 조선에서도 그에 대한 절차를 밟아 축하하는 표를 올리라고 요구해 온 것이었다.

인조는 국토의 안전을 위해서는 굴복하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눈을 감고 복종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마는 조정신하들의 비분강개의 기세에 눌려서 사신을 불러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일변 비변사(備邊司)에 전교하여 팔도 도백에게 국난방비의 예비동원을 명령하였던 것이다.

이때에 청국사신 자신도 조선 정부 상하의 심상치 않은 기세를 눈치채고 은근히 겁을 집어먹고 있을 즈음에 정부로서 사람이 나와서 아침에 대궐 서편에 천막을 치고 거기서 국서를 받겠다는 기별을 해왔다.

사신은 아니 갈 수가 없어서 이튿날 아침에 그곳에 이르자 바람이 몹시 불어서 천막 자락이 펄럭거리는 틈에 바라본즉 천막 뒤에 무기를 가진 군관이 수 인 숨어있는 것이 보이었다.

청사는 대경실색하였다. 사신을 죽이라는 공론이 비등하다더니 과연 나를 죽이자는 것이로구나 하고 천막 앞에 매어 있는 말 한 편을 빼앗어 타고 도망을 하였다.

사진은 도망해가는 도중에서 각도 수령에게 보내온 배호선전(排胡宣戰)의 선유문 한 장을 얻어 가지고 강을 건너가 버리었다.

이것이 제이차 호군 습래의 원인과 동기가 되었다.

태종이 친히 십만 대병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오고, 선봉장 예친왕이 거느린 수만 군사는 봉천을 떠난지 불과 십여 일에 바람같이 서울 근처에 밀려왔다.

이것이 곧 병자호란이다.

적군의 귀신같은 신속한 행군에 놀란 우리 조정에서는 어제까지 호언장담으로 오랑캐를 치자고 떠들던 위인들도 오늘은 풀이 죽어서 말 한마디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은 그들의 낯을 보기 차라리 미웁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초조망조하여 군신의 낯을 둘러보는 상감을 볼 때 그는 차마 그냥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제의를 하였다.

『호군이 미웁게 보지 않은 중신 두어 사람에게 휼하기 위한 술과 고기를 들려 적진에 보내서 출병의 이유를 묻고 하는 동안에 전하께서는 먼저 빈궁 왕자를 강화로 출하시고 이어 상감께서 세자와 백관을 데리시고 강화로 들어 가시는 것이 상책일가 하오.』

하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물론 그 도리밖에는 없는 일이다.

『그럼 누가 적진에 가야 할 것이요.』

하는 왕의 조급한 하문.

『신이 불민하오나 판중추 이경직 대감과 함께 가오리다.』

최명길은 남이 지명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가 자천하였다.

모두의 눈치가 자기를 지명할 것이 분명한 이상 차라리 자천하고 나서는 것이 선선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다. 청군은 왕실이 강화로 도망해 들어갈 것을 짐작하고 군대를 양천강(陽川江) 일대로 파송하여 강화로 들어가는 길을 막아 버리었다.

인조는 하는 수 없이 급히 길을 고쳐잡아서 남한산성으로 올랐다.

이리 하여 남한산성 농성 四十여 일에 하는 수 없이 항복을 하게 되어 송파 진두에서 일대 비극이 연출된 것은 여기에 상기할 필요가 없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鳳林)의 두 왕자는 아버지 인조가 태종 막하의 언 마당에 굴복하고 엎드리어 이마를 조아리는 참담무비한 광경을 태종 곁에 앉아서 내려다 보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태종의 두 왕자로 하여금 이 참담한 광경을 우정 보게 한 것이다.

청국에 반항하는 자는 이 꼴을 당한다는 위협이다.

이날 청태종은 두 왕자를 볼모(사람을 담보로 잡아두는 것)로 잡아 두었다가 함께 철병하였던 것이다.

그 후에 우리나라의 형편은 말이 못되었다. 청국에 대해서 매년 궐하지 못하는 사신이 네 번 있었다.

동지(冬至) 정삭(正朔) 성절(聲節) 세폐(歲幣)의 네 번인데 이것은 일정한 사절이거니와 임시로 사은사니 주청사니 고부(告計)사니 하는 사신이 들어가게 되는데 사신 하나가 들어갈 때마다 방물(方物)을 가지고 가는 것은 물론이지마는 그 중에도 세폐사가 가지고 들어가는 예물은 막대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황금이 백냥 (黃金 百兩)

은자 일천냥 (銀子 壹千兩)

백지 일천권 (白紙 壹千卷)

마포 일천사백필 (麻布 壹千四百匹)

각색 면주 일천필(各色 綿紬 一千匹)

무명 일만필 (綿布 壹萬匹)

호피 일백장 (虎皮 壹百張)

등등의 삼십여 종의 토산물이다.


두 왕자—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이래 팔년 동안을 낯설은 이역(異域) 풍토에서 가지가지의 굴욕과 압박 아래에서 고생을 하였다.

때로는 태종의 정명군(征明軍)에 종군하여 적군에 대한 시위의 선전물로 이용도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허다한 곡절도 많았다.

삼학사(洪, 尹, 吳)가 잡혀 들어와서 죽기도 하였고 당시 영의정 최명길이가 평양 병사 임경업(林慶業)과 공모하여 승 독보(獨步)를 명나라로 보내서 내통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청태종은 우리 정부에게 최명길과 임경업을 잡아 보내라고 엄명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봉천(심양)으로 가는 길에 임경업은 도망하여 해상으로 명나라로 들어가고 최명길만이 심양에 들어와서 구금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자 태종이 죽고 세조(世祖)—順治—가 나이 겨우 네 살 먹은 어린 왕자로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섭정으로 있는 예친왕은 주력을 기울이어 산해관(山海關)을 돌파하려는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 싸움에 우리의 두 왕자도 종군하였다.

이때 명나라의 군중이 쇠잔하여 쓰러져가는 큰 기둥을 버틸 힘이 없는 데다가 서북방 일대에 큰 흉년이 들어서 농민이 도적이 되고 그 도적 자체 역시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를 벗겨 먹은 참상으로 인심은 극도로 험악하게 되었었다. 이때 이자성(李自成)이란 도적 괴수가 굶주리는 토병을 모아 가지고 복경을 드리쳤던 것이다.

한창 당년의 명나라 같으면야 그까짓 도적 괴수의 이자성쯤이야 문제도 아니지마는 지금의 명나라 조정은 제각기 먹을 것을 마련해 가지고 뿔뿔이 도망해 버리는 한심한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명나라 황제 숭정(崇禎)이 적 괴수 이자성이 벌써 북경성 서교에 습내하였다는 비보에 놀라서 일어섰을 때에는 궁중에는 몇 시신•환관•여관들이 남아 있을 뿐 중신이란 중신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궐은 텅 비인 고목 등걸 같았다.

황제는 친히 종루에 올라서 국가 유변 시에 울리게 되어있는 쇠북을 울렸다.

그 소리는 애조를 띄우고 전 성내에 울렸다. 그러나 신하 하나 대궐에 달려오는 자 없었다.

창자가 끊기는 듯한 비분절통에 극도로 흥분한 숭정 황제는 마침 자기 앞에 나타난 당시 열다섯 살 먹은 황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무슨 놈의 팔짜로 이런 집에 태여났더냐.』

하고 칼을 빼서 목을 친다는 것이 빗나가서 어깨를 처 업치고,

『너나 나나 도적에게 욕을 보느니보다 죽는 게 옳다.』

하고 통곡을 하고는 때마침 눈보라치는 바람을 무릅쓰고 매산(煤山)에 올라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숭정 황제의 옷깃에는,

『내 육체는 도적들이 갈갈히 찢어라, 그러나 백성을 죽이지는 말아다오.』

하는 글을 써 붙이고 있었다.

숭정 황제의 황후 주씨(周氏)도 남편을 따라 목매어 죽었다.

이러한 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때 숭정 황제의 소위 구진들은 대궐의 문을 열고 평신저두(平身低頭)로 이자성 만세(李自成 萬歲)를 부르는 소리가 자금성 내에 요란히 일어났던 것이다.

이때 산해관을 지키고 있던 장수는 오삼계(吳三桂)이었다.

그는 북경으로 쳐들어 온 이자성에게서 보내온 간곡한 권항서(勸降書)와 신조의 큰 공신으로 대접하겠다는 감언에 십분 맘이 기울어졌었는데, 이자성은 일이 잘 되지 않느라고 자성의 부하가 북경에 유하고 있는 오삼계 장군의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납치해갔다는 급보가 왔기 때문에 오장군의 맘이 급작이 변해서,

『죽일 놈은 이자성이로구나.』

하는 감정을 먹고 휘하 군사를 휘몰아 가지고 이번에는 이자성을 드리쳤다.

부하의 잘못으로 애매한 화를 당한 것이 이자성이다.

이자성은 오삼계의 적수가 아니었다. 굶주린 토병을 휘몰아 가지고 온 이자성과 백전연마의 정병을 가진 오장군과는 씨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품에 큰 호박이 떨어진 것이 청군이었다.

오장군은 그동안 청국의 태조 누루하치와 태종 힘을 다하여 돌파하려다가 못하고 마른 난공불락의 산해관을 열었다.

청군에게 가세(加勢)한 것이다.

정세를 보기에 빠른 오장군은 명나라는 기위 망했거니와 자기 자신이 황제가 한 번 되어본다면 모르지마는 기위 그런 대사를 저질을 수 없다면 차라리 청군에게 가담하여 개국공신의 한 사람이 됨이 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청군은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물밀듯 북경으로 입성하여 어린 순치(順治)가 용상에 올랐다.

이때 북경 거리에서는 이런 동요가 돌았다.

『주가(朱家) 집 밀가루로 이가(李家)가 만든 떡을 누어서 받아먹는 조가(趙家) 도령님.』

하는 노래다. 주가는 명나라 주원장, 이가는 이자성, 조도령은 누루하치의 일족을 말하는 것이다.

(朱家麵, 李家做得一偉大模模, 送與對卷趙大哥)

북경에 들어와서 제위에 오른 세조는 두 왕자와 최명길의 환국을 허락하였다.

이리하여 세자와 봉림대군은 전후 팔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로소 눈살을 펴고 두 왕자를 기쁜 눈물로서 모셔 들였다.

만조의 하례도 받았거니와 상감(부왕)도 무한히 기뻐하였다.

그래서 세자와 둘째 아드님을 슬하에 앉히시고 수년 풍상을 위로도 하시고 그동안의 견문을 묻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상감은,

『그래 북경을 하직할 때 무슨 말씀이 없던가.』

『예친왕이 곁에 계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소원이 있거던 말하라고 하셨읍니다.』

봉림대군이 이렇게 봉답하였다.

『그래 무엇이 소원이라고들 하였니?』

하고 먼저 상감은 세자를 바라보고 물었다.

얼른 대답이 없었다.

『넌.』

하고 봉림대군에게 질문을 돌려댔다.

『수년 근친을 못 했으니 하루 바삐 돌아가기가 소원이려니와 될 수 있아오면 상국에 포로로 생포되어 있는 백성을 돌려 보내 주시면 데리고 나가겠소이다 했읍니다.』

『음.』

상감은 그 말이 극히 가합한 양 고개를 재삼 끄덕이였다.

『그래 너는.』

하고 세자의 대답을 독촉하였다. 소현세자는

『신은 그때 마침 황상 앉으신 곁에 벼루 한 개가 놓여 있는데 참 천하의 보배 같아 보이기로 그것이 탐난다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그것을 곧 하사하셨읍니다.』

『이것이 그것이냐?』

『그렇습니다.』

『예끼, 이 못난 자식. 일국의 세자로서 소원이 요것이란 말이더냐.』

하고 그 벼루를 들어 세자를 쳤다.

제자는 그 벼루에 맞지는 아니했지마는 부왕의 엄한 꾸지람을 듣고 무료히 물러 나왔던 것이다.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지마는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병석에 눕게 되어 이내 세상을 떠나고 마니 인조는 둘째 아드님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인조로 말하면 예정의 행동이었다. 소현왕자는 비록 세자이었지마는 당신의 눈 밖에 나서 오래 살아있더라도 대통을 그에게 전할 생각이 없었다.

인조 즉위 二十七년 五월에 왕은 다난한 인생에 끝을 막아 버리고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이가 곧 봉림세자로서 효종(孝宗)이라 일컫는 분이다.

이완(李浣)은 병자호란 때에 원수 김자점(金自點)의 별장으로서 황해도 정방산성(正方山城)에 유진하고 있었는데 종사관 정태화(從事官 鄭太和)와 더불어 성루에 올라 멀리 성하로 바라보고 있노라니 청명(淸兵) 수십 기가 국도를 서울로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

하고 정태화는 놀라서 이완을 돌아다보며,

『호병이 아닌가?』

이완은 눈도 깜짝이지 아니하고 멀리 사라져 가는 청병의 뒤를 눈으로 쫓아 가며 고개만을 끄덕이었다.

『전구(前驅)가 아닌가?』

『척후병이지.』

『대군이 쳐들어올 조짐인가』

『틀림없이 미구에 대군이 들어닥칠 것일세. 그렇지 않다면 지금 지나간 척후병이 무엇을 믿고 예까지 들어올 수 있는가.』

둘이는 황황히 본청으로 내려와서 군략을 의 논한 결과 산성의 군사를 거느리고 동선령(洞仙嶺) 고개에 매복하고 있다가 청병의 주력이 오거던 내달아 싸우자는 이완의 의견에 찬동하여 김자점의 허락을 받았다.

그러자 아직 그 계획을 실천하기 전에 문득 청기 사백여 기가 성하를 통과하였다.

이때 김자점은 군고를 울려 군졸을 급거 동원하며 이완더러 내달아 싸우라고 명령하였다. 이완은

『주력 대군이 아직 이르지 않은 이때 나가서 그 선봉군을 치는 것은 이편에 이롭지 않은 바 아니지마는 이것은 적은 것을 탐내서 큰 것을 놓지는 수법이외다.』

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종사관 정태화는 초조하여 이완더러 고집 말고 영대로 행동함이 옳지 않으냐고 권하였더니 이완은

『이것은 이완 개인의 일이 아니라 나라의 일인즉 옳지 않은 줄 알고 어찌 순종하랴.』

하고 종래 듣지 않으매 김자점이 크게 노하여 환도를 빼어 부하에게 내주며,

『조방장 이완이 만일 내 영을 듣지 않고 싸우지 않으려 하거던 이 칼로 그의 목을 베어라.』

하는 호령을 하였다.

이완은 그 호령을 듣고,

『대사는 틀렸다. 그러나 하는 수 있느냐.』

하고 군졸을 거느리고 나가서 동선령 고개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때마침 영 아래를 지나는 청병을 유인하여 고개로 끌어올리고 매복 군병을 대발하여 호기 수백을 전멸시키었다. 이 조그만 승리에 만족한 김자점은,

『그것 보아라 내 영대로 하면 백전백승이 아닌가.』

하고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나 이완은 종사관 정태화를 보고,

『군이나 나나 여길 떠날 날이 머지 않았네.』

하고 탄식을 하였다.

그러더니 과연 수일이 지나지 않아서 태종이 거느린 대군이 운하같이 몰려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때 김자점은 역시 또 동선령에 복병하기를 명령하였다.

『아니 될 말씀이외다 처음이면 모르되 그들의 선봉군이 이미 동선령 고개에서 복병을 만나 대패를 하였거던 어찌 두 번째 그 어리석음에 빠질 리 있으리까 그러나 원수의 호령이라 아니 듣지 못할 것이니 영대로는 거행하오리다.』

하고 나가서 싸우더니 호군은 과연 동전령 고개에 복병이 있음을 알고 복병의 등을 치는 군략을 쓰는지라 자점의 군사는 여기서 대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에 청병이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인조가 송파 진두에서 태종에게 항서를 올리게 된 전말은 이미 기록한 바와 같거니와 일단 청병이 철퇴한 후 청국에서는 평안 병사 임경업과 이완 장군 두 사람을 지명하여 가도에 유진하고 있는 모문룡을 치는 군사의 대장을 삼겠다고 청하여 왔다. 이것은 청국이 그 두 장수의 용명을 이용하여 모문용을 쳐 없애자는 것보다도 그 두 장수를 곤경에 빠뜨리어 조선에서 힘을 쓰지 못하게 하자는 음모이었다.

당시 재상으로 있는 이시백(李時伯)은 청국의 그 소청에 쉽게 승낙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완 장군은 본대 강직하기 이를 바 없는 사람인즉 청군의 소망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리라.』

하는 뜻을 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완은 재상 이시백을 방문하였다.

『오늘 대감께 뵈려 온 것은 소인 일신상 소청이 있어서 왔읍니다.』

『무슨 청이시오니까.』

『듣삽건대 이번에 청군이 소관을 데려다가 임장군과 함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대감께 청해 왔다 하오니 진담이오니까.』

『기위 알고 오신 이상 어이 피하오리까 사실입니다.』

『그럼 어이해서 소관에게 일언의 연통이 없으셨읍니까.』

『모르면이어니와 알면 고통인 것을 어찌 연통허겠소. 거절해 버리었소.』

『가야 할 것을 그랬습니다.』

시백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는 듯 눈을 바로 뜨고 이완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관이 아니 간다면 소관 개인을 미워하지 않고 우리 조정의 처사를 미워하여 필경 화가 나라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글쎄.』

『구구한 내 한몸으로서 어찌 나라의 화 되는 것을 돌보지 않아서 되오리까 날 보내 주시는 게 만전지책이외다.』

하고 가기를 지원하였다.

들어본즉 그 말이 결코 허탄한 말이 아니었다.

으레 트집 잡기를 좋아하는 호인들이라 그 조그만 일 하나로 무슨 큰 요구를 해올는지 그것이 두렵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백은 이완 장군을 보내기 애석했지마는 나라의 이익을 생각한다는 견지에서 이완 장군을 국경으로 보내서 우선 임경업 장군을 도웁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청군의 음모는 매사 허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왜냐 하면 임경업 장군은 누구보다도 숭명(崇明) 사상이 깊어서 비록 겉으로는 청군을 도와 일하는 체 하여도 실상은 명군에게 내통하여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여 주는 터이다.

청군은 이완 장군을 데려다가 임장군의 곁에 앉혀 놓으면 피차 견제가 되어 반복의 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도에 유진하고 있는 모문용을 치되 먼저 그들의 수군 도독 진홍범(陳洪範)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임경업과 이완은 의주를 떠나 북범구(北汎口) 라는 포구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가도 섬이 눈앞에 보이는 가까운 거리이었다.

가도에서는 진도독을 비롯하여 모든 장수들이 조선 군사야 설마 쳐오랴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이때 임장군은 아직 행진을 시작하지 않고 하루밤을 예서 묵기로 하고 밤에 감시 청병의 눈을 기어 잠수 잘하는 수군 두 명이 바다에 살몃이 들어가서 잠수질하여 가도로 건너가게 하였다.


효종(孝宗)은 즉위 이래 건강이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열연한 패기는 그의 정신을 극도로 긴장시키었다. 여간 건강의 장애쯤이야 휩쓸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인조가 일국의 왕으로서 적에게 항복하여 이마로 땅을 두드리는 수치를 겪은 점에 대해서도 분하기 이를 데 없거니와 청실의 인질이 되어 전후 八년에 갖은 고통을 겪은 점을 생각하면 남아 마땅히 한번 칼을 들어 그 원한을 풀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효종의 북벌 이념이었다.

청 황실에 잡혀 있어 그들 군사의 강점도 알거니와 약점도 잘 안다. 효종은 우리 군사의 대확장을 기도하고 그들을 전부 조총대로 편성하려는 비계(秘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계를 가슴에 홀로 품고 조용히 정부 대관들을 휘 둘러보니 그 모두가 입만 깐 사람이오 하나도 실력 없는 허수아비들이다.

만일 내가 북벌계획을 누설한다면 첫째 그것은 나라를 망치는 오계라 하여 반대를 할 것이오, 반대에 그치지 아니하고 청나라 조정에 내통하여 나의 입장을 극도로 곤란케 할 것이다.

비밀이다. 또 비밀이다. 어디까지든지 이것은 몇 사람 만에 비밀로 굳게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효종은 너무나 고독하였다. 지금 영의정 정태화(鄭太和)는 가히 더불어 의논할 만한 인물이지마는 그 한 사람의 힘으로 될 바가 아니다. 그래서 효종은 전조의 원로 대신 송시열(宋時烈)을 다시 불러올릴 생각을 하였다.

송시열은 학자 출신의 정치가로 고집과 심술이 과인하여 조정의 다른 벼슬아치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효종은 그의 숭명배청(崇明排淸) 사상이 누구보다도 강렬한 것을 잘 알고 있다. 효종은 그것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송시열은 북벌이 가능한가 아니한가의 군사적 지식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자기의 믿음과 열연한 주장이 새 임군 효종에게 발견된 것을 무한히 기쁘게 여기었다. 그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예전 권세를 다시 찾아볼 결심을 하고 시골을 떠났다. 어느 날 효종은 영상 정태화를 불러 어전에 독대시키었다. 효종은 정태화의 얼굴을 바라보고 좀 더 가까이 앉으라고 손짓으로 말하였다.

정태화는 황송하여 무릎으로 한 자리를 임금 가까이 옮기어 갔다.

『대감, 대감 보기에 훈련대장감이 누가 있소. 내가 요구하는 훈련대장은 예사 대장이 아니야. 병조가 볼 일도 도맡아 보고, 새로 모집한 군졸을 훈련하여 정병을 만드는 재주가 있어야 할 것이오.』

정태화는 임금의 말하는 뜻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경솔히 천거하지 못할 중한 내용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정태화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인물에 대해서는 점찍어둔 인물이 있었다. 그래서 서슴치 않고 상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호위영 대장으로 있는 이완이 그 임무에 가장 적임인가 하오.』

『이완, 음.』

효종은 눈을 감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무엇인가를 잠시 고려하고 있더니,

『잘 알았소. 그는 능히 내 흉중 포부를 실천할 만한 위인이 되겠오?』

『되다 뿐이오리까. 그의 지략은 깊고, 용맹은 항우 이상이니, 만신이 다 충의라고 볼 수 있는 과연 충분한 거물이올시다.』

『잘 알았오.』

하여 정태화를 어전에서 물러나가게 하였다.

그날 밤 이완은 자기 집에 손이 몇이 와서 함께 저녁을 먹노라고 반주 마시기를 시작한 것이 원래 주량이 한정 없는 사람들이라 신양주 한 항아리를 게눈 감추듯 말리고 말았다. 그래서 술을 더 내오라고 소리를 치려 할 즈음에 군졸 하나이 뛰어 들어와서 대전 별감이 상감의 전지를 받들고 나왔다고 하였다. 이완은 그 한마디 말에 정신이 확 돌았다. 늘어 앉아있는 손들도 몸을 도사려 앉으며 그 전지가 무엇인가를 보기에 눈을 떴다. 상감마마의 불이지각하고 입대하라는 전교가 내렸다는 것이었다.

이완은 벌떡 일어나며

『자네들 오늘은 이만 놀고 가게.』

하고는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마누라를 보고

『세숫물 좀 노라고 그러우.』

황황히 이렇게 명령하였다.

『아니 밤중에 세수는 웬일이시오니까?』

『그것보다 내 얼굴에 붉은 술기운이 가득하지?』

『그렇지도 않소이다. 그것쯤 자시고 뭐 취했다고 하오리까?』

이완은 그 말엔 대답도 아니 하고 떠다 올린 물에 세수를 하였다.

세수를 하고 망건을 다시 쓰며,

『상감께서 곧 입대하라는 하교가 내리셨어.』

그제야 비로소 급한 대로 얘기하였다.

이완의 생각에는 감오가 이중 삼중으로 끓어 올랐다. 청군의 요구에 의하여 의주로 가서 임경업을 도웁더니 임경업은 필경 남쪽 명나라로 도망하고 이완 하나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본 청군들은 본래 목적이 임경업을 감시시키고 서로 견제하기를 꾀한 것인데 이제 임경업이 이미 도망하여 명나라로 건너간 이상 이완이 하나만을 의주에 남겨둘 필요가 없어서 서울로 돌아가기를 허락하였다. 이리 하여 이완은 아무런 일 하나 해본 것이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로 올라온 이완을 곧 이용하여 호위영 대장을 시킨 것도 감격한 일인데 이제 또 허다한 무신 중에 특히 자기를 부르신다는 것은 일대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완은 그런 얘기를 대충대충 마누라에게 하고는 관복을 꺼내서 옷을 가라 입기 시작하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는 이완을 돌아보며,

『잠간 여쭐 말씀이 있나이다』

『무슨 말인가? 지금 상감의 명령으로 바삐 들어가는 길인데 무슨 말이야.』

하고 이완은 알은 체도 아니하고 그대로 나가려 한다. 그러나 아내는 한층 다가서며,

『아닌 밤중에 급히 부르시는 것은 심상치 아니한 일 같사오니 대장의 지위로서 한때라도 방심하면 안 되는 터에 관복만 입으신다는 것은 마땅치 아니할 것이오니 속에 갑추를 입고 들어가심이 옳을 것 같사옵니다』

이완은 아내의 말이 그럴듯하여 갑주를 속에 든든히 입고 나섰다.

대궐 문에 이르러보니 사방은 어두컴컴하여 과연 심상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완은 이완인 만큼 마음을 턱 놓고 궐내로 들어섰다. 순간 누구인지 옆에 숨어 있다가 쇠뭉치로 그의 어깨를 치고 난데없는 화살이 날라 와 사정없이 맞았다. 그러나 갑주의 덕택으로 상한 데는 없었다. 이완은 아내의 지혜를 감탄하면서 궐내로 들어가 탑 전에 뵈오니 효종은 속으로는 크게 놀랐으나 겉으로는 태연히 이완을 독대시키고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짐이 그대를 왜 불렀는지 아오?』

이완은 잠시 생각하다가 서슴지 않고,

『조금 짐작은 하옵니다』

『그러면 그대는 내 속을 알아준단 말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쇠뭉치와 화살은 어떻게 피하였는가?』

이완은 또 한 번 아내를 찬양하면서,

『밤중에 부르신다는 것이 심상치 아니하여 아예 갑주를 입고 왔습니다.』

효종은 어지간히 탄복하는 듯하였지만 곧 붓 한 자루를 주시며,

『이 붓을 가지고 나가 주게.』

하시었다. 이완은 황송하여 그 붓을 두 손으로 받들고 대궐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어떤 일이었나이까?』

하고 대뜸 묻는다. 이완은 갑주 때문에 무사하였다는 말을 전하고 상감이 주신 붓을 내놓았다. 아내는 붓을 이리저리 보더니 돌연 붓대를 짜개었다. 이완은 깜짝 놀라

『이게 무슨 짓이야 큰일 나려고…….』

하고 당황하며 책망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아니 올다. 밤중에 부르시고서 아무런 어명이 없을 리 만무합니다. 속을 좀 보아야 하겠읍니다.』

하고 뒤져보니 과연 말린 종이 조각이 있었다. 이완은 한편 놀라며 한편 빼앗아보니 효종의 밀지로 삼군을 휘동하여 대궐로 들어오라는 명령이었다. 이완은 아내를 보고,

『그대의 지혜는 제갈량과 같소.』

하고 일어서서 나가려 한즉 아내는 또 다시,

『또 한 말씀 여쭙겠읍니다. 삼군을 인솔하여 들어가시되 창검과 대장기를 거꾸로 들고 들어 가십시요.』

이완은 그 뜻을 알아 채리고 고개를 끄덕거리었다. 이완은 영문에 나가 곧 삼군이 출동시켜 호호탕탕히 들어갈 제 갑옷 입고 마상에 높이 앉은 ■의 위풍은 늠름하고 씩씩하였다. 효종은 대장기와 창검이 모두 거꾸로 있는 것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며 그 신속 정제함을 칭찬하여 주시었다.

효종은 이렇게 이완의 기량을 시험하신 후 자기의 속을 모조리 들어 내고 양병 준비를 이완에게 맡기셨다.


이완이 효종의 북벌계획의 밀지를 받은 후로는 사방에 인재를 구하려 애썼다. 그래서 길거리에서라도 체격이 장대하고 장수감으로 생각되는 사람은 곧 불러다가 재주를 시험하고 조정에 천거하였다.

어떤 날 그가 휴가를 얻어 가지고 시골로 가는 길에 용인이라는 주막에서 한 총각을 만났다. 한 삼십가량의 나이를 먹었으되 신장이 십 척이요 얼굴이 한 자나 되며 골격이 장대하다. 그러나 몸은 몹시 말라 수척하여 보인다. 그는 다 떨어진 옷을 몸에 걸치고 털이 시커멓게 난 얼굴로 토청 위에 앉더니,

『나 술좀 주시오.』

하고 탁주 한 옹배기를 청하여 고래 물 마시듯 쭉 드리킨다. 이완은 멍하니 총각을 쳐다보더니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하였다. 그 총각은 어적어적 걸어오더니 절도 아니하고 이완을 쳐다보기만 하였다. 이완은 한참 만에

『네 이름은 무엇이냐?』

『녜, 저의 이름은 박택(朴鐸)이올시다.』

『응, 박택이 그래 어떤 집 자손이며 뭘 해 먹고 사는가?』

『네, 본시 양반집 자손이었으나 일찌기 가친을 여의고 어머니 한 분만 모시고 나무장사를 해 먹고 살지요.』

『오 그래 그런데 술을 잘 먹는가?』

『그저 먹을 줄 알지오.』

『그러면 술 한 잔 먹구 싶으냐?』

이완은 곧 백 푼이나 되는 돈을 주어 술을 사오라 하여 먼저 자기가 한 잔 마시고 그를 다 주었다. 그는 넙죽넙죽 술 항아리를 다 말려버렸다.

이완은 그가 술을 다 먹은 후,

『네가 이렇게 장대하고 비범한 골격을 가진 사람으로 그저 초야에 묻혀 있어서 되겠느냐. 나는 지금 널리 인재를 구하고 있는 중이니 나를 따라가지 않겠느냐?』

하고 청하니 총각은,

『늙으신 어머니께서 집에 계시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이완은

『그러면 내가 너를 따라 너의 모친을 뵙고 잘 얘기하지.』

하고 그 길로 총각을 따라 나섰다. 한 십리쯤 가니 다 쓰러져가는 초옥 앞에 총각은 발을 멈춘다.

『이게 우리 집이올시다』

하더니 싸리문 안으로 인도하고 어머니를 불러 내왔다. 정말 뼈만 남았다. 이완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평온하고 인자한 얼굴이다.

『저는 이모인데 아까 길에서 자제를 만나보니 정말 인걸이라 노인께서 이런 아들을 두셨으니 든든하시겠읍니다.』

하고 칭찬하니 노인은

『천만에 말씀입니다. 초야에 묻혀 아무것도 모르는 미거한 자식을 이처럼 칭찬해 주시니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청할 말이 있읍니다. 지금 나라 조정에서는 모든 인재를 모으기에 한창 바쁩니다. 저도 그 축에 끼어 인재를 구하러 나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노인의 아들이 참으로 인걸이라 제가 데리고 가기를 허락해 주십시요.』

총각의 모친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마우신 말씀이오나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자식은 나의 독자요. 또 이 늙은 몸이 이 자식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터이니 이 애를 지금 멀리 보내고는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소. 이 뜻만은 미안하오나 봉승치 못하겠읍니다.』

하고 거절을 한다.

이완은 놓지기가 아까워 재삼 간청을 성심껏 하였더니 총각의 모친은 또 생각하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나이가 세상에 나와서 공적을 세우지 못한다면은 그것은 헛 산 것과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인재라고 하는 사람이 초야에 묻혀서 되겠소.』

하고 기어코 승락하였다.

이완은 확실한 승락을 얻자 그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서 며칠 묵다가 서울로 올라가 효종께 뵈옵고,

『신이 하향하는 길에 만난 사나인데 쓸만한 인걸이오라 같이 뵈러 왔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감은 만나기를 허락하시었다. 이완은 더벅머리 총각을 데리고 사자를 따라 탑전에 들어가니 총각은 절은커녕 황송한 빛도 없다. 효종은 그의 모양을 살펴보시다가 웃으시며,

『너는 왜 이리도 빼짝 말랐느냐?』

하시니 그는 곧,

『장부가 출세할 길을 얻지 못하오니 어찌 이렇지 않겠읍니까?』

효종은 속으로 기특하다 생각하시고 이완을 돌아보시며,

『무슨 벼슬이 적당할꼬?』

하고 물으셨다. 이완은

『신이 몇 달 공부를 가르친 후에 벼슬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럼 경이 집에 두고 잘 좀 가르쳐 주게.』

하고 허락하시었다.

이완은 박택을 데리고 나와 집에 두고 풍족한 의식을 마음대로 주고 병법이나 행세 범절을 정중하게 모양이 바뀌도록 가르쳤다. 글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그의 좋은 뇌에는 이완도 깜짝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술도 이완을 스승으로 삼고, 또 원래 재주가 있느니만큼 제법 잘 쓰게 되었다. 효종께서는 이완이 대궐에 들어올 때마다,

『그 총각인가 뭔가는 어찌 됐나?』

하고 참으로 궁금해하셨다. 그럴 때마다 이완은

『점점 완성돼 나갑니다. 그 뛰어난 재주에는 놀래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하고 칭찬해 주었다.


이완은 효종의 의탁을 받고 훈련대장이 된 이후로는 서울에 있는 때가 드물었다. 지방으로 부하를 파송해서 힘 있는 장사들을 구하기도 하거니와 이완 자신도 미봉 미행으로 시골로 돌아다니며 장사를 구하였다. 물론 큰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군중에 장사가 많이 있는것이 든든은 하지마는 그것으로서 싸움의 최종 결말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다수 군병의 훈련과 조련이 있지 않고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을 이완도 잘 안다. 그러나 하여튼 먼저 장사를 구해 놓아야만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이완이 아직 출세 이전 소년 시대에 우연히 만나게 된 산적들, 유광풍 같은 호걸들, 그들에게도 이미 사람을 놓아 상경하기를 청하고 자기 휘하에 들기를 권하였다.

이완은 어느 때 필마단기로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향하였다. 강원도는 산악이 중첩하고 평지가 적은 곳이라 인물이 효용한 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완은 그 점에 착목하여 강원도로 향한 것이었다. 이완이 김화읍에서 사관을 잡고 거기서 한 이틀 동안 쉰 후에 산촌으로 들어갈 작정을 하였다.

이완이 저녁밥을 먹고 목침을 베고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할 즈음에 문득 옆방에서 두 사람이 얘기하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그중에 이완은 그 얘기 내용에 큰 호기심을 느끼고 조용히 일어나 벽에 귀를 대고 들어보았다.

『그럼 자네는 여기서 나허구 갈리겠다는 말인가?』

『그렇지, 산으로 오르지 않으면 결국 갈리는 게 아닌가?

젊은 음성이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산에 오르지 않는다면 동지 수십 명은 어이하잔 말이요. 무예를 연습시키고 있는 수십 명 젊은 장사들이 뉘게서 훈련을 받는다는 건지 도대체 자네가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장래의 희망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세. 우리들의 목적이 산채를 모으고 도둑질이나 해다가 풍족한 생활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면 반드시 북벌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설 줄로 여겼더니 어디 지금 같아서야 그런 눈치도 보이지 아니하니 우리는 북벌할 때에 의용군으로 나설 생각을 먹고 모인 동지들인데 이제 북벌은 언제할가 가망도 없고 이러다가는 여러 동지가 냉수 마시고 사는 겐가? 식량이 없은즉 자연 민간에 출몰해서 도둑질을 하는 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는가. 그리되어서는 대의명분이 뚜렷한 우리의 모임도 필경은 산적으로 타락해 버릴 것이니 해산을 해버리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나만이라도 산에 오르지 않겠다는 것일세.』

『자네의 의향을 들어보니 한마디 반대할 여지가 없네, 그러면 나와 함께 산으로 올라가서 여럿을 모아놓고 사정을 토파한 후에 해산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해산은 되지 않으리.』

『어째서?』

『우리가 두령으로 모시는 유금산(柳金山)은 그동안 내가 그의 심경을 은근히 뽑아본즉 이제 와서는 북벌이고 무엇이고 가망이 없은즉 차라리 양산박(梁山泊)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이데 그래서 정식으로 해산이 되지 않는 이상 차라리 나 하나만이 자유행동을 취하겠다고 생각한 것일세.』

『지당한 말일세 마는 사람의 출처 행동이 분명해야 하지 않나. 하여튼 일단 산으로 올라가서 자네가 산을 내려가는 이유를 설명하고 떳떳이 서로 작별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옳은 말일세 그러면 내일은 산으로 함께 올라가세.』

이완은 옆방에서 그 대화를 하나도 빠짐 없이 자세히 들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심부름하는 총각 아이를 불렀다.

『야 이리 좀 오너라. 너 서너 사람이 술을 먹을 터인데 그 술상을 채릴 수 있느냐고 주인에게 여쭤봐라.』

『안 됩니다』

『안 되다니 주막에서 술상 하나 못 채린단 말인가?』

『술안주를 만들 사람이 있어야죠. 술안주를 만드는 아주머니는 오늘 일갓집에 가서 잔치를 치르고 내일이나 돌아오는걸입쇼.』

『그럼 너 이놈아 손님이 술 좀 먹으려다가 너의 아주머니 하나 없어서 못 먹는다는 거냐?』

『왜요 바루 우리 집 뒷채 주막에서는 술상을 얌전히 차려내는 걸요.』

『그러면 됐구나 거기 가서 서너 사람이 먹을 만한 안주를 얌전히 차리라고 그래라.』

『그렇게 헙죠.』

『빨리 해 달라고 해.』

총각은 그 길로 바로 뒷집 주막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술상을 주문해 놓은 이완은 조용이 일어나 옆방 툇마루 앞에 이르러서,

『이방 손님네들 잠깐 인사를 건넵시다.』

하고 방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어마지두에 약간 당황해서

『좋은 말씀이오 이리 들어오시오.』

하였다.

이완은 서슴치 않고 방안에 들어앉아

『나는 서울 사는 이을이란 사람이오. 두 분 성함은 뉘시오?』

『네 나는 장백천(張百川)이란 사람이오.』

『나는 이기산(李奇山)이라고 불리웁지요.』

『두 분은 어디 사시는지요?』

『일정한 주소를 갖지 못하고 사해각지를 표랑하여 다니는 위인들이올시다』

『사내대장부가 어떠한 큰 뜻을 가슴에 품고 그 기회가 오기까지 각지를 표랑해 다니는 것도 또한 재미있는 일입넨다. 그런데 내가 옆 방에서 두 분이 얘기하는 소리를 자세히 듣고 사실은 두 분에게 청해서 나를 그 산채로 인도해 주기를 청하러 왔읍니다.』

두 사람은 천만뜻밖인 이완의 요구에 도리어 놀라서 얼핏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린다. 그러자 밖에서 총각 소리와 술상을 가지고 온 기척이 났다. 총각은 이완이 있던 방문을 열어 젖히다가,

『어 여기 안 계신데.』

하며 두덜거린다.

이완은 손수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소리쳤다.

『이리 가져 오너라.』

『어이, 저기 계시구먼.』

하고는 술상을 셋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여오는데 미상불 굉장한 차림 차림의 술상이었다. 상만 하여도 네 사람은 붙어 앉아 먹고도 자리에 여유가 있는 교자상이오, 안주 장만도 서울 교자집 요리상한테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굉장한 장만의 안주였다.

『자 하여튼 여러분과 함께 산에 오르고 안 오르는 것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우선 들어온 술이나 나누어 먹읍시다.』

두 사람은 굉장한 술상이 들어오고 또 심상치 않은 인물에 접하게 되매 어이할 줄 몰라 다만,

『어 이것 참 첨 뵙는 어른에게 우리가 대접을 못해 드리고 도리어 이렇게 대접을 받게 되니 황송합니다.』

『아따 그런 소린 다 그만두고 어서 술잔을 잡수.』

『천만에 그렇게 해서야 됩니까? 어른께서 먼저 잡으십시오.』

하고 그중에 하나는 잔에 술을 부어 이완에게 올렸다.

이완은 사양치 않고 그릇을 받아 한숨에 들여 마시고 순배를 돌렸다.

두 사람은 몇 순배 술을 돌리고 풍성한 안주를 먹고 나니 취기가 도도해서 자연 고담준론을 시작하였다.

이완은 먼저 두 사람의 내력을 물었다. 그 중에 나이 덜 먹은 장백천은 일찌기 서울서 오영 군교의 하나로서 당당한 무관으로 출세하기를 희망하였더니 장백천의 출신이 미천하고 더구나 서출의 인물이라 하여 장래의 희망이 극히 비관적이었다. 거기에 통분한 장백천은 군교의 구실을 내던지고 각지로 표랑해 다니다가 필경 한 개 두 개의 동지를 만나 유금산을 두목으로 하는 지금의 산채에 투신한 것이며, 이기산은 서울 남천에 살고 있어 백호정 활량으로 이름을 날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사람을 살해하고 그 길로 바로 부모를 하직하고 이름을 기산이라 변명하고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산채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출신은 하여튼 그들의 열과 담력과 목숨을 애끼지 않는 용기는 갖추워져 있는 한 개 호패한 인물이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완은 두 사람의 내력을 자세히 들은 후 자기의 성명을 피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경솔히 자기가 훈장 이완이란 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기는 정부의 의촉을 받아 각지를 암행하며 용맹한 인물을 구하는 군관의 하나라고 설명하였다. 그러고 암암하게 상감의 북벌계획을 알리고 거기에 참가할 용사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두 사람은 이완의 말을 의심 없이 믿는 양 싶었다. 그래서 이완에 대한 공손한 태도를 가지면서도 자기들이 그 구하는 용사 가운데 하나로 뽑히어지기를 간원하는 태도를 보이었다.


술상이 아직도 철상 되기 전에 대문간에서 주막집 총각과 누가 두런두런 몇 마디 수작을 주고 받고 하는 모양이더니,

『이 집야 틀림없이 전에도 이 집에 미행해 오셔서 묵으신 일이 있었거던.』

하며 안으로 들어서서 총각을 보고,

『어느 방에 계서?』

『저 방에서 딴 손님하고 술을 자시고 계십니다.』

그 대답이 끝나자, 그 위인은 이완이 술을 먹고 앉아있는 방앞에 이르러서 무심코,

『대감, 이 방에 계시오니까. 소인 박문제 문안드리옵니다.』

하니 방 안의 이완은,

『오 문제냐, 너 어째 이렇게 내려왔느냐.』

『네 급히 안전에 전달해 올릴 급보가 있어서 소인 문제가 주야 겸행으로 내려 왔읍니다.』

이완은 무슨 중대한 전달이 있을 것을 짐작하고,

『저 내 방으로 가 있거라.』

하고 나서 장백천 이기산의 두 사람을 보고,

『내 좀 급한 사정이 있으니 노형들은 나머지 술을 다 마시고 철상하소.』

하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다. 두 사람도 벌떡 일어서서

『황송하옵니다』

하며 이완을 전송하였다. 이완은 박문제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가서,

『이리 들어와 앉아라.』

『황송하옵니다. 감히 어찌 한 방에 모시오리까.』

『상관없다. 중대한 전달이 있다면서 한방에 앉지 않고 어찌 얘기가 되겠느냐. 주저 말고 들어 오너라.』

박문제는 이완의 말에 끌리어 먼저 고의춤에 서 편지 한봉을 내올리었다.

영의정 정태화가 보내는 편지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상감께서 이번에 군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거기에 대한 의견을 귀공에게 묻고자 하시니 속히 상경하기를 바란다는 것과, 또 하나 중대한 일은 오늘날까지 역대 군왕이 등한시하던 삼수 갑산 등지에 둔간병을 두고 압록강 상류 일대에 성루를 신축하기 위한 비밀 계획을 세우시고 우선 서울서 지원하는 민병 오백을 모집하여 작일 이미 몇 군관의 영도하에 서울을 떠나 보냈은즉 귀공은 빨리 그곳을 떠나 이 등간병들이 마땅히 통과할 가까운 지역에 옮기어 그들을 맞이하여 군관들에게 중대한 훈시도 하려니와 등간병 설치에 대한 여러 가지 주의할 조목과 행사를 그들에게 훈련하여 달라지는 상의인즉 비록 공의 상경이 늦을지라도 그 사명은 충분히 봉행하여야 할 것이라는 뜻이 써 있었다.

이완은 두 번 세 번 그 편지를 한 자도 유루 없이 거듭하여 읽고 나서 다시 간봉에 넣어 곁에 놓고

『으흠—.』

하고 신음하며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는 무엇인가를 숙고하였다. 박문제와 이완 장군 사이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있다.

이윽고 눈을 번쩍 뜬 이완 장군은,

『어려운 일이로구나.』

하고 혼자 중얼거리었다.

이완이 어려운 일이라고 고민하는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청국이 만일 우리가 압록강 변에 성루를 축수하고 삼수 갑산 중요 지역에 둔간병을 둔간한 것을 알 것 같으면 그것을 크게 문제 삼아 우리 나라에 항의를 제출해 올 것이다. 이것은 병자호란 강화조약의 위반이오 청국에 반항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라고 트집을 잡아 올 것이다. 이것은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항의와 트집에 유력한 변명을 하지 못하는 이상 그 계획은 좌절될 것이고 따라서 상감의 북벌 계획은 이로 말미암아 무너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이완 장군은 한동안 신음하던 끝에,

『문제야.』

『네?』

『내게 전달할 것은 이것 뿐이냐?』

『아니올시다. 또 한 가지 있사옵니다.』

『무엇이냐?』

『정 정승 대감께서 소인을 부르셔서 저 봉서를 내주시면서 내가 이 편지를 쓴 후에 생각한 일이 하나 있으니 너 잊지 말고 장군께 입으로 전달하여라 하시면서 신신부탁하신 일이 있읍니다.』

『무슨 말씀이드냐?』

『네, 다른 말씀이 아니오라 될 수 있는 대로 대읍을 들르시게 되거든 이미 정부에서 수차 령하여 놓은 군제 개혁에 따른 관병 훈련에 대하여 충분히 실행하고 있는가 그것을 상세 조사해서 엄중히 신칙을 하여 달라시는 부탁이었읍니다』

『알았다.』

하고 이완은 고개를 끄떡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매 장사와 용맹 있는 인물을 간택하는 것은 둘째 세째의 일이 되었고 따라서 만방에 있는 장백천 일행과 함께 산채에 오를 여유도 없게 되었다.

『문제야.』

『네?』

『너 삼수 갑산으로 빨리 가는 지름길을 아느냐?』

『네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면 딴방으로 가서 오늘 밤은 편히 쉬고 내일 나와 함께 길을 떠나자.』

『네, 그렇게 하지요.』

이완은 주막 총각을 불러 딴방 하나를 치워주라 하고 이웃집에 가서 간략히 술 한 상을 차려다가 주라고 분부하였다. 주막집 총각은 기실 이완이 한 개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 줄 알았다가 박문제가 대감이니 장군님이니 하는 말로서 대하는 것을 듣고 이완 앞에서는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 분부를 듣고는 괴로움도 불구하고 분부가 내리기가 무섭게 네— 하고 물러가 버리었다.

이완은 자리에서 일어나,

『너는 네 방으로 가서 술이나 먹고 편히 쉬어라. 저녁은 먹었느냐?』

『네 오는 길에서 날이 저물기로 사 먹고 왔읍니다』

『그럼 난 저 방 사람들과 작별이나 하여야겠다.』

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 동정에 이편 장백천 이기산은 황급히 방에서 나와 이완 앞으로 와 굴복하였다.

『미거한 물건들이 장군님을 몰라뵙고 무릎을 대하고 앉아 술을 먹었으니 죽어 마땅한 죄를 졌읍니다.』

하고 사죄하였다.

이완은 빙그레 웃으며,

『무슨 소린고, 내 얼굴에 이완이란 이름이 써있지 않은 이상 뉜들 내 정체를 한단 말인가? 그런 소린 그만두고 자네들도 산채에 올라가 있다가 기회를 기다리면 내가 기별할 날이 있으리니 그때는 서울 와서 나를 만나도록 하소.』

하고 두 사람을 제 방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상감은 주야 북벌에 대한 계획 실천에 과단성 있는 조치를 보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군제 개혁에 있어 금군을 기마대로 고치고 일면 마필을 기르기 위하여 목축장을 확장하였으며 오영장(五營將)을 삼남 각도에 설치하고, 좌우 전후 중에 오영장을 두어 각기 관할하는 여러 읍에 관병을 통제하였으며 경상도 통영에 있는 쌀 삼만 석을 안흥(安興) 부근의 읍으로 옮겨 놓았다. 그것은 안흥에 장차 진성을 설치할 계획이 있었던 까닭이다. 그뿐 아니라 북도에 성축을 시행하는가 하면 경기도 안산 덕물도(德物島)에 성을 쌓았다. 이것은 강도(江都)를 지킬 수 있는 문호이기 때문이오 전국을 통하여 이제까지 소홀이 버리어 두었던 중요지에 군진을 설치하고 각도 감사에게 엄중히 신척하여 군병 훈련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였다. 각도 수령 방백들은 어이 하여 군왕이 양병에 전력을 다하는가를 아지 못하고 다만 엄중한 신칙에 의하여 일을 거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혹자는 군왕의 북벌 계획을 눈치채고 그것에 응하는 자도 있었다.

한편 이완 장군은 박문제를 데리고 그 주막을 일찌기 떠나 영의정 정태화가 부탁한 대로 서울서 내려가는 군관들과 군졸들을 만나기 위하여 지름길로 길을 재촉하였다.

일행은 반드시 함흥 영흥 등지를 지나서 북청에 이르러 거기서 길이 갈리어 삼수 갑산 등지로 들어갈 것이 분명하므로 이완 장군과 박문제도 역마를 잡아 타고 그 방면으로 향하였다. 이리 하여 길을 떠난 지 여드레 만에 두 사람은 영흥 땅에 발을 들여놓자 영흥읍에서 이완 장군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는 관군과 만났다. 거기서 이완 장군은 군관들을 불러 앉히고 이번 진정을 수축하고 혹은 신축하는 것은 극히 비밀리에 속히 공사를 마쳐야 할 것을 신칙하고 특히 압록강 변에 이르러서는 특별히 주의하여 강 저편 호인들에게 성축을 수축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도록 엄명하였다. 그러고 만일에 이번에 새로이 모집하여 가는 둔간병으로서 손이 부족할 때에는 산수읍 박군수를 만나서 거기서 이미 소집되어 있는 토병 수백 인을 빌려다가 빠른 날자 안에 공사를 마쳐야 한다고 분부하였다. 그뿐 아니라 여러 가지 군사 훈련에 대한 지시를 유루 없이 하여 주고 거기서 이틀을 묵은 후에 이완 장군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을 떠났다.

이때는 효종 즉위 십 년 되는 사월 하순이었다.

비록 절기는 늦은 봄이라 하겠지만 이미 입하절이 지난 지라 더위가 나날이 심하여갔고 더군다나 달포가 넘어 두 달에 가깝도록 날이 가물어서 더위는 막론할지라도 백성들의 한재를 우러하는 탄성이 비등하여 말이 못 되었다.

이때 효종 대왕은 머리에 악질의 종기가 발생하여 그 고통이 자심한 중에 한재가 백성을 괴롭게 하는 것을 진심으로 우려하여 신하에게 명령하여 기우제를 지내도록 하였지마는 가믐은 일향 계속되고 있었다.

필경 효종은 종묘에 제사하여 조정의 동심을 빌고 성대한 기우제를 지내는데 효종은 그 종기의 아픔을 무릅쓰고 몸소 제사 마당에 친임하여 밤을 새웠다. 중신들은 황공무지하여 궐내로 듭시기를 간청하였으나 효종은 끝내 듣지 아니하고 새벽에 이르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할지 초저녁부터 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모여들더니 아 이 무슨 기적일고 새벽에 이르러 삼대 같은 큰비가 패연히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군왕을 비롯하여 여러 신하들은 부지중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참으로 반가운 감우(甘雨)였다.

효종은 그 굵은 비를 맞아가며 상천에 감사를 올리었다. 대전 별감이 받쳐 올리는 우산을 물리치셨다.


진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하늘을 감응시킬 수 있는 열의에 모두가 효종의 높은 덕을 찬양치 않는 자 없었다. 아 그러나 이 또한 무슨 국가의 큰 비극이냐!

효종은 악질의 그 종기가 하루 밤을 뜰에서 새우고 큰비를 맞은 까닭에 급거이 악화하여 병상에 몸을 던진 지 사흘 만에 가슴에 사모친 원한을 풀 길 없이 이내 상천하고 말았다.

이 어찌 국가의 일대 비극이 아니며, 인생의 참혹한 숙명이 아니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