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음악가로서 본 세인의 청각
내가 음악가라 치고 내 안목으로 세인을 본다면 거의 50% 이상 이 생리적 불구자라는 판단을 감히 내리고 싶다. 대단히 황당한 말 같지마는 사실에 있어서 틀림이 없으니 이것은 일반 세인의 불행뿐만 아니라 음악가로서의 가장 슬퍼할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무러한 명연주를 한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옳게 들어 주지 못한다면 그 얼마나 슬픈 일일까?
건강 진단을 받을 때면 의사는 반드시 시청(視聽)의 확부(確否)를 검진한다. 그러나 보통 의사의 진단이 청각 방면에 있어서는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자못 의문이다. 색을 판별치 못하는 사람을 색맹이라 하여 학교에서는 입학시험에 떨어내고 사회에서는 어떠한 방면을 물론하고 색맹에게는 직업을 주지 않는다. 색을 판별치 못하는 자를 불구자로 대우하면서도 음의 고저(음악상 음정)나 음색(tone quality)을 분별치 못하는 자를 완전한 청각의 소유자로 인정한다 함은 불가사의의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색에 대한 색맹 환자가 있음과 같이 음에는 음맹(音盲)환자가 있음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류는 극소수인 예외를 제하고는 선천적으로 거의 다 음맹이다. 그러나 그 치료법은 극히 곤란하여 약석(藥石)으로 고칠 수도 없으려니와 또한 일정한 치료 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을 놓치면 어떠한 명의(名醫)의 수술이나 처방도 효과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선천적으로 불구자가 된 이 음맹 환자는 어떠한 방법으로 치료할 수가 있을까 함이 가장 필요한 문제이다. 신체의 성장함을 따라서 물론 청각도 자연히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지마는 다만 듣는다는 것만이 청관(聽官)의 전 기능이 아니요 들어서 분별하는 때에 비로서 청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할 것이니 선천적으로 불구된 이 청관은 유소(幼少)할 때부터 음악적으로 훈련하지 않고는 영영 불치의 고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시(幼時)에 음악적 교육을 받지 못한 자가 성년이 된 후에 비로소 음악 방면으로 나가려고 하는 일을 볼 때에 나는 그의 성공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만일 저 편에서 용서만 한다면 방면을 고치라고 권고라도 하고 싶다. 그와 반대로 유시부터 음악적 교육을 받았거나 또 혹은 음악과 접근할 기회를 많이 가졌던 사람은, 용이히 음을 알아듣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니, 자기 가족 중에 음악가가 있다면, 그의 자녀들은 부지불식간에 음악에 대한 취미를 갖게 되는 것을 보아도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인은 흔히 말하기를 “나는 도무지 음악에 취미를 가지지 못했으니까” 한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음맹이라 함을 증명하는 고백인 동시에 음맹으로서 음악에 취미를 가지지 못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생활이 점점 향상됨에 따라서 요새는 음악열이 대단한 급속도로 팽창되는 모양이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이는 의외로 그 수가 극소수임을 볼 때에 나는 그이유가 '음악이란 난해의 것이다' 함에 있지 않고 오히려 세인의 대부분이 음맹의 고질환자인 데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네 생활에 음악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난치의 중병부터 근본적으로 요치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니 이미 장성한 사장은 불치의 음맹이라 무가내하려니와 우리의 자손을 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무서운 난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그네들이 어렸을 동안에 음악과 친근할 만한 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음악가가 되려는 이에 있어서는 논할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음악을 감상하고 그 맛을 느끼려고 하려함에도 음맹이란 병만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람이란 본시 선천적으로 음악의 소질을 타고 났다. 그렇건만도 음악가에 절대 필요한 이 청각만은 훈련 없이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니 이것은 인생의 일대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조금만 주의하면 고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등한히 생각하여 일생 불치의 고질을 만들고도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볼 때에, 그네들은 훌륭한 음맹일 뿐 아니라 생리상 불구자임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면 음악가는 누구나 모두 이 음맹이란 병을 완전히 퇴치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고 할 것이니, 이것은 물론 정도 문제이겠지마는 음악가 중에도 음맹환자는 결코 적지 않다. 특별히 자신의 부수물인 성대라는 악기를 사용하는 성악가 중에 음맹이 많은 것은 일종의 기현상이지마는 같은 음악가 중에도 성악가보다는 기악가, 특히 그 중에도 현악가의 청각이 비교적 완전함은 여러 학자의 통계에 의하여 증명되는 바이다. 여하간 청각 예술의 전문가인 음악가로서도 완전히 음맹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일반 세인이야 더 말할 여지도 없지 않은가?
나는 일찌기 이러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행가의 청각은 보통인의 그것보다 훨씬 예민하다"라고 그리하여 비행가는 프로펠러의 음향을 듣고 곧 기계의 고장이 있음을 안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가만이리요? 누구나 청각이 완전치 못하고는 세상 사물을 바로 듣지 못할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자손을 꼭 음악가를 만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완전한 감정이나 완전한 신체의 소유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서만이라도, 어렸을 때부터 청각의 훈련을 게을리 아니함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