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재즈 음악에 대하여

왕년, 세계대전이 끝난 후 뒤이어 일어난 소위 째즈 음악은, 얼마 전까지도 이것은 저열한 악취미를 발휘하는 말하자면 신성한 음악에 대한 반역자로서 또는 세기말적 퇴폐한 사상과 정신을 양출(釀出)하는 이단자로서 일부 세인의 배척을 받아 왔으며 심지어 덴마아크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국법으로 이 음악의 연주를 금지한 일까지 있었지마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금일에 있어서는 째즈는 이미 전세계 악단을 석권하다시피 하면서 끊임없이 일정한 방향으로 착착 진전하여 악단적 지보(地步)를 확고히하는 동시에 세계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청춘 남녀의 정열을 태울 대로 태우며, 그네의 맥박과 심장의 고동을 끝없이 고조시킴은 웬 까닭인가?

사람은 본시 선천적으로 음악적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리듬 속에서 호흡하고 리듬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적(悠寂)한 고전이나 낭만적 음악은 기계문명의 정복하에 완전히 포로가 된,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상으로나 위안과 휴양을 주기에는 너무나도 그 대가가 과중하여 어떤 때는 로맨틱한 몽환 속에서 우리를 잠들게 하는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문명이 절정에 이르는 금일, 우리는 주간의 노동으로 피폐된 심신을 로맨틱한 몽환 속에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는 결코 만족치 못할 것이요, 오히려 한 잔의 커피나 한 곡의 째즈에서 그 휴양을 찾으려는 욕구가 절실해졌으니, 과격한 노동의 뒤에는, 가령 그것이 정신적이었다면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휴양의 한 방법으로 심신의 자극을 찾으려는 욕구가 절실해졌으니 과격한 노동의 뒤에는 가령 그것이 정신적 노동이었다면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휴양의 한 방법으로 심신의 자극을 구하는 것이다. 첨예한 현대인은 자극없이 휴양할 수 없으며, 자극없이 그 원동력을 소생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째즈음악이란, 고전에 심취된 때의 청신제로 또는 심신 자극제로 실로 백퍼센트의 효과를 지니고 출현한 것인 만큼, 시대인의 욕구에 적응하는 이 신음악은, 그것이 고전에 대한 반역이거나 이단이거나는, 오히려 제2의(義)로 돌리고서라도, 또는 국법이 이것을 금지하거나 말거나, 결국 아무 효과가 없을 만큼, 시대인은 자기네 시대의 총아(寵兒)로, 위안물로, 또는 신경 자극제로, 이 반역아를 환영하고, 이단자와 영합하는 것이다.

째즈는 어디까지나 자극을 목적으로 한 소위 '절분법(切分法)'을 그 절대의 요소로 하여 강약이 언제나 일정한 법규 밑에서 순화 반복하는, 말하자면, 순조(順調)의 혈행(血行)을 그 독특한 절분법에 의하여 때로는 결연도 시키고, 때로는 불순한 병적 상태까지 일으키게 하여, 지금까지 평온과 유장한 기분에 호화된 현대인에게 일종의 전광적(電光的) 자극을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째즈는 째즈 독특의 음색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관현악에서와 같이, 각 악기는 어떤 일종의 감흥을 조성하기 위하여서의 공동적 협력을 하는 일은 별로 없고 째즈에 사용되는 악기는 각각 독자의 영역에서 활약을 하고 각자의 개성을 살리기에 위주하는 것인 만큼, 섹스폰류의 흐느껴 울고 웃는 음이라든지, 교태백출의 밴조라든지, 히스테릭한 트럼펫의 발작적 절규, 폭발되는 타악기, 수정만장(垂淨萬丈)의, 그러나 추하지 않은 바이올린 음, 희극 배우와 같은 트럼본, 발전기와 같은 피아노..... 등등에 현대의 형자(形姿)가 나타나 보이며, 현대인의 호흡이 긴박되어 있는 것이다.

무릇 어떠한 예술 형식을 물론하고, 그것이 시대성을 무시하고, 그 존재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예술음악이 거의 다 사교적 음악이요, 무용음악에서 그 근원을 발한 것이지마는, 신예술 형태의 창생은 이론에서나 학자들의 머리속에서 안출되는 것보다도 항간 속배의 일상생활에서 배태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 째즈음악이란 것이 이미 시대의 욕구, 현대인의 감정에 적응하기 위하여 산출된 이상, 이것이 앞으로 일종의 신예술 형식이 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마는 오히려 금일에 있어서도 이미 째즈가 조조하는 취주악기의 이용 범위라든지 그 성능은 비상히 확대되어, 이소겸대(以小兼大)적 극히 합리적인 악기편성법은, 세계 각국의 급진파 음악가들의 손에서, 착착 채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미 '째즈 심포니'나 연주회용 째즈곡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을 볼 때에, 작일(昨日)에 반역아요 이단자이던 째즈는 금일에 있어서는 벌써 일종의 신예술 형태로, 신음악 형식으로, 음악의 영역의 일분야를 엄연히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째즈 음악이 저급이요 속악하다는 소리는 금일에 있어서 우리는 상당히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본시 자기의 알지 못하는 과거에 대하여 일종의 동경의 가지며 현재의 모든 것을 불시(不視)하는 기습(奇習)을 가진 만큼 설사 바하나 모짜르트의 미뉴에트에 경의를 표하고, 이것이 최고급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기실 바하나 모짜르트의 재세(在世) 당시에는, 이 역시 시대인의 기호에 적응된 일개 무도곡에 불과했던 것이다. 월츠가 그러하며 가보트가 또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금일의 대중에 있어서는, 17,8세기는 고사하고 19세기의 통속음악을 가져 오더라도, 결코 이것으로 만족하지는 않는 것이다. 또한 이것으로 만족하려 하더라도, 거기에는 상당한 예비교육을 받아야만 될 것인즉, 시대인의 호흡과 일맥 상통되는 째즈가, 금일의 대중에게 영합됨도, 결코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째즈 발생의 역사는 세계대전 이후에 속한 자로서, 아직 일천하다 하겠으나, 그러나 째즈가 째즈라는 이름아래 세상에 나타나기까지에는, 물론 오래 전부터 이미 그 형태가 존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니, 곧 금일의 째즈는 작일의 래그타임(Ragtime)이요, 그저께의 케이크워크(Cakewalk) 및 쿠운 송(Coon song)이라 할 것이다. 래그타임은 미국 흑인의 소가조로 절분법을 주로 한 것이며 케이크워크란 남미의 무곡이나 쿠운 송이나 흑노(黑奴)의 노래 등도, 역시 절분법을 특색으로 한 것이니, 이것들을 토대로 하여 미국 흑인들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악기나 가지고 악보 없이, 또는 아무런 규약도 없이 자유자재로 소연(騷然)히 합주한 것이 곧 금일의 째즈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째즈라는 어원에 대하여는 중설이 같지 않으며, Jas, Jass, Jasz, Jascz 등 실로 각종 각양의 철자법이 주장되어 왔고 혹은 Charles라는 한 태고수(太鼓手) 인명에서 기인했다고도 하지마는, 하여간 이것이 미국본토의 영어가 아닌 것만은 사실이니, 곧 째즈의 리듬이 유독히 아프리카 토인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을 가지고 보더라도 이 말은 필시 아프리카로부터 전래한 것이나아닐까 함이 일반의 추정이다. 뿐만 아니라 상기한 철자법에 의한 발음은 모두 아프리카 토인들이 사용하는 태고의 음을 형용한 것으로 토인들이 모여서 수무족도(手無足蹈)할 때에는 언제나 ‘째즈다 째즈다!’하고, 태고를 두드려서 기세를 높인다고 하며, 또 금일에 있어서도 서커스나 보드빌 등의 흥행단에서는 ‘Put in Jazz’란 말이 있어서 그 어의는 템포를 속히 하라, 눈에 불이 나게 하라는 것 이람을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이 재즈 음악의 시초가 어떠한 데서 발생되었는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대하여 킹슬리씨가 1917년에 발표한 글에 의할진대 “째즈라는 기이한 말은 통속음악 제작자들 사이에 비상한 세력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연주자들은 수무족도하여 마치 희랍 시대에 있던 비약광(飛躍狂)을 보는 듯하다. 그 음악이란 별로 깊은 탐구를 하지 않더라도, 완전히 흑노적(黑奴的)임을 알 수 있다”고 했으며 ‘라프카디오 헌’ (소천팔운(小泉八雲))[1]씨는 말하되, “째즈란 것은 흑인으로부터 온 서인도인의 전래어로, 그 의미는, 사물을 될수 있는대로 속히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기본적인 절분법의 전형이다”라고 했다. 그밖에 1924년에 미국 음악잡지『Etude』에는 로페츠씨가 “째즈의 어원은 Charles이다. 빅스베리에 찰스라는 태고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차스 워싱턴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던 것이 어느 틈에 차스가 차즈로 변했다. 그런데 이 차즈라는 고수는 본시 악보를 읽을 줄은 모르나,그러나 절분법의 리듬에 대하여는 놀랄 만한 천재의 소유자로 태고를 두드려야 될 부분에 이를 때에는 언제나 지휘자가 ‘자, 차즈!’하고 소리를 쳤다. 그것이 차차 변하여 째즈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물론 이 로페츠의 말은 전설에 가까운 것이지마는 그러나 무던히 흥미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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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째즈가 그 초창시대에 있어서는, 일종의 저급한 육감적 음악에 불과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급속도로 발달되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째즈 작가들은 그 재료를 고전이나 낭만의 제악가의 작품 중에서 취하게 되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비난과 배격을 받던 이 이단자적 음악은, 고전 옹호자들에게 갖은 질타와 공격을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전의 작품으로 째즈화된 것은 그 수가 비상히 많아서, 일일이 매거(枚擧)키 어렵지마는 그 중에서도 쇼팽의 <즉흥환상곡>, 헨델의 <할렐루야> 코러스,가극 중 <토스카>, <나비부인>, <사드코> 등은 가장 저명한 예로서, 이와 같은 것들의 고전 개편에 대한 세인의 비난에 대하여 째즈왕 화이트맨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각 국민은 생활과 환경의 상위에 따라서, 언어의 엑센트가 각각 다르다. 같은 영어라 해도 영국인의 영어와 미국인의 영어는 각자 상위되는 점이 있으니 미국인의 영어는 차라리 미국어라고 개칭함이 옳은 것이다. 재즈에 있어서도 꼭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으니, 곧 째즈는 음악상에 있어서의 미국어요, 미국적 표현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너무 아전인수격 궤변이라고 할는지도 모르지마는,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러한 작품의 고전 개편은 원작품에 못지 않은 효과와 매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일반대중의 요구는 째즈 작가들의 일터를 고전 속에 구하지 않을 수없게 만들어서 현시 세계에 유포되어 있는 무수한 째즈 중에는, 고전의 개편이나 적어도 거기서 얻은 암시로써 작곡된 것이, 거의 전체의 80%란 절대 다수에 달한다고 하니, 이같이 되고 보면 "금일의 소위 째즈는 시대의 욕구에 적응하기 위한 고전의 개편"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현상으로 장족 진보되는 째즈음악은, 째즈계의 왕자 화이트맨을 위시하여, 그로페, 거쉰, 벌린, 루이스 등의 제작자(諸作者)의 손에서 차차로 예술화하여, 1924년 2월 12일에 미국 뉴욕시에서 열린 째즈 교향연주회가 일 신기원을 지은 이래 최근의 구미 각국의 신진기예의 작곡가들은 모두 째즈적 수법에 의하여 작곡을 할 뿐만 아니라 전세기의 희가극은 거의 다 째즈로 개작되어 가며, 미국에 있어서는 교회음악까지도 째즈적 색채를 가지게 되자 교회 안은 비상한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함을 들을 때에, 이것이 비록 시대상의 반영이라고는 하더라도, 그 진전의 속도가 너무도 빠르고 그 확대의 범위가 너무도 넓음에 우리는 끽경(喫驚)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째즈는 단순한 무도음악만이 아니라, 드디어 현대의 작곡 형식의 하나로, 또는 음악예술의 일분야로 그 악단적 지보(地步)를 확고히 만드는 중에 있지만은 이에 따라서 째즈 악기 편성의 합리화는 이윽고 재래의 관현악법을 개작할 때가 불원코 도래하리라 함을 생각할 때에 일종의 유쾌를 느끼게 되는 반면으로 고전에 대한 별다른 애착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작일의 생활은 삼림이나 들이나 해변이나 전원에서의 사색이 있지마는 금일의 생활은 고층 건축이나 기계공장에서의 사색과 노동이라 함을 생각할 때에 과거의 유장하고 전아한 음악은 현대인의 피폐된 심신을 휴양시키기에는 너무나 그 힘이 유약하지나 않을는지? 나는 고전음악과 째즈를 비교하려 함도 아니요, 동시에 고전을 물리치고 째즈를 추장(推獎)하려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오직 시대가 해결해 줄 문제인 까닭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과 그 호흡, 그 템포를 같이 하는 음악이야말로 우리 생활의 추진기가 되지나 않을는지 과거에 있어서 문학이나 미술보다 항상 시대에 뒤떨어져 오던 음악이, 째즈라는 신예술 형식의 현출로 말미암아 제타(諸他) 예술보다 가장 앞서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유쾌를 느끼는 바이다. (鹽入龜輔著 『ジャス音樂』 참조)

  1. 일본에 귀화한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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