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첫 번 부르는 소리는 비교적 작았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으매 두 번째는 꽤 큰 소리가 나왔다.

『야!』

삼청동 어떤 오막살이었다. 큰방에서 두 번을 연하여 부르는 소리에 건넌방에서 글을 읽고 있던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네?』

열 한두 살 난 소녀였다. 그는 대답만 하고 잠시 기다려 본 뒤에 문을 열고 나서서 큰방으로 건너갔다.

『부르셨어요?』

큰방에 들어선 소녀는 문을 고즈너기 닫으며 아버지를 보았다.

병상에 넘어져 있는 아버지―며칠 머리를 빗지 못했기 때문에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베개 위에 놓고 눈을 감고 있는 그 얼굴은 놀랍게도 여위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로 말하였다.

『야―저……』

말하기가 숨찬 모양이었다.

『요란스럽다. 나가서 좀들 조용하래라.』

『네.』

한길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석전을 하느라고 야단들이었다.

『와아!』

『와아!』

수십 명의 아이들이 편을 갈라 가지고 쫓으며 쫓기며―이 근처의 집이 모두 떠나갈 듯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자리에 누워 있는 병인에게 있어서는 이 소리가 폐부까지 찌르는 듯이 역한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들은 소녀는 뜰로 내려와서 대문 밖에까지 나와 보았다.

『와아!』

『잡아라!』

『야아!』

열 여덟 살에서 비롯하여 열 너덧 살까지 난 아이 한 이십여 명이 몰려서 소녀의 집 앞을 달아났다. 그 뒤를 아 역시 그 나잇살이나 된 소년이 이삼십 명이 함성을 지르며 쫓아 갔다.

『이 자식들, 좀 조용해라! 왜 이리 야단이냐?』

소녀는 대문간에서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런 소녀의 소리는 그 함성에 싸여서 소년들의 귀에 들릴 리가 없었다. 소년들은 제각기 함성을 지르며 달아간 패를 따라갔다.

『망할 자식들!』

소녀는 대문간에서 종알종알하면서 달아간 소년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쫓겨 가던 패가 쫓겨 가는 동안에 다시 세력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와아!』

함성 소리가 다시 크게 울렸다. 따라가던 소년들이 일제히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이리로 향하여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그 도망하는 패가 소녀의 집 앞을 통과하고 쫓는 패가 채 이르기 전에, 소녀는 활개를 펴고 길 복판 한가운데로 뛰어나갔다.

『이 망할 자식들아, 요란스럽대도 귀가 먹었느냐?』

쫓아 오던 패의 선봉이 이 소녀에게 길이 막혀서 부시시 섰다. 쫓던 아이들이 뒤를 따라서 모두 섰다.

『이 자식들아, 저기 가서 놀아. 왜 남의 집 앞에서 야단이야?』

『얽으망태야!』

쫓던 패의 맨 뒤에 달렸던 소년이 조롱의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서서 달아났다.

『얽으망태, 졸망태!』

몇 소년이 거기 화창하며 달아났다.

『그래 얽었으면 어떻단 말이냐? 얽은 구멍마다 복이 박혔단다.』

소녀는 달아나는 소년들에게 고함을 퍼부었다.

이 소녀―삼청동에서 싸움 잘하고 동리 아이들 욕 잘 하는 이 얽은 소녀가 장래 자라서는 흥선 대원군을 적수(敵手)로, 삼천리 강산을 왼손으로 휘두른 고종비 민씨(高宗妃閔氏)의 전신이었다. 흥선 부인의 일가 아저씨 되는 민 치록(閔致祿)의 외딸, 당시 나이는 열 한 살―

이리하여 삼청동 구석에서는 한 개의 무서운 알(卵)이 성장되고 있었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

일변 얽은 것을 조롱하면서 도망하는 소년들에게 향하여 소녀는 연거푸 저주를 퍼부었다. 성(性) 방면에 좀 오딘 이 소녀는 자기의 얼굴이 얽은 것을 비웃긴 것이 분하기가 짝이 없었다. 도망하여 길 모퉁이로 꺾어지면서 사라지는 소년들을 등을 바라보는 이 얽은 소녀의 눈에는, 푸르른 독기(毒氣)가 나타나 있었다.

소년들이 좌우로 모두 도망하여 없어진 뒤에 이 동리는 갑자기 조용하여졌다. 장안의 북쪽 끝 백악(白岳) 기슭에 놓여 있는 이 동리는 저편 앞에서 지금도 수 없이 일고 잦을 모든 군잡스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봄, 아니 봄이라기는 아직 좀 이른 늦은 겨울―바람은 아직 찼지만 쏘는 기운은 없는 바람이었다. 바람만 없는 곳에는 벌써 볕이 꽤 따스하게 내려 비치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하여진 동리의 길 복판 가운데 좀더 버티고 서 있던 소녀는, 악동들에게 얽으망태라고 욕먹은 것이 그래도 분하여서, 종알종알 저주를 퍼부으면서 자기 오막이의 대문으로 향하여 돌아왔다. 그리고 급기 대문을 열려다가 저 편 길 모퉁이에 사람의 무리가 한 떼 나타나는 것이 시야(視野) 한편 끝에 보이므로 눈을 그리로 돌려 보았다.

웬 한 개의 안행차였다. 소녀는 다분의 호기심을 가지고 이 대낮에 지나가는 안행차를 바라보았다.

초라한 안행차였다. 다 빛 낡은 사인교에 해진 옷을 걸친 교군군이며, 겨우 한 명의 계집종을 거느린 이 안행차는 삼청동 같은 빈민굴에나 적합한 초라하기 짝이 없는 행차였다. 행차는 소녀의 집 앞에까지 왔다. 가까이 이른 다음에 보매, 그것은 소녀가 익히 아는 흥선 부인의 행차였다.

『아이고 언니! 어떻게 오세요?』

『오 너냐! 잘 자라느냐?』

이 일가 형제는 서로 손목을 잡았다.

『아버님이 병환이 계시다기에 왔다. 병환은 어떠시냐?』

『무슨 환후인지 구미가 없으시고 때때로 토혈도 하시고―아주 심상치 않으신 모양이에요.』

『오오! 혼자서 얼마나 애를 쓰느냐?』

근본은 양반이라 하나 거지 이상의 가난한 살림을 하는 이 민 치록의 집안의 괴롭고 구슬픈 가사를 혼자 돌보는 소녀는 일가 언니의 위로에 그의 총명하게 생긴 눈을 쳐들었다. 이 꽤 커다랗고 맑은 눈―이 눈이야말로 후일 이 소녀가 변하여 고종 왕비가 된 뒤에 한 번 그느스럼히 뜨면 청국, 아라사, 모든 쟁쟁한 외교관들이 그 앞에서 개짐승의 시늉이라도 달갑게 하였고, 한 번 크게 뜰 때는 서슬이 푸르르던 국태공 흥선 대원군의 세력도 능히 부셔 버린 놀라운 눈이었다. 얼굴은 얽었으나마, 몸은 야위고 초라하나마, 이 소녀의 가슴 깊은 곳에는 놀라운 혼이 생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일가의 어른으로서 이 소녀를 따뜻이 위로를 하는 흥선 부인도, 후에는 이 소녀의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애원할 날이 오리라고는, 소녀도 부인도 짐작할 바이 없었다.

『자, 들어가자. 어서 아버님께 뵈자. 나도 가난한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 긴 시간이 없다.』

『아버님도 늘 이즈음 외로와하시니깐 언니께서 오신 걸 얼마나 반가와하실지……』

이리하여 중로의 마나님과 소녀는 서로 손목을 마주잡고 병석에 누워 있는 주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도 그걸 무슨 말씀이라고 하시우?』

『아니, 내 탈은 내가 제일 잘 아는 것―다시 일어나지 못할 탈이외다.』

초라한 방 안, 병들어 누워 있는 민 치록의 곁에 흥선 부인은 병인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직 장년에 그만 탈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시느니 못나시느니 너무도 약한 말씀이외다.』

『아니, 이 긴 병은 한 번 걸리기만 하면 다시 살지 못하는 것이외다. 낙척 십 년, 다시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쓰러질 모양이외다. 아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이……』

치록은 손을 들었다. 그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떨리는 손을 들어서 발치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딸을 가리켰다.

『아직 젖비린내도 떨어지지 않은 저 애를 남겨 두고 이런 병에 걸리니 딱하기가 짝이 없소.』

여윈 치록의 가슴이 이불 아래서 들먹거렸다. 베개 위에 놓인 머리가 뒤따라 움직였다.

『훌!』

맥 없는 기침 한 마디―그 뒤를 따라서 또 한 마디―연하여 기침이 났다. 그 기침을 한참 하고 난 치록은 말을 계속하였다.

『하늘은 우리 일족에게 왜 이렇듯 야속하신지? 돈 없고 낙척한 우리네―내가 덜컥 죽는 날이면, 저 철 없는 계집애는 누구를 믿고 살겠소?』

쑥 들어간 눈에서는 눈물이 한 줄기 그의 여윈 뺨으로 흘렀다. 흥선 부인도 탄식하였다.

『이런 때에 우리라도 좀 그렇지 않게 지냈으면 서로 도울 길이라도 있으련만,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피차 일반으로 영락된 집안, 마음에는 있지만 힘이 자라지를 못합니다그려. 대감께서도 아저씨 병환이 중하시다는 기별을 들으시고 부랴부랴 나를 이 곳으로 보내기는 했지만, 가난하게 지내는 형세에 빈 손으로 올 밖에는 도리도 없고……』

『천만에! 일가 한 사람도 돌보다 주지 않는데, 흥선 대감이 이렇듯 조카님을 보내 주신 것만 해도 고맙기 짝이 없소이다.』

집이 가난하기 때문에 중병에 걸렸어도 일가의 돌아봄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치록과, 역시 가난하기 때문에 그 집안은 왕가와 가까운 혈족이면서도 온갖 수모와 멸시만 받고 지내는 흥선 부인과는 서로 위로를 주고 받았다.

『내가 여차하는 날에는 이 고아를 돌보아 주시오.』

『그 염려는 마세요. 불행한 날이 오면 뒷일을 다 맡아서 보아 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하루 바삐 쾌차하시도록이나 노력을 하세요. 거기 대해서……』

흥선 부인은 하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침을 한 번 삼키고 숨을 돌려가지고 다시 계속하였다.

『아저씨! 승호(閔升鎬)를 아시지요?』

『승호?』

『네, 내 오라비 동생.』

치록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응, 생각납니다.』

『아저씨도 사당을 받들 후사도 아직 없으시니까 더욱 쓸쓸하시겠지요? 그래서 만약 아저씨 마음에만 계시다면, 승호를 이 댁에 양자로 드렸으면 어떨까 하고……』

치록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생각한 뒤에 다시 눈을 떴다.

『조카님 추천이 어련하리까? 그렇지만 이 일은 집안의 중대한 일이니 좀 생각해 보고 작정합시다.』

흥선 부인이 오늘 이 병든 치록을 찾은 것은 자기 오라비 승호를 일가 아저씨 민 치록의 집에 양자로 들여보낼 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흥선 부인은 민 치록의 집에 밤까지 있었다. 그리고 간호를 하며 위로를 하며, 이 병든 외로운 일가를 위하여 하루를 보냈다. 밤에 댁으로 돌아오기에 임하여 부인은 다시 한 번 자기의 동생 승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내 동생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똑똑하고 영특한 애 외다. 영락된 이 가문에 들어와서 장차 이 가문을 부활시킬 만한 수완이 있는 애외다. 잘 생각해 보셔서 작정하도록 하십시오.』

거기 대하여 치록은 사례하였다.

『누구 하나 돌보다 주는 사람이 없는 이 치록에게 그렇듯 뒷일까지 생각해 주니 감사하외다. 잘 생각해 봐서 조카님 호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해 보지요.』

이만큼 하여 두고 부인은 댁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부인의 동생 민 승호는 부인의 내명으로 병들어 누운 일가 아저씨의 병 문안을 겸하여 인사를 하러 갔다.

승호는 흥선의 맏아들 재면과 연갑이었다. 역시 영락된 민씨 집안의 한 사람인 승호는 섞이어 같이 놀 동무도 없어서, 만날 흥선의 집에 와서 흥선의 맏아들 재면을 벗하여 놀았다. 촌수로 따지자면 외삼촌과 생질 사이나, 서로 나이가 연갑이고 어려서부터 같이 길러난 이 두 젊은이는, 촌수를 떠나서 벗으로 지냈다.

흥선의 맏아들 재면은 사람됨이 직하고 좀 우둔한 편이었다. 거기 반하여 승호는 날카롭기 비수 이상의 인물이었다.

좀 우둔한 재면과 날카롭고 민첩한 승호가 같이 노는 모양을 볼 때마다, 흥선은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 눈 기슭에 타오르고 하였다. 자기 맏아들의 우둔함과 이 승호의 민첩함이 대조되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흥선은 승호의 재질을 사랑하면서도 자기의 맏아들과 같이 놀 때는 흔히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곤 하였다.

이렇듯 민첩하고 영리한 승호는 흥선 부인의 내명을 받고 일가 아저씨를 병상에 문안가서 충분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였다. 병상에 외로이 누워서 인생의 고적함을 느끼고 있던 민 치록은, 승호의 날카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 청년이면 뒤를 맡기고 자기가 죽더라도 결코 가문을 욕되게 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이 영락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만한 수완을 가졌을 것으로 보았다.

『틈이 있거든 내일로 또 와서 이 쓸쓸한 병인을 위로해 주게.』

숭호가 저녁에 하직하고 돌아갈 때에, 치록은 병든 몸을 반만큼 일으키고 이렇게 당부하였다. 얽은 소녀도 이 일가 오라비뻘 되는 승호에게, 또 내일도 오라는 듯이 그의 커다란 광채나는 눈을 그의 위에 부었다.

이리하여 한 번 두 번 승호가 이 집에 다니는 동안, 치록도 승호의 인물에 반하여, 드디어 흥선 부인을 찾아서 승호를 이 집 양자로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치록의 딸 얽으망이 소녀가 장차 자라서 왕비가 되어, 시아버지 흥선 대원군과 무서운 정권 쟁탈전을 할 때에 왕비의 부조자요 보호자요 심복이요 고문으로서 흥선 대원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민승호는, 이리하여 흥선 부인 민씨의 오라비로서 일가 민 초록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서, 얽은 소녀와 남매의 의를 맺게 된 것이었다. 현재로는 승호는 흥선의 처남―장래는 며느리의 양오빠다.

제5장

맨 위로

제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