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16장
十六
편집『옥체 만강하옵신지 아옵고자 신 정 원용이 대령하왔읍니다.』
고희(古稀)를 지난 지 이미 구 년, 여든이라는 나이를 눈앞에 보는 늙은 대신 정 원용이, 대조전 마루에 끓어 엎디어 문안을 드릴 때에, 상감은 지밀(至密)에서 방금 아침 수라를 끝내고 대조전에 납신 때였다.
등극한 이래, 재상 가운데 상감이 믿고 힘입고 마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정 원용 한 사람뿐이었다.
강화에서 농사를 짓고 세를 베는 한 개의 초동으로 지내다가, 갑자기 입궐하여 보위에 오른 상감은, 사면 모두 어마어마하고 서투르고 무서운 가운데에서, 처음에는 김 대비 한 분을 믿고 지냈다.
다른 재상 대신들은 모두 상감께는 무섭고 위엄성 있게만 보였다. 대신들이 당신 앞에 꿇어 엎디어 말씀 아뢸 때는 거북하기만 하였다.
그 가운데서 김 대비 이외에 다만 한 사람 백발 재상 정 원용뿐은 상감도 친애함을 느꼈다. 귀인답게 굵은 주름살이 박히고, 그 위에 허연 머리와 허연 수염으로 장식된 정 원용의 얼굴은 역대 사조의 임금을 섬기는 동안, 저절로 임금께 대해서는 무조건하고 복종하겠다는 온화한 표정이 새겨져 있었다. 이 온화한 얼굴의 재상은 위엄과 위의로써 장식한 다른 재상들과 달라서, 겁먹은 상감과 친애의 염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군신의 사이라기보다도―상하의 사이라기보다도―오히려 부자의 사이에 당연히 가져지는 친애와 존경의 염을, 정 원용에게 대하여 품고 있는 것이었다.
정종―순조―헌종―이렇게 삼 대의 임금을 섬기고 또한 사 대째의 임금을 모시러 강화로 왔을 때, 처음 대한 이 노재상은, 상감 재위 십 수 년 간을 통하여 인종과 굴복과 존경의 한결같은 태도로써 새 임금을 섬겼다.
그런지라, 명리와 욕아 때문에 섬기는 다른 재상들과 달라서, 상감은 정 원용에게뿐은 어버이로 섬기고 싶은 친애감조차 느끼는 것이었다.
다른 재상들이 무슨 말씀을 아뢸 때에는, 상감은 늘 황황하여서 당신의 몸조차 마음대로 가지지를 못하였다. 무슨 마음에 먹었던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유유낙낙 그들의 아룀에 혹은 옥새를 찍고 혹은 승낙을 하고 하였다.
그 일이 지난 때마다 당신으로서도 그 때 왜 이렇게 처단하지 않았는가 하는 후회를 하고 하였지만, 재상들과 당면하기만 하면 다음에 먹었던 생각은 모두 잊고 유유낙낙할 뿐이었다. 더구나 김 대비의 친척이자 또한 당신의 인척(姻戚)이 되는 김씨 일문에 대해서는 더욱 황황한 태도를 취하고, 「강화 도령」이라는 멸시를 받지 않으려고 거기 마음을 쓰노라고, 마음에 없는, 뜻에 안 맞는 일을 웃음을 보이고 하였다.
그러나, 정원용에게뿐은 그렇지 않았다. 본시 어질기 때문에 백성에게 대하여 가진 착한 정책을 정원용에게 뿐은 의견을 물으며 가졌던 의향을 그대로 말하고 하였다.
역대의 네 임금을 섬기는 원용은, 또한 임금을 섬길 줄을 알았다. 본시부터 대궐 안에서 귀공자로 자란 분이 아니고, 비천한 가운데서 그 십 구 년 전생을 보낸 상감이, 갑자기 대궐에 들어와서 얼마나 서먹서먹할지, 그 점도 짐작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원용이 상감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긴다는 것보다, 오히려 늙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훈도하듯 하였다. 그리고, 그러기 때문에 상감은 더욱 이 늙은 재상을 믿고 힘입고 하였다. 말하자면 상감은 정원용을 신으로 보지 않고 스승으로 섬긴 것이다.
『근래 언관(言官)들이 민사를 진언하지 않음은 웬일이옵니까?』
많은 대신 가운데 다만 한 사람 신임하는 재상을 지척에 부르고, 상감은 마음에 먹었던 말을 물었다.
원용이 황송히 허연 머리를 마룻바닥에 조았다.
『황공하온 하교이옵니다. 언관은 어전에 진언하는 것이 그 직책이오매 어찌 추호라도 게으르오리까?』
이 때에 상감은 수일 전의 사건을 분명히 머리에 그려보았다.
수일 전에 부호군(副護軍) 신태운(申泰運)이 「근일 민간에 소위 왜역수본(倭譯手本)이라는 것이 돌아서 혹세무민을 하는데, 그 장본인을 잡아서 엄벌하면 좋겠다」는 상소를 한 일이 있었다.
신태운은 간관(諫官)이 아니었다. 언책을 가지지 않은 한 개의 무변(武弁)도 나라를 위하여 이런 상소를 하거늘, 소위 간관들은 일체 그런 일은 모른 체하고 오로지 국록을 도식하기에만 급급한 것이 매우 불쾌하였다.
『아니외다. 내가 우매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근일같이 언로가 막혀 본 일이 종전에는 없었읍니다. 나는 비록 어보를 몸소 잡았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촌부에 지나지 못하는 사람―여러 대신 재상들의 끊임없는 보좌가 있어야지 않겠소이까? 그런데……』
상감은 말을 끊었다. 좀 과한 말이 하마터면 나올 뻔한 것이었다. 대각(臺閣)에서 일체 진언이 없음은, 아 나, 국왕을 무시함이 아니냐―이렇게 상감은 하문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역대 사조의 임금을 섬겨서, 임금의 마음을 촌탁하기에 밝은 원용은 상감의 하려던 말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전하, 수대(首臺─大司諫) 임 백수(任百秀)를 찬배(竄配)하도록 처분이 계시옵기를 바라옵니다.』
하고 아뢰었다.
이러한 마음의 불평을 막연하게나마 발표할 수 있는 재상은 정 원용 한 사람뿐이었다. 영의정 김 좌근을 비롯하여 상공 육경, 누구든 상감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자기네의 생각을 가지고 와서 이렇다 저렇다 상감을 귀찮게 하는 뿐, 상감을 위하여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 상감은 이 높고 귀한 보위조차 불편하였다. 지나간 철 없는 시절―마음대로 자유로이 벌판을 뛰어 다니며,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로이 하던 「강화 도령」의 시절이 한없이 그리웠다.
지금, 한 번 옥체를 일으키면 내관들이 달려와서 부액(扶腋)을 한다. 한 말씀 구중에서 내면 여관들이 처분 내리기가 무섭게 거행을 한다. 그러나 얼마나 부자유롭고 답답한 생활이냐? 하고 싶은 일을 여기 기이고 저기 기이기 때문에 하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지금의 처지는 이것이 과연 행복된 처지일까?
몸은 지존의 위에 있어서 백성들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임금」이라 하나, 상감은 즉위한 이래로 아직 백성들의 소식을 들은 일이 없었다. 이전 「강화 도령」시대에 겪은 바와 같이 지금도 백성들은 탐관오리의 아래서 도탄에 괴로움을 맛볼 것이로되, 당신의 귀에는 아직 그런 소문이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맞은편 늙은 재상을 굽어 보고 있는 동안, 용안에는 차차 적적한 표정이 흘렀다. 구중에서는 약한 탄식성까지 새어 나왔다.
『그것뿐이 아니라, 이즈음 보자면 각 지방의 수령의 천전(遷轉)이 빈번하고 내왕이 분분하니, 그것은 또한 웬일이오니까?』
노신 정 원용에게 대한 두 번째의 하문이었다.
『아무리 공사 삼일이라는 속담이 있기로, 이즈음은 너무 심한가 봅디다. 지방 수령은 그 곳에 오래 머물러서, 그 땅 지리 인정 풍속을 다 안 뒤에야 비로소 선정을 베풀 수가 있는데, 이즈음같이 천전이 빈번하면 백성은 다만 맞고 보내기에만 바쁠 것이 아니오니까?』
사색 당쟁이 심할 때에는, 어제는 노론, 오늘은 소론, 내일은 남인, 모레는 북인―이렇게 정부의 수뇌자가 바뀌었는지라, 수뇌자가 바뀔 때마다 지방 수령들은 따라서 바뀌게 되었다. 그런지라 「공사 삼일간」이라 하는 속담까지 생기고, 사흘만 지나면, 오늘은 사건도 그 때는 「비사건」이 되고, 오늘의 죄도 그 때는 공이 되게―이렇게 변화가 심하였다.
지금의 「공사 삼일간」은 그 시대와 같은 당쟁의 결과가 아니다. 매관 매작이 너무도 심하기 때문에, 수령자리를 이만 냥에 샀던 사람은 삼만 냥 내는 사람에게 앗기고, 김 병학에게 수령 자리를 샀던 사람은 김 병기에게 돈 내는 사람한테 앗기고, 약채전을 적게 보내는 사람은 수많이 보내는 사람에게 앗기고」이리하여 지방관의 변동이 무상하였던 것이다.
『황공하옵신 하문이옵니다. 질치(?痴) 미처 눈이 돌지 못하와 성념에까지 및게 하온 것은 죄당만사이옵니다.』
『듣건대 지방 수령들은 상세정공(常稅正供) 이외에 남징(濫徵)이 심해서, 백성의 곤란이 자심하다니, 그것은 또한 웬일이오니까?』
『황공하옵니다. 모두 이 우질(愚?)의 죄로소이다.』
『관서(關西)의 제읍에서는 공용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조(田租)를 예징(豫徵)한다 하니, 그것은 또한 웬일이오니까?』
『황공하옵니다.』
『환곡(還穀)의 폐해 또한 적지 않다는 말이 있으니, 열성조(列聖朝)에서 그 제도를 그냥 답습하셨음은 백성들의 곤핍함을 돕고자 하심이어늘, 탐관들이 그것을 악용을 한다니 그것은 또한 웬일이오니까?』
『너무도 황공하옵신 하교이옵니다.』
궁중 깊은 곳에 있고 호위하는 무리들 역시 지금의 악정의 장본인들이어늘, 그러한 환경에 있는 당신에게까지 악정의 가지가지가 새어 들어오니, 민간에서는 그 원성이 얼마나 크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들이 들고 들어오는 문제는 어떤 것인가?
어떤 지방에 화재 혹은―수재가 있으니 상감께서 기도를 드립사, 군대의 조련 때문에 백성들이 괴로워하니 조련을 정지하게 해 줍시사, 어느 능(陵)에 누구를 참봉으로 명하여 줍시사, 어느 누구는 어느 때의 명유(名儒)이니 사당을 세우고 제사하게 해 줍시사, 어디 낙뢰(落雷)가 있음은 하늘이 노하심이니 상감께서 감선(感膳)을 합시사, 어느 제사에는 상감은 어떤 의대를 잡수시고 중전은 어떤 의대를 잡수셔야 하는 것이 격식이오매 그렇게 합시사, 옛날의 어느 선비에게 증작을 합시사―아무 이익도 없는 이런 문제만 들고 들어오니, 이것은 재상들의 어리석음이냐, 혹은 재상들이 상감 당신을 깔보고 하는 것이냐?
다른 대신들에게 하고 싶으면서도 못 하였던 말씀을 상감은 오늘 정 원용의 앞에 죄 피력하였다.
하교마다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늙은 대신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구슬같이 흘렀다. 이 지당하고 지당한 하교에 무엇이라 올릴 말씀이 없었다. 복종과 존경의 표시 이외에는, 나타낼 다른 말씀이 없었다.
간관(諫官) 몇 사람은 진언하지 않은 죄로 혹은 찬배, 혹은 삭관(削官)을 당하였다. 그리고 시시로 민정을 진언하라는 엄명이 내렸다.
어진 상감이었다. 일찍이 민간에서 장성하기 때문에 민간의 온갖 고초도 통촉하는 상감이었다. 그 위에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잘 거느릴지도 짐작하는 상감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어질고 또한 그 전신이 초라하기 때문에, 권문들의 승세에 압도되어 먹은 마음을 발표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권문들을 보면 어릿어릿하며 빨리 무사히 피하기만 도모하느라고 다른 겨를이 없었다.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은 무론 모두가 대비의 정치였지 상감의 정치가 아니었으며, 상감이 친정한 뒤에도 대비 재세할 동안은 일일이 대비께 여쭌 뒤에야 정사를 행하였으니 그 역시 김 대비의 정치였으며, 김 대비 하세한 뒤에 있은 몇 가지의 정치가 즉 상감의 정치인데, 그것은 모두 노신 정 원용을 통하여 행한 것이다.
그 밖에 다른 재상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문제는 모두 시시하고 너절한 「수속」에 지나지 못하는 문제이며―그것도 그 위에 자기네가 해결까지 죄 지어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지, 문제가 정치에 및는 일이 없었다.
그런지라, 후일에 가객(歌客)이 철종 재위 십 사 년 간의 태평상을 노래하고 가로되,
錦繡江山春似海
鶯花巷陌日中天
이라 한 것은, 그 십 사 년의 태평상을 노래하였다기보다도, 오히려 아무 정치도 없이 무사히 지나간 양을 비웃었다는 편이 옳을는지도 알 수 없다.
능(陵)을 고치며, 능에 행행을 하며, 옛날 유신(儒臣)에게 증직을 하며, 순조, 순조비, 헌종 등 선왕이며 대비께 존호를 추상(追上)하며, 혹은 조례(朝禮)를 받고, 혹은 사를 내리며, 연하여 옥새를 찍는 뿐―그 이상 특별한 정치라 하는 것이 얼마 없었다.
하문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알고 시은 일도 많았고, 고치고 싶은 제도며 법률도 많았지만, 너무도 어질고 내기(內氣)하기 때문에 모두 은밀히 생각한 뿐, 그 의사를 발표하여 보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그 발표하지 못하는 모는 정책을 그냥 삭여 버리기 위하여, 자연히 음일에 흘렀다. 하릴없는 대궐 안에서 적적함을 풀기 위하여는 그리로밖에는 호를 길이 없었다.
후일에 사가(史家)가 이 임금을 가리켜 용주(庸主)라 한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그렇게 비평을 할 밖에 없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그 이가 그렇듯 용주이던 것이 아니고, 환경이 그 이로 하여금 그렇듯 어릿어릿하게 한 것이었다.
본시 미천한 가운데서 생장하고, 보위에 오른 것도 유년 시대가 아니요 열 아홉이라는 장년 시대인지라,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당신의 과거 때문에, 당시의 제상(유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명문 공자로서 장성한)들에게 자연히 마음에 있는 대로 처분을 못 내린 것이었다.
이리하여 이 어질고 내기한 상감을 두고, 권문 거족들은 마음대로 자기네의 길을 걸었다. 세상이 자기네뿐을 위하여 생겨난 듯이 아무 기탄 거리낌이 없이―간관들도 이 임금께 진언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진언을 한달사, 임금에게는 당신의 마음에 있는 처단이 그대로 내리지 못할 것을 간관들도 잘 알고 있으므로―그리고 섣불리 하다가는 척신 거족들에게 미움을 사서 큰코를 다칠는지도 알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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