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아기 톰

톰이 태어난 후 몇 년 동안의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하겠습니다.

그 무렵 런던은 이미 1천5백 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큰 도시였습니다. 인구도 10만 명쯤 되었습니다. 아니, 그 갑절이 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거리는 퍽 좁고 꾸불꾸불하며 더러웠습니다. 그 중에도 톰이 살고 있는 런던 다리 근처는 더욱더 형편이 없었습니다.

톰의 아버지가 살던 집은 푸딩 거리를 빠져 나와 좀 떨어진 구질구질한 골목 안에 있었습니다.

다 찌그려져 가는 오막살이인데,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같이 모여 살았습니다.

톰네는 그 집 3층방 하나에 세를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방 구석에 겨우 침대를 놓고 지냈지만, 할머니와 톰과 두 누나인 베트와 낸은 침대도 없었습니다. 마루방이 잠자리였는데, 어느 쪽에서 자거나 마음대로였습니다.

다 낡은 담요 두어 장과 헝클어진 짚단이 몇 개 있었지만, 이런 것을 침대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누더기 담요와 짚단은 발길에 채어 방 한 구석에 쌓였습니다. 다시 밤이 되면 이것들을 제 마음대로 끌어 내다 깔고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곤 했습니다.

톰의 누나 배트와 낸은 쌍둥이로, 나이는 열다섯 살입니다. 둘 다 마음은 좋았으나 누더기를 걸쳐서 보기에 지저분했고, 게다가 배운 것이 없어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딸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할머니는 형편없는 악인이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하면 서로 싸웠습니다. 아무에게나 싸움을 걸고, 또 취했을 때나 취하지 않았을 때나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마구 퍼부었습니다.

톰의 아버지는 도둑이고 어머니는 거지였으므로, 아이들을 모두 거지로 길렀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아이도 도둑질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지저분한 건물 안에 무척 선량한 늙은 신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앤드루라는 이 신부는 언제나 아이들을 모아 놓고, 부모 몰래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옳은 길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앤드루 신부님은 톰에게 글을 읽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라틴 어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톰의 두 누나에게도 가르쳐 주려 했으나, 괴상한 학문을 배웠다가 동무들한테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더러운 골목 안은 모두 톰의 집과 비슷한 집들이었습니다. 밤낮 주정하는 소리가 그칠 새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싸우다가 머리통이 깨지는 일쯤은 예사였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톰은 별로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괴로은 일도 많았지만, 그런 것은 으레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골목의 아이들은 모두 톰과 같은 신세이므로, 톰이 예삿일로 생각한 것도 당연합니다.

밤이 되어 한 푼도 얻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온 톰은, 우선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고 회초리로 매를 맞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번에는 마귀 할멈 같은 할머니에게 더 심한 매를 맞는 것이 정해진 일과였습니다.

헌 누더기를 걸치고 있으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먹다 남긴 빵 조각을 몰래 갖다 주곤 했습니다.

"이봐! 여전히 그 따위 짓을 해?"

어머니는 인정 사정 없는 아버지에게 들켜 얻어맞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의 생활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더욱이 여름이면 재미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거지를 단속하는 법이 엄했지만, 톰은 어떻게든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 않을 정도의 것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앤드루 신부님이 들려 주는 '키다리와 난쟁이 이야기', '요술의 성과 훌륭한 임금' 또는 '왕자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느 새 톰의 머리는 이런 이상한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주린 배를 안고 누워 있는 밤에도, 톰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대궐과 왕자님의 훌륭한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아무리 지독한 매를 맞은 뒤라도 모든 괴로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소원이 톰의 머리에서 항상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소원이란 정말 왕자를 자기 눈으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톰은 신부님이 빌려 주는 책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고 모르는 것은 신부님께 설명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공상하고 책을 읽은 덕분에 톰은 점점 달라져 갔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뿐이었으므로, 톰은 자기의 보잘것없는 옷과 때묻은 몸이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톰은 템스 강에 물장난하러 가서도 그전처럼 풍덩거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때묻은 옷을 빨고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고 공상하면서, 어느 새 톰은 스스로 왕자님을 닮아 보려고 힘쓰기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톰의 말씨와 거동이 이상하게도 예의바르게 되었으므로, 골목 안 친구들은 재미있어 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톰의 인기는 친구들 사이에 날로 높아 갔습니다.

이렇게 되어, 친구들은 톰을 저희들보다 한층 높은 사람으로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톰은 무엇이나 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톰은 아주 훌륭한 일을 할 수 있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톰이 한 말이나 행동은 곧 어른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톰은 특별히 하느님께서 재주를 내려 주신 아이일 거야."

어느 틈에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톰에게 찾아와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톰이 하는 말을 들으면 어떤 말이나 재치가 있고 도리에 맞았습니다. 어른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톰이 이렇게 인기 있는 어린이가 되었는데도 집에서는 여전히 바보 취급만 했습니다.

톰은 남 모르게 대궐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자기는 왕자가 되고 가까운 친구들은 근위병과 시종과 왕족이 되었습니다.

톰은 매일 가짜 왕자가 되어, 책에서 배운 것을 줄거리삼아 생각나는 대로 만든 가짜 육군과 해군에 거침없이 명령을 내렀습니다. 그러나 대궐놀이가 끝나면 여전히 누더기를 걸치고 동냥을 하러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동전 몇 닢을 얻어 가지고 와서는 언제나처럼 빵 조각을 먹고 주먹으로 얻어맞은 다음, 더러운 볏짚 위에 누워 꿈을 꾸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짜 왕자님을 만났으면......'

톰의 이 소원은 너무도 간절해서,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구걸하러 나온 톰은 이곳 저곳을 맨발로 서너 시간이나 돌아다녔습니다.

음식섬 유리창 안에는 맛있게 보이는 음식들이 늘어놓여 있어서 침이 꿀꺽꿀꺽 넘어갔습니다. 이런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는 천사 같은 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우박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어둡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밤이 되자 톰은 찬 비에 젖은 채 시장한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처량한 모습에는 아버지와 할머니도 가엾은 생각이 들었던지, 잔소리도 적게 하고 주먹질도 간단히 해서 잠자리로 보내 주었습니다.

톰은 아픔과 배고픔에 지치고, 어디선가 들려 오는 싸움 소리 때문에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잠이 들자, 또 왕자가 된 꿈을 꾸었습니다.

톰은 밤새도록 호화 찬란한 궁정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좋은 향기와 멋진 음악에 묻혀 지냈습니다. 귀족들과 귀부인들 사이를 거닐며, 자기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만 가볍게 끄덕여 보이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눈을 뜬 톰은, 자기가 누워 있는 더러운 자리와 거지 신세를 다시금 생각하니 두 눈에 눈물이 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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