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환아!

아버지는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붓을 잡는다. 병든 몸을 외로운 객창에서 지내면서 잠 못드는 긴 밤을 너의 생각을 하며 이 붓을 잡는 것이다. 장래의 빛나는 조선을 장식할, 그리고 또한 그 빛나는 조선을 지배할 씩씩한 젊은이가 될 너에게, 거기 적당한 교양을 베풀기 위하여 이 붓을 잡는 것이다.

너는 학교에서 여러 가지의 지식을 배울 테다. 지식의 근원인 수학도 배울 테다. 사람의 과거를 설명하는 역사도 배울 테다. 충성과 효도를 가르치는 수신도 배울 테다. 과학의 정밀함을 자랑하는 이과도 배울 테다. 건강을 위하여는 체조도 할 테다. 인류의 분포를 말하는 지리도 배울 테다. 외국말도 배울 테다. 지금의 기계적 교육 과정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배울 테다. 그러나 그뿐으로 넉넉할까?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정확히 기억하는 뿐으로 넉넉할까? 사람으로서의 감정, 사람으로서의 정서, 사람으로서의 감격, 사람으로서의 애정, 사람으로서의 정열, 이러한 모든 귀중한 감정─ 사람이란 대체 먹기 위하여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사람뿐이 가질 수 있는 감정 생활을 경영하기 위하여 산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학교에서 가르치는 기계적 과목뿐으로 넉넉할까?

너는 홀로이 밤에 뜰에 나아가서 유원히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쳐다본 일이 있느냐? 혹은 여름날 저녁 혼자서 해변에 앉아서, 저 멀리 수평선 상에서 남실거리는 배의 흰 돛을 바라본 일이 있느냐? 그때 너의 마음을 고즈너기 그러나 무겁게 누르는 무슨 이상한 감정을 너는 맛보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여름 장마 때, 흉흉한 붉은 물이 강을 넘치며 전속력으로 아래로 흐르며, 혹은 무서운 소낙비에 깃을 잃은 제비들이 염치를 불고하고 사람들이 있는 방안으로 쫓겨 들어오며, 뜰에서 넘은 물은 부엌으로 몰려 들어올 때, 이러한 어지러운 날에 너의 마음을 누르는 무서운 감정의 물결을 너는 맛본 일이 있느냐?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 할진대 너는 그 감정의 설명을 어디서 구하겠느냐? 너는 먼저 너의 교과서를 펴 보아라. 산술? 셋의 세 곱은 아홉이요, 셋의 삼분의 일은 하나요, 셋에 셋을 덜면 0이라는 것은 가르칠 테다. 그러나 산술이 너의 그런 감정에 대하여는 설명하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리? 혹은 역사? 지리와 역사는 둘 다 귀중한 지식이지만, 감정의 흥분에 대하여는 한 마디의 설명도 못할 것이다. 수신은 너에게 나라에 충성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형제 화목하라고는 가르치지만, 그 이상 한 걸음 더 못 나갈 것이다. 네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은 모두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없지 못할 귀중한 것이나, 그러나 감정의 흥분과 정서의 배양에는 조금의 도움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을 애정과 질서가 유지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하여서는, 감정의 순화와 정서의 정도(正導)라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네게는 어머니가 없다.

그러면 이 마음의 양식을 학교에서 구할 수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얻어야겠다.

지금 너의 어머니는 대단히 좋은 사람이다. 매사를 전실의 자식인 너와 의가 상하지 않도록 세밀히 주의를 하면서 행한다. 너와의 사이의 의도 좋다. 이것은 아버지 된 내가 매우 기뻐하는 바다.

이렇게 비록 너의 어머니와 너의 사이가 세상 보통의 의붓어미와 의붓자식의 사이와 같이 나쁘지는 않다 하나, 그러나 그 사이가 과연 어미와 친자식의 사이와 같이 흠이 없을까?

아버지는 흔히 본다. 네가 만약 친어미를 가졌을 것 같으면 당연히 어미에게 청할 요구며 혹은 억지를 네 할머니나 아버지에게 하는 것을─ 그리고 또한 너의 지금 어머니가 만약 친자식 같으면 당연히 책망할 일을 억지로 웃으면서 말리고 하는 것을─ 이런 일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은 쓸쓸해진다.

억지, 밸, 어리광, 아양, 이런 것들은 모두 어린이의 정서를 북돋움에 가장 좋은 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은 자기의 생모에게 향하여 뿐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너에게는 생모가 없다. 그러면 너는 그 억지며 그 어리광을 누구에게 부릴까? 너의 마음의 장성의 북돋움이 될 밸과 아양을 어디다가 부릴까?

아버지? 아버지는 네가 밸을 부리려면 먼저 역정을 내었다. 네가 어리광을 부리기에는 아버지는 너무 엄격하였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하면서도─ 그리고 또한 너의 감정의 발로(發露)인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은 이 넓은 세상에 아버지 하나밖에 없는 줄을 잘 알면서도 너에게 대하여서 너무 엄격하였다. 자라나려는 너의 정서를 옳은 길로 인도하여 주는 사람이 없는지라, 네 마음은 차차 비뚤어지고 꾀어져 갔다. 네가 네 누이동생 옥환이를 그렇듯 사랑하면서도 또한 그렇듯 잔혹히 대접하는 것도 너의 성격이 꾀어진 탓이요, 너의 성격이 꾀어진 것은 또한 너의 감정을 옳은 길로 인도하여 줄 사람이 없는 탓이다.

어린아이를 초목으로 비유할진대, 어머니의 사랑은 햇볕과 비와 땅의 양분에 비길 것이요, 교양이라는 것은 거름에 비길 것이다. 어머니가 없는 너를 초목으로 비길진대 너는 땅의 양분과 햇볕과 비의 은택을 못 입은 아이다. 그런 너에게 인공으로나마 비료를 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천연적 양분에 인공 비료까지 했으면 오죽이나 좋으려만, 이미 그렇지 못하게 된 이상, 이제는 고식적 배양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붓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입이 무겁고 너에게는 비교적 엄격하였지만 아버지의 마음속에 있는 네게 대한 사랑을 죄 이 붓대에 부어서 너의 자라나려는 정서를 기르기에 힘쓰겠다. 동아일보사에서 처음 어린이에게 대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할 때에 아버지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재차 삼차 부탁을 받을 때에 문득 아직껏 마음에 늘 걸려 있던 너의 정서 교육 문제가 생각이 나서, 드디어 승낙하고 이 붓을 잡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붓의 힘이 얼마나 너의 정서 조장에 도움이 될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십오년 간을 닦고 또 닦은 이 붓의 온 힘을 다하여서, 사랑하는 너의 정서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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