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아동용/권2/12. 대한

러시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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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일찍부터 조선에 눈길을 두고 자국의 이익을 얻는 데 급급했다. 메이지 29년 【개국 505년】 2월에, 춘천(春川) 지방에서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친로파(親露派) 사람들은 이를 명분으로 국왕과 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데려갔으며, 자파(自派)에 반대하는 중신(重臣)들을 살해하고 이권(利權)을 독차지했다. 그들이 삼림(森林)을 벌채하고 광산을 채굴하고 혹은 철도를 부설하는 등의 권리를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에 부여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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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 이어 러시아와 교섭하여 협약을 체결했으므로, 이듬해 【개국 506년】 2월에 국왕은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慶運宮)으로 돌아왔다. 이어서 조선의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고치고 국왕은 스스로 황제에 즉위했으며, 조서를 내려 건양(建陽) 연호를 폐지하고 새롭게 광무(光武)라고 연호를 정했다. 그리하여 독립국의 체제는 갖추었지만 그 실질적인 힘은 전혀 없었으며, 정부는 오로지 러시아에 의존하여 정치를 했으므로 러시아는 한때 마치 과거의 청나라처럼 보였다.

갑오 이후의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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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동안에도 문명의 시설들은 점차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메이지 31년 【광무 2년】 무렵에는 우편·전신 제도도 대략 갖추어졌으며, 메이지 33년 【광무 4년】 에는 경성과 인천 사이에 철도가 처음으로 개통되었고 이어서 경부(京釜) 철도도 부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