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선생님 손님 오셨읍니다.”

필호와 작별하고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와서 인준이가 방금 옷을 바꾸어 입었을 때에 아파트의 문지기가 와서 내객을 보하였다.

“손님?”

손님이란 의외였다. 자기를 찾아올 손님이 없었다. 필호든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경관이 직무상 자기를 찾을는지는 모르지만 손님으로서는 자기를 찾을 사람이 없었다. 무론 몇 사람 인준 자기의 보조자로서 상해에서 잠입해 있는 동지가 없는 바는 아니로되 그들은 인준이에게서 지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서로 찾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손님이란 어떤 손님이오?”

“부인 손님이올시다.”

부인 손님? 더욱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동지 이외에는 여자로서 인준이를 아는 사람이 경성에 있을 까닭이 없었다. 동지라 하면 인준이의 지휘가 있기 전에 인준이를 찾을 이치도 없거니와 인준이 자기 편에서 숙소도 알 이치가 없다.

“나─ 서인준이를 찾습디까?”

“아니 선생님의 뒤를 따라 들어오면서 방금 들어가신 그분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합디다.”

“손님의 행색은?”

“양장한 부인─ 한 스물서너 살 가량 된 사람이올시다.”

“조선 사람입디까?”

“글쎄올시다.”

조선말로 말은 하지만 몹시 서툰 조선말이라는 것이 문지기의 대답이었다.

“좌우간 들어오시라고 그러우.”

문지기가 나간 잠시 뒤에 노크 소리가 나고 문이 방싯이 열렸다.

먼저 문 핸들을 잡은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보였다. 그다음으로는 털외투의 소매가 나타났다. 사람 하나이 넉넉히 들어올 만치 문이 열린 뒤에

“용서하세요. 선생님.”

일 점의 사투리가 없는 순전한 영어로써 이렇게 말하며 문 안으로 그 모양을 나타낸 그 여인─.

인준이는 눈을 딱 버티었다.

“미스─ 영─.”

겨우 입 틈으로 이 한 마디를 낼 뿐 깎아 세운 사람인 듯이 딱 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곳서 뵐 줄은 꿈밖이올시다.”

흐르는 듯한 영어였다.

“미스 영은 어떻게 여기까지?”

“네, 저는 여행차로 잠깐 왔읍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나는 내 고국이니.”

“네, 선생님도 조선 분이세요? 그런 줄은 몰랐읍니다. 중국 양반으로만 알았읍니다. 저도 조선 사람─ 생후 처음으로 고국산천을 구경하러 왔읍니다.”

“좌우간 앉으십시오. 미스 영도 조선 사람이었읍디까? 나는 미스 영은 중국 여자로만 알고 있었읍니다. 알고 보니 같은 동포─ 고국서 고인을 만나니 반갑소이다.”

“저도 행길에서 선생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숨이 턱에 닿도록 따라서 겨우 선생님을 뵙게 됐읍니다. 반갑기 이루 말할 수가 없읍니다.”

“미스 영은 언제쯤 이곳에 오셨읍니까?”

“한 달쯤 됐읍니다. 선생님은?”

“불과 사오 일.”

좀 짧은 듯한 웃입술이 상쾌히 뛰놀면서 그 틈으로 흘러나오는 흐르는 듯한 영어─ 여기 위압된 듯이 인준이의 입에서 나오는 영어는 몹시 서툴렀다. 그리고 독일인의 악센트가 환히 섞이었다.

“미스 영의 숙소는?”

“어떤 영국인 친구의 집에 묵고 있읍니다.”

“언제까지나 경성에 계시겠읍니까.”

“글쎄올시다. 세계를 표랑하는 여인─ 언제까지라 작정키는 매우 힘듭니다.”

인준이는 머리를 기울였다. 이 기괴한 여인 미스 영에게 대한 과거의 기억이 걸핏 걸핏 그의 기억의 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인준이가 미스 영을 처음 안 것은 지금부터 약 일 년 전 상해 어떤 댄스 홀에서였다. 영은 그때 그 홀의 댄서로 있었다.

한편으로는 사교를 위하여 또 한편으로는 피곤한 두뇌를 쉬기 위하여 인준이는 때때로 상해에서도 일류로 꼽는 모 댄스 홀에 간간 다녔다.

미스 영이 그 댄스 홀에 댄서로서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 년 전 어떤 봄날이었다.

이지적인 눈과 정열적인 입과 (댄서하는 여인에게 쉽지 않은) 귀부인과 같은 점잖은 얼굴의 주인인 미스 영이 댄서로서 나타난 것은 댄스 팬들에게는 도로혀 경이였다.

인준이는 미스 영이 그 홀에 나타난 첫날 영과 함께 춤출 기회를 얻었다. 베를린서 중학을 필하고 귀부인의 도시 비엔나에서 대학을 마친 인준이는 비엔나에서 닦달한 댄스의 명인이었다.

비교적 여자에게 담박한 인준이는 미스 영과 같이 춤추면서도 미스 영에게는 무관심하였다.

“미스 영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은?”

인준이 자기의 가슴에서 어깨를 넘어서 귀로 들어오는 이 말에 인준이는 비로소 자기와 춤을 추는 여인을 굽어보았다.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인준이에게 던진 몇 마디의 말은 중국어가 아니었다. 상해에서 국제어로 통용되는 영어도 아니었다. 상해에서는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는 독일어─ 그것도 독일서 중학을 졸업한 인준이로서도 일 점도 나무랄 데가 없는 순전한 독일어였다.

“나는 서 서방.”

“서 선생님, 비엔나에서 닦달하신 스탭은 파리에 가면 시골 댄스라고 웃기웁니다. 이렇게 하세요 선회할 적에는 발끝을 이렇게 집고 몸을 이렇게 가지고…”

스스로 오스트리아의 궁정 댄스라고 자랑하던 인준이의 댄스를 교정하여 주는 것이었다.

이 너무도 유창한 독일어와 화한 댄스에 인준이는 비로소 미스 영이라는 여인을 인식한 것이었다. 더구나 비엔나서 배운 댄스라고 단정하는 그 감정력에 놀랐다.

“미스 영은 독일에 유한 일이 있소?”

“네, 베를린에 잠깐.”

“오스트리아는?”

“빈에 잠깐.”

“불란서는?”

“파리에 잠깐.”

“실례지만 연령은?”

“레디에게 연령을 묻는 것은 실례예요. 그 실례는 용서하지만 알으켜는 안 드리겠읍니다.”

이리하여 인준이는 미스 영을 알았다.

그 뒤 사오 일 지나서 역시 그 댄스 홀에서 인준이는 한 토 추고 나서 좀 쉴 때였다. 인준이의 앞을 어떤 영국 해군사관 한 사람과 미스 영이 아주 부둥켜안고 지나갔다. 그때에 걸핏 인준이의 귀에 들려온 미스 영의 말─ 그것은 영어였다. 영어를 국제어로서 사용하는 상해에는 별별 기괴한 영어가 다 있었다. 미국 사투리쯤은 이곳서는 진정한 영어로서 제법 버티느니만치 엉터리의 영어가 그대로 통용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겨우 한두 마디 들은 데 그치지만 미스 영의 영어는 영어라기보다 오히려 런던어였다. 같은 영인으로도 본받기 힘들다는 진정한 런던어였다.

이 너무도 유창한 영어에 인준이는 두 번째 경이의 눈을 던졌다.

또 그 어떤 날 인준이와 미스 영이 같이 스탭을 밟을 적에 문득 미스 영이

“선생님은 이학자시지요?”

하여 인준이를 놀라게 하였다.

“선생님 몸에서 염소(鹽素) 냄새가 약간 나요. 본적을 감추시려면 그 냄새를 털고 오셔요.”

이 여자는 약간 나는 듯 마는 듯한 냄새로써 인준이의 직업을 지적한 것이었다.

미스 영이 그 댄스 홀에 있는 기한이 약 두 달 동안이었다. 두 달 뒤에는 미스 영의 자취는 그 홀에서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그 넓은 상해에서도 미스 영의 자취를 본 사람이 그 뒤에는 없었다.

“어느 해군 장교의 첩으로라도 갔나?”

미스 영이 그 홀에 있을 동안은 그다지 그 여인에게 관심치 않았지만 영의 자취가 사라진 뒤에는 인준이는 좀 적적하였다. 홀에 갈지라도 늘 무엇이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고 하였다.

상해의 봄과 여름이 가고 거기도 거친 가을이 이르렀다.

인준이는 본부의 어떤 중대한 임무를 띠고 북평 어느 대학에 재학 중인 남도 어떤 부자의 아들을 만나러 북평까지 갔던 일이 있었다.

그 대학은 남녀 공학제였다. 그 대학에서 만나려던 학생을 만나서 자기의 띤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려다가 인준이 자기와 빈대학의 동창이던 사람이 그 대학의 교수로 와 있는 것을 만나서 그 친구의 안내로써 대학을 한 번 통 돌아보게가 되었다.

화학 교실에서였다. 인준이는 강단 위에 서서 지금 열심으로 교수를 하고 있는 어떤 여교원의 위에 눈을 딱 멈추었다.

미스 영이었다.

반년 전에 상해 어느 댄스 홀의 댄서로 있던 여인이 구르고 굴러서 오늘날 어떻게 이 대학의 화학 교실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미스터─. 저 여자가 교수요?”

“조교수.”

“이름은?”

“미스 영.”

“언제부터 여기 교편을 잡았소?”

“이번 가을학기부터.”

“자격은?”

“베를린대학의 이학 박사.”

“누구의 소개로 오게 됐수?”

“남경 정부의 어떤 요로자의 소개로 임시 조교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댄스 홀의 댄서와 대학의 조교수─ 너무도 엉뚱한 직업 전환이었다.

“학생간의 인기는?”

“조예가 꽤 깊습니다. 나이가 어린 반면에─ 인기도 괜찮고─.”

“저 여자의 근본을 압니까?”

“모릅니다. 자기의 말로는 어떤 혁명가가 런던에 망명해 있을 동안 자기를 낳았다고 하나….”

이 정체 모를 여인 미스 영에게 대한 의혹과 추구심을 가슴에 품은 채 인준이는 도로 상해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야흐로 기차가 정거장을 떠나려 할 때였다. 인준이의 탄 차실의 문이 열리며 미스 영이 인준이의 차실로 뛰쳐 들어왔다.

“선생님.”

“미스 영.”

칵 얼굴로 몰려 오르려는 피를 억제하면서 인준이는 일어나서 영과 마주쳤다.

“대학까지 오셨다가 저를 만나시지도 않고 가셔요?”

대답을 못 하였다. 무엇이라 대답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전송하러 왔읍니다. 안녕히 가셔요. 언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는지….”

적적한 듯이 이 한 마디를 남겨 놓고 미스 영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기차에서 폼으로 뛰쳐 내렸다.

인준이가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보매 영은 손수건을 잡은 손을 높이 들고 망연히 폼에 서 있었다.

미스 영은 자기에게 안녕히 가셔요의 한마디를 던지기 위하여 허덕허덕 정거장까지 뛰어나왔던가?

‘알 수 없는 여인.’

미스 영에게 대한 인준의 관심은 이리하여 차차 더 커 갔다.

그해 겨울 북평 있는 인준이의 친구인 대학 교수로부터

“미스 영은 본교 조교수를 사직하였소이다.”

하는 통기를 받을 때에 인준이의 입에서는 뜻하지 않고 적적한 탄식성이 나왔다.

황량한 바람이 천지를 휩쓰는 겨울달이었다.

인준이는 극장에를 구경 갔다. 자선 연극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따뜻한 국 한 그릇도 끓여 먹지 못하는 세민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누어 주고자 소위 유지들이 이 극장을 빌려서 자선 연극을 하는 것이었다.

배우들의 하는 연극이 아니고 소위 신사들이 하는 연극이라 연극은 보잘것이 없었다.

그러나 거기서 인준이로 하여금 경악케 한 것은 막간(幕間)에 나와서 독창을 하는 가수였다.

누런 머리털의 탈을 쓰고 농후한 화장을 한 젊은 여인이었으므로 무론 그렇다고 단정은 할 수가 없지만, 그 음성, 그 태도, 그 스타일에서 인준이는 그 가수를 미스 영이라 보았다.

프로그램 뒤져보매 L M 매켄지 대좌부인이라 적히어 있어서 미스 영으로 단정을 할 수는 없으나 직각적으로 인준이는 그 가수가 미스 영이라 단정하였다.

카르멘의 하바네라의 한 곡조를 전문적 오페라 배우에 지지 않을이만치 교묘히 부르고 막 뒤로 사라지는 그 여인의 위에 경악의 눈을 잠시 던지고 있던 인준이는 문득 정신을 수습하여 가지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오늘 연극의 주최 대표자인 상해 자선협회장 X씨를 찾아서 매켄지 대좌 부인에게의 면회를 청하였다.

그러나 씨의 대답은 대좌부인은 밤 열 시에 상해를 출발하는 배로써 일본 신호(神戶)로 향하여 그의 남편 매켄지 대좌와 함께 출발 관계상 독창을 끝낸 뒤에 즉시로 극장을 나섰다 한다.

무론 여기서 이치대로 일이 되는 것이라면 인준이는 즉시 상해 부두로 날라가서 우선(郵船) 사무소에 가서 대좌부인의 정체를 좀 더 추구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준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선협회장에게서 그 대답을 듣고는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 모양으로 사무실을 나와서 그 밤의 남은 시간을 싱겁기 짝이 없는 연극을 구경하다가 자기의 처소로 돌아갔다.

이튿날이야 겨우 과학자로서의 자기의 이성을 회복한 인준이는 어젯밤 열 시에 일본 신호로 향하여 배를 떠나보냈다는 우선 회사를 찾아서 거기서 승객 명부들을 뒤져 보았다. 그러나 거기는 매켄지 대좌며 동부인의 이름이 없는 대신 미스 영이라 하는 이름이 뚜렷이 적혀 있었다.

매켄지 대좌부인이라 한 것은 미스 영이 임시로 자기의 위에 씌웠던 이름에 지나지 못하였으며 미스 영은 어젯밤 배로 일본으로 향하여 떠났으며 자선 연극회에 나타나는 소위 매켄지 부인은 미스 영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은 이리하여 알았지만 미스 영의 정체에 대하여서는 더욱 의혹이 더하여 갈 뿐 조금의 서광도 보이지 않았다.

“미스 영 당신은 대체 어떤 정체를 가진 사람이외까? 오늘은 댄스 홀의 한 개 댄서로 내일은 또한 일변하여 대학 조교수로 그 이튿날은 또 변하여 일류 가수에게도 지지 않는 훌륭한 성악가로─ 마치 구름과 같이─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당신의 정체는 대체 어떤 것이외까?”

여인에게 대하여 비교적 담박하던 인준이의 마음의 한편 구석에는 이 기괴한 여인 미스 영에게 대한 관심이 나날이 더하여 갔다. 언젠가는 미스 영과 동반을 하여 경마 구경을 갔던 꿈을 꾸고 이튿날 스스로 얼굴을 붉히어 본 적까지 있었다.

인준이와 이런 관련에 있는 미스 영이─ 홀연히 자기도 조선 사람이노라는 선언 아래 경성 인준이의 아파트를 방문을 한 것이었다.

비교적 사물에 놀라지 않는 인준이도 잠시는 자기의 마음을 스스로 마음대로 지배하지를 못하였다.

“미스 영, 마주 앉으면서부터 실례의 말씀을 몇 마디 드리겠읍니다.”

혼란되어 가는 자기의 마음을 누르기 위하여 잠시 미스 영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인준이는 이렇게 말을 꺼내었다.

“네 말씀하셔요. 선생님께 대해서는 약간의 실례가 있다 해도 용서해 드리겠읍니다.”

감정적인 그의 입은 입술 틈으로 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영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첫째로 미스 영의 조선 이름은 무엇이오니까. 실례올시다만….”

“조선 이름이 미스 영, 박영─애─ 미스 영애 박, 미스 영이올시다.”

“상해서 미스 영을 처음 뵌 때 이래로 때때로 생각합니다마는 그─ 저─.”

“댄서.”

인준이가 주저하는 말을 미스 영이 깨쳐 주었다.

“네, 그 직업이란 그다지 칭찬할 만한 직업이 못 됩니다. 윤락 되어서 다시 보잘 나위가 없는 여인의 최후에 취하는 직업이지 그다지 좋은 직업이 못 됩니다. 그때 미스 영은 어떻게 그런 곳에 가셨읍니까?”

영은 그의 맑은 눈을 잠시 인준이의 위에 부었다. 그런 뒤에 대답하였다.

“선생님, 저는 윤락되고 또 윤락된 여자입니다.”

농담이 아니었다. 농담이라 하면 당연히 나타날 눈가의 미소가 없었다.

인준이는 그 말에 곧 응대치 못하고 잠깐 기다려서야 말을 하였다.

“×× 대학의 조교수로 윤락된 사람의 직업이오니까.”

“그것은 인텔리 여성의 직업, 윤락된 인텔리 여성은 닥치는 대로 직업을 붙듭니다.”

“그때 어느 친구한테 물었습니다. 미스 영을 ×× 대학에 소개한 이는 남경 정부의 어떤 유력한이라고, 윤락된 여자의 후원자로서는 너무도 넘치는 패트론─ 이래도 미스 영을 윤락된 여자로 인정할까요?”

“전지전지해서 우연히 그런 분에 넘치는 사람의 소개를 얻었읍니다.”

“매켄지 대좌부인이라는 이름은 임시로 지어낸 이름이오니까 혹은 미스 영이 때때로 이용하시는 이름이오니까.”

“선생님, 미스 영이란 저의 조선 이름─ 미세스 매켄지라는 것은 결혼한 뒤의 저의 이름이올시다. 영국 해군 예비대좌 종남작 L M 매켄지가 저의 남편 되는 신사올시다.”

미스 영은 기혼 여자였다. 적막이라고밖에는 형용할 수가 없는 무슨 커다란 덩어리가 인준이의 가슴에서 촉발되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이번도 부군과 함께 조선엘 오셨읍니까?”

“혼자 왔읍니다. 그이는 지금은 아마 동경에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윤락되었노라고 말하는 이 여자─ 스스로 매켄지 부인이노라고 칭하는 이 여자─ 그러나 인준이의 눈에 비치인 이 여자의 눈은 처녀에게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맑고 깨끗한 광채로 빛나고 있지 않은가?

“선생님 저의 지난 일이며 저의 신변에 관해서는 더 묻지 말아 주셔요. 인제 물으시면 저는 거짓 대답을 꾸며대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한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더 물어 주지 마셔요.”

애원하는 듯한 눈자위로서 인준이를 우러러보며 이렇게 말할 때에는 미스 영의 두 어깨는 무엇에 고민하는 사람 모양으로 약간 떨렸다.

“그러면 다른 이야기나 하십니다. 실례했읍니다. 너무도 미스 영─ 미스 라 그냥 부르는 것을 용서하셔요─ 에게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이런 실례의 말씀을 물었읍니다.”

“다른 말씀이나 재미있는 말씀을 하세요.”

“미스 영 생후에 처음 조선 땅에 들어오셨다 하니 그 감상이 어떠셔요?”

“적적한 땅 감동이 없는 땅 감정의 움직임이 없는 땅 황폐한 땅입니다. 갑갑해서 이 땅의 연극이라도 구경가려고 물어보니까 이 땅에는 연극이 없답디다. 음악 연주라도 들으려니까 음악도 없답디다. 살롱 구락부 마음을 터놓고 아무 구애 없이 자기의 감정을 즐길 만한 장소도 없답디다. 몇 개의 영화 상설관이 이 땅의 유일의 오락 장소랍디다. 저녁 후의 산보를 즐길 공원도 없답디다. 서 선생님은 혹은 아실지도 모르겠읍니다마는 이 땅에도 감정의 움직임이 있읍니까?”

호소하는 듯한 눈동자─ 아니 오히려 고민하는 듯한 눈동자를 인준이의 위에 부읏고 이런 하소연을 할 때에 인준이는 이─ 상해의 어떤 댄스 홀의 댄서로서 알리운─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너무도 고상한 말에 더욱 마음이 혼란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관찰이외다. 이 땅에는 감정의 움직임이 없읍니다. 상해 방면에 앉아서 조선을 시찰하고 돌아온 외국인의 시찰담을 듣자면 몇 해 전에 비하면 조선은 갱생했다고… 붉은 산에는 나무가 푸르르고 각 곳 공장에서는 굴뚝으로 연기를 뿜고 황폐했던 밭들은 모두 기름진 논으로 변하고 도시에는 전차 자동차가 닫고─ 무엇이 어쩌고 어쩌고 해서 이 땅은 갱생했다고 합디다. 나는 이 땅의 백성들과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갱생은커녕 나날이 더 살림이 줄어들어 가는 것을 그저 넘기지 못하겠지요. 온갖 사정을 모르고 단지 만유자로서 고국산천을 즐기고 돌아오셨던 미스 영의 실망이 짐작이 갑니다.”

“저는 영국서 났읍니다. 영국서 초등교육을 받았읍니다. 독일서 대학을 마치었읍니다. 그동안 혹은 책으로 혹은 이야기로 들은 바에 의지하건대 조선이라는 땅은 신비의 땅 고적의 땅 안온의 땅이었읍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들어와 보니 한 개의 고적도 남아 있는 것이 어디 있읍니까. 스핑크스나 피라밋과 같은 태고적 유물을 찾자는 것이 아니에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독일의 시골 어느 곳을 가든 영국에 시골 어느 곳을 가든 거기는 역사를 말하는 유서(由緖) 많은 느티나무며 성이며 다리며 행로수(行路樹)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조선에 그런 곳이 어디 있읍니까. 너무도 매끄러워서 붙접할 곳이 없는 조선이 아닙니까. 어디 신비가 있고 어디 유서 깊은 고적이 있읍니까? 유서 깊은 느티나무라도 잘라서 저녁밥 지을 장작으로 사용치 않을 수가 없도록 가련한 조선입니까. 선생님, 저는 생후 처음 보는 고국이지만 다시 보기 싫은 고국이올시다. 사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조선보다 수백 년의 역사밖에는 가지지 못한 USA에서 훨씬 더 많은 고적을 느낄 수 있으니 이게 웬일이오니까?”

영은 자기가 남편 매켄지 대좌와 함께 미국을 여행할 때에 휘트먼의 무덤 앞에 꽃을 바치던 삼십 분간의 경건하고 귀엽던 추억담을 이야기하고 겸하여 아직도 매일 그 무덤에 바치는 새로운 꽃이 그치는 적이 없었음을 말하여 조선의 적적함을 더욱 탄식하였다.

인준이는 대답할 말을 발견치를 못하여 대답치 못하였다. 스스로 자기는 윤락되었노라는 이 여인의 너무도 낭만적이요 시적인 하소연에 대하여 자기도 다만 탄식으로써 이에 응할 뿐이었다.

전등이 켜졌다.

전등이 켜지는 것을 보고야 인준이는 비로소 지금의 시간을 생각하고 한인을 불러서 두 사람분의 저녁을 주문케 하였다.

미스 영은 저녁 뒤에도 한참을 더 놀다가야 돌아갔다. 미스 영이 돌아갈 때에 인준이는 아파트의 문밖까지 전송하였다.

“미스 영, 간간 놀러 오셔요. 본래로 말하자면 내가 미스 영을 방문하는 것이 옳겠지만….”

“아니올시다. 저는 지금 친구의 집에 묵어 있으니깐 손님이 오셔도 마음대로 환대도 하지를 못합니다. 간간 선생님을 찾아오지요.”

“네 오셔요. 자유로운 몸이라 흔히 방을 비워 두고 나다니니까 전화로 알아보시고 오셔요. 집에 있을 때면 언제든 와도 좋습니다.”

이리하여 미스 영과 작별하였다.

세 시간 이상을 인준이는 미스 영과 (소위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요컨대 미스 영에 대한 정확한 본체는 그냥 잡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윤락되고 또 윤락되었노라는 미스 영이었다. 그러나 윤락되었다는 것은 단지 그의 입에서 나온 말뿐이지 그의 행동 언어 몸가짐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레디로서의 일 점의 부족도 없었다.

자기의 입으로 자기는 윤락된 여인이라 하니 혹은 미스 영은 매켄지 대좌의 임시부인 그렇지 않으면 첩이나 아닌가 하고 등떠 보았지만 그렇지도 않은 당당한 안해인 모양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켄지 대좌는 영국 유서 있는 가문의 당주로서 재산가로도 또한 영국의 유수한 집안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꼽아 보면 미스 영의 정체는 더욱 수수께끼였다.

재산과 명예를 아울러 가진 청년 귀족 장교의 안해로서 그 학식이며 식견이며 재능이며 미모로서는 미스 영은 결코 나무랄 곳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만한 미스 영으로서 무엇이 부족하여 한때는 댄스 홀의 댄서라는 야비한 직업을 선택하였던가. 미스 영의 말에 의지하건대 매켄지 씨는 동양에 다분의 취미를 가지고 지금은 상해 영국 조계에 광대한 주택을 마련하고 거기서 생활한다고 한다. 그러면 매켄지 부인인 미스 영은 당연히 상해에 광대한 저택의 여왕일 것이다. 그런 그가 무엇이 부족하여 한때는 댄서로까지 떨어졌던가.

그다음에 인준이 자기가 발견한 미스 영은 이번은 타락된 직업의 주인은 아니었다. 당당한 ×× 대학의 조교수라는 직업의 미스 영이었다. 그러나 의식에 부족이 없을 미스 영은 자기의 광대한 집의 여왕으로 들어박혀 있지 않고 대학 조교수라 하는 직업 여성이 되었던가. 이것도 미스 영이 육영 사업(育英事業)에 다대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교편을 잡은 지 겨우 한 학기 뒤에 그 직업을 다시 내어 던진 것으로 보아서 그다지 교육 사업에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도 볼 수가 없었다.

미스 영은 혼자서 후덕덕 조선에 뛰쳐 들어왔다.

만약 그의 남편 매켄지 대좌로서 현역 군인이라면 작반하여 고국을 방문키도 힘들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역도 아니요 게다가 풍부한 재산의 여유도 있으며 더욱 지금 매켄지 씨는 동경 근방을 유람 중이라 하니 이렇듯 시간과 금전의 여유를 가진 매켄지 씨의 부처는 어떤 까닭으로 따로따로 헤어져서 한 사람은 동경서 또 한 사람은 경성서 서로 제각기 제멋대로 노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미스 영의 정체는 막연하여 갔다. 그러면 미스 영의 그 모두를 그의 일시적 허풍선으로 단정하여 버릴까.

그러나 그렇다면 또한 거기는 그렇지 못할 내력이 있었다.

미스 영은 영국서 출생하였다 한다. 독일서 대학을 마치었다 한다. 그의 영어와 독일어에 대한 정확한 발음과 유창한 말씨는 이것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 위에 그에 학식과 견식은 그가 고등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왼편 무명지에 끼워 있는 커다란 금강석을 박은 반지는 그로 하여금 이미 결혼한 여자라는 점과 그의 결혼 상대자가 상당한 재산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단지 그의 눈에 나타나는 처녀로서의 명랑한 빛은 그의 말에 얼마만치 에누리를 두지 않지 못하게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더 좋은 편’으로의 에누리지 결코 ‘더 나쁜 편’으로의 에누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말의 마디마디도 모두 그의 섬세한 감정과 높은 교양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임시로 자기를 꾸미기 위한 가식적 행동으로는 볼 수가 없을뿐더러 근본적 교양이 없이 임시로는 꾸미지도 못할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알 수 없는 여러 가지의 면을 가진 미스 영을 어떤 여인으로 해석해야 하나? 물론 의심하자면 자기의 혓바닥이라도 의심할 수가 있으니 미스 영이라도 의심치 못할 바는 아니다.

자기도 조선 사람이라 하나 조선 사람인 증거가 어디 있나?

미스 영이라 하며 박영애라 하며 매켄지 부인이라 하지만 그런 증거는 어디 있나?

더욱 나아가서는 베를린대학의 학위를 가졌다 하나 그 학위라도 협잡을 하자면 못할 바가 아니다.

×× 대학에서 교편은 잡았다 하나 아름다운 여인은 경우에 의해서는 자격에 없는 자리에도 능히 올라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의심하여 오자면 무엇인들 의심치 못하랴만 미스 영의 말은 모두 그렇게 일률로 부인해 버리지 못할 점도 많았다.

그날 밤 인준이는 잠을 잘 못 이루었다.

이 기괴한 여인 미스 영의 사건과 인제 바야흐로 전개되려는 LC당과의 쟁탈전─ 이런 두 가지의 문제가 얽히고 섞이어서 그의 머리에 왕래하여 쉽게 잠을 들지를 못하였다.

자기가 짊어지고 들어온 중대한 임무도 차차 결행의 제일보를 내어놓아야 할 것이다. 더우기 뜻도 안 하였던 LC당이라는 경쟁자가 나선 이상에는 더욱 손빨리 민첩히 실행의 도정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아직껏은 단지 자기의 취미로써 연구하여 오던 거대한 폭력 단체 LC당과 자기가 인제 정면으로 충돌되고 경쟁할 그 날이 멀지 않은 데 대한 마음의 지장은 기괴한 여인 미스 영에게 대한 추구심과 아울러서 그의 마음에 일고 또 잦아서 인준이는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몸만 뒤채고 있었다.

두 시를 치는 소리 세 시를 치는 소리 네 시를 치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인준이는 장래 자기 임무 실행에 대한 순서와 이번 미스 영을 만나면 알아볼 몇 가지의 일을 막연히 작정을 하여 놓았다.

네 시 치는 소리를 들은 뒤에도 한참을 지나서 새벽 우유 구루마가 지나가는 덜걱거리는 소리를 듣고야 인준이는 겨우 잠이 들었다.

그날 밤의 꿈도 어지러웠다.

미스 영이라 하는 정체 모를 여인의 출현은 비교적 동요 없던 인준이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은 것이었다. 잠이 든 뒤에도 연하여 어지러운 꿈만 꾸다가 이튿날 해가 꽤 높이 오른 뒤에야 인준이는 겨우 침대에서 나왔다.

“오늘부터 착수로다.”

오늘부터 그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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