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운동(就職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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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순이를 하루라도 속히 자기의 소유를 만들어 버리겠다는 욕심이 불꽃같이 일어나서 변교장은 여러번이나 명순에게 결혼신청을 하여 보았다. 그러나 명순이는 ‘독신생활’ ‘독신생활’ 하며 언제나 고지곳대로 하고 ‘동무로는 얼마든지 좋지요’ 하므로 할 수 없이 다시 더 말을 못하고 다만 명순의 신변만 주시하여 왔다.

명순이가 만일 다른 남자와 교제를 하는 눈치만 보이면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헤살을 놀아서 기어코 자기의 소유를 만들려고 그 태도만 감시 하였따. 그러나 명수늬 태도는 아주 평범하였다. 어떠한 남자를 대하던지 냉정한 태도로 대하기는 일반이었다. 젊은 여자가 가저야 될 열정의 마음은 조금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처하라는 남자가 명순이를 힘있게 안어준다고 하여 보자. 그 때의 명순의 태도는 어떠할 것인가? 명순이는 반듯이 갱생의 기쁨에 날뛸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얼마 안되야 사라질 것을 그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철하씨 저는 처녀가 아닌 몸이 올시다”

라고 자백을 할때에 그 말은 명순의비명일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해와 달은 뜻없이 흘러가서 삼동의 살을 어일 둣하던 무서운 치위도 어느듯 자위 없이 지내가고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봄날이 왔다.

북악산 험준한 바위틈에서도 새싻들이 머리를 들고 뾰족뾰족 힘있게 내밀기 시작하고 남산의 솔밭 속에도 새들이 찾어와서 그들의 보금자리를 짓고 있다.

얼어 붙었던 삼청동 골짜기 시내물도 콸콸 소리 치며 흐르기 시작하고 왜성대 밑 벗나무에도 연분홍 꽃봉어리가 방긋이 입을 벌리려고 하고 있다.

봄은 확실히 왔다. 소생의 힘을 주는 봄은 남풍을 타고서 서울의 도시에도 찾아 왔다.

그러나 명순의 맘만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대학병원 병실 들창을 넘어 들어오는 갱생(更生)의 호흡 소리 깊은 잠속으로부터 굼틀거리고 있는 창조(創造)와 노래! 이 모든 것들은 명순에게는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였다.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바야흐로 소생(蘇生)하려고 하는 때에 명순의 마음만을 차디찬 겨울의 벌판으로 다름질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침대 위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 어머니 낯을 들어다 보고 있는 명순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었다.

엷은 유리창을 격하여 바깥세상과 방안정상과 너무도 큰 차이가 있었다. 사랑하는 딸자식이 외로히 앉아 울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어머니는 눈을 감고 아무 말도 없이 누워 있다.

다만 괴롭게 나오는 호흡 소리만이 높았다 내렸다 할 뿐이요, 세상만사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아무 말도 없이 누워 있을 뿐이다.

창경원(昌慶?)에서 흘러오는 이름도 모를 새들의 노래소리만이 명순의 마음을 어지럽게 흔들 뿐이었다. 또 옛동산을 그리는 철창에 갇힌 사자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명순의 쓰라린 마음을 반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명순에게는 날이 가고 밤이 지날수록 새로운 고노와 번민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잔약한 여자로서는 감당하기에 너무도 어려운 고민이 그의 몸과 마음을 칭칭 감아 들어갔다.

늦은 겨울부터 감기로 신음하고 앓아오던 어머니가 명순의 지극한 간호와 의사의 약도 아무 효과가 없이 중태에 이르게 되었다.

대학병원에 입원한지도 십여일이나 넘었으나 조금도 차도는 없이 가는 어두운 나라로 점점 가까히 달려갈 뿐이었다.

오늘 아침 변교장이 왔을 때 의사가 하던 말을 듣고 명순이는 어린 아이 모양으로 목을 놓아 울었던 것이었다.

“도오모 미고미가 나이데스네 = 희망이 있을것 같지 않은데요”

이 말이야말로 명순에게는 청천의 벼락과 같이 두려운 소리이며 무서운 선고엿다. 명순이는 그 때에 의사의 손목을 잡고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애원하였다.

“센세이! 센세이! 이까시데 구다사이 가와이소오나 오가아사마오 선생님! 선생님! 살려주십시오 불상하신 어머니를”

명순에게는 모든게 절망이었다. 그러하니 명순의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청천의 백일 조차 무광하였다. 명순이는 의사가 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체면도 불고하고 의사에게 덤벼들어서

“센세이! 센세이!”

하며 부르짖고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마음 약한 간호부들도 명순의 부르짖음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명순이는 어머니가 숨을 모 으 듯이 그르렁 그르렁 하고 가래섞인 호흡을 할 때마다 자기의 가슴을 지찌며 ‘어머니 어머니’ 하고 슬피 부르짖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안하고 푹꺼진 눈을 겨우 실같이 뜨고 명순이를 치어다보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듯하나 입을 벌리다가는 말고 말고 한다. 그리고는 처참히 말라 굳으러져가는 손을 힘없이 내민다. 명순이는 어머니의 그 손을 잡으면서 또 다시 ‘어머니 어머니’ 하고 울음 섞인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명순이의 가슴은 쏙 깊이 깎아내는 듯이 아펐다. 어머니는 금방 막힐 듯한 목을 짜서

“명순아! 명순아!……”

부른다.

사람이 살기도 어렵지만 마지막 길을 떠나기에도 괴로운 일이었다.

“어머니 할 말씀이 있으면 다 하십시오 어머니의 말씀이라면 어떠한 말이든지 듣겠읍니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장차 어찌 하라고 하십니까 어머니”

“어머니 웨 말씀을 안하십니까 무엇을 잡수시고 싶습니까 어머니 아! 어머니 여북 괴로우서야 말씀도 못하십니까. 저는! 어떻게 살어가라고! 어머니! 저도 따라가지요! 어머니네?”

명순이는 절망 끝에 극도의 비통에 젖어나오는 음성으로 가고날 어머니를 붙들고 흔들며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말을 들었는지 눈을 스르르 감아 버린 뒤로는 괴로운 숨결도 희미해질 뿐이었다. 그의 껍질만 남은 살빛은 푸르렀다.

창조의 봄!

갱생의 봄!

희망의 봄!

이것들이 만일 대자연을 싸고 도는 봄이라면

파멸의 봄!

저주의 봄!

비애의 봄!

이것들은 명순의 가슴에 안키는 봄이라고 할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만일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고 만다면 명순이는 의지할 곳도 바랄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 그야말로 넓으나 넓은 사막에서 앞길을 잃고 동으로 서으로 외로이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는 사람의 신세와 같을 것이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일기도 명순의 음울을 알아 주는 듯 오후가 되어서는 회색구름이 명랑한 하늘을 가리우더니 가는비가 보실보실 내리기 시작하였다. 명순의 음산한 마음과도 같이 끊임없이 궂은비는 내린다.

명순이는 어머니의 차디찬 손목을 힘있게 뒤고 떨면서

“어머니 정신을 차리시오 어머니”

아무리 불러보았으나 그는 아무런 대답고 없이 흙으로 빚어놓은 모양으로 누어있을뿐이었다.

아주 절명을 하였는가 하였을 때에는 다시금 가래 끓는 소리가 나더니 눈을 번쩍 득 휘미해지는 명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박목사(朴牧師)”

하며 부르짖고는 그만 눈을 감아버린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 명순이는 나는 듯이 전와실에 뛰여가서 변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미안하지만 어머니가 박창일목사를 만나고 싶다고 하시니 곧 모서오세요”

하고는 저편에서 묻는 말도 대답할 사이도 없이 전화를 끊고는 곧 병실로 달려왔다. 시커먼 들창 밖에서는 궂은비가 끊이지 않고 줄줄 내린다. 의사가 들어왔다. 명순이는 앉았던 의자를 의사에게 내여놓고 유리창을 향하여 돌아서서 흑흑 느끼어 운다. 이십분도 못되어 박목사와 변교장이 병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명순이는 박목사를 보더니 어머니의 곁에 달려가서는

“어머니 박목사가 오셨읍니다. 어머니”

하며 울며 부르짖었다. 옆에 앉아있던 의사가 명순에게 조용하라고 일르고 나서는 눈쌀을 찌푸리고 그의 꺼져가는 숨결을 세이느라고 시계만 들여다모고 있었다.

명순이는 목사의 곁에 가서 목사의 손을 잡으며

“목사님! 어머니가 목사님을 찾으셨에요 목사님 기도하여 주십시오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기도드려 주십시오 네?”

하며 부르짖는 명순의 태도는 꼭 미친 사람 같이 보였다.

밤 열한점 십오분 명순의 어미니는 한마디의 우연도 없이 명순의 품에 안겨서 이 사파세상을 고요이 고요이 떠나섰다. 박목사는 명순의 이마에 안수하고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나서 이백오십이장 찬송을 나즉한 목소리로 부른다. ‘낮보다 더 밝은 천당……’ 명순이도 따라 불렀으나 그것은 노래가 아니고 울음이었다.

명순이도 어머니를 위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역설을 하던 명순이도 이 세상에서 고생만 하다가 돌아간 어머니가 불상하여서 죽은 뒤에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만을 좋을 곳으로 갔으면 하였다. 어머니를 여힌 슬픈 마음에 명순이는 밤이 깊도록 어머니의 시체에 매달리어 슬피 울었다. 그러나 한번 죽으면 다시 살 수 없는 인생이니 그 어머니도 또다시 돌아올리가 만무하다.

멀고먼 객지에서 외어머니 마저 잃어버리게 되니 명순이는 세상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도 두주일이 넘었다. 명순이는 어머니의 슬하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세상 모르고 천진하게 지내다가 어머니를 여히게 되니 앞길이 막막하였다.

명순이는 어머니를 장사지내던 날 저녁에 가회동 옛하숙으로 옮겨왔다. 젊은 여자가 크다란 집에 홀로 있는 것이 무시무시 하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도 어머니와 같이 살던 집이라 어머니의 손 길이 닿던 모든 것을 볼 때에는 더욱 마음이 상하여 그 날 밤으로 옮겨온 것이다.

옛하숙에 다시 돌아온 명순이는 지내간 몇달 동안 일어난일이 진실로 꿈 같았다. 현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참혹한 사실이었다. 자기를 돌아보아도 저번에 이 집을 나갈때와 지금 자기와는 딴 사람이 된 것 같이 몹시도 변하였던 것이다. 생리적 변화도 변화려니와 자기의 생활전체가 전연히 변한데는 스스로 놀랐다. 그러니 마음이 아펐다. 게다가 어머니까지 졸아갔으니 그 고통이야 어떠하였을까. 이 기구한 신세를 누구에게 의탁할만한 곳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자기의 운명을 저주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와서 명순이는 과연 온 세상이 쓸쓸함을 깨달았다. 이렇게 인생으로서 고독을 느끼고 거기에 대한 비애를 맛볼 때 그래도 한 줄기의 소망과 믿음과 그리고 위안을 얻을 곳은 ‘철하’ 였다. 명순이는 모든 고통을 겪는 중에도 철하만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더욱이 어머니의 사랑을 잃어버린 뒤로는 철하가 퍽도 그리워졌다. 철하가 지금이라도 자기를 잊지 않고 생각하여 준다면 명순이는 기쁨에 넘치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환영이라도 부등켜 안을 것이로되 자기의 더러운 몸을 돌아볼 때에는 철하가 자기에게 고통을 내리우는 존재요 감히 치여다볼 수도 없는 거룩한 존재였다.

꿈에 보던 철하! 연순이를 안고 속삭이던 그 철하! 꿈은 꿈이 었만 그 기억이 너무도 똑똑하여 꿈을 믿는 그마음이 아직도 순진한 명순이는 자기의 슬픈 장래를 보여주는 예시(豫視)와도 같았다.

더러운 몸을 가지고 순결한 남자를 사랑하고자 애를 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나 마음에서 영원이 살아지지 않는 철하를! 단념하고자 하여도 과연 단념할 수는 없었다.

명순이는 일가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의지할 때도 없는 고아(孤兒)였다. 세상을 지나가는데에 그 혈통과 혈통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천륜을 맛보지 못한 외로운 몸이다. 더구나 아버지를 너머도 일찍 여히고 세상맛을 알려할 때에 어머니까지 돌아가셔 그는 세상의 모든게 다 자기를 저주하는 듯하여 어느때에

“옛! 죽어버리자 죽으면 그만이다. 나하나만 하고 결단해 버리면 모든 고통도 다 없어질 것을……”

하고 결단해 보려 하였으나 사람이 이세상에 나서 고통을 거꺼더라도 산다는 것에 그 무슨 깊은 뜻이 있는 듯도 하고 자기의청춘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끊기는 오히려 주검보다 어려웠다. 그것은 명순에게 있어서는 철하 한사람이 있는 까닭이었다. 비록 자기의 몸은 더렵힌 몸이라하더라도 자기의 백합꽃 같이 곱고 깨끗한 그맘은 철하를 위하여 굳게 간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남달리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철하를 기다리고 사는 것이다.

“그래도 철하씨가 모든 것을 알고도 사랑하여만 주면 나는 다시 사는 몸이다. 그렇다 일년반만 참자 참아서 그때에 내가 어떻게 될것인가를 보자”

“그때까지 참아서 철하를 맞난 다음 나의비밀을 하나도 숨기지 말고 고백을 하자 만일 그때에 철하가 너와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배턱을 하면 그때는 모든게 다 최후다 죽어버리자 철하의 앞에서 죽어버리자”

이렇게 자기를 시험하고 한편으로 스사로 위로도 하고 해서 명순이는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만일 명순의게 이러한 실낱같은 휘망이나마 없었던들 그는 이미 이 세상에서 그 고운 자최를 장사 지냈을는지 모른다.

어떤 때에는 낙심도 하고 자포자기(自暴自棄)도 하여 보았지만 그것은 한 찰라이었고

“설마 철하씨가……”

하는 막연한 믿음으로 모든것을 이기어 나아갔다.

“참어라 참어라……”

명순이는 번민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부르짖고 스스로자기의 마음에 안위를 도모하여 없는 용기도 내여보았다.

그 용기는 물론 ‘삶’ 을 위한 용기였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일년 동안 밖에 안 남었으니 그 때까지 살어보고 나서”

“창선이라는 놈 연순이라는 년! 나의 일생을 저주한 그 사탄의 무리들을 철하의 날카로운 주먹으로 없새버리게 해야지”

명순이는 주먹을 부르쥐고 입술을 깨물며 부르짖었다.

“아! 그러나 철하씨가 만일!”

이러한 의심이 뒤따라 일어날 때는 차라리 지금에 깨끗한 주검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명순의 어린 가슴은 이러한 고민에 터질 듯하였다. 음식에 구미는 떨어지고 계다가 불면증이 생기어 괴로운 밤을 그대로 밝힌 때가 많았다. 그러하니 슬픔만이 복받치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었다.

어머니가 생존하였을 때 어머니의 성미를 도두어 어머니의 마음을 볶아치게 하던 일이 후회가 났다. 그렇게 헛되히 도라가실 어머니의 마음을 웨 기쁘시게 못하였을고…….

무남독녀를 먼 학창에 보내시고 고향에서 그딸을 그리워 하셨을 일! 소년과부로 세상만한을 다 겪어오며 자기 하나를 바라고 그날 그날을 지내시던 일 이 모든 것들이 명순의 마음을 더욱 괴롭게 하였다. 언제나 어머니가 생존하였을 때 일이 ‘파노라마’ 와 같이 눈앞에 핑핑 돌고 있었다.

몇고랑도 되지 못한 밭과 함흥시내에 있는 집을 팔아서 정성을 다하여 공부를 시켜주시던 그 어머니, 어떠한 요구든지 나의 소망이라면 선뚯선뜻 들어주시던 그 자비한 어머니는 지금에는 지하에서 썩고 있지않는가? 이 모든 것이 젊고 약한 이 여성의 마음을 언제나 슬프게 하였다.

역경(逆境)! 확실히 명순에게 있어서는 이 시기가 역경이다. 이러한 십자로(十字路)에 선 여성에게는 오로지 이 세상은 유혹의 그 검은 손을 펼처서 집어 삼키랴는 그 위험한 시기를 당한 것이다.

조선의 소위 수부(首府) 화려한 도시미를 자랑하고 있는 대경성도 그 이면에는 어지러운 탁류와 암류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사원(寺院)의 거룩한 종소리도! 경매소의 요령소리도 그것은 현대 ××주의와의 교향악 같이 탁류를 타고 흐르는 혼란한 도시의 허무러져 가는 인생들의 마지막의 비명과도 같았다. 이 도시의 모든 오예는 모든 피라는 관념을 하고 하늘에서 떴다가는 사라지고 사라지고 하였다. 명순이는 이 도시인의 암흑면을 알기 시작하였다. 알게 되면 될수록 이러한 곳에 발을 들여놓고 살아 갈일이 두려웠다. 목전에 닥처오는 생활문제 그것이 명순에게는 당면문제이었다. 철하가 출옥할 때까지의 생활문제 그것만 해결이 되면 명쑨의 앞에는 조금도 무서운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명순이는 오늘 아침에도 벌이자리를 구하려고 몇사람의 동무를 찾아 갔었다. 그러나 취직의 길은 언제나 그렇게 쉬웁게 나서지 않아서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강경희가 있었더면 많은 편의가 있었겠으나 그는 행위불명이 되었다. 경희가 있는 하숙으로 찾아가 보았으나 밥값도 물지 않고 하숙을 나간지 한달이 넘는다 하며 어디를 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 묘연하다고 한다. 죽어도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겠다고 하던 아이가 고행으로도 갔을리는 없고 혹시 생활난으로 죽어버리지나 않았는가고 명순이는 의심하였다.

경희는 아무리 고생을 하고 있더라도 자기 보다는 형편이 퍽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아버니와 어머니가 비록 구차한 살림살이를 하고 계시지만 그만하여도 의지할 곳이 있고 또 마음이 튼튼한 오빠를 가졌으니 어대로 보던지 자기만이 외로운 몸같았다. 명순이는 경희만치나 의탁할 곳이 있는 행복이나마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명순에게는 다만 감옥에 있는 철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명순이가 마음으로 생각할 뿐이지 장차 어떻게 될는지도 알지 못할 일이었다. 과연 철하가 자기가 바라는 것과같이 감옥에서 나와서 자기의 과거를 알고도 맞아줄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떻게 되더라도 지금에 있어서 명순이와같은 처지로서는 철하를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을 맏고 살다가 만약 버림을 당하게 된다면은 그 때에 가서는 모든 문제가 결말이 나는 거시이라고 생각하였다. ‘버림을 당하면 죽지’ 이미 이렇게 결정한 것이니 철하에게 대한 문제는 그리 애가 씨지 않았다. 이미 주검을 각오하고 살아도 스스로의 위안에서 지내지 못하였다. 수천가지 고민보다 사실 철하에게 대한 고민이 컸다. 그 고민을 주검을 각오한 고민이고 저주받은 생명에 한 줄기의 광명한 빛이었다. 철하가 없으면 고민도 없을 것이고 될대로 살아갈 것이니 그 고민이 크지 않다고 누가 할까? 살어가는 명순이로써 최대의 생복을 철하에게 두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억지로 하는 수가 없는 인간인 터에 그것까지도 되는 대로 맡겨두기로 하였다.

명순이는 저녁밥을 재촉하여 먹고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 이선생을 찾어가려고 옷을 갈아 입었다. 이선생을 사십이 넘은 노처녀(老處女)로 ‘이마리아’ 라면 경성한에서는 물론 이려니와 전조선에서 그 이름을 모른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정일여학교(貞一女學校) 학감으로 있는 터로 학생들을 사랑하기를 친딸 같이 하여 주며 그것으로 그는 유일의 낙을 삼았다. 명순이도 그 학교 출신이고 재학시대에 교비생으로 있었으므로 이선생의사랑을 남달리 받아 왔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기독교 경영인 정일여학교 교비생으로 있으면서 암암리에 반존교운동을 하였따. 성경시간이면 성경의 구절구절을 들어 질문도 하고 반박도 하였다. 그러므로 교원들간에 명순에게 대하여 큰 비난이 일어났지만 우등생이라는 가판으로 가혹한 처치는 받지않고 사무실에 불려가서 주의를 여러번이나 받았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그때 조금도 잘못하였다는 사죄는 하지 않고 아무리 하여도 믿지 못할 말이라고 하였다. 직원회가 열릴 때마다 명순이와 같이 신앙심이 박약하고 반기독의 사상이 있는 학생들 교비생으로 둔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박들을 할 때면 명순이를 사랑하는 이선생은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가면서 명순이를 보호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명순이는 일변으로는 여러 선생들의 주목을 받아오고 일변으로는 학감선생의 보호를 받아오다가 명순이가 사학년때에 일학년 학생이 서양사람 어린애를 울려 놓았다고 그 학교 관리자요 그 어린애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그 학생의 뺨을 함부로 갈겨서 졸도를 시켜논 것을 조건으로 명순이와 그 동무들은 무리한 학대와 모욕에 분개하여 동맹휴학을 단행하였었다.(中略) 명순이는 그 때에도 이선생의 덕으로 검속을 면하게 되었으나 학교에서는 풀학을 당하였다. 이선생은 명순의 재질에 감복하여 그 이를 사랑한것이며 명순에게 대하여 장래에 큰 촉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후 명순이가 동경 사범학교로 가기로 작정 할 때에도 이선생의 덕으로 졸업증서와 성적부를 얻게 되었었다. 명순이는 이선생이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에 생각하면 그때 그말이 깊은 의미가 있는 말같이 생각이 된다. 어떤 학생이 시선생을 보고 우리가 졸업한다음 어떠한 일을 해야 좋은가고 물었을 때

“시집을 가거라 시집가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다”

라고 하던 말!

그때에는 그 말이 퍽 우습게도 들렸었고 한 편으로는 그 말이 죽으라는 말과 같이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여 보니 그 말이 그럴듯한 이치를 가진 말이거니 하였다.

노처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그가 얻은 경험! 그것의 발로요 처녀의 비결이라고도 할 수가 있었다. 명순이도 중학교를 나오던 즉시로 시집을 갔더면 그러한 유린과 지금과 같은 고통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쯤은 어린 아이의 어머니도 되었을 것이며 가사에 충실한 주부가 되었을 것이다. 큰 희망을 품고 좀더 공부를 하려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는 자기가 몹시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었지만 나중에 이러한 고생을 당하니 지내간 일이 모두 혙은 수작 같았다. 아무런 지각도 안났을 때의 그저 공상에서 지내지 못하였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험준하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여따. 그 때에는 시집을 가는 동무들을 퍽 불행하게도 생각하였었다. 확실히 꿈이었다. 그 때의 모든 것을 생각하면 모두가 꿈이었다.

명순이는 오늘 아침 동무의집을 찾아다니던 길에 전차에서 우연히 이선생을 만났었다. 중학시대에 그를 만나고는 오년만에 처음 만났었다. 처음에는 명순이가 이선생을 다하게 되니 부끄러운 생각이 앞을 가려서 외면을 하려고 하였으나 지금의 형편으로 그를 만나면 혹 수 좋은 도리가 있을까 하고서 인사를 하였던 것이었다. 넓은 사막에서 기갈에 헤매는 사람이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그대로 지나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앞으로 다닥칠 생활상 불안을 면하고저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명순이는 옛날에 극진히 사랑하여 주던 이선생이 아직도 자기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이 반가웠다.

이선생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자기를 보고 죽었던 딸을 다시 맞난 것과 같이 반가히 맞아 주었다.

“겨를이 있으면 놀러와요”

하며 그는 몹시도 인자한 말씨로 말해따.

“네 오늘 저녁에 가겠읍니다. 좀 선생님과 의논할 일도 있고 해서요”

하는 명순은 이선생이면 자기의 일을 잘 보아 줄것이라고 믿었다.

명순이가 옷을 갈아 입고서 이선생을 찾아 가려고 막 미닫이를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때 이다. 대문깐으로부터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변교장이었다. 변교장은 술이 취하여 명순의 방뒤 옆 마루에 턱 쓸어지는 듯이 앉는다.

“명순씨 이렇게 술이 취하여 가지고 방문을 하여서 미안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친구를 만나거 두어잔 마신것이……”

하며 혀꼬부라진 소리로 중얼거리 듯이 말한다.

명순이는 술취한 사람을 보니 소름이 끼친다. 더욱이나 평시에 술 마시고는 찾어오지 않던 변원식이가 술이 취하여 찾아온 것을 보면 경험이 많은 명순이는 창선의 일이 생각나서 그를 바로 보기에도 괴난스러웠다. 명순이는 한편으로 무서웁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였다. 변원식은 어름어름 하더니 방을 들어가려고 구두끈을 풀으고 있다.

“미안한 말씀이올시다마는 오늘밤 누구와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가봐야 되겠읍니다”

하며 명순이는 구두를 신으려고 마루 끝에 내려섰다. 변원식이는 아무 말도 없이 구두를 신는 명순이를 부리부리해진 눈으로 한참 치어다 보다가 벌떡 일어서며

“여보시오 못처럼 찾어온 손님을 이렇게 냉대를 할 수가 있단 말이요?”

“냉대랄 것이 있겠읍니까 급한 볼일 이 생기여 오늘 저녁에 꼭만나야 될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급한 볼일? 꼭 만나야 될 사람이 있다고?”

변원식은 이렇게 명순의 말을 받아 외우고 나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풀기가 없이 섰다가 고개를 번쩍 들어 시뻘건 얼굴을 명순이에게 향하였다.

“이것참 실례하였읍니다. 그러나 저도 쓸데 없이 놀러온 사람은 아니올시다. 급히 만나 뵈옵고 위논할 일이 있어서 왔으니 잡깐만 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좀 하시지요”

명순이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퍽 난처하였다. 이선생과 만나기로 약속은 하여놓고 변원식이는 지금 꼴을 보아서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라 마음이 초조하였다. 명순이는 이런 경우에 변원식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도리어 불리할 것 같아서 나즉하고도 상양한 목소리로

“선생님…… 이렇게 못처럼 찾어 오셨는데 참으로 미안합니다마는 내일 오전에 만나기로 하고 오늘밤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 사정도 좀 보아주서야 되겠읍니다 만나자고 한 사람이 가다리고 있을텐데요”

이렇게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벼르고 벼르고 해서 찾아온 변원식의 귀에는 무슨 말이 다 핑게 같아서 도리어 불쾌하게 들렀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구요? 명순씨 나도 당신을 만나려고 왔으니까 사람이면 마찬가지이니까 내가 당신을 일부러 찾어 왔다가 할 말도 못하고 가야 옳겠오 그런 실례 되는 말은 하시지도 말고 방으로 들어갑시다. 꼭 할말이 있으니”

변원식의 언성은 점점 높아간다. 그럴수록 명순이는 마음이 조리조리하였다. 다른 방에 있는 학생들이 알기만 하면 창피한 일이므로 할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신었던 구두를 벗어서 팽개를 치고 미닫이를 와락 열어 제차고는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가서 동그만이 쪼크리고 앉았다. 변원식은 명순이가 성이 표롱하게 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거동을 바라보다가 술마신 정신에도 어색하였든지 승거웁게 씩 웃고는 방으로 따라 들어온다.

“미안합니다. 볼일이 있어서 나가시겠다는 이를 이렇게 다시 들어 오시게 해서. 그러나 명순씨이니까 믿고 그런 것이니 그만한 것쯤이야 용서 못하실 것도 없겠지요 허허허”

그 능갈진 어조로 너털 웃음을 섞어서 짖어댈때에는 필연코 무슨 컴컴한 심리의 발작 같아서 명순이는 고개를 숙인채 아무 말이 없이 책상위에 놓인 책을 이리 뒤적 저리 뒤적 하며 만적거리고만 있다. 변원식이는 자기를 대하는 명순의 기분이 너무나 샛침해지는데에 화증이 나서 생트집을 잡으려고 대드렀다.

“여보 이만 저만한 손님도 아닌데 이렇게 푸대접을 한단 말이요?”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섰으니 그 말씀이나 얼른 하십시오 잠깐 동안만 보실 일이란 무엇일진 몰라도 얼른 말씀을 하세요 저도 긴한볼일이 있어서 고다 나가야 되겠으니까요”

명순의 말은 몹시도 쌀쌀하였다. 변원식이는 명순의 얼굴을 뻔히 노려보다가는

“이건 너무 심하구료? 원수라도 이렇게 야멸치게 대하진 못할겐데―― 흥”

하며 머리를 끄떡거려 보인다.

“그것참 세상이 이렇게 쓸쓸해서야 살수가 있나”

“시간이 갑니다. 얼른 말씀을 하세요”

명순이는 시계를 끄내보며 재촉을 하였다. 쓸데없는 말을 늘어 놓아가지고 슬그머니 조롱을 하는 것이 밉살스러웠고 또 그라 술이 취하였으니 시간이 오래 가면 어떠한 행동이 일어날지도 몰라 두려웠던 것이다.

“시간이 간다니요 시간은 어느 때든지 가는 것이오 오는 것은 아니니까 허허허”

변원식이는 이렇게 구석없는 말을 늘어놓고 넉장을 붙일 모양이다 사실 변원식은 할 말이 없었다.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는 하였지만 노는 계집의 집을 찾아온 심 잡고 온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명순이를 대하고 보니 잡소리를 할 수도 없고 술김에 끌어서 붙일 듯하던 정욕의 불길이 꺼저만 간다. 그러니 주책 없이 승거웁게 이죽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원식의 술취한 마음에도 명순의 말씨가 점점 냉정해질수록 점점 빗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꼬아서 그를 힐란을 할 작정으로 뒤로 조금 물러앉으며 빈정대는 말씨로

“독신생활을 한다고 떠드는 사람도 만나몰 사람이 있던가? 흥! 이런 밤중에”

천정을 치어다 본다.

명순이는 그 말이 자기를 모욕하는 말이므로 가뜩이나 성미가 치미는데다가 그럼 말까지 들으니 몸이 떨리었다. 그러하니 너무도 분하여 입술만 이로 씹으면서 말을 못하고 앉았다. 다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천정을 치어다보는 변원식이를 쌀쌀하게 흘겨 보았다. 변원식이는 천정에서 눈을 조금도 옮기지 않고 또 다시 입을 빗죽하며 말을 끄내 놓았다.

“철하는 감옥에서 콩밥을 먹는데 또 누구를 만나보려는 수작이요? 아수! 여보! 그렇지이 세상에는 철하와 같은 위인도 많으니까”

변원식의 말은 점점 이상한 방향을 찾아 가지고 달아난다. 평시에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던 변원식이도 오랫동안 너무도 명순에게 애가 탄끝에 실없이 분한 김에 오늘 밤에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문을 터놓았다. 명순이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변원식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하여 가는 것을 알아 차린 명순이는 가비여운 공포를 느끼었다. 어제까지도 가장 점잔은 체하고 언어행동에 몹시도 삼가던 그가 불시에 파락호의 행세를 할 때에 자기를 낚기에 남달리 하였으나 실망끝에 대담하게 거짓탈을 벗고서 적극적 수단을 취하려고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마음에 무시무시하였다.

“웨 그렇게 조그만 일에 사람을 의심하세요 독신생활을 하겠다고 말하고 다른 애인을 두고 만나러 다니다니요”

명순이는 자기 신변을 위한 변명 같아서 마음에 주접었으나 그대로 모욕을 받고 굴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딴 남자를 사괴이고 있는 줄로 말하자면 불량한 여자로 변원식이가 추측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가 그렇게 추측만 하면 어떠한 조건을 들어서던지 명순이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 시커먼 입을 벌리고 덤벼들것을 명순이는 잘 알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기의 신변이 위태하게 될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명순이가 변교장의 그 더러운 은혜를 입은 것으로 얼마만한 정도의 자유를 잃고 있는 까닭이었다. 자기가 개성으로 가서 청구하여 쓴돈 어머니의 약값과 장례비 그외에 어머니가 홀로 있을 때의 생활비로 쓴 돈등 명순이로서는 큰 빚을 지고 있었다.

변교장이 야심을 두고 던져주는 돈을 받아 쓰는 것이 장차 자기 신변에 불리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인 줄 명순이도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어떠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때 그때의 형편으로 말미암아 피할 수 없는 일이없던 것이다.

황금이 만들어 놓는 기회! 그것이 명순의자유로운 몸을 얽어 잡아매는 쇠사실과 같은 것있었다.

변원식이가 돈의 세력으로 명순이를 결박하여 놓고 그의 유일의 목적인 결혼신청을 할 때마다 명순이는 ‘독신생활’ 이라는 조건으로 거절을 하였다.

‘독신생활’― 그것 밖에는 그의화살을 거절 할 방패가 없었다. 그러나 변원식이를 어루만져서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그의 요구를 거절하기에는 퍽이나 힘이 들었다.

“명순씨 그렇지 않습니까?”

“…………”

“노처녀는 독신생활을 하려고 하는 젊은 처녀들의 고문이 될 자격이 있으니까? 암― 그렇지요 선생이지요”

변원식은 손으로 깔죽깔죽한 턱을 어루만지면서 명순이를 치어다보고 빙그레――하고 내가 네맘을 잘 안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다.

“그래 독신생활을 하시겠는데 어려운 점이 있고 알아두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마리아를 만나려고 하신게지요?”

그말에는 비웃는 기색이 떠돌았다.

“이마리아 노처녀 참 이름이 하꾸라이 같아서 좋군 그러나 그도 자기의 못생긴 것을 비관하여 독신생활을 하였던지 그렇지 않으면 조선에는 남편감이 없다고 해서 시집갈 생각이 없으니 자연이 처녀로 늙을 수 밖에”

“그렇지는 않답니다. 그선생 마음이 어떻게 강하다구요 또 생각 그 사상이 고상하구요”

“허허 마음이 강하고 고상해서 노처녀로 지내는 게로군요 그건 딱한 거짓말입니다. 그도 남과 같이 얼굴이나 뻔뻔하게 생겨 보시오 독신생활을 할 생각을 두었겠는가 세상에서 버림을 받고 할 수 없이 되니까 이름 좋게 독신생활을 한다고 나팔을 불고다닌게 아닐까요? 그건 시집가기 전에 소박마진 여자의 비명이지 저는 별 수 있나”

명순이도 변원식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으나 너무도 비꼬는데는 얼굴이 확근하도록 분하였다. 그리고 일시 수단으로 독신생활이라는 소리를 한것이므로 그 말에 별로히 충동도 받을 것은 없으나 은근히 자기를 욕하는 것 같아서 도리어 변가라는 화상이 미웠다.

변원식은 명순이가 아무런 이의(異議)도 없이 자기의하는 말을 다수굿하고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의 목적을 달할 때는 이 때라고 깨달았다.

“명순씨 어떠씁니까 내말이 틀림니까?”

“…………”

“웨 대답이 없나요”

“저는 몰라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읍니까? 이선생이 어떠한 이유로 독신생활을 하셨는지 그것을 알리가 있겠읍니까? 독신생활을 하니 독신생활을 하는가보다 할 뿐이지요”

변원식은 그 말을 듣고는 또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는다.

“이마리아의 마음을 모르시는 것은 당연항 일이라 하고, 당신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당신도 독신생활을 하시겠다고 하였으니까 어떠한 생각이 든지 있지 않겠읍니까?”

명순이는 여기에는 대답하기가 퍽 괴로웠다. 어떠한 이유로 독신생활을 하겠다는 그 이유조건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자기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즉 철하가 나올 때까지 자기의신변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 말이니 독신생활에 대한 심각한 연구도 하여본 일이 없었다. 갑자기 달리 구슬일 말이 생각이 안난다.

변원식의 말투를 보아서는 그가 마음 없는 엍은 수작으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명순씨로 말하면 학식도 상당하고 나이도 젊고 품행도 단정하시고 또 용모도 다른 여자들보다 출중하신 터에 독신생활을 하신다니 그게 말이 되나요”

“어쩐지 남자라면 싫은 생각이 나서요 선생님 그럼 말은 그만하시고 다른 이야기나 하서요”

“명순의 처지로서는 이러한 문제를 될수 었는 대로 어름어름하여 넘기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남자들이 싫여서라니요 그도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명순씨가 남자를 사랑혀여 보지 못한 수집은 처녀이라며 저도 그렇게 믿겠읍니다만 명순씨는 벌써 철하와 같은 애인을 가져보지 않았읍니까 그를 위하여 눈물도 흘려보지 않었읍니까”

이제부터 변교장은 정식으로 덤벼드러서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명순이는 그 공격을 방위할만한 힘을 가지지 못하였다. 철하와 자기의 사이를 모르는 체하여 오던 변교장이 오늘날에 와서 쪽찢개로 집어내 듯이 들추어 내는데는 깜짝 놀랐다.

“명순끼 웨 대답이 없읍니까 저는 알어야 될 필요가 있으니 말씀을 하십시오”

“…………”

“명순씨가 말하지 않는다면 제가 말하지요 철하가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독신생활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명순이가 만일 변교장에게 자우를 빼았기지 않았다면 이런 경우에 있어서 서슴지 안혹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명순이는 변교장이 자기의 마음속을 뻐언히 들여다보고 하는 말이므로 도리어 몸이 떨리었다. 아무리 하려도 자기느 변교장의 그 마수에 점점 끌려 들어가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철하를요? 내가 그러한 사람을 생각할 필요가 있나요 그 사람이 무엇이길래 감옥으로 간 사람을 기다리려고 독신생활을 한다고 하겠읍니까? 그것은 변선생의 곡해예요”

“곡해? 천만에― 내 앞에서는 그러한 말은 아예 할 생각도 하지 마시오 내가 모르는 체하고 있으니까 장말 아무것도 모르는 천치인줄 알었읍디까? 철하와 당신 사이의 일은 어떠한 일이든지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지내간 일이지요 지내간 철 모르던 때에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일이 퍽도 우습습니다. 세상에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혼을 안하기로 결심 하였읍니다. 철하는 고사하고 그보다 백배 천배 나은 이라도 결혼을 안하기로 결심하였읍니다”

명순이는 어떠한 곡경에 이르러서는 양심을 띠어놓고라도 거짓 변명이라도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웨 어떠어떠한 조건으로 독신생활을 하겠다는 말을 철저하게 못합니까? 그것을 보더라도 명순씨의 마음을 넉넉이 추측을 할 수가 있읍니다”

“…………”

“내가 당신께 결혼신청을 할 때면 독신생황이라는 조건으로 거절을 하였지요 차라리 그렇게 어물어물하게 핑게를 말고 철하가 있으니 결혼할 수가 없오 하면 나도 단념을 하고 당신들 두 사람의 장래를 위하여 두 손을 들어 축복이라도 하였을 것이요”

변원식의 입에서는 흐르는 물 같이 거침 없는 웅변(?)이 흘러 나온다.

“아 그래 사람을 그렇게 속이는 법이 어디있단말요 나를 그렇게 바보로만 알었단 말이요”

“무얼 자꾸망 속인다고만 하십니까 철하고 무엇이고 나는 다 몰라요”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 명순은 최후의 발악이나 다름없이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러나 명순의 눈에는 눈물이 서리기 시작하였다.

변원식이와의 절교!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뒤에따라 일어나느 변원식의 마수가 무서웠던 것이었다. 변원식의 마지막 행동이 상가스럽지 못 할 것을 알았던 까닭이었다.

“선새인 그것은 잘못 아시고 하는 말씀이예요 변선생님과 결혼하기가 싫여서 그러는 거이 아니올시다. 앞으로도 장차 날이 있으니 두고 보십시오 나는 당연히 나의 결심을 관철하려고 합니다”

“천만에, 지금은 내가 당신에게 결혼을 신청한들 무얼하겠오 절교후에는 결혼문제고 무에고 있을 까닭이 없으니 그만하면 안심하시는게 좋겠고 그 대신에 다른 것을 요구하겠읍니다”

변원식은 자기의 있는 바 수단을 다 써본다 하더라도 명순이의 입에서 ‘그러면 당신과 결혼을 하지요’ 이러한 대답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최후의 거탄을 던진 것이다.

“전에 당신 어머니께 드린 백원돈은 내가 당신을 동정하는 뜻으로 드린거네 그 돈은 그만둔다치고 요사이 병원 약값, 입원비 또 장례비는 나거 선대를 하였으니 그 돈은 지금 곧 지불하서야 되겠읍니다”

이것은 최후의 협박이었다. 변원식은 이 거탄에야 마음니 강하다고 할만한 명순이도 항복을 하고라야 말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평소의 어리석고 유순한 듯하던 그는 살기를 띠이고 명순의 태도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명순이는 고양이 앞의 쥐모양으로 만들어논 인형 같이 꼼짝도 않고 앉았다. 언제든지 한번은 이러한 일이 있으리라고 예기하였던 것이나 정말 그 곤경을 당하게 되니 별 수 없이 이놈의 아가리에 물린 것 같아서 정신이 아뜩하였다. 과연 명순이가 예기하든 그것은 사실로 나타났다.

“자! 어떻게 작정하실 터입니까 이대로 있기도 무얼하니 속히 처리하여야 하지 않겠오?”

변원식은 일각일초도 지체하지 않고 명순을 협박하였다.

“선생님도 아다싶이 지금 저에게 그러한 많은 돈이 있어야 드리지요 없는 돈을 당장에 어떻게 내라고 허십니까……”

“그러면 돈이 없으면 결단코 아내겠단 말이구료”

변원식은 노하하며 명순이를 집어삼킬 듯이 흘겨본다.

“천만에 말씀이올시다 남의 돈 쓰고 안 갚아드릴 법이 어디 있겠읍니까마는……”

“그런 것을 아는 이가 왜 말치레로만 어름어름 하지 말고 돈을 내야 되지 않겠오”

“지금 당장에 없는 것을 귀신이 아닌 다음에 금방 어떻게 만들어 드립니까”

“당신에게 없고 있는 것이야 내가 알배 있겠오? 그리지 말고 어서”

“나는 당신과 절교를 하기로 선언을 한 것이니까 이후에라도 이 집을 오면 사람이 아니요 그러니까 오늘 저녁으로 돈을 내야돼요”

말을 마치고 양복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기더니 종이 쪽을 꺼내어 방바닥에 던진다.

“돈도 많지 않은걸 그렇게 앙탈하면 되겠오? 삼백원! 이만 돈쯤이야 명순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터이지 히히히히”

삼백원! 삼백원은 고사하고 일푼 이리도 없는 명순이가 내여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명순의 고기덩이를 탐낸 그는 그리하면 명순의 입에서 어떠한 응락이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동안만 참어주십시요. 그러면 내가 어디든지 취직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던지 한달에 얼마씩 별러서라도 드리겠으니 그 동안 저의 편의를 많이 보아주신터에 제 사정도 좀 보아 주십시요”

명순이는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변원식의 목적은 즉 그의 계획은 조금도 돌릴 수는 없었다.

“안돼! 지금 곧 내라니까― 흥 얼굴 어여쁜 값을 하느라고”

명순이는 변원식의 태도가 너무도 완강한데는 아무리 애걸복걸 한대도 소용 없을 줄을 알았다.

“없는 돈을 어떻게 내요 정 그러신다면 나는 안낼테니 당신 맘대로 해봐요 그 돈에 내 생명이라도 빼았어 가시구료!”

이렇게 명순이도 발알하는데는 변원식도 꿈실했으나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마주성을 낸다.

“무에 어찌고 어째 요런 건방진것좀 봐”

“없어요 없어 할대로 해봐요 돈이면 돈이지 그렇게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제 맘대로 농락을 하려는 그 버릇은 어디서 배운 버릇예요 이것도 학교의 교장이란 말요 남의집 자녀를 교육한다는 교육자의 뻔세가 이런 거시요 예이! 돈 삼백원이 하상 무엔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악착키 군단말요!”

위외로 명순의 감정이 탁 터지는데는 능글능글한 변교장도 속으로 몹시 놀랐다. 그래서 ‘이것 섣불리 건디렸구나’ 하였다.

“당신은 앞으로도 그러한 더러웁고 악착한 수단을 써서 당신의 학교 학행들을 길러 가면서 모주리 유린을 할 작정이로구료 이 색마! 악마!”

명순이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제부터는 변원식에게 그동안 당한 모든 분풀이를 해볼 작정이었다.

“소위 체면도 좀 봐요 여자라면 다 당신의 마수에 걸려들어갈 줄 아시오 정신을 좀 차려요 얼마나 파락호가 된 사람이길래 여자보고 건방지다고 쌍된 소리를 해요 무엇이 건방저요 건방저요!”

명순이는 분하였다. 그래서 그는 변원식의 턱을 치받치고 머리라도 끌어잡아 다릴 듯이 대들었다.

변원식은 어안이 벙벙하여 명순이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이거 왜 이래! 웨 표독이야 돈만 내면 아무일이 없는 것이 아니냐 말이다. 안내면 기어코 내 맘대로 해버릴 터이야”

“없어요 안내면 안낸다고 설마 사람을 죽이겠오”

“없으면 몸이라도 팔어서 물어야 돼 내가 이런 망신을 당하고서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을가 깊은가 보렴으나”

“몸이라도 팔어서라니! 점점 더뛰는 개 같구료”

“그렇구말구 인신매매는 법률이 용서하는 것이니까”

변교장은 속으로 이 말에야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내앞에 굴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생각하였다.

그러나 명순의앞에는 아무런 협박도 소용이 없었다. 주검을 각오한 명순의 앞에는 아무 말도 소용이 없었다.

“법률이 용서를 해 내몸을 팔어라? 흥! 내가 그렇게 쉽게 팔려갈 줄 알어? 훌륭하겠오 인신매매하는 법률까지 있어서”

“나에게 너를 팔 권리가 있으니까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대하여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거야”

“교육가? 사업가? 훌륭하오 공창(公娼) 장례가라는 간판까지 마저 가졌으면 신사의 조건은 구비하겠꾼 그래!”

“그런 말은 백번하여도 쓸데 없으니 돈이나 낼 연구나해! 그렇지 않으면 인육시장으로 나갈 각오나 하고”

“인육시장? 당신 마음대로 해보 당시의 능력으로? 인육시장으로 나갈 명순인 줄 아오 가게 될 때에는 죽어요 죽어! 내가 죽어버려도 인육시장으로 가져갈테야 아마 인육시장에서는 죽은 시체는 요구하지 않을 것 같은데”

주검! 변교장의 형세가 등등하던 마음도 이 한마디에 그만 써늘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았던 이 한마디에 변교장은 자기가 완정히 실패한 것을 알았다. ‘최후의 이 협박에야! 명순이도 꼼짝 못하리라’ 고 자신하였던 것이 주검으로 강박하는데는 패전을 하고 말았다.

변원식은 차라리 이러한 결과가 될 줄 알았더면 당초에 이러한 문제를 안 내놓았을 것이었다. 꼭 자기의 수중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이렇게 샐패가 되고 보니 쓸데 없이 명순의 감정만 일으킨 것이 후회도 났다. 명순이는 분노에 사못처 그 조그만 몸을 우들우들 떨었었다. 순직한 양이었던 그는 인면수심인 변원식의 그 잔악한 앵동에는 그는 주검으로써 싸와 이기려 하였다.

여기서 그 여자는 인간의 쟁투를 보고 첫칼을 들고나선 셈이었다.

인종과 굴복이 인류역사에 있어 얼마나 애통할 일인가를 깨달았다.

변원식은 이 한 여성을 몇백원의 돈으로 짓눌러서 자기의 먹이를 삼으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제로부터 모든 남성에게 모든 권력행사를 하는 자에게 반기를 들기로 하였다. 그가 너무도 분하여 혼도 되었을 때에 변원식은 쓸어진 명순의 아름다운 뒤태도를 보았으나 스스로 몸을 떨더니만 슬그머니 나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