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8장
귀가(歸家)
편집돈만 아는 영감장이 인정과 도덕이 없는 그 놈이었으나 그러나 명순이는 암우 권리도 가지지 못하였다.
“좋다―― 될대로 돼라”
이렇게 부르짖고는 서울에 있는 어머니께 편지를 썼다. 그 편지 내용은 어떻게 하든지 돈을 보내여달라는 말 밖에 이렇다 저렇다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에게 돈이 있을 까닭도 없는 줄을 알었지만 어머니에게 편지만 하면 돈이 나올 곳이 있는 것을 알았던 까닭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변교장이 어머니의 말만 있으면 몇백원이라도 당장에 보내어 주리라 하였다.
명순이는 세상에거 버림을 받고 돈에 대하여 극도의 고통을 받게 되니 스스로 자기 몸을 바리었던 것이었다. 변교장의 돈을 쓰는 날이면 자기가 변교장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관밥 값을 물지못하여 창기나 작부로 팔리는 거보다는 변교장에게 시집을 가는 편이 나았다.
기왕 이렇게 된 몸이니 더 타락만 되지 말고 아무에게나 시집을 가는 것이 당면 문제이었다. 명순이는 죽으면 죽었지 월춘이와 같은 더러운 생활은 하고 싶지는 않았따. 병신이든지 무엇이든지 한 남편을 얻어 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이튿날 오후 어머니께로부터 전보환으로 돈이 왔다. 청수한 돈의 배나 되었다.
명순이는 속으로 변교장이 내게 미치도록 반한게로구나 하고 퍽 우스웠다.
그러나 아무리 변교장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창선이보다는 몇배나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돈을 보내는 목적이 좋거나 좋지 못하거나 마굴에서 구하여준 것만은 감사하였다. 변교장이 돈만 아니 보내여주었더면 자기가 어떠한 곤경에 들었을지를 몰랐을 것이다.
명순이는 그날 밤차로 서울로 횡하니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온 명순이는 지내간 모든 일이 꿈결 같았다. 늙은 어머니를 버리고 다라난 딸이었만 눈물을 흘리며 맞아주는 인자한 어머니의 마음― 명순이는 그 인자한 어머니를 버리고 간 되로 그러한 인생으로서의 파멸을 당한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모든 고로를 참고 집에 그대로 있었더면…… 하는 생각도 났다.
그러나 그것들은 쓸데없는 후회이었다. 어머니는 죽어간 딸이 돌아온거나 같이 명순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네가 아주 멀고먼 곳으로 그만 가버린줄만 알았구나 개성에 있은 줄이야 누가 알었겠니”
명순이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변교장도 네가 어디로 따나갔다는 말을 들으시고 퍽 근심을 하시더라 젊은 여자가 어디가서 세상의 풍파나 겪고 있지나 않는지 하고 그래 고생은 안했니?”
“고생은 무얼 여관에 가서 밥 사먹고 놀았지요”
명순이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의 비밀을 어디까지 솜기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더 물어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내가 간 동안 어디서 편지가 안 왔읍디까?”
명순이는 이렇게 딴청을 대였다. 편지 올 데도 없었지만 다만 이야기를 돌리려고 한것이다.
“참 엽서편지가 한장 왔더라”
하며 명순의 어머니는 책상 위를 뒤적거리더니 엽서편지 한장을 가져다가 명순이 앞에 놓는다.
그 편지는 연순에게서 온 것이었다. 연순이라는 이름을 볼 때 선녀와 같은 순결하기 이를데없는 여자의 이름같이 보였다. ‘철하씨의 장래 부인’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았다.
명순이는 편지의 내용을 보지도 않고 쪼각쪼각 찢어버렸다. 그것은 창선의 사촌누이라는 것과 처하의 애인이 될 것이라는 질투의 마음에서 그 글씨만 보아도 치가 떨리는 까닭이었다.
연순이라는 년 때문에 자기가 그러한 사변을 당하게 된것을 생각하니 분하기가 한량이없었따. 연순이가 창선이를 얌전한 청년이라고 구슬리는 바람에 그 놈을 믿고 믿자 그만 그놈에게 파멸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즘생같은 놈을 얌전하다고 한것을 보면 연순이라는 년이 어떠한 암계(暗計)를 꾸민 것이라 하였다.
어머니는 명순이가 편지를 찢어버리는 것을보고 앉았다가
“어디서 온 편지길래 찢어버리니?”
명순이는 아무 대답도 안하고 정신 없는 사람모양으로 맥 없이 멍하게 앉았을 뿐이었따.
어머니는 명순의 태도를 퍽 주시하였다. 처음에는 객지고생으로 생각하였으나 차차 말도 하여보고 그 거동을 자서히 살펴보니 큰 근심이 있는 사람 같게 보였다.
“명순아! 웨 네 모양이 그렇게 수척하여졌니?”
“객지에서 고생을 하였으니까 그렇지요”
명순이는 억지로 웃음을 짓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흔들며
“아니다. 암만해도 네게 무슨 큰 근심이 이쓴 것 같다. 말을 해라 어떠한 걱정이 있니 사람이 살고라야 되지 그 모양이 되고야 어떻게 하겠니”
“무얼 어머니는 자꾸 그러시우 집을 떠나 있었으니 낯빛이 틀려진 것이지요 며칠만 지내보시오 도로 활기가 있어 보이지요 내게 무슨 걱정이나 근심이 있겠우”
명순이는 정신을 번쩍 차리며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 홀로 애태우는 그 사정을 어머니가 들으시고서 자기의 고민을 없이 할 수 있다면 서슴지 않고 묻기 전에 다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이 해결할 수 없는 비밀―― 제일 가까운 모녀사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만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감옥으로간 철하를 상각하고 있니?”
“철하씨 말예요? 인재는 그 사람의 이야기는 아예하시지도 마세요”
명순이는 무표정한 낯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철하라는 사람은 생각지 않기로 작정한지 오래였다. 생각하면 속만 상하였지 그 사람의 얼굴도 감히 치어다 보지 못할 신분인 것을 잘 알고 있었따. 그러나 어머니는 명순의 마음이 이전보다 달라진 것을 속으로 퍽 반갑게 생각하였다.
“철하도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나 돈이 없으면 똑똑한들 무얼 하겠니 이번에도 봐라! 네가 돈을 보내라는 편지를 받고 변교장을 찾어갔고나 그래 자서한 사정을 말하였더니 변교장은 조금도 거절을 아니하고 도리어 청수한 금액보다 더 주더구나 그렇게 고마운 사람이 어디 있겠니”
돈으로 사람을 낚으려는 수단인 줄 모르는 어머니는 세상에 변교장 같은 사람이 없는 듯이 칭찬을 한다.
명순이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직도 전과 다름없이 변교장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 우스웠다. 될대로 되어가려고 작정한 것이니 별로 발도 거기에 대하여 아란 곳도 아니하였따. 한번 깨여진 화병(花甁)에 훌륭한 꽃을 꽂어줄 사람도 없거니와 요구도 안하였다. 꽃이라면 어떠한 꽃이든지 사양할 수가 없었다. 만일 사양을 한다면 그 화병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는것이다. 마음이 있으나 없으나 바람 부는 대로 돛을 다는 것이 상책이었다.
해가 맞도록 어머니와 딸은 서로 마주 앉아서 그리워하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명순이는 어머니가 강경하게 권하는 바람에 할수없이 변교장집으로 놀러가기를 승락하였다. 명순이는 변교장의 집이 익선동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 한번도 가본 일은 없었따. 명순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모양으로 어머니의 뒤만 따라갔다. 앞서서 걸어가는 어머니는 큰 수나 난듯이 명순이를 돌아보며
“변교장의 집은 대궐안 같이 화려하고 웅장하더라 응접실만 보더라도 함흥에 있는 목부인(目婦人)의 집 같은 것은 어림도 없을만치 훌륭하더라”
“그 방에 걸린 시계만 하더라도 삼백원짜리라든가 참 좋더구나”
이 말에도 명순이는 귀를 기우리지를 않았다. 모든것이 풍년스러웠다.
다만 변교장의 능글능글한 꼴악선이를 대할것이 근심이 되었다. 그러고 넓은 길로 오고가는 사나이들의 모두 창선이와 같은 사람 같이 보이고 변교장 같이 보였다. 그 사람들이 분주히 걸어가는 것이 모두 어떠한 마굴로 가는 무리로 보였다. 월춘이에게서 들은 그 마굴로 모든 깨끗한 여자를 집어삼키려고 가는 것 같았다. 그 누구나 믿음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하나도 없었다.
인력거를 타고 쓱쓱 지내여가는 기생들! 화려한 자동차에 몸을 실고 가벼웁게 달아나는 양복쟁이 신사! 이 모든 것을 바라볼때 추악한 경성의 밤이 크다란 입을 벌리고 수 많은 생령을 삼키려소 덤벼드는 것 같았다. 경성은 확실히 죽어가는 것 같았다. 황금에 저주를 받고 있는 무리들이 비명을 지르고 다니는 것 같았다. 다만 솔직한 중학생들만이 살아 있다는 듯이 활발한 기세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따. 그들은 썩어가는 고목의 뿌리에서 힘있게 돋치는 새움같이 보였다. 명순이는 그들이 얼른 자라서 힘있는 그들의 주먹으로 사회의 모든 암흑면을 파괴하여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명순의 어머니는 익선동에 있는 변교장집 대문 앞에 가서 발을 멈추며
“바로 이 집이 변교장의 집이다”
이렇게 말하고 대문안에 들어선다. 명순이도 뒤따라 들어섰다. 그렇게 넓지는 못하나 시내의 뜰악으로는 넓다고 할만한데 키 낮은 상록수들이 여기저기 서있고 적은 연못도 있었다. 명순이는 어머니 뒤를 따라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걸어갔다.
“이 쪽 반양식으로지은 집이 변교장이 지금 있는 집이란다”
어머니는 명순이가 듣거나 말거나 이렇게 말하고 반양식으로 지은 집 층층대로 올라간다. 하인의 안내로 명순이와 어머니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은 어머니의 말씀하시던 것과 조금도 다름없이 화려하였따. 폭신폭신한 안락의자며 금은색이 영롱한 모든 장식품이 눈을 부실 듯하였다. 벽에는 값가는 명화들이 보기 좋게 걸리어 있다.
방안 이곳 저곳의 들창 옆에 노여 있는 화대위에는 ‘수선화’ ‘싸이크라멘’ ‘데에지’ 들의 꽃 화분들이 놓여 있어서 이 방만은 봄이 온것 같다. 그 꽃들이 내뿜는 향기가 기부닝 좋게 코를 숙 찌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명순이에게는 아무소용도 없었다. 함흥 만세교 건너 크다란 돌배 나무 밑에 있는 오막사리의 자기집만 못하였다.
황금이 낳은 모든 장식은 대자연에 싸여있는 초가집만 못하였다. 명순이는 이 모든 화려한 것들도 사람을 유혹시키려는 헡은 수작으로 직각이 되며 돈 있는 사람들의 돈자랑을 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참된 것을 찾아 볼수 가 없었다.
명순이는 광교다리 밑에서 부들부들 떨며 이치운 밤을 지내는 거지들의 생각이 났다. 집없는 그 사람들은 그렇게 지내다가 도야지 주검처럼 죽어버리는데 돈있는 사람들은 손님을 대하는 방을 이렇게 까지 훌륭하게 차려 놓으니 없는 사람들이 불평을 부르짖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거지들이 만일 이 방으로 들어 온다면 이 집 주인은 대번에 축출할 것이다. 그 반면에 돈냥이나 있는 소위 신사(?)들이 오기만 하면 두 손을 내밀고 갖은 애교를 부리며 안내를 할것이다. 이 얼마나 인생으로서의 모순일까?
그들은 확실히 돈의 노예가 되고있다.
명순이와 어머니가 이 방으로 들어온지 십분이 넘어서야 변교장이 들어왔다.
변교장은 명순이 온것을 보고
“아! 참 이것 늦어서 아되였읍니다. 명순씨가 오신줄만 알었더면 곧 나와뵈였을것을! 안에서 쓸데 없는 일을 하노라고――”
이렇게 능알을 부리며 의자에 앉는다.
명순이는 변교장을 대하게 되니 한시라도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갈수도 없었다. 어쩐지 자기의 몸이 이전보다도 부자유하게 된 것 같았고 모든 것을 자유롭게 못할 것 같았다. 자기 몸이 마치 변교장에게 달린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래 그 동안 고생이나 하지 않았읍니까?”
변교장은 난로에 석탄을 퍼 넣으면서 이렇게 묻는다.
“별로 고생은 안했읍니다”
명순이는 머리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을 하였다.
변교장은 기지게를 키고나서
“그것참 다행이올시다. 세상이 고약한 세상이니까 어머니도 앉었오이다마는 퍽 걱정을 하였읍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속을 성가시게 아니하시고 빨리돌아온 것만은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는 명순이는 속으로
“뻔뻔한 자식도 있고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명순이가 말도 잘 하지 않고 변교장의 붇는 말조차 대답도 시원시원하게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탔다.
“공연이 집을 훌쩍 나갔다가 돌아오니 부끄러워서 어미를 보고도 잘 이야기를 안해요 참 딱한 아이지요”
“하하! 물론 그러실 것이지요 집을 나간 것을 후회하시니까 그러시겠지요”
“이 애야 이야기를 좀 해라 그래 돈까지 보내주신 이에게 인사 한마디 여쭙지않니”
어머니는 초조해서 재촉을 한다.
그러나 명순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아니하고 앉았다.
아니꼽고 슬퍼서 입을 꼭 깨물고 있었다.
“그 사이 명순씨가 떠나신 뒤 학교에서도 대단히 곤난을 받었읍니다. 만일 명순씨가 다른 여자 같으면 퇴직을 시키고 새선생을 보충하였을 것이나 그렇게 할 수도 없어 다른 선생들에게 말을 하여 명순씨가 담딤하신 반을 연갈아 가르치라고 하였읍니다”
가장 동정하는 체 하는 모양이 미웁고 우스워서 명순이는 맞잔단을 놓았다.
“참 고맙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니”
자기를 반정대는 소리인 줄은 모르고 변교장은 속으로 흥겨웁게 생각하였따.
“천만에 말씀― 어쨋든 내일 부터 학교로 다시 출근을 하십시오”
하고 말하는 그는 얼굴에 화기가 돌았따. 그러나 명순이는 이제는 교원노릇이고 무에고 다하기 싫였다. 아침저녁 먹는 밥까지도 마음에 없는 것으로 그저 손버릇 삼어 먹는 터이었다. 명순이는 죽어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었던 것이었다. 고마운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깨달을 수 없을 만치 무감각한 사람이 되었다. 그 태도는 어머니게나 변교장에게나 모든 사람에게나 다 냉정한 태도였다.
“학교를요? 한번 나온 사람이 웨 또 들어가겠읍니까 다른 선생을 채용하십시오”
“학교에 무슨 불만이 있어 그러시나요”
“불만? 무슨 불만이 있겠읍니까”
“그러면?”
“몸이 괴로워서 다닐 수가 있어야지요”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의 말만 듣고 앉아던 어머니가
“이얘 정신을 좀 차려라 웨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 모양을 하고 앉었니”
이렇게 말하고 다시 변교장을 바라보며
“명순이가 개성에 내려가서 며칠동안 앓고 났다고 하더니 지금도 몸이 아퍼서 그러는 모양이올시다. 몸만 건강하면 보던 일을 다시 보지 않고 모녀가 무엇을 먹고 살겠읍니까”
“저도 그렇게 보았읍니다. 퍽 괴로워 하시는 모양 같아요 몸이 그렇게 괴로우시면 몇달동안 휴양을 하십시어 휴양을 하시더라도 월급은 월급대로 드릴게니까”
명순의 환심을 사려는 그는 말끝마다 돈소리다. 조금도 애끼지 않고 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까짓 황금의 썩은 내음새는 명순의 마음을 움직여 놓을 수는 없었다. 할 수 없게 된 몸이니 이 자리에 앉았지 조금이라도 살아 보겠다는 용기가 있다면 대번에 이 자리를 물러갔을 것이다. 임자 없는 몸이 되고 값이 없는 몸이 되니 별꼴을 다 보고 있다 하였다.
명교장은 시뻘겋게 단 난로 옆에서 담배를 붙여 물고는 힘 드려 한 목음 쑥 빨았다. 그러고는 어물어물 하다가 결혼에 대한 말을 끄내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독신생활이라는 조건으로 이것을 일축하여 버렸다.
변교장은 어한이 벙벙하여 더 말을 못하고 담배만 빽빽 빨고 앉았다 명순의 어머니는 이 난처한 처지를 당하니 몹시도 민망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하였다.
“이얘 웨 딴소리만 하고 앉었니 독신생활이란다 무에냐 그런 철 없는 말은 그만하고 선뚯 승락을 하렴으나”
“…………”
“우리쪽에서 먼저 청혼이라도 할만한 처지인데 그러구서야 대접이 되겠니 어서? 응 명순아 얼른 그렇게 하겠읍니다고 해라”
어머니는 딸의 맘이 자기와 어긋나는 데에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명순의 턱을 치바치다깊이 닥아 앉아서 열이 나서 졸라대인다.
변교장은 이렇게 돌 줄을 모르고 말을 낸것이 어색하였다. 그러나 돈푼이나 걸린 것이 있으니 명순이는 언제든지 내것이 되고라야 말니라고 생각하였다.
“명순씨에게 대하여서는 그것이 퍽 중대한 일인 만큼 곧 대답을 할리야 있겠읍니까 잘 생각하시도록 그대로 두십시오”
어쨋든 변교장을 자기가 원만한 이라는 거도 보이려하였다.
그러나 그는 명순의 태도가 이전보다는 자못 달라진 곳이 있는 것을 깨닫고서 속으로는 기뻐하였다. 그 전의 명순이 같으면 ‘결혼’ 이라는 말만 나와도 당장에 이 방을 뛰여 나갔을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 중에 명순의 마음이 제일 강한 것을 알았을때 탄복을 하지 않을 수없었다. 다른 여자 같으면 한번만 말을 뜅기면 달겨들었을 것이언만 명순이만은 자기의 뜻대로 쉽게 낚우어지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그의 명순에게 대한 열정은 더 절정에까지 높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대개 한번만 걸려둘기만 하면…… 하고 노리고 있던 차에 그의 어머니가 와서 돈을 취하여 달라고 하므로 기다리던 것이 이러한 기회라 하고 덱컥 오십원이란 돈의 배를 더하여 백원을 주었던 것이었다. 미끼를 많이 주면 줄수록 더 튼튼이 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까닭이었다.
지금에는 명순이가 절대로 안된다고 앙바티고 있지만 나중에 형세가 그릇될 때에는 차용금의 반제를 청구만 하면 명순이는 옴짝 못하고 제발로 걸어 오리라 생각하니 지금에 실패한 것을 조금도 낙방할 필요는 없었다.
변교장은 조금도 낯빛을 변ᄒ지 않고서 명순이와 그 어머니를 대접하였다.
될 수 있는대로 명순의 감정을 안사려고 여러가지 암시도 주었다.
그러나 영리한 명순이는 그 모든 수단에 넘어갈리가 만무였다. 그날 밤 늦도록 쓸데 없는 잡담만 하다가 명순이와 그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 뒤에도 틈만 있으면 명순이를 데리고 변교장집에 놀러갔다. 변교장과 자주 교제를 시키면 마음이 돌아설까 생각하였던 까닭이다. 명순이도 어머니가 변교장집에 놀러가자고 권하기만 하면 조금도 거절을 아니하고 놀러갔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언제든지 첫날 저녁에 놀러갈 때의 마음과 같이 조금도 변하지는 않았다.
그러하므로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어머니에게 여러가지 책망도 들었고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명순이는 조금도 반항을 하지 않고 언제나 무언주의를 썼다.
변교장의 초대를 받아 어떤때에는 극장으로 같이 가기도 하고 운동회 음악회 같은 데도 사양ᄒ지 아니하고 따라 다니었다. 그러한 것 뿐이 아니라 종로나 진고개의 번화한 거리도 같이 다녀보았다.
변교장은 명순이와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영광된 일 같아서 흥겨운 바람에 어깨가 두서너치가 더 올라가는 세미었다.
그것이 마치 명마(名馬)를 가졌다는 자랑을 하기 위하여 그 말을 타고 잡다(雜多)한 거리로 유유히 걸어가는 한사(閑士)와 같았었다.
명순이가 자기에게 마음을 두거나 안두거나 그것은 별문제이었다. 언제든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동반을 하여 주는 것으로도 만족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동료들이 명순이를 칭찬할 때에는 그것이 마치 자기를 부러워하는 소리 같이 들려서 명순의 인기가 높아가면 높아갈수록 자기의 지위도 높아가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