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7장
독수(毒手)
편집명순이가 창선이와 개성으로 내려온지도 이틀이나 넘었다.
오던 눈이 끊지자 그 뒤를 따라 일어나는 살을 어이는 듯한 바람이 사나운 기세로 일어났다.
“이렇게 날세가 치운 때 감옥에 계신 철하씨는 얼마나 고생이 되실까”
하고 생각을 하니 여관방 포근포근한 자리 화로를 끼고 앉은 것이 철하에게 대하여 퍽이나 죄송스러이 생각되었다.
개성에서 제일가는 여관이라고 하여서 그런지 이 방 저 방 할것 없이 손님들이 대만원이다. 명순이는 이러한 사람이 많은 여관에 있는 것이 거북하였다. 여관이 고등여관인 것만치 손님들도 중류이상(?)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므로 명순에게는 모두가 변교장 같이 보였다.
어떤 방에서는 기생을 불ᄅ다 놓고는 놀이판을 차리고 세월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또 어떤 방에서는 마작(麻雀)에 미쳐서 ‘퐁’ ‘깡’ ‘홀라’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들 있다.
무엇들이 그다지 흥겨웁고 즐거운지 하하 호호 남녀의 기름끼인 웃음소리가 이 세상은 자기들의 세상이라는 듯이 여관안을 벌컥 뒤집고 들석거리고 악다구니판을 버리고 있다.
명순이는 정신이 멍하였다. 여관이라고 하기보다 돈 있는 사람들의 환락장이라 하였으면 좋을만 하였다.
피차에 주고 받는 말이란 것은 전부가 음탕한 말 뿐이고 망측스러운 말 뿐이었다. 그 전후 잡소리를 홀로 앉아 듣고 있는 명순이는 몸이 오솔오솔하여 견디지 못하였다.
“저것들도 양복이나 입고 거기로 나서면 말쑥한 신사노릇을 하겠지”
명순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명순이가 혹시 볼일이 있어서 문을 열고 나서면 이 방 저 방에서 문을 벙긋 열고 젊은 놈 늙은 놈 할것 없이 내여다보며 무에라고 중얼대는 꼴리아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의 정체를 알고 내다보며 비웃는것 같기도 하였다. 어떤 놈은 공연히 문을 열고 나와서 침을 뱉는 체하고 슬금슬금 자기를 곁눈질 하여 보기도 하고 뚱뚱한 뱃대기를 내밀며 조끼에 느리우고 있는 금시계줄을 보란드키 번쩍이고 있는 놈도 였고, 양복 자랑하는 놈, 잘난 모양을 보이려는 듯 턱을 축켜들고 웃줄웃줄 걸어가는 놈도 있었다. 그것 뿐이 아니었다. 몹시 추근추근한 놈들을 명순의 방문 앞에 살금상금 걸어와서 문틈으로 드려다보는 놈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순이는 문을 와락 열어 제치고 그 놈의 뺨을 냅다 갈기고 싶었지만 가슴이 후리후리하고 무서운 생각이 앞장을 서서 숨도 크게 못쉬고 못보는 체 하였다. 명순이는 어쩐지 무서운 마굴에 빠진 것 같았다. 그 놈들이 돌아 간 다음 에야 한 바탕 때려주지 못한 것을 후회도 하였다. 그리고 분한 마음에 여관뽀이만 불러놓고 개 같은 놈 쇠 같은 놈들이라고 마음껏 옥을 퍼부었다. 그것도 다른 방 사람들이 듣지 않도록 뽀이게만 화풀이를 하였다. 다른 방 사람들이 듣는다면 도리어 창피한 일인고로 음성을 돋아서 말도 못하고 그저 귓속말이나 다름 없이 하였다.
“여관이 이렇고야 어찌 젊은 여자가 홀몸으로 안심을 하고 있겠오”
이렇게 뽀이를 보고 화풀이를 하였다.
창선이만 들어오면 당장에 다른 여관으로 옮마가리라 하였다.
아직도 세상에 경험이 없는 솔직한 쳐녀인 명순이는 마음이 조리조리하여 마치 바눌방석에 올라 앉은 것 같이 심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 그러한 놈들이 변교장 하나 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이 곳에 와보니 모두 변교장의 부류에 속하는 놈들 뿐이로구나 하였다.
명순이는 암만하여도 마름이 놓이지 않아서 문을 안으로 닫아 걸려고 하였으나 공교롭게 안으로 거는 고리는 없었다.
명순이는 분하고 갑갑한 마음을 주저앉히려고 누워도보고 전에 부르던 창가도 하였다. 창가를 할 때면 화로를 피아노 삼아 손을 노래에 맞추어 이리저리 옮기며 피아노 치는 흉내도 내었다. 그러나 그 놈들 때문에 창가도 입안을 고요하게 불렀다. 별짓을 다 하여봐도 심심하기는 일반이고 점점 무시무시하여지기만 할 따름이었다.
“아침에 나간 이가 무얼하길래 이때까지 안 오나”
“아마도 일이 잘 되는 모양인게지”
하며 혼자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명순이는 처음 대할 때의 창선이와 교제하여 본후의 창선의 태도가 자못 달라진 것에 놀래였다.
“첫인상이 좋지 못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좋은 사람이로구나 그러기에 사람을 교제하여본 다음에 라야 알지――”
하였다.
명순이가 처음 창선이를 대하였던 그날 저녁에는 믿지 못할 방창한 청년인 줄 알았지만 그 후로 하루 이틀 교제를 하여보니 침착하고 이해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누의 동생의 동무인 명순씨이니까 당신의 기구한 처지를 보고 그대로 있을 수야 있겠읍니까 될 수 있는대로 연순이를 위하여 주선하는 것만치 힘을 쓰지요”
창선이가 이렇게 말하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창선이는 말로만 하지 않고 취직을 시켜줄만 한 곳이 있다고 친히 개성까지 함께 와서 주선을 하여 주니 그 후의를 감사히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꼭 결정이 된다니 명순이는 창선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아직도 바람이 문풍지를 따리며 쐐쐐하고 불었다. 이제는 전기불도 들어왔다. 그래도 창선이는 들어오지 않았다. 밤열한시쯤해서야 그가 들어왔다.
명순이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창선이를 치어다보니 어쩐지 가슴이 선뜻하였다. 그리고 가슴이 덜렁하였다. 그보다도 어이가 없었다. 취직주선을 나갔다는 이가 고주가 되어서 들어왔다. 그사나이의 눈은 이상하게도 빛났다. 명순이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어찌 되었느냐는 말을물어 볼 생각도 안 나고 넋 잃은 사람 모양으로 우둑커니 서 있었다.
창선이는 자리에 앉으며
“얼마나 기다렸읍니까 되였읍니다. 자 앉으십시오 되였읍니다”
명순이는 술 취한 사람의 말은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의 환경이 환경인건만치 ‘되였다’는 한마디 말에는 마음이 쏠리워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조심조심히 한편구석에 옹송그리고 앉았다.
“추실텐데 화로 곁에 가까히 와서 편히 앉으시지요 관계찮습니다 자아”
창선이는 술 취한 목소리로 수선을 떨며 가까히 앉으라고 굳이 권한다. 명순의 마음은 조리조리하였다.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방에서 술취한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보면 얼마나 자기를 멸시할까하는 생각이 나서 온몸에 진땀이 났다.
명순이는 술취한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 취직을 시켜준다 해도 자기의 품의가 낮어질 것을 생각하니 내일 아침에 다른 사람들의 낯을 대하기가 창피한 일이었다.
“명순끼 무얼 그렇게 수집어 하십니까 자아 이리 오셔서 편히 앚으십시오 네, 아마도 내가 술이 취하여서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모양인가봅니다 그려, 그러나 오랫만에 옛친구를 만나니 안마실 수가 있겠읍니까 술 마시는 버릇이 되었으니까요 그것만은 양해하여 주서야 합니다 허허”
명순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푹숙이고 앉았을 뿐이다.
“명순씨 그 사람을 교제하느라고 술을 좀 마신것입니다. 명순씨는 아직 모르시니 그렇지오마는 남자들 교제에는 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창선이는 술 마신 이유를 변명 미슷이 능청맞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읍니까 취직할 희망이 없으면 저는 평양으로 가겠어요”
“허허 그거 온 될 말씀입니까? 아까 제가 무에라고 합디까 그런데 내가 서울서 말하던 학교는 결원이 없어서 틀리고 정미공장에서 여사무원을 한 명 구한다기에 마침 그 공장에 아는 사람도 있고해서 그곳으로 가보았읍니다 그려”
창선이는 예까지 말하고 손벽을 딱딱 치며 뽀이를 부른다. 뽀이가 문을 열려고 하기도 전에
“야―― 차를 좀 가져와”
하고 소리를 벼락 같이 지르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가 보니 여사무원 한명을 채용하기는 한다는데 지원자가 삼십명이나 된다고 하겠지요 그래 할 수 없이 시험을 치루기로 작정하였다고 합데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말도 듣지 않고 닫자 곧자로 당신을 소개한 다음 채용을 하여 달라고 떼를 썼읍니다. 그 회사 중역은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니까 내가 떼를 쓰니 할수 없이 승락을 하더군요”
창선이는 의기가 등등하여 뽀이가 가져온 차를 마신다.
명순이는 취직이 되었다는 바람에 마으니 저욱이 가러앉았다.
“술만 안 마시면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겠는데”
명순이는 이렇게 속으로 느끼었다.
“그런데 시험은 언제 치룬다고해요?”
“모레 치룬답니다. 그리고 그곳에 게시다가 마음에 합당하지 않으시면 내가 또 학교에도 말을 하여 두었으니까 어니 때든지 결원만 되면 넘어가도 좋을 것입니다”
창선이는 이만하여도 자기가 꾸미는 연극이 순조로 되여나가는데에 속으로 못내 흥겨웠다. 공연히 그 이상 이 말 저말 늘어놓다가 애써 맨들어 놓은 연극이 묵주발이 될는지 몰라서 묻는 말 외에는 대답을 안 하기로 하였다.
시계가 오전 한시를 첬다.
“자아 곤할텐데 이만 실례하겠읍니다. 차도 이대로 두지요 주무실 때 마시고 누으시면 기분이 좋으실게니까”
창선은 인사를 맞추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명순은 결박을 풀어논 것 같이 몸이 자유로워 진 것 같았다. 방안에는 구터분한 술내음새가 코를 찌르는 듯하고 머리까지 욱신거렸다.
명순이는 문을 열어 그 악취를 내여보내고 나서 자리를 펴고 누웠다. 어디이고 취직이 되게 되었으니 기쁘기는 하나 창선이만은 이곳에 오래 있지를 말고 내일 아침차로라도 훌쩍 떠낫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술 마시는 사람과 교제를 한다는 것이 자기의 인격이 낮어지는 것 같고 또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조소할 것도 같았다. 명순이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번민이 되어 마음이 퍽 괴로웠다. 지금쯤은 어머니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일시의 고민으로 집을 나오기는 나왔지만 나오고보니 어머니의 일이 근심이 된다. 앞으로 어머니는 어찌살고…… 지금쯤은 이딸을 원망하고 후회도 하시며 얼마나 설어하실고…… 어쨓든 앞으로 큰 비극이 일어날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된 지금에 어머니를 이 곳으로 모셔 올 수도 없는 일이고 어머니가 자기의 있는 곳만 알면 쫒아 와사ㅓ 당장에 서울로 끌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서울로 끌려가기만 한다면 그날에는 짐승 같은 변교장에게로 맘에 없는 시집을 가게 되는 것이다. 명순은 너무도 마음이 번거러워서 잠이 오지 않고 눈을 감으면 괴로운 명상이 떠돌아서 잠을 청해도 달아나고 만다. 창선이가 잠잘 때에 차를 마시고 자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에―― 명순이는 시험삼아 차를 한잔 따라서 마시었다.
차를 마시는 명순이는 그 찻물에다가 창선이가 ‘파피나알’ 을 집어 넣고 간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찻물을 마신지 십오분도 채못되야 명순이는 ‘파피나알’ 의 작용으로 고요히 고요히 마취가 되어서 혼몽한 가운데에 의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창선이는 잠옷을 갈아 입기는 하였으나 뽀이가 소식을 전하러 오기만 기다리고 잠을 자지 않았다.
오전 두시 명순의 방에서 나온지 한 시간만에 뽀이가 문 밖에 와서 가비엽게 ‘노크’ 를 한다. 창선이는 자리에서 날 듯이 일어나서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어떻게 되었니? 마시더냐”
“네 네 지금 곧 차를 마시는 것을 엿보고 왔읍니다”
그래도 창선이는 뽀이의 말이 믿을 수 없던지
“정말 똑똑이 보았나? 응? 꼭! 차를 마시는 것을 말야――”
“네 똑똑이 보구 말굽쇼 보았길래 와서 말씀을 였줍는게죠 못보구서야 어찌 말씀을 하겠읍니까”
이 말을 들은 창선이는 자기가 꾸미는 연극이 계획대로 잘 들어 맞는 것을 만족히 여기는 일방 신기하게도 여겼다.
창선이는 지갑에서 돈을 끄내어 뽀이의 손에 쥐여주고 나서
“자아―― 어서 가 자거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알아 들었니”
그는 이렇게 뽀이에게 엄명을 내리었다.
뽀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허리를 굽실하였다.
“예 예 염녀 마십쇼”
하며 빙글빙글 웃고는 제 방으로 가버렸다.
창선이는 뽀이가 돌아간지 얼마 후에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렇게 시끄럽고 부산하던 여관안도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그래도 창선이는 혹시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발끝으로 사쁜사쁜 걸어서 명순의 방문 앞까지 이르렀다. 방안은 전기불이 꺼져서 캄캄하였다.
창선이는 사방을 휘휘 돌아보다가 방문을 슬쩍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이 캄캄하여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팔을 휘저어 전기들을 찾아가지고 시우치를 돌렸다. 불이 켜져서 방안은 환하게 되었다.
명순이는 약기운에 마취가 되어서 쓸어져 누운데로 혼곤이 잠이 든 것 같았다. 창선이는 명순이가 잠자는 모양을 넋을 잃고 들여다 보았다. 명순의 낯은 이상하게도 했슥하였다. 그러나 그러낙 하면 유난이도 광채가 있어 보였다. 이마에는 잔 구슬 같은 땀이 송긋송긋 솟아 있었다.
헡으러진 윤택한 시커먼 머리카락 꼭 담은 그린 듯한 붉은 입술, 잠옷 밖으로 볼통하게 구비치고 사라진 앞가슴 이것들을 바라보는 창선의 전신을 야욕에 떨리었다. 그래서 그는 파도와 같은 숨결을 주리고 전기불을 끄고는 세상을 모르고 자는 명순의 몸 앞으로 가까히 갔다. 그는 몽혼이 되어 인사 정신 모르는 명순의 몸을 그 볼타는 거친 손으로 더듬었다. 이래서 명순이는 자기도 모르게 야수와 같은 그 사나이에게 무참히도 유린되었다.
오전다섯시 명순이는 새벽 바람이 문틈으로 새여들어오는 바람에 잠이 깨었다. 이상하게도 몸은 어떤 중력에 눌리운 것 같았다. 명순이가 몸을 뒤치려 할 때에 자기의 살결에 이상한 물건이 부딛히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자 명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공포를 느끼고는 눈을 번쩍 떴다. 그는 깜짝 놀랐다. 창선이가 자기의 곁에 누워 있다. 명순이는 확실히 꿈이라 하였다. 그래서 눈을 다시 감고서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이러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몸둥이는 남성의 완강한 팔과 다리로 결박되여 있었다.
명순이는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너서 몸부림을 치고 일어나려고 버딩키며
“아 이 더러운 놈! 악마 같은 놈”
이렇게 부르짖고 자리에서 밀어낮아 곤하게 잠을 자는 줄 알았던 창선의 철퇴같은 팔과 다리가 번개갵이 움직이더니 명순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고 말았다. 명순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반항하였다. 그러나 청선이는 한번 움킨 고기를 놓아줄리가 만무하였다.
“명순씨 벌써 틀렸읍니다. 지금은 반항하기에는 너무도 때가 늦었읍니다. 당신을 이미……”
이미! 라는 말을 들은 명순이는 과연 자기의 백옥같은 몸이 이놈의 제물이 되었떤 것을 꺠달았다. 그말은 자기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는 말이 아닌가?
“무에? 이미? 라니 이짐승같은 놈아 와라 이놈아 어쩌자고 이 모양을……”
그러나 명순이는 음성을 높이지는 못하였다. 옆방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깨인다면 더욱 욕만 당할 것인 까닭이었다.
창선이라는 놈은 명순의 그 고운 육체를 놀수는 없었다. 그는 두번째 습격 을하려고 하였다. 명순이는 둑을 힘을 다하고 반항하였으나 굶주린 사자와 같이 정욕의 아가리를 버리고 덤벼드는 창선의 침을 이기기에는 너무도 약하였다. 명순이는 아침 아홉시가 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었다. 생리적으로 일어나는 고통도 고통이려니와 처녀로서의 파멸을 당한 고통과 실망은 컸었다.
명순이는 어저께까지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달라진 것을 느끼었다.
“아! 악마 무서운 악마 나는 그 독수에 걸리고 말었고나”
이렇게 탄식을 하였으나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벌써 지나간 일이었다. 옛날 당하였던 그고통쯤이야 지금에 와서는 문제도 안되었다. 명순이는 다기의 손을 깨물었다. 머리를 잡아뜯어도 보았다. 가슴을 찢어도 보았다. 그러나 가령 한번 다러워진 물건은 다시 씻으면 고만이라하더라도 파멸된 자기의 정조는 어찌 하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완전히 자기는 순결한 처녀의 경지를 멀리 떠난 여자가 되고 말았다. 옆 방에 아무도 없다면 목을 놓아 울고도 싶었다. 명순이는 사막과 같이 광막한 들로 끝 없이 가고 싶었다.
“더러운 년!”
자기가 자기에게 이렇게 꾸짖었을 때엔 그러면 남들은 얼마나 자기를 비웃으랴 하였다. 그러나 어찌 하여 자기가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명순이는 광명한 햇빛도 자기에게는 비웃는 것 같았을 뿐이다.
“아! 어디로 갈까 이더러운 몸둥이를 가지고 어지로 갈까”
명순이는 앞 길이 아득하였다. 세상의 삼라만상이 이제와서는 자기를 기쁘게 할 것이 아니인것 샅았다.
명순이는 그 날 하루 종일토록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않았다. 왼종일 눈을 멍하니 뜨고 들어누워서 갈사록 암흑한 자기의 앞길을 내여다 보고 있었다.
오늘이 자기에게는 마지막 날 같고 세상은 이제 끝장이 난 것도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도 ‘일어나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나’ 이렇게 부르짖고는 도루 누웠던 것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자 시커먼 어두움이 만월대로부터 슬금슬금 기여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한 밤을 지내여도 바밤은 자지 않고 기승을 떨며 분다. 천지가 뒤집힐 듯이 ‘쏴아쏴아’ ‘으르렁 으르렁’ 소리를 지르며 무엇이고 때려누일듯이 스치여 가는 바람 소리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 이 무서운 소리들이 명순에게는 오히려 통쾌하였다.
“불어라 불어라 불대로 불어라 집도 날리고 나무도 꺽어 뉘고 산도 무너지도록 불어라 천지가 뒤집히도록 불어라” 하며 명순이는 부르짖었다.
어두움는 조수와 같이 몰려온다. 명순이를 망쳐놓은 어둠 명순이는 이 밤이 방안을 습격하여 올때 창선이라는 놈이 무서운 마귀의 그림자와 같이 덤벼드는 것 같아 무서운 몸을 일으켜 전기들 시우치를 틀어 놓았다. 그러나 이제도 캄캄한 문 밖에 그 놈이 서서 자기의 잠들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명순이는 만일 그 놈이 이 번에 또 오면 그놈의 목을 꼭 눌러 죽여버리겠따고 두 손을 힘있게 주고 있었다.
“웨 내가 어저께 저녁에 그놈을 칼로라도 푹 찔러죽이지 못했는가”
“동무의 오빠라고 태산 같이 믿은 것이 잘못이지―― 굴 마시는 불량배인 줄을 알고도――”
이렇게 후회도 하여 보았으나 그것들은 모두가 말 잃고 오양간 고치기라는 격언과 같은 일이었다.
명순이는 앞길을 생각하니 할수록 아득할 뿐이었다.
“이 더러운 몸을 가지고어떻게 살어갈까”
“철하씨가 감옥에서 나온다면 무슨 면목으로 대할까”
이러한 고밍이 새로히 일어났다.
만일에 철하가 자기의 추한 행동을 아는 날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를 차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였다. 그렇다고 철하를 속여서 자기의 추한 행동을 어디까지든지 비밀을 지킬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명순의 양심이 용서하지 않았다. 서로 속이는 사랑은 언제든지 파멸이 되는 것이라고 명순이는 생각하였다.
“허무다 세상은 허무다”
명순이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철하마저 차 버릴 것을 생각하니 세상에 바랄것이 그 무엇이 있으랴 철하를 위하여 모든 괴로움을 참어가며 오늘 까지 나려온 것이 모두가 허사가 되고 말지않었는가?”
“철하 그사람은 순결한 사람이다. 그사람을 속여서 결혼을 하다니…… 참아 못할 일이다”
명순의 태도는 냉정하게 되었다.
“좋다 되는 대로 그렇다 되는대로 살어가자”
세상의허무를 느끼는 명순이는 그보다도 처녀의 아름다운 ‘에덴’ 에서 쫒겨난 명순이는 바람이 부는대로 물결치는대로 세상을 지내가려고 하였다. 그 외에는 별 수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명순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도 괴롭지 않았다. 도리어 그 입술에서는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은 교수대에 오르는 죄인의 허황한 웃음에서 지내지 못하였다 그 웃음에는 쌀쌀한 찬 기운이 돌 뿐이었다. 인생으로서의 파멸을 느끼는 웃음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 잠이 깨인 명순이는 지내간 밤 꿈을 잊을 수가 없었다. 현실보다 더 똑똑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명순이가 깊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니까 그곳에 뜻하지 않았던 철하가 높은 바위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명순이는 반가워서 두 손을 들고 바위위를 바라보며 ‘철하씨’ ‘철하씨’ 불러보았으나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어떠한 여자와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명순이는 그 여자를 똑똑이 바라보니 그것은 연순이었다. 연순이는 철하의 품에 안겨서 두 사람이 자지러지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을 멀거니 바라보고 섯던 명순이는 ‘아! 벌써 저렇게 되었던가’ 이렇게 부르짖고는 땅바닥에 쓰러져 울었다.
목을 놓아 마음껏 울었다. 그러나 바위에서는 그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내려 올 뿐이었다. 명순이는 울기에도 부끄러웠다. 울던 울음을 그치고 발을 돌려 그곳을 내려 오려고 할때 창선이가 어느틈엔가 길을 가로 막고 섰는 것이었다. 명순이는 창선이를 만나자 가슴에 춤었던 칼을 빼어들고 그 놈의 가슴을 찌르려고 덤벼들었다. 악을 쓰고 덤벼드는 바람에 명순이는 잠이 깨었다.
잠 깨인 명순의 왼몸둥이에서는 식은 땀이 쭉 흘렀다. 명순이는 그 꿈을 꾸고 난 뒤로 가슴이 더욱 쓰리었다. ‘어쩌면 꿈이 그렇게도 신통하게 들어맞일까’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고는 그끔을 닞어 버리려고 하였다. 철하의 연순이가 노던 꿀이 논에 아릿아릿하여 그 환영이 보기가 싫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암만 잊어버리려고 하여도 그 꿈을 닞으려 하면 할수록 그 환영이 역역히 나타나서 그는 미칠 것도 같았다.
명순이는 그 꿈을 한갖 꿈으로만 돌리지 않았다. 이년 후이면 반듯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깨끗한 처녀가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니 자기는 연순의 발 앞에 가서 서지도 못할 그야말로 천양의 차가 있는 더러운 몸이었다.
명순이는 오후 두시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격한 고통을 겪은 뒤 이틀 동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였으므로 그렇게 혈색이 좋던 살결도 아편쟁이 모양으로 누렇게 들떴다. 그리고 일어나 앉아보니 현기증이 나서 집안이 핑핑 돌아가는 것 같았다.
명순이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정신에 이상이 생긴 사람 모양으로 혼자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았다.
오후 세시반쯤 되어서 여관 뽀이가 숙박료 계산서를 가지고 들어왔다. 명순이는 그 계산서를 받아 보니 사일간 숙박료가 이십원이었다. 그러나 명순의 주머니에는 동전 한푼도 없었거니와 숙박료가 이렇게 비싸고 그 합계가 많을 줄은 몰랐다. 명순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계산서를 받아 들고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손님이 나가겠다는 말도 하기 전에 계산서를 가저 오는 것이 무례하지 않소?”
하며 눈을 똑 바로 뜨고는 불쾌한 어조로 말하였다.
뽀이는 두손을 맞쥐고는 머리를 꿉벅하며
“예 모르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것도 당연합니다만 이 여관 규칙이 손님이 가시거나 안 가시거나 사흘동안 한번씩 계산을 맞추게 되었읍니다. 에 벌써 어저께 와서 뵈었을 터인데 손님께서 편하지 않으시다고 해서 오지 못하였읍니다.”
이렇게 겸손한 말로 능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명순이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히어 무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다만 ‘별 여관을 다 보았다’ 하고 속으로 뇌였지만 별도리가 없으니 기가 막히었다.
뽀이는 계산을 맞쳐 주기만 기다리고서 괴상한 눈찌로 명순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관법이 그렇다니 할 수가 없소마는 며칠 후에 함께 계산하여 드리겠다고 가서 잘 말하여 주오”
명순이는 휘뜩 조그만 꾀가 생기자 이렇게 말하였다.
“미안한 말씀이오나 저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읍니다. 사정이 그러시면 직접 사무실에가 말씀을 해 보시지오”
뽀이는 말을 맞추고는 나가버렸다.
명순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또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장 욕을 ᄇ고 길로 내여쫒기든지 송사를 만나 붙잡혀 끌려가는 망신을 당해도 별도리가 없는데는 그 반동으로 대답해졌다.
“어찌 되나 두고보자 될대로 되겠지”
명순이는 이렇게 부르짖고 자리에 쓸어져누웠다. 그러나 언제든지 이 여관 방구석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명순이는 위선 사무실에 가서 숙박료부터 연기해 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후에는 어떻게 하더라도 임시변통이라도 해놓아야 하루를 있더라도 안심을 하고 있게 되리라 하였다.
명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을 바로 고쳐입은 다음 문을 열고 나섰다. 며칠동안 바깥에상을 못본 명순이는 몸이 핑핑 돌아가는 듯하여 비틀거린다.
회뚱거리는 다리를 움직이여 조심조심히 걸어서 여관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무실 안에는 난로를 에워싸고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떠들고 있다. 명순이는 서사가 내여놓는 의자에 쓸어질 듯이 앉았다. 방안 사람들의 시선은 명순에게로 몰렸다. 명순이는 그 사람들이 모두가 짐승 같아서 호랑이를 대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다. 명순이는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 없이 앉았다.
“어디 편ᄒ지 않으십니까?”
서사가 짐즛 친절한 듯이 음성을 가다듬고서 이렇게 묻는다.
“예 감기에 걸린 모양 같어요”
명순이는 머리를 숙인대로 말만 건네였다. 사람들이 없었으면 할말을 하고 얼른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곁에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고 있으니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느 때든지 이렇게 그대로 앉아 있기도 승거운일 같았다. 그 사람들은 땅바닥에 박힌 목둑개비와 같이 꿈적도 아니하고 추잡한 말을 주고받고 하면서 제 딴에는 의미 깊은 웃음을 명순이에게 보내고 있었다.
명순이는 그 사람들이 좀처럼 쉬웁게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용기를 내여 치부를 하고 있는 서사를 보고 입을 열었다.
“저 숙박료 말입니다 며칠만 참어주실 수 없어요?”
서하는 붓대를 멈추고 눈쌀을 찌프리고 무슨 행각을 하는 듯하다가
“얼마나 더 계시겠는지요?”
하며 없는 점잔을 빼고 고쳐 앉는다.
“아마도 삼사일 더 있어야 하겠는데요”
이렇게 대답하는 명순이는 무슨 다른 수가 있어서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되는대로 대답만 하고 승락만 하여주면 이 사무실을 나가겠다는 그 이상 생각한 것이 없었다.
삼사일이고 며칠이고 있다가 나가겠다든지― 돈이 그 동안 하늘에서 내리고 땅에서 솟는다든지 그것들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다만 흉악한 사람들이 둘어앉은 그 곳을 피하여 나갈 생각으로 무턱대고 한 말이었다.
“그러면 그 때에 한꺼번에 꼭 회계하시도록 하서야 합니다”
서사는 관대하다는 듯하면서도 말끝을 힘주어 한번 얼러보는 듯이 쾌연히 승락을 한다.
명순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맞추고 나가려고 할 지음 뒤에서 팔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나이들 틈에서 말 참예를 하고 있던 여자였다.
“명순씨가 아니세요?”
그 여자는 이렇게 묻는 것이다.
명순이는 빈총맞은 사람 모양으로 멍하니 꼼짝도 못하고 섰다가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몸을 도리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의 낯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보던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신지 얼른 기억이 안납니다”
명순이는 이렇게 말하고도 찾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웨 모르시겠어요 월춘(月春)이를――”
명순이는 월춘이라는 말에 정신을 차려 자서히 살펴보니 학교시대에 한 기숙사를 한방에서 일년이나 지낸 일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예, 알겠읍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읍니까? 알아보기 어렵도록 퍽 변하셨군요”
월춘이는 명순이가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을 보고 냉대를 하는 것이 좀 불쾌하였다. 그러나 명순의 태도를 보니 큰 불안 중에 있다는 것을 경험이 많은 월춘이로서는 알아 차렸다. 그리고 명순이가 이러한 마굴과 같은 여관에 들게 된것을 퍽 의아하게 여겼다.
“이 골으로 오신지가 오래 되었읍니까?”
월춘이는 명순의 괴로워하는 모양을 알면서도 짐즛 물어보았다.
“삼사일 됩니다. 오호실에 있으니 틈이 있으면 놀러 오세요”
하고 명순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사무실을 나왔다. 명순이가 자기 방에 돌아온지 오분도 못되여 월춘이가 찾아 왔다. 학교 새대에는 고학을 하다 싶이 하여 고생하던 월춘이가 그 차림차림이라든지 모든것이 훌륭한 귀부인풍이 되었다.
겂 많은 비단옷으로 몸을 감고 순금패물들을 지닌 것을 보면 왼몸을 황금으로 감은 듯하여 생활이 넉넉하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더욱이 명순의 눈을 놀내게 하는 것은 월춘의 입은 외투와 흰털 목도리었다. 월춘이는 자리에 앉으며
“혼자 오섰우”
은근한 어조로 묻는다.
“볼일이 있어서”
명순이는 그의 묻는 말과는 딴판으로 어리벙하게 넘기려고 하였다. 무에라고 대답을 하여야 좋을지 몰랐다.
“월춘씨는 지금 개성에서 사시나요”
“나 말이오 나는 그야말로 부평초나 다름없지오 오늘은 개성, 내일은 평양, 경성, 대구, 부산 이렇게 바람 부는대로 떠돌아다니는 몸이지요”
명순이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다. 태연한 기색으로 서슴지 않고 하는 그 말의 뜻을 생각해 낼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섰읍니까”
“결혼? 그까짓것을 할 필요가 있나요 한 남자밑에서 일생을 종노릇을 할 연이 어디 있겠읍니까”
월춘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담하게 이렇게 주서넘긴다.
명순이는 아직도 결혼을 안 하고 그와 같이 호사를 하고 다니는 것과 그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그의 직업이 이상한 직업이라는 것을 생각해 낼 수가 있었다.
“명순씨 웨 이러한 여관에를 들었어요?”
월춘이는 이상한 눈초리로 명순이를 본다.
“이러한 여관이라니오 여관이나까 들었지요”
명순이는 무관심한 듯이 대답을 하였다.
“이 여관이 어떠한 여관인지 알우!”
월춘이는 말을 맞추고 명순이를 여전히 우심히 바라본다.
“손님이 드는 여관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대답하는 명순이 자신도 우스웠다. 그리고 이전 학교에 있을 때에는 ‘얘’ ‘쟤’ 하며 기롱을 하고 허물없이 놀던 것이 지금은 서로 존경하는 언사로 점잔히 대하게 된 것이 우스웠다. 명순이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던 것이 월춘의 정체를 아상하게 의심하게 되자 그의 말에 무한한 흥미를 느끼였고 자기의 앞길에 상담역(相談役)이나 될까 하여 여러 가지 말을 물어도 보고 듣고도 싶었다.
“글쎄 여관이라면 손님들이 드는 여관이겠지요 그러나 이 여관을 명순씨와 같은 이가 들기에는 너무도 온당하지 못한 여관인데요”
명순이는 이 말을 듣고야 ‘과연 그런 것이라’ 고 확실히 깨달았다. 자기의 생각과 틀림없는 마굴이라는 것을………
그러나 명순이는 모든 것을 모르는체 하고서
“온당하지 못한 여관!”
하고 놀라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렴요 온당하지 못한 여관이고 말구요! 이 여관으로 오는 놈들은 돈푼이나 있으니까 젊은 여자를 차고는 이 여관으로 모여든답니다. 그 뿐입니까 조선부호라고 자칭하는 놈들은 이곳에 모여서 밤낮 도박으로 세월을 보낸답니다. 그러므로 당신 같은 젊은 여자는 고사하고 어지간한 남자들도 이 여관에 들기를 꺼려한 답니다. 젊은 여자가 이 여관출입만 하면 이집 손님들은 물론이려니와 바깥 사람들까지도 고등밀매음을 하는 방탕한 여자로 압니다”
월춘이는 이렇게 이 여관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내가 아까 사무실에서 당신을 처음 만나게 되자 얼른 인사 못한 것도 설마 명순씨야 그렇게 될여자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인사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인 줄 알었을 때에는 마음이 이상하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당신이 돌아가신 다음 서사를 보고‘씩―’ 인가고 물었더니 서사가 ‘씩―’ 이 아니라고 하므로 당신께 이 여관의 내용이나 알려줄 겸 들어온길입니다”
“‘씩―’이라니요”
명순이는 이 ‘씩―’ 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 참 모르실 것입니다. 그것을 그들끼리 쓰는 암호이니까요”
“‘씩―’ 이라는 말은 밀매음녀라는 말이랍니다”
명순이는 무시무시한 이 여관의 내용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미 더러워진 몸이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오히려 월춘의 말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명순이는 좀더 사회의 암흑면을 알고 싶어 자기와 같이 된 사람의이야기도 해주었으면 하였다. 그러나 월푼의 입에서는 버림을 받았다는 여자의 이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월춘씨는 참 잘 아시는군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우”
“내가 웨 모르겠우 그런 것을 아러어 내는 것이 나의 직업인데-― 그런 것을 알어내면 알어낼 수록 나의 수입은 많어지니까요”
하며 말하는 월춘이는 얼굴에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을 띠지 않고 천연한 태도였다.
명순이는 속으로
“어쩌면 저렇게 자기의 비밀을 노골로 말할까. 부끄러운 기색이 하나도 없이 나는 듣기만 해도 얼굴이 홧홧해지는데”
이렇게 생각하고 월춘이를 시상하게 치어다 보았다. 월춘이는 명순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이
“명순씨는 이상하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까짓것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조?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그것은 벌써 옛날의 한가한 때의 콧노래지요, 명순씨는 아직도 옛날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앞으로 몇날이 아니되어 정조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될 때가 올 것이지요 정조 그것이 노예(奴隸) 라는 말과 같이 느끼어질 때가 반듯이 올 것입니다”
극도의 고민에 머리를 앓던 명순이는 이 말을 들으니 얼마의 위안이 되어다. 그러나 전일 같으면 그런 말을 바로 앉아 듣지도 안 할 명순이가 그 말에 흥미를 갖고 속으로 못내 감탄까지 하게 된 것은 이미 어지러운 세상에 첫수란을 당한 까닭이였다.
“세상에는 이러하 마굴이 많습니까?”
명순이는 추악해 가는 세상의 암흑면을 좀 더 자서히 알고 싶었다.
“얼마든지 있지요 만일 없다면 나와 같은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굶어죽을 것입니다. 경성을 비롯하여 조신의 주요도시에는 없는 것이 없지요 그 외에 일본, 중국, 구미 각국에도 있지마는 그것은 우리의 영업구역이 아니므로 쑥 빼여놓고 말합시다. 돈 있는 놈들의 심리야 참으로 이상하지요 도박을 하여도 한 곳에서 하나요? 오늘은 평양, 내일은 경성, 이렇게 돌아다니며 논답니다. 어떤 놈들은기차가 늦다고 하여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놈도 보았어요”
월춘이는 ‘핸드빽’에서 값진 담배를 끄내여 한 목음 힘차게 빨고 나서
“진고개 상인과 종로 상인들 간에 경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사이에도 영업경쟁이 있지요. 우리들에게 경쟁이 많은 것 만치 우리를 사려고 하는 놈들 간에도 경쟁이 맹렬하답니다. 여기에서 때로는 우리들의 값이 올라가기도 하고 낮어가기도 합니다”
이 말에 명순이는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세상이 되어가는 꼴이 한심도 하였다. 명순이는 그들보다 아직껏 높은 자리에 있는 것 같아야 안심이 되었으나 그러나 자기보다도 더 높은 곳에 이는 연순이를 생각할 때에는 모든게 낙망이었다.
월춘이는 명순이를 보고
“명순씨는 아직 결혼을 안했읍니까”
하고 상그레 웃어보였다.
“아직 결혼을 안 했읍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 말을 우습게 들었겠지요! 한번 결혼하여 보시면 알 것입니다. 지금은 처녀이니까 실례의 말씀 같습니다마는 당신을 위하여 애 태우는 청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한번 결혼만 하게 되는 날에는 모든 청년들은 당신을 평범한 여자로 대합니다. 당신을 지극히 사랑하던 남편조차 결혼후 일년도 못되여 당신께 대하여 권태를 느끼게 됩니다. 남자의 마음이라는 것이 그러한 것이니까요”
월춘이는 한숨을 길게 쉬고나서
“나도 학교에서 나오자 나를 열렬히 사랑하여 주던 사람과 결혼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그 결혼을 일년도 채 못되어 이혼이 되었읍니다”
명순이는 선배의 경험담을 열심으로 듣고 앉았다.
“처음에는 멸중으로 사랑하여주던 그가 차차 사랑의 열이 식어가며 나중에는 다른 여자와 사랑하고 있겠지요. 그래 나는 그 집으로부터 뛰여 나왔읍니다. 니는 그 집으로 종노릇을 하러 간 것은 아니니까요”
“웨 그러면 처음에 그러한 남자에게로 시집을 갔읍디까”
“누가 여자만 간사하다고 합데까? 남자는 여자이상으로 간사해요 나는 그사람의 달콤한 말에 넘어갔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우습기도 해요 그 간사한 행동 남을 속여먹는 달콤한 말――”
“그러면 실련을 하고 타락이 된 세음인가요?”
명순이는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을 듣고 읹았던 월춘이는 무표정한 낯으로 한번 웃고나서
“실련? 타락? 옳아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도 하여 봤지요 창자가 끊어지도록 울어도 보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입니다. 실련 그말은 무엇을 의미한 것이며 타락? 그것은 어떤 것을 가르친 말입니까? 그 말들이 어디서 나온 말인 줄 압니까? 그러한 말들은 남자라는 옥심쟁이들을 본위로 한 말들입니다. 여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들입니다. 남자들은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하여 여자를 사랑하다가도 실증이 나면 헌신짝 같이 내여바립니다. 그러면 우리 여자들은 실련을 하였다고 울고 불며 애통을 하지요 그것이 약한 마음이야요 원수를 위하여 우는 년들은 어리석은 년들이지요 우리는 당연히 그들에게 복수를 하여야 됩니다. 남자들을 골려 주어야 되지요 우리도 남자들이 여러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남자를 사랑하는 체 하고서 남자들을 울려도 주어야돼요”
월춘이는 층분된 어조로 연설이나 하 듯이 장황히 늘어 놓는다.
“명순씨 당신을 아직 처녀지요 당신은 당신의 정조라는 것을 중히 여기면 여길수록 남자들에게 충실한 종이 될 것을 알고 있읍니까? 당신이 정조를 중히 여기면 여길수록 당신에게 는 비애 밖에 닥처오는게 없읍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명순씨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선전하는 말은 아니올시다. 다만 내가 지내여 온 짧막한 과거에 비추어 보면 그렇가는 말입니다”
명순이는 월춘의 말이 모두다 그럴듯하게 생각이 되었다.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정조 그것 때문이었다. 월춘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이다지도 괴로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월춘씨 그러면 세상에서는 웨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않는 것을 비난합니까? 더러운 년, 음탕한 년, 이러한 욕들을 합니까?”
“그것이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영화를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가며 노동을 하는 것이 사회적 결함이라고 하면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롱락하고 있으면서도 한 여자가 여러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비난을 한다면 그것도 또한 사회적 결함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무엇하여도 정조에 대하여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날이라야 여자를 자기들의 부속물로 하는 남자들의 손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는 날일 것입니다”
월춘이는 큰 진리나 발견한 것 같이 힘 있게 부르짖었다.
명순이는 월춘이와 같이 마음이 강하지는 못하였다. 월춘이가 하는 말의 어느것 하나도 감격하지 않은게 없었다. 그러나 마음 어느 구석한 편에서는 ‘월춘이도 이미 틀렸고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만일 월춘의게 철하와 같은 남편이 있었다면 저렇게 되지는 않었을 것이다. 철하는 모든 남자들보다 탁월한 남자다. 사랑하든 여자를 차버릴 그러한 간사한 남자는 아니다”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고나니 이제까지 월춘의 말에 다소의 의안이나마 얻었던 것이 봄눈 사라지듯 자최도 남기지 않고 다시금 마음에 고통이 일어났다.
월춘이가 돌아간 다음에도 명순이는 여러가지 고민으로 가슴을 태웠다. ‘어떻게 하면 앞길을 개척할까’ ‘어떻게 하면 밝은 빛을 보고 살까’ 이러한 생각을 하였으나 아무런 방책도 서지못하였다. 다만 철하와 자기 사이가 몇천리 몇만리 다 떨어져 가는 것 같을 뿐이었다. 그것이 마치 죽은 사람과 살고있는 사람과 같은 사이가 있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썩어가는 몸이로구나 다시 소생을 못할 영원이 썩어가는 몸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어머니가 그러웠다. 자기의 썩어가는 것을 안아줄 사람을 어머니 밖에는 없을 것을 알았다. 철하도 자기의 이 썩어가는 내음새를 맡는다면 코를 찡그리고 멀리 달아날 것을 알았다.
명순이는 세상이 무서웠다. 자기도 월춘이와 같이 타락이 될 것 같다.
“어머니에게로 가자”
“악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았지만 명순이는 자기뜻조차 자유로 할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다. 여관의 밥 값을 치루어 주지 않고는 이 여관을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흘 동안의 연기는 하여 놓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졸지에 얻을 방도가 없었다. 얻을 희망조차 없었다. 그런고로 명순이는 자기의 신변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밥값은 높아만 갈 것이고 빈손만 쥐고 있으려니 앞길이 아득하며 모든 자유를 잃어버린 것 같다.
명순이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사흘안으로 밥값을 치루려고 밤이 깊도록 곰곰 생각을 하여 보았다. 여관 주인에게서 졸림을 받을 것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자유를 얻으려고 별별 생각을 다하며 돈을 주선할 연구를 하였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취직을 하는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창선이가 주선을 하여준 정미공장으로 찾아가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자기 몸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헤아릴 것이 없었다. 밥값을 치루지 못하는 날에는 자기의 몸이 마굴에 떨어지지 않게만 되면 그만이라 하였다.
몸이 자유롭게 될 때 까지는 힘을 다하여 활동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명순이는 몇날 동안 못하여 본 화장을 말숙히 하고서 여관문 밖을 나서서 동본정에 있는 정미공장을 찾아 갔다.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선 명순이는 무에라고 말문을 열었으면 좋을는지 몰라 한참동안 머뭇머뭇하다가 용기를 내여 입을 열었다.
“이 회사에서 여사무원을 모집한 일이 있읍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 말을 들은 사무원들은 이상한 눈초리로 명순이를 치어다보기도 하고 저이들 끼리 서로 바라보고 눈짓도 하고 그중에 제일 늙수그러한 지배인이나 사장 비슷한 사람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그런 일이 없소”
하고 잡아뗀다.
명순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대로 문을 열고 나왔다. 명순이가 사무실 밖을 나오자마자 사무실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일어났다.
“모욕이다. 그 놈은 확실히 나라는 사람을 산장사를 지내고 말었고나”
명순이는 이렇게 입 속으로 부르짖으며 큰 길로 나섰다. 정미공장에 취직을 시키겠다는 것도 멀정한 거짓말이었다.
취직을 시키겠다고 새성으로 데라고 온 것도 그 놈이 자기의 고깃덩이릉 노리고서 그 야심을 태우려돈 수단이 었음을 깨달았다.
명순이는 가는 곳마다 모욕이고 비웃는 사람들만 있는 것을 생각하면 창선이라는 놈의 간을 빼여서 질겅질겅 씹어도 시원ᄒ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서인지 그 놈을 한번 만나기만 하면 칼로― 칼이 없으면 손으로라도 그 놈의 가죽이라도 벗기리라 하였다.
힘없이 여관으로 돌아온 명순이는 방안에 쓸어질 듯이 주저앉았다. 정미소에 가서 당한 모욕을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참으로 자기는 무시무시한 구렁이에 빠지는 것 같아서 두려웁기도 하고 되어가는 꼴이 퍽도 우스웠다.
인제는 별 수가 없이 자기 몸을 팔아서 밥값을 물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 되었다.
세상은 인정도 도덕도 없이 돈에 저주를 받고 있는 자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명순이는 자기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하여도 가엾다고 몇십원의 돈을 턱없이 던져줄 사람이 있을리는 만무하였다. 이제와서 명순이는 할 수 없이 되어가는 대로 살아보기로 하였다. 하다못해 창기로 팔리든지 예기로 팔리든지 종으로 팔리든지 아무렇게나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몸이니 잘 되려고 애를 쓴들 때는 이미 늦어진지 오래다.
밥값을 물기로 약속한 날이 닥처왔다. 명순이는 속으로 오늘이 자기의 운명이 좌우될 날이라고 생가가하고 나니 가슴이 떨리고 슬펐다. 문밖에서 발자최 소리만 나면 법값 독촉을 오는 것 같아서 마음이 초조하였다.
명순이가 예기한 바와 조금도 틀림없이 오전때가 되어서 뽀이가 방무능ᄅ 열었다.
“사무실에서 오시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방문을 닫는다.
명순이는 까아득한 정신으로 사무실로 갔다. 다행이도 사무실 안에는 주인영감과 서사 두사람 밖에 없었다. 뚱뚱하게 생긴 주인 영감이 둔탁한 목소리로
“숙박료가 어찌 되었읍니까 오늘 되신다고 하섰으니 물론 되었겠지요”
하며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린다.
명순이는 그저 아뜩하여 대답할 말이 없이 점점 내려가는 머리를 숙이고 앉았을 뿐이다.
“오늘도 또 못되었읍니까”
“…………………”
“오늘도 못되었다는 말이오 대답을 좀 하시구료”
주인 영감은 성이 벌컥 나서 명순의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와서 닥아 앉는다.
“아니 숙박료도 물지 않고 또 하는 일도 없이 여관에 멀거니 공밥만 먹고 있으면 어찌 하오 우리도 돈 때문에 이 노릇을 하는 것이니 백사불고하고 오늘은 어김없이 치루어야 되오”
하고 그는 난로에 담뱃대를 탁탁 떨며 침을 탁 배앝는다.
명순이는 주인으로서 손님의게 대하는 행공이 너무도 쌍스러우므로 속으로 불쾌한 생각이 났지만 빚진 죄인이라 한 마디의 대답도 못하고 앉았다.
“말을 좀 하시오 우리도 언제까지든지 그대로 있을수 있겠오”
주인이 성화같이 재촉을 하므로 명순이는
“글쎄올시다. 돈이 어디서 올 곳이 있는데 오지 않어서 무엇이라고 할 말이 있어야지요”
하며 되는 대로 말하였다.
“돈이 아니오면 안 치루시겠다는 말이오 그까짓 어디서 오고 안 오는 것은 상관할 것이 무어란 말요 오늘 꼭 치루시오”
주인이 너무도 으르딱딱어리는 바람에 명순이도 감정이 났다.
“없는 돈을 당장에 내라니 어떻게 하란 말요”
한번 톡 쏘아보았다.
영감은 노기가 충천하여 펄펄 뛰며
“없다니 없으면 웨 여관에를 들었느냐 말이야 어서 밥값을 내! 오늘 치루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좋지 못한 일이 생길터이니”
하며 을러댄다.
“없소 할대로 해봐요”
명순이도 맞장단을 첬다.
“무에 어째고 어째? 할대로 하라니? 없다면 그래로 있을 것이지 건방진 년 같으니――”
명순이도 성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돈! 돈이란 그 놈은 사나운 기세로 명순이를 잡아삼킬 듯이 욱박한다. 생전 처음 당하는 학대, 모욕, 옥설, 멸시에 명순이는 눈물이 폭포와 같이 흘렀다.
“여보 돈이면 돈이겠지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욕하는 법이 어디있우 당신은 자식들이 없소”
울음반 말반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돈만 아는 주인에게는 이러한 말들이 아무소용도 없었다.
“잔소리는 그만하고 밥값을 내야지 돈없이 여관에 드는 당돌한 계집이 어디 있느냔 말야 창선이란 그까짓 거지 같은 놈을 따라다니면 돈을 커녕 엽전이라도 생길 줄 아나”
명순이는 이 말을 듣고나니 정신이 어찔하여 쓰러질 것 같았다. 더러운 놈―― 그 창선이라는 놈과 자기의 비밀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더니 이 여관주인이 어디서인지 알고 이렇게 떠들어 놓니 명순이는 그 놈의 영감장이가 자기를 깔보고 욱박지르는 이유도 알았다.
만일 자기가 단정한 여자라면 밥값을 받어라도 정당하게 받을 것인데 방창한 여자로 보고서 이렇게 대하니 그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명순이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자기방에 돌아와서 사모치는 분노에 못이기여 그만 쓸어져 울었다.
그날 저녁 때가 되어도 저녁밥을 가져오지 않는다. 너무도 가혹한 처치에 치가 떨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