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서(樂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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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매번 『서경(書經)』 「우서(虞書)」를 읽을 때마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경계하고 격려하는 대목에 이르면 오직 그 안위를 생각했고, 자신이 팔 다리처럼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들이 불량하여 만사가 허무하게 무너졌을 때에 일찍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주(周)나라 성왕(成王)은 관채(管叔)와 채숙(蔡叔)의 난으로 인해 『주송(周頌)』 「소비(小毖)」편을 지어 스스로 환난을 다스리지 못한 책임을 자책했고, 나라에 재난을 가져오게 한 것을 슬퍼했다. 이는 전전긍긍하는 자세로 두려워하며 시작과 끝을 잘 마무리하고 했던 것이 아닌가?

군자는 빈궁하다고 하여 덕(德)을 닦지 않거나 부유하다고 하여 예(禮)를 버리지 않으며 몸이 편안할 때에는 처음의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며, 안락할 때는 처음에 힘겹게 시작했던 것을 생각한다. 기름진 연못에서 목욕을 하더라도 근면함과 지난날의 고초를 노래로 만들어 읊었으니, 큰 덕(德)을 지니지 아니하면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시경』 「모씨전(毛氏傳)」에 이르기를 ‘정치가 안정되고 공적을 성취하면 예(禮)와 악(樂)이 저절로 흥하게 된다.’라 했다. 천하 사람들의 도(道)가 더욱 깊어지면 그 덕이 더욱 지극해져서 음악 또한 더욱 달라지게 된다. 가득 찼을 때 덜어내지 않으면 넘치고, 넘칠 때 붙잡아주지 않으면 뒤집어지게 된다. 무릇 음악을 만든 까닭은 음악으로써 사람들의 쾌락을 절제하기 위한 것이다.

군자는 겸손하게 물러나는 것으로써 예를 삼으며, 스스로 사욕을 덜어내고 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니 음악이란 이런 것이다. 지역마다 다르고 나라마다 특수하여 인정과 습속이 같지 않다. 때문에 널리 풍속을 채집하고 지방마다의 성률을 비교하여 음악을 만들어야지 시대의 폐단을 보충하고 풍속을 바꾸어 정치와 교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천자가 몸소 명당(明堂)에 나아가 감상할 뿐 아니라 만백성들이 사악하고 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씻고, 포만한 여부를 헤아리면서 본성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고로 『시경(詩經)』의 「아(雅)」, 「송(頌)」같은 음악을 들으면 백성들이 바르게 되고, 우렁차 격앙된 소리는 선비들의 마음을 격분하게 만들고,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노래를 들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음란해진다. 음악이 조화를 이루어 화합하는 경지에 이르면 날짐승이나 길짐승도 모두 감화를 받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가슴에 속에 오상(五常)을 품고, 좋고 싫음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다.

다스리는 도가 어지러워지자 정나라 음악이 흥기했고, 정나라와 이웃하고 있는 땅에 분봉을 받거나 세습 받은 명망(名望)있는 군주들도 서로 앞을 다투어 정나라의 음악을 서로 높이게 되었다. 공자(孔子)는 제(齊)나라에서 바친 여악(女樂)을 노(魯)나라에서 받아들인 일을 못 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비록 물러나서 음악을 바로잡고 세인들을 계도하고 오장(五章)의 악가를 지어 시정을 풍자했지만 결국 당시의 사람들을 감화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점차 음락이 쇠락해져 6국 시대가 되자 군왕들은 가무와 성색(聲色)에 깊이 미혹되어 스스로 헤어나지 못한 나머지 결국은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몸은 죽어 없어지고 종묘사직은 소멸되어 진(秦)나라에 병탄되고 말았다.

진나라 2세 황제는 특히 노래를 오락으로 삼았는데, 승상 이사(李斯)가 진언하여 간했다. “『시경』과 『상서』를 버리고 성색(聲色)에 탐닉하는 행위는 옛날 상나라 때 조이(祖伊)가 두려워했던 바입니다. [주왕(紂王)은] 작은 잘못이라도 쌓이면 재앙이 된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방자한 마음으로 날을 지새우며 향락에 젖었기 때문에 주왕은 망했던 것입니다.”

이에 조고(趙高)가 말했다.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의 음악은 각기 그 명칭이 다른데, 이는 피차간에 음악을 서로 계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위로는 조정에서부터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음악으로 환희를 느끼고 은근한 뜻을 융합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았더라면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마음이 서로 통하지 못하고, 은택은 아래의 백성들에까지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또한 한 시대의 풍습으로 그 시기에 알맞은 음악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화산(華山)의 녹이(騄耳)를 얻은 후에야 먼 길을 갈 수 있다고 합니까?” 2세 황제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겼다.

고조(高祖)가 고향 패현(沛縣)을 지나다가 ‘삼후지장(三侯之章)’이라는 시를 지어 동자들에게 따라 부르게 했다. 한 고조가 붕어하자 패현에서는 사시(四時)로 종묘에 제사를 올리고 노래와 함께 춤을 추게 하였다. 혜제(惠帝), 문제(文帝), 경제(景帝) 동안 아무것도 바꾸거나 더하지 않았고, 다만 악부(樂府)의 악공들로 항상 연습하여 옛 것을 익히게 했을 따름이었다.

지금의 황상(한 무제)께서 즉위하자 19장의 악곡을 지어 시중(侍中) 이연년(李延年)으로 하여금 차례대로 곡조를 붙이게 하고, 그를 협률도위(協律都尉)에 임명했다. 한 가지 경전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그 가사를 해석할 수 없었기에 오경(五經)의 전문가를 모두 소집해 서로 같이 강독을 통하여 익히게 한 뒤에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가사의 대부분은 참으로 전아(典雅)한 문장이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정월 상순(上旬) 신일(辛日)에 감천궁(甘泉宮)에서 태일신(太一神)에게 제서를 자냈는데, 날이 저물 무렵부터 시작해서 밤을 지세우고 날이 밝을 때에야 마쳤다. 이때는 통상적으로 유성(流星)이 제단 위를 지나갔다. 그래서 동남동녀(童男童女) 70명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봄에는 ‘청양(靑陽)’, 여름에는 ‘주명(朱明)’, 가을에는 ‘서호(西皞)’, 겨울에는 ‘현명(玄冥)’을 부르게 했다. 이 노래들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는 까닭에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다.

또 황상께서는 일찍이 악규수(渥洼水)에서 신마(神馬)를 얻자 다시 그 일을 위해서 태일지가(太一)의 노래는 지었다. 그 가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일신이 보내주셔서 천마(天馬)가 내려왔다네. 붉은 땀에 젖어서 그 땀방울로 땅까지 붉게 물들었구나! 거침없이 내달려 만 리를 뛰어넘으니, 오늘 누구와 짝을 할까? 용이라면 벗이 될 수 있겠지.”

후에 대원(大宛)을 정벌해 천리마를 얻었는데 말 이름을 포초(蒲梢)라고 짓고 다시 노래를 지었다. “천마가 왔도다, 서쪽 끝에서! 만리를 달려와 덕(德)이 있는 자에게 돌아왔다네. 신령스런 위엄을 계승하여 외국을 항복시키고, 사막을 넘어서 사방의 오랑캐가 복종시켰다네.”

그러자 중위(中尉) 급암(汲黯)이 진언했다. ‘무릇 제왕이 음악을 짓는 것은 위로는 조종을 뜻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억조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함인데, 지금 폐하께서 말을 얻으셨다 하여 시를 지어 노래를 부르고 종묘에서 연주하게 하시니, 선제(先帝)와 백성들이 어찌 그 음악을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황상은 아무 말도 안하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승상 공손홍(公孫弘)이 말했다. “급암은 성상의 만든 뜻을 비방했습니다. 멸족의 죄에 해당합니다.”

무릇 음(音)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외물(外物)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물의 감응을 받아 마음이 움직이면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되고, 그 소리에 서로 상응함으로써 변화가 생기게 되고, 변화가 일정한 방법과 규칙을 갖추게 되면 음(音)이라고 일컫게 되는 것이다.

음을 박자에 맞추어 악기를 연주하고, 간척(干戚)과 우모(羽旄) 등을 듣고 춤을 추면 이를 악(樂)이라고 일컫게 되는 것이다. 악이란 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그 근본은 사람의 마음이 외물에 의해 감동을 받아서 그리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슬픈 마음에 감응하면 그 소리가 다급하며 슬프고, 즐거운 감정에 감응하면 그 소리가 기꺼워하며 느리고, 희열의 감정에 감응하면 그 소리가 탁 트이고 경쾌하다. 분노하는 감정에 감응하면 그 소리가 거칠고 사나우며, 경애하는 감정에 감응하면 그 소리가 곧고 장중하며, 사랑의 감정에 감응하면 그 소리가 온화하고 부드럽다.

이 여섯 가지는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외물로부터 감동을 느낀 후에 움직인 것이다. 이 때문에 옛날의 선왕(先王)들은 그 감정을 일으키는 까닭을 중하게 여겼다. 고로 예절로써 사람들의 뜻을 이끌었고, 악(樂)으로써 사람들의 소리를 조화시켰으며, 정치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하나로 만들었으며, 형벌로써 사람들이 간사해지지 않게 방비했다.

예절과 음악, 형벌과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이니, 이것으로써 민심을 하나로 만들어 올바른 도리로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음(音)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직이면 소리로 나타나며, 그 소리에 일정한 문식을 가하게 되면 이를 음(音)이라 한다. 고로 치세의 음악은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 정치가 조화롭기 때문이다.

난세의 음악은 원망하는 마음으로 분노에 차 있으니, 그 정치가 어그러진 것을 나타내고 있다. 망국의 음악은 슬픔과 근심에 가득 차 있으니, 그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하다는 것이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성음(聲音)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宮)은 군자를 위한 것이고, 상(商)은 신하를 위한 것이며, 각(角)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치(緻)는 일을 위한 것이요, 우(羽)는 외물(外物)를 위한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음이 어지럽게 되지 않으면 조화되지 않는 음이란 없을 것이다.

궁음(宮音)이 어지러워지면 황폐하지니 그 군주는 교만을 드러낼 것이고, 상음(商音)이 어지러워지면 일처리가 공정하지 못하니 신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요, 각음(角音)이 어지러워지면 근심스러워져 백성들의 원망을 듣게 될 것이며, 치음(徵音)이 어지러워지면 슬픔에 젖으니 부역이 너무 고되기 때문이요, 우음(羽音)이 어지러워지면 그 소리가 위태로워지니 재화가 부족하게 된다. 오음(五音)이 모두 어지럽게 되면 서로 번갈아 가며 침범하고 짓밟게 되니, 이를 만(慢, 방종)이라고 이른다.

이와 같으면 조만간 나라의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음악은 난세의 음악이니 곧 방종에 가깝다. 상간(桑間)과 복상(濮上)의 음악은 망국의 음악이니, 그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백성들은 유랑하게 되며 신하가 윗사람을 속이고 각기 사사로운 이득만 생각해 멈출 수 없게 된다.

무릇 음(音)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고, 악(樂)이란 윤리에 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리를 알고서 음을 모르는 것은 금수이고, 음을 알고서 악(樂)을 모르는 것은 대부분 서민들이다. 오직 군자만이 악(樂)을 알 것이다. 이 때문에 소리를 살핌으로써 음을 알고, 음을 살핌으로써 악(樂)을 알고, 악을 살핌으로써 정치를 알게 되니,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가 구비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리를 모르는 자와는 더불어 음을 말할 수 없고, 음을 모르는 자와는 더불어 악(樂)을 말할 수 없다.

악(樂)을 알면 예(禮)를 안다고 할 수 있고, 예(禮)와 악(樂)을 모두 터득한 사람을 일러 덕(德)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덕이란 터득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악이 성대하더라도 반드시 가장 좋은 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종묘제례인 식향(食饗)의 예가 가장 맛있는 음식만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청묘(淸廟)에 쓰이는 거문고는 붉은 줄에 구멍이 성성할 뿐이고, 연주할 때는 한 사람이 앞서 선창하면 세 사람이 따라 부를 뿐이지만 그 여음(餘音)은 끝이 없다. 태향(大饗)의 예는 현주(玄酒)를 올리고 비린 생선을 제기에 담아두며, 태갱(大羹)은 특별한 간을 하지 않았으나 그 뒷맛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때문에 선왕이 예악을 제정한 목적은 사람들의 입과 배, 이목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백성들에게 좋고 싫은 감정을 조절하도록 가르쳐주어서 사람들을 정도(正道)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정적(靜的)인 것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다. 외물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움직이면 천성적으로 칭송하게 된다.

외물이 다가오는 것을 인식하게 된 후에는 좋아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형성된다. 좋고 싫은 감정을 마음속에서 절제되지 못하면 외물로부터 유혹을 당하여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없고, 하늘의 이치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외물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끝이 없으므로 사람의 좋고 싫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게 되고, 외물이 지극하게 되어 사람은 외물에 동화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하늘의 도리는 없어지고 사람의 욕망도 끝나고 만다. 그래서 순리에 거슬리고, 속일 마음을 가지게 되고, 음란하고 안락한 생활에 빠져 난을 일으키려는 일이 생긴다. 이 때문에 강자는 약자를 협박하고 다수는 소수를 폭압하며 지식이 있는 자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용맹한 자는 나약한 사람을 못살게 굴고, 병든 자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노인, 어린이, 고아 과부들이 몸 붙일 곳이 없게 되니 이것은 큰 혼란으로 가는 길이 된다.

이 때문에 선왕이 예악을 제정한 것은 사람들을 절제시키기 위함이었다. 마로 지은 상복(喪服)을 입고 곡읍(哭泣)을 하는 것은 상사(喪事)의 규모를 절제하기 위한 것이고, 종(鐘)과 북의 음과 방패와 도끼 등의 춤을 추는 것은 조화와 안락을 위한 것이다. 혼인과 관계(冠笄)의 제도를 행하는 것은 남녀를 구별하기 위함이며, 사향(射鄕)이나 술과 음식으로 빈객을 상대하는 것은 교제와 접대를 바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禮)는 백성들의 마음을 절제하게 하는 데에 있고, 악(樂)은 백성들의 소리를 조화롭게 하는 데에 있으며, 정치(政治)는 정령을 시행하게 하는 데에 있고, 형벌(刑罰)은 나쁜 일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 예와 악과 형벌과 정치, 이 네 가지에 통달하면 어그러짐이 없을 것이며, 왕도가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음악(音樂)은 사람들을 동화시키고, 예는 사람들을 유별하게 만든다. 동화되면 서로 친하게 되고, 유별하면 서로 공경하게 된다. 음악이 지나치면 방종하게 할 수 있고, 예가 지나치면 소원해진다. 감정을 화합하게 하고, 외모를 단정하게 꾸미는 것은 예와 악이 하는 일이다.

예의가 확립되면 귀천 간에 등급이 있게 되고, 음악의 문채가 같게 되면 상하가 화합할 수가 있다. 좋고 싫음이 드러나면 현명한 자와 불초한 자가 분명히 구별된다. 형벌로써 포악한 일을 금지시키고 작위로 현명한 자를 천거하면 정치는 고르게 될 것이다. 어진 마음으로 백성들을 사랑하고 의로써 바르게 세울 수 있다면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다.

악(樂)은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예(禮)는 겉모습에서 일어난다. 악은 마음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고요하며, 예는 겉모습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꾸미게 된다. 대악(大樂)은 반드시 평이하고, 대례(大禮)는 반드시 간소하다. 악이 지극하면 원한이 없어지고, 예가 지극하면 위아래가 서로 다투지 않는다.

읍하고 겸양하여 천하를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예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포악한 백성들이 일어나지 않고 제후들이 공손히 복종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며, 오형(五刑)을 쓸모가 없게 되면 백성들은 근심이 없어지고 천자는 노여워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 악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친하여 화합하고, 장유의 질서가 분명해지고 천하의 백성들이 서로 존경하게 된다. 천자가 이렇게 함으로써 나라에 예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대악(大樂)은 천지와 더불어 같이 화합하게 하고, 대례(大禮)는 천지와 더불어 같이 절도를 지키게 한다. 화합하게 되므로 만물이 본성을 잃지 않고, 절도를 지키게 하기 때문에 천지에 제사를 올릴 수 있다.

이승에는 예악이 있고, 저승에서는 귀신이 있으니, 이와 같아야 천하의 백성들이 화합하고 공경하며 같이 사랑할 수 있다. 예라는 것은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경하는 것이다. 악(樂)이란 다른 문식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랑하는 것이다.

예악에 대한 사람들의 성정이 같기 때문에 현명한 왕들은 서로 전례를 쫓았다. 그러므로 당시 예악은 시대와 서로 부합되며, 명성은 이룩한 공덕과 상응했다. 고로 종(鐘), 고(鼓), 관(管), 경(磬), 우(羽), 약(籥), 간(干), 척(戚)은 악을 연주하는 악기이다.

몸을 굽히고 펴고,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 땅을 내려다보며, 잇고 끊으며 빠르고 느린 것은 악의 문식(형식)이다. 보궤(簠簋, 중국 고대의 예기(禮器). 보(簠)는 외방내원(外方內圓), 궤(簋)는 외원내방의 용기), 조두(俎豆, 제기), 제도나 문장은 예를 행할 때 쓰는 도구요, 당(堂)에 오르내리고 윗옷을 벗어 어깨를 들어내 놓고, 겉옷을 걸치는 등의 행위는 예의 형식이다. 고로 예악의 감정을 아는 자는 능히 예악을 만들 수 있고, 예악의 형식을 아는 자는 능히 예악을 서술할 수 있다.

(예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성(聖)스럽다고 말하고, (예악을) 서술할 수 있는 사람은 사리에 밝다고 말한다. 사리에 밝거나 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은 (예악을) 서술하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악(樂)이란 천지의 조화이며, 예(禮)는 천지의 질서이다. 서로 화합하므로 만물이 융화되고, 질서가 있기 때문에 만물이 구별된다. 악(樂)은 하늘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예(禮)는 땅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다. 예악이 잘못 만들어지면 어지러워지고 흉폭하게 된다.

천지의 이치에 밝아야 예악을 일으킬 수 있다. 윤리를 논하면서 해가 없게 하는 것이 음악의 정서이고, 기쁨을 느끼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악(樂)의 작용이다.

마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곧고 바라서 사악함이 없는 것이 예(禮)의 본질이고, 장중하고 공경하며 공손하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예(禮)를 제정했다. 만약 예악을 시행하는데, 금석으로 만든 악기를 쓰고 성음(聲音)으로 표현되고, 종묘사직에서 산천과 귀신을 섬긴다면 이것은 백성들과 더불어 같이 하는 것 된다.

제왕이 공을 이루고 나면 악(樂)을 만들고, 다스림이 안정되고 나면 예의를 제정한다. 그 공적이 크면 악(樂)도 완비되고, 그 다스림이 분명하면 예(禮)도 구체적이다.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춘다고 해서 악(樂)이 갖추어졌다고 할 수 없으며,

희생을 끓이고 익혀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예(禮)가 부합한다고 할 수 없다. 오제(五帝)는 각기 다른 시대로서 서로의 악(樂)을 서로 따르지 않았으며, 삼왕(三王) 시대는 세상사가 달랐으므로 서로의 예제(禮制)를 계승하지 않았다.

악(樂)이 극단에 이르면 우환이 생기고, 예(禮)가 너무 조악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악(樂)은 돈독해야 우환이 생기지 않고, 예(禮)는 두루 갖추어져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되니, 이를 성취한 자는 오직 대성(大聖)뿐일 것이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만물은 흩어져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예(禮)가 만들어져 행해지는 것이다. (음과 양의 두 기운이) 교류하며 쉼이 없으면서 합해져 동화되어 악(樂)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봄에 생겨나고 여름에 성장하는 것을 인(仁)이 드러난 것이라고 하고, 가을에 거두어들이고 겨울에 저장하는 것은 의(義)가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인은 악(樂)에 가깝고, 의는 예(禮)에 가깝다. 음악은 화합을 돈독하여 신을 거느리고 하늘의 뜻을 따르며, 예제는 분별을 의당한 것으로 삼았으니, 귀신을 함께하여 땅의 뜻에 따른다. 고로 성인은 악(樂)을 만들어 하늘의 뜻에 응했고, 예(禮)를 제정해 땅의 뜻에 짝지우니, 예악이 밝게 갖추어짐으로써 천지가 제자리를 찾아 소임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비천하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도 하늘의 존귀와 땅의 비천과 같이 정해진다. 높고 낮은 것이 이미 드러나 있듯이 귀천의 지위도 정해진 것이다. 움직이고 멈추는 것이 상규(常規)이고 작고 큰 것마다 다름이 있다.

사람은 같은 무리끼리 모이고 사물은 같은 부류끼리 나뉘는데, 각기 성명(性命)이 다르다. 하늘에는 [일월성신 등의] 상(象)을 이루고, 땅에는 [산천초목과 인물들이] 형상으로 이루니, 이것은 바로 예(禮)란 천지의 구별과 같은 것이다.

땅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고,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내려와 음양이 서로 어울리고, 하늘과 땅이 서로 움직이고 부딪치면 우레와 천둥이 치고, 떨치면 비와 바람이 되며, 움직임에 따라 사시(四時)가 생긴다. 해와 달은 따뜻하게 해주고 만물을 변화 성정시킨다. 이와 같이 악(樂)은 천지의 화합을 본받은 것이다.

만물은 때에 맞지 않게 변화하면 생육을 멈추고, 남녀 간의 구별이 없으면 큰 혼란을 야기된다. 이것은 천지의 정서인 것이다.

예악이 극에 달하여 하늘에 이르고 땅에 두루 서려지고, 음양에 따라 행해지면 귀신과 통함이 있으니, 지극히 높고도 먼 곳은 물론이고 심후한 곳까지 헤아릴 수 있다. 악(樂)은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混沌)의 시대에서부터 나왔고, 예(禮)는 만물이 성립된 뒤에 생겨났다. 드러났으나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하늘이고, 드러났으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 땅이다.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정지하는 것이 천지사이의 만물이다. 고로 성인은 “악(樂)은 종고(鐘鼓)를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예(禮)는 옥백(玉帛)을 의미하는 것인가?”라고 한 것이다.

상고시대 순(舜)임금은 오현금(五弦琴)을 제작하여 ‘남풍(南風)’을 노래했고, 기(夔)는 처음 악(樂)을 만들어 제후들로 하여금 감상하도록 했다. 고로 천자는 악(樂)을 만들어 제후들 가운데 덕 있는 자에게 감상하게 하였다.

덕행이 성대하고 교화를 존엄 있게 잘 시키며 오곡이 때맞추어 무르익은 연후에야 천자는 그 제후에게 악(樂)을 감상하도록 했다. 고로 백성을 다스리는데, 수고롭게 하는 자는 춤추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었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안일한 자는 춤추는 사람들의 행렬이 짧았다. 고로 춤추는 것을 그 제후의 덕을 알 수 있었고, 시호(諡號)를 들으면 그 행실을 알 수 있었다. ‘대장(大章)’은 요(堯)임금을 밝히는 뜻이 있고, ‘함지(咸池)’는 황제(黃帝)의 덕이 완미(完美)했음을 뜻한다. ‘소(韶)’는 순임금이 요(堯)임금의 미덕을 계승했다는 뜻이고, ‘하(夏)’는 우(禹)임금이 요임금과 순임금의 공덕을 크게 높인 것을 뜻한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악(樂) 당시의 실상을 모두 드러낸 것이다.

하늘과 땅의 도리는 추위와 더위가 때에 맞지 아니하면 질병이 생기고, 비바람이 절기에 맞지 아니하면 굶주리게 된다. 음악으로 교화시킨다는 것은 백성에게는 추위나 더위와 같아서 가르침이 시세(時勢)에 맞지 않으면 세상이 상(傷)하게 된다. 예법의 일이란 백성에게는 비바람과 같다. 예법의 일에 절도가 없으면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다. 고로 선왕은 천지의 도를 본받아 악(樂)을 만들고, 예(禮)로 다스는 법으로 삼았는데, 잘 시행하면 모두 그 덕을 본받아 행했다.

대개 돼지를 길러서 술안주로 삼는 것은 화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소송이 더욱 번잡해진 것은 술을 잘못 마셔서 생긴 화이다. 때문에 선왕은 주례(酒禮)를 만들어서 한번 술을 마실 때마다 빈객과 주인이 자주 예(禮)를 행하게 하여 하루 종일 술을 마셔도 술에 취하지 않게 하였다.

이것은 바로 선왕이 술에 취해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대비한 것이다.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은 기쁨을 더불어 나누는 것이 되었다.

악(樂)은 덕을 본받기 위함이고, 예(禮)는 음란함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선왕은 대사(大事), 즉 상(喪)을 당하면 반드시 상례로써 애도를 표했으며, 큰 복(福)이 있을 때도 반드시 예(禮)로써 그 기쁨을 표현했다. 애도와 기쁨은 구분이 되나 모두 예(禮)로써 마무리를 했다.

악(樂)이란 베푸는 것이고, 예(禮)는 보답하는 것이다. 악(樂)은 즐거움이 생기는 바를 표현한 것이고, 예(禮)란 처음 시작한 바로 돌아가는 것이다. 악(樂)은 공덕을 표창하기 위함이고, 예(禮)는 은정에 대한 보답으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른바 대로(大路)란 천자가 타는 수레이고, 용기(龍旂)와 구류(九旒)는 천자의 기치요, 청색과 흑색 가선을 두른 것은 천자의 보귀(葆龜, 점복(占卜)의 용구)요, 소나 양이 무리를 이끄는 것은 모두 천자가 제후에게 보낼 하사품이다.

악(樂)이란 감정이 드러낸 것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이고, 예(禮)란 윤리를 표현된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악(樂)은 (사람들의 감정을) 동일하게 통일시킨 것이고, 예(禮)는 (사람들의 존비에 따라) 분별과 차이를 두는 것이니, 예악의 학설은 사람들의 감정을 관통하는 것이다. 근본을 궁구하여 변화되는 것을 아는 것이 악(樂)의 본뜻이다. 진실을 드러내고 거짓을 버리는 것이 예의 이치이다. 예악은 하늘과 땅의 정성에 순응하고, 신명(神明)의 덕에 통달해 위아래의 신을 흥기시켜 강림하게 만들고, 은미하고 쉬운 이치가 응결되어 군신부자가 각자 예절에 정성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로 대인(大人, 성인)이 예악을 들어올리기 때문에 장차 천지에 밝아지는 것이다. 천지가 기쁘게 결합하고, 음양이 서로 얻는 것이 있으면 마치 따뜻한 할미 같은 천지가 만물을 덮어 키우게 된다. 그런 후에 초목이 무성해지고 작물이 싹을 틔우며, 날짐승은 힘껏 하늘을 날고, 가축은 쑥쑥 뿔이 자란다. 동면하던 곤충이 깨어나며, 날짐승들은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며 털 짐승들은 잉태하여 새끼를 품는다. 태생동물이 사산하지 않고 난생동물은 알을 터드려 죽는 일이 없게 되니, 곧 이 모든 것은 악(樂)의 도(道)로 귀결된다.

악(樂)이란 황종(黃鐘)과 대려(大呂),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간양(干揚)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악(樂)이 말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자들로 하여금 춤추게 한 것이다.

주연(酒筵)을 베풀면서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변두(籩豆) 위에 과일과 국을 쌓아놓고 당 위로 올리고 섬돌 아래로 내리고 하면서 예의로 삼는 것도 예(禮)의 말단에 불과하다. 이런 일은 유사(有司)에게 맡기면 된다.

악사는 악곡과 가사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군주의 아랫자리에 앉아 현악기를 연주하고, 종축(宗祝)은 종묘의 예(禮)를 잘 분별하기 때문에 후시(後尸)의 일을 도왔고, 상축(商祝)은 상례를 잘 분별했기 때문에 후주인(後主人)이 되어 상주를 도왔다. 이 때문에 덕을 성취하는 것이 우선이고, 예(禮)를 성취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또 덕행을 성취하는 것이 우선이고, 일이 처리는 그 뒷일이다.

고로 선왕은 상하(上下), 선후(先後)를 분명히 한 후에 천하에 예악을 제정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악(樂)은 성인(聖人)이 즐기는 것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을 감동시켜 깊은 데에 이르게 하고 풍속을 옮기어 바꿀 수도 있다. 고로 선왕은 드러내놓고 가르침을 펼쳤다.

대개 사람에게는 혈기와 심지(心知)의 본성이 있으나 희로애락에 대한 일정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 외물에 감응해 움직인 연후에 심술(心術)이 형태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뜻이 미약하고 초췌하며 쇠한 음을 만들면 백성들이 근심스럽게 생각하고, 느슨하고 부드럽고 완만하고 평온하여 문채가 많으면서 가락이 간략한 음악이 만들어지면 백성은 편안하고 즐거워한다. 거칠고 사납게 일어나 격분하는 듯하고 끝에 가서 광대하면 분격하는 음이 만들어지면 백성은 강하고 굳세어진다.

청렴하고 곧고 올바르며, 장중하고 성실한 음이 만들어지면 백성은 엄숙하고 공경해진다. 너그럽고 여유가 있으며, 유순하고 조화로우며 활동적인 음이 만들어지면 백성들은 자애로워진다. 편벽되고 사악하며 산만하여서 빠르고 들떠 있으며 마치 물로 물건을 씻어서 물이 물에 스며들듯 한계가 분명치 않은 음악이 만들어지면 백성들은 음란(淫亂)해진다.

이 때문에 선왕은 성정(性情)에 바탕을 두고 도수(度數)를 상고하며, 예의를 만들어서 생기(生氣)의 조화를 모으고 오상(五常)의 행실을 이끌면서 양기(陽氣)는 흩어지지 않게 하고 음기(陰氣)는 밀폐되지 않게 하며, 강한 기운을 노하지 않게 하고 유순한 기운은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음양강유의] 네 가지 기운이 소통하여 마음속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타나 모두 그 자리에 안정되어 서로 빼앗지 않게 된다. 그런 후에야 학등(學等, 학습자의 등급)을 세우고 그 절주를 넓히며 그 문채(文采)를 살피고 후덕함을 법도로 삼았다. 음률의 크고 작은 명칭을 규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의 차례를 정했으며 일과 행실의 본이 되게 하고 친밀한 자와 소원한 자, 귀한 자와 천한 자,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의 도리가 모두 악(樂)에 표현되게 하였으니, 고로 악(樂)은 사람이 관찰할 때에 그 깊이가 더욱 깊어진다고 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토양의 힘이 다하면 초목이 자라지 못하고, 물이 시끄러우면 고기가 크지 않으며, 기가 쇠하면 생물이 자라지 못하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예(禮)가 사특해지고 악(樂)이 음란해진다. 이 때문에 그 소리가 애달프면서 장중하지 못하고 즐거워하나 편안하지 못하다. 거만하고 가벼워서 절도를 범하고, 방종하여 그 근본을 잊는다. 넓으면 간사함을 용납하게 되고, 좁으면 탐욕을 생각하게 되어, 유려하고 조리 있는 기운을 상하고 평화의 덕을 소멸시킨다. 그래서 군자는 이를 천시하는 것이다.

무릇 간사한 소리가 사람을 감응시키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기운이 호응해 나타나고, 거슬리는 기운이 형상을 이루면 음란한 음악이 일어난다. 바른 소리가 사람을 감응케 하면 순한 기운이 이에 응하고, 순한 기운이 형상을 이루면 온화한 음악이 일어난다. 부르고 화답하는 것이 응함이 있어 굽고 사특한 것과 곧은 것 간에 각기 구분이 생기니, 만물의 이치란 같은 무리끼리 서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바른 감성으로 돌아가서 그 뜻을 조화시키고, 부류와 자신을 비교하고 행실을 이룬다. 간사한 소리나 음란한 색채가 자신의 총명을 가리지 않게 하고, 음란한 음악과 사특한 예가 마음에 접하게 않게 하고, 게으르거나 사악한 기운이 몸에 물들지 않게 하며, 귀·눈·입·코와 마음 및 몸으로 하여금 모두 순정함을 따르게 하며 그 의(義)를 행하게 한다.

그런 후에 소리를 통해 표현하고 거문고와 비파로 연주하고 방패와 도끼를 가지고 춤을 추며 새의 깃으로 꾸미고 퉁소와 피리로 반주하여 지극한 덕의 빛을 떨치게 하고, 사기(四氣)의 조화로움을 움직여 만물의 이치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격조가 청명한 것은 하늘을 상징한 것이고, 넓고 큰 것은 땅을 상징한 것이다. 끝나고 시작하는 것은 사시(四時)를 상징한 것이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바람과 비를 상징한 것이다.

오색(五色)의 무늬(또는 곡조)를 이루면서 어지럽지 않고, 팔풍(八風, 팔음(八音))이 성률을 따르면서도 간사하지 않으며, 백가지 절도의 수를 얻어 항상 일정함이 있다.

작고 큰 것이 서로 이루어주고, 마침과 시작이 서로 생겨나고, 선창하고 화답하는 것이나 맑고 탁한 것이 번갈아가면서 서로 법칙을 만든다. 고로 음악이 행해지면 인륜의 도리가 맑아지고, 귀와 눈이 총명해지고 혈기가 조화롭고 평탄해 지고 풍속이 바뀌어져 천하가 모두 평안해진다.

그러므로 ‘음악이란 즐거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군자는 그 도를 얻기에 즐거워하고 소인은 그 욕망을 얻기에 즐거워한다. 도로써 그 욕망을 억제하면 즐겁되 어지럽지 않고, 욕망으로써 그 도를 망각하면 의혹되어 즐겁지 않다. 이 때문에 군자는 정(情)으로 돌아가서 그 뜻을 조화시키고, 악(樂)을 넓혀서 그 교화를 이룬다. 악(樂)이 행해져서 백성은 지향할 바를 알게 되니 이로써 그 덕(德)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덕(德)이란 것은 성품의 단서이고, 악(樂)은 덕의 빛이다. 금석사죽(金石絲竹)은 악(樂)의 기구이다. 시(詩)는 그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는 그 소리를 읊조리는 것이며, 춤은 그 용모와 자태를 움직이는 것으로, 이 셋이 마음에 바탕으로 둔 연후에 악기(樂器)가 이를 따른다. 이런 까닭에 정(情)이 깊으면 그 문장이 밝아지고, 기(氣)가 성대하여 감화가 신묘해진다. 온화하고 양순한 덕이 안에 쌓이면 뛰어난 재능이 겉으로 나타난다. 오직 악(樂)은 거짓으로 해서는 안 된다.

악(樂)은 마음의 움직임이다. 소리는 악(樂)의 형상이다. 문채(文采), 절주는 소리를 수식한 것이다. 군자는 그 근본을 움직이고, 그 형상을 즐거워한 연후에 그 수식으로 다스렸다. 이 때문에 우선 북을 울려서 경계하고 세 번 걸음을 하여 방향을 보여 준다. 다시 시작하면 또 가는 바를 드러나고, 다시 어지러우면 물러나서 돌아오는 것을 정비한다. 동작이 지나치게 빠르지 않고 극히 그윽하나 숨기지 않는다. 홀로 그 뜻을 즐거워해서 그 도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 도를 갖추어 들어서 그 욕심을 사사로이 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정(情)이 들어나고 의(義)가 서고 악(樂)이 끝나고서 덕이 존중된다. 군자는 선을 좋아하고, 소인은 허물을 종식시킨다. 고로 말하길 “민생의 길에 악(樂)은 큰 역할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군자가 말했다. ‘예악은 잠시라도 몸을 떠나서는 안 된다.’라 했다. 악(樂)을 극진히 해서 마음을 다스리면, 평온하고 정직하고 자애롭고 선량한 마음이 뭉클뭉클 생겨난다. 평온하고 정직하고 자애롭고 선량한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이 즐거운 것이고, 즐거우면 편안하고, 편안하면 오래되고, 오래되면 하늘이고, 하늘이면 신이다. 하늘은 말은 하지 않더라도 믿음이 있고, 신은 노하지 아니해도 위엄이 있다.

악(樂)에 이른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며, 예(禮)에 이르는 것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자신을 다스리면 장엄하고 공경하면 엄숙하고 위엄이 있게 된다. 마음속이 잠시라도 화평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면 비루하고 거짓된 마음이 들어오게 된다. 외모가 잠시라도 장엄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안일하고 태만한 마음이 들어오게 된다.

악(樂)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며 예(禮)라는 것은 몸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악(樂)은 화(和)를 극진히 하고 예(禮)는 순(順)을 극진히 한다. 안을 화(和)하게 하고 밖을 순(順)하게 하면 백성들은 그 안색[임금이나 성인]을 우러러보고서 서로 다투지 못하고, 그 용모를 바라보면서 안일하고 태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 덕이 안에서 움직여서 백성들은 듣고 따르지 않음이 없고, 이치가 겉으로 드러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음이 없다. 그래서 말하길 ‘예악의 도리를 알고 이를 천하에 시행하면 어려울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악(樂)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며, 예(禮)라는 것은 바깥에서 움직이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禮)는 겸손한 것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그 풍요로움을 것을 위주로 한다. 예(禮)는 겸손하여 진취적이고, 진취적인 것을 가지고 꾸밈으로 삼는다. 악(樂)은 풍요로움으로써 자신을 반성하고, 반성하는 것으로 꾸밈으로 삼는다. 예(禮)가 겸손하지만 진취적이 아니면 쇠약해지고, 악(樂)이 풍요롭지만 반성하지 아니하면 방탕해진다. 그러므로 예(禮)에는 보응이 있고 악(樂)에는 반성함이 있는 것이다. 예(禮)가 그 보응을 얻으면 즐겁고 악(樂)은 그 반성하면 편안해진다. 예(禮)의 보응과 악(樂)의 반성함 그 뜻이 매한가지이다.

무릇 음악이란 즐거워하는 것으로, 인정(人情)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즐거움이란 반드시 소리로 표출되고 동정(動靜)으로 드러나니, 사람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소리와 동정, 성정(性情)의 변화가 여기에서 다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악(樂)이 없을 수 없고 악(樂)은 형태가 없을 수 없다. 형상화되어도 도리에 맞지 않으면 혼란이 없을 수 없다.

선왕은 그 혼란을 미워하여 『아(雅)』와 『송(頌)』의 소리를 제정해 이끌었으니, 그 소리로 하여금 즐거워하되 방탕하지 못하게 했고, 그 문리(文理)로 하여금 강론하기에 족하여 그만두는 일이 없게 했으며, 그 곡절의 굽고 바름과 복잡함과 간단함, 청렴함과 풍요함, 절주(節奏)로 하여금 사람의 선한 마음을 감동케 할 뿐, 방종한 마음과 사특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곧 선왕이 악(樂)을 세운 방침이다.

그러므로 종묘에서 임금과 신하 아래위 모두가 함께 악(樂)을 듣게 되면 어울려 화합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없게 되고, 지방의 족장 향리 안에서 나이가 많고 적은 사람이 모두 함께 듣게 되면 화합하고 따르지 않음이 없게 되며, 가정 안에서 부자 및 형제들이 함께 듣게 되면 화합하고 친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악(樂)이란 하나를 살펴서 조화를 안정되게 하고, 여러 악기로 배합하여 그 절주를 표현해내고, 그 절주를 조합해 하나의 문리(文理)를 구성한 것이니, 아비와 아들 및 임금과 신하를 화합케 하고 만백성을 친근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왕이 악(樂)를 세운 방침이다.

고로 『아(雅)』와 『송(頌)』의 소리를 들으면 뜻이 넓어지고, 도끼와 방패를 손에 잡고 올려 보고 내려 보며 몸을 굽히고 펴고 하는 춤의 형태를 습득하면 용모가 장엄해진다. 춤추는 자들의 줄과 자리가 서로 연이어 있으면서 절주에 맞추면 행렬의 바름을 얻고, 진퇴가 가지런함을 얻는다. 고로 악(樂)이란 것은 천지를 가지런히 한 것이요, 중화(中和)의 기강으로 인정(人情)에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대저 악(樂)이란 선왕이 즐거움을 나타낸 것이고, 군대와 작은 도끼와 큰 도끼는 선왕의 노여움을 나타낸 것이다. 고로 선왕의 즐거움과 노여움은 모두 그 동등한 표현을 얻은 것이다. [선왕이] 즐거워하면 천하 역시 기뻐해 이에 화락(和樂)했다. 노하면 난을 일으킨 난폭한 사람이 두려워했다. 선왕의 도(道)는 예악으로 융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위문후(魏文侯)가 자하(子夏)에게 물었다. “내가 현단복과 면관을 하고 옛날 음악을 들으면 오로지 눕게 될 것 같아 두려워하고, 정(鄭)나라와 위(魏)나라의 음을 들으면 피곤한 줄을 모릅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옛날 음악이 그와 같은 것이 무슨 까닭이고? 새로운 음악이 이와 같은 것은 무엇 까닭인가?”

자하가 대답했다. “지금 저 옛날 음악은 나아감을 함께 했고, 물러나는 동작도 격식에 맞게 바르게 하였으며 온화하면서 정대했으며 그 의미가 넓습니다. 현(弦), 포(匏), 생황(笙篁) 등의 악기는 부(拊), 고(鼓)를 준비하고 연주를 하는데, 처음 연주를 시작할 때에는 문(文)으로써 하고, 어지러운 것을 멈출 때에는 무(武)로써 하며, 어지러운 것을 다스릴 때에는 상(相), 즉(拊)으로써 하고, 빠르고 급한 것은 아(雅)로써 조절합니다. 군자는 이때에 말하고 옛날을 논하며, 몸을 닦아서 집안으로 다스리고 천하를 고르게 합니다. 이것이 고대 음악의 발현(發現)입니다.

지금 저 새로운 음악은 나아갈 때도 몸을 굽히고, 물러설 때도 구부리고 소리가 간사하고 음란해 탐닉하여 멈추지 못하고, 배우나 난쟁이가 남녀 사이에 뒤섞이고 부자(父子) 간의 지켜야할 예절도 알지 못합니다. 악(樂)이 끝나도 나서도 이야기할 것이 없고, 옛 것에 대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새로운 악(樂)의 발현입니다. 지금 군주께서 물으신 것은 악(樂)이고, 좋아하시는 것은 그 음(音)입니다. 무릇 악(樂)과 음(音)은 서로 가깝지만 다른 것입니다.” 문후가 말했다. “감히 묻노니, 어찌 그런 것인가?”

자하가 대답했다. “대체로 옛날에는 천지가 화순하고 사시(四時)가 그 차례를 잃지 않았으며, 백성들은 덕이 있고 오곡이 번창했으며, 질병이 일어나지 않고 흉조가 없었습니다. 이를 일러 대당(大當, 합당한 태평성세)라고 했습니다. 그런 연후에 성인께서 부자와 군신을 위한 기강을 만들었습니다. 기강이 바르게 서자 천하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 천하가 크게 안정된 연후에 육율(六律)을 바르게 하고 오성(五聲)을 조화되게 하여 현(弦)을 뜯으며 시(詩)와 송(頌)을 노래하니 이것을 덕음(德音)이라 했고, 이 덕음을 악(樂)이라고 불렀습니다.

『시경』에 ‘덕음을 고요히 해서 덕이 더욱 밝아졌네. 사물을 밝게 분별하시니 백성의 어른이 되었고 군주가 되셨네. 이 큰 나라의 왕이 되니 하늘에 순응하고 백성을 친애하셨네. 문왕(文王)에 와서 그 덕에 잘못됨이 없었네. 하늘에서 내리신 큰 복 받아 자손에게 베풀었다네.’라고 했으니 이를 말한 것입니다. 지금 군주가 좋아하시는 것은 익음(溺音, 탐닉한 음)이 아닌가요?”

문후가 말했다. “감히 묻노니, 익음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인가?”

자하가 대답했다. “정(鄭)나라 음은 방탕을 좋아하여 뜻을 음란하게 만들고, 송(宋)나라 음은 가무에 능한 연나라 미인 같아서 뜻을 탐닉하게 하며, 위(衛)나라 음은 촉박하고 빨라서 뜻을 번거롭게 하고, 제(齊)나라 음은 오만하고 편벽되어 뜻을 교만하게 하니, 이 네 가지는 모두 색정에 빠져 음란하고 덕에 해를 끼치는 때문에 제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엄숙하고 조화되게 울려 퍼지니, 선조의 신령들이 들으신다.”라고 했으니, 숙(肅)은 엄숙한 것으로 공경하는 것이요, 옹(雍)은 조화로운 것입니다. 무릇 공경함으로써 화합하면 무슨 일이든 행하지 못하겠습니까?

군주가 된 자는 그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삼갈 따름입니다. 군주가 좋아하면 신하도 이를 하고, 위에서 행하면 백성들이 이것을 따르는 마련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백성을 이끌기가 매우 쉬다.’이라고 한 것이 이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런 후에 성인은 도(鞉), 고(鼓), 강(椌), 갈(楬), 훈(壎), 지(篪)를 만들었으니 이 여섯 가지가 덕음을 내는 음입니다. 그런 후에 종(鐘), 경(磬), 우(竽), 슬(瑟)을 가지고 이에 화응하고, 간척(干戚)과 모(旄), 적(狄)으로 춤추었습니다. 이것으로 선왕의 묘에 제사 지내는 것이며, 술자리에서 주인과 빈객이 서로 술을 권하고 따라 올리면서 입에 갖다 대는 예(禮)를 행하는 것이며, 관직에 의해서 귀천의 서열에 그 마땅한 바를 얻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후세에 신분이 높고 낮음과 어른과 아이의 차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종소리는 갱하고 울립니다. 갱 소리로써 호령을 세우고, 호령으로써 사기를 올리고, 사기를 올림으로써 무위(武威)를 세웁니다.

군자는 종소리를 들으면 무신(武臣)을 생각합니다. 돌 소리는 ‘경(硜)’하고 울립니다. 경소리는 사물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분별함으로 목숨을 바치게 됩니다. 군자는 경쇠의 소리를 들으면 변방에서 죽은 신하를 생각합니다. 현의 소리는 애달프다. 애달프기 때문에 염절함으로 뜻을 세운다. 군자는 거문고와 비파 소리를 들으면 지조 있고 의리 있는 신하를 생각합니다.

대(竹) 소리는 넘친다. 넘치면 취합할 수 있고, 취합함으로써 대중을 모을 수 있습니다. 군자가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피리, 생황 퉁소 등의 소리를 들으면 힘써 모은 신하를 생각합니다. 큰 북과 작은 북 소리는 시끄러우니, 시끄럽기 때문에 충동질할 수 있고, 충동질하므로 대중을 나아가게 합니다. 군자가 큰 북과 작은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합니다. 군자는 음률을 듣는 것으로 쇳소리와 종소리를 들을 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군자의 마음속에 맞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빈모고(賓牟賈)가 공자(孔子)를 모시고 앉아 있었다. 공자가 그와 더불어 말하다가 악(樂)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공자가 말하기를 “대체로 무악(武樂)에서 먼저 북을 치고 대중을 경계함이 이미 오래되었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빈모고가 대답했다.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할까 근심하기 때문입니다.”

“길게 탄식하고 그 소리 늘이어서 노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빈모고가 대답했다. “일이 미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무왕이 주(紂)왕을 정벌할 만들어진 춤은 처음 춤을 출 때 손과 발을 세차게 놀리고 발로 땅을 밟는 기세가 사나운데, 무엇 때문인가?”

빈모고가 대답했다. “때가 이르러 일을 행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무왕의 춤을 추는 자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왼쪽 무릎을 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빈모고가 대답했다. “무왕의 춤을 추는 자가 반드시 무릎을 끓어 앉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가 음탕해서 상(商)나라를 정벌하기에 이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빈모고가 대답했다. “무왕 악(樂)의 음률이 아닙니다.”

“무왕 악의 음률이 아니면 무슨 음률인가?”

빈모고가 대답했다. “담당 관리가 전해 내려오는 것을 잃은 탓입니다. 만약 담당 관리가 전해 내려오는 것을 잃은 탓이 아니라면 무왕의 뜻이 허황된 것이 됩니다.”

공자가 말했다. “옳다. 내가 장홍(萇弘)에게 들은 것도 그대의 말과 같았다.”

빈모고가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물러나오면서 청해 말했다. “대저 무왕의 춤에서 먼저 북을 치고 대중을 경계함이 오래된 것임을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더디고 더디면서 또 오래 끄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앉자. 내가 너에게 들려주겠다. 대저 악(樂)이란 성공을 상징하는 것이다. 방패를 잡고 산처럼 서 있는 것은 무왕의 일이고, 손발을 놀리고 땅을 밟음이 사나운 것은 태공의 뜻이다.

무왕의 춤이 끌날 때 모두 끓어앉는 것은 주공과 소공의 다스림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무왕의 춤이 시작하면서 북쪽으로 옮겨가니, 이는 무왕이 북쪽으로 출병했던 것을 상징하고, 두 번째 악곡은 북쪽으로 더더욱 옮겨가니 이는 상나라를 멸한 것을 상징하고, 세 번째 악곡은 남쪽으로 돌아오니, 이는 무왕이 상나라를 멸한 후에 남쪽으로 돌아온 것을 상징하고, 네 번째 악곡은 남방을 복속시켜 주나라의 강토에 삼은 것을 상징하고, 다섯 번째 악곡은 섬(陝)지역을 나누어 주공은 왼쪽(동쪽)을 소공은 오른쪽(서쪽)을 다스리게 하는 것을 상징하며, 여섯 번째 악곡은 처음 위치로 돌아와니, 이는 천자를 존숭한다는 뜻을 상징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춤추는 열에 끼어들어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면 춤추는 자들이 창을 들고 사방을 정벌하는 흉내를 내는데, 이는 중국의 위엄을 성대하게 떨쳤음을 알리는 것이다. 춤추는 열을 나누어 나아가는 것은 일을 빨리 성공했음을 상징한 것이다. 오랫동안 춤추는 대열에 서 있는 것은 제후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또 너는 홀로 목야(牧野)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무왕은 은나라를 이기고 상으로 돌아와서 수레에서 미처 내리기도 전에 황제(黃帝)의 후예를 계(薊)에 봉하고, 요임금의 후예는 축(祝)에 봉하고, 순임금의 후예를 진(陳)에 봉했다. 수레에서 내려서는 하후씨(夏后氏)의 후예를 기(杞) 봉하고, 은나라의 후예를 송(宋)에 봉하였으며, 왕자 비간(比干)의 무덤을 봉하고, 기자(箕子)를 감옥에서 석방시켜주고 그로 하여금 상용(商容)에게 가서 그 지위를 회복하게 하였다.

서민들에 대해서는 정치를 너그럽게 하였고, 일반 관원들에게는 녹봉을 배로 올려주었다. 황하를 건너서 서쪽으로 가서 말을 화산(華山)의 남쪽에 풀어주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소를 도림(桃林)의 들판에 풀어놓아 다시는 부리지 않았다. 전차와 갑옷을 잘 싸서 창고에 보관하여 다시 쓰지 않았으며, 창과 방패를 거꾸로 쌓아 재어서 호랑이 가죽으로 쌌다. 그리고 장수되는 인사들을 제후로 삼아 건고(建櫜, 무기를 봉함한다는 뜻이니, 전쟁을 영구히 종식하는 것을 비유함)라 명명하였다.

그런 연후에 천하 사람들은 무왕이 다시는 군사를 일으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군대를 해산하고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내는 교사(郊射)의 의식을 거했다. 좌사(左射)에서는 ‘이수(貍首)’를, 우사(右射)에서는 ‘추우(騶虞)’의 시를 노래하였으며, 적을 죽이는 활쏘기는 그만두었다. 사대부는 관에 쓰고 홀을 들었으며, 용감한 용사는 검을 풀었다. 명당(明堂)에 제사하니 백성들은 효를 알게 되었다.

제후로 하여금 봄, 가을에 왕을 배알하도록 하니, 신하되는 바를 알게 하였다. 천자가 몸소 일정한 논밭을 경작하니 제후들로 하여금 공경하는 방법을 알게 하였다. 이 다섯 가지는 천하의 큰 가르침이다.

태학에서 삼로오경(三老五更, 주대(周代)에 늙어서 벼슬에서 물러난 신하를 임금이 부형(父兄)의 예(禮)로 대접하던 일로서 삼덕(三德)인 정직(正直)ㆍ강극(剛克)ㆍ유극(柔克)과 오사(五事)인 모(貌)ㆍ언(言)ㆍ시(視)ㆍ청(聽)ㆍ사(思)를 겸비한 늙은이란 뜻이다.)을 접대하며, 천자가 웃통을 벗고 제사를 지낼 때 쓴 고기를 나누고, 장(醬)을 집어서 대접하고, 술잔을 들어 권하였으며,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방패를 잡고 춤을 추었으니 이는 제후들에게 공경하는 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주(周)나라의 도(道)가 사방에 미치고, 예악이 사방에 통하게 되었다. 그러니 무왕의 춤이 더디고 더딘 것 또한 의당하지 않은가?”

자공(子貢)이 사을(師乙)을 보고 물었다. “저는 노래 소리는 각기 의당한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자는 의당 어떤 노래를 해야 합니까?”

사을이 말하였다. “저는 미천한 악공(樂工)에 불과한데, 어찌 저가 그런 질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청하시니 제가 들은 바를 읊을 테니 그대가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너그럽고 고요하며 부드럽고도 바른 사람은 마땅히『주송(周頌)』을 노래하고, 광대하면서 고요하고 활달하면서 믿음을 주는 사람은 마땅히 『대아(大雅)』를 노래하고, 공손하고 검소해서 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땅히 『소아(小雅)』를 노래하고, 정직하고 청렴하면서 겸손한 사람은 마땅히 『국풍(國風)』을 노래합니다. 거리낌 없이 말하고 곧으며 자애로운 사람은 마땅히 『상송(商頌)』을 노래하고, 온화하고 선량하면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은 마땅히『제풍(齊風)』를 노래합니다. 대저 노래란 자기를 바르게 하여 덕을 나타낸 것입니다.

자기의 뜻을 움직여서 천지가 이에 응하게 하고 사시(四時)가 조화를 이루어 별들이 다스려지고 만물이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고로 『상송(商頌)』이란 오제(五帝)가 남긴 소리인데, 상나라 사람들이 이를 기록하였기 때문『상송』이라고 부릅니다. 『제풍(齊風)』는 삼대(三代)가 남긴 소리인데 제나라 사람들이 이를 기록하였기 때문에 『제풍』라 부릅니다. 『상송』의 시음에 밝은 사람은 일에 임하여 과감하게 결단을 내립니다. 『제풍』의 시음에 밝은 사람은 이익을 보면 사양합니다. 일에 임해서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것이 용기입니다. 이로움을 보면서도 사양하는 것은 의로움입니다.

용기가 있고 의로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노래가 아니면 무엇으로 이를 보존하겠습니까? 고로 노래하는 것은 위로 울려 퍼질 때는 높이 솟는 것 같고, 밑으로 울러 퍼질 때에는 떨어지는 것 같고, 굽을 때는 꺾어지는 것 같고, 멈출 때는 마른 나무 같고, 소리가 가볍게 구부러질 때는 굽은 자에 맞는 것 같고, 심하게 굽을 때는 그림쇠에 맞는 것 같아서, 계속되어 끊어지지 않음이 마치 꿴 구슬과 같습니다. 고로 노래가 일종의 언어가 된 것은 길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기뻐하는 연고로 말하게 되고, 말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길게 말하는 겁니다. 길게 말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탄식하게 되고, 탄식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저절로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음(音)은 사람의 마음으로 말미암아서 생기는 것이다. 하늘이 사람과 더불어 서로 통하는 바가 있는 것은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호응하는 것과 같다. 고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하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주니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로 순 임금은 다섯줄의 거문고를 치며 ‘남풍(南風)’의 시를 노래하니 천하가 다스려졌고, 주왕(紂王)은 ‘조가(朝歌)’와 ‘북비(北鄙)’의 음을 노래하여 자신은 죽고 나라가 망했다. 순 임금의 도는 어째서 드넓고, 주왕(紂王)의 도는 어째서 그토록 좁았던가? 무릇 ‘남풍’의 시는 자라나는 음이다. 순 임금은 그것을 즐겨 좋아하였고, 그 즐거움은 천지와 같은 뜻이었고, 만국(萬國)의 환심을 얻었기 때문에 천하가 다스려진 것이다. 무릇 ‘조가’의 노래는 시기에 맞지 않고, 북(北)은 패배한다는 뜻이고 비(鄙)는 비루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왕은 그것을 즐기고 좋아하니 만국과 마음이 달랐고, 제후가 따르지 않았으며, 백성이 가까이 하지 않고 천하가 그를 배반하였다. 고로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한 것이다.

위영공(衛靈公) 때에 [영공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에 복수(濮水)의 상류에서 머물게 되었다. 야밤중에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서 좌우의 신하들에게 묻자 모두 대답하기를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곧 사연(師涓)을 불러 말했다. “내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듣고 좌우 신하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 형상이 귀신과 유사하니 나를 위하여 들어보고 그것을 베껴라.” 사연이 말했다. “네.” 자리에 단정히 앉아 거문고를 끌어당겨서 그 소리를 들으며 베꼈다.

다음날 [사연이] 말했다. “신이 그 소리를 듣고 대충 옮겨 적었으나 아직 손에 익지 않습니다. 청컨대 하룻밤을 더 머무르면서 익히도록 해주십시오.” 영공이 말했다. “좋다.” 그래서 다시 하룻밤으로 더 머물렀다. 다음날 사연은 “익혔습니다.”라고 보고했다. [영공은] 곧바로 진(晉)나라로 가서 진 평공(平公)을 알현했다. 평공이 시혜(施惠)의 누대(樓臺)에다 주연(酒宴)을 베풀었다. 술기운이 한창 무르익자 영공이 말했다. “지금 오다가 새로운 음악을 들었는데 청컨대 그것을 연주하도록 해주십시오.” 평공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이에 곧바로 사연으로 하여금 사광(師曠) 곁에 앉도록 하고 거문고를 주며 연주하게 하였다.

다 끝나기도 전에 사광이 줄을 어루만지면서 멈추게 하면서 말했다. “이것은 망국의 소리이니 끝까지 연주하면 안 됩니다.” 평공이 “무엇 때문에 그런가?”라고 물었다. 사광이 말했다. “이 곡은 사연(師延)이 지은 것입니다. 그는 주왕(紂王)을 위해 퇴폐적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자 사연은 동쪽으로 도피하여 스스로 복수에서 투신자살을 하였습니다. 고로 이 소리를 들은 곳은 반드시 복수일 것이고, 먼저 이 소리를 듣는 자의 나라는 해칠 것입니다.” 평공이 말했다. “과인이 좋아하는 음(音)이니 끝까지 듣기를 원하노라.” 이에 사연이 마지막까지 연주했다.

평공이 “음 가운데 이보다 더 비통한 것은 없는가?”라고 말하자 사광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평공이 “들어 볼 수 있겠는가?”라 말하자 사광은 “군주의 덕과 의가 적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평공이 “과인이 음(音)을 좋아하니 들어보길 원한다.”라고 말하자, 사광은 할 수 없이 거문고를 끌어당겨 연주했다. 첫 번째 곡을 연주하자 검은 학 28마리가 낭문(廊門)에 모여들고, 다시 두 번째 곡을 연주하자 검은 학들이 목을 길게 빼어 울면서 날개를 펴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평공이 크게 기뻐하며 일어나서 사광을 위해서 축수(祝壽)하고는 자리로 돌아와 물어 말했다. “음악 가운데 이보다 더 비통한 것은 없는가?” 이에 사광이 “있습니다. 옛날 황제(黃帝)는 귀신을 크게 모았습니다. 지금 군주의 덕과 의가 적어 그것을 듣기에는 부족합니다. 그것을 들으면 장차 패망할 것입니다.”라 대답했다. 평공이 “과인은 이미 늙었다. 좋아하는 바가 음(音)이니, 끝까지 듣고 원한다.”라 말했다. 사광은 할 수 없이 거문고를 끌어당겨 연주하였다. 첫 번째 곡을 연주하니 흰 구름이 서북쪽에서 일어나고, 다시 두 번째 곡을 연주하자 큰 바람이 몰아치며 비가 따라 내리치고 행랑의 기와를 날라 가자 좌우의 신하들이 혼비백산하여 모두 달아났다. 평공도 두려워서 행랑과 궁전 사이에 엎드려 숨었다. 진나라가 크게 가물어 붉은 땅이 3년이나 지속되었다.

(음악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 길하거나 흉하다. 대저 악(樂)은 망령되이 연주해서는 안 된다.

사마천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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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은 말한다.

“대저 상고 시대에 현명한 왕은 악(樂)을 일으킨 것은 즐기는 마음으로 쾌락을 누리거나 쾌감에 뜻을 두거나 욕심을 부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잘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바른 교화라는 것은 모두 음(音)에서 시작되며 음이 바르면 듣는 사람들의 행위도 바르게 된다. 고로 음악이란 혈맥을 굼틀거리고 정신을 통하고 흐르게 하여 마음을 조화롭고 올바르게 잡는 것이다. 고로 궁음(宮音)은 비장(脾臟)을 움직여 성(聖)스러움을, 상음(商音)은 폐를 움직여 의(義)로움을, 각음(角音)은 간을 움직여 어짐(仁)을, 치음(徴音)은 심장을 움직여 예절을, 우음(羽音)은 신장(腎臟)을 움직여 지혜로움을 조화시키고 올바로 한 것이다. 악(樂)은 안으로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을 돕고, 밖으로 귀천을 달리하며, 위로는 종묘를 섬기도록 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교화시킨다.

거문고의 길이는 8척1촌이 올바른 척도가 된다. 현(弦)이 큰 것은 궁(宮)이 되고 중앙에 거하여 군주가 된다. 상(商)은 오른쪽에 펼쳐 있고, 그 나머지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엇갈리면서 그 차례를 잃지 않으면 군신의 지위가 바르게 되는 것이다. 고로 궁음(宮音)을 들으면 사람들이 평화롭고 광대해지며, 상음을 들으면 사람들은 방정하여 의를 좋아한다.

각음(角音)을 들으면 사람들은 측은지심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치음(徴音)을 들으면 사람은 선한 것을 즐기고 베풀기를 좋아한다. 우음(羽音)을 들으면 사람은 용모와 태도가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하여 예(禮)를 좋아하게 된다. 대저 예(禮)는 밖에서 들어오고, 악(樂)은 안에서 나간다. 따라서 군자는 잠시라도 예(禮)를 떠날 수 없다. 잠시라도 예(禮)를 떠나면 포악하고 태만한 행위 때문에 밖이 궁핍하게 된다.

잠시라도 악(樂)을 떠나면 잠시라도 악(樂)을 떠나면 간사하고 행위로 안이 궁핍하게 된다. 고로 음악을 즐기는 것이 곧 군자가 의(義)를 기르는 것이다. 대저 고대에 천자와 제후가 종과 경의 음을 듣고 조정을 떠나지 않았고, 경대부가 금과 슬의 음을 듣고 앞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덕행과 의를 기르고 음탕함과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대저 음탕과 게으름은 무례함에서 생기기 때문에 성왕(聖王)은 사람들로 하여금 귀로는 『아(雅)』, 『송(頌)』의 음을 듣도록 하고, 눈으로는 위엄을 갖춘 예(禮)를 보도록 하고, 발로는 공경의 자태를 행하게 하고, 입으로는 인의(仁義)의 도(道)를 말하도록 한 것이다. 고로 군자는 하루 종일 말을 해도 사악하고 편벽한 기운이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