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서(禮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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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이 얼마나 넓고도 성대한 미덕인가! 만물을 주재하고 군중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어찌 인간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겠는가? 나는 대행(大行)의 예관(禮官)에 가서 삼대(三代)에 걸친 예제(禮制)의 손실과 이익을 관찰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성정(性情)에 따라 예의가 제정되고 인간의 습성에 의거해 예의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유래된 바는 오래되었다.

인간의 길은 씨줄과 날줄처럼 만 가지로 얽혀 있어도 법도가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인의(仁義)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속박하면서 덕(德)이 두터운 사람은 지위가 존귀해지고 봉록이 많아져 은총을 받고 영화를 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인심을 하나로 모으고 만민을 정돈하여 가지런히 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은 수레를 타면 편안해지는데 이를 위해 수레 위에 황금으로 장식하는 횡목에다 이런저런 문양을 놓는다. 눈은 오색(五色)을 좋아하는데 이를 위해 화려한 무늬를 수놓고 문채를 내서 더욱 화려하게 드러낸다. 귀는 악기 소리에 즐거워하는데 그를 위해 팔음(八音)을 섞어 사람의 마음속을 넓고 편하게 만든다. 입은 다섯 가지 맛을 보는데 이를 위해 또 여러 맛을 더하여 맛을 더 좋게 한다. 감정은 진귀한 물건으로 흡족해지는데 이를 위해 다시 규(圭)와 벽(璧)을 쪼고 갊으로써 그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로(大路)에 부들자리를 깔고, 피변(皮弁)에 베로 짠 치마를 더하고, 거문고의 붉은 줄에 구멍을 더하고, 태갱(太羹)에 현주(玄酒)를 쓰는 것이다. 이로써 음란하고 사치함을 방지하고 피폐해짐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로써 조정에서 군신의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의 순서가 생기고, 아래로 백성의 수레와 의복, 집, 음식, 혼례, 상례(喪禮), 제례의 명분이 생겨 일이 적당해지고. 물건마다 그에 맞는 장식이 생기는 것이다. 중니(仲尼, 공자)는 “체(禘) 제사에서 강신주를 따른 뒤로부터는 내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周)나라가 쇠한 이후 예악이 황폐해지고 무너져 위아래가 서로 멀어지니, 관중(管仲)의 집에서는 삼귀(三歸)를 함께 갖출 정도였다. 법을 따르고 정도를 지키는 자는 세간에서 모욕을 당하는 반면에 사치스럽고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고 상하의 구분을 두지 않는 자는 잘 나가고 영광을 얻는다고 했다.

자하(子夏)로부터 (공자의) 문인들 중 높은 제자들도 “밖에 나가서는 번화하고 화려한 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들어와서는 부자의 도를 듣고 즐거워하여,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서로 싸워서 스스로 결단할 수가 없다”라고 했으니 하물며 평범한 자들은 점점 가르침을 잃어버리고 세간의 풍속에 감화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는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겠다.”고 했으나 위(衛)나라에 있을 때는 마음 같지 않았다. 공자가 죽은 후에 그의 도를 이어받은 무리들은 묻혀 사라져 쓰이지 않거나 제(齊)나라, 초(楚)나라로 가거나 강이나 바다로 가버렸으니 어찌 가슴 아프지 않겠는가?

진(秦)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육국의 예제 가운데 좋은 것을 채택하니 비록 성군이 만든 예제와는 맞지 않았으나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낮추어 조정의 질서를 가지런히 한 것은 옛날과 같았다.

고조(高祖)에 이르러 사해를 영토로 삼고, 예제는 숙손통(叔孫通)이 더 하고 덜어 낸 바가 있었으나 대체로 진나라의 옛 제도를 이어받았다. 천자의 칭호부터 아래로 모든 관료와 궁실과 관명에 이르기까지 바꾼 것이 적었다. 효문제(孝文帝)가 즉위하고 담당 예관이 상소를 올려 의례를 정하려 했다. 효문제는 도가(道家)의 학문을 좋아하여, 예를 번다하고 모양을 꾸미는 것이 다스림에 도움이 되지 않고 몸소 교화하면 어떠냐고 여겨 파기해버렸다.

효경제(孝景帝) 때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 조조(晁錯)가 세상의 일과 형명(刑名)에 밝아, 여러 번 효경제에게 “제후국이 병풍처럼 조정을 보필하며 신하가 되는 예는 고금의 제도였습니다. 지금의 제후국 가운데 큰 나라는 자기 멋대로 정치를 행하고, 조정에 고하지도 않으니 후세에 법도가 전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라고 아뢰었다. 효경제가 그의 계책을 쓰자 육국이 반역을 일으키면서 조조를 가장 중요한 명분으로 삼았다. 천자가 조조를 죽여 난국을 해결하였다. 이 사건은 <원앙조조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관리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고 녹봉(祿俸)에 안주하면서 감히 다시 논의하지 못했다.

지금의 주상이 즉위하여 유학자들을 초청해 함께 의례를 정하도록 하였는데, 10여 년이 되도록 완성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날에는 태평하여 만민이 화합하고 기뻐하여 상서로운 감응이 두루 이르러서 풍속을 모아 예제를 정했다.’고 했다. 주상이 듣고는 어사(御史)에게 조서를 내려 말했다. ‘대개 하늘의 명을 받아 왕 노릇을 함에는 각기 흥기한 까닭이 있으니 저마다 길은 다르지만 그 귀결은 같은데, 이를테면 백성의 뜻과 풍속을 따라 예제(禮制)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의논하는 자들은 모두 태고의 예제를 말하는데, 이는 과연 백성들이 바라는 것인가? 한나라 또한 한 집안에 의해서 세워진 왕조인데, 전장(典章)과 법도(法度)가 전해지지 않으면 자손에게 무엇을 말하겠는가? 교화가 창륭하면 크고도 넓어지나, 다스림에 깊이가 없어 편협해지고 말 것이니 열심히 장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에 태초(太初) 원년에 정삭(正朔)과 복색(服色)을 바꾸고, 태산(太山)에서 봉선을 하고, 종묘(宗廟) 백관(百官)의 의례를 정해 통상적인 법으로 삼아 후세에 전하기로 하였다.

예는 인간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욕망이 있다. 하고자 했으나 얻을 수 없으면 분통함을 참을 수가 없게 된다. 분통함이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 되면 다투게 되고, 다투게 되면 분란이 일어난다.

선왕은 그 분란을 미워하여 예의를 제정하여 사람의 욕구를 기르면서 만족시켜, 욕망으로 하여금 사물에 대해서 궁핍 되지 않도록 하고, 사물로 하여금 욕망에 의해서 굴복됨이 없도록 하여 두 가지가 서로 기대어 성장하게 하였으니 이것에서 예가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는 기른다는 것이다. 벼와 기장 등의 오곡의 다섯 가지 맛은 입의 욕구를 기른다는 것이며, 호초(胡椒)와 난초 등의 향기는 코의 욕구를 기른다는 것이며, 종, 북과 관(管), 현(弦) 악기는 귀의 욕구를 기른다는 것이며, 조각과 문장은 눈의 욕구를 길러주는 것이며, 탁 트인 방과 침상의 자리 및 책상과 자리는 몸의 욕구를 길러주는 것이니, 그러므로 예는 욕구를 정당하게 길러주는 것이다.

군자가 이미 그 기르는 것을 얻고, 또 분별을 좋아한다. 이른바 분별이라고 하는 것은 귀천에 등급이 있고, 연장자와 연소자의 차별이 있고, 빈부의 경중 등을 모두 일컫는다.

그러므로 천자의 대로(大路)에 풀로 자리를 만드는 까닭은 몸을 봉양하기 위한 것이며, 곁에 향기로운 향초를 두는 것은 코의 욕구를 기르는 것이며, 앞에 아름다운 무늬를 새긴 횡목(橫木)을 두는 것은 눈의 욕구를 기르는 것이며, 화란(和鸞) 소리와 천천히 걸을 때 “무(武)”와 “상(象)”의 절주(節奏)에 맞추고, 빨리 달릴 때 “소(昭)”와 “호(濩)”의 절주에 맞추는 것은 귀의 욕구를 기르는 것이며, 용을 수놓은 기(旂)와 아홉 개의 유(斿)는 믿음을 길러주는 것이며, 무소와 웅크린 호랑이, 상어가죽으로 만든 말의 복대와 황금색 용은 위엄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로의 말은 반드시 길들여 유순해지고 난 후에 타나니, 이는 천자의 안전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누가 죽음에 처해서도 이름과 절개를 지키는 것이 양생(養生)하는 것임을 알고, 누가 경비를 절감하는 것이 재물을 기르는 것임을 알며, 누가 공경하고 사양하는 것이 편안함을 길러주는 것임을 알겠으며, 누가 예의와 문리(文理)가 정을 길러주는 것임을 알겠는가?

인간이 구차하게 살기만 바란다면, 이런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구차하게 이익만을 얻길 바란다면, 이런 자는 반드시 손해를 볼 것이다. 게으름을 편안하여 여기는데, 이런 자는 반드시 위태로워질 것이다. 욕정이 이기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한결 같이 예의로 두 가지를 모두 얻었다. 정성(情性) 하나만을 추구하면 두 가지를 모두 잃게 된다. 그러므로 유학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 가지를 모두 얻게 하고, 묵가(墨家)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 가지를 모두 잃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유학과 묵가의 차이이다.

[예는] 나라를 다스리고 분별하는 지극한 것이며, 나라를 강성하고 견고하게 하는 근본이다. 권위를 행하는 도리이며, 공명을 세우는 것을 총괄한다.

왕공(王公)은 이를 말미암아 천하를 통일하고 제후를 신하로 삼을 수 있으니, 이를 통하지 않는다면 사직을 버리게 된다. 때문에 튼튼히 만든 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로써 승리를 이루기에는 부족하며, 높은 성과 깊은 연못으로도 견고하게 지키기가 부족하며, 엄격한 명령과 번다한 형벌로도 위엄을 세우기에는 부족하다. 그 도[예]를 따르면 행해지고 그 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폐하게 된다.

초(楚)나라 사람들이 상어의 가죽과 무소의 가죽으로써 갑옷을 만드는데, 그 견고함은 쇠나 돌 같았다. 완(宛)의 땅에서 나오는 거대한 강철로 만든 창은 벌이나 전갈의 침과 같고 가볍고 날카로우며 민첩하기가 질풍과 같았다. 그러나 그 군대가 수섭(垂涉)에서 위태롭게 패하고, 당매(唐昧)가 죽고 말았다. 장교(莊蹻)가 일어나 초나라는 서넛으로 분열되었다. 이 어찌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가 없었기 때문인가? 그것은 통치자가 그 도의로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나라는] 여(汝)와 영(嶺)으로써 험준한 요새로 삼고, 강(江)과 한(漢)을 못[池]으로 삼고, 등림(鄧林)으로써 방어하고 방성(方城)으로써 변경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진(秦)나라의 군대가 이르자 언영(鄢郢)은 마치 마른 고목에 시든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이것이 어찌 견고하고 험준한 요새가 없어서였겠는가? 그 통치자가 도를 따르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주(紂)나라가 비간(比干)의 심장을 도려내고, 기자(箕子)를 감옥에 가두었으며, 포락형(炮珞刑)을 만들어 무고한 사람들을 잔인한 형벌로 살육했다. 이때에 신하들은 모두 벌벌 떨며 목숨을 보존하기에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나라의 군대가 도착하자 [주(紂)의] 명령을 내려도 아래로 전해져 이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백성들은 동원할 수가 없었다. 이 어찌 왕명이 엄격하지 못하고 형벌이 준엄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것은 통치자가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의 병기는 창, 활, 화살일 뿐이었으나 적국은 그것을 사용하기도 않고 굴복했다. 성벽을 높이 쌓지도 않고, 해자(垓字)과 못을 파지도 않고 견고한 요새를 세우지도 않으며 기변(機變)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라가 평안해 외적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견고했다. 그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도를 밝혀 균등하게 나누고 시기에 맞게 백성을 부리고 그들을 진실로 사랑하니, 아랫사람들이 마치 그림자가 따르고 메아리가 응하는 듯 했던 것이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은 다음에 그를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스스로 죄를 알게 했다. 한 사람에게 형벌을 내림으로써 온 천하가 복종하게 된 것이다. 죄인은 윗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죄가 자기에게 있음을 알게 하였다.

이 때문에 형벌은 줄어들었는데, 위엄은 물이 흐르는 듯했으니,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그 도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도를 따르면 행해지고 그 도를 따르지 않으면 폐한다.

고대 요(堯)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대개 한 사람을 죽이고 두 사람에게 형벌을 내렸을 뿐이지만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전(傳)에서 말했다. ‘위엄은 엄격했으나 시험하지 않았고, 형벌은 두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천지는 생명의 근본이고, 선조는 인류의 근본이며, 임금과 스승은 다스림의 근본이다. 천지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가고, 선조가 없으며 어떻게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며, 임금과 스승이 없으면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사람은 편안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예는 위로 하늘로 섬기고 아래로 땅을 섬기며 선조를 존숭하고 임금과 스승을 높이는 것이니, 이것은 예의 세 가지 근본이다.

그러므로 왕이 된 사람은 태조(太祖)을 하늘에 제사 지낼 때 함께 제사를 지내는데, 제후라도 감히 무너뜨릴 수가 없다. 대부(大夫)와 사(士)는 통상적인 조종(祖宗)이 있는데, 이는 귀천을 구분하는 것이고, 귀천을 잘 다스리는 것이 덕의 근본이 된다.

교(郊)에서 지내는 제사는 천자만이 행할 수 있고, 사(社)에서 지내는 제사는 제후가 행할 수 있다. 사(士)와 대부을 포함하여 각기 정해진 제도에 따라 분별을 하여 존귀한 사람은 존귀한 귀신을 섬기고 비천한 사람은 비천한 귀신을 섬기고, 예를 성대하게 할 것은 성대하게 하고 조촐하게 할 것은 조촐하게 하는 것이다.

고로 천하를 가진 사람은 7세(七世)를 섬기고, 한 나라를 가진 사람은 5세(五世)를 섬기며, 5승(五乘)의 땅을 가진 사람은 3세(三世)를 섬기고, 3승의 땅을 가진 사람은 2세(二世)를 섬기며, 희생(犧牲)을 하나 가진 자는 종묘를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덕을 두텁게 쌓은 자는 그 흐르는 은택이 넓어질 것이고, 덕을 적게 쌓은 사람은 그 흐르는 은택이 좁을 것이다.

태향(太饗)에서 현준(玄尊, 맑은 물을 담은 그릇)을 올리고 조(俎)에 날 생선을 올리며 먼저 태갱(太羹)을 올린다. 이는 음식의 근본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태향에서 현준을 올리고 박주(薄酒)를 쓰며, 밥으로 메기장과 피를 먼저 올린 다음에 벼와 기장을 놓는다. 제사를 올릴 때 태갱을 먼저 해 입에 대고, 여러 제수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이는 근본을 귀히 여기고 실용을 가까이하기 위함이다.

근본을 귀하게 하는 것을 일러 문(文)이라고 하고 실용을 가까이하는 것을 이(理)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문식을 이룸으로써 태일(太一)로 귀결 되는데, 이를 대륭(大隆)이라고 한다.

고로 술병 준(尊)에 백주(白酒)를 올리고, 조에 날 생선을 올리며, 두(豆)에 태갱을 먼저 올리는 것은 한 가지 이치이다. 이작(利爵, 제사를 마치기 전에 고인에게 다시 한 번 헌주할 때)에 쓰는 제물을 맛보지 않고, 제사를 마친 뒤 조(俎)의 제물을 먹지 않으며, 삼유(三侑, 사자를 대신해 세운 시위 세 번 음식을 권함)를 먹지 않는 것, 대혼(大昏)에서 재계(齋戒)를 아직 폐하지 않는 것, 태묘(太廟)에서 아직 시(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사람이 금방 절명했을 때 소렴(小斂)을 하지 않는 것 또한 모두 한 가지 이치이다.

대로(大路)의 흰 장막을 하고 교(郊)를 지낼 때 삼으로 만든 면류관을 쓰는 것, 상복은 먼저 산마(散麻)를 입는 것, 이것들은 모두 한 가지 이치이다. 삼년에 곡함에 소리를 꾸미지 않는 일, “청묘(淸廟)”의 노래에서 한 사람이 창(唱)하면 세 사람이 화답하여 응하는 것, 종을 하나 걸어놓고 격을 치는 것, 붉은 현(弦) 아래에 구멍을 내는 것들이 모두 한 가지 이치이다.

무릇 예는 벗어남에서 시작해 문(文)에서 이루어지고, 기뻐함에서 끝맺는다. 그래서 지극히 갖추어지면 정(情)과 문(文)을 모두 다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정과 문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정(情)을 회복해 태일(太一)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지가 합하고 일월이 밝으며, 사시가 순서대로 돌아오고, 별들이 운행하며, 강물이 흐르고 만물이 번창하며 좋고 나쁨에 절도가 있고, 기뻐하고 노여워함에 합당함을 얻게 되는데, 아래에 있는 자는 유순해지고, 위에 있는 자는 현명해지는 것이다.

사마천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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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은 말한다.

“지극하도다! 위대한 예(禮)를 세워 궁극의 법도로 삼으니, 천하가 덜거나 더할 수가 없구나. 본말(本末)이 서로 따르고 시작과 끝이 서로 호응하며, 지극한 문(文)으로써 분별을 가지고, 지극한 살핌으로 시비와 선악을 구분한다. 천하가 예를 따르면 다스려지고, 따르지 않으면 어지러워지니, 예를 따르는 자는 편안해지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자 위태롭게 될 것이니 소인은 본받기가 어렵다.

예의 모양은 실로 깊어서 견백동이(堅白同異)의 설과 같은 성찰도 그 속으로 들어가면 약해진다. 그 모습이 실로 원대하여 함부로 전장(典章)을 짓는 편협하고 비루한 설은 들어가면 바라만 볼 뿐이고, 그 모습이 실로 높아 난폭하고 오만하며 방자하여 습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을 고고하다고 여기는 무리들은 예에 들어가면 여지없이 추락하고 말 것이다.

고로 실로 먹줄을 펼치면 그 굽거나 바른 것을 속일 수가 없고, 저울에 메달기만 하면 그 가볍고 무거움을 속일 수 없으며, 규구(規矩, 곱자와 그림쇠)를 놓기만 하면 모남과 둥근 것을 속일 수 없고, 군자가 예로 살피게 되면 거짓과 허위로써 속일 수가 없다. 고로 먹줄은 곧음의 지극함이요, 저울은 평평함의 지극함이요, 규구는 모난 것과 둥근 것의 지극함이요, 예는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의 지극함이다.

그러나 예를 법도로 삼지 않으면 예라 하기가 부족하니 이런 것을 말하여 단정함이 없는 백성이라 하고, 예를 법도로 삼으면 예라고 하기에 족하니, 그것을 말하여 단정함이 있는 선비라고 한다. 예에 들어가면 사색을 능해지는데, 이를 일러 능려(能慮)라고 하고, 능려는 바꾸지 않으니, 이를 일러 능고(能固)라고 한다. 능려와 능고를 더하게 좋아하는 경지가 되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하늘은 높은 것의 극치이고, 땅은 낮은 것의 극치이다. 해와 달은 밝음의 극치고, 무궁함은 광대함의 극치이며, 성인이란 도의 극치이다.

예는, 재물로써 쓰임을 삼고 귀천으로써 문(文)을 삼고 다소로써 차이를 삼고, 융성함과 간략한 것으로써 요체로 삼는다. 문(文)의 모양은 번다하나 정욕(情慾)은 간략한 것이 예의 융성함이다. 문의 모양이 간략하고 정욕은 번다한 것이 예가 쇠한 것이다. 문의 모습과 정욕이 서로 안과 밖으로 표리를 이루고, 병행하여 뒤섞이는 것, 이것이 예의 마땅한 흐름이다. 군자는 위로 융성함에 이루고, 아래로 그 간략함을 다해 그 마땅한 곳을 처하는 것이다. 천천히 걷거나 빨리 달리거나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니, 이 때문에 군자의 성(性)은 마치 궁정(宮庭)을 지키고 있는 것과 같이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야할 영역이 바로 이 영역이니 이곳에 사는 사람은 선비와 군자요, 그 밖에 사는 사람은 평민이다. 이 가운데에 처하여 두루 들고 나고 언행거지가 그 차례를 곡진히 하는 것은 성인이다. 그러므로 후덕한 것은 예의 쌓임 때문이며, 원대한 것은 예의 넓음 때문이며, 숭고한 것은 예의 융성함 때문이며, 고명한 것은 예의 곡진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