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27장
大空(대공)의 惡魔(악마)
편집『뭐요? 홍서방 살해범인으로 오상억씨를?』
임경부는 깜짝 놀라며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렇습니다! ×천읍 부부암에서 홍서방을 「피스톨」로 쏘아 벼랑 밑으로 떨어뜨려 버린 것은 해월이가 아니고 오변호사 자신입니다!』
『아니, 그러면 오상억씨의 보고가 전부 거짓말이었단 말이요?』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임경부의 물음이었다.
『아니올시다. 오변호사의 보고는 십분지 구 까지는 사실이었고 십분지 일—— 여분의 아이가 사내라는 것과 그 후 해월이라는 소년 승려가 ×천읍으로 백영호씨를 찾아 왔다는 것만이 거짓이었지요!』
『그러면 오상억씨는 대체 무슨 이유로……』
『복수귀 해월을 어디까지나 사나이로 인정시키기 위하여 ——』
『그것은 또 왜요?』
『임경부와 아울러 세상의 신임을 독차지 해온 「아마츄어」탐정 오상억 변호사는 한꺼풀 가면을 벗기면 악마와 제자 —— 살인귀 주은몽에게 영혼을 팔아먹은 악인입니다!』
『엣?』
하고 또 한번 놀라는 임경부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오상억의 입으로부터 퍼붓는 듯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핫 핫 핫 핫 『 , , , —— 그래 유불란씨는 대체 어떠한 증거를 가졌기에 나를 가르쳐 악마의 제자라고 ——?』
『잔소리 말아! 홍서방의 입으로부터 엄씨와 백씨의 비밀을 알고난 너는 비밀이 다시 다른 데로 누설될까 무서워서 홍서방을 부부암으로 끌고 나가서 영원히 그의 입을 봉해 버렸다. 그러나 귀신이 아닌 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너와 홍서방이 이층에서 여분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홍서방의 전처 딸 —— 다년 간 곡마단에 따라 다녔던 벙어리 딸이 컴컴한 층층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기 아버지 홍서방의 입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기구한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포켙」에서 한개의 원고지 쪼각을 꺼내어 「테이블」위에 펼쳐 놓았다.
『자자, 이것이 어제 신의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천읍 홍서방의 집을 방문하여 얻은 증거품이다. 나와 그 벙어리 사이에 주고 받은 필담(筆談)의 일부분이니 네 눈으로 똑똑히 읽어보라!』
거기에는 소학교 이삼 학년 정도의 글씨보다도 더 유치한 필적으로 다음과 같은 몇 줄이 씌어 있었다.
『다행이 그 벙어리는 다년 간 「써 ― 커스」에 따라 다니면서 가장 정확한 독순술(讀唇術)을 배웠기 때문에 그 때의 대화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엿듣고 있었던 것이 너의 악운의 최후였다!』
그때 바로 옆방 서재에서 요란한 전화 소리가 방안을 울리었다.
임경부가 옆방으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더니 다시 뛰어 나오면서
『유불란씨 전화 받으시요.』
하였다.
『아 그러면 ——』
하고 서재로 뛰어 들어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다 보며
『임경부께서도 인젠 명탐정 오상억 변호사를 체포할 용기가 생겼을줄 믿
『예 아버지는 분명히 에미나이(계집애란말)라고 그랬어요.』
『애기중이 찾아왔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왜 죽었는지 몰라요. 순사가 그러는데 무서운 중놈이 죽였대요.』
『예 그 양복쟁이(오상억을 가리침)하고 둘이서 어디로 나갔다가 부부암에서 중놈한테 총에 맞아 죽었대요』
습니다!』
하고 오상억을 경계하라는 의미의 말을 남겨놓고 안으로 들어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그것은 서장으로부터 ×× 온 전환데, 아까 유탐정이 열차 안에서 체포한 오첨지를 부하들이 아무리 취조를 해도 통 함구불언이라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유탐정의 의견을 듣고자하는 전화였다.
그래 유탐정은 잠깐 생각하다가
『그러면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응접실로 들어오면서
『자아, 그러면 오상억! ××서로 가서 오래간만에 아버지를 만나보지!』
『엣? 아버지?』
새파랗게 핏기를 잃어 버리는 오상억의 얼굴!
『뭘 그리 놀라는 거야? 저 싯누런 이빨을 가진 오첨지 말이야, 오첨지!』
앗! 그 순간 옆에 지키고 섰던 임경부를 단 한주먹에 쓰러뜨리고 비조처럼 들창을 휙하고 넘어가는 오상억의 몸뚱이!
『앗!』
그러나 몸뚱이는 창밖에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를 잡고 그네처럼 휘익하고 이층에서 정원 잔디밭 위에 툭 떨어졌다.
『앗! 저 놈을 잡아라!』
상반신을 들창으로 내밀고 미친 듯이 외치는 임경부 ——
『어이, 제군! 저 놈을 잡아라! 오변호사를 잡아라!』
임경부는 커다란 목소리로 다시 한번 고함을 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때는 사복한 형사, 정복한 순경들이 모두 아래층 현관 옆 임시 휴계실에 모여 앉아서 해월의 이야기에 한층 꽃을 피우고 있을 때여서 뜨거운 햇볕이 내려 쪼이는 정원에는 사람의 그림자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 저놈이……』
하고 임경부가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부리나케 복도로 뛰어 나갈 때는 오상억은 벌써 현관 옆에 멎어있는 자동차를 향하여 질풍처럼 달려가서, 운전대에 오르자 마자 우윽하는 「엔진」소리와 함께 정문 밖으로 휘익하고 빠져 나가고 있었다.
『뭣들을 하고 있느냐 말이야? 빨리, 오변호사를 따라라!』
미친 듯이 날뛰는 임경부의 목소리가 아래층 현관에서 들려온다.
그 소리와 함께 박태일 부장을 선봉으로하고 사복, 정복의 경찰들이 대경질색하여 정원으로 뛰어 나왔다.
『어찌된 일입니까?』
『오변호사가 무슨……』
경찰관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전혀 꿈결같다는 표정으로 각각 자동차와
「오 ― 토바이」에 분승하였다.
『잔소리 말고 저 놈을 따라라! 오변호사를 잡아라!』
박부장과 함께 자동차에 올라 탄 임경부의 벽력같은 호령 소리!
「오 ― 토바이」 두 대와 자동차 한대는 「엔진」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정문 밖으로 기어나간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오상억의 자동차는 명수대 고개, 넓은 신작로로 한강 인도교를 향하여 황진을 날리면서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때는 무더운 여름날, 서편 하늘에 기울어진 뜨거운 햇볕이 무섭게 내려쪼이는 오후 다섯시경 —— 유불란 탐정은 홀로 이층에 남아서 마치 재미있는 서부활극을 눈앞에 보듯 들창에 상반신을 의지하고 쫓고 쫓기는 자의 그 흥분한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그때 다릿목까지 다다른 오상억의 자동차는 바른편으로 급 「커-브」를 하여 한강 다리 위를 그야말로 번개같이 달리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경찰대의 일행 —— 오상억의 자동차가 인도교를 다 건넜을 즈음에야 경찰대는 비로소 다리 한복판까지 따라왔다.
이윽고 쫓기는 오상억의 자동차도 보이지 않고 따르는 경찰들의 「오 ―토바이」도 보이지 않는다.
유불란은 얼마 동안 그 고요한 방안에 우두커니 서서 한강일대를 꿈꾸는 사람처럼 머엉하니 내려다 보다가
『후우!』
하고 마침내 기나긴 한숨을 지었다.
『오상억이 만일 악인의 편이 아니고 선인을 위해서 활동을 한다면 그는 필시 만인이 우러러 볼만한 명탐정의 소질을 가졌건만! 아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돌연 들창 옆을 떠나 옆방 서재로 뛰어들어갔다. 황급히 전화의 수화기를 들은 유불란은
『광화문 ×××××번!』
하고 불렀다.
그것은 분명히 효자동 황세민 교장의 집 전화번호였다.
『황교장이십니까?』
『네, 황세민입니다. 누구십니까?』
『유불란이 올시다. 못 뵈온 동안 안녕하십니까?』
『예, 그저……』
『그런데 이렇게 전화를 건 것은 황선생을 가장 놀라게할 소식을 한가지 전하려고 ——』
『아 무, 무슨 소식이요?』
『지금 황선생 틈이 계십니까? 계시거든 ——』
『아 틈이야 얼마던지 있지요만…… 대체 놀라운 소식이라니……』
『황선생 정말 놀라시지 마십시요!』
『아, 글쎄 무 무슨……』
『기쁘고도 슬픈 소식!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 년 전 ×천 부부암에서 영원히 헤어진 엄 여분이가 낳은 자식과 만나보고 싶으시지 않으십니까?』
『엣?……』
『황선생! 황선생! 그러기에 처음부터 놀라시면 안된다고 제가……』
『아니, 여분이가, 여분이가 자식을 낳았단 말이요? 누구요? 그 애가 대체 어디 있오? 계집애요? 사내요? 어서 이름을……』
『따님입니다!』
『딸? 그래, 그 애가 지금 어디 있오? 어디서 살고 있오?』
『자하문(紫霞門)밖에서 지금 행복된 가정을 이루고 있읍니다. 제가 이제 곧 선생을 그리로 모시고 가겠읍니다 ——.』
하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황세민 —— 아니 백문호의 딸이 자하문 밖에서 행복된 살림을 하고 있다는 유탐정의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의외의 선언이었다.
한강 인도교를 넘어선 오상억의 자동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시내를 향하여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 오상억의 자동차에서 약 삼백 미터 가량 떨어진 경찰대
『포대에 든 쥐다! 저 놈을 체포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살게 잡아야만 한다!』
임경부는 혼잣말로 그렇게 외쳤다.
『그런데 대체 어찌된 셈입니까? 오변호사가 ——』
하고 묻는 박태일 부장에게
『음 —— 자세한 이야기는 후에하고……빨리 빨리! 속력을 좀 더 내봐!』
행길 양편에는 길 가던 사람이 우뚝 멎어 이 처참한 추격전에 눈을 둥그렇게 떴다.
거리에선 고오 「 ·스톱」의 「시그날」을 무시하고 달리는 오상억의 자동차. 그럴 때마다 교통순경의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따라오다가 그만 사라지곤 한다.
이리하여 그들의 자동차가 거의 경성역 까지 다달았을 즈음에는 그들의 간격은 삼백 미터에서 이백미터로 단축되었던 것이다.
오상억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과연 이 맹렬한 경찰대의 추격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 아아, 그 때 오상억으로서는 실로 불리한 광경이 하나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오상억의 자동차가 남대문을 지나 조선은행 쪽으로 향하여 달리고 있을 그 때, 오상억과 임경부 사이에 무서운 추격전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서에서는 무장한 경찰대 수 십명을 황금정 네거리에 수비시켜 놓았던 것이다.
조선은행 앞까지 질주해온 오상억의 자동차는 그만 하는 수 없이 거기서 멎어 버리고 말았다.
황금정 네거리에서부터 수 십명의 경찰대가 총부리를 나란히 하고 오상억의 자동차를 향하여 밀물처럼 몰려온다.
앗! 왼편 부청 앞으로 빠지는 길목에도 경찰대의 수풀, 수풀!
앗! 임경부 일행의 「오 ― 토바이」와 자동차가 백 미터 뒤에 절박하였다.
아아, 함정에 빠진 짐승과도 같은 운명의 오상억! 전후좌우로 밀물처럼 다가드는 총부리 총부리!
앗! 오상억은 마침내 자동차에서 뛰어 내렸다. 앞에도 경찰관 뒤에도 경찰!
그것뿐인가, 장소가 극히 번화한 본정 입구라, 순식간에 모여든 군중의 아우성 소리!
『앗! 저 놈이 권총을 꺼내 들었다!』
『으와, 으와……』
하고 떠드는 군중의 부르짖음!
앗! 위험천만! 오상억은 마침내 「피스톨」을 휘저으면서 M백화점 앞 넓은 마당을 끼고 본정 입구를 향하여 다람쥐처럼 달음박질 친다.
『으와아 ——』
하고, 떠들면서 뒷걸음질을 하는 군중의 물결 —— 그러나, 아아 본정 입구에도 경찰대의 총부리!
하늘로 오르거나 땅속으로 잣거나 오상억의 취할 길은 두가지 중의 한가지뿐 —— 때는 바로 여섯시 —— M백화점의 페관(閉舘) 「싸이렌」이 울리기 바로 직전이다.
그 순간 백화점에서 밀려 나오던 손님들이
『으악!』
소리를 치면서 물결이 칼로 베이 듯 양쪽으로 갈라섰다. 오상억이 권총을 휘두르면서 백화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던 때문이다.
아아, 그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미친듯이 날뛰는 오상억의 손으로 부터 한시바삐 권총을 빼앗아야만 하지 않는가!
벌떼처럼 떠들어대는 군중을 헤치며 오상억의 뒤를따라 부리나케 쫓아 들어가는 것은 분명 임경부와 박태일 부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백화점 안으로 따라 들어갔을 때는, 벌써 오상억의 뒷 모양이 지금 마악 윗층으로 올라가려는 「엘레베이터」안으로 사라졌을 때였다.
『앗! 그 「엘레베이터」멎어라!』
임경부의 부르짖음이 점내를 우렁차게 울리었다. 그 고함소리와 함께 일단 움직였던 「엘레베이터」가 멎지를 않겠는가!
그러나 다음 순간, 「엘레베이터·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버렸던 것이다.
폐관 직전이었으므로 내려오는 손님들은 많고 올라가는 손님은 하나도 없는 그 「엘레베이터」안에는 종이장처럼 새파랗게 변한 「엘레베이터·걸」
의 얼굴과 그 「엘레베이터·걸」의 가슴에다 한자루의 권총을 겨누고 서 있는 오상억의 얼굴이 있을 뿐, 손님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엘레베이터」를 중심으로 하고 멀리 반원(半圓)을 그린 경찰대 —— 오상억과 경찰대는 지금 「엘레베이터」의 쇠창살 한 겹을 사이에 두고 그 쇠창살을 통하여 서로 흘겨보면서 마주 섰다.
『오상억! 그 소녀의 가슴으로부터 권총을 내려라!』
하고 그 때 임경부는 가장 엄숙한 목소리로 명령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처럼 오상억의 얼굴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오상억! 권총을 걷우라!』
임경부는 다시 한번 명령하였다. 그러나 오상억의 「피스톨」은 여전히 소녀의 가슴을 겨누고 있더니 돌연 권총부리가 휙 돌아섰다.
쇠창살 밖으로 경찰들을 향한 총부리!
『으와 ——』
하고 떠들면서 한발자욱씩 뒷걸음질 치는 경찰들 —— 그 순간 소녀를 옆으로 물리친 오상억의 왼편 손이 문 옆에 달린 「스윗치」를 눌렀다.
윗층으로 휙 하고 올라가는 「엘레베 ― 터」 ——
『앗! 저놈이 윗층으로!』
하고 층층대로 뛰어 올라가는 경찰들의 물결 ——
『각층에 몇 사람씩 지켜있어야 한다!』
임경부의 고함소리 —— 이층에서 삼층, 삼층에서 사층 ——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엘레베이터」는 옥상까지 기어 올라갔을 때였다.
이리하여 경찰들이 옥상까지 뛰어 올라 왔을 때, 그들은 실로 이상한 광경을 눈앞에 보고 놀랐다.
『앗……저 놈이 저기를……』
하고 고함치는 박태일 부장의 말에, 그가 손가락질하는 방향을 사람들은 일제히 쳐다 보았다.
이 M백화점으로 말하면 요즈음 창설 이십 주년 기념으로 할인 대매출로 손님을 끌고 있었는데, 거기 대한 선전광고로 매일처럼 이 옥상에서 『창설 이십 주년 기념! 할인 대매출』이란 깃발이 달린 커다란 「애드바 룸(廣告球(광고구)」을 띄웠다.
그런데 지금 오상억은 그 「애드바룸」의 줄을 마치 곡마사처럼 발발 기어 올라가고 있지를 않는가!
우체국 앞 넓은 마당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이 갑자기 으와 으으와 하고 떠들기 시작한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멀리 쳐다보이는 백화점 옥상에서 가는 줄을 타고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가고 있는 사람의 그림자!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노릇인줄을 군중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 그러냐 하면, 사나이가 「에드바룸」까지 다다르려면 적어도 삼십 미터는 더 올라가야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에드바룸」까지 올라가기 전에 경찰들이 아래서 풍선(風船)의 줄을 감으면 그만이니까 ——이 광고풍선은 아시다싶이 밑에는 외줄이나마 위에 올라가서는 풍선을 잡아맨 여러줄이 합해졌으므로 거기까지 올라가면 그 합해진 줄과 줄 사이에 넉넉히 힘 안드리고 사람 몸뚱이 하나가 들어 앉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올라가기에는 적어도 반 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 동안에 경찰들은 아래서 줄을 감을 것이 아닌가.
이것이 그렇지 않아도 흥분된 군중의 가슴을 더 한층 짜릿짜릿하게 했다.
아아 저것이 대체 『 , 어찌되나? 위까지 올라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람들은 사나이가 한시바삐 경찰들에게 붙들리는 것 보다도 그 어떤 곡예사 같은 재주를 보여주기를 더 한층 기대하면서 마음을 조였다.
앗, 과연 사람들의 추측은 들어 맞았다.
사나이가 풍선줄 약 절반 쯤 기어올라 갔을 즈음에 경찰들은 줄을 감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 때까지도 조금씩 조금씩 기어 올라가던 사나이의 조그마한 몸뚱이가 반대로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가!
그것은 비록 예기하였던 바였으나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어가면서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고 온 몸이 형언할 수 없는 흥분에 휩쓸려 버리는 것이었다.
일분, 이분, 오분, 십분 —— 사람들은 점점 커지는 풍선을 머리 위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커지는 풍선과 정비례하여 사나이와 경찰들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 때 군중은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때까지 조금이라도 올라가고자 애쓰던 사나이의 몸뚱이가 이번에는 꼼짝도 하지않고 한 곳에 잠잠히 멎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사나이의 손은 자기 발밑의 줄을 자꾸 어루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앗! 저 놈의 손에 칼이……』
망원경으로 쳐다보던 한사람의 점원이 돌연 그렇게 부르짖었다.
아아, 오상억은 자기의 몸뚱이가 땅에 까지 내려오기 전에 「에드바룸」의 줄을 끓으려는 것이었다.
한자 두자 내려오는 몸뚱이! 한오리 두오리 끓기는 밧줄!
그러나 그 순간 사람들은
『으악 ——』
하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둥실하고 하늘로 떠 올라가는 사나이의 몸뚱이!
마침내 밧줄은 끓기었다.
『으와! 저놈 봐!』
『저런 대담한 놈 봐!』
『저 놈이 저러면 잡히지 않을텐가?』
넓은 마당에 모여선 군중의 물결은 저마다 뭐라고 떠들면서 폭풍우와 같은 흥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줄을 끓긴 애드바룸 「 」은 점점 상공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한다. 사나이는 다시 위로 한 발자욱 두 발자욱 기어 올라간다.
아아, 그것은 실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하는 무서운 곡예(更藝)였다. 전 생명을 내걸고 하는 너무나 무시무시한 공중 비행이었다.
상공에는 그래도 바람이 있나보다. 풍선은 오상억의 조그마한 몸뚱이를 달고 차츰차츰 서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풍선은 어느 듯 조선은행 상공으로 옮아왔다. 풍선을 따라 역시 그 편 쪽으로 밀려가는 사람들의 물결!
아우성 소리! 으와, 으와……
그러나 마침내 그 커다란 광고풍선이 「풋볼」만큼 적어졌을 때, 망원경을 가진 어떤 사나이가 돌연 부르짖었다.
『저 놈이 마침내 올라가 앉았다! 줄이 합해진 그 사이에 마치 그네를 타듯이…… 아 저놈이 웃는다! 양복소매로 이마의 땀을 씻는다! 저 놈봐! 저런 대담한 놈!……』
사람들 사이에는 거기서 망원경 약탈전이 전개되었다.
이 전대미문의 대곡예사의 공중비행! 이 소문이 어느 듯 서울장안의 골목 골목까지 전파 되었다. 담위에 올라간 사람, 지붕위에 올라간 사람, 나무 위에 올라간 사람……
풍선은 그 이상 더 올라갈 줄을 몰랐으나 바람이 서북쪽으로 이동하는 때문에 얼마 후에는 부청까지 옮아 왔다.
M백화점에서 부청까지는 그리 멀지않은 거리였으나 원체 바람이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삼십분 이상의 시간이 경과 되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푸로펠라」소리가 들리었다.
『앗! 비행기다! 비행기가 떴다!』
그것은 ××일보사의 비행기 —— 비행기는 「애드바룸」을 중심으로 하고 마치 맴돌듯이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것은 약 한시간 후에 배포된 ××일보사의 호외 기사의 한 줄거리지만, 그 때 비행기 「떠글라스」를 타고 대공(大突)의 악마 오상억의 심경을 타진코자 나타난 것은 ××일보 사회부장과 그의 부하인 민완기자 정대호였다.
그러나 「푸로펠라」소리에 대화는 불가능이고 다만 풍선의 주위를 돌면서 오상억의 모양을 관찰했을 뿐이었다.
—— 오상억이 앉은 자리는 비교적 편안하였다. 위에서 내려온 이십여 오리의 줄과 밑둥의 줄이 합해진 사이에 몸을 올려놓고 그 어여쁜 부처님과도 같은 얼굴에는 때때로 미친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음이 떠올랐다. 멀리 발 밑에 군중을 내려다 보고, 자기 코 앞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무리들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오후 일곱시, 약 열시간 밖에 부 유력(遊浮力)이 없다는 이 불완전한 광고 풍선으로부터 「까스」가 새어나는 모양이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풍선을 문득 쳐다보는 오상억의 어두운 얼굴 빛! 풍선은 어느 듯 광화문 네거리 위로 옮아왔다.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 「포켙」에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어 거기다 만년필로 무엇인가 한 줄 쯤 기록하여 그것을 허공 중에 날리는 것이다. 그것이 한장뿐이 아니고 두장, 석장, 열장, 스무장 —— 이상이 ××일보사의 호외기사의 한 대목이었으나, 그 때 광화문에서 총독부 앞으로 밀려가는 군중의 머리위로 흰 나비처럼 팔락팔락 내려오는 종이 조각을 주은 사람이 있다.
아니, 그와 같은 종이조각을 주은 사람이 한사람뿐이 아니었다. 이 모퉁이에서도 줍고 저 모퉁이에서 줍고……
그 종이조각을 향하여 쇄도하는 군중! 거기에는 대체 무엇이 적혀 있었을까?
은몽아, 잘 있거라!
은몽아, 잘 있거라!
아아, 오상억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는 풍선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운명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 주은몽에게 최후의 작별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은몽은 벌써 그 보다 먼저 죽지 않았던가?』
이와같은 새로운 의문이 사람들의 가슴을 사로 잡았다.
그것은 실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문구였다.
해는 서산을 넘는다. 풍선은 총독부를 지나 청운동 쪽으로 이동하면서 스름스름 아래로 내려온다.
「풋볼」만 하던 풍선이 이제는 한결 커졌다. 대바구니만 하여 보인다.
이대로 가면 오상억은 풍선과 함께 자하문밖 근방에서 완전히 땅위에 내려앉을 것이다. 사람의 파도는 아우성 소리와 함께 효자동 쪽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