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26장
黃齒人[황치인] 逮捕[체포]
편집『호외! 호외!』
『공작부인 주은몽의 살해!』
『해월의 최후의 발악!』
『폭로된 해월의 정체!』
『살인귀 의학박사 문학수!』
밤 열 두시가 가까운 서울장안의 거리에는 앞을 다투는 도하의 각 신문 호외 조각이 난무했다.
눈을 부비면서 호외를 드려다 보는 경성시민 칠십 만은 세계대전이 터진 것 이상으로 놀라고 흥분하고 무서워하였다.
각 신문사에서 제일 호외, 제이 호외, 제삼 호외 ─ 이렇게 연겊어 배포하는 호외의 벼락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하루밤을 무서운 흥분 속에서 뜬 눈으로 밝히었다.
아아, 그것은 실로 의외에도 의외에도 저 저릿저릿한 살인귀 해월의 정체가 의학박사 문학수 그 사람이었다니…… 이게 대체 꿈인가, 생시인가?
칠십 만 경성시민의 충혈된 눈동자는 이 청천벽력 같은 사실에 한결같이 엽기적, 탐정소설적 흥분에 사로잡혀 호외 활자를 한자도 놓지지 않고 읽었다.
거기에는 해월을 체포하는 순간 오상억 변호사의 대담하고도 민첩한 행동과 아울러 그의 공적이 역력히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는 또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공작부인 주은몽의 눈물겨운 최후와 함께 무려 사람을 다섯명이나 죽인 세세의 살인마 해월의 무서운 최후가
「센세이쇼날」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미상한 점이 많았지만 삼청동 공원에서 정란을 죽인 것도 문학수 자신었을 뿐더러 오상억을 ×천읍까지 따라가서 홍서방을 죽인 것도 그 였으며 백영호씨와 백남수를 죽인 것도 그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오상억 변호사의 맹렬한 추격에 못견디어 격투 중에 그만 쏘느라고 쏜 것이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은몽이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간 눈물겨운 유서를 읽으므로서 약 두달 동안 산 송장으로서의 은몽의 생활에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니 , 이제 은몽의 유서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았다.
……………………………………
오선생(상억)!
저는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하였읍니다. 오선생이 저를 위하여 아무리 노력하신다 하더라도 저는 도저히 해월의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탐정께서는 저의 생명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단언 하시었읍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 어떤 허황한 공상밑에서 흘러나온 그릇된 단언일 것입니다.…… 아아 저는 죽어요! 저는 불원간 그놈의 칼날에 무참히 죽을거예요.
오선생! 피눈물이 나도록 쓸쓸해하고 무서워하던 저의 마음을 가장 다사롭게 위로해 주신 오선생! 제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모하고자 하던 오선생!
저의 이 무서운 고독을 잘 이해하여 주시는 분은 이 넓은 세상에서 오로지 오 선생 뿐이었읍니다.
그러한 오선생께 저는 무엇을 기념물로 남겨 놓고 죽어야 할까요?
오선생! 저의 일신에 속한 모든 것은 오선생의 것이었읍니다. 언젠가 오 선생은 만주 목단강 유역에 사 두신 오십 만 평의 토지를 개간하기 위하여 십만 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신 기억이 있지 않읍니까?
오선생! 저를 경멸하지 마십시요. 두달 동안 저를 위하여 모든 정력을 기우려 주신 오선생께 저의 명의로 되어 있는 이 주택을 오선생의 만주개발 자금의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 주시면 저로서 이상 더 큰 기쁨이 없겠읍니다. 그러나 현가 오만원 밖에 안된다는 이 주택이 얼마나 오선생의 도움이 될런지…… 그러나 이것이 저에게 속한 재산의 전부이오니 어찌할 수 없소이다. 하여튼 저에게 속한 모든 권리를 오선생께 들인다는 말을 남겨 놓으므로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코자 하는 은몽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월 ×일 주은 몽 ……………………………………
오상억 변호사는 사실 은몽에게 있어서는 애인인 동시에 은인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은몽의 그 여자다운 고운 마음씨에 눈물을 흘렸다.
『은몽은 마침내 죽었다! 해월도 마침내 죽었다!』
이러한 흥분 가운데서 사람들은 무서운 하루밤을 해월의 이야기로 새웠다.
그즈음 ─ 오전 일곱 시 쯤해서 오상억과 임경부가 마주 앉아있는 명수대 은몽의 집으로 한 장의 전보가 배달되었다.
그것은 처음엔 삼청동 정란에게로 온 전보였으나 정란은 이미 죽고 받을 사람이 없는 것을 짐작한 배달부는 곧 명수대 임경부에게로 재 전달한 것이었다.
임경부와 오상억은 곧 전보를 떼어 보았다.
남철이라니 아 『 …… 팔년 전 실종선고를 받은 남수군의 형이 아닌가?』
하고 외치며 오상억과 임경부는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팔년 동안이나 소식이 두절 되었던 백영호씨의 맏아들 백남철(白南鐵)이 오후 두시 오십분 경성역에 도착한다는 전보가 온지 약 사오 시간 후의 일이었다.
신경(新京)을 출발한 특급 「노조미」가 봉천, 안동현, 신의주, 평양을 거쳐 황주, 사리원을 지났을 때는 거의 정오가 가까웠을 때였다. 삼등 객실은 입추의 여유도 없는 만원이었고 이등객실도 빈자리라고는 두 서넛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노조미」이등객실 맨 구석에 앉아서 아까부터 열심히 신문을 읽고 있는 한사람의 신사가 있었다.
공작부인 주은몽의 살해와 살인귀 해월의 체포 기사로 가득찬 신문지를 손으로 활짝 펴들고 읽기 때문에 신사의 얼굴은 신문지에 가리워 통 보이지 않았다. 아까부터 열심히 해월의 기사를 읽고 있는 그 신사는 대체 누구인가? 보건데 그는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는 구실로 신문지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자 하는 것이 아닌가?
과연 신문지 한 복판에는 일전짜리만한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그의 쏘는 듯한 눈초리는 그 구멍을 통하여 뚫어질 듯이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구멍과 그의 눈초리를 맺는 일직선 위에 저편 삼등실로 통하는 「도어」가 있었다.
이리하여 그 조그마한 구멍으로 사람들의 출입하는 광경을 주의해 보고 앉아 있는 그 신사 ― 그는 탐정 유불란 그 사람이었다.
그러면 그는 대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누구의 행동을 살피고 있을까?
그는 아까부터 그 어떠한 인물의 출현을 이 조그마한 신문지 구멍으로 내다 보면서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의 계획은 들어 맞았다.
차가 사리원을 지나고 신막을 지나 개성역에 도착하였을 때, 혼잡한 「프렛트․홈」으로부터 이 이등객실에 올라 탄 한 사람의 수상한 사나이가 있었 하르빈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남수군의 횡사(橫死)소식을 듣고 놀랐다. 오늘 오후 두 시 오십 분 차로 경성역 도착. ─ 백남철─다.
캡 을 깊이 눌러 쓰고 「 」 기다란 양복 저고리에 바른손을 쓸어 넣은, 나이가 한 오십 삼 사 세쯤 되어 보이는 사나이 ─ 왼편 볼 위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추악한 칼자리가 있는 사나이 ─ 그것은 틀림없이 저 싯누런 치아를 가진 사나이었다.
사나이는 「도어」를 열고 이등실로 들어왔다. 그는 마치 빈 좌석을 구한다는 얼굴로 양편의자에 앉아있는 손님들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씩 점검하면서 천천히 이 편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중에 한 둘 빈 좌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더 좋은 자리를 구한다는 얼굴로 마침내 맨끝, 맨구석에 앉아 있는 유불란 앞에 까지 걸어 왔다.
그는 열심히 신문을 읽고 있는 유불란의 얼굴이 무척 마음에 걸리는 모양인지 마침 비어 있는 유불란의 바로 앞 좌석에 앉아버렸다.
그러나 신문지로 말미암아 유불란의 얼굴은 통 보이지 않는다.
기차가 개성을 떠나자, 사나이는 다시 한번 객실 안을 점검하 듯 살펴본 후에 「포켙」에서 담배를 꺼내 피어 물었다. 자기가 찾고자 하는 인물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수상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최후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모양이다. 바로 자기 앞에 앉아서 열심히 신문을 읽고 있는 유불란의 얼굴을 그는 아직 보지를 못 하였던 때문이다.
사나이는 기침도 해보고 머리도 기웃거려 본다. 그러나 유불란은 통 신문지를 내리우지 않는다.
사나이의 얼굴은 약간 초조한 표정을 띄우기 시작한다. 팔뚝시계를 드려다 본다. 두시가 거의 가까웠다. 기차는 어느새 문산역을 지난다.
그 때 마침내 사나이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이 차가 경성역에 도착하는 것은 두시 몇 분입니까?』
그러나 유불란은 대답이 없다.
『저 신문을 읽으시는데 대단히 죄송스럽읍니다만, 이 열차가 경성역에 도착하는 것이 두시 몇 분이지요?』
그래도 상대방이 신문을 내리우지 않는 것을 본 사나이의 눈동자가 그 어떤 위험을 느낀 듯이 번쩍 빛났다.
그 순간 ─ 사나이가 자기 바른편 손을 부리나케 양복저고리「포켙」에 쓸어 넣으려고 한 그 순간이었다.
『오첨지! 손을 움직여서는 안된다!』
사나이는 후다닥 머리를 들었다. 「포켙」으로 들어가려던 오른손이 중도에서 기운없이 멎어버렸다.
돈닢만큼 뚫어진 신문지 구멍으로 뾰족하니 나온 권총부리가 자기의 심장을 노리고 있지 않는가!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싯누런 치아를 가진 사나이 ─ 아니 오첨지는 놀라 그렇게 물었다.
『내가 찾고 있는 백남철이다!』
유불란은 아직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운채 지극히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엣?』
오첨지는 그 싯누런 이빨을 내보이면서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남철?』
『음, 팔년 전 실종선고를 받은 백남철이다!』
그러면서 유불란은 비로소 얼굴을 가리웠던 신문을 내리웠으나 아직도 신문지 속에 있는 「피스톨」은 오첨지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엣! 너는?』
그것이 유탐정의 얼굴인 것을 안 오첨지는 거기서 세 번째 놀랐다.
『놀랄 것 없어.』
유불란이 오첨지의 「포켙」에 손을 쓸어 넣어 예리한 단도 한 개와 「모―젤」한 자루를 꺼내어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본 오첨지는
『음─』
하고 싯누런 이빨을 갈았다.
『백남철이 돌아 온다는 전보를 친 것은 네 놈이었구나!』
하고 신음하면서 유불란의 함정에 손쉽게 빠져버린 자기를 무척 분해하였다.
『그래, 나를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야? 내가 무슨─』
하고 반항하려는 오첨지를 한번 흘겨 보고난 유불란은
『잔소리 말고 잠자코 있어!』
하고 낮으나마 힘있는 어조로 명령하였다.
사나이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으나 야수와도 같이 사납게 돌변한 그의 얼굴에는 틈만 있으면 달려 들고자 하는 무서운 기세가 알알이 떠올랐다.
그 때 유불란은 지나가는 차장을 불러 그의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 무엇인가 한참 동안 속삭이었다.
이윽고 열차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경성역 「프랫트․홈」에 멎었다.
그러나 유불란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줄을 모른다.
손님이 절반 쯤 내렸을 때, 아까 그 차장이 세 사람의 경찰을 이끌고 뛰어 들어왔다.
유불란은 자기에게 목례를 하는 경찰들에게
『수고스럽지만 이 분을 본서까지 정중히 모셔 가시요. 그러나 내가 정거장 밖에 나가기 까지는 여기서 잠깐 이대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유불란은 손수 「프랫트․홈」에 면한 「커―텐」을 전부 내리운 다음에 손님들의 뒤에 서서 천천히 기차에서 내렸다. 유탐정이 「프랫트․홈」에 내리자마자
『유불란씨가 아니십니까?』
하고 절반은 외치는 목소리로 혼잡한 손님들의 사이를 헤치면서 이리로 다가 오는 것은 임경부였다. 임경부의 뒤로 오상억 변호사도 따라온다.
『아, 어떻게?』
하고 유불란은 그들이 정거장에 나온 이유를 물었다.
『이차로 백남철씨가 도착한다는 전보를 받고 마중을 나왔는데……』
하는 임경부의 말에
『백남철?』
하고 유불란은 얼른 생각이 안난다는 얼굴을 지으며 상대방을 쳐다 보았다.
『저, 실종선고를 받은 백영호씨의 맏아들 말입니다.』
하고 옆에 있던 오상억 변호사가 말하였을 때야 유불란은 비로서 생각이 난다는 듯
『아, 아─』
하고 크게 한번 놀라 보이면서 물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하르빈서 우연히 신문지상으로 집의 소식을 알고 이 「노조미」로 경성역에 도착한다는 전보가 오늘 아침 정란씨에게 왔는데, 물론 그는 아직 정란씨의 살해 사실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요. ─ 사진만 가지고는 어디 똑똑히 얼굴을 알 수가 있어야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오상억과 함께 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일일이 점검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손님들이 전부 내리도록 찾아 보았으나 사진과 같은 얼굴을 가진 백남철은 통 발견할 수가 없었다.
『마중 올줄 알았던 정란씨가 보이지 않으니까 혹시 혼자 삼청동으로 갔을런지도 모르지요.』
하는 유불란의 말에 옳다 여기고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와서 자동차를 탔다.
『신문을 보았지요?』
하는 임경부의 말에
『네, 자세히 보았읍니다.』
하고 유탐정은 무거운 어조로 대답 한 후
『그러나 오상억씨는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한사람 죽였읍니다.』
하였다.
『엣?…… 그럼 해월은 다른 사람……』
하고 부르짖는 오상억 변호사의 놀라움은 실로 컸었다.
유불란은 대답이 없다.
자동차는 질풍처럼 은몽과 문학수의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명수대를 향하여 달린다.
『아니 그러면 문학수와 해월은 딴 사람이란 말씀이요?』
하고 임경부도 저윽이 놀란 얼굴을 쳐들었다.
『그렇습니다. 해월과 문학수는 전연 딴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유탐정의 얼굴은 무섭게 긴장되었다.
『그러면 대체 해월은……』
하고 재차 묻는 오상억의 물음에 유불란은 잠깐 동안 대답이 없다가
『글쎄, 잘 생각해 보시요. 문학수를 가르쳐 해월이라고 가정하면 대체 사건 전체는 어떻게 해결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그는 주홍빛 「만또」와 도화역자의 탈을 쓰고……』
하는 임경부에게
『물론 해월은 항상 주홍색 「만또」와 도화역자의 탈을 쓰고 나타나곤 했으나, 그렇다고해서 주홍색 「만또」와 도화역자의 가면이 곧 해월 자체는 아니지요.』
『그러면 누구……?』
그 때는 벌써 한강 인도교를 지난 자동차가 명수대 은몽의 집 앞까지 다다른 때였다.
세 사람은 황급히 자동차에서 내렸다.
사복한 형사, 정복한 경찰들이 이 집을 삥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동차에서 내리는 세 사람에게 인사를 한 후 평양으로 해월의 행적을 더듬으러 내려갔던 순사부장 박태일이 돌아왔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 때 현관으로부터 뛰어 나오며 세 사람을 맞이하는 박태일 부장은
『제가 어젯밤에 친 전보는 보셨을 줄 믿습니다만 ─』
하고 유불란과 임경부를 쳐다보며
『해월은 오년 전 분명히 황해도 구월산 계명사란 절에서 죽었읍니다.』
하고 해월의 죽음을 증명하는 여러 가지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아, 수고하였네!』
유불란은 그 한마디를 남겨놓고 문학수와 은몽의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에는 두꺼운 「커―텐」을 내렸고 그 「커―텐」을 통하여 들어오는 오후의 해볕이 백포(白布)를 씨워 놓은 두개의 시체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유불란은 은몽의 시체 앞에 우뚝 멎었다. 그리고 가장 공손한 태도로 잠깐 눈을 감고 은몽의 명복을 빈 후에 손을 내밀어 은몽의 얼굴로부터 백포를 살그머니 벗겼다.
백납처럼 하―얀 얼굴 ─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은몽의 얼굴에는 조금도 공포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고요히 잠든 천사처럼 거기에는 다만 평화스러운 안식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얼마동안 모든 사색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비장한 낯으로 은몽의 얼굴을 묵묵히 내려다 본다.
『아아 사랑스러운 악마!』
하고 중얼거리면서 벗겼던 백포로 얼굴을 일단 덮었다가, 그때 문뜩 무엇을 생각했는지 백포를 벗기고, 고요히 감은 은몽의 눈을 손으로 빌기집어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불란은
『엣?』
하고 놀라며 이번에는 이편 눈을 또 떠 보았다.
『음 ─ 그랬던가!』
그는 분주스러히 다시 백포로 얼굴을 가리워 놓고 흥분에 찬 얼굴로 방을 나왔다.
유불란은 대체 무엇에 놀랐으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처럼 흥분하였는가?…… 은몽의 두 눈을 빌기집어 본 그는 거기서 대체 무엇을 발견했는가?
독자 제씨여! 조금만 더 기다려 주기 바란다.
유불란의 흥분한 얼굴은 복도로 뛰어 나오자마자 다시 평시의 얼굴로 돌아갔다.
그는 저편 현관에 서서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는 임경부와 오상억을 데리고 이층 응접실로 올라갔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은 마주 앉았다.
유불란은 「테이블」위에 놓인 「시가렛 ․ 케이스」에서 「시끼시마」를 한 개 꺼내어 피어 물며
『사건은 이로 말미암아 완전히 해결을 지었읍니다!』
하고 임경부와 오상억을 쳐다 보았다.
『아니, 그건 문학수를 해월이라고 보지 않는 입장에서 말씀입니까?』
하고 묻는 오상억에게
『물론! 절대로 문학수씨가 해월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유불란씨는 대체 누구를 해월이라고……』
유불란은 이내 대답하기를 피하는 듯 들창 밖에 높다라니 솟아 있는 수양버들 가지를 물끄러미 내다보다가
『해월은 죽었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니 저어 오년 전 구월산에서 죽었다는 해월이 말씀입니까?』
『아니올시다! 해월은 어젯밤에 죽었읍니다.』
새로운 幻影[환영] 흡사 닭 쫓던 강아지 모양이었다. 은주와 박인해가 사라진 쪽으로 영훈은 털썩털썩 걸어 갔다. 옛 날 백연숙을 놓쳐 버렸을 때와 꼭 같은 허무감 속에서 영훈의 서글프고도 괴로운 영혼의 방랑은 다시금 시작되었다.
오후의 태양이 눈부시게 거리에 범람하고 있었다. 거리도 가로수도 사람도 자동차도 모두가 다 그 눈 부신 가을 햇빛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으나 영훈의 시각에는 은주의 환영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들어 오지 않았다.
낡은 환영과 새로운 환영이 영훈의 머리 속에서 그 위치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연숙에의 환영이 살아 있을 무렵에는 은주에의 환영이 색채를 띠지 못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주에의 환영이 발랄하게 살아 온 현재에 있어서 연숙에의 환영은 차차 퇴색하여 갔다.
이것은 실로 영훈 자신은 예기치도 못했던 정신 생활의 변모를 의미하고 있었다.
『나라는 인간이 불량한 탓일가?……』
영훈은 그렇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연숙에의 환영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켜 불량 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고영훈의 성실성을 가지고 이러한 환영의 고체가 야기 되었다는 것을 영훈 자신 슬퍼할 도리 밖에 없었다.
연숙과의 관계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십년 동안에 걸친 환영을 그대로 고히고히 기르므로써 은주에 대한 새로운 환영의 싹을 문질러 버리는 것이 도의적이고 또한 사건을 처리하는데 순서적이라고는 생각하면서도 은주에 대한 환영은 차츰 더 강렬해져 가는 것이었다.
광교 다릿 목에 있는 판자집으로 들어 가서 영훈은 꼬치 안주와 함께 벌컥벌컥 대포 술을 연거퍼 들이켰다. 몸의 심지가 빠져 나가 자즈러들 것만 같던 기력이 차차 밑힘을 얻으면서 기분이 조금 너그러워 졌다.
박인해와 달려 간 은주의 모습이 아까처럼 신경을 갈구라지게 긁어 쥐지는 차츰 않아 왔다.
그러한 갈구라진 신경을 은주도 가졌을 것이라고, 자기 몸을 한번 뒤채어 봄으로서 지나간 날의 은주의 불행했을 감정을 저울질하여 보는 마음의 여유가 점점 생겨 왔다.
『술이란 이래서 좋다.』
술 기운을 빌어 은주에의 환영을 영훈은 한사코 축소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었다.
『연숙을 열심히 생각하자!』
은주를 재빨리 잊어 버릴 수 있는 길만이 자기의 이 불행한 감정을 구하는 유일한 방도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훈의 의욕일 뿐, 감정은 아니었다.
『은주가 그처럼 재빨리 몸을 뒤챌 줄은 정말 몰랐다.』
판자집을 나서서 을지로 쪽으로 휘청휘청 걸어 가면서 영훈은 중얼거려 보았다.
『그처럼 재빨리 몸을 뒤챌 수 있는 한은주야 말로 가장 현대적인 여성의 한 타잎일는지 모른다.』
자기가 연숙에의 환영을 안고 있던 것처럼 은주도 박인해의 환영을 안고 있었던 것이 아닐가?……둘이가 다 딴 환영을 지닌채 이루워 졌던 결합 같이 만 생각키웠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것은 자기의 한낱 망상일 것이라고, 영훈에 대한 은주의 애정에 허위가 섞여 있었던 것 같지는 또한 않았기에 은주는 다만 자기의 불행한 감정을 한시바삐 처리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은주를 대할 면목은 이미 없어지고 말았다. 인제 새삼스럽게도 은주의 무릎 앞에 머리를 숙이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댔자 모난 은주의 성격으로서 용서할 감정도 나지 않을뿐더러 그것은 또한 영훈 자신의 욕망의 제시로서 상대편의 관용을 빌려는 뻔뻔스런 행동일 수 밖에 없었다.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자기의 과오를 절실히 느끼고 깨끗한 유리 그릇에서 이미 엎지러진 물일진대 그 물이 시궁창으로 흘러 들어 가건 뒷간으로 흘러 들어 가건 흘러가는 대로 흘러 갈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있을 수 없었다.
『백연숙과의 금후의 관계가 아무리 불행한 결과를 맺을지언정……』
자기의 행동으로서 취해진 결과일진대 그 곳에 안주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결국은 연숙의 환영을 십년 동안 안고 살아 온 것처럼 한은주의 환영을 일생 동안 안고 살아 나갈 수 밖에 나에게는 없다.』
백연숙의 과오를 영훈은 결국에 있어서 용서할 것처럼 되어 있지만 영훈 자신의 과오를 은주에게 용서받을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했다. 남을 관용하는 수는 가끔 있어도 남에게 관용을 받을 생각은 도시 못하는 영훈이었다.
고영훈의 삶의 방도가 그만큼 옹졸하다면 옹졸했지만 자기 손으로 이루워진 비극은 자기 자신이 감수할 줄 밖에 영훈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아, 한은주는 정말로 가버린 것일가?』
은주가 자꾸만 그리워 졌다. 애정의 주류(主流)가 단 하루 동안에 이처럼 급변할 줄은 꿈에도 영훈은 몰랐다.
을지로 네거리까지 영훈은 왔다.
『어디로 갈가?……』
영훈은 걸음을 멈추고 어지러운 네길어름에서 두리번거렸다.
『갈 데가 없다. 한 곳도 없다.』
영훈의 마음은 완전히 주인을 잃고 있었다. 어제까지도 영훈의 마음 속에는 연숙과 은주의 두 여성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두 여성이 하루 사이에 한꺼번에 홀랑 날아 가 버리고만 것이다.
연숙은 인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연숙을 만난다는 것은 엎지러진 물이 마치 시궁창으로 흘러 들어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자꾸만 주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십자로 한 모통이에 멍하니 서서 갈 바를 모르고 두리번거리는데
『고선생님!』
맞은 편 「신여신」사 이층에서 소리가 났다. 머리를 후딱 들었더니 들창 밖으로 깍아중이 머리를 내밀고 사동이 열심히 손을 내졌고 있었다.
『어이.』
영훈도 손을 들어 보였다.
『사장이 부르셔요! 빨리 올라 오세요!』
그러는데 사동의 등 뒤로 백연숙의 얼굴이 나타났다. 말은 없이 연숙은 사동의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연숙의 그 은근한 인사가 영훈의 허둥거리던 마음 한 구석을 조금씩 조금씩 차지하기 시작했다.
네거리를 건너 영훈은 다소 취기있는 걸음으로 층층대를 올라 가면서 후딱 연숙의 육체를 생각하였다. 십년 동안에 걸친 아름다웠던 환영은 이미 완전히 사멸(死滅)해 버리고 있었다.
환영 보다도 먼저 육체를 생각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고, 영훈은 마지막 계단에 올라 서면서 격렬히 돌이돌이를 했다.
문을 열고 편집실로 들어 섰을 때는 이미 연숙의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사장님의 심부름으로 고선생님 댁에 갔었더랬어요.』
들어 서기가 바쁘게 소년은 보고를 해 왔다.
『그래?』
『바쁜 일이 계시다고 사장님이……어서 들어가 보셔요.』
영훈은 다소 무뚝뚝한 표정으로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커다란 사무탁자 앞에 앉아 있던 연숙이가 조용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아까보다도 좀더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영훈은 얼굴이 확근 달아 왔다. 그러나 고개를 든 연숙의 얼굴은 태연하였다.
『편히 쉬시는데 모시러 보내서 죄송합니다.』
익살맞은 동글동글한 목소리를 연숙은 냈다. 표정하나 까딱 없다.
닳아 올라 오는 얼굴을 가까스로 지탕하며 영훈은 천천히 연숙의 앞으로 걸어 갔다. 걸어 가는 영훈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져 있었다.
『왜 다방에는 나오시지 않았어요?』
까딱 없던 표정을 그제서야 풀면서 연숙은 반만큼 웃었다.
『………………』
대답은 없이 영훈은 연숙의 꽃피는 얼굴을 정면으로 물끄럼이 바라보았다.
『잊었어요?』
『아니오.』
영훈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럼……?』
『………………』
『그럼 왜 안 나오셨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니, 제 물음은 왜 안 나오셨냐는 말이예요.』
『공연히 나오기가 싫었읍니다.』
솔직한 대답을 영훈은 했다.
순간, 연숙의 반만큼 웃고 있던 표정이 후딱 굳어지며, 그리고 가만히 얼마 동안 석고상처럼 서 있다가
『알아 들을 것 같애요.』
했다.
『무슨 뜻인가요?』
『서로가 너무 솔직한 말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설명은 그만 두겠어요.』
무슨 뜻인지, 영훈도 알아 들을 것 같아서 잠자코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나도 한 꼬치……』
연숙은 손을 뻗쳐 영훈의 담배 갑에서 캬멜을 한 꼬치 빼 물며 영훈의 코 앞으로 바싹 닥아 섰다.
라이타를 켜 대려는 영훈의 손을 막고 영훈이가 문 담배 불에 자기 것을 갖다 대며
『빨아요, 힘껏!』
연숙도 담배를 빨아 불을 옮기며 영훈의 두 눈동자를 말끄럼이 쏘아 보고 있었다.
『빨리 붙여요.』
담배를 문 연숙의 빨간 입술이 너무도 눈 앞에 가깝다. 아름답던 환영은 이미 없고 연숙의 입술에 먼저 관능이 왔다. 건들여도 아끼지 않을 입술이기에 일부러 그런 포오즈를 취하는지도 몰랐다.
『왜 자꾸만 투정이야?』
담배를 빼 들기가 바쁘게 빨간 입술에서 영훈의 얼굴을 향하여 홱 연기를 뿜어 왔다.
『담배는 또 언제부터 피웠소?』
『지금 이순간부터……』
『왜?……』
『지나치게 솔직한 표정에는 연기라도 뿜어 줘야 개원해서……』
『………………』
영훈은 또 대답을 잃었다.
『말을 안 해도 다 알아』
『뭘 알아요?』
『환영이 깨진 게지.』
『………………』
『십년 간의 아름답던 환영이 하루 밤 사이에 조각 조각이야?』
『………………』
자기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연숙이가 차츰차츰 무서워 졌다.
『그렇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응?……』
영훈은 몰랐다.
『놀랄 것이 뭐가 있어요? 피장파장인 걸!』
영훈의 표정이 갑자기 얼어 붙기 시작하였다.
『그럼 연숙은 역시 장난으로……?』
『천만의 말씀이예요.』
『그럼……?』
『장난은 분명 아니지만……결과에 있어서 환영이 깨어진 것만은 나 역시 사실이야. 영훈씨의 환영이 아름답던 것처럼 내 환영도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그 사지판인 삼팔선을 넘어 온 연숙이었으니까요.』
『잘 됐소!』
영훈은 퉁명스런 대답을 뱉았다.
『잘 된 것도 없고 안 된 것도 없지요. 사람이란 누구든지 다 자기의 아름다운 환영을 실현 시켜 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 뿐이니까요. 노력의 결과가 어떠 하리라는 것은 해 봐야만 아는 일이구요.』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요부다!』
『노오!』
연숙은 격렬하게 부정을 하며
『나는 다만 나의 아름다운 이상을 실현시켜 봤을 따름이예요. 내 행동에 단 한가지도 거짓은 없었으니까요. 장난이라든가 누구를 일부러 유혹한 다든가, 그런 허위의 감정은 추호도 없었어요. 모두가 다 다급하리만큼 진실한 감정 문제였으니까요.』
『옛날의 백연숙이와 똑 같다.』
영훈은 그 어떤 의분을 느끼면서 배앝듯이 말했다.
『인간의 성격이라든가 취미라든가 좀처럼 변질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이 순간에 와서야 확실히 깨달은 것 같아요.』
『당신은 역시 비극의 주인공이다』
『아냐요. 비극의 제조가(製造家)일는지 몰라요.』
『불행한 성격이다.』
『그렇지만 별반 불행을 느끼지도 않는 성격이기도 한가 봐요.』
『연숙씨!』
영훈은 그 때, 다소 엄숙한 어조로 존칭을 써서 불렀다.
『네?』
연숙은 담배를 재떨이에 문질러 버리면서 미소 띤 얼굴을 가만히 돌렸다.
『이 순간에 있어서의 연숙씨의 명확한 마음의 풍경을 이야기해 주어서 대단히 감사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좀더 마음 고생을 했을는지도 모르니까요.』
『과히 뇌심하지 마세요. 영훈씨에게 대해서 취해진 내 행동이 어디까지나 순수했다는 건만 알아 주면 정말 나는 행복해요.』
『연숙씨의 또 하나의 색다른 행복을 빌며 연숙씨 옆에서 나는 영원히 떠나겠읍니다.』
『그럴 필요는 조금도 없지 않아요? 왜 내 옆에서 떠나야만 한다는 말이예요? 예기했던 환영이 다소는 깨졌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 영훈씨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예요.』
『……?』
영훈은 다시 한번 놀람을 금지 못했다.
『너무 심각히 놀랄 필요는 없어요. 영훈씨 역시 한은주만 없다면 나에 대한 환영이 다소 깨어졌다고 하더라도 백연숙의 존재를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지는 못할만한 가치는 있으리라고 믿으니까 하는 말이예요.』
백연숙이라는 한 여성이 이처럼 자기 자신에 철저하고 또한 상대방의 심정을 이렇게도 이해하여 줄 수 있는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영훈은 오늘에 와서야 분명히 깨달은 것 같았다. 십년전의 백연숙의 어림보다 십년이라는 세월의 애정의 경험을 쌓은 오늘의 연숙의 성장이 인간적인 깊이를 가지고 영훈의 관념적인 상식을 문지러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영훈의 연륜(年輪)에서 오는 어림과 남녀 관계에 대한 무경험은 백연숙의 경지를 이해는 하여도 도저히 몸소 보조를 맞추어 나갈만한 확고한 인생관의 형성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훈씨가 내 옆에서 떠나야만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지만요. 그렇지만 구태여 그래야만 되겠다면 그것 역시 하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내가 지금 . 영훈씨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영훈씨가 제 입술에 다소간의 유혹을 받을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나도 그런 것을 영훈씨에게서 요망한다는 말이예요. 담배를 버려요.』
백연숙에 대한 세로운 환영 하나를 그 순간, 영훈은 불현듯 발견하였다.
그냥 물고 있는 담배를 손을 뻗쳐 연숙은 빼앗아 가지고 휙 재떨이에 던졌다.
『나는 이 순간, 영훈씨의 포옹을 원하고 있어요.』
영훈은 한 걸음 닥아서며 아무런 저항 없이 연숙의 상반신을 품 안에 넣었다.
『힘껏!』
『………………』
『입술!』
『………………』
둘이는 그러한 자세를 오랫 동안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