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月(해월)의 正體(정체)

편집

그보다 약 한시간 전 ─

「애드바룸」이 부정 상공을 부유하고 있을 즈음, 소연한 시내를 등지고 자하문 고개를 넘어가는 두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젊고 한 사람은 늙고 ── 앞선 젊은 사람은 탐정 유불란이었고 뒤선 늙은이는 교장 황세민이었다.

고개 마루턱을 넘으면서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 주위를 배회하는 비행기도 보인다. 군중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글쎄, 저 놈이 어쩌자고 저런데를 올라간담! 저러면 잡히지 않고 견디어 낼 수가 있을까.』

황교장의 중얼거림이다.

『말하자면 범죄자로서의 일정의 허영심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지요. 아, 저 풍선이 차츰 이편으로 이동해 오는 군요.』

『바람이 이쪽으로 부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

하고 황교장은 ── 아니, 백문호씨는 유불란과 같이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까도 여러번 물었지만, 대체 내 딸이 어디서 살고 있단 말이요? 인제는 뭐 그렇게 감출것 없이 탁 터 놓고 얘길해도 괜찮을텐데 ──』

하고 유불란의 옆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게 아닙니다. 황선생께 아니 백선생께, 일부러 감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실은 나 역시 확실한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옇든 가봐야 알지요. 내 생각 같아서는 백선생의 따님이 확실히 그 문영태(文榮泰)라는 소경네 집에 있으리라고 ──』

『뭐, 소경?』

하고 백문호씨는 저윽이 놀랐다.

『네! 놀라지 마십시요. 그 문영태라는 소경이 백선생의 사위일 것입니다.』

『아니 뭐? 그래 그 소경이 내 딸의 남편이라구요?』

하는 백문호씨에게

『거듭 놀라지 마십시요. 백선생의 따님도 역시 소경이랍니다!』

하고 어떤 의미 깊은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내 딸이 소경?…음 ──』

백문호씨는 어디까지나 기구한 자기의 일생을 암담한 마음으로 회상해 보았다.

『내 딸이 소경이라구요? 그게 참말인가요? 참말이라면 언제부터 소경이 되었읍니까? 유불란씨, 모든 것을 속 시원히 빨리 이야기해 주십쇼! 소 경……소경……』

허둥지둥하는 발걸음을 단장으로 잡으면서 그는 신음하듯이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 ── 아니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면서 부터 소경이었지요.』

『으음 ── 기구한 팔자가…… 그래 이름은 뭐라고 부릅니까?』

『예쁜이라고 부릅니다.』

『예쁜이요?』

『네, 예쁜이!』

『예쁜이! 여분이! 예쁜이! 여분이!』

백문호씨는 이 두개의 이름을 함께 불러 봄으로써 지난날, 자기의 온 정열을 불태워 주던 엄여분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었다.

『엄여분은 예쁜이를 낳고 산후가 순조롭지 못하여 세상을 떠났읍니다. 어미 없는 예쁜이는 그때 엄씨댁의 머슴이던 홍춘길이 내외의 손에서 자라 났지요. 그런데 홍서방에게도 예쁜이와 동갑인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애도 병신이어서 말못하는 벙어리였읍니다.

홍서방 부부는 그 후 어떤 사정으로 × 천읍을 떠나서 평양으로 들어와 살다가 예쁜이가 열 살 때에 병신인 두 어린애를 길러 내던 홍서방의 처가 전염병으로 털컥 죽고마니까 홍서방은 젊은 후처를 얻어 드리면서, 귀찮은 이 두 병신애를 서울 어떤 맹아학원(盲啞學院)에 넣어두고 자기는 후처와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가, 지금으로부터 오년 전에 다시 × 천읍으로 돌아가 살았지요. 홍서방의 주머니에는 그 때 두 어린애를 맹아학원에 맡겨둘 만한 돈이 있었읍니다. 그 후 부터는 통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홍서방의 딸은 어떤 곡마단의 줄타기로 들어가고 예쁜이는 학원에서 알선하여 지금의 남편인 문영태라는 복술가의 집에 맏며느리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것은 어제 × 천읍으로 가서 홍서방의 벙어리 딸에게 들은 사실이니까 가장 확실한 것으로 믿습니다.』

유불란은 거기서 말을 끊고 주첨주첨 따라오는 늙은이의 어두운 얼굴을 엿보았다.

그러나 백문호씨는 아무말도 없다. 그저 머리를 숙으리고 모든 것이 꿈결 같다는 표정으로 유불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십년 전에 엄여분이가 낳았다는 딸자식 예쁜이의 얼굴을 머리 속에 그려 보면서 ──.

좁은 길가에 게딱지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암정을 지났을 때는 해가 서편 산기슭을 누엿누엿 넘으려는 때였다.

『대체 그 애가 살고 있는 데가 어디 쯤 됩니까?』

하는 백문호씨의 기운없는 물음에 유불란은 힐끗 뒤를 돌아다보며 홍제리 일백 삼십 『 × 번지 라는데요. 아, 잠깐 기다리시요. 내 저 담배가게에서 물어 보고 오지요.』

유불란은 행길가 조그마한 담배가게에 들려서

『아, 말씀 한마디 여쭙겠읍니다. 홍제리 일백 삼십 × 번지면 대개 어느 방향입니까?』

하는 온근한 물음에 호외를 읽고 있던 젊은 주인이 머리를 쳐들며

『일백 삼십 × 번지면?…아, 아직 멀었읍니다. 한참 더 가셔서 다시 한번 물어 보십시요.』

하고는 다시 호외를 읽는다. 호외는 두말할 것 없이 광고풍선을 탄 오상억에 관한 기사였다.

유불란은 잠깐 머리를 기웃하고 호외를 들여다 보았다.

『글쎄 이런 대담하고도 민첩한 놈이 어디 있겠소! 풍선의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 데 풍선의「까스」가 점점 빠져서 그대로 내버려 두면 두 시간 후에는 이 자하문 밖 어디서 땅위에 떨어지리라고요! 지금 총독부까지 떠왔다는 군요. 글쎄! 참 사람이 사노라면 별별 괴상한 것을 다 보겠소!』

젊은 주인의 혼잣말 비슷한 중얼거림을 등뒤에 남겨놓고 유불란은 다시 백 문호씨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시외로 시외로 자꾸만 걸어갔다.

이리하여 자하문 고개에서 약 십리 쯤 걸었을까, 지붕위에 도사리고 있던 저녁연기도 이제는 사라지고 회색빛 황온이 마을을 덮기 시작할 즈음에야 비로소 그들은 목적지 박영태의 집싸리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싸리문 옆에 ── 복술가(卜術家)박영태 ── 라는 조그마한 널판자로 만든 간판이 붙어 있는 이 집은,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었다.

개천을 하나 건너선 산비탈에 외따로 서 있는 초가 삼칸이었다.

『이 집입니다!』

하는 유불란의 말에 백문호씨는 그저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백선생에게 미리 다져 둘 것은 ──』

하고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추어

『어떠한 놀라운 일이 있더라도 결코 고함을 친다든가 또는 그 놀란 표정을 상대방에게 보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의외의 사실에 접하시더라도 백선생은 절대로 입을 열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백 선생과 따님을 소개할 때까지 백선생은 그저 돌부처 처럼 잠자코 계셔주시면 됩니다! 알아 들어시겠습니까?』

하고 백문호씨를 쳐다보았다 . 늙은이는 그렇지 않아도 모든 것이 꿈같은 데다가 더구나 이러한 유탐정의 다짐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될지 통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저 알아들었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이윽고 유불란은 싸리문을 열었다. 그리고 주인을 부르려고 한발자욱 안으로 들여 놓은 그때 건너 방문에 친 발이 들리면서 이집 주인인 듯한 소경 ─ 나이가 한 사십이 될락말락하여 보이는 눈먼 사나이가 소경 독특한 감각으로 얼굴을 쳐들고 마루로 나왔다.

『거 누구요!』

바로 저녁을 물리고 나온 듯한 소경은 긴 담뱃대를 툭툭 마루 끝에 털면서 그렇게 묻는다.

『이 댁이 점을 치시는 박영택씨 댁이십니까?』

유탐정의 목소리는 대단히 낮으막하다.

『네 그렇소. 내가 박영택이란 사람이 올시다.』

『아, 그렇습니까? 아이 참 어찌나 먼지……』

하고 유탐정은 마루 앞으로 다가서면서

『하도 용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읍니다.』

그 때야 비로소 안색을 펴며

『아, 먼길을 찾아 주셔서 황송합니다. ─ 야아 간난아, 손님들께 방석을 갖다 드려라.

자아, 누추하지만 어서 이리로 올라 앉으시요. 에이 이 놈의 모기 때문에 원 ─』

반가이 맞이하는 장님의 말대로 유탐정과 백문호씨는 마루로 올라가 앉았다.

저녁바람이 부나보다. 울파주 안의 옥수수 잎이 어둑어둑한 황혼 속에서 팔락거린다.

유불란은 마루에 올라앉자 머리를 들어 뜰 안을 한번 내려다 보았다.

답사리와 화초나무가 무성한 그리 좁지 않은 뜰안 저편으로 부엌과 안방이 건너다 보였다.

황혼은 점점 짙어가고 지붕위의 박꽃이 소복한 여인처럼 요염하고도 청초하다.

백문호씨는 황혼에 잠긴 뜰안과 불빛 ─ 희미하게 비치는 안방 방문을 물끄어미 바라다 보았다. 지금 저 문안에, 저 등불아래 자기 딸 예쁜이 ─ 사랑하는 여분이가 낳은 딸 예쁜이가 앉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일분 일초가 그에게는 무한의 초조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이 아니라 ──』

하고 이윽고 유탐정은 주인을 쳐다보며

『실인 즉 우리들은 점을 치고자 온 것이 아니고 선생께 한가지 의외의 사실을 전하고자 온 사람입니다.』

『의외의 사실이라고요?』

소경 박영태는 순간 안색을 가다듬으며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네, 의외의 사실이라는 것보다는 말하자면 무척 기쁜 일이지요. ── 선생의 장인되시는 분을 모시고 왔읍니다.』

『뭐 장인?』

장님은 깎짝 놀라며

『아니 장인이라니요? 그러면 내마누라의 부친을 모시고 오셨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쁜이의 부친을 모시고 왔읍니다.』

『아니 그럴리가 세상에……예쁜이의 부친은 벌써……세상을 떠나셨는데……』

하고 장님은 양미간을 모았다.

『── 네, 예쁜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요 그러나 ──』

하고 유탐정은 간단하게 전후 사연을 설명한 후에

『여기 저와 같이 오신 분이 그 때의 백문호씨 그 사람입니다.』

장님 박영태는 이 의외의 사실에 놀라

『아, 그, 그렇습니까? ── 아버님! 이거 참……』

하고 백문호씨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나서

『여보오! 여보, 빨리 좀 이리로 나오쇼! 원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여보오! ── 야아, 간난아! 아씨를 모시고 나오너라!』

하고 희색이 만면하여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안방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희미하게 비치는 안방문이 통 열리지를 않는다.

『야, 간난아! 어서 빨리 아씨를 모시고 나오래도!』

장님은 다시 한번 범같은 호령을 했다.

아까 방석을 가지고 나온 십 오륙세 쯤 되어 보이는 계집애가 쪼르르 뛰어 나오며

『저어, 아씨께서는 지금 주시는댑쇼.』

하고 마루아래서 공손히 두손을 읍하였다.

응 주무셔 『 ? …… 아니, 조금 아까까지 앉아 있었는데 ── 원 그런 일이 어디 있나?』

하고 이번에는 손님들을 향하여

『잠깐만 실례하겠읍니다.』

하고 스스로 몸을 일으켜 마루를 내려서서 답사리 사이로 안방을 향하여 걸어갔다.

그러나 장님은 통 안방으로부터 나오지를 않는다.

『여보 여보! 이게 웬일이요?……대체 이게……』

하고 부르짖는 장님의 목소리가 어둑어둑한 황혼을 뚫고 터져 나왔다.

『엣?』

하고 그 순간 유탐정은 벌떡 몸을 일으켜 쏜살같이 안방으로 뛰어갔다.

백문호씨는 통 무슨 영문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그저 멍하니 안방을 바라다 볼 뿐이다.

뒤이어 들려오는 유탐정의 목소리 ──

『아, 늦었다!』

유탐은 그리고

『백선생, 빨리 빨리 이리로 들어 오시요! 빨리 빨리!』

하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백문호씨! 그가 컴컴한 뜰안을 허둥지둥 걸어서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을 그 순간, 그는 거기서 대체 무엇을 발견 하였을까?

『엣?』

문안에 들어서자 백호씨는 그렇게 외치며 돌부처처럼 우뚝 섰다.

이 세상에 꿈과 같은 사실이 정말 있을 수 있다면 지금 백문호씨의 눈앞에 전개된 그 광경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유탐정과 장님이 지금 아랫목에 누워있는 한사람의 여인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지를 않는가!

그리고 그 여인은 그 어떤 극도에 달한 육체적 괴로움을 참지 못하여 눈을 지긋이 감고 얼굴을 찌프리고 양손을 허공 중에 내졌고 있다.

『오오! 은몽씨가 아니요!』

하고 늙은 백문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아아, 세상에 이런 기적(奇蹟)이 또 어디 있으리요!

독약을 마시고 지금 무섭게 고민하는 예쁜이 ── 소경 박영태의 처 예쁜이는 비록 남루한 의복을 몸에 걸쳤을 망텅 그것은 틀림없는 주은몽 그 사람이 아닌가!

여보 이게 『 ! 대체 어찌된 일이요? 독약을……아니 독약을 마시다니……』

장님은 두손으로 아내의 몸뚱이를 쓰다듬으며 목메인 소리로 부르짖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사지를 무섭게 요동시키면서 장님의 아내 예쁜이는 지금 창자를 쑤시는 듯한 육체적 고통으로 말미암아 온 정신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은몽씨, 은몽씨!』

거의 숨결이 끊어져가는 여인의 상반신을 잡아 흔들면서 유불란은 힘차게 불렀다.

『아니, 은몽이라니……당신은 대체 누구를 부르는거요?』

하고 꿱 소리를 치는 장님의 물음을 무시한 유탐정은

『은몽씨! 어서 눈을 뜨시요! 그리고 아버지 ── 은몽씨가 그렇게 그리워 하시던 아버지가 오셨읍니다! 백문호씨가 오셨읍니다!』

하고 거의 고함치 듯 하는 유불란의 말에 여인은 최후의 기력을 다하여 감았던 두 눈을 반짝하고 떴다.

『여기 계신 이 어른이 백문호씨! 삼십 년 전 부부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던 백문호씹니다!』

그 말에 여인은 전신의 힘을 다하여 간신히 입을 열었다.

『화, 황선생!』

『그렇습니다. 부부암에서 대동강에 떨어진 백문호씨는 그 후 어떤 해적선의 구호를 받아 다년간 해적생활을 하다가 「아메리카」 「쌘 프란시스코」에서 해적선을 탈출하여 황세민이란 이름으로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서……』

하고 빠른 말씨로 성명을 하는 유탐정에게

『유불란씨, 대체 이것이……』

하고 얼리벙벙해진 백문호씨의 팔을 잡아 당기면서

『백선생, 숨이 끊어지기 전에 빨리 한마디라도 이야길 해보시요! 은 몽씨는 틀림없는 백선생의 따님입니다!』

그러나 유탐정의 이 벼락같은 설명에 아버지도 딸도 잠깐동안 벙어리처럼 마주 쳐다 볼 뿐이더니 마침내 백문호씨가 입을 열었다.

『은몽씨 그대의 부친 성명이 무엇이지요?』

하는 물음에 여인은 경련하는 입술을 간신히 벌려

『백……백문호씨……』

『오오! 그러면 그대의 모친은 엄여분이랑 사람이 아닙니까?』

『네에……엄여분……』

『오오! 그대는 틀림없는 내 자식! 내 딸이로구나!』

그렇게 외치면서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린 늙은 백문호씨는 왈칵하고 달려들어 은몽의 몸뚱이를 웅켜 안았다.

오오 은몽이 『 ! ! 내 딸! 네가……네가 여분이의 자식일줄은 꿈에도…내가 네 애비다! 백문호다!』

『아……아, 버, 지 ──』

그 순간 은몽의 창백한 얼굴에는 창자를 끊어내는 듯한 무서운 고통도 잊어버린 듯 희색이 발가우리하니 떠올랐다.

아아, 어머니의 뱃속에서 동서로 헤어진 이 아버지와 이 딸은 그 후 삼십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격하여 이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서로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은몽아!』

하고 부르는 백문호씨에게

『아버지……아버지의 워, 원수는 제가……제가……제 몸은 아……아직 처녀(處女)……』

『오오 ──』

하고 신음하는 백문호씨 그 때 유불란은 은몽의 목숨이 순식간에 끊어질 것을 알아차리고

『은몽씨!』

하고 은몽의 귀에다 입을 갖다대고 힘있게 불렀다. 은몽의 힘없는 시선이 유불란에게로 천천히 옮아 온다.

그 순간, 은몽의 눈동자가 샛별같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을 유불란은 보았다.

『유, 선, 생!』

은몽은 두팔을 간신히 쳐들어 유불란에게 내밀었다.

『은몽씨!』

그는 은몽의 상반신을 자기의 품으로 옮겨 안으면서

『저를 수일이라고 불러 주시요!』

『……수……일……씨 ── 유……유서(遺書)……』

은몽은 손으로 자리밑을 가리키며 돌연 눈을 감았다. 이 한마디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겨놓은 은몽의 목소리였다.

『은몽씨!』

『은몽아!』

그러나 대답이 있을리 만무하다.

『아니, 여보! 당신네들은 대체 내 마누라를 가지고 뭐 은몽이! 아니 예쁜이가 대관절 죽긴 왜 죽었다는 말이요? 원, 이런 땅이 꺼질 노릇이 어디 있나? 야아, 간난아! 빨리 들어와서 아씨의 얼굴을 자세히 드려다 보아라!』

장님의 날뛴 듯한 부르짖음이었다. 뜰 아래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계집애가 바르르 뛰어 들어왔다.

『분명히 아씨냐?』

하는 장님의 분부에 계집애는 무서움에 찬 눈동자로 시체로 변한 여인의 얼굴을 갸웃하니 드려다 보고

『네, 아씨예요. 아씨예요!』

하고 외쳤다.

『뭐, 분명히 아씨란 말이냐?』

『아씨예요! 아씬데요. 뭐 ──』

그 때 자리 밑에서 은몽의 유서가 들어 있는 봉투를 분주스러히 「포켙 」에 쓰러 넣으면서 유탐정은 마치 놀란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는 이집 주인 장님의 소매를 잡았다.

『여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읍니다. ── 그리고 지금 독약을 마시고 죽은 이 여인은 결코 당신의 부인이 아니라는 사실 만을 알아 두십시요. 자세한 사정은 차츰 이야기해 드리겠읍니다. 그리고 ──』

바로 그 때였다.

『아, 저게 뭔가……저거, 저거……』

뜰아래서 컴컴한 하늘을 처다보며 간난이가 돌연 그렇게 부르짖었다.

『뭐냐? 간난아!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이야?』

하고 머리를 쳐들고 밖으로 발더듬을 하면서 나가는 장님의 당황한 물음에

『뭔지 모르겠어요. 뭔가, 둥그런 풍선이……아 비행기 비행기가 ──』

유불란과 백문호씨도 밖으로 뛰어 나갔다.

요란한「푸로펠라」소리와 아울러 으와 으와 하고 떠드는 군중의 아우성 소리가 자하문 고개로 넘어온다.

『아, 「애드바룸」!』

유불란과 백문호씨는 동시에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렇다. 그것은 틀림없는 오상억 변호사가 탄 광고풍선이었다. 한시간 전까지도 총독부 상공에서 부유하던 풍선은 황혼과 함께 일어난 저녁바람에 몰리어 자하문 고개를 넘어서 부암정을 지나 어느 듯 홍제리 상공까지 떠 왔던 것이다.

캄캄한 하늘에 두 줄기의「써 ─ 취‧라이트」가「애드바룸」을 중심으로 하고 교차되었다. 풍선이 움직이는대로 탐조등(探照燈)도 옮아간다.

아아 그러나 총독부 , 근방에서는 그렇게 높이 떠 있던 풍선이 지금은

「까스」가 점점 새여 군중의 머리 위에서 약 일백 오십 미터 쯤 되는데서 둥실둥실 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이 한자한자 눈으로도 잴 수 있는 속력으로 군중의 머리를 향하여 내려오고 있었다. 강렬한「써 ─ 취·라이트」속에서 마치 거머리처럼 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그림자 ─ 그 주위를 맴도는 비행기 ── 창공을 쳐다보며 유불란은

『음 ──』

하고 신음하였다.

『저 놈이 저러면 어떻게할 셈인가.』

백문호씨의 중얼거림이다.

그 때 유불란은 뭣인가 컴컴한 하늘에서 팔락팔락 떨어지는 종이조각을 하나 주웠다.

은몽아 잘있거라!

은몽아 잘있거라!

종이조각의 문구를 드려다 본 유불란은 가장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것은 절박해온 자기의 운명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 주은몽에게 보내는 오상억의 최후의 인사인 것을 유탐정은 알고 있다. 주은몽이 숨어있는 이 자하문 밖으로 풍선을 몰아준 풍세(風勢)를 오상억은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오상억은 지금 저 창공에서 이 장님의 초가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방금 독약을 마시고 자기보다 먼저 죽어버린 은몽을 오상억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아 ──』

유불란은 긴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 앗!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탕 ──』

하는 한방의 총소리가 멀리 머리 위에서 들리었다.

다음 순간

『으와 으와 ──』

하고 돌연 높아진 군중의 부르짖음 ── 아아 보라! 총소리와 함께 터져 나간「애드바룸」! 오상억은 자기 손으로 풍선을 터쳐 버리지 않는가!

군중의 머리위에 쏜살같이 떨어져 내려오는 오상억의 몸뚱이! 그 뒤를 따르는 탐조등의 불빛! 천지를 진동시키는 군중의 아우성!

돌매같이 낙하하는 오상억의 몸뚱이를 중심으로하고 수라장처럼 흩어지는 사람의 물결!

오상억의 몸뚱이는 마침내 땅위에 떨어졌다.

그것은 실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장을 서늘하게한 무서운 곡예였다.

『악인다운 최후다!』

유불란과 백문호씨는 아직도 탐조등이 번쩍이는 컴컴한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중얼거렸다.

『모 ─ 든 것은 지나갔다!』

그렇다. 몇 달 동안 서울 장안을 휩쓸던 폭풍우는 사라졌다. 은몽도 죽고 오상억도 죽었다. 문학수도 죽고 정란도 죽고 홍서방도 죽었다. 그리고 백영호도 죽고 백남수도 죽었다.

이리하여 모든 것은 끝났다. 내일부터는 다시 평화의 햇살이 빛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독자제군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몇 가지 의문을 풀어주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한 장면(場面)을 부록으로 붙여 놓고자 한다.

그것은 그 때부터 약 세 시간 후의 일이다. 장소는 ×× 서 사법 주임실이었으며 등장인물은 유불란 탐정, 임경부, 백문호씨 세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