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後[최후]의 慘劇[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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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장 집을 뛰쳐 나온 유탐정은 타고온 자동차에 다시 올라 태평동 자기 집 앞까지 단숨에 몰아댔다.

『운전수, 가지 말고 기다리시요.』

유불란은 그렇게 부탁해 놓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방을 준비해 주게!』

그는 마중나온 서생에게 명령 하였다.

『어디 여행을 떠나시렵니까?』

서생은 눈을 부비면서 주인을 쳐다본다.

『응 ——』

하고 서재로 들어가는 유불란에게 서생은 따라 들어오면서 한 장의 전보를 내어 주었다.

『한시간 전에 온 전봅니다.』

유불란은 전보를 받아들고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해월의 행방을 탐지코자 평양으로 내려갔던 박태일 부장으로부터 온 전보인데 진남포서 친 것이었다.

유불란은 전보를 포켙 「 」에 꾸겨넣고 탁상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광화문국을 불렀다.

『삼청동입니까? 임경부를 좀 바꾸어 주시요. 아, 임경부입니까? 유불란이 올시다. 그 방에 지금 여러 사람들이 있읍니까? 있어요? 그러면 임 경부께서는 내 말을 듣기만 하시고, 이런가 저런가 질문을 하시지 마십시요.』

하고 이번에는 목소리들 낮추어 가지고

『거기 지금 오상억 변호사가 있읍니까?…… 있다! 그리고 문학수씨도 있읍니까?…… 있다 그리고 은몽씨도?……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 잠깐 여행을 떠나는데, 내일 밤이나 모레 아침에 돌아 오겠읍니다. 그러나 내가 여행 떠난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됩니다. 절대 비밀을 지켜 주실 것! 아시겠읍니까?…… 사실은 지금이라도 해월을 체포하고 싶으나 물적 증거가 하나도 없읍니다. 내가 여행으로부터 돌아오는 순간, 모든 것은 해결됩니다. 그리고 임경부께서 꼭 주의해야 될 것은 해월은 항상 임경부와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쉬이! 그렇게 큰소리를 내면 안 된대도 그러셔 …… 해월은 지금 임경부와 같은 방에 있읍니다. 아시겠읍니까? 그러면 내가 돌아오도록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은몽씨의 신변을 잘 지켜 주십시요! 차 시간이 급박하여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읍니다. 나의 주장대로 해월은 절대로 은몽씨를 해치지 않습니다. 은몽씨의 목숨은 절대로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써 은몽씨를 살 지켜달라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읍니까?』

유불란은 전화들 끊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테이블」로 가서 열쇠로 설합을 열고 거기서 조그마한 서류함(書類凾)을 꺼내었다.

그는 서류함 속에서 커다란 「노 ― 트」를 꺼내어 「테이블」위에 펼쳐 놓았다. 「노 ― 트」등에는 금자로 「탐정일기(探偵日記)」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그리고 약 이십분 동안이나 열심히 무엇을 적어 놓고 또 다시 서류함평양 영문사를 떠난 해월은 진남포서 약 오리 쯤 떨어져 있는 ×도라는 섬에서 일년 동안 생굴을 까먹다가 다시 ×도를 떠나 구월산 어떤 절간으로 들어간 자취가 판명. ×도를 떠날 때엔 해월의 폐병이 거의 절망적이었다고 —— 상세한 것은 명일 다시 ——에 넣은 후에 설합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서생을 불러서 열쇠를 내어주며 이번 여행은 대단히 『 위험하니, 만일 내가 죽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때는 이 설합속에 들어있는 탐정일기를 임경부께 전해 주게.』

『아니 선생님……?』

서생은 낯색을 변하며 놀라 쳐다 보았다.

『아니, 뭐 그렇게 염려할 건 없고, 만일 그런 경우가 있다면 말이네 ——』

하고 유불란은 놀라는 서생을 위로하였다.

『네! 말씀 대로 꼭 이행하겠읍니다. 그러나 선생님!』

『글쎄, 염려할 것 없대도 그래. 그리고 내 편지를 한 장 쓸테니, 지금 곧 삼청동 문학수씨에게 전해 주고 오게.』

하고 유불란은 원고지에 두서너줄 무엇인가 적어서 봉투에 넣고 꼭 봉하였다.

『자아, 그러면 다녀 오마.』

그리고 유불란은 조고마한 손가방을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자동차가 경성역에 도착한 것은 새벽 두시 반 —— 그가 올라 탄 기차는 봉천행 특급이었다.

날이 밝자, 정란의 시체는 곧 대학병원으로 운반되어 해부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처럼 정란의 시체를 해부해 보기를 주장한 것은 임경부였다. 정란의 사인(死因)이 과연 문학수의 말대로 해월이가 쏜 총상(銃傷)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그 외의 어떤 원인에서 인지 임경부는 그것을 명확히 알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어째서 임경부가 그렇게 정란의 사인에 의혹을 품기 시작했는가 하면, 그것은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에 여행을 떠나려는 유불란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었다.

『해월은 항상 임경부의 신변에 있읍니다!』

하는 한마디였다. 이 한마디는 실로 임경부로서 모든 인물을 의심하게 하였던 것이다.

정란이가 죽은 것은 문학수와 정란이 단 둘이서 삼청 공원길을 산보할 즈음이었다. 그리고 문학수 이외에는 누구 한 사람 정란의 살해 광경을 본 사람도 없었고 해월이가 탄 괴상한 자동차의 존재를 본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해부해 본 결과 정란의 사인이 틀림없는 총상이었다.

임경부의 의혹은 아무런 수확도 남기지 못한 채 단순한 하나의 의혹에 지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학수 자신이 『 「피스톨」로 정란을 죽이고 그러한 허위의 진술을 하였다고 생각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그러나 무슨 동기로…… 문학수는 정란의 약혼자가 아닌가?』

임경부가 대학병원을 나와 다시 삼청동으로 돌아온 것은 무더운 여름날도 거의 저물어가는 황혼이었다.

삼청동에는 은몽과 문학수와 오상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밤을 뜬 눈으로 새운 은몽은 현기증이 난다고 하면서 아까부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옆방 「아뜨리에」에는 오상억과 문학수가 마치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서로 상대방을 경계하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것도 그럴법한 것이 오상억과 문학수는 지나간 날, 정란을 사이에 두고 싸우던 연적(戀敵)이 아니었던가.

오상억은 무엇을 생각하며 문학수는 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두 사람은 틈만 있으면 서로서로의 얼굴을 곁눈질해 보는 것이었다.

어젯밤 유탐정이 금명간 해월을 체포 하겠다고 말했을 때, 오상억 변호사도 역시 해월의 체포를 선언하였다.

그럴상 싶어서 그런지 문학수의 얼굴을 곁눈질 해 보는 오상억의 얼굴에는 어딘가 자신만만한 빛이 떠돌았다.

유탐정과 오변호사의 경쟁 —— 유탐정이 먼저 해월을 체포하느냐, 오변호사가 먼저 해월을 체포하느냐? 이것은 독자제씨와 더불어 필자 역시 대단히 궁금한 하나의 수수께끼다.

그 때 침대에 누워 있던 은몽은 오상억과 임경부에게 한시바삐 여기를 떠나 명수대로 가 있기를 청하였다.

『여기는 무서워서 잠시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두통이 어떻게 심한 지 어서 집으로 가서 한잠 늘어지게 자야겠어요.』

『그러시지요! 참 대단히 피곤하실 텐데……마침 내가 타고 온 자동차가 밖에 있으니 제가 모셔다 드리지요.』

하는 임경부의 말에

『고맙습니다만 그러나 전 그런 경찰용 자동차는 싫어요. 누가 보면 죄수 같지 않겠어요. 흐흐……』

하고 은몽은 미안하다는 듯이 억지로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 그러면 ——』

하고 그 때 오상억은 손수 전화를 걸어 「택시 —」 한대를 불렀다.

택시 가 도착하자 「 」 오상억은 은몽을 부축하여 「택시」에 올랐다. 현관까지 걸어나가는 동안 은몽은 현기증으로 말미암아 여러번 쓸어질 듯 하였던 때문이다. 핏기라고는 한점도 보이지 않는 은몽의 얼굴에는,

『이젠 내가 죽을 차례로구나!……』

하는 공포와 아울러 생에 대한 단념의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문학수는 그 때 무엇을 생각했는지

『저도 같이 가 보겠읍니다.』

하고 임경부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윽고 두 대의 자동차가 삼청동을 출발하여 명수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오상억과 은몽이 탄 「택시」가 앞서고 임경부와 문학수의 경찰용 자동차가 뒤따랐다.

그러나 이 두 대의 자동차가 명수대까지 도착하였을 때 사람들은 실로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때는 오후 여덟시 경 —— 거리거리에는 지금 울긋불긋한 「네온」과 함께 밤의 서막이 내리려 한다.

삼청동을 떠난 두 대의 자동차는 지금 종로 네거리를 왼편으로 「커 — 브」하여 일로 남대문 쪽으로 달리고 있다.

앞선 「택시」는 오상억과 은몽이 탔었고 임경부와 문학수를 태운 경찰용 자동차는 그 뒤를 약 오십 「미 — 터」가량 떨어져서 달렸던 것이었다.

『해월은 절대로 은몽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나 은몽의 신변으로부터 한시라도 감시의 눈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된다.』

뒤로 달리는 창밖에 「네온·라이트」를 물끄러미 내다보면서 임경부는 어젯밤 유불란이 전화로 한 그러한 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하여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상 임경부로서는 하나의 괴상한 논리에 틀림이 없었다. —— 은몽은 절대로 안전하다. 그러나 은몽의 신변을 잘 살피라는 유불란의 말을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될는지 그는 몰랐다.

그리고 한편 옆에 앉은 문학수로 말하면 어젯밤 유탐정이 보낸 한 장의 편지를 받은 그 순간부터, 그의 얼굴에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심각한 빛이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그가 유탐정으로부터 접수한 편지에는 대체 어떠한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던가? 그러나 그것은 차차 알려질 기회가 반듯이 오리라고 믿고 여기서는 두 대의 자동차가 명수대에 도착하기까지의 경로를 그리면 그만일 것이다.

자동차는 지금 본정입구를 지나 남대문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그러나 두 대의 자동차가 남대문 앞까지 달려왔을 때, 남대문 앞 네거리에서 있는 「고오·스톱」의 「시그날」로 말미암아 은몽과 오상억이 탄 「택시」는 네거리를 겨우 건널 수가 있었으나 임경부의 자동차는 그만 「스톱」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스톱」의 「시그날」이 「고 —」의 「시그날」로 변하였을 때는 벌써 은몽의 자동차는 세브란스병원 앞을 스름스름 달리고 있을 때였다.

임경부의 자동차가 조금 더 속력을 내어 경성역을 지났을 즈음에 다시 두 자동차는 약 오십 「미 —터」의 간격을 두게 되었던 것이다.

삼청동을 떠날 때부터 현기증으로 말미암아 몹시 괴로워하던 은몽이 마침내 견딜 수가 없다는 듯 오상억의 품안에 기대이고 있는 모양이 뒷 「글라스」창으로 보인다.

임경부는 그때 운전수에게 앞 차를 따르라고 명령하였다. 앞 차도 뒷차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듯이 스름스름 달린다.

이리하여 두 대의 자동차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을 때

『대단히 편찮으십니까?』

하고 임경부는 커다란 목소리로 오상억을 불렀다.

『뇌빈혈 같습니다. 아까부터 구토가 날것만 같다고 그러더니만 ——』

하면서 오상억은 은몽을 자기 무릎 위에 눕혔다.

『하옇든 좀 빨리 갑시다.』

하고 오상억은 운전수에게 재촉하였다.

그러나 한강교를 지날 즈음해서는 은몽의 현기증이 좀 난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들의 자동차는 명수대의 은몽의 집 현관 앞에서 멎었다.

사람들은 황급히 자동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그 때 만일 유탐정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무척 놀랐을 것이다.

현관 전등불에 비친 「택시」의 운전수 —— 은몽과 오상억을 태워온 「택시」 운전수의 얼굴 왼편 볼 위에는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무서운 칼자리가 박혀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때 무엇이 우수운지 빙그레 웃는 그 운전수의 입밖으로 마치 황소 이빨처럼 싯누런 치아(齒牙)를 발견하고 놀랐을 것이다.

황치인(黃齒人) 저번날밤, 황세민 교장을 협박한 황치인이 아닌가!

오상억은 은몽을 안고 아래층 침실로 들어가 그를 침대 위에 눕혔다.

은몽은 아무말도 없이 눈을 고스란히 감고 있었다.

『하루밤을 꼬박 세웠으니 한잠 주무시고 나면 괜찮겠지요.』

하고 문학수는 은몽의 머리와 맥을 잠깐 집어 보고나서 그런 말을 하여 수심에 찬 오상억을 위로하였다.

원체 몸이 약한데다가 『 요즘은 침식을 거의 폐하다싶이 하니까 ——』

하고 오상억도 문학수의 말에 어지간히 안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즈음 해월의 마수가 또 다시 어둠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날밤은 유달리 무더웠다. 사면 들창을 모두 열어 놓아도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는 밤이었다. 세사람은 고요히 잠든 은몽의 침대 옆에 둘러 앉아서 식모가 가져온 냉차를 마시면서 그들은 각각 자기생각에 깊이 파묻혀 있었다.

은몽을 잘 지키라는 유탐정의 말이 또 다시 임경부의 사색을 혼돈케 하는 것이었다.

임경부는 시선을 돌려 침대 위에 누은 은몽을 바라 보았다. 새카만 양복과 대조된 은몽의 새하얀 얼굴은 더 한층 창백해 보였다.

지나간 날 공작부인으로서의 꽃다발처럼 화려하던 은몽의 얼굴이 이제는 공포와 고독으로부터 오는 우수(憂愁)의 암영(暗影)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임경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쓸쓸해지는 자기 마음을 뒤적거려 보면서, 문득 시선을 돌려 묵묵히 오상억과 마주앉아 있는 문학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때, 그는 어쩐지 가슴이 이상하게도 두근거림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런가하면 오상억의 얼굴을 때때로 곁눈질해 보는 문학수의 두 눈에서 그 어떤 잔인성을 임경부는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수의 눈에서만이 아니었다. 임경부는 오상억의 눈초리에서도 역시 그보다 못지않게 잔혹한 빛을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의 대화조차 없이 돌부처처럼 마주앉아 있는 그들 두 사람의 눈초리는 무엇인가 알 수 없으나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서로의 일거일동을 무섭게 주목하고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때였다.

『이층 서재에 전화가 왔는뎁쇼.』

하면서 식모가 들어왔다.

『누구에게?』

『저 경찰서에 계신 임경부나리를 좀 대어 주십사고요. —— 대단히 긴급한 말씀이 계시다면서 곧 좀 ——』

그러나 임경부는 좀처럼 몸을 일으킬 줄을 몰랐다.

『긴급한 전화라니 대체 어디서 온 전화길래……』

어디서 온 전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기도 그 보다 못지않게 긴급한 사정이 있다는 임경부의 표정이었다.

『저어, 태평동 유탐정나리 댁에서 온건 뎁쇼.』

『유탐정?』

임경부는 하는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한번 더 오상억과 문학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어떤 험악한 공기가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음을 깨닫고 좀체로 떨어지지않는 발걸음을 옮겨 복도로 나갔다.

『「찬스」를 놓쳤나보다? ——』

임경부는 층층대로 뛰어 올라 가면서 마음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임경부의 가슴속은 한층 더 초조하였다.

서재로 뛰쳐 들어간 임경부는 부리나케 수화기를 들자마자

『네, 임세훈이요.』

하고 거의 고함치 듯 말하였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태평동 유불란씨댁 서생입니다.』

『그래서? 빨리 용건을 말해봐요!』

하고 조급스레 묻는 임경부의 말에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박태일 부장으로부터 유불란씨에게 전보가 한창 왔는데 말씀이지요. —— 유선생은 계시지 않고 해서, 그리고 내용을 보니 대단히 급한 전보길래……』

『빨리 전보를 읽어 봐요! 잔소리 말고!』

『 —— 네에, 그러면 읽겠읍니다. —— 해월은 지금으로부터 오년 전 구월산 계명사(鷄鳴寺)에서 확실히 죽었다, 박태일 ——』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앗!』

하고 외치는 임경부의 목소리가 방안을 찢었다. 아아 동굴과도 같은 암흑!

뒤이어

『악!』

하고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복도를 무섭게 달리는 사람의 발자욱 소리 —— 그것은 틀림없이 한 사람은 쫓기고 한 사람은 그 뒤를 따르는 발자욱 소리와 였다.

『빨리 불을…… 불을!』

하고 고함치는 식모의 놀라운 목소리를 듣고야 비로소 임경부는 자기 「포켙 」에서 회중전등을 꺼내 들고 나는듯이 층층대를 뛰어 내려왔다.

임경부는 거기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식모의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어찌된 일이냐?』

『전등이 갑자기 꺼지길래 뛰어나와 보니 아씨의 방으로부터 사나이 둘이 뛰어나오는 발자욱 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래 바로 여기서 그들과 제가 맞 부딪쳐서 저는 넘어지고 그들은 현관 밖으로 뛰어 나갔읍지요.』

그 때는 벌써 임경부는 회중전등을 번쩍거리며 은몽의 침실 안으로 뛰어 들어간 때였다.

『오오!』

하고 신음하는 임경부의 떨리는 목소리!

회중전등에 비치는 침대위의 은몽 —— 은몽의 가슴에는 한자루의 단도가 무참히 박혀 있었다.

임경부는 부리나케 단도를 빼고 자기 귀를 은몽의 입에다 갖다 대어 보았다. 거의 거의 끊어져 가는 숨길이었다.

바로 그 때 바깥 정문 밖에서

『탕!』

하는 한방의 총소리 —— 연거퍼 또 한방

『탕!』

하는 총소리 임경부는 식모에게 은몽을 간호하라는 말을 남겨놓고 들창을 넘어 정원으로 뛰어 나갔다.

넓은 정원을 뛰어 정문 밖으로 달음질해 나간 임경부는 거기서 우뚝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임경부의 회중전등이 비춰 주는 무서운 광경!

조약돌을 깐 행길위에 주홍빛 「만또」로 전신을 감춘 하나의 괴물이 박쥐처럼 활개를 활짝 펴고 쓸어져 있지 않는가!』

간판처럼 울긋불긋한 도화역자의 가면을 쓴 괴물! 왼편 손으로 행길 위에 깔린 조약돌을 움켜쥐고 바른편 손에는 한자루의 권총이 쥐어져 있고 —— 그러나 임경부의 회중전등이 비춰 주는 것은 그 전신 주홍색의 괴물만은 아니었다.

살인귀 해월의 시체 바로 머리맡에 한사람의 사나이가 비장한 얼굴로 땅 위에 쓸어진 괴물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해월은 죽었읍니다.』

사나이는 감개무량한 어조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사나이, 그것은 다른 사람 아닌 오상억 변호사 그 사람이었다.

『아 그러면?』

하고 임경부는 그 어떤 예감이 들어 맞았다는 듯이 오상억과 괴물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그러나 오상억은 아무 말도 없다.

임경부는 마침내 허리를 굽혀 엎드러진 괴물을 반듯이 제쳐놓고 얼굴을 가리운 도화역자의 탈을 슬그머니 벗겼다.

『음 ——』

하고 임경부는 신음하였다. 그것은 틀림없는 의학박사 문학수의 얼굴이 아닌가!

『문학수?』

탈을 벗기자마자 임경부는 그렇게 외쳤다.

『대체 어떻게 된 노릇입니까?』

하는 임경부의 말에

『자세한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합시다. —— 아, 은몽씨는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하고 고함치면서 그 때야 비로소 침실에서 자고있는 은몽을 문득 생각한 오상억은 부리나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은몽의 숨은 뚝 끊어져버린 뒤였다. 은몽의 시체 옆에서 식모가 촛불을 켜들고 흑흑 느껴울고 있는 것이었다.

『은몽씨!』

오상억은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억제할 바 없어 은몽의 차디찬 시체를 어루만지면서 일생을 외롭게, 그리고 슬프게 마친 은몽의 영혼 앞에 엄숙히 머리를 숙였다.

『은몽씨! 은몽씨를 그렇게 괴롭히던 악마는 죽었읍니다. 아아, 그러나 은 몽씨!』

머리를 숙인 오상억의 두 눈으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 은몽씨를 위한 저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읍니다. 은 몽씨를 살리려고 은몽씨를 구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읍니다만…… 은몽씨가 없는 이 세상이 제게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은몽씨는 바로 저요, 저 이상이었읍니다.』

하고 오상억은 마치 산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은몽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다.

그때 해월 —— 아니 문학수의 시체를 현관까지 끌어다 놓은 임경부는 해월의 그 무시무시한 주홍색 「만또」와 도화역자의 탈을 벗겨들고 침실로 들어왔다 침실 안의 . 「스윗치」를 눌러 보았으나 통 전등이 켜지지 않으므로 식모에게 물어보니 현관 바로 옆담 벽에 이집 전등 전체를 끌 수 있는

「스윗치」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임경부는 다시 현관으로 나가 회중전등을 비춰 보았다. 식모의 말대로 계량기 옆의 「스윗치」를 눌렀다. 집안에는 다시 전등이 환 — 하게 켜졌다.

『전선을 끊은줄 알았더니……』

하고 중얼거리며 다시 침실로 들어온 임경부는

『대체 어떻게 된 셈입니까? 내가 이층으로 전화를 받으러 올라간 사이에 이렇게 ——』

하고 묻는 말에 비로소 오상억은 머리를 들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임경부가 이층으로 올라가자 문학수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돌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복도로 걸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후에 갑자기 전등이 꺼졌다.

그래 오상억은 그 어떤 무서운 예감에 잠든 은몽을 그대로 남겨놓고 불시에 문학수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왼편으로 「커 — 브」하여 현관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그 현관 쪽에서 잘 보이지는 않으나 시커먼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질 않는가.

『그래 나도 현관으로 따라 나갔더니만 그 시커먼 그림자는 내가 따라 오기를 예상한 듯이 정원으로 내려서서 침실 쪽으로 달음박질 치는 것입니다.

나도 물론 따라 갔읍니다. 그 놈은 휙하고 들창을 넘어 들어가지 않겠읍니까. —— 그러나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부리나케 침실 들창을 넘었을 때는 벌써 시커먼 그림자는 은몽씨의 가슴에 칼을 꽃아 놓고 복도로 뛰어 나가는 때였지요. 물론 나는 은몽씨의 몸을 더듬어 볼 겨를도 없이 그림자를 따라서 다시 복도로 뛰어 나갔읍니다. 그 놈은 은몽씨의 가슴에 칼을 꽃고 달아났으니만큼 그만큼 나와 그의 사이는 단축해져서 다시 왼편 현관 쪽으로

「커 — 브」할 때는 약 두서너 발자욱의 간격 밖에 안되었지요. 그렇습니다. 그 놈과 식모가 어둠속에서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 였지요. 그 놈은 현관을 나서서 정문 밖으로 달음박질 쳤읍니다. 거기서 결국 나와 그 놈의 사이는 점점 좁아져서 나는 마침내 그 놈의 펄럭거리는 「만또」의 귀를 잡았읍니다. ——』

거기서 두 사람 사이에는 무서운 격투가 일어 났으나 그 때 오상억은 해월의 손에 권총이 쥐어진 것을 알고 가슴이 선뜻하였다고 한다.

『나는 해월의 손으로부터 권총을 빼앗으려고 애를 썼읍니다. 그러나 그 순간 권총은 나의 겨드랑 밑에서 한방 터졌지요. 그리고 다음 순간, 또 한방 총소리가 터졌을 때, 나는 갑자기 해월의 온 몸뚱이로부터 점점 빠져 나가는 기운을 느꼈읍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땅위에 쓸어지고 말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