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世民校長[황세민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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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박태일 순사부장은 평양으로 해월의 행적을 더듬으러 떠나고 오상억 변호사는 백영호씨의 고향인 평안남도 ×천읍을 항하여 출발하였다.

한편 주은몽은 남수의 장례식이 끝난 후 본래 자기가 살고 있던 한강 건너편 명수대 저택으로 옮아가고 정란은 약혼자 문학수의 다사로운 보호 밑에서 삼청동에 그냥 머물러 있기로 되었다.

삼청동을 떠나 명수대로 옮아가는 날 은몽은 자기의 외로운 신세을 한없이 눈물겨워 하였다.

일세의 아름다운 무회요 세상의 애인인 공작부인 주은몽 ── 그러나 그것은 결국 창공에 떠도는 한점의 부운과도 같이 허무한 것임을 새삼스러이 느낀 은몽이었다. 은몽은 정란의 손목을 부여잡고 어렸을 때 돌아가신 양친을 그리워하며 울었다.

『정란, 문선생의 말씀과 같이 모두가 나의 탓이야. 나 하나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이렇게 무참한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니까. ── 그래, 그래, 그렇고말고! 정란이가 나와 한집에 있는 것은 문선생의 말씀과 같이 역시 위험한 일이지 무섭고 . 쓸쓸하지만 나혼자 명수대에 가 있을테야. 그러나 결국 여기 있으나 거기 가 있으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아무리 살려고 얘를 써도 소용없어. 그 놈은 나를 배리배리 말려서 죽일 셈이니까 ── 』

그리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정란, 놀러와 응?』

그런 말을 남겨놓고 은몽은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떠나갔다.

명수대로 옮아온 은몽의 생활은 글자 그대로 지옥이었다. 자기의 생명이 하루하루 졸아드는 것 같은 무서움 ── 그것은 마치 산 송장의 참담한 생의 계속이었다.

『해월이, 해월이! 죽이려거든 어서 죽여줘요! 고양이가 쥐새끼를 잡아먹듯이 당신은 나를 노리기만하고……대체 당신은 어디 있는 거요?…… 어디서 나를 그 처럼 감시하고 있는거요? 어서 지금이라도 발칵 달려 들어 죽여요!

어서 속히 시원하도록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여요! 아아……』

한밤중 같은 때 넓은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사방을 돌아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은몽의 목소리가 정원을 지키는 경찰들의 귀에까지 들려오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혜성전문학교 교장 황세민씨가 은몽을 방문하였다.

임경부는 응접실 문밖에서 귀를 기우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얼마나 쓸쓸하십니까?』

황세민씨는 은몽의 창백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진심으로 울어나오는 위로의 말을 건낸 후에 천천히 담배를 붙여물고는 또 얼마 동안 망설이 다가 마침내 용기를 얻은 듯이

『다른게 아니라, 이 늙은이가 이처럼 부인을 뵈러 온 것은 부인께서도 이미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만 이것으로 최후의 교섭을 삼을 셈으로 ── 』

하고 말의 줄거리를 채 끝내지 못하고 그만 시선을 무릎위에 떨어뜨렸다.

『네 선생님의 말씀은 잘 알아 듣겠읍니다. 그리고 혜전을 그 처럼 아끼시는 선생님의 교육자로서의 참된 성의에 머리를 숙으립니다.』

『그건 너무 과분의 말씀입니다만 ── 하옇든 부인의 말씀을 최후로 하여 우리 혜성전문학교의 운명이 좌우되겠끔 절박하였읍니다. 돌아가신 백영호씨 뜻대로……』

『글쎄요. ── 』

하고 은몽은 황세민씨의 말을 막으며

『교장선생의 뜻이 얼마나 간절하신지 마치 제 일같이 느껴져요. 그리고 황 선생의 입장을 저는 무척 동정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제게 그러한 권리가 있을수 있읍니까? 남수씨가 돌아가신 이 때 제산에 관한 권리는 원칙적으로 정란에게 있지 않아요? 제가 아무리 선생님을 동정한다 해도 문제는 정란의 의사 여하에 달렸지요. 그렇지 않읍니까? 황 선생님? ── 』

사실 은몽의 말대로 백영호씨의 백만원 재산권은 남수의 손을 거쳐 정란에게로 옮아간 이 때, 황교장이 아무리 은몽에게 애걸을 해 보았자 결국은 상속권 소유자인 정란의 승낙이 없으면 안 될 것은 황교장도 모르는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정란은 아직 세상일을 모르는 어린애가 아닌가. 어른격인은 몽에게 한번 애원해 보는 것이 황교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제산상속권은 정란씨에게 있다 하더라도 그 분은 아직 연세가 어리시고 그래서 부인께 여쭈어 보려고요. 부인께서 후원만 해주신다면 정란씨인들…』

하고 황교장은 일단 숙였던 머리를 들고 은몽의 얼굴을 이모저모 따지듯이 쳐다보는 것이 었다.

『글쎄요. 제 힘 자라는 데 까지는 정란에게 권해 보겠읍니다만, 어쩔른지요. 하옇든 교장선생의 의사만은 잘 전하겠읍니다.』

은몽은 진심으로 황교장을 동정하면서도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모자라는 것이 유감이라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하여 늙은이를 위로하였다.

황교장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얼마 동안 묵묵히 앉아서 담배만 푸욱푸욱 피우더니

『그런데……』

하고 말머리를 돌리며

『대체, 그 해월이란 놈은 어떠한 놈이기에 그 처럼 재주가 비상합니까?

원 세상에 그런놈이 어디 있단말이요. 아무리 원한이 골수에 맺혔기로 사람을 죽이다니 그런 악인이 세상에 있을수 있읍니까. ── 그래도 정정당당하게 나서서 나는 네가 이러이러한 원한이 있으니……하고 공공연하게 복수를 한다면 또 모르거니와 이건 비겁하게도 암암리에 사람를 하나도 아니고 두 사람씩이나 해쳐 놓으니 원 그런 악인이 어디 있겠오!』

하고 해월의 비겁한 행동을 적지 않게 흥분한 어투로 비난하였다.

『글쎄 말이지요. 죽이려면 어서 한칼에 죽여줬으면 오죽 좋겠어요?』

『그것도 원 제 애비를 죽인 원수라면 또 모르거니와 이건 어린시절에 철 없이 저질러 놓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 사람을 죽인다 만다하니, 원 될법한 이야기요?』

하면서 황교장은 담배재를 재털이에 털어놓고 저윽이 안색을 가다듬으며 그런데 실례되는 『 말씀입니다만 한 말씀 묻겠읍니다. ── 부인은 어디 태생이십니까! 보아하니 평안도 태생이신 듯 하온데 ──』

하고 젊은 미망인 은몽의 비록 우수를 띄었을망정 화려한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 저어 평, 평안도예요……그런데 그건 어떻게……?』

하고 반문하는 은몽이 입술이 바르르하고 떨렸다.

『아니에요. 말씨에 어딘가 평안도티가 있는 것 같아서……그럼 평안도 어디십니까?』

『저어, 신의주예요.』

『신의주!』

황교장은 그리고

『신의주! 음…신의주면──』

하고 서너번 되풀이 하면서

『양친께서는 두 분 다 안계셨습니까?』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다! 음 ── 그러면 엄친의 존함은 누구십니까?』

『아버지는 주택서(朱澤書)라고 부르셨어요. 선생님, 그건 왜 물으세요?』

『아아니요. ── 늙은이라니 그저 젊은 사람들을 대하면 화제가 빈곤해서, 허, 허, 허…… 그런데 이런 것까지 물어서 황송하기 짝이 없읍니다만 자친님의 성함은 무엇이지요?』

황교장은 그러면서 은몽의 입술을 가장 긴장한 낯으로 쳐다보았다. 은몽은 그 순간, 이 늙은이가 별소리를 다 묻는다는 듯이 새침한 낯으로 상대방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대답하였다.

『김옥녀(金玉女)라고 부르셨어요.』

『김옥녀!』

황교장은 그 순간 자기의 기대와는 그 무엇이 어그러진다는 듯이

『아 그렇습니까, 가뜩이나 외로우신 몸이 요즈음 얼마나 더 쓸쓸하십니까. 하옇든 위험에 빠지시지 않도록 몸조심 잘 하셔야 겠읍니다. 하긴 이처럼 경찰대의 수비가 든든하니까 뭐 염려될 것은 없겠읍니다마는…… 그럼── 』

하고 몸을 일으키며

『저는 이만 실례하겠읍니다. 이처럼 불행 중에 계신 분을 괴롭혀서 ── 염치없는 이 늙은이를 과히 욕하지나 마십시요.』

『아이 선생님도……모두 제 힘이 모자라는 것을 한탄할 뿐이예요. 정란께는 선생님의 의사를 잘 전달하겠읍니다.』

『과분의 말씀, 황송합니다.』

하고 황교장은 밖으로 나왔다.

칠월 초순 ── 무더운 날이었다. 황교장은 한강 기슭 어떤 조그마한 정자나무 그늘로 찾아가서 맥고모를 벗어들고 이마에 땀을 씻었다.

발 밑으로 멀리 내려다 보이는 「보오트」떼, 백사장에서 날뛰는 벌거숭이들 ──칠월의 한강은 젊은이들의 호화로운 청춘을 싣고 어제도 흐르고 오늘도 또 내일도 흐르건만 ──

『일생이 길다면 긴 것이야. 젊은 시절에 꾸던 꿈이 바로 어젯밤 같건만 ── 』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황교장은 꿈꾸는 것처럼 물끄러미 한강을 내려다 보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을 그러고 서서 달콤한 회상에 잠기어 있던 황교장은

『흐음 ── 』

하고 코소리를 내면서 커다란 회중시계를 꺼내어 잠깐 드려다보고는 다시 집어 넣으려 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시계 뒷뚜껑을 손톱으로 열었다.

머리를 길게 땋아느린 처녀의 사진 ── 그즈음 유불란 탐정은 햇볕이 뜨겁게 내려쪼이는 태평동 거리를 활기있게 걷고 있었다.

그는 지금 마악 부청 호적과로부터 뛰어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황교장의 신분을 조사하기 위해서 부청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호적과에서 그가 발견한 사실 ── 그것은 황세민씨의 국적(國籍)이 조선에 있지 않고 「아메리카」「샌프란시스코」에 있다는 의외의 사실이었다.

「아메리카」에 귀화(歸化)한 황세민!』

유불란은 새하얀 「파나마」 모를 벗어서 부채질하며 「스틱」으로 구두코를 툭툭 치면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황세민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십년 전 「아메리카」로부터 돌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아메리카」귀화인 ── 다시 말하면 「아메리카」국민인 줄을 세상사람들은 통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만 서울 시민으로서의 거주계를 부청에 제출했을 따름이었다.

그 어떤 희망을 품고 호적과를 찾아 갔던 유탐정은 이 실로 뜻하지 않은 황교장의 신분에 접함으로써 기대는 엄청나게 어그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럴리가 있나? 그럴리가 있나?』

하고 열병 환자처럼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하옇든 직접 황교장을 만나 보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부민관 앞에서 효자동 가는 전차를 잡아 탄 유탐정이 효자동 종점에서 그리 멀리 않은 혜성전문학교 정문을 들어 선 것은 약 이십 분 가량 후의 일이었다.

면회를 청하니 저번 유불란에게 속아 넘어 간 늙은 소사가 수상한 놈이라는 눈치로 아래 위를 훑어보고 나서 오늘은 아침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한 후에 긴급한 용건이 있으면 자택으로 찾아 가라고 하면서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황교장의 자택은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청운동 ××번지 조그마한 양옥이었다.

유탐정은 안으로 들어 가기 전에 주위를 한번 유심히 살펴 보았다. 좁으나 마 정원에는 화단이 있고 화단 옆에 조그만 연못 같은 것도 보이고 새 조롱도 달리고 ── 늙은 독신자의 취미를 엿볼 수 있었다.

유불란은 마침내 현관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안에서 찌르릉 찌르릉 울리더니 이윽고 늙은 어멈이 나오면서 유불란을 마지하였다.

『황선생 댁에 계신가요?』

『지금 계시지 안는뎁쇼.』

『언제 쯤 돌아오실런지 모르시지요?』

『글쎄올시다. 아침에 나가셔서 아직 안돌아 오셨는뎁쇼. 아마 곧 돌아오실 겁니다. 어디서 오셨읍니까?』

하고 묻는 말에 유불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럼 다시 찾아 뵙겠읍니다』

하고 현관을 나섰다.

그 때 유불란은 정문에서 한장의 엽서를 들고 현관을 향하여 들어오는 우편배달부와 바로 뜰 한복판에서 마주쳤다.

『황세민씨 ── 』

하고 배달부는 유불란을 이집 주인으로 착각했는지 손에 들었던 엽서를 내 주고는 자기의 직무를 다했다는 듯 바쁜 걸음으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유불란은 엽서를 받아들고 이집 어멈에게 전달할 셈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이키면서 무심중 엽서를 드려다 보았다. 서면에는 지극히 간단한 문구가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오늘밤 열시 정각에 귀하를 「 방문할 예정이오니 준비는 착실히 해 두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서명도 없고 주소도 없다. 보통 때 같았으면 별로 주의도 안했을 것이나 때가 때인지라 유불란은 무엇인가 지적할 수 없는 그 어떤 예감에 사로잡히 기 시작하였다.

그는 엽서를 현관 문틈으로 던져 놓고 정문을 나섰다.

효자동 정류장까지 나온 유불란이 행길 옆 가게로 들어가서 담배를 사고 있는 바로 그 때, 명수대 은몽을 찾아갔던 황세민 교장이 전차에서 내렸다.

그래 공교롭게도 유탐정과 황교장은 불과 몇 발자욱 안되는 가까운 지역에 있으면서도 서로 만나지 못한 채 하나는 왼편으로 하나는 바른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유불란이 담배를 사가지고 전차에 올라탔을 즈음에는 황교장은 벌써 효자동 종점에서 왼편으로 꺽어져 한참 동안 걸었을 때였다.

황교장은 자기집 현관을 들어서면서 발부리 앞에 떨어져 있는 한장의 엽서를 발견하고 허리를 굽혔다.

황교장은 허리를 펴면서 누가 보지나 않나하고……두려워하는 눈동자로 주위를 한번 살펴 본 후에 구두를 벗었다.

그때 늙은 어멈이 마주 나오면서 인사를 하였다.

『인제 방금 손님이 찾아 오셨는뎁쇼.』

『누가?』

『누구신지 성함은 말하지 않고……저어 검은 안경을 쓴 키가 후리후리한 ── 』

『검은 안경?』

음 ── 유불란 탐정이로구나 하였다. 저번에도 검은 안경을 쓴 사나이가 학교로 찾아와서 자기의 설합을 뒤지고 가지 않았는가.

『다시 찾아 오시겠다고요.』

하는 어멈의 말을 들은체 만체하고 무거운 표정을 이마에 그리면서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에 들어가자 그는 뜰에 면한 「커 ─ 텐」을 열어젖히고 피곤한 몸을 털썩 의자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턱을 고인 다음 추녀에 걸린 새초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밤 열시에 온다고?』

하고 중얼거리면서 「포켙」에서 문제의 엽서를 꺼내어 「테이블」위에 놓았다.

황교장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 진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테이블」위에 놓인 엽서를 드려다 보는 황교장의 얼굴에는 점점 심각한 오뇌의 빛이 떠돌기 시작하였다.

네시, 다섯시, 일곱시 ── 시간은 쉬임없이 지나간다.

여덟 시에 저녁을 먹고난 황교장은 어멈을 불려 들였다.

『오늘밤은 특별히 여가를 줄테니까,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놀다 오시요. 늦어지면 내일 돌아와도 괜찮고 ── 』

하는 주인의 말에 늙은 어멈은 기뻐하며

『그럼 저 동대문밖 딸애네 집에나 갔다옵죠. 아유 고마워라!』

하고 변덕을 부리면서 나가버렸다.

어멈이 밖으로 나가자 황교장은 우뚝 의자에서 일어나며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여덟시 삼십 분 ──』

열 시에 오겠다고 했으니 한시간 반 밖에 남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방바닥을 드려다 보며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이리왔다 저리 갔다 하는 황세민 교장 ── 그러다가는 시계를 또 쳐다보고 시계를 쳐다보고는 또 방안을 돌아다니고…….

마침내 그는 무엇을 결심했는지 아홉 시를 치는 괘종소리를 듣는 순간,

『음 ── 』

하고 길게, 그리고 깊게 한번 신음한 후에 저편 구석에 놓인 챌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포켙」에서 조그마한 열쇠 한개를 꺼내어 책상 맨 밑 설합을 열고 설합 속에서 손수건에 싼 무슨 뭉치 하나를 끄집어 냈다.

황교장은 그것을 「테이블」위에 올려 놓고 이번에는 들창에 「커 ─ 텐」

을 깊이 내리웠다. 정원에는 아직 황혼이 남아있고 무더운 여름밤은 어둡기 시작했다. 황교장은 손수건에 싼 조그마한 몽치를 끌렀다. 그것은 한 자루의 권총이었다.

그는 감개무량한 듯이 「피스톨」을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 그는 권총을 들고 벽에 걸린 시계를 겨누었다.

『책칵 ── 』

하고 자물쇠를 당기는 소리 ──.

황교장은 다시 책상 설합에서 탄환을 꺼내어 권총에 재운 후에 「포켙」에 쓰러넣고 또 시간을 보았다.

열시가 거의 가까워 온다. 모든 것을 결심한 듯한 황교장의 얼굴에는 벌써 초조도 보이지 않고 오뇌도 보이지 않는다. 침착할대로 침착해진 황세민 교장이었다.

집안은 죽은 듯이 고요하다.

정각 열시 ── 그래도 현관에는 아무 소식도 없다. 황교장은 「포켙」위로 「피스톨」을 어루만져 보면서 손님을 기다린다.

열시 십분 ── 찌르릉 하는 초인종 소리가 돌연 텅 빈 집안을 울린다. 현관에 누가 온 모양이다.

그래도 교장은 의자에 앉은채 일어설 줄을 모른다. 깊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나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 처럼 두 눈을 스르르 감았다.

초인종 소리가 또 찌르릉 ── 하고 이번에는 길게, 그리고 세차게 울리었다. 어멈이 외출했으니 황교장 밖에 마중나갈 사람이 없건만 그는 도무지 움직일줄을 모른다.

또 째르랑 ── 초인종은 마침내 세번째 울리었다. 그래도 돌부처와 같은 황교장이다.

머얼리서 전차소리가 우웅하고 들려온다. 여름밤은 점점 깊어가고 황 교장은 여전히 의자에 파묻혀 있고 ── 그러나 초인종 소리는 다시 울려오지 않았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드르륵하고 들린다. 거센 발자욱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그리고 한참있다 슬그머니 「도어」가 열리면서 한사람의 사나이가 그림자처럼 쑤욱 황교장 앞에 나타났다.